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씨

몸이 아프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순 없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한 달에 두 장씩 주는 무료목욕권을 아주 요긴하게 쓴다.

대개 비 오는 날 몸이 뻐근하고 아플 때 사용하지만, 이번엔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간 것이다.

냉탕 온탕을 드나들며 나부대니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다.

 

서울로육교를 거쳐 광장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십여 년 동안 서울역을 누볐던 노숙인 김지은씨가 아닌가?

서울역 노숙하면 그부터 떠 올릴 만큼, 서울역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가 두세 달 전부터 보이지 않아 늘 궁금했는데,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넥타이 휘날리며 돌아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 손을 잡았더니,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갈 데가 어딧어요. 빵이지...”라며 말을 흐린다.

 

차마 자존심 상할 것 같아 무슨 죄로 갔냐고 물어볼 순 없었지만,

추측컨데, 남의 옷이나 탐내다 문제 생긴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술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싸우지도 않아 폭행에 휘말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자동에 조현성 정신질환자가 유독 많듯 그 역시 그런 병인 것 같은데,

먹고 자는 것 보다 오로지 멋 부리는 데 치중한다.

 

볼 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선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에는 멋 부릴 옷이 없었던지, 런닝 셔츠에 넓적한 넥타이만 메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게 몸이 좋아지고 힘이 실려 있었다.

삼시 세끼 밥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고 잠재우며,

짐승처럼 사육 당하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출감 기념 초상사진 찍자고 했더니, 반색을 한다.

멋 부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서울역광장을 거쳐 동자동으로 건너오다 또 한 사람 반가운 이를 만났다.

송범섭 역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건너 마을로 이사 갔다고 한다.

오래전에 찍은 기념사진이 있어 방에 데려가 사진을 찾아 주었더니,

이왕 주는 김에 초상사진도 한 장 찍어달란다.

 

송범섭씨

이젠 어디 가나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오랜만에 나타난 사람은 죽은 처삼촌 만난 듯 반갑다.

대개 이승을 떠난 사람이 많아지고, 이사 온 빈민만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질 존재가 아니던가?

죽기 전에 복 받을 짓을 해야 저승 가서 푸대접 받지 않을 텐데, 가진 것이 없으니 복 지을 건덕지가 없다.

열심히 사진이라도 보시하면 잘 봐주지 않을까 위안한다.

그러나 몸은 비틀거리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전시 치루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보니, 이제 몸이 다 된 것 같다.

보름동안 치룬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돕느라 혼 줄이 났다.

전시 끝난 지가 제법 지났건만, 아직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틈만 나면 더러 눕고 싶지만, 일을 놔두고 어찌 잘 수만 있겠는가?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 외에는 컴퓨터만 끼고 산다.

 

 서울시에서 준 '이름다운 동행 사업' 무료 식권이 없었다면,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 날 먹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자동 사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게다.

없는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움직여야 살 것 아니겠는가?

고독사를 줄이는데 서울시의 식권사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쪽방 촌에 한정할 게 아니라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이다.

 

동자동에 정해진 식당만 열 곳이 넘지만, 늘 가는 곳만 간다.

처음엔 중국집 등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골라 먹었으나, 지금은 두 집만 다니며 집 밥처럼 찾아 먹는다.

다들 김밥집으로 몰려 그 집만 파격적인 매상을 올려주지만,

한 달 전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에 배탈 나, 온종일 쏟아 부은 적도 있다.

이후부터 그 식당은 발길을 끊었는데, 여름철엔 위생이 최우선이다.

 

지난 7일엔 식당 찾아가다 일전에 초상사진 찍은 이기영씨를 골목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쪽방에 올라가 뽑아 둔 사진을 가져다 주었는데,

옆에 있던 채남규씨가 자기 방에서 한 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다.

채씨는 쪽방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선배 격이지만,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같이 술자리를 했거나 특별한 연이 없으면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이웃이 많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아마 자기도 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나를 방에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경기여인숙’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코 구멍만한 방세가 한 달에 32만원이란다.

