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이불세탁을 받지 않은지가 한참되었다.

겨울 내내 찌든 이불을 세탁하려고 줄을 잇는 봄철에 한 달 가까이 이불세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세탁기를 수리중 이라 말했다가, 서울시의 예산이 없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변명만 늘어 놓는데, 이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난 3월29일 이불을 가져가 헛걸음 친후, 그 뒤 몇 차례나 찾았으나 똑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영업용 세탁소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젠 부피가 큰 이불은 받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더 이상 주민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지 말고,

세탁기를 가동하지 못하는 분명한 사유를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라.

 

동자동 쪽방촌의 ‘돌다릿골 빨래터’는 2018년 여름, 서울시에서 KT의 세탁기 후원을 받아 동자동 새꿈공원 맞은편에 설치한 것이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박원순씨에 의해 성사된 일로, 빈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어 주민들로 부터 고마움을 한 몸에 샀다.

 

쪽방에 살려면 빨래가 제일 골칫거리였으나,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된 것이다.

박원순씨는 옥탑 방에 직접 살아 보는 등 빈민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많은 개선을 이루어내었으나,

더러운 세상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서울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빈민들의 삶이 곤두박질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한 때는 세탁에 의한 소음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으나,

지금의 ‘서울역쪽방상담소’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같이 옮겨 운영하는 것이다.

 

비좁은 쪽방은 이불장이 없어 항상 이불을 바닥에 펴놓고 살아 불결하기 짝이 없다.

작은 세탁물이라면 쪽방 화장실에서라도 세탁할 수 있겠으나, 덩치가 큰 이불은 어쩔 도리가 없다.

예전에는 때에 찌들어 시커먼 이불이 행여 얼굴에라도 닿을까 노심초사 했으나, 지금은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서울시와 서울역 쪽방상담소는 하루속히 '돌다릿골 빨래터'를 정상화하라.

 

사진, 글 / 조문호

 

 

마을공동체 ‘동자동사랑방’의 2023년 제14차 정기총회가 

지난 15일 오후2시부터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2008년 결성된 ‘동자동사랑방’은 지난 15년 동안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쳐, 

삭막한 세상에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공동체다. 

 

동자동 주민들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기다 보니, 서로 도와 병원에 함께 가기도 하고, 노숙인들의 쪽방촌 안착을 돕기도 한다.

중요 활동으로는 밥상공동체인 ‘식도락’을 운영하며, 한가위나 어버이날에는 마을 잔치를 벌여 주민들을 위안한다.

이밖에도 비좁은 방에 선반을 달아주거나 정기적으로 마을 청소도 하고,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주선하기도 한다. 

그리고 쪽방에서 돌아가신 어르신을 위해 마을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간 망자를 기리며, 

살아 남은자의 권리를 위해 반 빈곤 연대활동을 펼치는 등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주민모임이다.

 

다만 참여하는 주민이 일부에 불과해 안타까움을 더해 주는데,

이것은 희망을 잃은 주민과 희망을 가진 주민으로 나누어진 동자동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온 종일 방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사랑방이라도 들락거리며 활동하는 분들은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므로 외로움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정기총회도 참석 회원보다 위임회원이 더 많은 것은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가는 것이라 더 안타깝다.

 

정기총회에는 윤동주 공동대표의 인사에 이어

박승민간사의 22년 정기총회 결과보고와 활동보고 및 재정보고가 이어졌다.

 

이어 김호규 감사의 2022년 감사보고가 상세하게 보고되었다.

예산집행이나 영수증수취와 보관이 완벽하게 처리되었음을 밝혔고,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랑방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표선출 안은 양정애, 윤용주 공동대표가 연임되었고,

2023년 예산안은 수입 지출 공히 65,500,000원으로 상정 가결되었으며,

선동수간사장의 총회기록보고에 이어 이원영씨 등 외부인사 소개와 인사도 이어졌다.

 

눈에 띄는 사업계획으로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치루지 못한 마을장례를 재개하여 주민들의

조문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더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동자동 사랑방’의 발전과 주민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비가 내린 지난 11일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려 꼼짝하기도 싫었다.

무슨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밥 먹으러 간 시간 외에는 온종일 앉았다 눕기만 반복했으니 몸이 편할 리가 없다.

