좌로부터 박불똥,김재홍, 김영진작가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씨가 참여하는 Oh! Real?展이 지난 20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막되었다.



박불똥작



1982년 미대 회화과 복학생이었던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 세 사람은 개인적 사정과

시대현실에 대한 반항과 비판 등으로 스스로를 미술교육이란 제도 바깥으로 물러났다.

자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자 ‘낙동강 오리알’ 같은 외진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36년의 긴 세월이 흐른 오늘, 청년기의 각오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한데 모아 삼인 전을 마련하였다.
전시는 오는 7월2일까지 열린다.



김재홍작



개막식에는 참여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 장경호, 최석태, 유근오, 최명철, 신상철, 나종희, 정영신,

손기환, 홍성미, 김보중, 김경지, 조신호, 박세라, 이재민, 정재안, 김이하. 곽대원, 김태서, 김정대씨 등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김영진작


사진, 글 / 조문호
























세월 참 빠르다.

문영태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째란다.

 

지난 19일 문영태화백의 3주기를 맞아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에 위치한 민예사랑에서 문영태 유작전이 열렸다.

두 권의 추모집, “심상석-문영태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출판기념회를 겸하여...


 

그의 작품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시된 유작들을 둘러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문영태화백이 옆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그 전시공간은 문화백이 많은 시간을 보낸 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곳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품 보여 달라니까, 약 올리듯 전시나 한 번 해볼까라는 아리숭한 말을 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도 사진 촬영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를 준비한 미망인 장재순여사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품의 배치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미를 보여주며 작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 전시를 위해 전시장 구조를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재개관했다는데,

작품 배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문영태 화백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이나 마찬가지인 상처 난 두개골을 보면, 바로 시대정신이 생각난다.

제일 먼저 문영태씨 그림을 본 것이 시대정신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아픔에 앞서,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두개골의 상처를 광주항쟁에서 피 흘린 민중의 상처로 보았다.

판화가 오 윤씨의 그림이 동적이라면

그의 그림은 정적이면서도 더 충동질 하는 매력이 있다.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의 정서가 묻어나는 심상석'시리즈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내 세우기 싫어하는 선비적 성격으로,

그 작품들이 부각되지 못한 채, 덜 평가되었다는 견해들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신학철선생 말처럼, 그는 지사(志士)의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화가이기 전에 문화운동가였다.

전시와 출판기획은 물론 문화운동가로서, 저술가로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등 중요한 전시와 출판을 주도했다,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을 확장시키며 현장을 지켜 온 장본인이다.


 

90년대, 지금의 김포 문수산방에 정착한 이후에는

민속학적 문화에 바탕을 둔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진보월간지 사회평론'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을 연재하였는데,

그의 깔끔한 문체와 독보적인 비평의 글들은 독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무렵에는 사진가 이지누씨를 비롯한 16명의 작가들로

'경의선모임'을 결성한 후 사진 작업도 했다.

다들, 그림이나 문학, 사진 등이 예술이기 전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은 사진집 분단풍경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 뒤 시인 김정환씨가 대본을 쓰고 자신이 사진을 찍어 두 사람을 출판하는 등

사진작업도 열심히 한 팔방미인이다.


 

이번 유작전은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부터 사진작업인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기를 연상시키는 돌의 형상으로 민중 신앙을 표현했던 심상석

광주항쟁을 겪으며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상흔을 상징하는

상처투성이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둘러보며 남다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벽에다 쓰 놓은 古風이란 붓글도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서재에서 문영태 화백을 증언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책이나 집기는 물론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손 때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문영태화백의 작품과 활동 자료가 담긴 심상석-문영태

그가 집필한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도 출판되었는데,

뒤늦게 심상석을 펼쳐보며, 도록을 만들고 전시를 추진한

나무아트김진하씨의 안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짚어 낸 그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찾아 낸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문영태화백의 전모를 제대로 살펴 볼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다


   

 

그 날 개막식은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여사와 아들 문지함, 김윤지 내외,

그리고 딸 문지민 등의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 사회로 진행되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정갈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상처 난 뒤통수는 분단의 아픔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던 그 때 모습이 그립다고도 했다.


    

이재권동문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나 칼라를 보는 관점도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었다고도 추억했다.


 

그 외에도 성기훈 마을이장과 김정환시인, 김진하, 이인철, 홍선웅씨 등

많은 분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의 인사말을 했고,

자리를 마련한 장재순여사의 감사 인사도 따랐다.

