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숙박업, '법 보호'조차 받지 못해
건물주, 보수 작업 필요 없는 '남는 장사'
쪽방 벽지·장판 등 기본 관리 전혀 안돼
서울시 공공개발 추진에 건물주 "반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고급 빌라에서 바라본 연립주택 밀집 지역. /연합뉴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매달 1750만원씩 수익이 발생한다. 이마저도 순수 현금으로 챙긴다. 건물 관리도 쉽다. 관리인이 있긴 한데, 인건비는 들지 않는다. 무료로 방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건물 관리도 따로 할 필요 없다. 벽지가 다 뜯기고 거미줄도 쳤지만, 따로 보수 작업을 하지 않는다. 무허가 숙박업이어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쪽방촌 건물주는 이렇게 돈을 번다.

 

수천만원대 월세 수익을 내고도 건물 관리를 하지 않는 건물주가 있다. 법망에서 벗어나 건물 관리·보수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보증금과 계약서도 받지 않아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일명 '무적 임대 사업자'인 셈이다.

'김현우의 핫스팟'은 27일 쪽방촌이 모여 있는 서울 돈의동·창신동·영등포동·동자동 일대를 찾았다. 이들 지역엔 평균 38곳 쪽방 건물과 900여 개 방이 있다. 세입자는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65세 이상 홀몸 고령자 등이다. 방 크기는 작게는 3평, 큰 방이라 해도 5평이다. 

 

기자가 하루 동안 생활한 서울시 동자동에 위치한 한 쪽방. 창문이 뜯겨 커튼으로 막고 있다. /김현우 기자

세입자는 정부에서 기초생활비와 주거지원금 등 50만원을 받는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쪽방 월세로 낸다. 동자동 쪽방에서 5년여간 생활한 김정민 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월세가 빠져나가면 15만원 남는다. 이걸로 한 달 식사를 챙긴다. 현재 무적자이기 때문에, 계좌가 없어서 현금으로 월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이날 만난 김씨가 생활하는 5평 남짓 방에서 하루를 지냈다. 장판은 곳곳이 뜯겨 시멘트가 훤히 드러났고 벽지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창문도 깨졌지만, 신문지와 커튼으로 임시방편 막아놨다. 키가 174cm인 기자가 누웠을 때 다리를 다 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이다.  

해당 건물의 경우, 월세는 35만원이다. 방이 총 50개다. 이를 통해 건물주는 매달 1750만원씩 월세를 받아 간다. 쪽방촌 임대 사업 구조는 건물주·관리인·세입자로 구분된다. 건물주는 관리인을 지정한다. 관리인은 무료로 쪽방에 거주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세입자는 관리인에게 월세를 주고, 관리인은 건물주에게 월세를 송금하는 방식이다.

 

쪽방 임대 사업 구조 /여성경제신문

이런 구조다 보니 주인-대리인(agency problem) 문제도 발생한다. 동자동 세입자 모임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운영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 "건물주들은 물이 새고 천장이 무너져도 집수리를 한 번도 안 해줬다"면서 "지난해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던 세입자 한 분이 방에서 돌아가신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도) 방세 내놓으라고 한 사람들이다. 주민들을 혐오하면서도 돈만 벌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우리는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벽지와 장판 보수만 해주면 된다. 사람이 살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주가 쪽방에 실거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1년 2월 기준 서울시가 조사한 쪽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법인포함)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쪽방 건물은 대부분 자녀와 공동명의 또는 상속된 경우이고, 돈의동 쪽방촌의 경우 전체 66채 건물 중 56채가 한 소유주가 2채 이상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다.