 

이튿날 아침 목욕탕에 가서 몸 좀 풀려고 내려오니, 이 층 입구에 김반장이 와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고씨 영감 방에 사람이 왔는데, 소방대원이 고씨 영감을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소변 팩을 다리에 달고, 의식이 없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그런 것 같았다.

독거노인의 운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살아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자동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실려 나가는 것은 종종 본다.

그런 불상사가 잦은 것은 폐쇄적인 공간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대개 나가기 싫고, 온종일 앉았다 눕기만 반복하니 무슨 기력이 있겠는가?

그나마 쪽방 상담소에서 나누어 준 식권 날짜 지날까 하루에 한 번씩 밥 먹으러 나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지난해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로 조사된 천여 명 중에 절반이 결혼을 못한 비혼이라고 한다.

아무런 간섭받지 않고 책임질 일은 없겠으나, 외로운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은 없다.

건강관리는 물론 이야기 나눌 사람까지 있는 교도소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녹번동에서 주말을 보내다 나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가기 싫은 것처럼...

실소를 흘리며 오지만, 마치 저승 대기소 가는 심정이다.

늙어서는 두 내외가 오손도손 사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사진, / 조문호

 

 

 

쪽방촌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봄의 화사함도 가난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었다. 

 

목련 아래는 끼니 때우러 나온 사람이 줄을 섰고.

바닥에 자리 깐 노숙인은 꽃비 맞으며 누워있다.

 

불공평한 세상도 봄은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그날이 4월분 식권 나누어 주는 날이라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도 사람이 몰렸다.

'아름다운 동행' 식권 사업에 힘 실려 사우나 무료목욕권까지 붙여주었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나, 다른 지역 독거 노인은 받지 못하니 이 또한 불공평이 아닌가?

빈민과 상인은 물론 농민까지 덕 보는 식권 나눔을 전국으로 확대하라.

 

임백수씨를 만나 며칠 전에 찍은 초상 사진을 꺼내 주었더니, 반색을 했다.

잠깐 기다리라 해 놓고는 담배 두 갑을 사온 것이다.

 

주머니에 슬쩍 찔러주는데, 이거 뇌물죄에 걸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담배를 얻은 고마움보다 의기소침한 초상작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초상사진으로 자존감 지키려는 첫 사람인 셈인데, 나중에 만난 황병윤씨도 좋아했다.

더 좋은 사진 나오도록 다시 찍겠다는 다짐도 했다.

 

봄바람에 희망이 실려온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제13차 정기총회가 지난 318일 오후2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14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총회가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아래와 같이 채택되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

지난 202125,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는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동자동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인 만큼 개발이 되더라도 우리 동자동 주민들은 쫓겨나지 않고 총 1,250호가 지어지는 공공임대주택에 재정착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여 우리는 이제 따뜻한 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딸린 나만의 보금자리,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풀어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적극 환영하였다.

 

하지만 공공개발 계획 발표2년을 넘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무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고 있거나, 한 해 30명 이상 죽어나가고 있다. 국토부는 공공개발한다고 했으면 해야지,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아무런 결정을 하지않고 갈팡질팡 할 것인가? 주거권은 인권이며, 지연된 인권은 정의가 아니다.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고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있는 소유주들 눈치 보느라 2년의 세월을 허비하며, 한 없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토부를 규탄한다. 국토부는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지구지정하고, 약속한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들은 공공개발 계획 발표 당시부터 보기에도 삭막한 붉은 깃발과 섬뜩한 구호들이 담긴 현수막을 온 동내에 걸어 놓더니, 지난 달 24일 열린 국토부 주민설명회 때는 너무 거세게 저항하고 훼방을 놓아 결국 설명회를 무산시켜 버렸다. 처음으로 열리는 국토부 주최 주명설명회라 우리는 나름 기대를 갖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먼 곳까지 찾아간 것인데, 탐욕 앞에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은 소유주들과, 그 앞에서 준비해 온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국토부의 모습에 억울함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걸 겨우 참으며 헛걸음으로 돌아왔다.

