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전시가 있어 모처럼 인사동 나왔다.




옛 민정당사 자리 호텔공사는 이제 마무리를 했다. 머지않아 인사동이 더 낯설 것이다.




거리에는 임금님이 나와 광고판을 들고 있고, 지난날이 그리운 유랑 악사는 멀쩡한 날 ‘봄비’를 불렀다.




요즘 인사동에 나와도 갈만한 술집이 별로 없다.
돈에 밀리고 젊은이에 밀려, 길 잃은 기러기 신세다.
아지트로 죽치던 ‘유목민’도 젊은이 아닌 돈에 밀려났다.




사실상, 인사동을 못 잊어 배회하는 것은 공간의 추억이 아니라, 그 곳에서 놀던 사람들의 추억이다.




그것도 살아남은 자 보다 죽었거나 볼 수 없는 자들의 추억이 짙다.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천상병시인이고,
뒤이어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 방송작가 박이엽선생, 인사동 풍류객 이계익선생,
넋을 부르는 민속작가 심우성선생 같은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땡초시인 적음과 최루탄 냄새 풀풀 풍기던 사진기자 김종구, 별만 그렸던 강용대,
콧수염 사진가 김영수, ‘민예총’의 대부 김용태, 밤안개로 불리는 목탄화가 여운,
강단 있는 민중화가 문영태, 그리고 살아있어도 볼 수 없는 화가 박광호와 이청운도 있고,
미국으로 떠난 최정자시인도 그립다.




그들과 어울리던 ‘실비집’이나 ‘누님칼국수’, ‘시인통신’, '하가', '레떼'

‘수희제’는 모두 사라졌지만, ‘부산식당’이나 ‘사동집’, ‘귀천’ 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잘 가지 않는 것은, 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만났던 사람이 그리운 거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만나려면 만날 곳이 있어야해 ‘다리 밑’에 자리 잡기로 했다.
‘다리 밑’은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있는 코 구멍만한 술집인데, 간판이 없어 계단집으로 불렸다.
통인의 관우선생이 ‘다리 밑 집’으로 고쳐 불렀으나, 더 줄여 ‘다리 밑’으로 부른다.
옛날엔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살았으나, 대개 태어날 때의 고향인 다리 밑을 좋아한다.
공사판의 함바집처럼 서민적이라 더 정겹다.




주종은 불문이나 관우선생이 개발한 시원한 생맥주에 막걸리를 타 먹는 막맥이 맛있다지만
통풍 때문에 맥주를 못 마시니 그 맛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안주가 싸다. 쫀득쫀득한 감자전 같은 대부분의 안주가 오천원이다.




이 날은 건축가 김동주씨와 통인의 관우선생을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보는 여인도 나타났다.
미끄러질 것 같은 입술도 매력적이지만 생글 생글한 눈웃음이 죽이더라.




그런데, 옆 자리에 아는 분이 있었다.
막사발 장인 김용문씨처럼 상투를 틀어 올린 권도경씨인데,
사진가 하형우씨께 전화 걸어 바꾸어 준 것이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좁았다.




그들의 건배사가 더 재미있더라.
술잔을 치켜들며 “이것이 무엇이요?”하니, 다같이 “정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정’이란 노래를 처절하게 합창했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 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그렇다. 다들 그 놈의 정 때문에 좋아했다 미워하는 것이다.




다음부터 그리운 사람 만날 때는 다리 밑에서 만나자.
받을 때나 줄 때나 한 결 같이 꿈속 같도록...

사진, 글 / 조문호





















2019년 통인화랑의 공예주간 ‘명장’ 기획전이 지난 5월17일 오후5시에 개막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통인화랑'에서 주관하는 ‘명장’전에는

이천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전통도자의 대표적 도예가 14명의 명작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상상력을 전통기법의 미감으로 재해석한 김대용씨의 ‘분청 수박지문매병’,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이는 함을 도자기로 형상화한 김대훈씨의 ‘무제’,



화려하지만 넘치지 않는 위엄으로 현대청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세용씨의 ‘청자 도토리문 이중 투각병’,



투각기법에 뛰어난 장인 김영수씨가 새롭게 선보인 ‘백자 진사 감무늬 호’,



분청기법을 이용해 화화적 미감을 드러낸 박래현씨의 ‘분청 산문 호’,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김판기씨의 ‘청자 빗살문양 발’,



전통방식으로 완벽한 미감을 드러낸 서광수씨의 ‘청화백자 철화진사 매화문 호’,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한 유광열씨의 ‘청자 상감복사문 매병’,



탁월한 기량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유기정씨의 ‘청화백자 까치호랑이문 준’,



느린 움직임의 질서와 소박함이 깃들어 있는 유용철씨의 ‘분청 달항아리’,



분청의 대가 이규탁씨의 섬세함과 단아함이 돋보이는 ‘백자 요변 달항아리’,



이중투각기법에 의한 고도의 정밀성을 보여준 이창수씨의 ‘청자 이중투각 잉어문 매병’,



매죽문 민화의 아름다움을 백자에 수 놓은 이향구씨의 ‘청화백자 매죽문 호’,



청자만 바라보며 한 길만 걸어 온 최인규씨의 ‘청자 상감 화문 유개호‘ 등 수작들만 모았다.



