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산 물밑이라도 해당화는 핍니다 135X162cm,oil on canvas

정선 화암면 북동리에서 ‘G갤러리를 운영한

김형구씨가 인사동 ‘31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꽃, 22X40cm,oil on canvas

전시하는 첫날 전시장을 찾아갔는데, 한참을 헤매었다.

인사동을 훤히 아는 내가 헤매니, 같이 가던 정영신씨가 한 말 하네.

‘31갤러리경인미술관방향인 인사동10길에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돌고 돌아 찾긴 찾았는데, 인사동 큰길가 동일빌딩으로 옮겼더라.

 

검은 꽃, 18,5X30cm,oil on wood

늦을세라 허겁지겁 이 층으로 올라갔더니, 김형구씨가 반갑게 맞았다.

이미 여러 손님이 오셔서 작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김형구씨 작품은 오래전부터 보아왔지만, 그만의 독창성이 있다.

자연을 그리지만 자연 속에 인간의 삶이 배어있는 것이다.

 

꽃, 19,8X30cm,oil on wood

이번에 전시된 그림들은 함백의 탄광촌 이야기였다.

작업실을 정선에서 함백 신동으로 옮긴 지가 한참 되었단다.

주제가 자연에서 꽃 그림으로 바뀌었는데, 검붉은 꽃은 광부에게 바치는 꽃이었다.

묵직하고 분방한 손길의 질감과 강렬한 색조가 광부의 힘과 한으로 전달되었다

 

꽃, 27,7X36cm,oil on wood

도발적이고 즉흥적인 붓질, 이질적인 분할과 통합에 의한 시간의 재해석 등

그만의 심리적 표출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검은 꽃, 56X81cm,oil on wood

그리고 물감을 덩어리째 화폭에 발라 부조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나이프 페인팅의 묘미란 입체적 형상성에 있지 않은가?

마띠에르기법에 의한 회화 특유의 물성을 느낄 수 있다.

 

기억속으로.., 117X91cm,oil on canvas

숱한 꽃 그림을 보아왔으나 이렇게 슬픈 꽃은 보지 못했다.

입체적으로 떨어지는 꽃잎이 그토록 처연할 수 없었다.

 

대작 좋아하는 세상에 오밀조밀한 소품이 많은 것도 또 하나의 특색이다.

 

기억속으로.., 65X53cm,oil on canvas

대작보다 아담한 소품이 사는데도 부담이 덜하지 않겠는가?

인사동에 함백 꽃구경 가자. 광부에게 바치는 슬픈 꽃을...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예전에는..., 30,4X40cm,oil on wood
검은장화, 30X40cm,oil on wood
함백의기억, 45,5X45,5cm,oil on canvas




제13회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정선읍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열렸다.

오전10시 30분부터 진행된 개막식은 정선아리랑시장 문화장터를 움직이는 MC 정춘경씨 사회로 시작되었다.





동강할미꽃축제 최완순 추진위원장의 인사와 정태규 정선군 부군수를 비롯한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지역인사들이 참여한 동강할미꽃심기도 진행되었는데, '그림바위' 김형구 관장 내외도 자리했다.

관광객이 없는 축제라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 한 분이 정선군에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을 잇는 셔털버스를 운영해 달라는 민원과

축제장을 찾는 관광객이 먹을 수 있는 식수를 제공하라고 했으나, 바뀌지 않았다.

올해도 축제장 차림표에 작은 생수 한 병에 천원, 자판기 커피 한 잔에 천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정말 한심했다. 작은 욕심이 큰 것을 잃는 걸 왜 모를까?





개막식이 끝날 무렵 최승준 정선군수와 귤암리 최연규씨가 나타났다.

손님을 맞은 최연규씨가 차려낸 음식을 보고 불평을 쏟아냈다.

손님 대접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냐며, 잔치 집에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연규씨만이 아니라 귤암리 어른 대부분이 불만이 많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어 입 다물고 있을 뿐이다.

