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7

지난 7일 오전 무렵, 동자동 쪽방에 반가운 손님 세 분이 찾아오셨다.

인사동에서 열었던 ‘어머니의 땅’과 '노숙인, 길에서 살다' 전시 보러 오셨다가

‘유목민’ 골목에서 술 한잔 나눈 인연에 불과한데, 급기야 가까워졌다.

 

김문경씨는 하남에 있는 ‘큰 나무 갤러리’ 대표였고

운현선씨는 '실버넷 뉴스'에 투고하는 프리랜서고

강은영씨는 간호사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쪽방을 찾아온 계기는

술 마시다 동자동 집에 한번 놀러 오라 했는데, 진짜 오신 것이다.

 

더구나 김문경씨는 하남에 계시는데, 오전에 도착하려면 일찍 서둘렀을 것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날이 그분 생신이라 송구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쪽방에 접대할 음식은 물론 앉을 자리도 없지 않은가.

세분이 방안에 들어오니 방이 꽉 찼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포스터나 사진 보느라 시간 보냈다.

 

서둘러 나와서는 골목 입구에 자리잡은 대우식당에 들어가 허기부터 메웠다.

전날 신학철선생 전시 뒤풀이에서 퍼마신 술로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국물이 들어가니 훨씬 편안해졌다.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런데, 밥값은 물론 찻값까지 손님들이 내 버렸다.

아무리 얻어먹는 거지라지만, 몰염치도 이런 몰염치는 없을 거다.

생일선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연히 알게 된 인연이지만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지 않던가?

다들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좋은 인연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건강한 나날 되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2021.9.21

서울역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숙인이 많다.

숨어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투명 인간으로 떠돌다 죽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다시서기 지원센터’ 지하 벽에는 노숙인들이 써 놓은 낙서가 많다.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차고, 술과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

‘내 고향 솔치재“라는 글도 눈에 뜨인다.

솔치재라면 내가 살던 정선 지척에 있던 고개 이름이 아니던가?

낙서 중에는 백조 시인이 쓴 ’신비로움과 사소함의 동거‘라는 시도 있다.

 

”오랫동안 간절한 것은 신비롭고

한참 머무는 것은 사소롭다.

신비는 직장에서 잘린지 오래고

사소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불황이 걷히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해가 풀리지 않아

바람 부는 날이 잦아진다.

신비로움과 사소함은 동거 중이다.

궂은날이 이내 지나가고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다.

네가 내게로 온다“

 

백조 시인이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노숙인들의 술자리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야기가 나와도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실 뿐이다.

말 없는 이들은 표정도 변화가 없다.

다 놓았으니 마음은 편할 것이다.

 

추석을 며칠 남긴 서울역광장의 밤은 한적했다.

다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라.

 

오 갈대 없는 이의 명절이란 또 하나의 고통에 다름아니다.

 

다음 날은 쪽방촌 추석 선물 나누어주는 날이다.

웬일인지 ’새꿈공원‘에 선 줄이 길지 않았다.

다들 추석 선물이라 모자라지 않을 것으로 여겼나 보다.

옆방 사는 김씨는 마스크를 두고 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누어 준 선물 박스는 쌀이 들어 묵직했다.

육개장, 라면, 김,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식료품 종합세트였다.

대개 내용물이 비슷비슷해 된장과 고추장은 지난번 것도 있어 남아돈다.

 

낑낑거리며 사층까지 올려놓고 라면 끓일 물을 올리는데,

때맞추어 교회 청년들이 도시락을 전해 주네.

 

고맙게 받아먹었으나, 부끄러웠다.

남의 도움에 길들어 산다는 것이...

 

사진, 글 / 조문호

 

 

이숲출판사에서 발간한 조문호 포토 에세이집 노숙인, 길에서 살다가 오는 9월 하순경 출판됩니다.

