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동안의 자가 격리는 해제되었으나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 도무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을 포기하고 방에 갇혀 있을 수만 없지 않겠는가?

 

지난 화요일 격리에서 벗어나 모처럼 동자동에 갔다.

차창에서 올려다 본 하늘 풍경이 한 가닥 희망 같았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이 서광처럼 비쳤는데,

그 형상은 마치 인간의 간절한 기도처럼 보였다.

 

동자동에는 새꿈 공원 접시꽃이 정겹게 반겼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곰탕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마치 알고 찾아온 것 처럼 주는 시간까지 딱 맞았는데

배급 현장은 다른 때와 달리 줄이 길지 않았다.

 

하기야! 요즘 다들 방에서 잘 나오질 않아 모를 수도 있겠더라.

황춘화씨는 곰탕 솥 채로 주는 줄 알았는지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오는 순서대로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내용물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제법 묵직했다.

 

공원엔 곰탕 준다는 공지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밥보다 술이 더 고팠던 모양이다.

다들 수시로 나눠 줘 그런지, 그 고마움을 잘 모른다.

당연히 주는 것으로 길들어 버린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얻어먹기 위해 줄서는 것이 창피했지만,

이젠 안 주면 기다려질 정도로 뻔뻔스러워 졌다.

최소한 어디서 누가 주는지는 알아야 고마워 할 것 아닌가?

이게 가난한 사람들 길들이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방에 올라와 봉지를 열어보니 일회용 곰탕과 입회용 백반,

일회용 김치가 각각 네 봉지씩 들어있었다.

밥해먹기 어려운 주민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나흘 동안 매 한 끼씩 보신할 수 있는 최고의 먹거리였다.

 

덕분에 아침을 겸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해결했다.

누가 베푼 온정인지 모르나 고맙게 먹었다.

그러나 빈민들에게 밥 한끼로 안주하게 하는 것보다

자립하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들 기초생활수급자라 그 정도의 음식은 사 먹을 수 있다.

우린 거지가 아니라 사람이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모두 버린다

물건도 사람도 쓸모 없어면 다 버린다

쳐 먹고 싼 똥처럼 쉽게 버린다

 

가족이 버렸고, 친구가 버렸고, 세상이 버렸다

 

혈혈단신 밀려 나 정처없이 떠 돈다

 

모진 목숨, 다 버려도 목숨만 못 버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옆 방 사는 최군은 정신이 왔다 갔다 하여 다들 미친놈이라 부른다.

그러나 미친놈이 미치지 않은 놈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그는 돈 있은 놈보다 없는 놈을 더 좋아한다.

제 몸 눕기도 비좁은 쪽방에서 물고기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가하면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대부분을 노숙자들 술 사주는 데 써 버린다.

 

가끔은 방안에서 발작 일으키는 소란에 관리인 정씨에게 혼 줄도 나지만 아무 소용없다.

정씨 역시 금방이라도 쫒아 낼 듯 욕을해대도 그의 인정스러움을 알아 그 때 뿐이다.

 

요즘 관리인 정씨가 허리를 다쳐 꼼짝을 못하는 와중에 최군의 발작이 도졌다.

갑자기 갑갑한지 팬티만 걸치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괴성을 질러댄다.

 

아무도 방문조차 열지 않아 그런지 골목으로 나가더니,

지나치는 이들의 심상찮은 반응에 다시 들어왔다.

 

조용해 방문을 열어보니, 발작이 끝났는지 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이제 한 숨 돌렸다! 이 더러운 세상 어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겠나?

 

마음껏 소리 지르며 억눌린 마음을 풀고 나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미쳐버리면 모든 걱정도 잊지 않겠는가?

 

일손이 잡히지 않아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 다녔다.

동자동이나 서울역이나 그 풍경이 그 풍경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돈 많은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스크도 멋인지 마스크 전문 매장이 생겼더라.

