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도려내는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 김치 얻으러 쪽방상담소를 찾았다. 

200명 선착순으로 김치와 라면을  준다는 벽보에, 이른 시간부터 비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식료품이 아니라 보약을 준다해도 줄서기는 싫다.

길들이기의 잔재인 쪽방촌 줄 세우기는 얻어먹는 비굴함과 묘멸감을 느끼게 해

나붙은 벽보만 보면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쪽방촌에 들어온 6년동안 주구장창 노래 부른 것이 줄 세우지 말고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줄 세우기는 외면해야 되지만,

빈민의 삶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본능에 앞서, 당해 봐야 서러움을 뼈 속 깊이 느껴 개선을 요구할 것 아닌가? 

벽보는 대부분 나누어주기 하루나 이틀전에 붙어, 잘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때도 많다.

그러나 벽보를 본 이상은 먼저 가서 기다리거나 뒤늦게 기다리며 걸리는 시간까지 체크해 왔다.

 

본인임을 확인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 들었으나,

업무의 편의성보다 주민 입장을 먼저 생각해, 줄 세우는 자체를 없애야한다.

만약 업체에서 보내 온 물품 량이 부족하다면, 전체 주민을 번호순으로 정해 차례대로 지급하라.

순번에서 끊긴 사람이 다음에 첫 번째가 되는 릴레이식으로 말이다.

물론 줄 때마다 내용물이 달라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어쩔 수 없다.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후원을 상품에서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동지는 추운 날은 줄서지 말라지만, 추운 날은 밥도 안 먹나?’며 능청을 떨었다.

정해진 오전10시쯤 갔는데, 이미 긴 줄은 골목골목을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몰아치는 칼바람으로 얼굴을 내밀 수도 없으나, 줄서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먹고 산다는 게 이렇게 비참한 것이던가?

 

봉사원이 건네주는 차 한 잔에 몸을 데워야 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을 떨고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김치와 라면 세 봉지를 받았다.

고생 끝에 받아 그런지, 서러움이 북받혔다.

 

오후에는 공원에 갔더니, 용산구청에서 떨어 진 낙엽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엘림교회’의 성탄절기념 찬양대회가 열렸다.

 

이 추운 날씨에 주민을 불러 모으려면 미끼가 필요한지,

쌓아둔 선물 꾸러미에 끌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소하는 기계소음 때문에 기도는 물론 찬송도 부를 수 없었다.

 

마침 찬양대회에 온 정재은씨가 고함쳤다.

“씨발넘들아! 예수님 태어나시는데, 좀 조용히 해라”

욕설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추워도 청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여태 의족을 끼고도 표 나지 않게 다녔으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가용 구입 기념사진 찍어달라며, 선그라스까지 쓰고 폼을 잡았다.

 

‘추워 보인다며 옷 좀 두껍게 입고 다니라는 준기씨의 염려가 추위를 녹여준다.

 

사진, 글 / 조문호

 

 

해마다 년 말이 다가오면 연례 행사처럼 지원품이 몰려온다.

 

지난 8일과 9일은 동자동 주민들에게 연이은 식료품 나눔이 있었다.

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나누어주었는데,

8일은 200, 9일은 500명 선착순이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200명에게 나누어 주는 8일의 지원품은 두 시간 전부터

쪽방상담소 앞으로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세 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식료품을 나누어 주기로 한 두 시가 지나니 번호표를 주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주려면 좀 일찍 나누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다음 날 500명에게 나누어준 지원품도 전날과 비슷한 식료품인데,

왜 한꺼번에 나눠주지 않고, 이틀에 걸쳐 줄을 세울까?

발 빠른 주민들은 두 번이나 혜택을 받았지만, 벽보를 보지 못한 주민은 한 번도 타지 못해 불공평했다.

긴 시간을 추위에 떨어야 하는 주민들의 고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2018년 '온누리복지재단'에서

서울특별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곳이다.

왜 동사무소에서 할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했을까?

그곳에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기업체에서 보내는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다.

 

 매번 주민들을 줄 세워 굴욕감을 조성해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일을 돕는 봉사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매번 줄 세울 때마다 주민들과 부딪히는 문제는 마스크 착용 여부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오지만, 간혹 잊어버리고 나올 경우도 있다.

한 참 기다렸는데, 다시 줄을 서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는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에 많고 많은 것이 마스크인데,

잊어버리고 나온 주민에게 한 장 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닌가?