 

쪽방촌 건물주 실거주 실태 /서울시,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건물 보수 등 관리 필요 없는 일명 '꿀 임대업'

쪽방은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이다. 따라서 건물주는 건물 보수 작업 등의 의무가 없다. 세입자 입장에선 공중위생관리법·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보증금도 받지 않아도 된다. 계약서 작성 의무도 없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건물주 입장에선 세입자를 내쫓기도 쉽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는다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선 주소지가 있어야 생계급여 및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해서 쪽방에 입주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백광헌 동자동 주민 모임 부위원장은 본지에 "건물주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매달 현금으로 월세를 받고, 보수 작업 등 관리하지 않아도 쪽방에 살려는 사람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누가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면 바로 다음 날 사람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이 목표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른 해당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동자동 일대 4만 7000㎡를 2021년~203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공공임대주택 125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 96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동자동 쪽방 건물주들은 "사유재산을 빼앗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면서 민간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맞섰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하반기로 예정됐었던 ‘지구 지정’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동에 위치한 한 쪽방 /김현우 기자

박종만 양동쪽방 부위원장은 "지난해 쪽방촌 거주민 중 사망한 인원만 30명, 몸이 안 좋아져 요양병원 간 분이 30명 이상이다. 방문이 안 열려서 들어가 보면 사람이 죽어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정치인들이 쪽방촌이나 최저 생계층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권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와 국회는 집만 만들어주면 끝난다고 생각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한참 지났지만, 소유 숫자는 절반 조금 넘은 상황"이라면서 "새로 지어진 집들은 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쪽방촌 세입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건물주 눈치를 보고 시간을 끌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세입자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갈 곳 잃은 세입자의 마지막 안식처인 이곳 동자동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으로 만들어달라는 게 우리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 김현우기자

동자동 이상준씨 (78)

무더위를 식히려 ‘새꿈공원’에 갔더니, 동자동의 원로 이상준(78)씨가 나를 불렀다. 삼성 콤펙터 카메라 하나를 가져 와 쓸 수 있는 카메라인지 한번 봐 달라는데, 아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수리점에 가야 할 것 같았다오래된 기종인데다 아무런 보조 기구도 없어, ‘돈 들여 수리할 필요가 있겠냐?’고 했더니,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상준씨는 동자동 내력을 훤히 알지만 노출되는 것이 싫은지 인터뷰를 사양해 왔는데, 이날은 어쩐 일인지 응해주었다. 고물 카메라 덕에  이상준씨가 살아온 내력을 들을 수 있었는데, 부산 초량에서 살다 동자동 쪽방촌에 온 지는 오십 년이 되었고, 지금 사는 쪽방에서만 십칠 년을 살았단다그런데, 거지 왕초로 알려진 전설적인 시인 이현우가 자신의 삼촌이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뿐 아니라 천상병 시인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현우 시인은 김관식, 천상병시인과 함께 문단의 3대 기인으로 불리는 분이 아니던가?

 

방랑 시인’, ‘절망 시인’, ‘거지 시인등 별명도 가지가지인 이현우 시인은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나키스트 낙산 이종하씨가 부친이며, 찔레꽃으로 유명한 대중 소설가 김말봉씨를 계모로 둔 유복한 가문이었다. 등록금을 술값으로 탕진해 중퇴했지만, 만해 한용운과 조지훈, 신경림 시인이 적을 두었던 동국대 국문과를 다녔고, 이후 조지훈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에 한강교에서가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날카로운 안광과 귀족적인 풍모를 가진 보헤미안으로, 강렬한 시의 주인공이었다. 극작가 신봉승 선생은 이현우 시인의 문학을 절망의 강가에 선 에뜨랑제의 노래라 했고, 화가 하인두 선생은 그의 시를 절망의 호곡이며 허무의 가락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전후 세대의 우울과 절망에 국한 시켜서는 안 된다. 문성효 문학평론가는 그동안 이현우 문학이 절망의 관점에서만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해석되어 왔다고 지적하며, 절망의 시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자신의 문학 속에서 전개한 실존적 사유의 열망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이 마주했던 전후의 궁핍하고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현재의 각박한 사회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나아가 어떻게 그 고민을 공동체적인 고민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가하는 시인의 실존적 고민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현우는 생래적으로 어두운 그늘같은 비극적 인자를 몸에 지니고 태어난 것 같았다. “크고 맑은 눈망울과 귀공자 같은 얼굴, 가녀린 몸매에서 풍기던 퇴폐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였다유심’ 201312월호에 소개되었지만. 생전에 유품은 물론 초상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화가 주경업 씨가 그린 이현우 시인의 초상화.