‘인심좋은 귤암리’란 말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나 역시, 문제를 떠 벌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외지인이 없는 지역잔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동네잔치라도 잘 하도록 돕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동강할미꽃 축제에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홍보는 일체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귤암리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함께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는 삼월 하순경의 귤암리 여행은 적극 추천한다.





정선 ‘동강할미꽃’은 동강 유역의 석회질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종이다.

다른 할미꽃과는 달리 절벽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며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다.

하얀 솜털이 아름다운 순수한 자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강 할미꽃의 신비와 자연의 경이로움만으로도 행복한 봄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강할미꽃이 필 시기만 되면 전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몰려든다.

처음에는 꽃에 물을 뿌리거나, 꽃을 감싸는 마른 잎을 제거하는 등, 꽃이 견디지 못하도록 위해를 가했다.

이젠 그런 일이 사라졌는데도 일부 방문자가 올린 글을 보니, 아직까지 그런일이 벌어지는 것 처럼 적어놓았다.




 


그래서 동강할미꽃 훼손에 대한 지난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려 한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 사진가 김모씨 사진이 불씨가 되었다.

물을 뿌려 이슬처럼 보이게 하거나 마른 잎을 뜯어내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인공조명까지 비춘 사진이 있었다.

아마추어 사진인들을 지도하고, 들꽃 사진을 심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런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이 좋은 사진으로 생각하니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답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사진 전문가 김모씨의 사진,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결국 야생화사진 전문가라는 사람조차 생태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말이다.

동강할미꽃은 햇볕이 들어 따뜻해져야 꽃 봉우리를 피우니 이슬이 맺힐 수가 없고, 사진처럼 마른 풀이 없을 수가 없다.



2015년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 전시된 야생화사진 전문가 김모씨의 사진, 옆에서 인공조명을 비춘 흔적이 역역하다.



생태사진이란 꽃의 습성이나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특히 동강할미꽃은 꽃송이만 크로즈업 하는 것보다 높은 벼랑에 피는 주변 환경이 나타나야 가치가 있다.

 


 88년 4월 최초로 동강할미꽃을 찍은 이석필사진, 주변환경이 잘 나타났다



그래서 작심하고 전시된 사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칼럼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수난 당하는 동강할미꽃‘이란 제목으로 내막을 샅샅이 까발린 것이다.

당사자인 김모씨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밖에 없지만, 공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야생화를 찍는 엄청난 수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블로그에 접속하는 등 파문을 일으켰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부터 동강할미꽃의 수난이 수그러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생태사진에는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사진이 좋지 않은 사진이란 것을 아마추어 사진인 스스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야생화를 찍어 달력을 만들어 팔거나 사진원고를 팔아서 사는 야생화 사진가 김모씨의 사진계 위상은 물론

상업행위에 따른 수익에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그 일로 명예혜손으로 나를 고소한 지가 일 년이나 되었으나,  법원에서 아직까지 감감소식이다.



13회 동강할미꽃 축제장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누가 그린 그림인지 작가를 밝히지 않았다.



동강할미꽃이 슬픈 꽃인지, 수난이 너무 많다.


“할미야 할미야 벼랑에 핀 할미야

죽은 울 엄마 그립게 하는 동강가에 할미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달, 정선 화암의 ‘G갤러리’ 김형구 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는 3월 2일부터 말일까지 내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것이다.
정선에 적을 두고 있으며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할 수 없어, 있는 사진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정선에서 하는 전시라 이 지역 사람들을 찍은 산골 사람들이 적합할 것 같았다.
이 사진은 2000년도 무렵 촬영하여, 2004년도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당사자들이 사는 산골 분교를 찾아다니며 순회전을 했으나, 정작 화암은 하지 못했다.
당시 동면 화암리에 사시는 전동욱씨도 촬영했으나 한사람 밖에 없어 못했는데, 잘 된 것 같았다.
당시 84세였으니, 아직까지 살아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선 집에 보관한 그 당시 사진들이 잘 보관되었는지도 궁금했다.
필요한 사진은 다시 만들어 이 곳 저 곳 출품하기도 했으나,
처음 만든 사진은 천장 위에 처박아 두어,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4년 동안 맞바람이 통하는 천장 위에서
부엌 아궁이의 거스름까지 뒤집어썼으니 온전한지 걱정스러웠다.
고드름 축제가 끝나면 다시 오기도 힘들 것 같아 일단 G갤러리에 전해주어야 했다.






