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의 한 방문에 붙어 있는 공공주택사업 촉구 포스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세상읽기]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정부가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 공공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 말 지구 지정이 이뤄지고, 2022년 말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구계획 승인까지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정부 계획에 반발하고 수익성이 더 높은 민간개발 전환을 요구하면서 사업은 표류 중이다. 정부 발표 2년째를 맞아 서로 다른 집회가 펼쳐졌다. 쪽방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신속한 공공주택 지구 지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면 소유주 단체는 국토부 장관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공공개발을 철회해달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토론 배틀’은 학교나 언론의 단골 소재 아닌가. 실제로 내가 만난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실무자는 이해관계자들의 견해를 듣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고 시민 참여라며 사업 지체에 관한 우려를 반박했다. 그러나 나는 작금의 갈등이 주거권과 재산권을 ‘배틀’ 상황에 놓는 듯해 찜찜하다. 대한민국 헌법(23조)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공공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헌법(35조)은 또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이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모두가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는 공공의 복리와 필요에 필수적인 것으로, 특정 개인이 재산을 증식할 권리와 맞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쪽방 세입자와 소유주를 대등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양자의 분명한 위계를 가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공공주택 사업 이해관계자들에게 지난 2년은 꽤 다른 시간이었다. 애당초 동자동 바깥에 거주해온 대다수 토지·건물 소유주는 민간개발 계획안을 국토부에 거듭 제출하면서 재산증식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년 전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정비사업 추진을 대대적으로 선포했던 국토부, 서울시, 용산구, 토지주택공사는 정권이 바뀐 뒤 담당자를 수시로 바꿔가며 침묵, 외면, 발뺌을 일삼고 있다. 아무리 회귀물이 유행하는 세상이라지만 정치인·행정가마저 시대를 거슬러야 하나.

 

정부가 뒷걸음질 치고 건물주가 재개발 운운하며 쪽방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마저 포기한 사이, 쪽방 세입자들은 기다림의 무게를 고통스럽게 견뎌야 했다. 집 아닌 집에서 살아오는 동안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은 2평 미만 쪽방에 갇혀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기후재난에 심각하게 휘둘렸다. 지난 2년 동안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집계로만) 쪽방 주민 60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와중에 공공개발 취재엔 관심도 없던 기자들이 쪽방 건물의 ‘얼음계단’을 찍겠다고 동자동에 들이닥쳤다. 겨울철에 복지수급자 한두명을 수소문해 생활고를 전하는 쉰내 나는 관행이 되풀이됐다. 기후재난으로 적정 주거가 절실해진 마당에 정부는 에너지바우처라는 땜질 처방만 요란하게 시행하고, 언론은 시야를 잔뜩 좁힌 채 바우처 지원 효과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국가가 헌법 취지에 맞게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공주택을 지으면 될 일인데.

 

지난 2년의 험로를 돌아볼 때 서울시의 행태가 가장 기이하다. 지난해 12월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토론회’가 열렸을 때,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장은 “노력하겠다”는 답답한 제스처라도 보였으나 서울시 담당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자체 브랜드로 앞세우고 있다. 공공개발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쪽방 주민은 서울시가 원하는 ‘약자’가 아닌 걸까. 그가 서울시가 달아준 에어컨으로 여름철 폭염을 견디고, 서울시가 제공한 긴급복지로 당장의 위기를 면했다면, 그리고 그 정도 지원에 감사할 줄 안다면, 서울시는 그한테 ‘약자’의 지위를 하사할 것이다. 관리 가능한 ‘약자’를 선별하는 작업에 더 적합한 명칭은 ‘약자와의 동행’이라기보다 ‘시민 길들이기’ 아닐까. 하지만 쉬이 길들지 않는 쪽방 주민들은 오늘도 ‘공공주택 환영’ 팻말을 들고 분주히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바우처라는 연명 치료 대신 집이라는 인권을 당당히 요구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창문 없는 쪽방은 사람 살 곳이 아니다.