집안 곳곳에 그이의 손길이 남아 더 마음이 아프다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 외 참석한 분으로는 류충렬, 김명희, 박불똥, 안창홍, 장경호,

이재민, 손기환, 김영중, 박정현, 양정애, 정재숙, 정동용, 김 구,

한상진, 김재홍, 최경태, 김종길, 양상용, 노광래, 편근희, 정영신,

나종희, 김영진, 송용민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 전에는 유흥준씨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했고,

밤늦게는 유연복씨와 김준권씨가 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은 오는 62일까지 김포 보구곶리에 위치한

겔러리 민예사랑’(010-5357-5256)에서 열린다.

여행하듯 훌쩍 떠나시어최북단 마을의 정취에 빠져 좋은 전시 한 번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한변의 촛점이 선명하지 않아 카메라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렌즈를 살펴보니, 막걸리 자욱이 선명하네.

난, 소주를 마셨는데, 그기 왜 막걸리가 들어갔을까?

아마 카메라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만 취하면 그만이지, 너까지 취해 버리면 난 어떻해!

사진 물어 내놔~













 

 

 



화가 황재형씨가 자본 권력의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성토하고 있다.



예술의 생산자인 작가가 돈이 없어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겨, 가난한 작가들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배제된 미술관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의 논란에, 미술관입장을 자유롭게 해야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16일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해석된 풍경’ 작가와의 만남에서 일어난 이 소란은 작가의 전시 관람을 막아 빚어졌다.
화가라면 다 알만한 중견작가가 전시장에 입장하려는데, 입장권이 없어 안 된다며 막은 것이 불씨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화가 황재형씨가,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할 수 없다며 노발대발해 한동안 미술관 측의 성토장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억눌려 온 자본권력에 대한 성토나 마찬가지였다.



작가 황재형



가난한 작가가 친구 전시 보는데 돈이 없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 날은 황재형씨 덕분에 화가들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모든 미술관들이 상시 적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화가 박불똥씨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총괄기획 아래 진행된 ‘해석된 풍경’은 80년대 이래 한국의 자연과 사회, 인간의 모습을

독자적으로 생산한 작품을 내 걸어, 시대를 재조명하려는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실체였다.



황재형작


참여작가로는 강요배, 금민정, 김성룡, 김정헌, 김준권, 김지원, 박불똥, 박생광, 손상기, 손장섭, 송 창, 신학철, 안성석, 안창홍,

오원배, 유근택, 이명복, 이세현, 이제훈, 이종구, 임옥상, 임흥순, 장종완, 조혜진, 홍선웅, 황용엽, 황재형씨등 스물일곱명이었다.



사회를 보는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지난 16일 오후2시부터 열린 마지막 작가와의 대화에는 윤범모교수의 사회로

이종구, 황재형, 박불똥씨가 차례대로 나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종구작



쌀포대 작가로 잘 알려진 이종구씨가 제일 먼저 농민들의 애환이 담긴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품을 설명했다.

황재형, 이종구씨 모두가 아버지를 반복해 그린 공통점이 있었고, 초지일관 농부와 광부를 붙들고 작업하는 것도 똑 같았다.

한 때 일산에서 살았던 박불똥씨는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벌어졌던, 주민들과 함께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작가 이종구



작가와의 대화라기 보다 작가가 작품들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주인공으로 나온 작가 외에도 장경호, 박 건, 윤병갑, 고 헌씨 등 많은 작가들이 자리를 채웠다.



좌로부터 화가 이종구씨와 박건씨



이 '해석된 풍경'전은 그 이튿날인 17일에 막을 내렸다. '성곡미술관'이란 이름과 함께... 

이 미술관이 자그만치 800억원의 매물로 나왔다는데, 무엇이 들어설까?

더 이상 자본권력이 예술가를 갖고 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진, 글 / 조문호




박불똥작







































통의동 ‘인디프레스’ 31일까지

‘인디프레스 서울’의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8일, 경복궁 영추문 맡은 편에 있는 통의동 신관에서 열렸다.



▲박불똥2016 '환갑풍경'pigment print 334x148


개막식에는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작가들이 총 출동했다. 그 것도 청와대 바로 앞에 있는 전시장이 아니던가. 예전 같았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민중미술이 뜨고 있다. 하도 시국이 어수선하니 그럴까?


▲박불똥2016'세상풍경'pigment print 334x148


오프닝 세레모니로 펼쳐진 장순향교수의 춤도 인상적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춤이라 애잔하고 슬펐다. 시위나 집회 때 마다 춤으로 저항해 온 장순향교수는 80년대 민중춤꾼 이애주교수와 쌍벽을 이루는 투사다.