'통인화랑'에서 5월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개막식장에 좀 늦게 갔더니,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 없었다.

전시된 작품을 돌아 볼 수도 없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비집어 살펴보니, 한국공예진흥원장 최봉현씨가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통인화랑' 이계선관장이 서 있었다.

한 쪽에는 '국민문화신탁재단' 김종규 이사장과 김완규 통인 회장의 모습도 보였다.



옆줄에는 이천의 내로라하는 사기꾼들이 다 모여 있었다.

틈틈이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명창 배일동씨와 건축가 김동주씨, ‘동원건설의 송재엽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김곤선 관장도 보였다.


 

비집고 다니며 전시장을 돌아보았는데,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았다.

청자 백자 미인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얼마나 예쁘고 우아한지 미칠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청을 만났을 때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달 항아리가 아니라 달덩이 같았다.

부드러운 결을 만져보고도 싶고, 끌어안아 딩굴고 싶었다.



유영철씨의 분청에 번지는 은은한 푸른빛과 반점도 매혹적이지만,

이규탁씨의 수줍은 여인 내 볼같이 불그스레 번지는 미감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어쩌랴! 돈도 없지만 모셔 둘 자리도 없으니, 보고도 못 먹는 장떡에 불과했다.

남의 여인 내 훔쳐보며 군침 흘리는 격이었다.


 

통인 옥상 상광루에 차려놓은 술상으로 갔더니, 그 곳도 인산인해였다.

술 취해 밑으로 떨어지면 묵사발 될 것 같아,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준비된 술은 전라도에서 공수한 도수 높은 막걸리와 와인이 있었으나, 피 같은 와인만 쫄쫄 빨았다.

안주인께선 ‘최대감집에서 사기꾼들 모시고 저녁 대접한다며 그리로 오라지만,

다리 밑에서 김동주씨와 빨기로 했으니 어쩌랴!


 

품을 수 없는 미색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계단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젠장! 그렇게 봄날은 가나보더라.

 

사진, / 조문호






































































사람사진 찍는 놈이, 몰려다니는 사람이 싫어지면 끝난 것 아닌가?
지난 11일 오전 10시 무렵,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해 인사동에 나갔다.
‘통인가게’ 관우선생과의 오찬 약속이 있었지만, 너무 일찍 나가 약속도 못 지켰다.






한산한 인사동 거리라, 반가운 사람은 더 잘 눈에 띄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는 까딱이도 보이고,
30여년 동안 인사동을 오가며 기름 행상한 권경선씨도 보였다.
사람이 적으니, 모르는 사람들도 다들 정겨웠다.






전시장 다니며 시간 보내다보니, 그만 약속시간을 넘겨 버렸다.
핸드폰을 두고 와 관우선생께 연락 할 수도 없었다.
구나영씨 등 네 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선갤러리’ ‘자서전’도 돌아보고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김호걸씨 전시도 보았다.



 



식사를 한 후,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리는 도예가 조일묵씨 전시를 보러갔다.
‘사과로 본 세상’이라는데, 연리문 사과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고 있었다.
‘통인가게’ 상광루‘로 올라가니, 오찬을 끝낸 관우선생께서 돌아와 있었다.
술도, 차도 골고루 얻어 마셨다.






그 날은 옛 추억에 끌려 몽유병자처럼 인사동을 떠돌았다.


사진, 글 / 조문호























낙원상가 계단 아래 자리 잡은 다리밑집은 다리 밑의 음습함이 정겹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 뿐인 코 구멍만한 대폿집인데, 닭 똥집이 별미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좁은데서 부딪히는 사람냄새가 더 좋다.






지난 7일저녁 무렵, 편완식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인사동 찍사가 인사동에 안 있고 어딧냐?’는 것이다.
산토끼가 어디를 못 가겠냐마는, 동자동 쪽방에 살림 차린 걸 모르진 않을텐데...
연휴라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어 목구멍이 근질 근질하던 차에 반가운 기별이었다.
라면 끓이려 물을 올려놓았으나, 꺼버리고 나갔다. 


 



다리밑집에 들어가니 편완식기자와 건축가 김동주, 화가 이목을씨가 있었는데, 옆자리에 미모의 여인도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인데, 일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기에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틀니라고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통인’ 관우선생은 춥다며 옷 가지러 간 사람이 강원도 포수란다.
김동주씨가 설계한 강화도의 ‘통인미술관’ 준공검사가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날의 화제는 단연 미투였다.






화가 이목을씨가 국회의사당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미투에 휘말려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에게 수제 명함을 주기위해 성향을 물은 것이 화근이란다.
명함에 그림 그리려, ‘굵은 것을 좋아하냐? 가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단다.
펜그림 굵기를 물었으나, 그 여인은 요상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들 한바탕 웃고 넘겼으나, 편완식기자가 말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있던 최효준씨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였다.