 

최군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

미친 자가 미친 것을 모르듯, 다들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걱정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으나,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고질병인 호흡장애와 원인모를 두통에다 기력까지 쇄진하니, 사는 것 자체가 비참해 진다.

 

 

 

한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도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냈는데, 이젠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인데, 갑자기 날씨마저 더워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바람이라도 씌러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더니, 노숙하는 박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형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 잔합시다” 술 생각이 간절한 모양인데,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서너 잔 마셨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박씨가 “어디 아픈가베! 빨리 병원 가보라”며 술잔을 거두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었더니 어지럼증이 좀 안정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은이는 “술을 혼자 많이 마셔 벌 받았다”며 낄낄댄다. 어디서 구했는지 헬멧을 쓰고 목에 채인 까지 감고 있었다. 지은이를 보니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노숙하는 처지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살아간다.

 

 

 

그래! 아무 것도 없는 게 속 편할거다.

 

 

 

나 역시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편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쪽방도 있고, 좋아하는 동지도 있고, 케메라도 있지 않은가? 그 세 가지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았다.

 

 

 

곳곳에 쓰러져 자는 노숙인이 널려 있었다. 밥 얻어먹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잠 잘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아플지 모르겠다. 아파 딩굴다 눈감으면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정치꾼들은 걸핏하면 복지복지 노래 부르지만, 말짱 개소리다.

 

 

 

그래도 그냥 들어 갈 수는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는 한 이 짓은 반복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다. 세상에 별의 별 병이 많지만, 이 병도 마약처럼 하나의 정신병에 속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속에 들어가 눕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관 치고는 큰 방이지만, 계단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쉬엄쉬엄 올라오긴 왔는데, 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숨을 못 쉬어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런 복이 내게 올 리는 없다.

 

 

 

누워 있어도 할 일이 눈에 어른거려 미칠 지경이다. 지금쯤 정선에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병이 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당집처럼 붉은 깃발을 펼럭이며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는 험악한 글이 나 붙은 거리도 이제 익숙한 동자동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토록 공공주택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던 재개발조합에서 갑자기 ‘동자동 주민대책위’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쪽방 주민들을 회유하려 들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2월 정부에서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LH와 SH를 공동사업시행자로, 서울역 근처 동자동 일대에 공공주택 145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짓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쪽방 주민들은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되었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임시거주지도 제공한다는 발표에 빈민들의 기대가 컷다.

 

 

 

이미 지난 2월19일 주민들의 의견 청취를 마쳤고, 올해 안에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완료하면 내년부터 지구계획 승인과 보상 절차가 진행된다. 2023년 임시이주와 공공주택단지 착공에 들어가며 입주는 2026년이고 2030년에 민간분양 택지개발이 완료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 지역 토지·건물주들이 추진한 동자동재개발조합에서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는데. 갑자기 쪽방주민들에게 “더 좋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달래며 쪽방 전체 주민을 대표하는 듯한 '동자동 주민대책위'로 간판을 바꾸어 다는 위선적인 전략을 취한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조합은 2018년부터 만들어졌지만 여러 장애에 걸려 여지 것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재개발조합에서 못하는 것을 정부에서 해 주겠다는데, 왜 눈에 쌍심지를 켜는지 모르겠다. 떨어지는 떡고물이 적어서 일까?

 

 

 

그 강경했던 거리 펼침막을 지난 달 중순부터 두리뭉실한 내용으로 바꾸어 달았다. “쪽방 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겠습니다.”  재개발조합을 좌지우지하던 여인네 직함도 “동자동 주민대책위원장”으로 바뀌었더라. 누가 완장을 채워주었는지 모르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대개의 쪽방 건물주들은 투기꾼에 다름아니다.