▲개막식에서 춤을 추는 장순향교수


초대된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맥을 같이해 온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선두주자들이다.

특히 신학철은 1987년 ‘모내기’ 그림 사건으로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가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장경호는 암울한 시절 ‘한강미술관’ 관장으로 민중미술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 아니던가.



▲장경호 2016 '악몽-방글라데시' oil on canvas 130.3x162,2


그리고 또 한사람 박불똥은 이름만 들어도 다 안다.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에 대항하는 메시지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기존의 그림에서 벗어나 사진 오브제를 이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초대전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작가들의 출품작이 민중미술의 신작이기도 하지만, 장경호의 작품은 마치 그의 복귀전이나 다름없는, 잘 만날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장경호2016'귀' oil on canvas 140x150



최근 들어 독재, 군사정권, 서구 자본주의 등 사회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이 상승세를 이루며, 신학철씨의 작품은 그리기가 바쁘게 고가에 팔려 나간다.


민중미술이란 본래 물리적 또는 경제적으로 일반 대중들과 가까운 미술이어야 하는데, 민중을 위한 미술이 부잣집의 응접실을 장식하거나 권세가의 밀실에 숨어든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민중의 그림조차 돈만 되면 끌어당기는 자본주의의 무차별적 소유욕을 보는 듯 해 씁쓸할 뿐이다.



▲신학철2016'무제' oil on canvas 112x194



민중적인 미술은 다시 말해 우아함, 장려함, 위대함, 고귀함 따위로 만들어진 모든 가치는 여기서 낯선 것이 된다. 그래서 민중을 위한 미술은 당연히 반 숭고, 반질서, 비복고적인 비판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에게 어떻게 어프로치하며, 그리고 얼마나 호소력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제아무리 잘 그려진 그림도 진솔한 발언이 없으면 한낱 미사여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학철2016'별이 된 소녀' oil on canvas 112x194


초대 전시된 그림들은 강렬했다.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아니라 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해서 촉각적 한기를 느끼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정치, 사회를 향한 그들의 강한 메시지는 예술이 갖는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사회현상을 꼬집고 비웃는, 강력한 현실발언에 통쾌함을 맛볼 수 있었다.


▲좌로부터 신학철,장경호,박불똥.(사진제공=인디프레스)



시대와의 힘겨운 투쟁 속에서 만들어 낸 작품들을 ‘인디프레스’가 찾아내 새롭게 문을 여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전시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인디프레스 : 서울, 종로구 통의동 7-25 / 전화: 010-7397-8498]


[서울문화투데이 / 조문호기자]





‘인디프레스 서울’의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8일 오후6시, 통의동, 경복궁 영춘문 맡은 편으로 이전한 신관에서열렸다.

개막식에는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작가들이 총 출동했다.

그 것도 청와대 바로 앞에 있는 전시장이 아니던가.

오프닝 세레모니로 펼쳐진 장순향교수의 춤이 퍽 인상적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춤이라 애잔하고 슬펐다.
80년대에 민중춤꾼 이애주교수가 있었다면, 지금은 장순향교수가 있다.
시위나 집회때 마다 춤으로 저항하는 투사다.


초대된 세 사람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맥을 같이해 온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선두주자들이다.

특히 신학철씨는 1987모내기그림 사건으로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가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장경호씨는 암울한 시절 한강미술관관장으로 민중미술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다.


박불똥씨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에 대항하는 메시지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기존의 그림에서 벗어나 사진 오브제를 이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현실감을 더해준다.

 

전시되는 작가들 작품이 민중미술의 신작들이라 관심이 컷지만,

장경호씨의 작품은 마치 그의 복귀전이나 다름없다잘 만날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독재, 군사정권, 서구 자본주의 등 사회 기득권층에 저항한 민중미술이 뜨고 있다.

신학철씨의 작품은 그리기가 무섭도록 고가에 팔려 나간다.