책 발간에 맞추어 오는 923일부터 104일까지 인사동 유목민골목 담벼락에서

현수막전과 함께 책 사인회를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 갈 곳 없는 빈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인회 일자 : 2021, 925일과 102,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장소 : 인사동16, 현수막 전시장 앞

 

아래는 이광수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안에는 온갖 다양한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이야기꾼, 인문학자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루카치도 들어 있고, 헤이든 화이트도 들어 있고, 긴즈버그도 들어 있고, 푸코도 들어 있는데...그 중 압권은 레비 스트로스로 봅니다. 참여관찰이지요. 대상 속으로 들어가되, 그들 속에서 공기와 같이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하나로 융화되는 거지요. 거기서 어떤 사진가는 까르띠에 브레송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로버트 프랭크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유진 리차즈같이 표현을 하지요. 사진가 조문호는 레비 스트로스 같이 참여관찰을 하는 사진가이면서, 브레송이나 프랭크같이 스케치나 장면 포착과 같은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조문호는 브레송이나 프랭크와는 다른 사진을 찍지만, 그렇다고 리차즈같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 눈이 보는 그대로 찍습니다. 대상이 마음 문을 열 때까지 카메라를 들지 않는 건 리차즈와 같지만, 사람의 눈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거나 그게 아니다 싶으면, 그 사람을 감춰줍니다. 오로지 모든 초점은 그 대상, 사람에 있습니다. 카메라도 그저 그런 똑딱이, 화려한 이론도 없이... 그저 사람을 존중하는 사진을 찍습니다. 조문호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진을 찍으러 들어간 게 아니고, 그들과 함께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사진은 삶을 함께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사진이 종이고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5년간의 참여관찰 - 관찰보다는 참여에 방점이 있습니다 - 로 찍은 그 사진이 곧 나옵니다. 동자동 사람들을 담은 '노숙인 길에서 살다' (이숲출판사)... 한국 사진사에 큰 족적이고, 이정표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진평론가 이광수

 

 

지난 월요일 오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쪽방 거지는 걱정할 것 없으나 길거리 사는 거지는 지랄 같다.

이불 삼은 종이 박스도 젖어버리지만, 몸 젖는 것보다 마음 젖는 것이 더 서럽다.

노숙인들이 비 오는 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이유다.

 

다들 비 피할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군가 랩처럼 비닐을 몸에 감고 버티는 자도 있었다.

깡다구로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것일까?

무슨 천형의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지은이는 우산을 하나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을 돌아다녔다.

똑같은 노숙자지만 지은이는 낙천적으로 산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옷이 그 옷이지만 나름대로 바꿔 입어가며 멋을 엄청 부린다.

 

만들어 주기로 한 시진을 준비하지 못해 일부러 눈 마주치기를 피했으나

멀찍이서 보고 다가와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해준다.

다음엔 꼭 사진을 뽑아오겠다고 변명했더니,

밀린 사진이 석 장이라며 찍은 회수까지 기억했다.

 

지하도를 건너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그는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그를 왜 기억하지 못할까?

치매 환자라며 이름이 뭐였더라고 머리를 조아리니,

박완호예요 박완호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자칭 인사동 광대라는 자가 서울역엔 어떻게 진출했나?

하기야! 나 역시 인사동 찍사가 서울역 부근에서 놀지 않는가.

서울역광장은 거지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동자동으로 건너와 공원에 갔더니, 젖은 땅에 앉아 여럿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근 일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던 유정희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젖은 자리에 끼어 앉았는데, 그동안 감방에서 몸조리하고 왔단다.

싸움판에 끼어 덤터기를 썼다는데, 폭력전과 별까지 달았다며 씁쓸해한다.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일 년 가까이 서류를 갖고 다녔는데

원고 마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며 안타까워했더니,

형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 필요합니까?”라며 오히려 섭섭해한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찍힌 사람들에게 사인받으러 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만약 찍힌 사람이 고소를 해도 이왕 단 별, 몇 개 더 단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 등 제삼자에게 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아 만나지 못하면 부득이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출감기념으로 소주 두 병 사 와서는 빗물에 칵테일해 마셨다.

그런데, 건너 자리에 있던 상일이가 내 옆으로 옮기더니 말을 붙인다.

다들 나에 대한 호칭을 형이나 어르신 아니면 사진작가라 붙이는데, 이 친구만 늘 사장님이라 부른다.

~ 배도 안 나오고 이래 삐적 말라빠진 사장이 어딧노?”라며 싫어해도 자기는 그 말이 편하단다.

 

오래전 상일이가 나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그 내용을 찾아주어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어려운 처지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은 노숙하는 친구를 범죄자처럼 피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이 야박한 세상에 착하게만 사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만, 몸이 축축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쪽방에 올라와 옷부터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가짜 미투로 독박 쓴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가 쪽방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달짝한 복분자 술을 한 병 사왔는데, 부족한 알콜 농도는 복분자로 보충했다.

