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은 갖가지 병을 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숙자나 젊은 노숙인 중에 유달리 정신질환자가 많다.

 

내가 거주하는 쪽방 4층만 해도 8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오랜 노숙생활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끌고 쪽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에 들어온지 6년차인 최완석군의 증상은 그중 심한 편이다.

가끔 발작을 일으켜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착하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방세를 빼고는 대부분 술값에 탕진하지만,

 돈 없는 노숙인들에게 베풀며, 복 짓는 일을 한다.

 

두 번째는 나이가 제일 어린 박상민군인데, 이 녀석은 불장난하는 별난 습관을 가졌다.

불낼까 염려스러운 것 외에는 심부름도 잘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일 년 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쪽방에 들어 온 박종근군의 증상도 미미하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는 하나같이 바보처럼 착하다는 사실이다.

남 힘든 것을 두고 보지 못하며, 음식이라도 생기면 못 나누어 안달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은 쪽방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일체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우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고 몰인정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차라리 미친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다.

 

베푸는 것은 물론, 먹지도 않고 돈만 챙기는 걸 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죽고 나면 남겨줄 자식도 없는데,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바보처럼 베풀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텐데 말이다.

 

지난 26일, 준비해 둔 기념사진을 챙겨들고 나섰다.

식도락앞 골목에는 밥 얻으러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곳에서 이기영씨를 만나 부탁받은 영정사진을 전해주었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에는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노인들만 사는 쪽방촌 공원을

왜 어린이공원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이남기씨가 술 한 잔 마시라지만, 사양했다.

 

몸이 아프니 술도 독약처럼 보였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역에서 가장 고참인 김지은씨는 멋 부리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그 역시 정신질환을 가졌지만, 늘 즐겁게 산다.

 

그러니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 달라고 졸라대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다.

 

 

한꺼번에 프린트하느라 바로 뽑아 주지 못하는,

마침 이기영씨 영정사진 만드는 김에 김지은씨 사진도 함께 만든 것이다.

 

'서울역광장'에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공사장 틈 은밀한 곳에 텐트를 쳐 놓았더라.

찍은 사진 중 시계를 주렁주렁 낀 사진이 제일 멋지다며 낄낄거렸다.

 

한 곳에는 노숙인들 선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나,

관련된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신나는 유행가로 유인했으나, 컵라면 나누어 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다들 먹는 일 외에는 관심 없는 듯 했다.

 

힘없이 광장 구석에 웅크려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노숙인 모습에서 인간 사육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만 주면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드니까...

 

그들은 미치지 못해 천국 열차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바보처럼 미쳐야 사람답게 살수 있다면, 미치고 또 미쳐야한다.

 

사진, / 조문호

 

 

1

부모 잘 못 만나 거리로 내몰린 박종근(41)

내가 사는 옆방에 온 지가 2년 가까이 되었다.

동자동 오기 전만 해도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이었다.

오랜 노숙 생활로 생겨 난, 뇌 질환 선고를 받고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라도 입주할 수 있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가 알콜 중독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단다.

부모 찬스는 커녕, 부모 잘 못 만나 버려진 인생이다.

 

학교를 중퇴한 종근이는 년 년 생인 동생을 데리고

거리를 떠돌았으나, 몇 년 전 동생마저 목메어 자살해 버렸다.

가족을 다 잃은 종근이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한 번도 희망을 품어보지 못해 바라는 것도 없단다.

여태 취미생활 한 번 즐겨본 적 없어

수급비가 생겨도 돈 쓸 줄도 몰라 대부분 담배값으로 날린다.

 

동자동 온 후로는 온종일 쪽방에 틀어박혀 티브이만 끼고 산다.

 동자동 사랑방에 들려 일 돕는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내성적이라 평소 말은 없으나, 인정은 많다.

 

한평생 누구처럼 사랑 한 번 받아 보지 못했고,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던 비참한 삶이 누구의 죄이던가?

그 억울한 삶을 보상받을 수는 없을까?

 

사진, / 조문호

 

 

 

춘 삼월이 다 가건만 꽃구경은커녕, 마음은 한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이년 넘게 끌어온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다

무차별 살상하는 우크라 전쟁시국이라 뉴스보기도 무섭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 돌아가는 우리나라 정세는 어떤가?