방세가 비싼 줄 알지만, 방세 싼 곳 찾기도, 옮기기도 귀찮아 눌러 산다고 했다.

방안에서 초상사진을 찍고 나니, 막걸리를 내놓았다.

먹는 약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해 64세인 채남규씨는 전라도 부안이 고향으로, 반평생을 미장 일하며 살았단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산구청의 자활근로사업에 나가는데, 그것도 반타작이라 한 달에 팔십만원 받는단다.

방세주고 술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한 덕에 백만 원이나 통장에 남았다며 자랑 질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수시로 오줌이 마려워, 방안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았다.

파리 눈물만큼 나오는 오줌을 모아 한꺼번에 버린다는데, 그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활 나가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대 입구에서 담배꽁초 줍는 일 한단다.

제일 무료한 일이 담배꽁초 줍는 일이라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 쳤다.

주울 꽁초만 있다면 시간 보내기는 안성마춤이나, 주울 꽁초가 없어 지루해 미치겠다며 투덜거렸다.

자활이란 게 가난한 사람 돕기 위한 복지사업이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다른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듣는 중에 채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어 댔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일어 서질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한 일이 생긴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좋아 남이 어려운 사정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없는 사람이 인심 좋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김상진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동자동에서 몇 안 되는 먹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김상진씨는 사진을 두차례나 찍었으나, 내키지 않아 다시 찍을 참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고여 실패했고, 두 번째는 나의 실수였다.

짝을 때 좀 많이 찍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두세 컷 찍고 끝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평소의 촬영 습관이라 어쩔 수 없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나 찍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좋은 초상을 찍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았다.

 

 새꿈공원에서 유정희씨를 만났는데, 술이 취해 길바닥에 퍼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사진 달라고 졸랐는데, 술이 취해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정재은씨는 유씨에게 빌려 준 돈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는데,

돈 생기면 술 마시기 바빠 갚을 여유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공원 안쪽에는 자선단체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나왔는데, 이준기씨도 상담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 곳은 갈 일 없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은 '法' 법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친다.

무력으로 밀어 부친 군인들이 판을 친 군부시대에는 저항할 힘이라도 생겼지만,

남의 뒷구멍이나 뒤져 독제하는, 군부보다 더 무서운 검부시대에 살고 있다.

 

공원 한 쪽 구석에는 어떤 낯선 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애잔한 선율이 공원으로 번져 나갔는데,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 / 조문호

 

길가의 이병호씨가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술 취해 휠체어 바퀴에 머리를 집어넣고 잠들었다.

 

세상에! 한때는 중령까지 지낸 장교 출신 꼴이 이게 뭔가?

그는 걸어 다니질 못해 얼마 전 새 휠체어 하나를 얻었는데,

그걸 잃어버릴까, 바퀴 틈에 머리를 끼고 자는 것 같았다.

 

누가 휠체어를 건드리면 다칠 것 같아 깨웠더니,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나를 보더니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기에 일어나서 술 한 잔 하라고 말하니

그때야 휠체어에서 빠져나오려고 꼼지락거렸다.

 

부축해 일으켜 앉혔더니, 술 달라는 듯 마시는 시늉부터 했다.

물이나 우유를 갖다 줄까?”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술부터 찾았다.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팩과 소주 한 병 사 와 우유부터 한 컵 따라주었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토할 것처럼 불편해 했다.

그 대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약처럼 얼굴이 풀렸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이런 노숙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김밥천국' 앞에는 위수범씨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알콜 중독 증세가 있지만, 술을 참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들 넋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새꿈공원' 입구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유정희씨를 만났다.

 

찍어 둔 초상사진을 전해주려고, 오래전부터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몸이 아파 병원 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좋아져 한 달 만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벌금을 못내 감방 살다 왔단다.

술 마시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콜 중독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요즘은 찍어 준 초상사진을 다시 찍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임백수씨를 비롯하여 이상준, 이기영씨를 다시 찍었다.

