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 요~. 이 내 사연 한 번 들어보소.

옛날 같으면 고려장 할 이 나이에

소가 갈아야 할 땅 파 엎느라 녹초가 되어부럿소.

손바닥 물집은 터지고 허리는 펴지지도 않는데,

슬피 울어주던 새소리 끊긴지도 오래 되었소.

사는기 죽는 긴지, 죽는기 사는 긴지 나도 모르것소.

이 좋은 봄날, 신세타령 한 번 합니더.

 

옛날 할매들의 한 맺힌 팔자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이 보다 더 좋은 위안의 말이 없어서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정선 만지산에 농사 지으러 갔는데,

이제 체력의 한계가 서서히 느껴졌다.

매년 반복되는 농사지만, 땅 파 뒤 짚는 일이 제일 힘든 일의 하나다.

소도 경운기도 없이 오로지 곡괭이로 파 엎어야 하는 데, 간이 쑥 둘러빠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곡괭이질도 서서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한 번 파고 헉헉대고, 두 번 파고 낑낑대다 결국 한 밭때기는 남겨야 했다.

 

몇 년 전만해도 밭 주변 나뭇가지에 다양한 산새들이 날아들었다.

힘들어 낑낑대면 새들이 조잘대며 다독이거나

뻐꾹뻐꾹 노래도 불러 주었으나 이제 새소리 멈춘 지도 오래다.

온 산을 개간해 농약을 뿌려대니, 새들도 더 이상 살 곳이 아니라 여겼는지 모두 떠나버렸다

 

어둡기 전에 집 주변 청소부터 해야 했다.

겨울내내 집을 비웠으니 집 주변에 몰린 낙엽이나 나뭇가지가 흩어져 할 일이 태산 같다.

오랜만에 지피는 군불이라 온돌 데우려면 불도 많이 지펴야 한다.

태울 것들 부엌에 가득모아 낙엽을 의자삼아 군불을 지피는데,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 약과 흡입기를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숨이 차고 눈물이 나도, 낙엽 타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정겨워 참는다.

 

낙엽과 가지들을 다 태우고 나니 방안에 연기가 들어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바닥 곳곳에 구멍이 생겨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 간 것이다.

방안 가득 찬 연기가 다 빠져 나가려면 오래 걸리지만,

검은 산 바라보며 잡 생각에 빠지는 시간도 싫진 않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연기가 다 빠져나갔는데,

라면 끊여먹고 방 청소 하니 밤 두시가 가까웠지만, 이 얼마만의 안온함이냐?

따끈따끈한 온돌에 아픈 등 지지는 그 노골 노골한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가히 여인네 품속과도 비길 수 있는데, 만약 품속까지 있다면 난리 나는 거지.

 

동창이 밝아 눈을 떠니 오전 아홉시가 되었다.

예전에는 창이 밝아오면 새 소리가 시끄러워 늦잠을 잘 수 없었는데.

깨워 줄 새들이 사라졌으니, 일손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온돌 덕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돌아가신 강민선생의 동오리 집 방문앞에 핀 목련꽃에 반해

심었던 목련의 키가 지붕을 훌쩍 넘었는데,

이제 막 피어나려고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목련 꽃 아래서 술 한 잔 할 수 있겠구나

 

저녁 무렵 서울로 돌아가려면 할 일이 바빴다,

먼저 산소부터 들려 아머니께 인사드렸다.

“엄마! 저승에는 코로나가 없는기요?” 물어도

오랜만에 찾아 삐쳤는지 대답도 없더라,

 

땅에 밑거름 뿌리려면 정선 읍내 퇴비 사러 가야했다.

가는 길목에 핀 ‘동강 할미꽃’에 어찌 문안드리지 않을소냐?

아직은 이른 시기지만 성질 급한 할미 몇몇은 벌써 고개 내밀었더라.

벼랑에 핀 할미 보며 노래 불렀다

 

“동강 할미야

열길 높은 벼랑에

누굴 그려 피었느냐?