1950년대 중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폐허나 다름없는 명동의 몽파르나스 동방사롱, 엠프레스 음악다방이 있는 인근 주점에서 김관식, 천상병, 박봉우, 송기동, 이호철, 고은 시인과 어울렸다. 명동과 서울역을 떠돌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는데, 가까운 문인들에게 돈을 얻어 거지들과 술을 마시는 독특한 방랑벽도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김말봉여사는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고 여러 신문사에 소설을 연재해 원고료도 상당했다고 한다. 그가 거지꼴로 떠돌다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새 양복을 지어 입힐 정도였으나, 항상 며칠 가지 못했다. 때로는 서울역 앞 양동의 사창가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와서 돈을 지불하고 풀려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후 시인 중 이현우처럼 유려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도 드물었기에 시인 김규태는 이현우에게 시 한 편에 삼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그의 시작을 종용하기도 했으나, 이현우 시인이 어느날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1983년 무렵 이인영 시인이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열차에 그를 태워 보낸 이래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거지들과 어울린 탓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거나, 행려병자로 알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소문만 떠돌 뿐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2017.1.27.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이상준씨

그 뒤 이현우 시인의 실종을 안타까워하던 강민시인과 주변 지인들이 유고집 출판을 서둘렀다. 1994년 강민 시인이 대표로 있던 무수막출판사에서 이현우 시문집 다시 한강교에서를 출간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가 출판된 이후 그의 생존이 확인된 것처럼, ’다시 한강교에서는 시인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이현우 시인은 세상에 모습을 더러 내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그의 이름과 함께 시문집도 절판되었다.

 

강민 시인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현우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하셨는데, 서울역 일대에서 거지 왕초로 지냈다는 등 귀가 솔깃한 옛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그러나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 그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고 한다. 가끔 친구가 근무하는 직장에 거지 행색으로 불쑥 나타나 약간의 돈을 얻어 가기도 했다지만, 그의 방랑벽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전후 팽배해있던 허무주의 때문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다.

 

이현우 시인은 동자동과 서울역 노숙인과도 연관이 있어 여기저기 이현우시인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찍힌 프로필 사진 한 장 없었는데, 동자동에서 조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상준씨 덕에 생각지도 못한 이현우 시인의 동자동 연고지를 찾아 낸 것이다. 이상준씨 말로는 평소 말이 없는 분이기도 하지만, 그리 친화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했다. 부산에서 동자동으로 이사 오며 쪽방촌 사람들이나 서울역 부근의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는데. 한 참 뒤 어머니의 집은 동자동에서 상도동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동자동 집은 이현우시인이 가끔 들린 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몇 개월 전 헐리고 말았다. 그는 유품 한 점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불우한 시인이다.

 

절망의 곡조를 읊조렸던 이현우 시인의 시전집 끊어진 한강교에서

지난 20222열린서원에서 출판되어 그의 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이현우 시인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헛된 꿈이나마 시인의 환생을 기원해 본다.

 

사진, 글 / 조문호

 

 

끊어진 한강교에서

 

그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괴기한 환상에 잠기며

무너진 한강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 위에는 낙일(落日)이 오고 있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기다려지는 심정을 위해

회한과 절망이 교차 되는 도시

그 어느 주점에 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30도 넘는 더위 피할 곳 없어

"서울시 에어컨 설치 도움 안되고 쉼터는 너무 좁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김정호씨 집 천장 모습. 플라스틱판이 얹혀있다.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문 열기가 겁납니다."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3시. 김정호씨(62)가 지내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는 천장이 없었다. 대신 지붕 모양의 철골 윗면을 얇은 플라스틱 패널이 간신히 덮고 있었다. 김씨가 집 문을 선뜻 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패널 때문이다. 플라스틱 판이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해 방 전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쪽방촌의 살인적인 폭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평 남짓한 쪽방에는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울 좁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창문이 있는 방은 A급"이라며 "대부분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창문이 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김씨는 창문 없는 방에서 6년을 살다 월세 3만원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지금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열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 그 역시 여름이 고통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쪽방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에어컨 설치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씨는 "정상적인 쪽방에는 에어컨을 달기 어렵다"며 "복도에 공동 에어컨을 달아도 밖과 차단되지 않아 냉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도로 옆 인도에 걸터 앉아있다.©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재개발 갈등속 더위 피해 거리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

