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부터 3일 동안 찾아 다닌 제주도 지역의 오일장들은 대부분 바닷가에 장이 섰다.
세화장, 성산장, 함덕장, 모슬포장 등인데, 그 중 성산장은 사람들이 없어 머지않아 사라 질 것 같았고, 세화장과 함덕장도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대신 모슬포장과 제주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특히 제주 민속시장은 장꾼들만 1.800여명으로 장의 규모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꼭 한 번씩 들리는 관광코스처럼 되어버렸다는 제주장에는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울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작년에 들렸을 때만해도 장옥변두리에 할머니들이 난장을 벌였으나 장터구역을 정리하며 난장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50만원을 내고 장옥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장옥 변두리를 돌며 눈치껏 자리를 찾는다.

돌미나리 석단을 유모차에 싣고 나온 어느 할머니는 장옥 바깥에서 두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손님을 기다렸으나 한 단도 팔지 못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가야 했다.

파장으로 장꾼이 떠난 빈좌판에 펼쳐놓고 혼자 좋아라 하신다.  배가 고팠는지 씻지도 않은 미나리를 한 잎 한 잎 드시고 계셨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어쩌면 안타깝게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팔리면 좋고, 안 팔려도 그만인 모양이다. 눈길만 마주쳐도 웃음을 보내는 모습에서 사람이 그리워 장에 나온 것 같았다.

어떤 할머니는 장이 파하게 되면 다음 날 서는 다른 장으로 옮겨, 그 곳에서 세우 잠을 자는 분도 계시고, 새벽2시부터 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터를 집처럼 떠도는 할머니들의 무조건적인 장터사랑이 사라질 오일장의 생명줄을 간신히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할머니들의 운명과 함께 시골장의 수명도 다 하게 될 것이다.


 

 

 

 

 

 

 

 

 

 

 

 

 

 

 

 

 

 

 

 

 

 

 


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정선장은 꼭 한 번씩 들린다.
장터 사진도 사진이지만 날로 번성해 가는 아리랑장이 궁금해서다.
이번 정선장 나들이는 또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아리랑’ 출판을 준비하는 심우성선생께서 삽화로 사용할 '정선 아리랑' 공연사진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장터에서 공연을 기다리며 곧 시판할 정선황기막걸리 시음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닥아 와 말을 건낸다. “내 모르겠습니꺼?”를 반복하며 웃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고향 후배 하재은씨였다.

수 십년 만의 만남이지만, 두 살 터울인 친동생과는 친구지간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정선은 우짠 일인교?”라고 물었더니 작년부터 정선 특성화시장 컨설팅으로 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정선 사람 대부분이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주도하는

하단장을 잘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선장터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는 서울의 신한경영법인 대표이사로 특히 전통시장 활성화 컨설팅 전문가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부문 등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다. 이미 정선시장상인들로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황기막걸리와 선물용

나물셋트를 생산, 판매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볼거리와 먹거리를 개발하며 온라인, 오프라인 홍보도 전담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작년부터 시작해 내 년까지 한다기에 앞으로 자문 구할 일이나 협력할 일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무튼 아내와 함께 장옥안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들려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선물까지 한아름받고 헤어졌다.
오는 7월7일 정선황기막걸리 시판 행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자식을 위한 부모마음이야 모두 같겠지만 유별난 자식사랑에 노년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할머니를

지난 7일 충청남도 서천장에서 만났다.

서천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서면에서 혼자 사시는 이길희(86세)씨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여 허리가 기억자로 굽어 버렸다.

조그만 텃밭을 일구고 있으나 할머니가 드시기 보다는 장에 내다 팔 생각으로 열심히 가꾼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기에 혼자 편히 지낼 수도 있으나 객지 사는 자식들 주려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악착같이 모아 자식에게 털어 넣는다.

 

 

남들은 아침 일찍부터 장에 나와 난장을 펴고 있었으나 이길희씨는 오전 9시가 넘어 손수레를 끌고 나오셨다.

