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장 마당의 흥행사 전제천씨"

 

 

 

       “사람들이 바보라고 해도 좋아요. 내가 좋아서하니까..."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사는 전제천(51세)씨를 만나 제일 먼저 들은 말이다.

3년 동안 한결같이 장날만 되면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해 온 그가 정말 바보일까?

동네서 약수 길어와 목마른 어르신들에게 물 갖다 드리고, 더위 먹은 노인이나 어린이들에게 모자 벗어 바람 일으켜 주고,

마당놀이에서 신명을 일구려 가진 애를 다 써는 그는 바보가 아니라 정선아리랑시장의 보배다.

요즘처럼 자기 돈밖에 모르는 각박한 세상에 아리랑시장을 위해, 아니 정선을 위해 누가 그렇게 봉사할 것인가?

나도 처음에는 장에서 춤추며 바람 잡는 그를 보며 신이 많은 사람쯤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그의 봉사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장에만 나오면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이었다.

어떻게 하면 장에 나 오신 어르신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선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호감을 사 다시 찾아오게 할까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떡을 치고 난 후 관객들에게 떡 나누어 줄때도 세심했다.

골고루 빠짐없이 맛보게 하기위해 컵에 가득 담아 몇몇 사람이 나누어 먹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웃기기 위해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하고, 한 마당이 끝나면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제스처 등 그가 하는 행동들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들을 마냥 즐겁게 한다.

 

 

첫 인상은 마치 덩치 큰 곰같이 미련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너무 순진하고 착하다.

덩치는 크지만 춤을 추거나 행동할 때 보면  날렵하다.

본래 봉산탈춤을 배웠는데, 정선아리랑 춤에 접목하다보니 깡충거리는 춤으로 굳어 졌다는 그의 말이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동기를 물었더니, 한동안 몸이 아파 혼자 외롭게 지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건강을 되찾으면 어떻게든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리기로 작정했단다.

어르신들을 위해 비롯된 시장에서의 봉사활동이 정선아리랑시장이 잘 되어야 어르신들이 즐길 놀이도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이젠 시장의 번창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낙동리에서 혼자 노모를 모시고 산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돈으로 연명할 것이니 집안형편이야 보나 마나다.

작년에는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이벤트를 벌여 추첨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텔레비전을 탔다고 한다.

경품으로 탄 텔레비전을 찌직거리는 옛날 TV와 바꾸었더니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더라는 것이다.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기도 감격해 눈물이 흐르더라는 것이다.

갑자기 나까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자신의 생계도 힘든 사람이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젠 정선아리랑시장 협동조합에서도 그를 한 식구로 여겨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

지금에야 중소기업청의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에 의해 지원 유지되지만,

마지막 3차년 도를 맞게 되는 내년이 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시장조합원들의 주머니를 털어야하고,

바로 전제천씨와 같이 정선아리랑시장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야 하니까...

 

틈이 나면 그가 사는 낙동리에도 한 번 들려 어머니와의 삶도 엿 볼 작정이다.

 

 

 

 

 

 

 

 

 

 

 


 

 

 

 

 

 

 

 

 

 

 

 

 

 


지난 해 여름 서울 녹번동 길거리를 지나치다 대조시장 상인대학을 개강한다는 현수막을 본 적이 있었다. 나름으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지만 잘 참여하지 않으니 상인대학으로 이름 붙였을 것이고, 교육내용도 정직이나 친철 등 상식적인 것일 텐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었다. 그 이후 여기저기에서 상인대학을 마련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현장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이번 정선아리랑시장 상인대학 개강식에 참석하면서도 "바쁜데 몇 명이나 나올까?"걱정하며 나갔는데, 강의실을 메운 수강생들의 열기 가득한 교육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에는 성공적으로 일을 추진해 온 하재은단장의 신뢰감과 이윤광조합장의 노력 등이 뒷받침 되었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인들의 주인의식이나 하나라도 배워 변해야겠다는 진지함에서 "이제 되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읽었다. 하기야 이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교육내용도 어렵고 복잡한 학술적인 연구가 아니었다. 우리 장터가 처한 문제점들을 다각적으로 다루었다. 한 예로 서로가 상품을 많이 진열하려고 통로를 막고 있는 문제를 물길의 흐름과 비교하여 사람들의 소통이 늦을수록 상품이 더 팔리지 않는 실례를 설명하였는데, 모두들 수긍하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이윤광조합장과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장 운영에 대한 문제들을 협의하는 모습을 보며 상인대학의 성공과 정선아리랑시장의 내일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8월 3일은 장돌뱅이 노릇 몇 년동안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새벽4시에 일어나 전라도 고창장으로 떠나야 하는데, 더워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을 꼬박 새운 채,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고창으로 출발했는데, 주행 중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진 쯤에서 차체에서 덜커덩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어5단이 작동되지 않아 4단으로 변속한 채, 90km정도로 서행하며 목적지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고창 톨게이트에서 통행료정산으로 잠시 정차하는 순간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어4단 이외는 모두 작동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동을 꺼트려가며 4단으로 출발하는 곡예를 반복한 끝에 정비소까지 어렵게 갔으나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참을 기다려서야 정비공들이 나왔는데, 미션을 내려 보더니 삼발이 파손에다 미션까지 타버려 견적이 75만원이나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객지에서 발이 묶인 상태라 수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구입한 자동차가 얼마 타지도 않았는데, 벌써 말썽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 날의 일정은 고창장에서 부터 시작하여 신태인장과 삼례장까지 돌기로 되어 있었으나

고창장에서 끝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거리가 만만치 않았으나 장터와 정비소를 오가며 독려한 결과 오후2시경 수리를 끝낼 수 있었으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고,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여름철에는 대개 일찍 장이 끝나 기대 할 수 없었지만 오는 길이라 신태인장에 들렸습니다.