햇볕 구경은커녕, 바퀴벌레나 쥐가 서식하기 좋은 구조라 사람이 살 수 없다. 죄 지은 사람이 갇혀 사는 교도소도 창 없는 감방은 없다.  벼랑에 몰린 빈민들은 창 없는 쪽방이라도 따질 겨를이 없다. 그들은 창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 방세가 한 푼이라도 싸냐 비싸냐 부터 따지니,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창문이 있고 없음에 따라 방세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삶의 격이 달라진다.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니, 창이란 오래전부터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며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동자동 쪽방도 창이 있으면 26만원에서 30만원 이고, 없는 방은 20만원에서 18만원까지 방세가 달라지니 창이 바로 돈인 셈이다. 지하방이나 쪽방마저 창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는 것이다.

 

창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열고 닫는 방법에 따라 들창, 여닫이, 미닫이, 벼락닫이, 붙박이로 구분되고, 막아버리는 봉창까지 합하면 그 종류가 많기도 하다. 내가 사는 쪽방 창문은 미닫이지만, 창의 기능을 반 밖에 하지 못하는 구조다. 옆 건물의 봉제공방 창과 붙어 있어 서로의 사정을 훤히 드려다 보고 살지만, 햇볕 구경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공기는 통해 담배연기 빠져나가는 대는 아무 지장이 없다. 한 달 방세는 23만원인, 입주한지 칠년이 가깝도록 한 번도 방세는 올리지 않았다. 4층까지 오르내리기가 불편해 찾는 사람이 없는지, 관리인이 봐주는 건지 모르겠다.

 

가난한 빈민들은 창문 없는 창고 같은 골방도 감지덕지하며 살지만,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공간을 제공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던가? 2년 전에 발표한 동자동 공공개발을 더 이상 깔아뭉개지 말고 지구지정부터 실시하라. 튀르키에 난민구제에 팔을 걷어 부치듯, 짐승처럼 살아가는 국민들의 삶도  살펴다오. 다시 한 번 조속한 동자동 공공개발을 부탁드린다.

 

"히말라야 산골 사람들은 창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하얀 설산이 내다보이는 창 하나 새로 내달고는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하루 종일 잔치를 벌인다 / 창은 신성하다. 창은 햇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달빛과 별빛이 스며들고, 새소리 빗소리가 넘어오는 곳이다

[김홍성시인의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부분 ]

 

사진, / 조문호

 

 

난방비 지원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한파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쪽방촌 빈민들의 삶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한다.

2년 전 공공개발 발표로 철거될 건물이라 손을 놓은 건물주와,

그들의 눈치만 보는 정부 사이에서 쪽방 빈민만 죽을 지경이다.

 

꽁꽁 얼어붙은 쪽방, 식수마저 얼어...

낡은 건물은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방안에 물이 얼어버리는 열악한 조건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수도는 얼어 터져 바닥과 계단은 빙판이 되어 버렸고, 벽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건물주들은 남의 일처럼 나 몰라라 한다.

 

건물주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 살며 관리인을 통해 방세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돈에 환장한 인간들이다.

그런 비인간적인 건물주들의 눈치를 보며, 국토부에서 발표한 공공개발을 2년이 넘도록 깔아뭉개고 있는 정부를 어찌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빈민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를 인상한다는 생색을 내지만,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 무슨 에너지 바우처가 해당되며, 가스가 들어온다 해도 여러 장벽에 걸려 혜택을 보지 못한다. 건물주들이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을 턱 없이 올린 상황이라 빈민들은 차라리 죽는게 낳겠다고 한다.

 

전기장판으로 버티며 난방비 착취 당하는 빈민들

건물 곳곳에 난방비 부담으로 월세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월세 인상 폭은 3만 원부터 1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얼핏 보면 적게 인상한 것 같아 보이지만, 쪽방 월세가 20~30만 원 선인 걸 감안하면 인상 폭은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월세와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내야 하는 대다수 쪽방주민의 입장에서 바우처 카드는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이런 저런 절차에 걸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쪽방주민들은 난방비 지불 영수증은커녕, 고지서조차 받아 볼 수 없다.

