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정선의 문화게릴라 강기희씨

"이 시대의 마지막 빨치산 숙암골로 숨어들다."

 

 

 

강기희씨 하면 진보적인 성향의 소설가, 또는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를 쓴 작가로 대개 기억한다.
그래서 그의 구체적인 이력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는 정선토박이로 강원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였고, 1998년 ‘문학21’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로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은옥이 1, 2’, ‘개같은 인생들’, ‘연산’ 등이 있으며

한국최초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 닷컴’이 주최한 오천만원 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을 수상하였고,

그리고 2005년 한국문화에술위원회의 문예창작기금을 수혜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문학평화포럼이사로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한다는 등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력보다 더 중요한 그 만의 남 다른 면모가 많다.

순정의 절규를 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카롭게 현실을 꿰뚫어 보는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이다.

그동안 ‘오마이 뉴스’ 객원기자로 일하며 현실을 비판했던 탓인지 가끔 색깔론을 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정선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애써 왔다는 사실이다.

가진 것이 없어 망정이지 만약 경제적 능력만 있었다면 쉴 틈 없이 판을 벌일 그런 사람이다.

정선 집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객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필자도 정선보다 인사동에서 그를 만날 때가 많았다.

지역적 소외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낀다는 반증이다.

몇 년 전 누전에 의한 화재로 자신의 집을 몽땅 불태워 버린적이 있었다.

집뿐 아니라 책이며 옷이며 살림 전부를 불 태워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다행히 남의 집이긴 하지만 숙암리의 아름다운 저택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 때 박성범, 신은경 커플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꿈의 궁전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탓에 그가 아지트로 빌려 쓰게되었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얼마 전 출간된 ‘연산’을 음모하기도 했고, 지금은 또 다른 일을 저지르기 위해 음모 중이다.

올 시월달에 열릴 정선아리랑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기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는 분명 정선이 내 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가 성장한 배경에는 정선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빠트릴 수가 없다,

그의 어머니이신 이춘옥(81세)씨가 한 평생을 정선장에서 벌어 그 돈으로 자식들을 키웠다는데.

 아직까지 가게도 없는 노점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늘 안스럽게 지켜보는 그다.

그래서인지 정선아리랑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데도 많은 고심을 해왔다.

얼마 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다 돈 안 되는 ‘골목도서관’을 차려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모자가 함께 장터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자랑스러운 장꾼의 아들! 강기희씨의 또 다른 문화적 음모를 기대한다. 

 

 

 

 

 

 

 



 

(영남일보 / 백승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전통시장이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를 도입했지만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폭염탓에 손님들의 발길이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무더위에 취약한 전통시장보다 냉방시설을 잘 갖춘 대형마트로 손님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도 일부 전통시장은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성과도 기대 이상이다.

수원 팔달문시장은 몇해 전까지만해도 여느 전통시장과 다름없었다. 매출은 오르지 않고 시장은 텅 비어 갔다. 자구책 마련이 시급했지만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시장이 최근 들어 지역민과 외지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죽어가던 팔달문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것은 스토리텔링 덕분이었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이 정조임금 스토리다. 조선시대 정조는 부국강병의 기초가 상업에 있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팔달문시장을 열어 전국의 유능한 상인들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정조의 부름을 받고 시장에 모인 상인들은 대부분 정조와 뜻을 같이한 선비들이었다. 양반에 뿌리를 둔 상인이라는 뜻에서 ‘유상’이라 불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팔달문시장은 ‘왕이 만든 시장’이라는 스토리를 집중적으로 마케팅했다. 시장 곳곳에 정조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들고, 인근의 수원화성과 연계한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특히 시장 초입에 세워진 ‘술 따르는 정조 임금’ 동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백성 모두가 풍요롭게 살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조의 의지와 팔달문시장 스토리를 형상화한 동상이다. 여기에 상인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박물관도 조성했다. 정조임금 스토리와 상인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이 급증했다. 실제 하루 평균 2만4천명이 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팔달문시장의 성공비결은 이야기에 있다. 시장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화 하고 상인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스토리가 있는 시장’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시설 현대화사업만이 전부가 아니다. 팔달문시장처럼 스토리텔링을 통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태백산 황지에서부터 시작해 부산을숙도까지 1300리를 흐르는 낙동강 줄기에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이었던 ‘삼강주막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은 안동 하희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과

봉화에서 시작해 희룡포를 휘감고 뻗어 온 내성천,

그리고 문경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 온 금천,

렇게 세 줄기의 강이 만나기에 삼강(三江)이라 불린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하루에 30번 이상 나룻배가 오가며

사람들이 드나들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보부상들과 사공들이 사용했던 숙소들은 1934년 대홍수 때 모두 떠내려갔다고 한다.
삼강주막은 오랫동안 삼강나루를 더나드는 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었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기도 한 집인데,

지금은 그 것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옛 시절을 회상하며 흥청대고 있다.