 

민간개발 주장 소유주들은 우리 주민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고, 그들이 든 피켓 내용도 무시무시했다. "수급자 차상위 받지 말자, 다 쫓아내자, 나랏돈이나 받아먹고 있지 뭐 하러 나왔냐?, 금싸라기 땅, 서울 한 복판에 임대주택이 웬 말이냐?, 내 시체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다. 화가 북 받친다. 땅과 건물 가진 자들만 사람인가? 우리도 사람이다. 설명회장에서 우리도 목소리 내고 외칠 수 있었다. 인신공격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화를 참고 억누르며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공공주택사업을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또 공공주택사업을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생생히 지켜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오로지 민간개발만이 진리인 냥 부르짖는 소유주들의 태도에 같은 인간으로서 비애와 분노를 느끼는 한 편, 깊은 우려를 하고 있음도 밝힌다. 우리가 아니면 여기 집들은 비어 있을 것이다. 돈 있는 자들이 여기서 살겠는가? 우리 아니면 어찌 배가 불렀겠나? 주택문제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다 중요하다. 주거를 돈벌이로 생각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공공임대주택을 못 짓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며, 공공주택사업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년간, 우리의 주거권을 보장받기 위해 엘에이치(LH) 특별본부, 서울시청, 광화문청사, 세종청사, 용산대통령집무실 등에도 갔으며, 서명, 기자회견, 사진전, 언론 인터뷰, 일인시위, 집회 등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왔다. 그렇다고 지금은 멈추고 잠잠할 때가 아니다. 바로 이 곳 이 자리에 지어질 깨끗하고 쾌적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 가 어깨춤 출 그날까지 우리는 힘을 더 모우고 목소리를 더 크게 낼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단결하며 결집된 모습으로 굳건히 싸워나갈 것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대로 추진하라!

하나,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업지구 빨리 지정하라

하나, 사는 사람이 주인이다. 우리도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자!

하나, 동자동 주민들이 똘똘 뭉쳐 주거권을 쟁취하자!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제13차 정기총회 참가자 일동

2023318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이사장: 김정호)의 제13차 정기총회가 지난 3월18일 오후2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14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여태 코로나로 인해 서면 총회로 진행하다 모처럼 갖는 대면 총회라 그런지 평소보다 화기애애한 총회였다.

 

동자동주민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창립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가 탄생한지도 어언 13년이 되었는데, 조합원355명에 총자산이 5억이 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지난 년 말까지의 출자금이 4억6천8백7십만원에다 누적대출은 4732건에 총 11억1천만원을 상회하는 등 출자와 대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타 협동회보다 모범이 되는 단체로 성장해 주변 단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갑일 사업위원이 진행한 1부 기념식에는 유명을 달리한지 3주기를 맞은 유영기 전이사장의 추모영상이 상영되며, 고인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돈의동주민협동회’ 홍석준이사장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한순미 대표, 박재천 초대대표 등 여러 내빈들의 축사에 이어 진행된 김정길 이사에 대한 감사패 수여는 본인 불참으로 정대철씨가 대신 받았다.

 

기념촬영 후 2부로 이어진 정기총회는 의장을 맡게 된 김정호이사장의 진행 아래 선동수간사가 총회 정족수를 채웠다는 성원보고로 시작되었다.

 

이명애감사의 감사보고 승인에 이어, 2022년 사업 결산보고에 따른 잉여금 728,630원은 각종 적립금으로 승인했다.

 

이어 김호태 위원의 진행으로 25년 3월까지 '사랑방마을협동조합'을 이끌어 갈 새 임원 선출이 진행되었다.

 

지난 2월 17일 전체 임원 연수에서 임원 후보를 추천하고, 3월2일 이사회에서 승인된 임원후보 10명은 총회에서 조합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후보로 추천되어 선임된 분은 고문에 김정길, 이사장에 김정호, 부이사장에 양정애, 이사에 김영자, 윤용주, 정대철, 차재설, 최갑일, 감사에 최순규, 한순미씨다.

 

2023년 사업계획안 27,000,000원에대한 예산안이 최종 승인된 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총회가 끝난 후 기념품으로 트리오를 참석 조합원 전원에게 증정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뭐 남길 끼 있다고 초상사진을 찍어?”

이 말은 초상사진 찍자는 말에 아래 층 사는 오씨가 뱉은 말이다.

쪽방 사는 분이나 노숙인들은 대개 영정사진 찍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삶을 다 지우고 싶은데, 사진은 남겨 뭘 하냐?’는 것이다.

봉사단체에서 가끔 쪽방 주민들 영정사진 찍어주러 오지만, 대부분 허탕 치는 이유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예술 지원 사업의 주제를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으로 정해버렸다.