건물주가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데다 그것도 현금으로만 내야 하니,

난방비를 지출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1인 가구와 무연고자가 많은 쪽방주민은 수급자가 되어도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임신 중이거나 분만한 여성이 아니면 에너지 바우처 지원 대상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또한 신청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난방비를 현금이 아니라 바우처 카드로 지급한다.

한국전력, 서울도시가스 등 에너지공급사가 요금이 감면된 고지서를 발급하고 나면 그 고지서 내용에 따라 바우처 카드로 결제 하는 식이다.

 

건물주들은 건물이 얼어붙어도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착취하는 돈 벌레들이다.

한 번도 따뜻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난방비 폭탄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에너지바우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난방비 지원으로 쪽방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용산 대통령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열어..

지난 7일 오전 11,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빈곤사회연대. 홈리스주거팀 등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하고,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신속히 추진하라며 정부의 무능을 성토했다.

 

동자동사랑방’의 김호태씨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동자동주민협동회김정호이사장, ‘양동쪽방주민회박종만위원장,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백광현 부위원장, ‘민주노총서울본부이현미 수석부본부장, ‘민달팽이유니온지수위원장, ‘기후정의동맹서린 집행위원, 동자동 주민 최갑일씨 등 여러 명이 발언에 나섰다.

 

 ‘동자동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정부와 서울시가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한 지 2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난방비 지원보다 공공개발에 의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쪽방을 적정 주거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난방비 문제를 포함한 쪽방 주민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바우처는 빛 좋은 개살구

동자동에서 11년 거주한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백광현씨는 바우처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나는 작년까지 64세라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올해 65세가 돼서 아 나도 이제 받을 수 있겠다싶어 동사무소에 갔더니 영수증 가져와라’, ‘계량기 확인해 와라 이래요. 바우처 이거 믿지 마세요. 주지도 않지만, 힘들게 얻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거 없습니다. 끝까지 투쟁해서 공공개발이 이뤄져야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맨 날 뉴스에 우리 사는 거 나오고, 정부는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는 헛소리만 하네요, 어렵게 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가 도대체 뭘 도와줬습니까? 쪽방주민들 도와주는 방법은 공공개발 뿐입니다

 

지난 1월 말, 여러 언론에서 꽁꽁 얼어붙은 동자동 쪽방촌 사진을 일제히 내보냈다.

일명 얼음 계단으로 쪽방촌 건물이 통째로 얼어 계단과 바닥 전체에 빙판이 깔렸고,

난간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사진들을 게재하며 동자동 빈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도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활동가는 요즘 쪽방건물에 매일 기자들이 오는데, 언론은 한파 때만 쪽방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기후정의동맹서린씨는 주거권 보장이 곧 기후정의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적정한 가격에 난방을 땔 수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제 에너지는 기본권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공재다. 난방비 지원으로는 결코 에너지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적정한 주거공간을 제공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쪽방촌 에너지 문제의 근본 방안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공공주택을 쪽방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난방을 때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 공공개발 지구지정을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한다.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 계획 발표 2년, 신속한 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도 낭독되었다.

적정 주거가 답이다! 난방비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기자회견문은 지금까지 민간주도로 이뤄진 쪽방 개발은 쪽방주민 축출의 역사였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이와 같은 폭력과의 단절이자 정책적 속죄라는 가치가 있다. 또 다시 제어되지 않는 소유주들의 불로소득의 탐욕에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이 소멸하는 비극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토교통부가, 정부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백광현씨를 비롯한 주민 네 명이 나와 에너지 바우처 난방비를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자동 주민으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김정호이사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선동수, 백광현, 정대철, 최갑일, 조인형, 김장수, 박종근씨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회견장 앞에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동자동 쪽방 사진전’도 열렸다. 

주민들이 찍은 사진에는 낡은 건물구조와 한파로 피해를 겪은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 지금 당장 추진하라!

