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부터 대목장 촬영으로 전라도 해안지방에 6일간 다녀왔다.

여지껏 숱한 지방 나들이를 했지만 이번 촬영처럼 힘들고 성과 없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폭설로 앞당겨 출발한 것도 문제지만, 작업에 임할 때마다 지켜왔던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과,

오직 일에만 몰입해야하는 무술적인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떠나기 전에 촬영지 관공서에 문의할 일을 비롯해 준비할게 많은데,

갑자기 방문한 손님으로 일 순서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폭설까지 내려 너무 서둘렀던 것도 탈이다.

인사동에 들려 저녁이나 먹고 출발하라는 손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또 하나의 실수였다.

인사동에서 오후 아홉시에 출발하여 목적지인 해남장에 익일 오전7시에 도착하였으니 무려 열 시간을 눈길에서 헤메야 했고,

눈 내리는 장터 풍경을 연상하며 위안했던 기대도 산산히 깨졌다. 그 쪽 지역은 날씨가 포근해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시간의 변속 운전으로 오른쪽 어깨에 심한 근육통이 시작되었고, 아내는 눈병과 생리통에 시달리면서도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첫 도착지인 해남 우수영장에서 닭 잡아 파는 난전을 보며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숱한 닭 집 풍경들을 만나왔지만 그 날따라 웅크린 닭들이 주는 메시지가 달랐다.

한 곳에 몰입하다보면, 죽음에 질려 웅크린 닭처럼 불안에 떨 겨를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이판사판 후회도 후퇴도 없다는 각오가 일었다.

 

 

 

 

강진장은 장옥 안에 경품으로 내건 자동차가 진열되어 있었다. 변해가는 신판 장터 풍경이었다.

보성 회령과 복내를 거쳐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광양 옥곡장이다.

옥곡장은 일년전에 촬영했던 곳이지만, 아내가 광주은행 사보에 연재하게 될 첫 지역이라 주변 정보수집을 위한 행보였다.

옥곡장에 도착하니 이미 파장이라 한산하였고, 상인회장을 만나러 간 아내는 장꾼 몇 명과 어울려

숯불에 구운 조기를 안주로 소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아 시커멓게 탄 조기지만 한 마리 잡았는데, 어느 여인이 나를 찾아 왔다.

장에 돌아다니는 모습이 심상찮아 사주를 봐 주기 위해 찾았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이끌려 간 곳은 시장 변두리의 초라한 대폿집이었다.

점쟁이의 이름은 이영애(56세)씨 였고, 이십여 년 동안 그 곳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다.

나를 앉히고는 큰 숨을 내쉬며 손금을 보기 시작하더니 대뜸 내 뱉는 말이 "짜집기 인생이군" 했다.

“사람 좋아 사는 건 힘들지만 이름 석 자는 남기겠고, 올해부터 슬슬 풀린다”는 것이다.

점쟁이의 입에 발린 소리라 치부하면서도 풀린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복채로 막걸리 한 병만 사라지만, 찾아 나선 아내에게 불려 나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정신이 살짝 나간 팔자 센 무당이라"지만 막걸리 한 병 값 내놓지 못한게 영 게름직했다.

 

보성 예당장에서 시작하여 장흥 대덕, 영암, 완도장까지의 촬영은 순조롭게 마쳤으나 셋째 날 부터 고행이 시작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루 종일 찍은 곳이라고는 장이 들어서던 진도 의신장과 마지막 파장 무렵 찍은 고흥 동강장이 전부였다.

완도 고군장은 사라졌고, 군의장은 장날이 바뀌어 헛걸음 쳤다. 이동거리가 큰, 그 먼 거리를 헛 탕 친 것도 억울하지만

네비게이션마져 헷갈려 반나절을 뺑뺑 돌다 결국은 도선료 물고 배에 실려 고흥으로 나와야 했다.

"하다보면 이런 날도 있을 수 있다"는 아내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도 의신장, 이세재(62세)

 

다음날 첫 촬영지인 고흥 봉래면으로 차를 돌렸다.

봉래면은 우주위성발사 기지가 있는 지역으로 나로호의 성공발사를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TV도 신문도 보지 않는 우리로서는 그 현수막을 보며 위성발사가 성공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봉래면에 있는 조그만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 한 대 맞고 식당에 들렸더니, 봉래장은 새벽 5-6시에 장이 선다고 했다.