 

사진, / 조문호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지난 4일 동자동 쪽방촌에 국민의 힘 정치인들이 대거 몰려와 한바탕 소동을 벌였는데,

당 경선 흥행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분통을 터트리게 했다.

그러나 유력 대권주자들이 모두 불참해 퍼포먼스를 벌인 취지가 무색해 졌다.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마침 그들이 방문한 정오 무렵에는 박재동화백의 전시회에 가는 바람에 정치 쇼를 보지 못했으나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하태경, 윤희숙, 김태호, 안상수, 장기표, 황교안, 장성민 등

많은 정치인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국회 사진기자단 자료

이날 행사는 동자동 쪽방촌에 얼음물과 삼계탕을 전달하는 행사인데,

쪽방을 돌며 삼계탕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은 사진찍기 위한 쇼에 불과했고,

나머지 물품은 새꿈 공원에 쌓아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떠났다는 것이다.

어쨌던 몇몇 쪽방이라도 돌아보아 빈민들의 실상을 목격했으니 정치활동에 참고는 할 것으로 위안했다.

 

이날 현장에선 일부 주민들이 ‘주거권 보장 없는 자원봉사는 기만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맹물 말고 공공주택”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주민은 윤 전 총장의 ‘부정식품’ 발언을 겨냥해

“부정 물이 아닌지 한 번 보자, 없는 사람들은 다 썩어가는 것 먹으라고 했는데”라는 등 조롱했다고 한다.

 

오후 1시 30분 무렵에서야 동자동으로 돌아 왔는데,

새꿈공원에는 그들이 두고 간 삼계탕을 타기 위해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는 세탁소에 바지 맡기러 나온 김에 공원에 들렸지만,

여지 것 물건타기 위해 한 번도 줄선 적이 없다고 한다.

 

모여든 동자동 주민 중에는 보이지 않는 주민이 많은 대신 낯선 사람이 많았다.

홀애비들이 주축인 쪽방촌에 여인네가 많은 것도 이변이었다.

주거권 문제로 주민들의 이동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물품을 전달 받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는 주민들이 오는 데로 곧 바로 나누어 주지

왜 오후2시까지 기다리게 하여 더위에 주민들을 지치게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늘이 있는 공원을 벋어나 골목으로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지것 줄을 섰지만 한 번도 새치기를 하거나 줄서는 문제로 시비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날은 여기저기서 실랑이가 붙었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을 향한 욕설과 비난도 빗발졌다.

하기야! 더위에 지쳐 날카로워 진 심기에 더 이상 참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삼계탕을 가져다 준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삼계탕 주고 욕을 먹으니, 이게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코로나가 심각한 즈음 이런 난장판을 만들어 확진자라도 생기면 어쩔지 모르겠다.

 

정치하는 놈들이나 쪽방상담소 직원이나 똑 같은 놈들이다.

제발 빈민들을 이용하는 쇼는 이제 그만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화요일 '케이티'에서 식료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케이티'는 오래전부터 동자동 쪽방촌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고마운 기업이다.

 

'케이티'에서 시설을 제공하고 서울시에서 운영비를 대는 ‘돌다리골 빨래터’를 만들어

세탁기 없는 쪽방빈민들의 세탁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겨울철에는 외투를 나누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왔다.

 

삼년 전에는 KT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나온 적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수박화채‘를 퍼 주고, 소방호스로 공원 주변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일손 도우려 나선 게 아니라 잠간동안 사진기자들 모델 노릇을 자처한 쇼다.

 

케이티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시장이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 2018년 8월 5일 

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정치적인 쇼하지 말라고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난 지금에 이르니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비서들이 짜놓은 일정에 따랐을 뿐일텐데...

고향 후배라 좀 잘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지적이지만, 착한 양반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자선을 알리고 싶은 것을 탓할 필요야 없으나, 비참해지는 당사자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자체를 피하는 데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날 줄 세워 생색내는 짓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먹을 것을 줄 세워 나누어 주는 형태는 가난한 사람들 길들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 줄 세워 주는 것을 꾸준히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마이동풍이었다.

