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

 
                                              "상처를 안고 장터로 들어온 이숙란씨"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린 봄날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들을 등에 업고 꼬물꼬물 여린 잎을 밀어내는 여리디 여린 초록과 조우한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주는 자연과의 대화를 즐겼다. 얼굴을 들이밀어도 외면하지 않는 나무들과 만나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되어 버린 그녀 앞에 늘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었다. 어쩌면 새봄이 주는 갖가지 재미와 푸르런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햇볕에 불려나가 호젓하게 비를 맞아가면서도 냉이와 달래를 바구니 가득 캐왔다는 그녀다. 

 13년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냉이와 달래를 정선장에 갖고 나와 후미진 골목길에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사람들이 가격을 물어도 고개 숙인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얘기도 하고 거기에 미소까지 담아낸다.

 겨우내 땡땡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내리듯, 사시사철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밭에서 돈을 얻는 재미에 빠져 장날이면 읍내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는 그녀다. 신월리에서 읍내까지야 20~3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지만 그녀에게는 기나긴 여행이었을 것이다.

꿈 많은 12살 단발머리 소녀시절 홍역을 앓다 부모의 무지로 희귀병을 얻었다고 한다. 열이 심하게 나는 홍역으로 갑갑해하던 어린소녀가 물속에 수시로 몸을 담갔었는데, 그 때문에 다발성신경종이라는 희귀병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부모님이 병원에 한번이라도 데려가 치료받게 했다면 그녀 모습이 지금처럼 되었을까? 

   고개를 숙인 채 더덕껍질을 벗기고 있는 그녀를 본게 10년 전인 듯싶다. 그 이후부터 정선장에만 가면 제일먼저 하는 일이 그녀를 눈으로 찾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그녀를 존중해준다는 이유로 사진은 일절 찍지 않았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그녀 노점에서 샀다. 그녀가 장날마다 벗겨내는 더덕이며 나물을 사며 사람들과의 대면을 기피하지 않고 생업에 몰두하는 그녀의 용기와 자긍심에 박수를 보냈다. 때로는 웃으며 건네주는 산나물과 거스름돈을 받을땐그녀의 손을 꼭 잡아보기도 했다. 

   어느 장날 용기를 내어 더덕껍질을 벗기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줍은 듯 함박웃음을 건네주는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진 찍어도 괜찮나요?” 쑥스러워 하는 그녀 표정을 화면가득 채우고 인터뷰를 했다. 여기에 그녀가 살아온 힘든 인생살이를 다 풀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콩나물시루를 등에 메고, 아이는 앞으로 업고 장에 나왔다는 어미의 애틋한 마음과 세상을 헤쳐가는 그의 용기를 전하고 싶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그녀에게 정선장터는 삶의 터전이었다. “요란스레 눈에 띄지 않아도 올 사람은 다 알아서 온다.”며 장날마다 묵묵히 더덕껍질을 벗기는 이숙란(49세)씨는 열심히 사는 것만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함께 업고 다니며 장사 했던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자랑하는 그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정선장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녀에게 정선장은 아들의 꿈을 키워주는 작은 세상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장에 나올 것이라는 이숙란씨와 같은 정선사람들의 힘이 모여 오늘의 정선장이 있지 않나 싶다. 

 

                                                                                                                                                                                                         사진. 글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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