몸이 불편해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니 늦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자리가 없어 여기 저기 헤메느라 30분을 소비하였다.

자동차 통행로에 자리를 폈다 쫓겨나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 후 간신히 구석자리에 끼여 않을 수가 있었다.

가지고 나온 물건이래야 텃밭에서 뽑은 부추3단, 산에서 채취한 고사리나물 조금, 어리굴젓 세통이 전부였다.

고사리와 부추를 담아 온 깨진 대야도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었고,

프라스틱 채반도 모퉁이가 날아가 할머니 육신처럼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었다.

어리굴젓이 맛있다는 자랑에 지나가는 할머니가 얼마냐고 물으면

“이만원에 팔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만 오천원에 줄게”라지만 모두 그냥 지나친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자 이젠 사진 찍는 아내에게 마수 좀 해 달라며 붙들고 늘어진다.

“이틀 동안 고생해 꺾은 고사린데 엄청 좋아”라는 통사정에 마음 약한 아내가 지갑을 열었다.

돈을 받자마자 마수했다며 지폐를 머리에 문지르며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고사리를 다듬던 아내가 구시렁거린다.

고사리가 세어 대부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부드럽게 하려고 너무 많이 삶아 변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하기야 그 굽은 몸으로 고사리를 찾아 다녔으니 시간도 많이 걸렸을 것이고

이것저것 가려가며 꺾을 처지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들이 먹지 않는다는 거친 고사리지만 할머니는 먹을 수 있었을게다.

아내는 할머니에게 적선했다 생각하면 된다지만, 할머니의 잘못된 자식사랑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시간은 나이에 따라 고무줄 같은 성질을 가진 것일까?
우리가 사는 물리학적 시간은 같지만 어린아이, 청년, 중년, 노년의 시간은
각기 시간의 길이가 다른 것 같다.
요즘 부쩍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젊은 시절, 친구 좋아하고 주색에 연연하다 사진기록에 소홀했던 자책 때문일까?
아니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조급함이 작용했을까?
그 조급하게 서두는 일 욕심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선 시골의 밭일도 끼니를 놓친 채 너무 무리하여 몸살을 앓기도 하였고,
사진작업에 대한 욕심으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전라남도 지역으로 장터 촬영을 떠났다.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 이어 오후 늦게 춘천 마임축제장으로 이동했다.
진안에서 바삐 서둘렀으나 공연장에 도착하니 오후11시였다.
다행히 새벽 다섯 시까지 이어지는 공연이라 촬영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일을 끝내고 나니 새벽 2시 무렵이었다.
차에서 눈을 좀 붙이면 좋으련만 새로 구입한 코란도 밴은 화물용이라
의자를 뒤로 눕힐 수 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아내의 만류도 못들은 채, 고성 대진으로 출발하여
오전 6시경 조그만 어항이 있는 대진장에 도착했다.
포구에는 고깃배가 들어와 있었고, 길가 양편에는 장돌뱅이
세 사람이 짐을 풀고 있었지만 정신이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후회막급이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구룡령 구비 구비를 돌아 창촌장, 사창장을 거쳐 돌아오는 길은 바로 지옥 길이었다.
졸다가 마주 오는 차와 부딪히기 직전에 꺾어 차가 토끼 걸음으로 뛰기도 했고,

벼랑으로 치 닿아 급브레이크로 저승가는 시험도 했다.
예전에는 하루 이틀 쯤 밤샘해도 큰 무리가 없었으나 이젠 달랐다.
집으로 돌아 온 후 몇일 동안 몸이 풀리지 않아 낑낑대야만 했다.

 

때 늦은 후회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시간이 빠르게 갈수록 더 천천히 가자고...