 

가능하면 본 모습을 부각하려고, 멋 부린 것들은 가급 적 내렸는데,

왜 사나 가오를 죽이냐?’는 임씨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안경이나 모자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는 자존감이었다.

그 이후부터 찍힐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날은 연세가 많아 기력이 없는 김수안씨가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옆방에 살지만, 꼼짝하지 않으시고 하루에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만 나오시는데,

늘 교회에서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기다린다.

아마 천국 가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동자동에 살며 느낀 것은 다들 죽음을 겁내지 않는데 있다.

고통스러운 이승보단 저승이 편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영화를 누리면 누릴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은 더해지고,

목숨에 대한 집착도 강해지는 법이다.

 

죽는 걸 겁내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가진 것 없는 빈자의 특권이다.

 

사진, / 조문호

 

오는 12월, 쪽방 건물 벽면에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전시 작품 앞의 윤용주씨

장애 화가 윤용주씨의 ‘쪽방촌의 봄’이 지난 8월5일 충무로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렸다.

 

동자동의 봄, 64.5X54.0 / 80만원

‘쪽방촌의 봄’은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라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달빛 비친 가을날, 48.0X47,5 / 50만원

윤용주씨가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 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는 30대부터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작가로 살기가 만만찮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위해 건설 하청 업체를 운영했으나, IMF를 맞아 부도를 낸 것이다.

 

동자동의 저녁, 67.5X64.5 / 80만원

어렵게 이어가던 일용직마저 끊기자 술에 빠져 살았다.

노숙과 고시촌, 쪽방 촌을 전전한 체념의 세월은 몸을 보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온갖 질환에 시달렸는데,

8년 전부터 합병증으로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고가도로, 64.5X54.0 / 80만원

윤용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추석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쪽 다리는 남았으나, 점점 썩어 들어가 체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한 사람 눕기도 빠듯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만난 2016년 9월의 윤용주씨 모습

작업공간도 열악하지만, 20여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결과 서서히 빛을 발하며,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쪽방에서 그림 그리는 윤용주씨 모습, 2017년 5월,

그림에 옛 솜씨가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실렸다.

2017년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을 수상하며 재기한 것이다.

 

후암동성당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찾은 동자동 사람들과의 기념촬영. 2017년12월

그해 12월 ‘후암동성당’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다웠다.

 

산수유마을 / 128,5X90.7 / 200만원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은 아름답다 못해 처절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번에 마련한 ‘쪽방촌의 봄’은 세 번째 열린 개인전이다.

지난 5일 열린 개막식에는 아산농장 가는 주말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충무로의 '갤러리 꽃피다'

월요일 오후 무렵 전시장에 들렸는데, 마침 작가가 지키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려 온 산수화나 꽃그림에서 진일보한 삶의 주변풍경도 여러 점 걸렸다.

그림도 좋아졌지만, 군데군데 팔려 나간 빨간딱지가 붙어 더 좋았다.

 

진달래의 꿈 외 / 54,3 X 48.0 / 각 50만원

윤용주씨는 2년 전부터 ‘동자동 사랑방’ 대표를 맡으며, 어려운 노숙인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번 전시도 주민자치단체인 ‘동자동 사랑방’ 기금 마련이 목적이다.

 

구례의 봄 (좌측) 97.5X 67,7 / 100만원

그리고 윤용주씨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사진가 김 원씨 덕이다.

화구를 사주며 재기의 불을 지핀 것도 그였지만, 세 차례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이보다 더한 자선이 어디 있겠는가?

 

동자동에 살다 보면 여기저기 먹거리를 갖다 주거나 빈민을 돕는 자선가들이 더러 있지만,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자선은 흔치 않아, 귀감이 될만하다.

 

월하(왼쪽 첫째) 70,0X63,8 / 80만원

26점이 전시된 ‘쪽방촌의 봄’은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살고 있는 쪽방이 지옥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햇볕에 달구어진 옥상의 열기를 받아, 4층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더운 바람만 돌리는 선풍기 소리마저 짜증스럽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지럽고 속도 울렁거려, 차라리 숨을 거두는 것이 나을 상 싶다.