 

전시된 그림들은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 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해서 촉각적 한기를 느끼게 하는

이미지들이지만, 사회를 향한 강한 메시지들은 예술이 갖는 존재 이유로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회현상을 꼬집고 비웃는 현실발언에 통쾌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전시장엔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백기완, 김세균, 이수호, 황효창, 박재동, 임진택, 박 철,

조준영, 송경동, 최석태, 윤병기, 천호석, 이인철, 최경태, 박흥순, 곽대원, 이도윤, 김태서,

장순향, 강고은, 김명지, 정영신, 이지하, 김경일, 이명희, 마문호, 김영중, 배인석, 조경연,

이재민, 정재안, 강기욱, 손병주, 김갑빈, 곽명우, 노광래, 김정대. 전활철, 김 구, 배성일씨 등

백여 명의 축하객이 모여들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인근 뒤풀이집에서 마시고 놀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넘어왔더니 김명성, 박인식, 김기덕,

황세준, 황예숙, 최일순씨 등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가 더위를 먹었는지, 더 이상 작동되지 않았다.

그만 찍고  집에 가라는 신호인 것 같았으나, 걱정스러웠다.

몇 일전부터 후레쉬도 작동되지 않으며 수시로 애를 먹이더니, 결국 문을 닫아버렸다.


이 전시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글/ 조문호



-신학철 작-




-장경호작-






-박불똥작-
















































































































































































































































박불똥이름 모르면 간첩도 아니다. 간첩들도 다 아니까.

나도 그 이름을 80년대부터 알았지만, 실제 만나보니 이름과는 전혀 다르더라.

우락부락하고 과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무안케 했는데,

저렇게 양순한 사람이 어디서 그런 깡다구의 투지가 나올까 의심스러웠다.

그런 그가 또 인사동서 판을 벌였단다.

 

85년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을 요약한 갤러리175’ 기획전으로,

지난 15일 시작해  31일까지 이어진다.


박불똥, 그는 민중미술의 기수다.

그 앞에는 현실과 발언전에 참여한 선배들도 있지만, 불똥 날리는 그의 투지는 독보적이었다.

선배들은 쓰리쿠션으로 돌렸지만, 그는 직설적인 강펀치를 날렸다.

    

 


그의 그림은 물감과 사진, 심지어는 인쇄문자까지 동원하는 포토몽타주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여러 이미지를 하나로 구성하는 기법으로 그만의 절묘한 조형어법을 만든 것이다.

그의 통렬한 비판 정신이 담긴 작품들로 한 때 박불똥 신드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미지를 자르고 오려 붙여 만들고, 그걸 다시 사진 찍는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단방에 인식시키는 강력한 소구력이 있었다.

    

그가 삼십 년 넘게 목을 매는, 이 전대미문의 민중미술이란 도대체 뭔가?

바로 독재자가 만들어 낸 것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예술의 한 방식으로 나온 것이다.

대개들 그 시대의 대표적 희생양으로 박종철, 이한열씨 같은 민주투사들을 떠올리지만,

그 뒤에는 박불똥씨를 비롯한 많은 민중 예술가들이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홍대 미대'에 비싼 등록금 갖다 바치며 열심히 공부했으면, 남들처럼 고상한 예술이나 하지,

왜 돈 안 되는 현실 작업에 메 달려 처자식까지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면서도 작품으로 판 벌이지 않으면, 좀이 쑤셔 못 견디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개나 소나 다 만드는 전시 팜프렛 하나 만들지 못했으며, 액자도 끼우지 못했을까?

 

사실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대부분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보상 되었겠지만, 예술가들은 국 쏟고 뭐 데인 격이다.

그 뒤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며, 일부 작가들은 감투를 얻어 쓰거나, 미술관에 작품이라도 넣었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삶의 의욕조차 잃었던 시기다싸움에 메 달렸을 때는 배고픔이라도 잊을 수 있었거든...

    

 

요즘 난데없는 민중미술바람이 불고 있다.

상업 갤러리들의 단색화에 이은 바람잡이겠지만, 박불똥은 그 덕조차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돈 되는 작가들은 장사꾼들이 다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박불똥씨 기획전은 어떻게 기획됐는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땐 판매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박불똥 형,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고 너무 서러워 마시게,

당신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밀려나지만, 더 악착같이 작업하고 있지 않은가?

못난 길 따르는 후배들께, 그 불똥 같은 정신 물려주고, 편안하게 그림이나 그리시게..

설마 산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나?“

 

이 날 전시개막식엔 인사동에서 했던 박불똥씨 전시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그만 전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민중미술하는 동료나 후배들은 거의 다 모습을 드러냈으나, 선배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후배들이 뭉쳐 무슨 쿠데타라도 일으킬까, 지레 겁먹었나?