컴컴한 시간에 장이 열린다는 것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일찍 나와보았더니 칠흑같이 어둡고 추운 곳에서

꼼지락 꼼지락 짐을 챙기는 장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찍 와야 좋은 자리 잡제”라는 장꾼의 말에 정말 돈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섯째 날 첫 촬영지인 해남의 땅끝마을 송지장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던 눈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것도 운이 없었던지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곤 딱 한 장 얻은 게 전부였다.

보성장은 새 장옥이 거의 완공되어 입주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고, 옥곡장은 설이 지나면 장터를 변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새 장옥을 세운다고 했다. 그런 장옥 짓는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서둘러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꾼들이 외면하는 장옥짖기에 열을 올리는 지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장흥장에서는 여지껏 만난 장꾼중 나이가 제일 어린 백재훈(19세)군을 만났다.

일찍부터 아버지 일을 배운다는 백군의 착한 모습에서 사라져가는 장터의 마지막 희망과 새롭게 변해갈

내일의 장터를 그려본다.

 

 

2013.2.14

 

 

 

 


 

26일 새벽 네 시, 알람소리에 선잠을 깼다.
5박6일 동안 경상남도의 여러 장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는 차창에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별 문제될 건 없다.
카메라 젖을 우려 외에는 비 오는 날의 환경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데다,
현장감을 중시하는 다큐멘터리사진에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무주를 지나 덕유산 방향으로 달릴 무렵에야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검은 구름을 뚫고 내려 비치는 햇살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촬영길에 나설 때 마다 만나는 일출이지만 날씨와 장소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산하에 매번 감탄한다.
희망의 하루를 점쳐 주는 자연의 선물이지만 고속도로에 차를 세울 수 없어
보기만 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첫 촬영지는 합천군 묘산면에 소재한 조그만 시골 장터였다.
아침 여덟시에 당도하니, 조용한 장터로 "탱~탱~탱~" 굉음을 울리며 경운기 한 대가 들어온다.
할아버지의 경운기에 내다 팔 농산물과 더불어 할멈까지 태워 나오셨다.
촉촉하게 젖은 장바닥엔 몇 몇 사람만이 오 갈 뿐,
빈 장옥에 매달린 메주가 한가로운 시골 장터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업 현장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장터의 지형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촬영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대개 인근 건물 옥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루트를 알아내 아내의 촬영을 도와주고,
내가 필요한 장터 사람을 찾아 나서지만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 일이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난장을 벌이는 장소도 어울려야 하고,
찍어도 인적사항을 알려주지 않으면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산청의 생초장은 장에 사람이 없는데도 장옥을 짓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토목공사를 누가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남해에서 진주, 하동, 산청까지 여러 장터를 거쳐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함양 마천장을 마지막 장터로 정했으나 도착하니 벌써 장이 끝나 버렸다.
마천은 요즘 곶감 깎는 일손이 달려 오전에만 잠깐 장이 선다는데,
이처럼 김 빠지는 일도 더러 만난다.

“시간은 돈이다”란 말을 요즘처럼 절감한 적은 없다.
대개 여덟시에 개장해 오후 네시 무렵 끝나는 장터를 네 군데 정도 촬영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작은 면소재지 장들은 한 시간 정도면 작업을 마칠 수 있지만,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 아침식사는 건너뛰고 점심은 운전하며 군것질로 때우는게 일상처럼 되버렸다.
체력을 유지해 작업을 이어가려면 초저녁부터 쉬는게 좋은데, 그마저 맘대로 않된다.
둘째 날은 창원에서 사진가 조성제씨와의 약속이 있고,
다음 날은 마산에서 화가 이강용씨 아뜨리에 개업식에 참석해야하니 말이다.

이강용씨 개업식에 가서는 늦은 시간에 음식을 급하게 먹은게 탈인지,
그대로 식탁에 엎드려 잠든 게 탈인지, 다음 날 심한 복통을 앓았다.
아픈 배를 움켜지고 운전하며 “왜 이렇게 강행군을 하는지?” 자문해 본다.
장터가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한다는 절박함이 원인이었다.
작업하는 기록들은 후손들에게 남겨질 소중한 사료이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하다.
다큐멘터리사진에서는 사진가의 사명감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사명감이 없으면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들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장돌뱅이 노릇 일주일동안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찾아 간 스무 다섯 군데 장에서 열 명의 장터 사람들을 찍을 수 있었고,
아내는 경상남도 장터의 많은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번 장터 순례의 색 다른 풍경으로는 정치바람이 시골 장터까지 밀고 들어와
진종일 선거 유세 차량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다지 많지도 않은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별의 별 짓을 동원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선거 유세차량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뽕짝 스타일의 CM송이 죽여준다.
"인물도~ 정책도~ 박근혜가 죽여요!”