폭염에 시달리는 현장 노동자를 생각하며 위안해야 했다.

 

엊저녁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쪽방상담소' 에서 얻어 온 '밤 더위 대피소' 이용권을 활용했다.

 모처럼 남대문사우나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활용하는 주민이 적었다.

 

새벽 일찍 나와, 서울역 고가로인 서울로로 들어서니, 별천지에 온 듯하다.

 

갖가지 식물 사이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 생긴 가시연 잎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로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호강도 누렸다.

 

그 아래 서울역광장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나와 있었다.

 

노숙인 틈에 끼어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동원한 신자 모임인 것 같았다.

 

건너편 동자동에는 잠을 설친 주민들이 바람 통하는 곳곳에 앉아 있었는데,

문 열지 않은 '대우정' 앞까지 터 잡고 있었다.

 

다들 지난밤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동행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얻어 먹으려면, 세 시간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정선에서 투병 중이던 소설가 강기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로 페북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제 새벽에 부고를 받아, 그의 흔적을 모아 올리며 추모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무래도 내가 입주할 때부터 함께 지낸 정든 물건이지만, 선풍기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온기창고로 갔더니, 일찍부터 주민들로 붐볐다.

 

한 달에 10만원 상당의 물품을 네 차례에 나누어 가져 갈 수 있다기에 선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물품을 가져갈 수 있어 다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침 온기창고를 찾은 쿠키뉴스김은빈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후, 매장에 나와 있던 유호연소장을 연결해 주었다.

 

유소장은 쪽방 무더위 해소를 위해 복도에 에어콘을 설치한다지만, 쪽방 특성상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개발이 추진되어, 입주할 날을 앞당기는 일 뿐이다.

 

다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열사병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황춘화씨

제목의 노래를 누가 불렀는지 모르지만, 여자란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그놈의 미투 바람에 요물 같아 거리 둔 지 오래되었지만...

 

동자동 쪽방촌에는 여자가 별로 많지 않다.

내가 사는 4층에는 유일하게 할멈하고 같이 사는 정선덕씨가 있다.

할멈이 병원에 입원하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들락거리더니,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도 병원비가 없어 퇴원시켰다고 한다.

 

  늙으면 허리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4층이라 감옥이 따로 없다.

외출하려면 정씨가 업고 가야 되지만, 퇴원하자 마자 머리 염색부터 해 준다.

쪽방 촌에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3층에도 아줌마 한 분이 입주했다.

그런데, 쪽방 복도에 물걸레질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방도 남정네 방 보다 훨씬 정리가 잘 되었더라.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는지 모르겠으나, 얼굴에는 그늘이 짙었다.

 

'새꿈공원'에는 허리가 아파, 지지대를 끌고 다니며 청소하는 할멈도 있다.

황옥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이분이 청소하는 걸 종종 본다.

그걸 보면서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인간들이 많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다.

 

공원 입구에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경학이가 자리 깔고 앉았다.

오랜 노숙생활에서 졸업하여 쪽방에 들어온 지가 한참 되었다.

고시 합격하기보다 어렵다는 수급자가 된 후로는 영 만나기 힘들었는데,

모처럼 노숙하는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구질구질한 꼴은 보았으나, 면도까지 한 말끔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제 장가가도 되겠네라고 했더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

모기만한 소리로 여자가 있어야지요?’ 하는 걸 보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리 기구해 오십이 넘도록 여자 한 번 안아보지 못했을까?

 

  돈은 없어도 되지만 여자는 없으면 안 되는데, 돈이 없으니 여자가 있을 리 없다.

돈과 여자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사진, / 조문호

 

빈민 위에 군림해 쪽방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래동안 고질적인 줄 세우기 관행과 고압적인 불친절에 빈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래서 쪽방상담소 업무를 동사무소에 통합하라는 주장을 해 온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2018년부터 '온누리 복지재단'에 위탁되어 운영되었다.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으나,

그곳에서 하는 일의 하나가 기업체나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카드 발급 받으러 줄 선 모습, 서류작성에 의해 지체되었으나, 마지막 줄세우기 사진이길 바란다.