 

 

 

쪽방 주민들도 비열한 그 따위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 주민들의 협동체인 “동자동 사랑방”에서 건물주들의 붉은 깃발에 맞서 “공공주택환영”이란 글귀를 곳곳에 써 붙이며 음흉한 공작에 대처했다. 주민들은 건물주들의 위선에 분통을 터트리며 “공공주택 개발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에는 새꿈공원에서 쪽방주민들이 찍은 특별한 사진전도 열었다. 자신이 사는 주변 환경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는 사진전이었다.  사진작가들의 주관적인 앵글보다 주민들이 찍은 가식없는 현장사진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처럼 리얼한 현장 사진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방에 물이 새도 그만, 공동화장실이 막혀 용변을 못 보아도 모른채 하며 건물관리는 뒷전이었지만, 비싼 방세는 하루만 늦어도 쫓아내는 악덕업주들이 아니던가? 방세 또한 계좌이채도 안 되고 오로지 현금만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럽게 벌어 탈세까지 하려드는 것이다.

 

 

 

건물 소유주들이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민간개발에 견줘 그들에게 돌아오는 개발이익이 적어서다,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라”며 극력 반발하던 소유주들이 이제 와서 ‘쪽방 주민들과 함께’하겠다며 알랑방귀 뀌는 꼴 사나운 수작들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평당 임대료로 치면 고급아파트보다 더 비싼 동자동 쪽방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짐승우리보다 못하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주거급여가 오르면 월세도 따라 올렸다. 건물주들은 동자동에 살지도 않고 관리인을 통해 월세만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주제에 이제 와서 ‘함께하자’ ‘우리 얘기도 들어 달라’고 나서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동네에 붙인 유인물에는 “저희는 쪽방 주민 여러분들을 내쫓을 생각이 전혀 없다. 닭장 같은 쪽방에서 또 다른 쪽방으로의 이전이 아닌 집다운 집, 질 좋은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는 말을 적어 놓았다.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미 2015년부터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추진했지만, 소유주들끼리 합의가 안 돼 실패했다. 그땐 쪽방 주민들 의견은 물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공공주택 계획이 발표된 이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간주도 재개발을 공약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게 문제였다. '국민의 힘'은 지난 달 중순 건물소유주들과 간담회를 열어,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을 ‘재산권 침해’라 비판하며 가진 자들의 편을 들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건물주들의 목소리보다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빈민들의 삶을 살펴보고 대처해야 한다. 당리당략보다 동자동 공공주택개발 사업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표본이 될 수 있도록 망설이지 말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건물주들은 당장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란 위장 간판부터 내려라.

그리고 정부의 공공개발 사업에 적극 협력하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더냐?

 

사진, 글 / 조문호

 

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다.

먹기도 싫고, 컴퓨터도 싫고, 자다 깨다만 반복한다.

 

가끔은 정선 집이 불탄 것을 잊고 일 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정선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쫙 빠진다.

 

난, 정선 집에 많은 것들을 가져 쪽방에 살아도 항상 마음은 부자였다.

다 태우고 모든 걸 잃었으니, 쪽방사람과 똑 같은 동격이 되었다.

 

관리인 정씨가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방문을 열어보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때 사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뚜벅뚜벅 공원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은 그 풍경에 그 풍경이고 그 얼굴에 그 얼굴이었다.

 

강씨는 보자마자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한다.

혼자 술 마시던 정씨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색한다.

 

술 한 잔 하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역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의 천국이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얻어먹고, 비둘기는 노숙자에게 얻어먹는다.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공존의 장이다.

 

노숙자 지은이가 짐을 끌고 어디로 가고 있었다.

차도 건너 편 외딴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았더라.

 

짐이 많아 치우라는 역무원 등살에 피신한 것 같았다.

터줏대감 가오인지, 그는 항상 짐을 쌓아놓고 산다.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와 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똥색인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젠 나도 가진 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나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여지 것 선거운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 선거는 다른 선거와 달랐다.

동자동 재개발을 그대로 추진할 수 있는 여권 후보의 당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역에 가서 코로나 사전검사부터 받았다.

최근 받은 음성 확인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기가 지겹지만, 어쩌겠는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정기총회도 비대면으로 열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러지는 서면 총회인데,

임원 선출하는 투표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형식적인 선거이긴 하지만, 기존 임원에 한 표 던졌다.