지난 17일 전시장을 정영신씨에게 맡겨두고, 사진 챙기러 만지산 집에 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 먼지 자욱한 액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 청소하다 보니
온몸이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그런데, 먼지를 털어내고 포장을 뜯어보니, 모든 사진들이 그때 그대로였다.
단지 액자로 만든 미송나무만 색이 바랬는데, 오히려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분명, 만지산 산신령님이 도운 것 같았다.





30점 중에 20점을 챙겨두고, 다시 축제장에 나가려니 정영신씨 전화가 걸려왔다.
시간 되어 전시장 문을 닫았으니 ‘아우라지식당’으로 오라는 것이다.
아우라지 식당은 곤드레 밥이 맛있는 집이라, 시장기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보니 정영신씨를 비롯하여 천연 염색하는 유재순씨와 군청 문화관광과 팀장인 전상현씨도 있었다.






전상현씨를 보니 밥보다 술이 더 땡겼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소주를 까다보니 정량을 초과해 버렸다.
뒤늦게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남계원씨도 나타났으나, 그 역시 술이 취해 혀가 꼬였다.
그의 술 취한 모습을 처음 보는데, 아주 위트 있는 재미난 친구였다.






나 역시 신이나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식당 주인아주머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평소에 그토록 점잖던 분이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 있냐는 것이다.
술이란 간을 키우는 약이기도 하지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술자리가 끝난 후 증산에 있는 모텔까지 가야하지만, 음주운전을 할 수 없었다.
유재순씨 방에서 세 사람이 끼어 잤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녀에게 술이 취해 덮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더니 덮치면 더 좋다는 것이다.
정영신씨가 있으니 안심했겠지만, 나의 엽기적인 행각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이틀 날은 사진전시장 옆의 눈썰매장에서 연날리기 대회가 벌어지는 날이다.
다시 만지산으로 들어 가 야외에 걸 이젤을 몇 개 챙겨오니, 전정환군수가 전시장에 와 있었다.
기념사진 찍으며 화암에서 열릴 ‘산골 사람들’전시에 초대도 했다.
별도의 오프닝 행사는 없으나, 술 마시기 좋은 날을 택해 서울과 정선의 문화예술인들을 모아
다양한 생각들을 한 번 들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봄바람 휘날리는 술잔에 꽃잎 띄워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자만 확정되면 페이스 북에 올려 관심 있는 작가들을 모아 볼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G갤러리 대표 김형구씨



정선 화암면 주변의 바위들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 기암절벽이 토해내는 자연 조각도 대단하지만, 마치 산수화 속 그림처럼, 마을 자체가 반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감히 예술가가 어찌 자연이 이룩한 이 웅장 미려함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





오래 전부터 정선군에서 화암마을을 예술마을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조각가 이재욱씨가 나서, 옛 변전소자리에다 ‘그림바위예술발전소’라는 간판을 달고
야외 조각공원과 갤러리까지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문화관광부’가 주최하는 2013년 마을미술행복프로젝트 공모에 화암면 그림바위 일대가 선정되며,

국내 최고 미술마을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을 내 세웠으나,

의욕에 비해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김형구작 ''



지난 달 'G갤러리' 대표로 있는 김형구씨의 전화를 받았다.

‘다색전’이란 전시를 기획하는데, 작품 두 점을 출품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난, 특정한 주제나 사전 준비 절차도 없이, 한 두 점식 모아 전시하는

아마추어 회원전 같은 전시는 딱 질색이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일에 메 달려 떠 돌다보니, 정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향토문화에 작은 힘이나마 기여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있었지만,

초창기 이제욱씨가 운영할 때에는 한두 차례 출품하기도 했으나 김형구씨가 맡고 부터

전시 참여는 물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역작가들의 합동전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난 정선주민은 아니다.