하기야! 주는 측에서 줄 세우는 것을 원한다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자 줄 세우는 것을 자제하며,

시간 날 때 찾아가는 배급이 자리 잡아 가는 중에 또 다시 재연된 것이다.

 

주민이 천명이 넘는데, 준비한 식료품이 700개뿐이라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동자동 사정을 훤히 아는 '케이티'에서 300개가 아까워 적게 가져왔겠는가?

여름철이라 문 닫힌 쪽방도 많지만,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벽보를 못 보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700개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한 짓이다.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줄 세워 사진찍기 위한 하나의 핑계일 뿐이었다.

 

많은 독지가들이 빈민들을 돕고 있지만, 이처럼 광고하며 돕지 않는다.

대표적인 분으로 두산그룹의 박용만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 분은 내가 오기 전인 5년 전부터 매주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서 실시하는

도시락 장만에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일손을 도와왔다,

지금은 창신동 산 꼭대기에 직접 주방을 만들어 홀로 사시는 노인을 돕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식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계절마다 이불을 걷어 세탁해 드리는 등 남 모르게 자선을 베푼다.

 

처음 박회장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자 근성이 발동해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

그만한 온정의 뉴스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내용을 내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오히려 자선을 노출시킨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몇 개월 전부터 화요일마다 쪽방에 도시락을 전해주는 젊은이들이 있다.

어디서 보내 준다는 말도 없이 사람 있는 쪽방에만 전해 줘 고맙게 받아 먹었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가수 임영웅씨가 보내는 도시락이라는 것이다.

자선이란 이처럼 생색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얻어먹는 주제에 매번 잔소리 해대는 것도 이젠 지겹다.

자선을 광고하기 위해 빈민들을 줄 세우는 이런 구태가 아직까지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지난 26일 밤은 너무 더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늦게서야 일어났는데, 얼마나 물을 많이 들이켰는지 밥 생각도 없었다.

건물 관리하는 정씨가 오늘 식료품 나누어 준다며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받아오라고 귀뜸해 주었다.

하기야! 이 더운 날 줄서서 기다리는 일이 예삿일은 아닐 것이다.

 

정해진 배급시간 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은 골목까지 뻗어 있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행여 코로나 감염자라도 생길까 걱정스러웠다.

주는 측도 마음에 걸렸는지, 다른 때는 당사자가 아니면 대리수령은 할 수 없으나, 

그 날은 주민등록증만 가져오면 대리수령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선착순이라는 줄 세우기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대신 받아 주는 사람도 손수레 없이는 가져갈 수 없었다.

작은 생수 20병까지 함께 주니 노인이 들기에 무리였다.

여름철에는 라면 같은 부식보다 생수가 더 반가운 품목이라 다들 낑낑거리며 받아갔다.

노인들이 높은 층까지 들어 올리려면 수십번은 쉬어야 할 것이다.

 

다들 속은 상하지만 아무 말 없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노인은 쪽방상담소 직원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댔다.

본인 소유의 집도 있는 사람이 빈민으로 위장해 배급을 타 갔다는데, 그게 들통 나 거절당한 모양이다.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가진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들 몸에 베인 익숙한 자세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케이티’ 유니폼을 입은 직원 한 사람은 받는 장면을 정면에서 사진 찍고 있었다.

더운 날 줄 세워 식료품 나누어 주는 것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구시대적인 줄 세우기로 기업 홍보를 하려는가? 

어느 부서의 바보같은 임원 잔머리인지 모르지만, 뭐 대주고 빰 맞는 짓이다.

'케이티' 얼굴에 똥칠하는 짓은 이제 집어치우라.

 

사진, 글 / 조문호

 

지긋지긋한 더위와 싸워야 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되돌리는 선풍기소리 조차 짜증스럽다.

요즘 같은 더위의 쪽방은 대개 자물쇠가 잠겨있거나 방문을 열어놓고 있다.

 푹푹 찌는 찜통에서 탈출하여 어디선가 노숙하고 있을 것이다.

 

쪽 팔려 노숙은 안 한다는 맞은 편 김응수씨만 곰처럼 버티고 있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지하철이라도 탔으면 좋겠으나, 사람 접촉이 싫어 안 나간단다.

옆방의 최완석씨는 길 모퉁이에 자리 잡았더라.