초상사진이 사진의 꽃이기도 하지만, 폐배 주의적 생각을 버리게 하고 싶어서다.

 

배경 막 앞에 앉아 찍는 판박이 사진이 아니라  그 사람 정신이 오롯히 담긴 작품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각오다.

그럴려면 사진 찍는 목적과 가치를 확실하게 밝혀 당사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자동 살며 한 번도 개인적 신분이나 사진 찍는 목적을 밝힌 적이 없어, 대부분 쪽방으로 밀려난 늙은 사진사 정도로 알고 있다.

쪽팔려 스스로의 이야기도 못하지만, 안간적인 교류나 작업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동자동 들어 와 제일 신경 쓴 문제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이 나와도 보도자료는 커녕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겠는가?

 

유명세의 폐해를 너무 잘 알지만, 그들이 싫어하는 초상사진을 찍으려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기존 영정사진과 다르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찍지도 않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는데 무슨 좋은 초상사진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까발리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꾼 것이다.

 

지난 달 중순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원로예술지원금’으로 버려진 사람 초상 사진 찍다.‘란

글과 사진을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카페 “쪽방타운”에도 복사해 올렸다.

그 아래 여태 해 왔던 작업과 약력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자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쪽방타운’ 카페를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평소 접속보다 다섯 배나 많았다.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이라 찍자는 분이 생길 것 같았다.

 

열흘 전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나서다 이발하는 서씨를 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모처럼 말쑥해진 모습에 초상사진을 부탁하여 찍었는데, 눈길을 카메라에 주지않았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데,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눈길을 자꾸 피했다.

카메라를 똑 바로 보라고 몇 번 말했더니, 안 찍는다면서 화를 벌컥 냈다.

 

아! 서둘지 말고 더 소통한 후 진정성 있게 접근하라는 계시였다.

촬영에 앞서 지켜야 할 원칙부터 몇 가지 정했다.

첫째, 아는 사람 위주로 찍되, 작업을 충분히 이해시킨 후 협력을 받아내기로 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둘째, 사진 촬영하는 장소에 배경 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는 주변으로 한정해 초상사진을 찍는 장소성에도 의미를 두었다.

셋째, 아무리 가까워도 주제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제외했다. 그리고 그 사람 정신이 온전할 수 없는 술 취한 상태에서 찍지 않는 등 몇 가지 원칙을 세운 것이다.

 

전시는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지만, 사진 숫자에 연연하며 서둘지 않기로 했다.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겼는데, 제대로 모르면 뭐가 보이겠나?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 좋은 초상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공원에서 이경기씨를 우연히 만나 그 분의 하루를 지켜보았다.

장기판을 구경하다 별 재미가 없는지, 따라오라며 '만나샘' 무료급식소로 끌고 갔다.

밥 주는 시간이 세 시간이나 남았지만,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늦게 오면 줄서서 기다리는 것도 귀찮지만, 티브이 봐가며 시간 보내기 좋단다.

 

무료급식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초상사진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이경기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 온지는 20년이 넘었는데, 살아온 세월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젊은 시절에는 ‘전매청’에 근무한 엘리트로 슬하에 삼남매를 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직장을 나와 건축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으나 욕심이 욕심을 불러

탄광업에 진출했다가 망 했다는 등 사기당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속 상해하셨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까지 생겨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다는 신세타령을 했는데, 다 돈이 원수였다.

 

그렇지만, 팔순을 넘긴 연세에 바깥나들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만도 큰 복이다.

쪽방 생활을 오래하면 건강한 사람도 망가지기 십상인데, 타고난 건강이었다.

그런데, 급식할 시간이 가까워 사람들이 몰려오니 황급히 일어섰다.

여태 기다리다 밥 나올 때 왜 가시냐고 물었더니, 오늘 먹어 치워야 할 밥이 집에 있단다.

 

밥도 못 얻어먹고 따라붙어 영감님 사는 집 담벼락에서 정면사진 몇 장 찍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더니, 고맙게도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셨다. 

 

좋은 초상사진이란 찍히는 자의 정신은 물론 삶의 결이 드러나야 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 때 찍는 자와 찍히는 자가 하나가 되는데, 그게 말처럼 싶지 않다.

사는 동안은 초상사진에 최선을 다해 사람사진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사람의 탈을 쓰고 사는 이 비정한 세상에 사람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정부에서 마련한 쪽방촌 공공주택지구 제도개선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동자동 건물주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들어보지도 못한 채 산회되고 말았다.