난방비 말고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서울특별시에서 작년 8월부터 쪽방주민들에게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은 그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다.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 사업이었지만, 주민들의 호응으로

올 년 말까지 연장되었는데, 이제 굶어 죽을 사람은 없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자료사진

‘아름다운 동행’은 하루 한 끼 팔천 원 상당의 무료식권을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쪽방살이에서 제일 힘든 것이 주방 없는 비좁은 방에서 밥해 먹는 일이다.

그게 싫어 줄선 노숙인 틈에 끼이거나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더러는 ‘동자동사랑방’에서 실시하는 ‘식도락’에서 천원의 끼니로 해결하는 분도 많았다.

 

그마저 힘든 노약자들은 밥 굶기를 밥 먹듯 했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목숨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론 밥 한 끼 사먹을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생활수급비 받아 밥 사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방에 들 앉아 꼼짝 하지 않고 먹는 것 마저 소홀 한 것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쪽방 촌에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다 예견된 일이었다.

밥이 보약이라 듯 사람은 먹어야 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처럼, 귀찮아 먹지 않던 힘없는 노약자들이

사라질 식권, 즉 돈이 아까워 식당을 찾는 것이다. 지정된 날짜가 지나면 식권은 무효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 ‘아름다운 동행’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동자동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모두 열 곳이다.

'김밥천국'을 비롯하여, 한식뷔페인 ‘만냥의 행복’, ‘맛고마 대구탕’, ’백암순대국‘, ’송탄부대찌게’,

생선조림전문 ‘완도집’, 백반과 찌게전문 ‘전주식당과 ’우정식당‘, 중화요리로는 ’만리장성‘과 ’태향‘이 있다.

작년에는 ‘대우정’도 있었으나, 건물 벽에 민간개발을 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건물주가

운영하는 업소라 그런지, 주민들의 이용률이 낮아 올해부터 다른 업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팔천 원을 초과하는 음식은 차액만 내면 되니,

하루 한 끼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대개 단골 식당을 이용한다.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출입하는 식당은 초라한 빈민들의 출입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설거지도 줄일 수 있는 음식포장을 더 반긴다. 자재비 낭비보다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식권 총액이 한 달에 일억육천팔백만원이나 되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 금액을 지정된 열 곳 업소로 나누면,

한 달에 천 육백만원의 매상을 올릴 수 있으나, 돈은 탐나지만 사람은 싫은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인들이 찾는 업소는 가급적 들리지 않고, 가까운 ‘우정식당’을 이용한다.

그곳은 두 모녀가 19년 동안 운영해온 식당이라 애착은 가지만, 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주인인 박정화(67세)씨는 주방을 맡고, 친정어머니인 심문숙(91세)가 서빙을 하는데,

늙은 노모의 느릿느릿한 서빙은 어쩔 수 없지만, 음식이 정갈하지 않아 식당을 옮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사정이 그러니 직장인은 없고 주민들 뿐인데, 그러다 있는 손님마저 다 뺏긴다.

인정에 의한 동정심은 영업에 대한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식당의 성패는 결국 음식 맛이 아니겠는가?

주방장 들여 음식 맛에 신경 좀 쓰고, 박씨가 손님 서빙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반가운 일이 생겼다.

식권이나 물품을 나누어 줄 때마다 줄을 세워 공개적으로 시정을 요구해 왔는데,

2월분 식권을 나누어 준 지난 1월26일의 나눔에는 긴 줄이 없었다.

 

지정한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즉시 나누어 주니 주민들이 줄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번번이 줄 세워 추위에 떨게 했는지 모르겠다.

거지 동냥하는 광고하려는 작태가 아니라면 진즉 바뀌어야 할 구태였다.

 

아무튼,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줘 고마울 뿐이다.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 식권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공영개발과 민간개발을 사이에 둔 쪽방 주민과 건물주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지연되고 있으나 윤석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눈치만 보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쪽방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낸다.

 

문제는 매서운 한파보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더 불안해 한다.