 

전지장에서는 박불똥, 조경연 내외를 비롯하여 백기완, 이 철, 권술용, 이충렬, 임진택, 장경호,

류연복, 마문호, 이인철, 최경태, 김석주, 김기호, 박은태, 조 섭, 이재민, 이철재, 김영중, 최석태,

곽대원, 김진하, 김정대, 박세라, 이종률, 이시백, 장순향, 마기철, 최혁배, 임정희, 이진경, 김태서,

이만주, 노광래, 배성일, 장재순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고,

뒤풀이는 낭만에서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진, / 조문호


찍은 사진들을 모두 올리다 보니 100장이  넘어버렸네요.

지루하더라도 아는 사람들 있나 찿아보세요.





















































































































지난 달 중순 전기 작가 이충렬씨가 펴낸 '아, 김수환 추기경'책을 받았다.

김 추기경의 7주기를 맞아 출간된 전기였는데, 훑어보니 작가의 공력이 대단했다.
추기경의 일기와 강론은 물론, 각종 신문, 잡지에서 찾아 낸 수많은 자료와 360여장의 사진들이

촘촘히 정리되어 있었다. 김 추기경 주변에 계셨던 신부들은 물론 지인들의 증언까지 생생했다.

마치 탐정같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샅샅이 찾아낸 것이다.

그 많은 일을 미국 사시는 분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성실하고 치열한 그의 작가정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책 읽기보다 인터넷을 즐겨, 두터운 두 권을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라 여겼는데,

읽어보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성직자의 전기라 다소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싹 날려버린 것이다.

그의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소설 이상의 재미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 출생에서 박정희 정권 때까지를 담은 ‘신을 향하여’와 그 이후를 담은 ‘인간을 향하여’는

1100여 쪽에 걸쳐서, 87년동안의 김수환추기경 일대기를 샅샅이 풀어내었다.

이제까지 몇 편의 김 추기경 평전과 어록이 간행된 적은 있으나,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그의 삶 전체를 이처럼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전기물은 처음이었다.

청빈한 삶을 살다 가신 김수환추기경의 위업이야 잘 알지만,

작가는 김 추기경을 영웅으로 격상시키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낮은 자세로 사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추기경의 따뜻한 인간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불쑥 성매매 여성 쉼터에 찾아가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그녀들과 함께 밥도 먹으며,

막 살아 온 그녀들의 술주정도 다 받아 주었단다.

어떤 여인이 추기경의 무릎에 드러누워도 그냥 웃기만 하셨다는 것이다.

뒷이야기지만, 윷놀이를 하다 추기경께서 일부러 판을 좀 속였더니 “믿을 놈, 한 놈도 없다”는

막말까지 나와 추기경께서 ”나도 좀 따야지“라며 맞받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힘 있는 자에게는 목소리를 높이고, 약자에겐 한없이 자세를 낮췄다.
어두운 시대와 함께했던, 정치, 사회면의 보도사진들과 뒷이야기까지 상세히 풀어,

한 개인의 전기에 앞서,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역사였다.

전기작가 이충렬씨를 직접 만나 뵌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샘이 깊은 물”, “한겨레”,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에 쓴 단편이나 르포, 칼럼에서

그 분의 유려한 글들을 읽어 성함은 일찍 알았지만, 직접 만난 건 지난 해 ‘6인의 사무또라이’전 뒤풀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서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화백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너무 점잖으셨다.

그 이후 페친이 되어, 그 분의 출판 소식과 근황을 알게 된 것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전기문학가 이충렬씨의 네 번째 전기다.

그는 ‘실천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전기 장르에 꾸준히 작업 해왔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등 여러 권을 썼다.

이번에 펴낸 ”아! 김수환추기경“은 전기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기가 출판되자 전 언론이 일제히 대서특필하였고, 심지어는 교보문고 입구 한 벽을 광고판으로

도배할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생각보다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그 원인이겠지만, 두 권으로 나뉜 두툼한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기경께서 말년에 스스로를 바보라며 그림까지 그렸다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말 바보인 것 같다.


이틀 전, 작가 이충렬씨가 마련한 안국동 .묵호회집‘의 만찬에 초대 받았다.
박재동화백과 박불똥화백, 중앙일보 정재숙기자 등 반가운 분들을 만났으나, 처음 보는 분도 더러 있었다.

작가의 친구이며 광주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이원복씨, 영화사를 운영하는 조원장씨,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에 있는 이희연씨도 오셨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소식도 들었다.
이세돌 알파고 바둑대결을 지켜보느라 좀 늦게 나타난 정재숙기자는 사뭇 흥분되어 있었다.