대형 산불로 피해 입은 이재민들은 살길이 막막한데,

대권 잡은 윤석렬씨는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우긴다.

 

그 밑에 달라붙어 부채질하는 정치 파리 떼가 더 밉다.

백발의 능구렁이까지 끼어 알랑방귀 뀐다.

 

하필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의 국방부에 가려는 속내가 궁금하다.

청와대 터가 무서운가? 아니면 선제타격에 앞장서겠다는 건가?

 

그렇게도 용산에 살고 싶다면, 내가 사는 쪽방촌으로 오라.

빈민들 사는 걸 보면 그 따위 허튼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도둑놈 대통령에다 바보 대통령까지 나오더니, 이젠 무대뽀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군인 정치에 몸서리를 쳤는데, 검찰 권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지난 16일은 일주일 만에 코로나 증상이 사라져 외출을 했다

사비나갤러리에 들려 그림 구경도하고 모처럼 외식까지 했는데,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양성이 나와 또 격리해야 된다네.

가만 있었으면 괜찮을 일을, 귀가 얇아 문제를 만들었다.

 

22일 오후 무렵, 격리된 정동지 집을 나와 동자동에 복귀했다.

 열흘 만에 찾아 간 쪽방이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쪽방 관리하는 정선덕씨는 할멈 염색해 주느라 정신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정씨가 죽은 서방 만난 듯 반겼는데,

코로나에 격리되어 있다 왔다니까 눈이 둥그레 진다.

다 나았다고 했으나, 그래도 검사 한 번 받아 보란다.

 

정씨는 벌어먹기 위해 까탈스럽게 굴어도 인정스러운 사람이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워 수시로 방문을 열어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 그 이만 할멈과 오순도순 살아간다.

 

정신장애가 있는 옆방 상민군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만물상처럼 펼쳐놓았더라.

사진 한 장 찍었더니, 자기가 찍은 사진이 더 멋지다며 자랑이다.

 

걱정하는 정씨 말이 마음에 걸려 서울역광장으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갔다.

출 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려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오후 세 시 무렵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사를 마친 후 서울역 주변의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왔다.

 

동자동 새꿈 공원에는 처음 보는 전도사가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마당에서 열심히 설교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때 마침 옆 골목의 봉사단체 이에수즈 핸즈에서 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장 끼가 돌아 끼어 섰는데, 그 날의 메뉴는 버섯 덮밥인지 버섯 죽인지 헷갈렸다.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몇 술 떠다 말았다.

 

문제는 다음 날 양성판정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또 다시 일주일동안 격리되어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일 만들지 말고, 방구석에 처 박혀 푹 쉬라는 말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갇혀 독수공방 하려니, 좀이 쑤셔 못 견디겠다.

사진 몇 장 꺼내 놓고 콩팔칠팔 지껄임을 널리 양해하시길...

 

사진, / 조문호

 

쪽방 촌에는 명절만 다가오면 선물을 나누어 준다.

대개의 선물은 특정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달해주지만,

동자동에서는 일방적으로 줄 세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긴 하나 사람대접하지 않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이건 선물 이름을 단 배급에 불과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므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자괴감을 안겨준다.

그동안 ‘줄 세우지 마라’고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누군 ‘배가 덜 고파 하는 말’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배고픔 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고마움도 우러난다.

 

허구한 날 줄서서 얻어만 먹다 보니 선물의 고마움조차 잊어버리고,

선물이라기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상으로 여길 뿐이다.

 

그리고 명절이 되면 쪽방 주민들은 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없어 만날 사람도 없지만,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쪽방에 홀로앉아 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한 잔술로 적적함을 달랜다.

 

며칠 전에는 ‘이에수스 핸즈’선교회에서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만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에서 팥죽을 나눠 줬지만,

코로나 때문에 2년째 팥죽 맛을 보지 못한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홍보하지 않은 자선이라 밖으로 나온 몇몇만 팥죽 맛을 즐겼으나,. 다들 고맙게 먹었다.

 

다음 날은 ‘케이티’에서 보내 온 명절선물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줬다.

오전10시로 정한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물러서라고 외칠 뿐, 나눠 주는 시간을 앞 당 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민들에게 주는 명절선물은 식료품이 주종을 이룬다.

햇반과 라면, 김 등 지난 년 말 선물과 빼 닮았다.