 

서울지역에 몇 남지 않은 쪽방촌인 동자동은 건물 63채에

한 평 남짓의 쪽방 1170칸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거주자 861명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절반 이상이고, 장애인 등록자도 10%를 넘는다.

 

주민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남성으로,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도 35%에 달한다.

 

이곳은 병들고 늙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사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들은 웃풍이 심해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나와 안경에 서리가 낀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사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연료비마저 폭등했다.

 

한파가 휩쓸고 간 지난 30일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으나 쪽방촌의 냉기는 여전했다.

 

다가구 주택을 쪼개기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쪽방문은 낡은 목재라 불안하기 짝이없다.

 

취사시설이 없는 좁은 방에서 불을 지펴, 항상 화재에 노출되어 있다.

 

좁은 방이라 조그만 여유도 없어 복도에 둔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공용 화장실은 설거지까지 하느라 아침녘이면 줄을 서야한다.

 

대부분 수십 년 된 건물이라 제대로 된 곳은 하나도 없다.

 

방음은 물론 누수로 계단이 얼어붙어 얼음판을 지나 다녀야 하지만,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해도 불편하면 이사 가라는 말만 반복한다.

 

한겨레 / 강창광기자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혀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고은호기자

그럼에도 쪽방촌 주민들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언제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 온 곳에서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잠자리면 족하다빠른 재개발을 원한다.

 

2020년부터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된 동자동 재개발은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재개발은 건물주의 강한 반발에 막혀 있다.

 

 건물주들은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공공개발보다 민간개발을 요구하며,

공공개발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이다.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한다.

 

만약 서울시나 정부에서 억지로 철거하고 내쫓는다면

 여섯 명이나 사망한 용산참사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노숙인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그들은 찬 바람이 몰아치는 길바닥에서 위태로운 삶을 산다.

 

사람이 죽어가는 이러한 위중한 현실에 정부는 부자 감세 같은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빈민들의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 조속히 대책을 강구하라.

 

사진, / 조문호

 

 

 

26일은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밤잠을 설쳤다.

 

눈이 오면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순백의 세계도 장관이지만,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 밟는 소리가 정겨워서다.

 

눈 치울 일이나 길이 미끄러운 불편함이야 따르지만,

 눈이 오면 어린애처럼 마음 들 떠는 것은 늙어도 어쩔 수 없다.

 

어제 밤엔 늦잠이 들어 오전 열시 무렵에야 일어났다.

 

쪽방에 창문은 있지만 옆 건물과 붙어있어 햇볕은커녕 바깥 날씨조차 알 수 없다.

 오로지 담배연기 빠져 나가는 배출구 역할만 톡톡히 해 준다.

 

마음이 바빠 서둘러 나가보니, 솜털 같은 눈발이 휘날렸다.

 

골목엔 간간히 눈 치우는 주민이 보였으나,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이 내려 나처럼 신이 난 사람도 있었다,

 정재은씨를 골목에서 만났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다들 추운 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티브이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나 티브이는커녕,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노숙인이 걱정이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가니, 계단 구석에 웅크려 울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파지가 깔린 걸 보니 그 곳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다.

 

무슨 사연으로 가출했는지 모르지만, 추위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슬펐던 것 같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찬바람 피할 곳을 찾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교단체에서 여러 동의 천막을 세워, 오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몇 명 안 되던 인원이 40여명으로 불어났다.

 

한 아낙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젊은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외쳐댔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희망지원센터'로 가거나, 지하 통로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역 지하도에 앉은 노숙인은 “평소에는 저녁 6시가 지나야 내려오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이 일찍 내려왔다”고 한다.

 

일부는 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따뜻한 커피와 떡을 나누어 준다니까, 어디서 나왔는지 금방 긴 줄이 형성되었다.

 

잠잠하던 텐트 안에서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지프를 열려고 손이 슬그머니 나왔는데,

반지를 낀 고운 손을 보니 여성 노숙인 같았다.