 

이건 명백한 공무집행방해가 아닌가?

그리고 공공주택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빈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짓밟고, 알 권리를 막은 범죄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지 것 민간 개발하여 같이 살자며 알랑방귀 뀌어가며 회유할 때는 언제고, 이젠 개발안 자체를 뒤집으려고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마치 가난한 사람의 피를 더 빨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흡혈귀 같았다.

 

가난한 자들의 피만 빨아 먹는 게 아니라 마지막 남은 꿈도, 아니 빈민들의 영혼까지 말살하려는 짓거리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24일 갈월동 주민 센터에서 쪽방촌 공공주택 특별법 제도개선 내용을 설명한다는 벽보가 나붙어, 새꿈공원’으로 갔다.

봄기운이 만연한 공원에는 많은 주민들이 몰려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주민들을 불러 모아 설명회장에 가기 전에 주의사항을 알리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열 받아 싸우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설명회 장소가 갈월동사무소에서 모르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는데, 일행 따라 통일로에 있다는 한일빌딩까지 걸어 갈 수밖에 없었다.

 

공공개발을 기어이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는 발걸음도 당당했다.

 

함께한 사람은 김정호이사장을 비롯하여 선동수, 박승민, 윤용주, 김호태백광현정대철최갑일조인형김장수정재은, 전도영, 박종근씨 등

30여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다.

 

목적지인 건물입구에 당도하니, 어떤 남정네가 지켜 선 경찰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고 있었다,

빈민도 아닌 사람이 쪽방촌 빈민 행세를 해가며 경찰출동을 나무라는 꼬락서니를 보니, 아무래도 그 날 일이 심상찮을 것 같았다.

 

활동가들이 준비해 온 현수막을 확인하는 등의 전열을 정비하여 8층 설명회장소로 올라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주들이 동원한 것 같은 사람들이 설명회장 대부분의 좌석을 점거하여 공공개발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성토장이 되어 있었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땅주인 집주인이 이렇게 많은 지도 몰랐지만, 빨간 조끼를 입은 조직적인 동원이 더 웃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듯이, 제발 사람 망신 그만 시키고 본 모습으로 돌아가라.

 

동자동사랑방주민들도 가져 온 현수막을 붙이려 하자 현수막을 못 걸도록 고함지르며 방해했다.

아마 싸워서 난장판을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쪽방촌 빈민들은 다들 뒷자리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피켓을 들고 설명회 시작되기만 기다렸으나,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아야 했다.

아무도 대응하는 사람이 없으니, 쪽방 주민 행세를 하며 나타난 한 사나이가 시비를 걸어 회의장을 싸움판으로 몰아갔다.

 

갖가지 못된 짓은 다하는 걸 보니, 아마 전문 몰이꾼을 끌어들인 것 같았다. 

출동한 경찰의 제지마저 소용 없었고, 오후3시부터 시작하려던 설명회는 4시가 되어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의 설명회는 취소되어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을 위한 주민모임도 세 곳이나 된다.

민간개발을 원하는 지주 모임인 동자동 주민대책위와 공공개발 밖에 방법이 없다는 지주모임 서울역공공주택주민대책위’, 그리고 쪽방 세입자들의 모임인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으로 나뉘어져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역공공주택주민대책위의 주장에 따르면 민간개발을 주장해온 동자동주민대책위측에서 2년 동안 정부의 발목만 잡고 주민 간의 갈등만 증폭시키며 지역개발은 하나도 실현한 것이 없다는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민간개발안을 신청했으나 검토과정에서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다며, 더 이상의 민간개발안은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공공개발을 하되 지주들에게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는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자동주민대책위에서는 국토부에서 주관하는 설명회를 막지 못하면 공공개발이 진행될 것이라고 착각하여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보수정권에서 가진 자 편을 들어준다 해도 세상에는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것이다.

 

동자동은 다른 지역과 다른 특수성으로 공공개발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국토부에서 주관한 관변기관 미팅 역시 공공개발이다. ‘민간개발이다 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동자동주민대책위로 인해 지연되어 온 정책의 정상적 진행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이제 더 이상 동자동공공개발을 미루거나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국토부는 당장 지구지정을 실시하여 빈민들의 걱정부터 덜게 하라.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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