동자동 쪽방촌은 1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휘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토지 소유주 등이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대해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주민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시와 만나 공공재개발 대신 민간재개발사업안 제출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당시 사업안이 제출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민간재개발사업안이 제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폭염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더위를 피하겠다며 자주 찾는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로변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산 동자동 사랑방마을 대표 윤용주씨(61)는 "더위가 심한 날에는 여기 건물 앞에 돗자리 펴고 자는 사람이 많다"며 바로 앞 고가 오피스텔을 가리켰다. 

실제 이날 윤씨가 가리킨 오피스텔 옆 인도에는 쪽방촌 주민 열명 남짓이 걸터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은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더위를 피해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후 이슬비로 몸이 축축해지면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들을 노숙자로 오인해 신고하는 일이 잦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역 쪽방안내소는 동자동 쪽방촌 상담소 지하 2층에 쉼터가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이다. 쉼터는 작업장과 남녀 샤워실 사이 5평 남짓한 공간이다. 등록된 쪽방촌 주민 88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근처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또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날 공원 쉼터에 설치된 그늘 천막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그늘 천막이 걷힌 자리에 종교단체가 야간 더위를 피하라며 천막을 친다. 그러나 윤씨는 "야간 천막에서 술판이 벌어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 주민 중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40%, 장애인이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재개발이 아닌 당장 오늘의 더위를 식혀줄 방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정호씨 집.©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1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거리. 우측에 테이프로 막아 놓은 창이 보인다.   사진=박효상 기자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 창은 곧 부의 상징이었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약 8900km 떨어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창 있는 방은 26만 원, 없는 방은 18만 원” 창은 곧 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주택과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에 비친 삶의 격차를 조명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이병수씨의 쪽방. 이중창으로 리모델링 했다.   사진=최은희 기자

창이 바뀌자 집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이병수(가명·62)씨가 사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쪽방. 리모델링된 이중창이 설치돼있다. 폭은 1.14m, 높이는 0.98m다. 전에 살던 곳의 두 배가 넘는다. 더는 숨 막히는 더위에 밤잠 설치지 않는다. 겨울철 칼바람을 맞는 일이 사라졌다. 공중에 떠다니던 먼지는 창을 통해 빠져나간다. 수시로 나오던 잔기침도 잦아들었다.

창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창은 채광, 환기, 신체·정신 건강 등에 영향을 준다. 때로는 삶과 죽음도 가른다. 지난 2018년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최저주거기준을 다룬 법은 2004년에서야 도입됐다. 이전에 지어진 주택에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 법이 생겼지만, 기준에는 여전히 빈틈이 많다. ‘적절한 설비’를 갖춰 채광·환기·방음을 충족하거나 법정 기준을 따르라는 식이다. 고시원·쪽방 등은 최저주거기준 적용조차 받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있어도 주택이외의 거처(비주택)로 분류돼 사각지대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시원의 최저 창 기준을 마련했지만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표준주택 규정’을 통해 창과 관련한 상세한 기준을 명시한다. 채광되는 방향으로 최소 1개의 창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방과 화장실 창이 필수다. 강력한 행정조치도 한다. 영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량주택에 임대제한이나 강제철거를 명령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창의 최소 조건은 무엇일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과 해외 법령을 참조해 안전과 인간 존엄성을 지킬 창의 기준을 살펴봤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구현한 창의 최소 기준.   CG=윤기만 디자이너

① 채광 가능한 방향으로 난 1개 이상의 창

최소 1개 이상의 창을 해가 드는 방향으로 설치해야 한다. 일조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다. 영미권 선진국은 1945년부터 적어도 1개의 창을 통해 빛을 누릴 권리를 보장했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서는 적절한 채광창이 필요하다.