문제는 지원품을 나누어 줄 시간을 정하면, 물품을 받기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여름에는 무더운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다.

다들 한 두 시간 고생하는 것 보다, 굴욕적인 모욕감을 더 못 견뎌했다.

물건을 사기위해 줄을 서는 것과 물건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차이란 하늘과 땅 사이다.

 

 줄 세우는 관행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시작된 짓이다.

빈민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자랑질의 오래된 관행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도구로 활용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자동에 입주한 7년 전부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른 일이 줄 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빈민들의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가난의 자긍심에 치명적인 독이었다.

 

 수시로 만나는 쪽방상담소 직원들과 얼굴 붉혀가며 개선하라는 글을 올렸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에는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물건을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쪽방상담소 직원과 주민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갑 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와 쪽방타운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이 읽고 장문의 해명과 원망의 답 글을 올린 것이다.

그 일로 유호연 소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대안을 물어왔다.

하나하나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안이 현실화된 것이다.

 

 모든 일은 정해진 쉬운 방법보다, 빈민들 입장에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개선할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뒤부터 점차 줄 세우는 빈도가 낮아지며, 줄을 세워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직원을 늘리거나 간편하게 처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6월28일엔 매달 줄 세워 나누어주던 식권을 카드로 바꾸었다.

 

기존에 사용해 온 식권

식권은 줄 세워 나누어주는 일만 아니라, 매일 아침 상담소 직원들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전 날 사용한 식권을 수거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코드를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해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기존의 방법처럼,

전산화하라는 요구를 식권 나온 지 일 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새로 바뀐 동행식당카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아름다운 동행의 식권사업은 빈민 최고의 복지였다.

안정적인 하루 한 끼의 식사 제공이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이다.

비좁은 쪽방에서 밥해 먹어야 하는 불편도 덜었지만, 귀찮아 밥 굶던 노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외출을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복지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자주 찾는 동행식당 '완도집'

 하루 한 끼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먹는다면, 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것이다.

일 년 간의 시행에 따른 호응도에,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복지사업이 되어버렸다.

 

'완도집'의 차돌된장찌게

서울시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한정할 사업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줄여서라도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으로 부상했다.

빈민의 삶은 물론 요식업이나 농민들 까지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뿐 아니라, 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물량이었다.

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량이라면 언제든지 줄 수 있겠으나,

물량이 부족한 것은 선착순으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안으로 소량의 물품은 관할 푸드 마켓으로 보내, 필요한 사람이 순차적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는데,

후암로 57길에 동행 스토어’를 차려 그곳에서 생수와 식료품을 가져가도록 만들었다.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마다 공원에 줄 세워 생수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젠 본인이 필요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동행 스토어에 들려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동행스토어'에 생수 받으러 온 주민

 잘못된 관행을 이처럼 바꾸어 가려면 관계기관이나 직원들의 협력도 따라야 하지만,

개선하려는 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7월 6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물품 나누기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주는 시간을 정해 두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데로 나누어주니 줄 설 필요가 없었다.

그 오랜 줄 세우기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지난7월 6일 나누어 준,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지원품

 어제는 유호연 소장께 고맙다는 인사하러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갔다.

또 무슨 일을 문제 삼을지 걱정한 직원이 이유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고마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소장

 유호연(59)소장은 청소년 쉼터에서 17년 동안 일하다 작년 10월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부임했다고 한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 질하지 말라는 내 글을 읽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주변에서 도와주거나 여건이 맞아 하나하나 바꿀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지만,

오래된 관행을 바꾸려는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현소장과 김갑록소장을 거치는 동안 아무도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소량으로 들어오는 지원품은 동행스토어로 보내어, 정해둔 상당의 금액만큼

필요한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며,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329일 고장 나 중단된 이불빨래 세탁기를 재가동하기 위해

서울시 지원을 다시 요청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서울시에서 수리할 예산이 없어 여태 방치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빈민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 준 유호연 소장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 조문호

 

지난 6월30일 오후 4시무렵 이광수 교주께서 쪽방촌 성지순례 나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필이면 녹번동 파출부로 나가는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얻으러 인사동도 들려야 하고,

맡겨놓은 초상 사진 찾으러 충무로도 가야 해 오후 1시부터 서둘렀다.