앞으로 통계자료에 의해 모든 걸 로봇이 해결하는 시대가 되면 기자는 물론 대개의 직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술 부분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을 주었는데,

그럴수록 인간적인 삶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웹툰에 만화 연재할 준비를 하는 박재동화백께서 그 내용을 살짝 귀띔했는데, 너무 재미있겠더라.

연재가 시작되면 대박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꿈의 학교’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틀에 박힌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멋진 학교라는 것이다.

일례로 수학에 천재적인 재질을 가진 학생이 외국 유학을 갔는데, 수학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강의만 했다고 한다. 실망해 그만두려는데, 수학을 아름답게 푸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었단다.

아무튼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았다.


이충렬씨는 역작을 펴내기가 무섭게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평생 교회 종만 치며 살아 온 종지기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집필할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에 국한된 전기에서 나아가, 평범하게 살아 온 서민의 삶에 초점에 맞춘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이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애 아니겠는가?























그 날 함께 하기로 한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판화가 류연복씨가 사정으로 참석 못해 아쉬웠지만, 즐거운 자리였다.

환담이 오가는 와중에도 박재동화백은 참석한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캐리커쳐해 선물로 주셨는데,

내 몰골 하나는 웹툰에 액스트라로 사용하려는지 챙겨 두셨다. 괜히 기분 좋아지데...



사진,글 / 조문호



정재숙씨


조원장씨


이희연씨


박불똥씨


거지왕 김춘삼씨가 생각납디다.


지명수배자 / 혹 웹툰에서 이런 몰골 만나면 신고하세요.


 


고 문영태화백

 

 

민중미술가 문영태씨가 지난 9일 아침,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이 세상을 훌쩍 떠났단다.

이틀 전 박진화화백으로부터 뇌경색으로 쓰러져 어려울 것 같다며 영장사진 한 장 만들어 달라는 연락을 받아 

걱정은 하고 있었으나, 억장이 무너지는 전갈이었다.


문영태씨는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아래지만, 늘 존경하는 친구였다.

1980년대 중반 '통일전', '여성과 현실전', '탄압사례전', '반고문전', '정치와 '미술전' 등의 미술운동으로 문화의 힘을 결집시켜 사회운동으로 확장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 이후 90년도에 들어와서는 이지누, 박불똥, 류연복, 박 건, 조경숙씨 등 열일곱 명이 모여 ‘경의선모임’이라는 작업공동체를 만들어 '분단풍경'(눈빛출판사)이라는 사진집을 펴내는 등 사진작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글이다.

한 때 진보잡지에 연재했던 한국 문화에 대한 독보적 비평들이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80년도 중반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관장으로 일할 무렵이었다.

인사동 길거리나 술집에서 자주 부딪혀 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는데,

작업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후원자로 술 친구로 한 30년 지낸 것이다.

 

지난 5월27일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김포 자택에서 열리는 전시가 내일까지니 와 달라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줄 알고 예정된 약속까지 취소하며 달려갔으나 서양화가 최선호씨와 도예가 변승훈씨의 전시였다.

너무 실망스러워 “문형의 작품은 언제 보여 줄 거냐?‘고 투덜댔더니 ’한 번 해 볼까‘라는 긍정적인 말을 뱉어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아무리 가는데 순서가 없다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날 찍었던 기념사진이 영정사진이 되고 그의 마지막 모습이라니 가슴이 미어진다.

 

다른 작가들은 인터넷까지 올려가며 작품을 못 보여줘 안달인데, 어찌 그토록 자신을 알리는데 인색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세상 돌아가는 꼴 더러워 몽땅 싸가지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쪼록 저승에서나마 당신의 전람회도 열고, 당신의 생각을 담은 글도 발표하구려.

그리고 미워도 이 세상 끝까지 그 아름다운 향기를 좀 전해주시오.


여보시게 친구! 부디 잘 가시게.

먼저 가신 인사동 터줏대감들께 안부도 전해주고, 저승에서 만나거들랑 푸대접이나 하지 마시게...

 


사진: 정영신,조문호 /글: 조문호

 

 

2015,년 5월 28일, 그의 서재에서

 

 

2015년 5월 28일,자택 뜰에서

2015년5월 28, 서양화가 최선호씨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라며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2015년 5월 28, 사진가 정영신씨에게 저 물 건너가 북한의 개풍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15년 5월, 28일, 자택 거실에서 부인 장재순씨와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

 2015년 5월, 28일, 필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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