기어이 집으로 돌려보내 주민의 불만을 사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갑질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 9일은 새꿈공원에서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었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나갔으나, 기다리는 사람은 좀체 줄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혼잡한 공원에서 소란스런 일이 벌어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주민 한 분이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제재를 받았는데,

어떤 모욕감을 주었는지 주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쓰고 와서 다시 싸우는 걸 보니, 당한 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고성이 오가는 몸 싸움이 길게 이어졌으나, 아무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문제는 주민들이 쪽방상담소 편을 들지 않는 데 있다.

두 사람 모두 큰 소리로 싸우며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까지 불렀으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 경찰이 해결할 사안도 아니었다.

 

나이 많은 주민에게 고개 한 번 숙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으나, 상담소 직원 역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기 싸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150미터쯤 이동하여 지원품을 받을 때까지 싸웠으니, 지루하기 그지없는 몸싸움이었다.

 

 지원품을 찍고 있는 내게도 시비를 걸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쓸려고 그걸 찍느냐?”는 것이다.

고마워서 찍는다며 웃었으나, 어이없는 시비였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듯,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주민을 우습게 보는 갑 질은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

모든 일을 업무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보다 주민의 입장에서 살펴라.

그리고 월급 받는 자가 갑이 아니라, 주민이 갑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라.

 

사진, / 조문호

 

 

 

공공주택사업 등 개발이익 분석 결과 발표
참여연대 “윤석열 정부식 민간주도 개발 추진 안 돼”

27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공공주택사업 및 도심복합개발사업 개발이익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뉴스클레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미간 개발시 토지주 개발 이익은 최대 10배로 확대되는 반면, 공공임대 환수 규모는 8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자동 쪽방촌, 공공·민간 개발방식별 개발이익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동자동 쪽방촌 사업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공공주택지구 사업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8월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 추진을 예고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도심 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정부는 오는 11월까지 도심복합사업 후보지의 토지소유자 동의유을 재조사해 동의율이 30% 미만인 사업장에 대해 후보지에서 철회하겠다는 계획이다.

참여연대는 사실상 공공 주도의 사업을 취소하고 민간 개발사업으로 넘기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박현근 변호사는 “쪽방 주민들과 공공임대주택 수요를 충족하려면 동자동 쪽방촌 개발사업은 전체 공급 주택 수의 50% 이상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기한을 넘겨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토지주들이 민간 개발사업으로 변경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으로 전환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자동 쪽방촌 개발이익 분석 조건. 사진=참여연대

동자동 쪽방촌이 민간 주도로 개발될 경우 땅주인이 개발이익을 독식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분석결과도 발표됐다. 참여연대는 기존 계획대로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공공이 개발할 경우 전체 2410세대 중 공공시행자가 공공임대주택으로 환수하는 1250세대를 제외한 1160세대에서 총 2273억원의 개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중 ▲토지 소유자(200세대)가 284억원(세대당 1억4198만원) ▲최초 수분양자(960세대)가 518억원(1세대당 5397만원) ▲공공사업자는 1250세대의 공공임대주택으로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것 외에 공공분양(960세대) 등을 통해 1471억원의 개발이익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참여연대 측 주장이다.

또 동자동 쪽방촌을 민간주도로 개발할 경우, 공공임대주택 156세대를 제외하면 총 2757억원의 개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임재만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경우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이 2112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며 “이처럼 민간 주도로 개발할 경우 토지등소유자와 건설사가 세대당 최소 11억원에서 최대 14억원에 달하는 개발이익을 독식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의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은 상업지역과 저층 주거지, 공업지역 등에서 투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는 이미 도심고공주택 복합사업 지구로 지정됐거나 후보지를 선정된 지역의 사업 추진을 철회, 민간 도심복합개발 사업으로 유도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공공임대, 공공자가, 공공상가 등의 공급을 위해서는 공공주도의 공공주택사업 또는 도심 공공주택사업을 확대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뉴스클레임 / 김성훈 기자 shkim@newsclaim.co.kr

 

 

10월25일가톨릭사랑 평화의집 봉사자들이 도시락 배달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무리 야박한 세상이지만, 빈민을 향한 자선은 이어지고 있다.

 

동자동 빈민들의 식생활에 도움을 주는 곳은

주민 자치기구인 동자동사랑방식도락도 있으나,

천주교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가톨릭사랑 평화의 집을 비롯한

여러 교회가 협력하여 따뜻한 온정을 베풀고 있다.

 

8년 전부터 문을 연 동자동 가톨릭사랑 평화의집에서는

매주 세 차례씩 도시락을 만들어, 쪽방촌 어르신과 병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작년 한 해 동안만 봉사자 3,200명이 동원되었고, 도시락 57,600개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중단되었으나,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는

8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토요일마다 빵을 나누어 주었다.