정터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오래된 장옥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성냥갑처럼 줄지어 선 장옥에서 장꾼들의 삶의 역사를 읽을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래된 장옥들이 새 장옥에 밀려나거나 찾는 손님들이 없어 폐가처럼 버려져 있다.
이번에 들린 무안장도 옛 장옥은 그대로 있었으나, 장옥 입구 몇몇 곳만 상품을 판매하고
대부분 보관창고로 활용하거나 방치된 장옥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철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곧 무안장 전체를 외곽지역으로 옮긴 후 철거한다는 것이다.
장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장옥들을 돌아보며 아쉬워 하지만 시대적 흐름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무안장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오래된 장옥들이 철거되어 사라지고 있다.
아마 내 년 쯤이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전국 장터를 다녀 본 결과, 보존 가치가 있는 장옥으로는 전라남도 지역에 남은 두 세 곳이 유일하다.
하루속히 한 곳이라도 제대로 보존하여 후세에 넘겨주어야 한다.
각 지자체에서 별의 별 축제들은 경쟁하듯 열면서 왜 ‘장터 박물관’ 하나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할까?

 

 

 

 

 

 

 

 

 

 

 

 

 

 

 

 

 

 

 

 

 

 

 

 

 

 

 

 

 


지난 22일부터 전라남도의 시골장터를 찾아 다녔다.
강진 마량장, 나주 다시장, 담양 대치장, 해남 남리장 등 사라지기 직전의 조그만 장터들인데,
떠날 때마다 처음 만나게 될 장터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설렌다.
시골장터의 정겨움이 고향처럼 편안하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시골마을의 향토색을
만난다는 게 처녀 총각이 첫선 보듯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산한 시골장이지만 장꾼들은 하나같이 누굴 만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찍부터 난전을 편다.
그 중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차양막을 치는 일이다.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며
한 가게를 표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장돌뱅이들의 행낭에는 오래된 천막들과 장대들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마치 오래전 써커스 단들이 가설무대를 설치하듯 천막 치는 일도 일사불란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장꾼들의 대부분이 현수막으로 쓰다 버린 재활용 천막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상품광고에서부터 축제와 행정안내, 노래방광고 등 별의 별 홍보 현수막들이 많았지만
그 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입후보자들의 선거 현수막들이었다.
그 것들은 이어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의 대형 현수막들이라 재활용 천막으로 안성마춤인데,
역시 정치판은 버리는 것도 통이 컸다.

봄꽃처럼 울긋불긋한 화려한 차양막에서 장꾼들의 알뜰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지만,
먼 훗날 남게 될 사진 속의 글에서 오늘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기록적 사진 언어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

 

 

 

 

 

 

 

 

 

 

 

 

 

 


봄철이 되면 꼭 한번 씩 들려보는 곳이 강화 풍물시장이다.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펼친 난장도 좋지만, 재래시장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오래 전, 화문석을 팔던 새벽시장이었다.

시골에서 컴컴한 새벽부터 화문석을 이고 지고 몰려왔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장옥을 지어 화문석매장을 비롯한 각 각의 매장들과 식당이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장옥 앞 마당에 할머니들의 난장도 펼쳐진다.

대개 난장에만 손님들이 몰리고 장옥에는 한산한 타 지역 장들에 비해

난장이나 장옥이나 똑 같이 손님들로 붐빈다.

수도권에서 가까워 관광객들이 찾는 이유도 있지만 볼거리와 먹거리를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층 식당가에서 밴뎅이 회덮밥에다 강화의 인삼막걸리 한 잔하는 맛도 일품이다.

한번 쯤, 가족들과 나들이 해 볼만한 오일장으로 추천한다.

 

지난 22일, 강화장에서 만난 모습들이다.

 

2012.4.23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강원도 평창과 정선장을 거쳐 경상도 장터를 두루 돌아왔습니다.

이번 촬영 여행은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아니라 정선 동강할미꽃 축제와 마산의 이강용씨
전람회 참석을 위해, 가는 길에 들린 촬영 길이었습니다. 진해 경화장도 오래전에 들렸으나
장터 길가에 늘어 선 벚꽃나무에 꽃이 피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에 찾았으나 꽃샘 추위와
비바람에 꽃잎이 떨어진 처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더군요.

문경장, 예산장, 군위장, 칠곡 약목장, 성주 벽진장을 돌며 지나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고단한 표정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2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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