칼바람에 오무렸다

햇살에 핀 동강 할미야

죽은 울 엄마 생각나는 동강 할미야.“

 

정선농협에 비료 사러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점심시간이었다.

마음은 바쁜데, 시간만 죽여야 했다.

퇴비 열 포 사 싣고 만지산에 돌아온 것 까지는 좋으나

또 하나의 고난도 일거리가 남았다.

마당에서 밭까지 퇴비를 올리는 일이었다.

 

언덕에 박아 놓은 토끼궁댕이 같은 돌계단 따라

비료 들어 올리는 일은 그의 곡예에 가깝다.

퇴비 무게에 자칫 중심을 잃으면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줄 타듯 중심 잡아 올라가는데,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힘만 좋다면야 등짐으로 올리면 좋으련만,

힘이 딸리니 기생첩 끌어 안 듯 가슴에 안아 오르는데,

평소 여인네를 그렇게 끌어안아 주었다면 말년이 이렇지는 않을 게다.

 

어렵사리 퇴비 다 뿌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

점차 힘들어지는 농사를 그만 두겠다며 다짐에 다짐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반복한다.

작년에는 땅에 휴식년 준다는 결심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농꾼들의 지론을 핑게 삼지만,

그 일마저 그만둔다면 이 산골에 일 년에 몇 번이나 올 수 있으며,

산 위에 누운 울 엄마는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리고 정동지에게 무공해 야채를 전해 주는 그 즐거움은 어쩌랴?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약으로 긴 세월 애용했던 대마다.

농작물이야 농사 짓지 않아도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나

마약 올가미 씌워 놓은 대마는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밭 언저리에 몇 포기 심어 나물도 무쳐먹고, 강정도 만들어 먹고 술도 담아 버티는 것이다.

몇 년이나 더 버틸지 모르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안은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강변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른한 밤길 운전에 졸음까지 몰렸으나, 졸음 쫒는 특효약을 잊어버렸네.

깜빡대는 졸음에 놀라 몸을 꼬집기도 빰을 때리기도 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차창을 모두 열어 재치고 미친 놈처럼 노래 불렀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

 

사진, 글 / 조문호

 




제13회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정선읍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열렸다.

오전10시 30분부터 진행된 개막식은 정선아리랑시장 문화장터를 움직이는 MC 정춘경씨 사회로 시작되었다.





동강할미꽃축제 최완순 추진위원장의 인사와 정태규 정선군 부군수를 비롯한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지역인사들이 참여한 동강할미꽃심기도 진행되었는데, '그림바위' 김형구 관장 내외도 자리했다.

관광객이 없는 축제라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 한 분이 정선군에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을 잇는 셔털버스를 운영해 달라는 민원과

축제장을 찾는 관광객이 먹을 수 있는 식수를 제공하라고 했으나, 바뀌지 않았다.

올해도 축제장 차림표에 작은 생수 한 병에 천원, 자판기 커피 한 잔에 천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정말 한심했다. 작은 욕심이 큰 것을 잃는 걸 왜 모를까?





개막식이 끝날 무렵 최승준 정선군수와 귤암리 최연규씨가 나타났다.

손님을 맞은 최연규씨가 차려낸 음식을 보고 불평을 쏟아냈다.

손님 대접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냐며, 잔치 집에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연규씨만이 아니라 귤암리 어른 대부분이 불만이 많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어 입 다물고 있을 뿐이다.

‘인심좋은 귤암리’란 말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나 역시, 문제를 떠 벌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외지인이 없는 지역잔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동네잔치라도 잘 하도록 돕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동강할미꽃 축제에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홍보는 일체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귤암리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함께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는 삼월 하순경의 귤암리 여행은 적극 추천한다.





정선 ‘동강할미꽃’은 동강 유역의 석회질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종이다.

다른 할미꽃과는 달리 절벽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며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다.