 

성민교회의 정기적인 자선을 비롯하여 동성교회’ ‘바나바 돌봄사역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반찬을 만들어 배달해 주고,

한국야구르트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쪽방을 방문한다.

 

똑같이 혜택받을 수 없는 아쉬움은 있으나,

그 중 동성교회반찬 나눔은 빈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이다.

 

10월26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11월 식권을 나누어 주고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업체에서 보내온 식료품이나 서울특별시에서 시행하는 식권을 나누어 주지만,

줄 세우기 같은 고질적인 갑질이 체질화되어, 주고도 욕먹는 실정에 있다.

하루속히 서울역쪽방상담소 업무를 관할 동사무소에 통합하라.

 

11월1일 모리아교회에서 사랑의 짜장면잔치를 열고 있다.

지난 1일은 모리아교회사랑의 짜장면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렸다.

부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짜장면 잔치지만, 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은 음식이다.

금방 솥에서 건져낸 면의 쫄깃함은 어느 중국집보다 맛있어,

서울역 노숙인까지 찾아오는 인기 메뉴가 되었다.

 

즉석에서 면을 뽑아 삶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봉사원의 노력도 대단하다.

공원에 나온 주민뿐 아니라, 나오지 않은 분에게도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수시로 음식을 얻어먹다 보니, 체질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움을 모르는 일부 빈민들은 습관화에 의한 병폐가 아닐까 생각된다.

공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지나친 혜택은 자립화를 해친다.

 

짜장면 한 그릇 얻어 와 방에서 먹었는데, 역시 맛은 변함 없었다.

온정을 베풀어주는 종교단체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시에서 지난 8월부터 시행한 ‘약자와의 동행’ 쪽방주민 무료식사 지원사업이 빈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올 여름 쪽방촌에 설치하기로 했던 에어컨 사업은 탁상공론에 불과했지만, 쪽방 빈민들에게 하루 한 끼,

본인만 먹을 수 있는 팔천원짜리 식권을 나누어 주는 동행식당 사업은 독거노인에게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원순시장 재임 시 만든 쪽방공동세탁소에 이은 두 번째로 환영받는 사업이었다.

년 말까지 한시적인 프로젝트지만, 노인들 기초생계비를 삭감하더라도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할 요긴한 사안이다.

 

다들 하루 한 끼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빈민복지가 어디 있겠는가?

기초생활수급비를 절약해 모은 돈은 줄 사람도 쓸 곳도 없지만,

밥 한 끼 사 먹는 것조차 인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빈민들의 숙명이 아니던가?

 

먹는 것이 귀찮아도 사라질 돈이 아까워 먹게 되므로, 힘없는 독거노인에게는 딱 맞는 복지사업이다.

 

굶는 이 없을 것이고, 요식업도 잘될 것이고, 농민들까지 혜택이 돌아가니, 이게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매 월말이 가까워오면 다음 달에 사용할 식권을 ‘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주는데,

왜 벽보에는 매번 700명 선착순이라 적어놓았을까?.

 

서울시내 5개 쪽방상담소에 등록된 주민에게 주기로 했으면, 처음부터 인원수를 정해놓고 시행했는데,

선착순이란 말은 주민들을 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주민등록상의 인원이 아닌, 실제 거주하는 주민은 700여명으로 추정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게 하지 않고,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왜 줄을 세우지 못해 안달일까?

더 이상 빈민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갑 질의 잔재를 청산하길 바란다.

 

10월분 식권은 지난 9월 27일 오후2시부터 나누어주기로 공지되었으나,

식권을 받지 못하게 될까 염려되었는지, 다들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전부터 모여 들었다.

 

긴 줄은 쪽방상담소 골목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나누어 주는 시간을 앞당기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쪽방상담소 직원들의 못된 버르장머리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무런 불만도 더러 내지 않았다.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기필코 받아야 할 절박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이제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며 다들 좋아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임백수(68세)씨 고향은 장흥이다.

여기저기 떠돌다 동자동에 둥지 튼 지도 수십 년이다.

세상살이에 골병 들어 몸 한 곳 성한 데가 없지만, 가오만은 살아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 멋 부리는 재미로 사는데, 자기 사는 쪽방 방문은 절대 사절이다.

좁은 방에 늘린 구질구질한 것들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식사는 했냐? 고 물었더니, 오세훈 식권으로 해결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서울시에서 지난 8월부터 시행한 ‘약자와의 동행’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하루 한 끼,

본인만 먹을 수 있는 팔천원짜리 식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독거노인으로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년 말까지 한시적인 프로젝트지만, 기초생계비를 삭감해서라도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면 좋겠다.