 

 

신태인 장터에 도착하니 손님들은 아무도 없었고 장꾼들만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장사가 되지 않는데, 날씨도 덥고 불쾌지수까지 높으니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입니다.

거기다 술까지 마셔 놓으니 싸움 붙기 아주 좋은 상황이었지요.

하찮은 주차문제로 시비가 오가더니 갑자기 육박전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이 붙어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었으나 점차 사태가 험악해져 카메라를 내려야 했습니다.

둘만의 싸움에서 비롯되어 가족들의 싸움으로 비화되었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합세하는 난타전이 되어버렸습니다.

뒤늦게 상인회장의 개입으로 수습은 되었지만 결국 얼굴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생겼고,

진단서를 첨부하겠다는 피해자와 그냥 약이나 사 바르고 화해하라는 장꾼들의 만류가 이어졌습니다.

 

 

무더운 날 모두가 힘든 하루였습니다.

 

 

 

 

 

 

 

 

 

지난 7월 19일 전라도 고흥장에서 난생 처음보는 양산 모자를 팔고 있었다.


옹기장수가 부업으로 갖고 나온 상품인데, 상품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장사꾼의 상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땡볕아래 일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모자지만 모두들 구경만 하고 있으니 주변에 좌판을 벌인
여러 아낙들에게 양산 모자를 빌려주어 쓰게 하니 군중심리에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는 준비해 온 수박 한 통을 잘라 모자 빌려 쓴 아낙들에게 인심을 쓰니,
대부분의 아낙들이 양산 모자값 오천원을 내놓더라는 것이다.


전쟁이나 장사나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지난 7월 19일 전라도 벌교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이다.


할머니 다섯 분이 모여 술을 마셨는데, 안주도 없이 순식간에 막걸리 세병과 소주 네병을 해 치웠다.
기분좋아 마신 건 좋은데 장터를 한비퀴 돌아 와보니 함께 마시던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고,
체구가 적은 한 할머니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한 더위의 땡볕에 노출된 것이 걱정스러워 가까이 가 보니 눈을 깜빡거리시며 손을 내 저었다.
정신은 멀쩡한데, 어지러워 누워계시는 모양이었다.


 

술이 취하면 길거리에 누워 자는 나보다는 나았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이 일었다.

 

 

 

 


지난 6월25일 제주 세화장에서 만난 여인의 모습이다.

 

잔득 멋을 부리고 나와서는 장터에서 좌판을 벌인 아낙과 한 참 이야기하며 놀았다.
장에 팔 것도 살 것도 없는듯, 사람 만나 이야기하고 다니는 재미로 나온 것 같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게 인생인데 남을 말을 이렇쿵 저러쿵 하지 말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나누는 이야기들도 대부분 남의 이야기에 시간을 보냈다.

 

다시 거울을 보고는 유유히 걸어 간, 멋쟁이 그녀를 위하여 화이팅!

 

 

 

 


지난 7월22일에는 강원도 정선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간밤의 폭우는 만지산 '사진굿당'의 텃밭 축대를 무너트려 토마도가 흙에 파묻이는 피해를 주기도 했다.
축대를 복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정선장으로 나갔는데, 장터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붐볐다.
우산을 받혀들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장터 공연장에서 노래하며 신명나게 춤추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마침 공연장 옆 식당에서 하재은 단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점심식사 중이라 정선 황기막걸리도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귤암리의 최성월씨와 최연규씨도 장터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장터에서 이웃을 만나는 반가움은 또 다르다.
최연규씨와 함께 시장 특성화 사업단 집무실에 들려, 하단장으로 부터 임계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들을 수 있었다.
옛날 장옥을 재현해 장터에 대한 향수를 충족시키고, 정선장과는 또 다른 특성화로 임계의 농축산품들을 개발할 계획을
수립하였다는데, 그대로만 추진된다면 임계장도 정선아리랑시장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가는 길에 정선 아리랑시장에 잠시 들렸다.

허리를 다쳐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따랐지만, 비내리는 장터 풍경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비 때문인지 휴일인데도 장을 찾는 손님은 적었고, 장터 공연도 마무리 중이었다. 

그러나 비 오는 장터를 기록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은 달랐다. 

젊은 연인과 오붓한 가족들의 모습, 우산 행렬 등 닥치는 대로 카메라에 주워 담았다.

몇 일전 충무로 캐논 AS센터에 들렸다가 렌즈에 곰팡이가 자리 잡았으니 습기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비오는 장터 풍경이 카메라보다 더 중요해 어쩔 수가 없었다.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장보러 나오신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고맙습니다. 이 늙은이를 찍어줘서...'

대개 할머니들을 찍게 되면 묵묵부답이거나 "예쁜 젊은 사람이나 찍지 왜 늙은이를 찍느냐"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인사까지 주는 할머니가 고마워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주소까지 받아 적었다.

 

촬영이 끝난 후 '추억 만들기'를 운영하는 이창주씨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독립영화 '막걸리'제작에 대한 기획안을 듣고,

근일 간에 연극배우 이명희씨와 함께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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