하얀 솜털이 아름다운 순수한 자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강 할미꽃의 신비와 자연의 경이로움만으로도 행복한 봄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강할미꽃이 필 시기만 되면 전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몰려든다.

처음에는 꽃에 물을 뿌리거나, 꽃을 감싸는 마른 잎을 제거하는 등, 꽃이 견디지 못하도록 위해를 가했다.

이젠 그런 일이 사라졌는데도 일부 방문자가 올린 글을 보니, 아직까지 그런일이 벌어지는 것 처럼 적어놓았다.




 


그래서 동강할미꽃 훼손에 대한 지난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려 한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 사진가 김모씨 사진이 불씨가 되었다.

물을 뿌려 이슬처럼 보이게 하거나 마른 잎을 뜯어내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인공조명까지 비춘 사진이 있었다.

아마추어 사진인들을 지도하고, 들꽃 사진을 심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런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이 좋은 사진으로 생각하니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답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사진 전문가 김모씨의 사진,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결국 야생화사진 전문가라는 사람조차 생태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말이다.

동강할미꽃은 햇볕이 들어 따뜻해져야 꽃 봉우리를 피우니 이슬이 맺힐 수가 없고, 사진처럼 마른 풀이 없을 수가 없다.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사진 전문가 김모씨의 사진, 옆에서 인공조명을 비춘 흔적이 역역하다.



생태사진이란 꽃의 습성이나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특히 동강할미꽃은 꽃송이만 크로즈업 하는 것보다 높은 벼랑에 피는 주변 환경이 나타나야 가치가 있다.

 


 88년 4월 최초로 동강할미꽃을 찍은 이석필사진, 주변환경이 잘 나타났다



그래서 작심하고 전시된 사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칼럼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수난 당하는 동강할미꽃‘이란 제목으로 내막을 샅샅이 까발린 것이다.

당사자인 김모씨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밖에 없지만, 공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야생화를 찍는 엄청난 수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블로그에 접속하는 등 파문을 일으켰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부터 동강할미꽃의 수난이 수그러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생태사진에는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사진이 좋지 않은 사진이란 것을 아마추어 사진인 스스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야생화를 찍어 달력을 만들어 팔거나 사진원고를 팔아서 사는 야생화 사진가 김모씨의 사진계 위상은 물론

상업행위에 따른 수익에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그 일로 명예혜손으로 나를 고소한 지가 일 년이나 되었으나,  법원에서 아직까지 감감소식이다.



13회 동강할미꽃 축제장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누가 그린 그림인지 작가를 밝히지 않았다.



동강할미꽃이 슬픈 꽃인지, 수난이 너무 많다.


“할미야 할미야 벼랑에 핀 할미야

죽은 울 엄마 그립게 하는 동강가에 할미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7일은 고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던 날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엉뚱한 일로 무산되고 말았다.

용산경찰서사이버수사대에 출두하여 조사받는 날과 겹쳐진 것이다.


 

3년 전 수난 당하는 동강할미꽃, 최초 발견한 사진가는 이석필씨다.”란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뒤늦게 야생화 사진작가 김정명씨가 명예혜손으로 고소장을 접수시킨 것이다.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가 숱한 시일이 지나도록 감감소식이었는데,

뒤늦게 주소지인 용산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찍어 발표한 동강할미꽃 사진이 야생화의 생태를 헤치는 잘못된 방법이라는 점과

알려 진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을 바로잡기 위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실과 달리 동강할미꽃 최초촬영자로 나서며 정선군의 명예군민증까지 받지 않았던가?

동강할미꽃 사진은 그가 촬영하기 10년 전 태백의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먼저 찍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1999년 동강환경사진집에 실린 이석필씨의 동강할미꽃 사진만 하더라도 김정명씨가 만든 야생화 달력보다 앞서고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찍었냐보다 동강할미꽃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거나 꽃에 붙어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는 등

생태환경을 파괴하여 내 놓은 그의 사진에 있는 것이다.