② 하루 4시간 햇살 확보

최소 하루 4시간 자연광이 들어와야 한다. 햇살을 받아야 만들어지는 비타민D는 당뇨, 고혈압, 골다공증, 만성피로 발생 확률을 낮춘다. 빛은 행복감을 높이는 세로토닌 호르몬 합성에도 관여한다. 적절한 일조량은 우울 완화에 효과가 크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공간에서 건강은 빠르게 나빠진다. 2020년 기준 고혈압·당뇨·관절염 등 지병이 있다고 답한 쪽방 주민은 82.5%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도 많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빈곤 주거 거주자 30명을 대상으로 국립정신건강 센터에서 만든 우울·스트레스 척도 진단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우울 중증 17명, 심각은 9명에 달했다. 정상 범위에 속한 이는 2명에 불과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 붙은 대자보.   사진=민수미 기자

③ 폭 0.5m, 높이 1m 그리고 최소 개폐 면적

창은 실외와 접해야 한다. 최소 폭 0.5m, 높이 1m 크기를 확보해야 한다. 창은 최소 폭 0.5m, 높이 0.5m 열려야 한다. 주거 취약계층에게 창은 비상구다. 창이 없는 방, 복도로 난 창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미국 표준주택규정에 따르면 창은 1/2 이상 개폐 가능해야 한다. 성인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만큼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④ 이격거리 최소 3m 이상

건물과 건물 사이 이격거리는 최소 3m 이상이어야 한다. 대다수 고시원·쪽방 건물은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창을 열면 바로 담벼락인 경우도 있다. 조망은커녕 사생활 보호조차 어렵다. 빈곤 주거 중 사생활 침해를 호소한 비율은 19.5%다.

전문가는 주거 취약계층의 창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창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방풍재를 덧대는 방식으로라도 보완해야 한다”며 “사람은 누구나 쾌적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최저주거기준은 강제력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며 “선진국은 빈곤 주거에 대한 논의를 100년 전부터 했다. 한국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자문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장명훈 청년다움건축&디자인 대표, 차상곤 주거문화개선 연구소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교수

찜통 같은 쪽방을 탈출하여 바람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정신 나간 상민이만 횡설수설할 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공원에는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시 쪽방으로 올라가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후, 수도승처럼 좌정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즘 몸도 아프지만, 자책감에 더 시달린다.

'가족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냐?'는 때 늦은 반성 때문이다.

예전엔 타고난 팔자라며 자위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죄악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온 사람이 사람만나기가 싫어졌다.

아니,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 찍을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전시장 들리는 일을 비롯하여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 가며

동자동과 녹번동만 오간지가 벌써 두 달째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쓴 소리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늦었지만 전시리뷰나 사사로운 내용은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주민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죽기 전에 재개발된 쪽방에서 살아보기는 틀린 것 같다.

 

공영개발보다 민간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용적률을 조정하여 많은 세대를 수용한다지만

거지 사는 아파트를 돈 많은 분양자들이 찾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서라도 쪽방주민을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주민들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자난달 초순, 오세훈시장이 창신동 쪽방촌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하며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단다. 

서울에 있는 쪽방이 삼천오백여개나 되는데, 150대로 어디다 붙인단 말인가?

코구멍 만한 쪽방이라 복도에다 에어컨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을 열게 한다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차라리 층마다 생수기라도 놓아 시원한 물이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다.

 

또 한 가지 혜택은 쪽방 주민들에게 한 끼 팔천원 상당의 식권을 매일 한 장식, 년 말까지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수 있는 일인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용수칙을 살펴보니 마음 상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먼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혼잡한 시간을 피해 가급적 세사람 이상 가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똑 같은 밥값을 주는데, 왜 이리 규제가 많은지 모르겠다.

 

밥 값이 팔천원을 초과하면 모자란 돈은 내야하지만, 남는 돈은 돌려주지 않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식당 이용 시 청결한 복장을 갖추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방 주민을 거지로 취급한다는 말이 아닌가?

 

대화도 없이 일방적 동행을 외치는 오세훈시장님!

제발 헛발질 그만하시고. 동자동 공영개발에 힘 좀 보태주세요.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함께 싸울 쪽방 사람들 정면사진 찍기다.