다들 한 끼만은 먹고 싶은 것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일이 어디있겠는가?

줄 사람도 쓸 곳도 없지만, 수급비 받으면 밥 한 끼 사 먹는 것조차 인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빈민들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먹는 것이 귀찮아도 사라질 돈이 아까워 사 먹게 되어,

독거노인에게 딱 맞는 복지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굶는 사람 없을 것이고, 요식업은 활성화될 것이고, 농산물 소비까지 늘어나니,

이게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어차피 하루 한 끼 인생이지만, 이제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는 임백수씨,

갈 곳도 오라는 곳 없으나, 오늘도 전동차에서 대기 중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이 지난 98새꿈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동자동사랑방협동회에서 추석마다 개최해 온 연례 행사였건만,

코로나 때문에 삼 년 만에 맞이하는 놀이라 다소 설렁했다.

술은 물론 음식 나눔까지 생략되어 흥겨움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잔치 비용은 동자동 주민 백 이십여 명이 한 푼 두 푼 모은 백 오십 여만원이 종잣돈이다.

삼 년 전에 비해 참석한 주민은 줄었으나, 이 얼마만의 반가움이며 즐거움인가?

 

공원 한 쪽에는 먼저 떠난 동자동 주민들의 영정사진을 내건, 추석 차례상도 마련되었다.

고인 앞에 술 한 잔 올리며, 이승보다 저승이 더 편안한지 안부부터 여쭈었다.

 

놀이마당에서는 윷놀이와 다트 놀이도 있었지만, 그중 인기 있는 종목은 노래자랑이었다.

왕년에 시골 콩쿨대회에서 다라이(대야)’탄 가오를 내세워 한번 도전하고 싶었으나,

동자동의 쟁쟁한 카수들 앞에 꼬리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상준씨 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에는 서재만씨가 최고상을 받았고,

2등에는 김영희씨, 3등에는 눈먼 장님 가수 이일수씨가 두루마리 휴지를 상품으로 받았다.

4등에는 동자동 미남자 정재은씨, 5등은 최춘자씨가 각각 받았다.

내가 듣기로는 꼴치로 당선된 최춘자씨의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너무 애절하더라.

 

그리고 윷놀이는 강희숙, 최갑일, 한성자, 오계순, 이경기, 김영희씨가 수상했고,

다트놀이는 최정근, 한종희, 이용구, 정재은, 박상구씨가 각각 수상했다.

 

참여한 주민이 적어 예정보다 이른 오후 1시경에 잔치가 마무리되었지만,

오후 2시부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추석 선물을 준다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선물 나누어 줄 두시가 가까워오니, 잔치 때 없었던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나왔다.

주민들이 어울리는 놀이보다 선물이 더 좋은 모양이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함께하는 사랑 밭' 에서 보내 온 선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무엇이 들었는지? 포장도 그럴 싸 하고, 무게 또한 묵직했다.

부푼 마음으로 챙겨 갔으나,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몸 씻는 비누만 잔뜩 들어 있었다.

 

삼푸만 몇 종류인데다, 린스와 바디 워시, 치약까지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삼푸 종류는 지난번에 받은 선물도 그대로 쌓여 있지 않은가.

쪽방에서 목욕을 할 수 없는 여건이라 필요한 사람 있으면 줘야겠다.

 

동자동 한가위 마당도 좋고 추석 선물 나눔도 좋지만,

 쪽방 주민들은 쫓겨나면 어쩔까?하는 걱정거리 뿐이다.

동자동 공공개발한다며 마음만 잔뜩 들뜨게 만들어 놓고,

국토부에서 일 년이 지나도록 지구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아마 윤정권이 들어서며 민간개발에 무게를 두는 모양인데,

가진 자들이 빈민을 껴안고 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지금은 민간개발을 이루어내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내고 있으나,

결국은 집값 올려 돈 벌려면 빈민들을 쫓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좌불안석이다.

한가위 어울림도 추석 선물도 달갑지 않는 절박한 심정이다.

 

"민간개발 하려면 빈민들 주검 위에 하라!"

 

사진, / 조문호

 

 

한 사람이 간신히 올라 갈 수 있는 건물 입구에 앉아 바람을 쐬고있다. 옆에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건물주의 붉은 깃발이 걸려있다.

동자동 쪽방촌으로 옮겨 온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젠 쪽방살이에 제법 익숙해 졌으나, 한여름만 되면 여전히 곤욕을 치러야 한다.