야생화사진을 심사할 위치에 있는 중견사진가의 꽃 사진이 그러할진데,

어찌 사진 배우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그의 사진을 따르지 않겠는가?

그 글을 올린 것도 따라하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만행을 근절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야생화사진이란 생태를 파괴하는 것 보다,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지,

김정명씨 개인에 대한 감정이 있거나 명예를 혜손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변명으로 일관된 고소장을 읽어보며,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챙겨간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조사시간이 세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며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곧 바로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모처럼 인사동에서 술 한잔하자는 사발통문을 받은 것이다. 

반가운 인사동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야 마다할 수 없지만,

노회찬의원의 영결식이 있는 27일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동안 술자리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술을 사양해 왔고,

그제 밤에는 어머니 제사를 지내면서도 음복 한 잔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조해인, 장경호, 공윤희, 전활철, 박혜영, 김상현씨가 먼저 와 있었고,

뒤늦게는 유진오, 정영신, 이인섭, 이 현, 황예숙, 박상하씨도 나타났다.



모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반감으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들을 했으나,

잘 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데 어찌 친분을 따질 수 있겠는가



오는 8월25일 아들 햇님이 장가 갈 걱정에서 부터, 속도위반으로 손자를 얻어 일타 쌍피를 쳤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하필이면 사돈 될 두 내외가 16년 전 영월 천포문학회에서 거시기 퍼포먼서로 난리 친, 그 집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조준영교수는 한 수 더 떠 내가 찍은 그 때 사진을 핸드폰에서 보여 주었다.



조준영교수는 쪽 팔린다며, 부인의 투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

화가 이청운을 검색해보니, 죄다 조준영씨와 술 마시는 사진만 나오더라는다.

"이젠 같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너무 탓하지 마시라요."



사실 사진판이나 문화예술계는 물론 즐겨 찍는 인사동이나 동자동 사람들 대개가

가깝거나 잘 아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부터라도 정신차려야 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며 더 이상 쪽팔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중엔 왕따가 되어 외로워지더라도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노회찬의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피할 수 없는 관심이었다.

문대통령이 문상은 가지 않으면서 장례기간 중에 광화문 호프집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맥주 쇼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정치 자체가 쇼를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정치적 동지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기야 박원순 시장까지 옥탑방에서 쇼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쇼에 넘어가는 순진함에 있다는 것이다.


 

장경호씨는 인사동 모임을 묵사모로 하자고도 했다.

민초연대로 하면 참여할 사람이 많겠지만, ‘묵사모가 더 좋다는 것이다.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默思의 뜻은 좋으나 단번에 묵사발이란 말부터 떠올라 좀 그랬다.

하기야 모임의 진정성이 더 중요하지 그까짓 이름이야 무슨 소용이랴!

단지, 술 마시고 노는 모임에서 인사동을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모임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말았다.

고인도 그 시간엔 편히 영면에 들었겠지만, 숱한 시름을 술잔에 풀어놓고 말았다.


 

부디 이 땅에 진보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늘나라에서나마 잘 지켜주소서!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열길 벼랑에 처량하게 핀 동강할미꽃이 슬프다.

2018년 04월 06일 (금) 01:33:23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정선의 동강할미꽃이 피어나야 강원도의 봄은 시작된다.

정선읍 귤암리의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마련한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가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동강생태체험전시관’일원에서 열려, 봄나들이 한 상춘객들을 맞이했다.



▲ 귤암리 벼랑에 피어있는 동강할미꽃 Ⓒ정영신


‘동강할미꽃’은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애틋한 연인의 연모가 조양강 뼝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강할멈과 할아범에 대한 그리움이 동강할미꽃으로 피어난다는 소문도 있으나 아무런 근거는 없다.

꽃이 알려진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전설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해, 자칫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 ‘동강할미꽃보존회’최완순 회장 Ⓒ정영신


동강물줄기를 굽어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은 머리카락 같은 미세한 뿌리가 바위틈에 들어가 자생하는 꽃으로,

마치 강원도 산골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애착이 간다.