서울역 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지들 사진첩을 만들 계획이다.

여태 내가 찍어 온 초상사진은 상대의 눈동자에 주목해 왔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고) 이명동선생 말씀을 새겨 왔는데,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기야! 해석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어 사진이라고 모두 진실할 수도 없겠다.

 한 장의 예술이기보다 한 장의 사진을 원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의 사진첩에 남아 오랫동안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세상은 거리 스냅사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초상권이란 지나친 권리 주장에 사진가들이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라져,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찍힌 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다큐사진가라면 대중의 잘못된 과잉방어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급적 상대방을 바라보며 찍은 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처음엔 흠칫 놀라지만, 이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대가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지워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감방 갈 각오하면 된다.

 

몸 아프다는 신세타령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동자동 이야기에서부터 사진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메주 알 고주 알 늘어놓았는데,

모든 게 무위로 끝나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가족을 거두지 못한 못남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진, / 조문호

 

 

쪽방촌은 밥 주고 물주고 옷까지 챙겨주는 공짜천국이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시로 나누어 준다.

 

그 일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라는 이름조차 별난 조직에서 주관한다.

서울에 쪽방상담소가 있는 곳은 동자동을 비롯하여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등 다섯 군데다.

동사무소를 두고도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주된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달에는 연이틀 동안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명절이나 한더위에 나누어주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역 희망공동체',한국가스공사’, 열매나눔재단’에서 보내 온 식료품이었다.

생수에서부터 라면, , , , 통조림, 티셔츠 등 없는 것이 없다.

 

난생 처음 맛보는 인스턴터 식품도 있고, 빨아먹는 죽도 가지가지였다.

주는 것만 잘 챙겨먹어도 누구처럼 뿌옇게 부티가 날 것 같있다.

방부제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도 시신 썩을 염려도 없다.

 

선착순 육백 명이라는 벽보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천 명이 넘는 동자동에 다들 600개만 보냈다는데, 600개란 숫자는 어떻게 산출된 거냐?

평소 줄서는 사람이 6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벽보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힘없는 노약자는 매번 소외된다.

발 빠르고 뻔뻔스러운 자만 얻어먹는 배급인 셈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수량을 핑계 삼아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악천후도 신경 안 쓴다.

 

보내온 물품을 나누어주려면 줄 세우는 방법이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립심을 잃게 만들어 의존케 하는 빈민 길들이기라며,

줄 세우지 말라고 몇년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줄 세우기는 노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심한 모멸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줄서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 서는 것과 얻기 위해 줄 서는 차이지만,

배급은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을 길들여 온 나쁜 잔재다.

 

같은 나눔이라도 동사무소 물품 나눔은 줄 세우지 않는다.

지원하려면 주민 모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량을 요구하여,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는 물품에는 본인이 필요 없는 물품도 많다.

소량의 지원품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푸드마켓으로 넘겨

필요한 상품을 골라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푸드마켓도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쪽방촌 이외의 빈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공영임대주택을 배당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못 살겠다지만, 줄 세워 나눠주는 먹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자존심을 지키며 줄 서지 않는 주민도 있다.

이준기씨는 줄을 서지 않은 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줄 선 내 모습이 한심했겠지만, 똑같이 줄서서 느끼며 기록하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길들어 나도 모르게 뻔뻔해졌다.

쪽방 살이를 오래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렸다.

비참하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인성마저 망가졌다.

 

사진, / 조문호

 

 

1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설치된 야외무더위쉼터에 주민들이 모여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너무 덥잖아. 낮이고 밤이고 방에 있으면 돈 없고 임도 없으니 여기 앉아서 놀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오른편에 시작하는 후암로60길은 남대문5가 경로당까지 130여 미터(m) 이어진 오르막길이다. 경로당 맞은편에는 낡은 건물이 10여채 모여있다. 이곳은 동자동쪽방촌 또는 서울역쪽방촌이라 불린다.

기상청이 서울에 폭염경보를 내린 4일 오후 동자동쪽방촌 주민들은 대다수가 방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1시 서울의 기온은 섭씨 31도를 웃돌았지만 방안에는 습도가 높아 견디기 어려운 탓이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5도에 이른다.