 

요즘 들어 여성 노숙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모든 생활이 남성에 비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노숙인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별도의 보호시설은 있지만, 그 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술과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추운 고통을 감수해 가며 자유를 원하는 노숙인의 삶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

 

서울역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 거리가 아닌데다, 인사동의 눈 내린 풍경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인사동 거리는 눈 치우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술집들은 대부분 문이 잠겼고,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더러 한복을 입은 중국관광객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남인사마당 입구에는 눈을 뒤집어 쓴 노점상 리어카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눈 덮인 설경을 찾아 가까운 탑골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 또한 서울역광장의 살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빵과 두유를 얻기 위해 선 줄이 탑골공원에서부터 담장을 끼고 길게 이어졌다.

 

그 곳은 노숙인보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노인들이 더 많다.

춥고 미끄러운 눈길을 헤쳐 나와 빵조각 하나 얻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노인들의 속울음이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곳곳에 오갈 곳 없는 가난한 자들의 서러움이 넘쳐 나는데,

아름다운 설경이나 찾아 나선 스스로의 작태가 부끄러웠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가난한 자의 눈물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가난의 서러움을 껴안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권에 눈이 어두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투사라기보다, 싸우다 죽겠다.

 

새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눈이 아니라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흰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1

 

21일 동자동서 열린 공공주택사업 토론회
공공개발구역 건물 소유주 대부분이 외지인
“민간개발 추진되면 외지인 투기수단으로 전락”
눈치 보는 국토부‧LH “쪽방주민‧소유주 윈윈해야”
쪽방주민 “우리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달라”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빈곤사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여기(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우리(쪽방주민)예요.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예요. 그런데도 개발 과정에서 주민 목소리는 둘째로 들어가더라고요.”

“여기 쪽방에는 바퀴벌레도 많고 쥐도 있습니다. 공공주택사업 빨리해서 하루라도 뜨뜻하고 깨끗한 방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입니다.”   

- 동자동 쪽방촌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 중에서

 

빈곤사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를 보면 공공주택사업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드러난다. 쪽방주민은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는 피켓을 들고 공공개발을 일제히 반기지만, 토지·건물 소유주는 공공주택사업 철회를 계속해서 주장한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 일대에는 쪽방주민을 위한 임시 이주단지와 이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이 지어질 예정이다.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서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 토론회가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 주최로 열렸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쪽방주민은 현재 지지부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은 30분가량 토론을 벌인 뒤 주민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 ‘아름다운 민간개발’은 공허한 슬로건일 뿐

 

동자동 쪽방촌은 현재 공공개발을 앞두고 있다. 2020년 국토부는 LH, 지방자치단체, 지방공사와 협력해 쪽방주민을 내쫓지 않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시는 2020년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2021년 2월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 밀집 지역인 동자동에도 해당 계획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서울시는 동자동 공공개발을 한없이 미루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2월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완료하고, 올해까지 소유주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에는 주택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 22개월간 사업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 관련 토론회가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주최로 열렸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공공주택사업(공공개발)과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민간개발)의 가장 큰 차이는 ‘기존 쪽방 주민의 재정착’ 여부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공공개발의 경우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를 포함해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동자동 쪽방촌이 공공개발로 진행되면 공공임대 51.9%(1,250호), 공공분양 8.3%(200호) 등으로 원주민 1,000여 명의 임시 이주와 재정착이 가능해진다.

 

한편 동자동 쪽방촌이 민간개발로 진행되면 원주민 재정착률은 큰 폭으로 떨어진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에 따르면 민간개발 임대주택 의무 비율은 10~20%로, 서울시는 자체 고시에 따라 그 비율을 15% 선에서 유지하고 있다. 이때 80%가 넘는 원주민은 정착은커녕 삶의 터전을 잃고 내쫓길 위기에 놓이게 된다. 소유주가 주장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이 공허한 슬로건에 그치는 이유다.