옛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삼강주막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실제 주모가 살아 있었다고 한다.

2005년에 돌아가신 유옥연 할머니는 여든아홉살까지 주막을 지켜 왔는데,

글씨를 몰랐던 주모가 손님들의 외상거래를 자신만 알 수 있도록 부엌 벽에다 표기해 두어

삼강주막을 찿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위치한 이 주막의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으로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모가 부얶 벽에다 자신만 알 수 있도록 표시한 외상장부

 

 

 

주막 앞에 있는 이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이 사람

 
                                              "상처를 안고 장터로 들어온 이숙란씨"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린 봄날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들을 등에 업고 꼬물꼬물 여린 잎을 밀어내는 여리디 여린 초록과 조우한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주는 자연과의 대화를 즐겼다. 얼굴을 들이밀어도 외면하지 않는 나무들과 만나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되어 버린 그녀 앞에 늘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었다. 어쩌면 새봄이 주는 갖가지 재미와 푸르런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햇볕에 불려나가 호젓하게 비를 맞아가면서도 냉이와 달래를 바구니 가득 캐왔다는 그녀다. 

 13년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냉이와 달래를 정선장에 갖고 나와 후미진 골목길에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사람들이 가격을 물어도 고개 숙인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얘기도 하고 거기에 미소까지 담아낸다.

 겨우내 땡땡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내리듯, 사시사철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밭에서 돈을 얻는 재미에 빠져 장날이면 읍내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는 그녀다. 신월리에서 읍내까지야 20~3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지만 그녀에게는 기나긴 여행이었을 것이다.

꿈 많은 12살 단발머리 소녀시절 홍역을 앓다 부모의 무지로 희귀병을 얻었다고 한다. 열이 심하게 나는 홍역으로 갑갑해하던 어린소녀가 물속에 수시로 몸을 담갔었는데, 그 때문에 다발성신경종이라는 희귀병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부모님이 병원에 한번이라도 데려가 치료받게 했다면 그녀 모습이 지금처럼 되었을까? 

   고개를 숙인 채 더덕껍질을 벗기고 있는 그녀를 본게 10년 전인 듯싶다. 그 이후부터 정선장에만 가면 제일먼저 하는 일이 그녀를 눈으로 찾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그녀를 존중해준다는 이유로 사진은 일절 찍지 않았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그녀 노점에서 샀다. 그녀가 장날마다 벗겨내는 더덕이며 나물을 사며 사람들과의 대면을 기피하지 않고 생업에 몰두하는 그녀의 용기와 자긍심에 박수를 보냈다. 때로는 웃으며 건네주는 산나물과 거스름돈을 받을땐그녀의 손을 꼭 잡아보기도 했다. 

   어느 장날 용기를 내어 더덕껍질을 벗기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줍은 듯 함박웃음을 건네주는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진 찍어도 괜찮나요?” 쑥스러워 하는 그녀 표정을 화면가득 채우고 인터뷰를 했다. 여기에 그녀가 살아온 힘든 인생살이를 다 풀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콩나물시루를 등에 메고, 아이는 앞으로 업고 장에 나왔다는 어미의 애틋한 마음과 세상을 헤쳐가는 그의 용기를 전하고 싶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그녀에게 정선장터는 삶의 터전이었다. “요란스레 눈에 띄지 않아도 올 사람은 다 알아서 온다.”며 장날마다 묵묵히 더덕껍질을 벗기는 이숙란(49세)씨는 열심히 사는 것만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함께 업고 다니며 장사 했던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자랑하는 그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정선장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녀에게 정선장은 아들의 꿈을 키워주는 작은 세상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장에 나올 것이라는 이숙란씨와 같은 정선사람들의 힘이 모여 오늘의 정선장이 있지 않나 싶다. 