30년 이상 서커스배우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A씨 역시 남대문5가 경로당 인근 옹벽 아래 앉아있다. 옹벽 아래에는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어 불과 한두 걸음 바깥쪽 길가보다 시원했다. 쿨링포그는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기온이 26도가 넘으면 자동으로 물안개를 뿜는다. 이날은 오전부터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A씨는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준 여름이불과 간편식을 받으러 나온 길이었다. 물품은 챙겼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방이 너무 더워 낮이고 밤이고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에 설치된 쿨링포그가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경로당 앞 야외무더위쉼터에도 주민 6~7명이 모여있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자원봉사 중인 양동일씨(47)는 야외무더위쉼터천막 아래 테이블을 펴놓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씨는 더위에 지친 동네 주민들이 오면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생수병을 꺼내 준다. 쪽방상담소는 야외무더위쉼터를 찾는 동네주민이라면 누구나 장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얼음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는 "두 세 시간 이상 선풍기를 틀면 선풍기가 열을 받아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1시에 야외무더위쉼터에 나와 앉아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동자동쪽방촌 건물은 보통 한 층에 0.5~2평 크기 방 8~15개와 화장실 1개가 있다. 건물이 4~5층 규모여서 살고 있는 주민은 20~50명에 이른다. 선풍기가 과열되면 주민들은 층마다 한 개씩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에는 선풍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야외무더위쉼터나 쿨링포그 아래로 모인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의 모습. 남대문5가 경로당 맞은편에 10 여채의 낡은 건물에 180~250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무더위가 계속될수록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면을 사 먹거나 커피를 사서 나눠 마신다. 낮부터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동자동쪽방촌에 2개 남은 '구멍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역시 소주, 막걸리, 라면 등이다.

1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규언씨는 "밀가루값이 오르면서 과자, 라면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과자는 이제 너무 비싸서 잘 안 가져다 놓는다"고 했다. 박씨 가게의 하루 매출은 3만~5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생계비가 지급되는 매달 20일부터 2~3일간은 하루 매출이 1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라며 "매달 82만원 남짓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했다.

쪽방촌의 월세는 25~35만원 수준이다. 전기세와 수도요금 등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된다. 한때 동자동쪽방촌에는 450여명이 살았지만 재개발을 앞둔 현재 180~200여명의 주민만 남았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가 6일까지 이어지다 전국에 장맛비가 예고된 7일부터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이 낡은 봉창을 두드린다.

반가운 손님일까 반색하지만,

덜덜거리던 선풍기가 아니라고 고개 흔든다.

 

장마철은 쪽방살이에 걱정거리를 몰고온다. 

천장에 물이 새어 이불이라도 젖을까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비새는 곳이 없어 한숨 돌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가 쪽방 열기는 식혀주지만,

 뼈마디가 쑤시는 골병은 때 만난듯 고개드는구나.

요즘들어 늙어가는 게 하루가 다르다.

 

몸이 편치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약속 때문에 안 나갈 수도 없었다.

김용철씨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경기여인숙' 입구에서 비 피하던 송범섭씨는 빚쟁이 처럼 독촉한다.

지난번에 찍은 사진은 왜 안 주는 거야?”

한꺼번에 뽑아 줄테니 좀 기다리라고 다독였다.

 

생수 타러 나온 주민들이 서울역쪽방상담소앞으로 몰려들었다.

빗속에 줄 지어 선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정재은씨를 만나 담배 피우는 중에 반가운 분이 나타났다.

개미 팔자가 아니라 매미 팔자를 타고났다는 기타맨 위씨였다.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 몸만 젖은 게 아니라 마음도 젖었다.

오늘 새벽에 옆에 살던 양반이 천당 갔어!“

흘러내리는 빗물이 눈물인 양, 슬픈 웃음을 흘린다.

 

어쩌면 편안한 곳으로 갔으니,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모든 원한과 미련을 훌훌 떨치고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서울역전은 천국 가는 대기소다.

 

사진,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