 

게다가 민간개발이 예정된 쪽방촌 주민은 제대로 된 이주 대책이나 보상도 없이 집을 비워야 한다. 2008년 동자4구역 재개발 당시 원주민은 이주비 명목의 3~7만 원을 받고 원래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고시원 2개를 포함해 100여 개 쪽방이 사라진 자리에는 35층짜리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다. 쪽방 건물주는 지금도 ‘리모델링 공사’, ‘낙후 건물 안전진단’ 등을 이유로 들며 강제 퇴거를 일삼고 있다. 이는 이주비 등 보상 책임을 지지 않고 개발에서 추가 이윤을 챙기기 위한 전형적인 ‘꼼수 조치’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 등기부등본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이날 발제에는 동자동 쪽방촌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추모제기획단이 공공주택사업 예정지 건물 308채의 소유주 실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199채(64.6%)의 소유주가 동자동 외 다른 지역에서 거주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상속‧증여에 따른 소유주는 62건(31%),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소유주는 22건(11%)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동자동에 민간개발이 추진되면 쪽방촌은 외지인의 투기 및 재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헌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소유주의 재산권과 쪽방주민의 주거권 간 법익 균형성을 고려했을 때 공공성이 높은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공개발과 민간개발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비교 분석한 결과도 공개됐다.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공공주택사업 및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의 개발이익 분석: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현행대로 동자동 쪽방촌에 공공개발이 추진될 경우 총 1,250세대의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될 예정이다. 이때 LH는 분양으로 1,471억 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 소유주는 세대당 1억 4,000만 원, 최초 수분양자는 세대당 5,000만 원의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참여연대가 10월 발표한 이슈리포트 ‘공공주택사업 및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의 개발이익 분석: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에 나오는 동자동 쪽방촌 개발이익 분석 조건. 주거용 용적률은 500%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 질의에 대한 국토부 관계자의 답변이다. 참여연대 제공
 

반면 민간개발이 진행될 경우 공공임대주택은 8분의 1 수준인 156세대로 줄어들고, 소유주 개발이익은 10배에 가까운 13억 7,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도 소유주는 세대당 10억 5,000만 원, 최초 수분양자는 세대당 5,400만 원의 개발이익을 챙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개발의 경우 소유주와 사업자가 개발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더욱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당초 발표한 도심복합개발사업을 민간사업으로 유도하는 것을 멈추고,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사업을 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공개발 발표해 놓고 소유주 눈치 보는 정부

 

이날 토론회에는 사업 시행 주체인 국토부와 LH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공주택사업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자리에 함께한 40여 명의 쪽방주민은 동자동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지적하고 정부에 주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수 LH 도시재생사업처 부장은 공공개발 과정에서 소유주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민간개발 사업에 비해 쪽방주민의 입장을 더욱 반영하고 있는 만큼, 주민과 소유주 모두 윈윈(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유주 의견을 반영하는 공공개발’은 애초에 답이 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 소유주는 개발이익을 최대로 거두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최소화할 것이고, 이는 공공개발의 취지와 상충된다.

 

발언자로 나선 동자동 쪽방주민 윤용주 씨가 동자동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지적하고 국토부와 서울시에 주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동자동 쪽방주민 윤용주 씨는 “지난해 국토부에서 주민의 재정착을 약속한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매일같이 추위에 떨고, 쥐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집이 아니라 제대로 된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집,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쪽방주민인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공공개발 논의에 주민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왜 국토부와 서울시는 쫓겨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느냐”며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집, 화분이라도 하나 놓을 수 있는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후퇴 없는 공공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지구 지정 이후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준 제이앤케이(J&K)도시정비 대표는 “동자동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더라도 쪽방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동자동 개발사업의 방향은 국토부, 지방자치단체, 쪽방주민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 내다봤다. 달리 말해 쪽방주민이 공공개발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동자동에 민간개발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동훈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장은 “당초 계획보다 사업이 늦어지게 되어 죄송하다”며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와 서울시 관련 부처가 함께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비마이너 / 복건우 기자]

마음이 급해 서둘다 방문에 걸어야 할 자물통을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다.