일 년 전 동자동 작업을 시작하며 그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선에 주소가 남아있는 정영신씨가 정선작가다.



홍경표작



작품반입일로 약속했던 지난 29일 오전9시경 화암면 G갤러리를 찾아 나섰다,
사진을 제작할 시간은 물론, 창고에 처박힌 사진조차 고를 시간이 없어,

방에 걸린 사진 두 점을 챙겨 갔는데, 화가 김형구씨는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G갤러리에서 ‘美親 三友展’이란 제목을 건, 화가 김형구, 김정호, 홍경표씨의 삼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세 작가가 친구이기도 하지만, 화풍이 비슷했다. 마치 한 사람의 작품 같았으나 작품들이 좋았다.

내가 정선에서 보아왔던  전시 중에는 그 중 돋보였다.



김정호작


그러나 오는 10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多色展’의 전시 팜프렛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근 두 달 가까이 단풍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주요한 시기에 열리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 것도 정선군과 공동주최하는 기획전이라는데, 쌍팔년에나 자주 볼 수 있었던

이런 동아리전 비슷한 전시가 아직까지 기획전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한심했다.

지역작가들의 요청에 의한 친목을 위한 전시라면 갤러리보다 지역민들의 축제장인

‘정선아리랑제’ 한 쪽에 부스하나 만들어 즐기면 될 일이다.





이런 습작들을 모아놓고, 정선 대표작가로 알리려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정선작가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다.
정선군은 좋은 작가들을 유치하려는 생각은 커녕, 기존의 작가마저 살지 못해 떠나는 실정이다.


그림바위마을을 예술 마을로 만들려면, 일단 관리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화암마을 관광 온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전시를 보기위해 화암마을로 몰려오게 만들어야 한다.

세상에 돈 안들이고 되는 공짜는 없다. 또한 갤러리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팔려 나가야 한다.

컬렉터들이 모여들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전시를 꾸준히 유치하여 갤러리의 격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전시 보러 와서 천혜의 그림바위 절경까지 보고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어디 있겠는가?

좋은 전시만 이어진다면, 등달아 지역민들의 예술을 보는 눈도 높아질 것이다.
부디 정선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육성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정선 '아라리공원'에서 ‘전국5일장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에 초대된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사진전을 위해 일주일 남짓 정선에서 잘 놀았다.

전시장에서 정선 지역민들도 만났지만, 먼 곳에서 찾아주신 분들도 많았다.

날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정영신씨 사진을 만나러 왔지만, 좌우지간 반갑기 그지없었다.






전시 전날부터 시작된 정선 귤암리의 술 파티가 만만찮은 앞 날을 예고했다.
최종대씨 댁에서 나병연, 송종삼 내외 가 모여 꽁치구이와 돼지고기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단지, 동네 주민들의 갈등 현안인 물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하게 했지만...






기억력이 신통찮아 사진에 찍힌 모습을 돌아보며, 지난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사는 귤암리의 서덕웅씨가 급히 다녀가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해외 전통시장을 찍는 사진가 하재은씨의 방문에 이어, 문경에서 오신 이선행씨, 귤암리 최종열씨도 다녀갔다,

신승철씨는 전시가 열리는 나흘 동안 매일같이 나타나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전시장을 기웃거렸다.





17년 전 펴낸 ‘동강 백성들’이란 포토에세이집에 ‘법도 씹도 모르는 신승철씨’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동네 이웃이다. 신통한 것은 글도 모르는 사람이 ‘장날’사진집을 샀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관람객에 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대부분 아는 분들이 사주는 정도인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신승철씨가 사진집을 샀다는 것은 분명 뉴스거리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사진집들을 보고 ‘이거 파는 책입니까?’라고 묻는다는 점이다.

