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연영철씨 병문안을 갔다.
쪽방에 살던 그가 지난 달 3층 계단에서 넘어져 목뼈가 부러지며 꼼짝을 못하게 된 것이다.

몸은 마비되었으나, 의식은 살아있어 넘어진 경위를 묻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시인 강민선생으로 부터 ‘4,3 광화문 추념식’에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깜박 잊어버린 일이라, 서둘러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종로1가에서 내려 걷다 보니, 광화문 입구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마치 조형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그들은 '4.3, 대한민국을 외치다' 퍼포먼스를 펼치는 403명의 일원이었다.





‘4.3범국민위’의 기획과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 퍼포먼스는 영화감독 양윤호, 연극 연출가 류성,

한예종 무용원 교수 김용걸씨 등 세 사람이 공동으로 연출한 것으로 배우와 일반인들이 어울린 대규모 행위예술이였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 눈빛과 소리를 통해 제주 4.3의 존재를 드러내고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과 교류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는데,

마치 4,3학살의 원혼들이 깨어 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행위 예술이지만 대부분의 출연자 눈가에는 눈물 자욱이 선명했다.

그 억울한 원혼들을 생각하는데,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날 퍼포먼스는 광화문 일대에 흩어져 각각 퍼포먼스를 펼치다 광장으로 모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짓으로만 연기하던 출연자들은 울분을 토하는 듯 울음소리를 내기도 해 70년 전을 회상하게 했다.






광장으로 모인 출연자들은 하나둘씩 앞으로 나가 겉옷을 벗으며 ‘통일 정부수립’, ‘완전한 자주독립’ 등이 적힌

깃발을 들고 풍물패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여러 대형으로 움직였다.

세종대왕상 뒤로 다시 모여 희생자들을 기리는 분향소에서 헌화하며 광화문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실상 제주4.3은 미국 주도의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항쟁이었지만,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다.

내가 태어난 해 발단되어 초등학교 들어 갈 무렵 끝났지만, 은폐하여 잘 몰랐던 참변이기도 한데,

뒤늦게 듣게 된 ‘빨갱이의 반란’이란 말에 주눅 들어 쉬쉬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학살의 주범은 바로 미국으로, 이제라도 감추어지고 왜곡된 현실이 제 자리를 찾아 조금의 위안은 되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어, 부디 원혼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광화문광장의 4,3 행위예술 현장에서 연락주신 강민 시인을 비롯하여 무용가 장순향 교수,

사진가 김봉규, 정지현, 윤성광씨 등 반가운 분들도 여럿 만났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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