 

다음 날부터 쪽방 촌 주민들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동자동을 누비고 다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다들 외출을 자제하는 터라 쪽방을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분에게는 찍어 둔 기념사진을 전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분에게는 출판에 따른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아가며

여당후보가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빈민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경우를 염려해서다.

 

투표장보다 사전선거가 열리는 서울역이 더 가깝기에

서울역 사전투표장으로 갈 것을 안내 했는데,

어떤 분은 손이 떨려 도장이 선에 물렸다며 걱정했다.

 

서울역에 자리잡은 노숙인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달 전 코로나 감염자가 100여명으로 늘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감염된 노숙인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이 없어졌다고 노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다른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서울역전에서 죽치는 낯선 노숙인들은 선거엔 관심도 없었다.

“어느 놈이 되어도 마찬가지”라지만,

문제는 노숙인 대개가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점이다.

주권 행사를 할 수 없는 노숙인 표가 아까웠다.

 

도시락 나누어 주기만 기다리는 그들에게는

한 장의 투표 권 보다 배를 채울 빵이 더 절실했다.

 

그들의 시름을 덜어 줄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다.

쪽방 촌에는 선거유세차가 수시로 들락거리지만,

서울역에서 표를 구걸하는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거지는 사람도 아닌 모양이다.

왜 쪽방촌보다 위급한 노숙인을 방치할까?

정치인들의 노숙인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쪽방 촌 골목골목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동자동재개발을 반대하는 건물주의 항의 시위다.

몇 년 동안 재개발을 못해 안달이더니,

그들이 해결 못하는 일을 추진하려는데, 왜 반대할까?

한 푼이라도 보상을 더 받기 위한 치졸한 작태다.

 

지난 6일은 꼼짝하지 않고 방을 지키기로 했다.

방소독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올지도 몰라 숙제처럼 남은 전시리뷰를 쓰기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리 머리를 짜도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다기 보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헷갈렸다.

들여다 보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지끈해 덮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탁받지도 않은 이런 일을 왜 찾아다니며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작가는 비슷한 내용의 전시를 해마다 여는데, 같은 이야기를 재탕 할 수도 없었다.

고생스럽게 써주고 욕먹는 일도 한 두번이 아닌데,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었다.

리뷰 쓰기 싫어 전시장 출입을 삼가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래, 이제부터 보아야 할 전시들은 빠짐없이 찾아보고,

대신 청탁을 받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전시리뷰를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무슨 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결심을 하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소독하는 분들이 찾아왔다.

좁은 방이라 분무기 호스를 한번만 돌리니 간단히 끝났다.

벽에 덕지덕지 붙은 사진이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쪽방을 수없이 다녀 보았지만, 침대까지 들인 방은 처음이란다.

 

이제 투표결과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한 표라도 보태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위안했다.

 

그런데, 출구조사가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

이토록 비참한 패배는 없었다.

평소 안 하던 내 짓거리에 표가 반란을 일으킨 걸까?

 

오시장 임기동안 재개발 사업을 깔고 앉을 확률이 많은데,

빈민들의 꿈이 물거품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방법 밖에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주변에 코로나 감염자가 퍼져 비상 걸린 지가 두 달이 지났다.

감염된 많은 노숙인들이 사라졌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살아남은 노숙인은 물론 동자동 쪽방 빈민들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전검사를 받아야 밥집이건 보호시설에 출입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확진가가 나오지 않자 서서히 긴장감이 풀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른한 봄바람 타고 다시 서울역 노숙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긴장감이 풀림에 따라 마스크를 벗거나

반쯤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언제 다시 확진자가 생겨 이차 재난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병 걸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배고픔과 외로움이다.

 

그리고 동자동 쪽방 촌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노약자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시로 공원을 들락거린다.

 

이제 검사받는 것도 지겨울뿐더러,

목련이 만발한 봄날 어찌 쪽방에 갇혀 살수만 있겠는가?

 

죽고 사는 문제는 운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사람은 없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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