여지것 각종 행사장에서 나누어 주는 무분별한 홍보물 세례에 길들어, 돈 주고 책 산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분은 책이 너무 비싸다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에 치어, 죽을 쓰는 책의 수모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그리고 태백의 사진가들도 여럿 다녀가셨다. 박병문씨를 비롯하여 박노철, 전제훈, 박종호씨등인데,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알려진 사진가 박병문씨는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이석필씨 소개로 만나게 된 박노철씨와 전제훈씨는 ‘사협’에 적을 둔 사진가였다.

쓰레기 통에서도 장미가 핀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의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앞날이 유망한 사진가였다.

그 무더운 날 포트폴리오까지 챙겨왔었는데, 박노철씨는 오는 7월15일부터 서울 ‘류가헌’에서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라는 주제의 전시를 연다고 했다.

시뻘겋게 흘러내리는 폐광 오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 있는 사진전이었다.





그리고 전제훈씨의 사진작업 이야기에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현역 광부로 일하며 광부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몇 장 보여준 사진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지나치다 찍은 탄광사진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광맥은 물론 전 작업과정을 깨 뚫고 있기에 좀 더 전문적인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름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사진축제‘의 강원도사진가전에 소개된다고 했는데,

광부사진에 또 하나의 자취를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두 분 다 사진을 예쁘게 찍는 성향이 있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공모전사진에 길들어 온 폐해인데, 앞으로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숙제였다.






충무로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한만인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이 민, 오 환씨가 오셨고,

횡성에서 오신 사진가 구자호씨와 최정태씨는 술과 안주까지 전시장에 공수해 오셨다.

전시가 끝나는 다음 날 장터 인문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과 횡성장으로 탐방 가는 일정이 짜여있어,

구자호 선생께 잘하는 식당을 추천해 달랬는데, ‘마옥 원조 막국수’라는 좋은 밥집을 소개해 주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하나같이 맛있게 먹었다며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덕산 터에 ‘숲속책방’을 차린 소설가 강기희씨와 동화작가 유진아씨,

그리고 안용현씨가 찾아주어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술의 인문학’ 강사로서 더 잘 알려진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전상현씨의 배려 하에 모두 거나하게 마셨다.







전정환 정선군수를 비롯하여 신주호 부군수, 김수복 자치행정과장, 유홍균 지역경제 팀장,

'전국 오일장 박람회' 행사를 기획한 노현숙씨 등 주최 측 인사들도 여러 분 다녀가셨다. 

뒤늦게 나타난 귤암리의 최영규씨는 전시장으로 술과 안주를 배달시켜 전시장을 주막으로 만들었다.

MBC 황지웅 PD와 화암면에서 G갤러리를 운영하는 화가 김형구씨 내외도 다녀갔고,

전시가 끝 날 무렵에는 사진가 곽명우씨가 나타나 전시철수를 도와주기도 했다.




다들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선 산골짜기에서 서울 인사동까지 그림을 싸 들고 온 화가가 있다.

 

인천에서 정선으로 이주한지 올해로 5년차인 서양화가 김형구씨의 초대전이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인사동 '31갤러리'에서 열린 것이다.

 

 

메르스 여파로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데다 심한 불경기까지 겹쳐,

작품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비수기의 전시에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전시종료를 하루 앞둔 15일 늦은 시간에 전시장에 들렸는데, 빨간 딱지가 열두 개나 붙어 있었다.

주변의 지인들이 작품들을 좋아해 싸게 팔았다고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 액자들도 작가가 손수 만들었다는데, 오히려 전문가들의 맞춤액자보다 돋보였다.

 

 

요즘 전시작가들이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해, 전시가 끝나도록 한 점도 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싸게라도 팔아 작업에도 숨통을 터고 소장자를 늘려 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쉽다.

 

 

오는 7월부터 정선 터미널 문화공간에서 열릴 초대전에는 더 큰 성과 있기를 바란다.

 

 

사진,글 / 조문호

 

 

 

 

 

 

 

 

 

 

 

 

 

 

 

 

 

=

                                                                                                     김형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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