이제 줄 세워 주는 선물은 그만 끝내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대 주고 빰 맞는다'는 말처럼, 올 해는 범한테 물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바람찬 서울역광장에 노숙인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여 인근 교회에서 제공한 텐트지만,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노숙인으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쪽방 있는 사람이야 온 종일 티브이를 끼고 살지만,

티브이 없는 노숙인들은 텐트 안에서 뭘 할까?

밤 낯으로 잠만 잘 수야 없지 않은가?

 

신참 노숙인이야 핸드폰이라도 들여다보지만,

핸드폰 없는 오래된 노숙인들은 우두커니 멍 때린다.

마치 알 낳기 위해 둥지 안에 똬리 튼 암탉 같다.

 

노크 대신 헛기침하며 텐트 지프를 열어보니,

누가 먹을 것이라도 주는 줄 알았는지, 실망한 눈초리다.

정씨에게 담배 한 대 권하며 말문을 텄다.

 

집 한 칸 생겼다고 좋아 했으나, 짐을 다 넣을 수 없어 일부는 버렸단다.

기초생활수급 혜택 받아 쪽방에 들어가면 다 필요한 물건이란다.

 

정씨야 가족관계가 정리되어 노숙 신세를 면한다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정의 노숙인이 너무 많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것만도 서러운데, 더 이상 사지로 몰지 마라.

 

대선 후보들이 온갖 공약을 쏟아내고 있으나,

벼랑에 선 노숙인을 위한 공약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입이 마르도록 뱉어대는 공정과 평등이란 게 이런 것이더냐?

.

사진, 글 / 조문호

 

자유와 평화를 외쳤던 히피문화가 새삼 절실해 진다.

물질문명에 망가진 자연과 인간성을 되살리는 문제는 이 시대 절대 절명의 문제다.

 

돈에 밀려 최소한의 존엄마저 상실한 노숙인을 친환경적인 삶으로 안내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지키고 자연도 살리는,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다.

 

지난 주말의 서울역광장은 따스한 햇살따라 노숙인이 많았다.

인근 교회에서 제공한 텐트로 서울역 광장에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때 마침, 코로나에 감염되어 떠난 빈 텐트 하나가 끌려 나오고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 인근 교회 빈터에 텐트촌이 잠시 생긴 적은 있지만

서울역 광장에 공공연하게 텐트가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다시서기 지원센터’ 건물 주변의 20개를 비롯하여

경의선 2번 출구와, 1호선 2번 출구 앞의 텐트를 합하면 35개나 된다.

오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의 바람막이와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노숙인 확진자들에게 독립된 공간이 절실했다.

확진자들의 재택 치료 방침이 나왔을 때, 집 없는 노숙인은 해당될 수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 머물던 노숙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병상 대기 순서에서 밀려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노숙인들은 죽음조차 거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까운 용산역 부근에도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용산역 구름다리 밑 빈터에 노숙인 텐트가 들어선 것은 8년 전이다.

풀숲이 우거져 사람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그 곳에 노숙인30여명이 살고 있다.

 

[용산 텐트촌]

다른 노숙인 쉼터와 달리 이곳은 공동체 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먹고 자는 간단한 일이라도 노숙인 스스로 해결할 때,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밥은 얻어먹지 말고 해 먹어야 한다.

 

[용산 텐트촌]

가끔은 물질의 탐욕에서 벗어난 히피 정신의 노숙인도 만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밀려 난 사람과 스스로 택한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지만, 이치를 깨우친 도인처럼 여유롭다.

 

[용산 텐트촌]

사회에서 밀려 난 노숙인도 처음엔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지만,

흐르는 세월 따라 불안과 조급증도 서서히 사라지고 담담해 진다.

욕심 부릴 건덕지가 없으니. 무소유의 가치도 알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삶의 가치를 안겨주는 일이 중요하다.

 

한 때는 물질문명을 기피한 히피운동이 바람을 탄 적도 있었다.