산소에 피어나는 고개 숙인 할미꽃과는 다르게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내빈축사하는 신주호 정선부군수 Ⓒ정영신


동강할미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88년 야생화 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촬영할 당시에는 강을 건널 땐 다리가 없어 헤엄을 쳐서 건너갔다고 했다.

이석필씨는 그 당시 들꽃이 살아가는 환경 차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후에 사진가 조문호씨가 이끌어온 '환경사진가회' 일원으로 활동하며

최초에 찍은 할미꽃 사진을 환경사진집에 발표한 것이다.

그 이후 1997년 김정명씨가 동강할미꽃을 찍은 꽃 달력 사진을 본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박사가

2000년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달아 세계 유일종으로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 1988년 4월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찍은 동강할미꽃

(1999년 발행된 '동강' 환경사진집에서 스크랩)



한국특산종인 보랏빛 나는 ‘동강할미꽃’은 정선, 영월, 삼척, 태백 등, 석회암지대에서만 서식하는데,

그 중 굽이굽이 절벽으로 이어진 정선 귤암리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그 이후 귤암리 주민들이 협력하여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만들어지며, 2008년 정선군 군화로 지정된 것이다.

또한 동강할미꽃은 2,000년 동강댐 건설 백지화 결정에도 크게 기여한 식물이다.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 최초의 신종으로 추정되는 7종의 동식물과 20여종의 멸종위기동식물 보호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동강 댐 설치를 막은 것이다.





▲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 Ⓒ정영신


구구한 세월동안 석회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 온 이름 없는 야생화가 세상에 알려지며,

사진인들이 몰려드는 등 오히려 수난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또한 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야생화를 사진에 담으려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사진인 들이 많이 생겨난다.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까지 함께 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꽃만 부각시키기 위해 꽃을 보호하는 주변의 마른 풀을 다 뜯어내고,

심지어 꽃잎에 물을 뿌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제12회 동강할미꽃 축제'에 참석한 내빈들모습 Ⓒ정영신


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의 모임인 ‘동강할미꽃보존회’에서 생태계를 보호하려 공을 들이고 있다.

야생화가 있는 모습 그대로 자랄 수 있도록 둬야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축제로 인해 자연생태환경이 몸살을 앓아 온 것도 사실이다.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은 인간의 숨소리와 입김마저도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 귤암리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 Ⓒ정영신


강원도 문화관광해설사인 서덕웅씨는 “사진을 예쁘게 찍으려고 잎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손을 타기 때문에 수정되지 않는다.

분별한 사람들의 행동이 자연을 죽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덕웅씨는 지역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동강할미꽃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 동강할미꽃지킴이 서덕웅님 Ⓒ정영신


이날 열린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 개막식은 정선 군립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동강할미꽃보존회’ 최완순 회장의 개막선언과 신주호 정선부군수 등 내빈의 축사가 이어진 후,

다양한 공연과 전통놀이 마당, 동강할미꽃 심기 등의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 동강할미꽃 심기 Ⓒ정영신


축제가 펼쳐진 생태공원에는 수필가 우애자씨가 준비한 한복체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복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느 지역을 가보아도 똑같은 행사를 진행해 지역적인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모르고, 타지의 가수를 초청해 흥을 즐기는데,

차라리 정선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정선아리랑을 관광객과 함께 배우는 시간이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 떡매치기 하는 관광객 Ⓒ정영신


이번 축제엔 필자의 ‘장터 사람들’과 조문호씨의 ‘산골 사람들’ 사진전이 열려 멀리서 지인들이 찾아왔는데 다들 불편하고 불쾌감을 호소했다.

축제장으로 올 수 있는 교통편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손님을 맞을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야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대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산골사람들'사진전시에서 만난 사진의주인공 이선녀씨와 사진가조문호 Ⓒ정영신



요즘은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축제의 전성기다.

그러나 지역적인 특색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로 관광객들을 식상하게 한다.