그 날은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 식권 타는 날로,

 김명성시인이 해 바뀌기 전에 술 한잔 하자는 시간과

한 시간 차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에서 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식권 사업이 주민들의 호응으로 내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1월분 식권을 27일 오후 2시부터 준다는 벽보가 나 붙었는데,

세시까지 가려면 늦을 것 같아 30분 일찍 나섰.

 

한 시간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지켜 보고 있던 상담소 전실장이 소장이 찾는다며 날더러 가자는 것이다.

식권 받고 가겠다는데도, 일분도 안걸릴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소장부터 만났으나,

대개 주민들과의 마찰도 이런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상담소 소장이 나를 찾는 이유는 대충 짐작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쪽방상담소는 갑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에

상담소 소장이 올린 장문의 해명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소장과는 첫 대면으로, 소장이 바뀐 것도 댓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줄을 세울 수밖에 없는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그 해결 방법을 물어왔다.

다소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번호순으로 돌아가며 받도록 해야 한다.

소량 물품은 푸드마켓과 연계하여 나누어주는 등 자정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정인을 거명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은 수용했다.

그리고 식권사업은 사용한 식권을 매일 회수하는 일도 힘들지만,

싼 가격으로 뒷거래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단다.

 

그 문제는 매달 식권을 나누어 줄 것이 아니라 전 주민을 대상으로 전산화 해야 된다.

지금 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등록증에 붙여 확인하는 바코드처럼

주민등록증 한쪽에 별도의 식권 바코드를 붙여 관리하면 될 것 아닌가?

해당 식당에 별도의 단말기를 비치하는 불편이야 따르지만..

 

식권은 모두에게 줄 수 있는 량인데, 왜 시간을 정하냐고 물었더니,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야 한단다.

이 말은 주민들 입장보다 업무의 편의성이 먼저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동사무소처럼 업무시간에 언제나 받을 수 있도록, 담당자 한 명만 있으면 될것이다.

 

뒤늦게 식권을 받아 나왔으나, 이미 세시가 가까웠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문도 잠그지 않고 왔겠나?

주머니에 자물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는 응암역, 내릴 무렵이었다.

요즘들어 잊어버리는 일이 잦기는 하지만, 자물통을 가지고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나이들어 잦아지는 치매증상이야 어쩔 수 없어나,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쪽방 문 열어두고 온 것에 왜 그리 신경 쓰였는지 모르겠다.

 

누구처럼 이불 밑에 감추어 둔 돈이 있나, 가져 갈 것이라고는 고물 컴퓨터 뿐인데 말이다.

혹시 배고픈 사람이 책상에 놓인 식권이라도 가져간다면, 그건 적선이 아니겠는가?

여태 신발 도둑 맞았다는 소리는 들어도 방에 도둑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약속장소인 응암동 '풍천장어'집에 갔더니, 김명성, 조해인시인과 정동지도 왔더라.

과분한 술 상 앞에 모여앉아 한 해 못다한 아쉬움을 달랬다.

꾸물대는 장어처럼 등 달아 꾸물댈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김명성씨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신용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것이다.

한 달 전만해도 인사동 ‘유목민’에 나와 디카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이 홍제동 셋집에서 충주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이다.

 

지난 달 인사동에서 만난 김신용시인

가난한 시인이 집을 샀다는 자체만도 뉴스가 아니겠는가?

시만 쓰는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거짓말같은 사실 말이다.

누구처럼 칠억짜리가 아니라, 칠천만원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몸이 아픈 친구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김명성씨가 며칠 후 이청운화백 문병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뮤아트' 김상현씨도 몸쓸 병으로 여러차례 수술받아,

그 통증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오래 전의 이청운화백, 입원했을 때다

새해에는 이청운화백도 만나고, ‘뮤아트’ 에서 김상현씨의 쉰 듯 절절한 노래도 들어보자.

모두의 건강한 한 해를 위해...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달 아픈 몸을 이끌고 양평 황명걸시인 추모제에 참석한 김상현씨가 아코디온을 연주하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