낯 시간에는 길가에 자리를 펴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돌지만, 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다들 해수욕장 처럼 옷을 벗고 사는데, 우리 층에는 여성이 있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한다.

선풍기로 잠을 청하지만 밤새도록 후덥지근한 바람을 쐬니, 아침이면 얼굴이 퉁퉁 붇는다.

생지옥이 따로 없으나, 스스로 자청한 일이라 누굴 원망하랴?

 

내가 사는 쪽방을 ‘관사 403호’라 부른다.

정부에서 주는 주거비로 사용하니 관사가 아니겠는가?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건물이라 요상한 냄새마저 풍긴다.

나야 몸에 배어 잘 느끼지 못하나, 찾아 온 손님마다 코를 컹컹거린다.

냄새를 잘 맡는 정동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란다.

오래된 목재건물의 퀴퀴한 냄새와는 또 다르다며 거지촌 냄새라고 못 박았다.

 

고장난 컴퓨터 손 봐주러 온 정영신 동지

계절적 이재민을 양산하는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보다 못하고, 교도소 독방보다 못하다.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하고, 겨울에는 차거운 냉골에 떨어 감기를 달고 산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1.5평 남짓한 쪽방이라 한 몸 누우면 꽉 찬다.

그 좁은 곳에 쥐와 바퀴벌레까지 함께 살아야 하니 더 이상 무슨말을 하겠는가?

 

코 구멍만한 방이지만,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라면을 끓이면 주방이 되고,

자판기를 두드리면 작업실이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요술 방이다.

창문이 하나 있으나 옆 건물과 붙어 있어 햇볕은커녕 비둘기 똥만 덕지덕지 붙었다.

 

아홉 명이 사용하는 재래식 공용화장실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면장은 물론 설거지까지 하는 곳이라 아침이면 나라비를 서야한다.

요즘은 샤워까지 자주해, 급한 볼일을 보려면 공원 화장실을 찾는게 상책이다.

 

이것이 쪽방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 주거 실태다.

쪽방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정거장이 아니라, 늪지대로 전락된 지 오래다.

다들 노숙자 신세를 피해 쪽방에 발을 들였으나, 열에 아홉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횡포다.

세입자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방에 평균 23만원의 선 월세를 받아 챙긴다.

이는 서울 평당 아파트 월세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과 피땀 흘려 번 빈민들의 돈이 자본가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돈벌레들은 그 돈을 모아 또 다른 건물을 사들이며 탈세를 밥 먹듯이 한다.

 

쪽방건물은 치밀한 먹이사슬 구조로 얽혀있다.

세입자들은 건물주를 볼 수가 없다. 대개 관리인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한다.

건물주들은 등기부 상의 주소지를 허위 신고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고,

관리인은 쪽방 일을 맡아 주는 대가로 무료로 쪽방 한 칸을 얻어 산다.

 

보통 쪽방 계약은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벽보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해 계약한다.

정식 부동산 계약서도 보증금도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월세를 먼저 내지 못하면 곧 바로 쫓겨난다.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현 건물주들의 정체는 정치인, 중소기업대표, 강남의 고급빌라 소유자, 인터넷 스타강사,

투기로 쪽방건물을 매입한 청년과 고등학생에 이르기 까지 각양각색이다.

투기목적으로 쪽방건물을 구매했거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아 건물주가 되었다.

아예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쪽방건물을 여러 채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이도 있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평균 한 달에 1.750만원의 수익이 생기지만, 모두 현금으로 받아 세금 한 푼 안 낸다.

벽지가 너덜거리고 비가 새어도 보수 작업을 해주지 않으니, 건물 관리도 걱정할 필요 없다.

무허가 숙박업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사실은 쪽방 사람들을 바라 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게으르다는 인식이 만연해,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고 줄여 부르며 ’기생충‘ 취급을 한다,

부자가 아닌 서민들조차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손가락질한다.

열심히 일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앉아 나라 곳간만 축낸다지만,

대개 일할 수 없는 노인이거나 장애인이 많은 쪽방촌 실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진짜 기생충은 따로 있다. 비정한 도시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돈벌레들이다.

피 냄새를 맡은 흡혈귀처럼, 말라비틀어진 자들의 목에 빨대를 꼽고 고혈을 빨아들인다.

그 단맛을 못 잊어, 정부에서 고시한 공공개발을 막으려고 발악이다.

 

'사람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 낳냐'

더구나 공정을 내 세운 정부가 아니던가?

국토교통부는 더 이상 악질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지 말고,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개발 지구지정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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