이런 더위에는 정해진 거처도 없는 노숙자가 상팔자다.

 

몇 년 전에는 쥐가 천장 전선을 갉아 먹어 정전된 적이 있었는데,

더운 바람이라도 돌리는 선풍기가 작동 안 하니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원인을 못 찾아 낑낑대다 하는 수없이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맞바람이 통하는 건물 입구에 자리 깔아 너무 시원했다,

 

그러나 칼잠 자는 습관으로 귀를 땅바닥에 붙여 누웠더니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노숙자들이 그 시원한 장소를 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잠들어 그런지 그 이튿날 근육통으로 혼이 나,

다음부터 절대 노숙은 하지 않았다.

노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워도 팬티만 걸치고 화장실 물을 뒤집어 써가며 방에서 버텨낸다.

이런 날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게 좋지만, 그 곳은 컴퓨터가 없어 일을 못한다.

사실은 컴퓨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마지막 지하철을 놓친 것이다.

그의 컴퓨터 중독에 가깝다.

 

더위나 식힐 겸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다.

자리 잡고 누운 이도 있지만, 광장을 오가며 시간 보내는 자가 더 많았다.

유독 정씨만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뭘 옮겨 적고 있었는데,

노트에는 씨알이 될만한 성경구절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어두워 눈 버린다며 밝을 때 보라고 말했으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성경에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젊을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고시라도 붙었겠다고 농담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네가 어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알겠냐?는 투다.

 

겨울은 쪽방, 여름은 노숙이라 듯이 요즘은 노숙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계단에 웅크려 자는 여인도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거리에 내 몰렸는지 모르지만, 안 서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던가?

김씨는 무슨 꿈을 꾸는지 얼굴을 씰룩거리며 자고,

천씨는 어디 아픈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침이 오면 또 다시 더위와 싸워가며 밥 한술 얻어먹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을까?

 

요즘 뉴스에는 기본소득이니 어쩌니 나팔 불어 대지만,

거리에 내 몰린 노숙인의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는 정치인이 없다.

국민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표를 존중하는 더러운 정치꾼들에게 무슨 기대를 한단 말인가?

누구의 노랫말처럼,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노숙인 중에는

세상에서 밀려 난지 얼마 안 된 초보도 끼어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아 대개 지하도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충전하며 시간 보낸다.

어떤 이는 담배 생각에 서울역광장 흡연구역을 맴돌며 담배구걸도 한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수두룩한 재떨이 꽁초는 손도 안 댄다.

 

그런 초보들은 잠깐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어딘가 비빌 구석이 생겼거나 일당 주는 일거리 따라 전전할 것이다.

간혹 영등포역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지를 떠돌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인도 있다.

 

하루가고 한 달 가는 세월 따라 그들도 하나하나 바뀔 수밖에 없다.

체납된 요금으로 핸드폰도 버리게 되고 등짐도 단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찾는 것은 밥보다 술이다.

 

채움 터에 가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 술을 사기위해 구걸을 한다.

술이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는 마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노숙 생활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시킨다.

 

어제는 오전 여덟시 무렵 거리에 나왔다.

낯 시간은 가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만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다.

동자동 새꿈공원엔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서울역광장도 술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직 코로나 검사받을 시간이 되지 않았으나,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쫓겨 옮겨가기 직전의 서울역광장 풍경이었다.

 

뜻밖의 노숙인을 만났다, 가구점하다 마누라에게 쫓겨 났다는 박씨를 일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며 노래까지 불렀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손사래에 얼른 집어넣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동료와 아내가 배신했다며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작년 봄이었다.

이젠 모든 근심 걱정을 버렸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편해보였다.

행색은 더 구질구질해 졌으나 그 것은 노숙인의 계급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영등포역에서 지냈는데,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났단다.

반가움도 잠시 뿐, 경계하는 눈빛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행여 소문 퍼트려 누가 찾아올까 걱정되어 서울역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사이 담배는 끊었고, 술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단다.

 

이 지경으로 만든 동료와 가족에 대한 미움도 이제 사라졌고,

돈에 대한 집착까지 사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옛날에는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사 가치를 알겠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세상이치를 환갑이 되어서야 깨우쳤단다.

 

아는 절집에 가서 일이나 도와주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웃는다.

자리 잡으면 연락해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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