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히피운동은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

 

['우드스톡' 음반 자켓에 사용된 사진/ 스크랩]

특히 69년 미국 뉴욕 주 설리반 카운티 베델에서 열린 ‘우드스톡’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히피 그리고 자유와 평화‘라는 메세지를 내건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에는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프린, 제퍼슨 에어플레인, 산타나. 재니스 조플린, 멜라니 사프카,

존 바이즈, 알로 거스리, 라비쌍거, 조 카커 등 내노라 하는 세계적 뮤지션들이 대거 참석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약 50만명이나 되는 어마 어마한 사람들이 몰려

삼박 사일 동안 야외에서 자유롭게 축제를 즐겼으나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해피 스모그 자욱한 기적의 향연장이라는 뒤늦은 소식과 현장사진에 입이 쩍 벌어졌다.

가보지 못해 안달하던 청춘의 회한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배 문화에 저항하고, 반전 운동을 상징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히피라는 어원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나 해피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타당성 있어 보인다.

아쉽게도 돈에 병든 기존 질서에서 히피문화는 뿌리 내릴 수 없었다.

그 잊혀 가는 히피문화가 새삼 떠오른 것은 빈민들의 주거문제도 절실하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불을 지필 필요가 있다.

 

시골에는 객지로 떠나버린 빈 마을이 도처에 늘렸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골짜기가 더 좋다

지자체와 환경부, 복지부가 협력하여, 특정지역에 히피 촌을 만들어 보자.

먼저 가난한 예술가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지자체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노숙인이나 빈민부터 입주하는 것이 순서지만, 처음엔 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외지로 쫓아낸다는 선입견 때문인데, 좋은 환경만 마련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원시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와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가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그만 움막과 토굴, 그리고 약간의 텃밭을 제공받아

서로가 협력하는 공동체를 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질서와 행정을 돕는 공무 차량과 대중교통 외에는 차량 출입도 제한하고,

대중교통도 인근 읍 소재지까지만 운행하면 된다.

 

돈맛에 병든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얽매이는 곳 없는 사람이라면 나서 볼만한 일이다.

잘만 가꾼다면 낙원이 따로 있겠는가?

원시의 삶을 지향하는 예술혼들이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아무나 따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낙원 말이다.

 

그리고 친환경적 소재로 알려진 대마도 이곳부터 개방하여 활용하자.

어차피 대마의 실체가 알려져 더 이상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나무를 베지 않고도 얼마던지 종이와 밧줄을 만들 수 있고,

에너지 자원에서부터 인체에 유용한 약제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효능을 가진 신비의 약초로 검증된 지 이미 오래다.

기득권을 가진 재벌 농간에 정치적으로 놀아 난 통탄할 일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표 잃을까 눈치 보는 정치인들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아마 히피 촌이 제대로만 만들어 진다면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

유명세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제2 제3의 히피촌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에서 해방된 빈자들의 낙원을 만드는 꿈같은 일을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사진, 글 / 조문호

 

 

 

2020년 1월부터 609일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1216명

영등포 경인로 9명, 엇비슷하게 가난했고 아팠지만 서로를 몰랐던 단절된 삶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환한 햇빛이 작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무연고 사망자 허일남(66)이 살았던 서울 영등포구의 쪽방은 눈이 시릴 정도로 볕이 잘 들었다.


영등포구 무연고 사망자 134명

허일남의 생애 마지막 거처는 일세 5천원짜리 3.3㎡(한 평) 쪽방이다. 텔레비전이 있는 방은 일세 8천원, 없는 방은 5천원이다. 그의 방엔 텔레비전이 있지만 켜지지 않아 방값을 5천원만 냈다. 볕은 눈부셨지만, 방은 엉망이었다. 여닫이문 위쪽 유리는 다 깨져서 밖에서도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구겨진 신문과 이불, 먼지와 담배꽁초 등이 어수선하게 뒤엉킨 채, 빈방은 방치돼 있었다. 허일남이 많이 아파 경기도 군포의 요양병원으로 옮겨간 뒤 이 방에 들어온 주민이 작은 화재를 내는 바람에 이렇게 엉망이 됐다. 엉망이 되어버린 방의 모습은 허일남의 삶과 겹쳐 보였다. 그는 2019년 12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패혈증이었다.