부하 직원인 큐레이터에게 보낸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는데,
작업에 상상력을 주려 보낸 동영상이 미투의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찌, 웃기 위해 농담도 못하는 이런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집에서는 마누라 한테 엎어지고, 밖에선 입도 벙긋 못하는 남자 수난시대다.




 


농담 잘하기로 소문 난 나는 왜 시비 거는 여인이 없는건가?
사람 차별한다며 투덜거렸더니, 돈도 권력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란다.
그 날도 전시 기획하는 미모의 여인에게 진한 농담을 했으나,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주둥이만 살아있는 능력 없는 사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구 서러버라! 사내 취급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잘라 버릴까보다.


'




역시, 술타령은 미투가 최고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모’ 송재엽씨가 강남 도산대로에서 빌딩 기공식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임인 ‘인사모’ 맴버로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온 분이다.  

더구나 ‘통인가게’ 관우선생이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라, 술자리도 자주 어울렸다.






여지 것 '동원건설'을 운영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난, 부수고 짓는 건설 자체를 싫어하는데다, 관심 없는 직업이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재엽씨가 강남의 랜드마크가 될 Alumni505-Quorum의 기공식을 한다는데,
어찌 안 갈 수 있으랴.






가기 전에 송재엽씨의 직업에 대해 알고싶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부동산 투자의 귀재로 소개되어 있었다.
전공은 연극영화였으나, 부친께서 오래전 부터 경영해 온 건설 사업에 영향 받은 것 같았다.
'동원건설'은 충북 청주의 뼈대 있는 토목전문 건설 회사였다.






송재엽씨가 충주에서 단돈 4,000만원 들고 상경해 일구어 낸 것이 서울의 '동원건설'이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성공담도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기공식을 갖는 ‘Alumni505-Quorum’은
건평 164평의 15층 건물이라는 데, 도산대로변에 명물 하나 탄생할 것 같았다.





정오무렵 기공식을 축하하러 찾아 나섰는데, 좀 일찍 도착해 버렸다
현장에는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 분은 송재엽씨와 서용민씨 뿐이었다.





신축될 빌딩은 아트샵이나 개인 작업실 용도로 지어지는 것 같았다
순수회화를 전공한 아들 송자호군은 아버지의 건물 기공식에 화환을 세웠는데,
“펜트하우스는 제가 쓰겠습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벌써 자식이 입주예약을 한 것이다.






반가운 사람들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건축가 임태종씨를 비롯하여 임하룡, 조항선, 변문수씨가 나타났고,
술 안주로 큼직한 방어 한마리가 난도 질 당했다.





인사동에 약속이 있어 일어나고 싶었으나, '통인가게' 김완규씨가 온다기에 기다렸다.
그 날 임하룡씨가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지만,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오늘전'에 참여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사동 가는 김에 전시장도 들려 볼 참이었다.





뒤늦게 관우선생과 이제훈씨가 나타났는데, 징을 들고 왔더라.
마치 무당처럼 돌아다니며 두들겼는데, 멋진 푸닥거리고, 고사였다.
이어 배일동 명창까지 나타나 술자리가 무르익었으나, 먼저 일어나야 했다.

관우선생도 약속 때문에 인사동 간다기에 따라 붙은 것이다. 
단지,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웠다.






아무쪼록 성공적으로 완공시켜, 사업 번창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배일동 명창, 판소리 강의도 고수


2018년 12월 03일 (월) 17:17:47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fay.co.kr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비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 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배일동 명창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배일동 명창이 절절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사또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태껏 판소리를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고수 김동원씨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배일동명창과 고수 김동원씨.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리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배일동씨가 판소리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손님이었지만,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 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가게 김완규선생이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 김완규 선생이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강의도 고수-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통인가게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지 것 판소리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직접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듣기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여지 것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라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사실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선생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사진, / 조문호


























































지난 16일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다.
우중충한 날씨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바쁘게 하지만,
곳곳에서 반가운 분의 환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갤러리 이즈'에서 나오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를 만났고,
영화감독 이정황씨와 산악인 반민규씨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낙원동 ‘유진식당’에서 ‘통인가게‘ 김완규씨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기업은행 김재수 지점장, 사진가 정영신씨를 만나 냉면에 소주 말아 마셨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나 갈 곳은 많아 퍼질 수는 없었다.






'갤러리H'에서 열리는 유혜정씨의 ‘색은 속삭이다’를 보러가야 했다.
제목이 야시시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마음 설레며 그림을 둘러보고, 유혜정씨의 미소도 찍었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낮에 조햇님 선거사무소에 같이 갔던
사진가 이정환씨와 성유나씨도 있었고,
길에서 만났던 이정황감독과 김이하, 이산하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안쪽에는 오래된 사우 배병우가 아니라 배병수씨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만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 것이다.
오래 전 부여에서 벌인 정액페인팅을 그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인사동 귀신인 불화가 이인섭씨와 전활철, 유진오씨 등

올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더 이상 술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술 땡기는 이 꿉꿉한 날, 구경만 해야지만 어쩌겠는가?

반가운 사람 만나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그 사람들 떠나고 나면, 인사동이 인사동일까?
인사동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이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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