지역축제는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소중한 체험을 통해 지역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귤암리 벼랑에 동강할미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올해로 열 두 번째 맞는 ‘정선동강할미꽃축제’가
오는 3월30일(금)부터 4월1일(일)까지
정선읍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열립니다.





동강할미꽃은 벚꽃과 개나리보다 동강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입니다.
동강 변의 뼝대를 수놓을 무렵이 되면, 해마다 동강할미꽃축제가 열립니다.
수줍게 고개 내민 꽃도 꽃이지만,
만지산 살팔봉의 멋진 봄 풍경 만나러 나들이 한 번 하세요.





축제에는 백일장, 동강할미꽃 심기, 떡메치기, 공연 등의 다양한 행사와 함께
이곳 귤암리에 사는 정영신과 조문호의 ‘장터와 산골 사람들’ 사진전도 열립니다.

여러 가지 행사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지만,
동강의 따스한 햇살 맞으며, 농주 한 잔 하는 맛이 죽입니다.
시간만 맞으면 저희들이 사는 지척의 윗만지골도 안내할 수 있습니다.
짬나면 놀러오세요.

정영신, 조문호





'동강 할미꽃'

할미야 할미야
벼랑에 핀 할미야

열길 높은 벼랑에
누굴 그려 피었느냐

칼바람에 오무렸다
햇살에 얼굴 내미는
동강가에 할미야

죽은 울 엄마 그립게 하는
동강가에 할미야.



사진은 최초로 찍은 동강할미꽃 사진입니다.
태백의 야생화 사진가 이석필씨가 1988년 4월에 찍었습니다.
1999년 12월에 ‘한국환경사진가회’에서 발행한
‘아우라지 물길 따라 2백리 ’동강‘ 환경사진집에 게재된 사진을 스크랩했습니다.



이맘 때가 되면 전국에서 사진인들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조문호 사진가

2016.04.26 - 서울문화투데이-


안산 대부도 절벽의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새끼를 찍겠다고 둥지 주변의 나무를 모조리 잘라내 서식지를 엉망으로 만들더니,

또 어떤 이들은 동강할미꽃을 찍겠다고 벼랑에 기어올라 동강할미꽃을 망가트린다는 연이은 소식들로 온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동강할미꽃 찾아, 서식지인 정선 귤암리로 몰려든다. 아름다운 꽃을 찍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사진인의 잘못된 욕심들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의 묵은 잎과 줄기를 없애거나, 이슬처럼 보이려 물까지 뿌려댄다.

동강할미꽃은 해가 떠올라 날씨가 따뜻해야 꽃이 피기 때문에, 핀 꽃에는 이슬이 맺힐 수 가 없다.

그리고 화면을 단순화하려 꽃을 감싼 마른풀을 뜯어내고 있는데, 생태사진은 꽃도 꽃이지만,

꽃의 습성이나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왜 모를까?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의식은 물론, 야생화사진의 가치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더 안타깝다


매년 이 맘 때면 화엄사 매화나무를 찍으려 하루500여명이 몰려드는가 하면, 구례 산수유 같이 꽃피는 마을들이 사진인 들로 북적인다.

꽃구경이라면 모르겠으나, 똑 같은 사진을 찍어 다들 어디에 쓸까? 때로는 모델까지 동원해 영화촬영 하듯 몰려다니는 걸 보면 정말 가관이다.


이 모든 원인은 단 한가지다. ‘사진작가협회’에 입회하기 위한 공모전 출품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단체에 들어가야 사진작가가 되는 줄 착각들 한다.


하기야 회원증에다 ‘사진작가증’이라 적어 놓았으니, 순진한 초보들이 속을 수밖에 없다.

이제 전국회원 만 명에 가까운 공룡집단으로 성장해, 그 먹이사슬에 의해 초보 사진인 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을 제대로 하는 사진가들이 그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단체의 구태에 환멸을 느낀 사진학과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탈퇴하므로 명실상부한 아마추어 단체로 남게 된 것이다.