허일남이 살던 쪽방에서 가깝게는 10m, 멀어도 150m 남짓 떨어진 근처 쪽방에 살다가 무연고 사망한 이가 9명에 이른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치른 1216명의 주소지를 일일이 입력해, 같은 주소지에서 숨진 이들만 따로 뽑아낸 결과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 2층짜리 쪽방 건물에 2명, 경인로2 4층 건물에 3명, 경인로3과 4의 건물에 각각 2명씩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차츰차츰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이들 9명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가난했고, 몸과 마음이 아팠고, 술을 마셨다. 물이 낮은 곳에 고이듯, 빈곤과 질병이 쪽방들에 고였다. 9명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사회적 관계망도 단절됐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로 주소가 시작되는 영등포 쪽방촌에는 이들 9명처럼 가난, 질병, 관계 단절, 알코올중독 등 바닥의 삶을 버텨내는 ‘투명인간’들이 모여 산다. 쪽방은 ‘약 0.5~1평 규모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를 내는 무허가 숙박시설’을 뜻한다.1 1970년대 성매매집결지와 여인숙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등포 쪽방촌에는 현재 67개의 쪽방 건물이 있다(2020년 말 기준). 그 안에 벌집처럼 쪽방 531개가 들어차 있고, 거주하는 이는 500명 안팎이다. 남성이 75%, 여성이 25%다. 기초생활수급자는 63%에 이른다.2 이곳의 평균 월세는 22만원이다. 단열과 난방은 물론이고 위생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쪽방 건물의 약 70%는 건물 등기부등본도 없는 무허가 건물이다. 쪽방 주인인 토지소유자들은 외부에 살면서 건물 관리인에게 전세로 건물을 임대해주고, 관리인은 쪽방 주민들에게 월세나 일세로 방을 빌려준다. 서울 쪽방 주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70만3천원이고, 연락 가능한 가족이 없는 이가 66.4%에 이른다. 5~15년 거주한 주민(42.8%)이 가장 많고, 15년 이상(28.1%), 5년 미만(26.3%) 거주자가 그 뒤를 잇는다.2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의 25개 구청에서 받은 공문을 정리한 자료를 보면, 609일 동안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자치구는 영등포구(134명)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1명(11%)은 영등포구에서 나왔다. 영등포 쪽방과 함께 종합지원센터, 임시보호시설 등 노숙인 지원 시설이 모여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그들 삶의 퍼즐 조각을 모아보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무연고 사망자 삶의 실태가 어떠했고, 어떤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지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을 듯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투명인간들’ 9명 삶의 자취를 따라가보기로 한 이유다.






이탁영(53)이 살았던 영등포구 경인로4 쪽방 복도. 그는 이 복도 맨 끝 왼쪽 방에서 살았다.


허일남 어릴 때부터 무너져내린 인생


허일남의 삶도 처음엔 그가 살던 쪽방처럼 밝은 볕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삼대독자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한 아들을 얻었다는 의미로 ‘한 일’(一)자를 넣어 아들 이름을 손수 지었다. 영관급 장교인 아버지와 생활력 좋은 어머니가 꾸린 서울 종로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시작은 행복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허일남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 허일남은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틀리면 손찌검이 이어졌다. 영조가 아끼던 아들 사도세자를 뚜렷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잡았듯, 아버지도 허일남을 잡았다. 어린 허일남은 크게 주눅들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내와 허일남을 두드려 팼다. 허일남의 둘째 여동생 허수영(62)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맞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퇴근해서 귀가하는 저녁이 되면 불안에 떨었어요. 또 폭력이 시작될 테니까.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란 존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한 아버지가 없어지지 않을 거 같으니까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내가 그 정도였으니 피해 당사자였던 오빠는 오죽했겠어요.”


지옥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성인이 된 허일남은 군복무를 마쳤다. 밥벌이를 시작했다. 20대 중반이던 1980년대 초 한창 ‘말죽거리 신화’ 개발 붐이 일던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고, 남대문시장에서 옷 도매 일도 했다. 성악을 전공한 여성과 연애도 했다. 하지만 다시 지옥이 도래했다. 이번 지옥은 피해자였던 허일남 스스로 만들었다. 허일남도 술을 마셨다. 음주 뒤엔 난폭해졌다. 애인을 때렸다. 이를 본 허수영은 “무서웠다.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의 부정적 결과 중 하나는 대를 잇는 중독의 세대전이 현상이다. 음주 지속과 중독 과정에서 삶이 서서히 붕괴돼간다. 일상 붕괴는 건강 악화는 물론 직장에서의 위기, 가족 갈등과 해체, 사회관계 고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다.3 1980년대 후반 이후 허일남은 “막 살았던 것 같다”(허수영).