 

                                                                                                                                                                                                         사진. 글 / 정영신

'정선아리랑시장의 또 다른 풍경'

 

주차장 구역인 정선 아라리공원에서 아리랑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주변의 장터 풍경을 스케치하였다.

 

주말을 맞은 지난 8월17일의 정선은 마지막 피서 나온 인파들로 시장 주변이 큰 몸살을 앓았다.

주차장지역인 아라리공원 주변도 사람들이 많았으나 복잡한 장옥 지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휘늘어진 수양버들이 줄 지어 선 길가의 정취도 좋지만, 그네 터나 잔디밭 같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좋았다.

 

 

 정선아리랑시장으로 가는 길목 길목에는 외지의 장돌뱅이들이 몰려 또 다른 장터를 만들고 있었다.

갖가지 상품들을 진열해 손님을 맞고 있었지만, 정선아리랑시장의 경쟁력은 정선 땅에서 직접 수확한 농산물이다.

그 장돌뱅이 틈바구니에 농산물을 직접 갖고 나온 농민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성공한 정선아리랑시장의 명맥을 지켜나갈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농민들이 장터에 나와 농산물을 판매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중국이나 외지에서 들어 온 농산물이 시장을 잠식했다는 일부의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손 모자라는 농번기에 농민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외지 상인들에게 농산물을 넘기는 것보다는

시장협동조합에 넘기는 등의 방법을 모색해, 정선의 청정 농산물을 사려면 정선에 가야한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면 한다.

 

글.사진 / 조문호

 

 

 

 

 

 

 

 

 

 

 

 

 

 

 

 

 

 

 

 

 

 

 

 

 

 

 

 

 

 

 

 

 

 

 

 

 

 

 

 

 

 

 

 

 

 

 

 

 

 

 

 

 

 

 

 

 

 

 

 

 

 

 

 

 

 

 

 

지난 8월 17일의 정선 오일장은 토요일에다 피서 마지막 피크를 맞아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넓은 아라리공원 주차장도 차들로 빽빽하였고, 오가는 길과 시장 곳 곳에는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토요일 오후3시30분부터 공연되는 '양반전' 촬영하려고 바쁜 일 미루어두고 왔으나, 장날과 겹친 토요일이라 공연마져 없었다.

 

그동안 전국 장터를 촬영하러 다니며 그럴듯한 장옥보다는 난장들을 즐겨 찿았지만, 속된 말로 이게 난장판이었다. 
‘골목도서관’을 가는데도 시장 길을 통하지 않고 대로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골목도서관이 있는 반대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곧바로 파출소 앞의 시장길로 진입할 수 밖에 없어 사람들이 몰리는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시장구역 확대와 통로 다변화의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것 같다. 

 

몇일 전 사석에서 강기희씨와 함께  정선군청 산업계장께 건의하기도 했지만,  타 지역으로 가는 차들을 외곽으로 돌리고,

시장약국있는 대로변까지 난장을 만드는 방법이 최선일 것 같다. 그리고 장돌뱅이들이 자리 잡지 못하게 이름도 '할머니장터'로 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말 정선아리랑시장으로 재미있는 마당극 "양반전" 보러 가세요.

아라리촌문화사업단 주관으로 열리는 '양반전'은 주말을 이용하여 정선아리랑시장 공연장과 아라리촌 아라리 마당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 2주 공연이 끝나고 오는 24일과 31일 오후3시 30분부터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아라리촌에서는 8월25일과 9월1일 오후2시부터 각각 열립니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을 각색한 ‘마당극 양반전’은 정선아리랑군립예술단 상임단원이 주축이 되어 정선아리랑을 위시한 팔도아리랑을 소리구성의
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정선아리랑과 무속신앙인 굿을 접목하고, 젊은이들이 즐기는 랩까지 끌어들여 실험적으로 제작한 새로운 형태의 마당극입니다.
해학과 풍자를 마당극으로 풀어낸 '양반전'으로 마지막 무더위를 통쾌하게 날려 보냅시다.

무더운 여름철의 야외공연이었지만 시종일관 극에 함몰되어 신명을 풀어내는 출연진들의 열의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관람객들의 반응에 비해 공연기간이 짧아 아쉬움 감이 많은데, 마당극의 특성상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장기 공연이 이루어져 정선아리랑시장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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