안국역에 도착할 무렵 이광수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일이 빨리 끝나, 서울역 11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큰일 이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기다리라 했으나 마음은 바빴다.

 지하철을 탔으면 빨랐을 텐데, 마음이 급해 택시를 잡아탔으나 차가 밀려 더 늦었다.

 

간신히 후암동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작동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아나 내비는 안 되지만 거는 전화는 잘 되는 핸드폰인데,

전화가 걸리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선 자리에서 담배를 세 대나 피우며 우왕좌왕하는판에 이교주가 나타났다.

시원한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때까지 지하철 입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얼굴이 빨갛게 익었더라.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커피집에 안 가고 방으로 가잖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계단은 마치 저승가는 계단 같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내린 계단을 4층까지 올라간 것이다.

급히 방문을 열어 선풍기를 돌렸으나, 더운 바람이 감겼다.

 

삼층 사는 박씨 아지매는 계단을 기어 오른다.

수행하는 것 처럼, 덥고 비좁은 방에서 몸으로 느끼며 쪽방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요즘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 강의 촬영하러 상경하는데,

출발하기 전 페북 메시지로 빨리 간다는 연락을 했다지만,

컴퓨터에서만 페이스북을 볼 수 있으니, 알 리가 없었다.

두서없는 쪽방촌 이야기를 했으나, 더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분쯤 수행하다 내려왔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기어이 맛있는 고기를 사 주겠다며 고깃집을 찾았는데, 대개의 식당이 쉬는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돌고 돌아 찾아간 집이 ‘서래갈매기’란 고깃집인데, 처음 가 본 식당이었다.

손님 없는 텅 빈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지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것이다.

 

이교주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지만, 단둘이 앉아 마신 술은 처음이었다.

오래전 최민식 사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찍소리 못하는 썩은 사진판에 가슴이 뻥 뚫렸다.

 

시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광수씨나 황정수씨,

그리고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애경씨 같은 분이,

각 분야 열 명만 리드가 되어도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깍듯이 모셨다.

나처럼 한번 물면 안 놓는 성질도 비슷했다.

 

옛날 사진계 이야기가 안주였으나,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기록사진을 아카이빙할 민간단체 설립의 절실함도 말했고,

스승 최민식선생에 대한 기록물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에 관한 논문이 니체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딴 약속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선물로 담배까지 사 주었다.

가게에 담배가 몇 갑 없으면 있는 대로 사지, 기어이 다른 가게를 찾아 한 보루를 샀다.

찾아 준 것만도 황송하지만, 까발겨 두들겨 맞을 논문이 걱정이다.

아무튼, "억수로 고맙습니다.”

 

교주가 떠난 후 발동이 걸려 ‘새꿈공원’으로 담배 자랑하러 가다 이병호씨를 만났다.

그 양반은 담배보다 술이 더 절실하지만, 담배 밖에 줄 수 없었다.

알콜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날 나무란다.

“형님은 사진값도 안 받으면서, 돈은 왜 쓰냐?”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길래, 꺼내 보니 만 원짜리 두 장이 있었다.

“문디 코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니 돈 묵고 내가 편하겠나?”

소주 한병 콜라 한 병 사고 남은 돈을 돌려주니, 씰데 없는 소리란다.

“날 우째 보고 그라요. 내가 준걸 다시 받것소. 사나 가오가 있지”

그래, 요즘 가오 있는 놈이 드물어 보호종으로 정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 보호종 개 목걸이 쟁취를 위해 “투쟁!”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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