회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사진교육은 뒷전이고, 숱한 공모전 비리나 만들어내며, 회원증 장사와 감투 늘리기에 급급하더니,

이제 그 한계점에 달한 것 같다.

문제는 그 단체를 이끌어가는 주체들이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라는 점이다. 뭘 모르니 후진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해 야생화사진의 대가라는 김정명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발표한 동강할미꽃은 마른풀이 제거되거나,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심지어는 인공조명까지 사용해,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았다. 엉터리 사진들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표하니,

너도 나도 그 짓을 따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에 사는 장국현씨는 제 작년 울진에서, 대왕송을 찍기 위해 주변의 금강송과 활엽수를 스무 다섯 그루나 베 낸 일도 있었다.

여론의 질책에도 자성은커녕, ‘예술의전당’에서 안 된다는 전시를 소송까지 걸어 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슨 대단한 예술을 하는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이 되지 않은 몰염치들이다. 내가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월호의 원흉 유병헌도 사진한다며 국제적 망신을 시키지 않았더냐?


1983년에는 청산가리를 먹여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찍었던 희대의 살인마 이동식도 아마추어 사진인이었다.

취미 사진의 순수함이 이런 몰지각한 이들로 이름이 더럽혀 진 것이다.

사진이 돈 있는 자나 할 일 없는 건달들의 자기 과시욕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제대로 공부했거나, 전업으로 메 달리는 사진가들은 대부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평생을 사회기록에 매달려 온 나 역시, 남은 건 신용불량자란 딱지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범법자이긴 마찬가지니 차라리 사진을 그만 두고 싶다.


더 이상 열심히 작업하는 선의의 사진가들을 욕되게 하지마라.










정선 만지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마당의 목련은 처녀가슴처럼 부풀었고,
할미꽃도 수줍은 듯, 고개 내민다.

자연은 온통 봄소식 전하느라 바쁘건만,
만지산 사람들은 싸우느라 정신없다.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기 싸움질이다.
마치 정치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툇마루의 낡은 가림 막은 깃발처럼 펄럭이고,
시멘옹벽이 무너져 주춧돌을 협박한다.

함께 살자던, 자연마저 나를 버리려는가?
낯 술에 취해, 울 엄마 무덤을 찾았다.

미주알 고주알 하소연하다, 잠들어버렸다.
꿈에라도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사진,글/ 조문호












조양강 산내울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강가에는 버들강아지의 하얀 솜털이 하늘거린다.
산내울에 따뜻한 봄기운이 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있다.
뼝대를 수놓는 동강할미꽃 찾아 방방곡곡에서 사진인 들이 몰려온다.
꽃이 피면 나비가 날아들 듯 카메라가 몰려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야생화 찍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다 어디다 쓸까?

아니면 사돈 따라 장에 가듯, 남이 찍으니까 따라 찍는 것일까?

예쁜 꽃을 보면 누구나 찍고 싶은 마음이 일기마련이다.

그런데 꽃이 좋으면 꽃만 찍지, 왜 못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위험한 벼랑에 무리하게 기어올라, 꽃 주변에 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거나,

심지어는 스프레이로 꽃망울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진인 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들의 추태가 전체 사진인 들을 욕 먹이는 것이다.

야생화 자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공모전이나 노리는 초보 짓이 틀림없을게다.


야생화를 찍으려면,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찍어야 한다.

꽃도 좋지만,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을 함께 담아야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인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사진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로

사진한다는 말 꺼내기가 민망스럽다. 


올 해로 열 번째를 맞는 동강할미꽃축제는
오는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병방산 '동강생태체험학습장'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옷바우 제례를 시작으로 나만의 동강할미꽃 심기, 학생백일장, 떡메치기,
동강할미꽃 분재 및 사진전시, 마을풍경 그림전시, 동강할미꽃 10년사 자료 전시,

한반도지형 및 수리봉 포토존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우라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떡메 한 번 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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