20년 가까이 단절의 세월이 흘렀다. 2000년대 중반쯤 허수영은 오빠의 연락을 받았다. 50대 초반이 된 허일남은 서울의 한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에서 꺼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오빠가 거기에 있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허일남이 “이가 빠졌으니 치과 치료를 좀 받게 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치료 비용을 부담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론 소식을 알지 못한다. 허수영은 “선하고 성실했던 오빠가 부모를 잘 만났으면 잘 살았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크랩 / 한겨레21 / 글 김규남 기자 /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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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방에 확진자" 방치된 쪽방촌

홍 부총리 아들 전화 한통에 '특실' 입원
종로 쪽방촌 확진자 "10일 째 방치"…치료 격차 만연
고시원에서 '재택 치료' 중인 확진자와 같은 화장실 사용

취약 거처에선 치료는커녕 기본적 생존권조차 위협

 

박종민 기자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최근 들어 길거리와 이른바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공간에 방치되고 있어 큰 문제다.

 

위중증 환자와 병상대기 환자 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찍는 상황에서 노숙인 지원단체 등은 지난달 이후 서울 쪽방촌, 고시원 등에서만 확진자 170여명이 나온 것으로 집계했다.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아들이 전화 한통으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2박 3일간 입원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적정거주자들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도 치료 받을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평상시에도 의료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저소득층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치료 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생존의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시대에 들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 명 걸리니 옆방도 '우르르' 감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스물여섯 명이 거주하는 해당 고시원에선 확진자가 9명 나왔다. 한바탕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고시원에는 음성 판정을 받은 일부 입주자들이 남아있었다. 확진자 1명도 고시원에 남아 재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확진자가 방 안에서 재택 치료 중임에도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탓에 음성을 받은 이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도시락을 옮기고 있던 고시원 사장 김모(61)씨는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A고시원 4층에 거주한다는 김모(42)씨는 "1층 사는 사람이 처음 걸렸다"며 "여기 공동 주방에서 밥먹고 얘기하다 1, 2, 3층까지 다 퍼졌다"고 답했다.

고시원 2층에 사는 김모(63)씨는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옆방에 있어 불안하지만 어떡하겠느냐"며 "그게 현실인데 피할 수 없다. 방법이 없다"고 체념한 표정으로 답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amp;nbsp;

 

A고시원 확진자들은 방에서 대기하다가 증상이 악화하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사실상 좁은 방안에서 방치됐던 셈이다.

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고시원 대표는 "지금은 어디든 아프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병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늘어나자 주민들의 경계심도 더해졌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원모(59)씨는 "저쪽 골목에 있는 집에서 감염자가 3명이나 나왔다. 동네가 난리가 났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인근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고 전하자 "전혀 몰랐다"며 "좁은 데서 서로 모르고 있다가 전염됐구먼"이라며 혀 끝을 찼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코로나가 퍼지고 쪽방촌 주민들이 외부 사람을 꺼려한다"며 "고시원도 그렇고 동네에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어쩔 수 없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고 전했다.

이어 "심각성을 인지한 역학 조사관들이 거주지가 쪽방이라고 하면 우선순위로 방을 배치하려고 하지만 환자가 워낙 폭증하는 상황이라 빨리한다고 해도 늦다"라고 전했다.

"확진됐는데도 나몰라라"…취약거처 살펴야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임민정 기자&amp;nbsp;


지난 10일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이곳도 코로나19에 잠식된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폐지 줍는 일을 하는 한 60대 쪽방촌 주민은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집에 있을 수 없다"라며 "옷 갈아입고 잘 때만 잠깐 머문다"라며 불안해했다.

쪽방촌 어귀에서 만난 70대 김모 할머니는 "11월쯤 주민 한 명이 밖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 뒤로 아팠다"며 "모르고 있다가 요양보호사가 먼저 확진되고 같이 살던 주민 2명 감염됐다. 그 바람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마스크 2장을 겹쳐 쓰고 있었다.

주민들은 감기와 같은 유사 증상만 보여도 퇴거를 종용받고 있다고도 했다. 쪽방에서 5년째 거주 중인 60대 한 주민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그냥 코로나라고 소문을 낸다"라며 쪽방촌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원래 근처 노인회관에서 밥을 줬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끊겼다"라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감염 위기 탓에 방 안에 있을 수조차 없었고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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