 

2012.12.4

 


 

지난해 12월 초순 경상남도의 통영장을 찾았습니다.
부산 하단장을 촬영한 후 가덕대교를 지나 해저터널 그리고 거가대교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습니다. 만원이나 하는 통행료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통영 주변의 섬들과 바다풍경을 여러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였습니다.

통영시 중앙동에 있는 통영전통시장은 오일마다 장이 서지만, 활어시장은 상설시장이었습니다.
특산물로는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통영 굴맛은 빼 놓을수가 없답니다.

통영시장을 돌아다니다 활어시장 뒷골목 언덕에 자리 잡은 “동피랑마을”을 찾았습니다.
구불구불한 시장 뒷골목을 오르다 보면 강구항이 한눈에 보이는 동피랑 마을이 나오는데,
그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달동내 같은 마을을 철거해 동포루를 만들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에서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 벽화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예술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알려지기 시작했고.
"착한 남자"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더하게 되었답니다.

요즘 지자체에서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시장에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는데,
유명세를 얻은 동피랑마을과 인접한 통영시장을 관광코스로 연결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3.12. 10

 

 

 

 

 

 

 

 

 

 

 

 

 

 

 

 

 

 

 

 

 

 

 

 

 

 

 

 

 

지난 9월26일부터 28일까지 추석 대목장을 촬영하기 위해 경북 점촌를 비롯하여 충청북도의 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시와 읍소재지장은 대목장 답게 사람들이 넘쳤으나 그 외의 장들은 명맥만 유지한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처지였고,
영동의 학산과 심천장은 이미 장이 서지않았습니다. 장돌뱅이들도 손님이 많은 큰 장만 찾아나서니 면소재지
주민들은 장을 하나로마트에서 보거나 아니면 인근의 큰 장을 찾아 나서야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음성군 삼성면에서 열린 대목장은 면소재지 장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옛 약장사를 연상케 하는 공연으로, 면사무소에서 상인들에게 상품을 각출하여 행사를 마련했답니다.
장터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행사를 마련했으나 주 관람객으로는 경노당에 계신 어르신들이 참석하여
이중 삼중으로 상품들을 타 갔는데, 재래시장 활성화에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시골에 사람이 없는데 공연하고 상품 준다고 될 일은 아니지요.

증평장에서 가수 하양수씨와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최종욱씨를 만났습니다.
정영신씨와 사전에 연락이 되어 찾아왔지만,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현장을 찾아 다니며 영화를 찍는 다는데,
어떤 영화인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20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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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는 엿장수를 만났어요.

 

 

 

동두천장에서 만난 엿장수는 엄청 신이 많은 각설이였습니다.

엿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해댔어요.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에는 계란이 두 판이라고 대답하고,

엿장수는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엔 강산이 세번 바뀌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멋진 놀음을 동영상으로 찍어 두었는데, 편집이되면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2013.3,11

 


21일 강풍을 동반한 봄비가 전라도 전역에 내렸습니다.
움직이는 차량이 흔들릴 정도의 강한 바람에 길가의 벗꽃들은 꽃비를 뿌리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영광 법성포장에는 조기로 엮은 굴비꽃이 가게마다 걸렸고,
나주 공산장으로 가는 길은 온 천지가 하얀 배꽃으로 뒤 덮혔습니다.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영산포의 홍어축제도 들렸습니다.
영산강변의 축제장은 노란 유채 꽃밭이었지만 비가 내려 텅 비었습니다.
홍어축제에 홍어는 맛 볼 수 없었고, 스피커에서 뽕짝 노래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지나치는 전라도 아낙이 던진 말이 재밋습니다.
"아따매 축제축제 말만 들었는디 세상에 홍어가 뭐간디 홍어축제까지 허고 난리당가잉"

2012.4.22

 

 


지난 20일 새벽4시에는 전라도 곡성군 석곡장으로 촬영여행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날 밤에는 김명성씨와 포장마차에서 새벽 두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라아트센터' 건축과 관련된 일들이 너무나 극적인 일들의 연속이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들었지요. 

함께했던 아내가 화장실 가는 길에 넘어졌습니다. 대수롭게 여겼으나 심하게 다쳤던 모양입니다. 
다쳤으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야 아는데, 입을 다물고 있으니 저도 깜빡 몰랐지요.
자신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아내의 마음을 알긴 하지만 너무 미련해 보였습니다.      
자리가 파하는 즉시 서부병원 응급실에 들려 응급조치한 후 곧 바로 전라도로 떠났습니다.

사정이 있으면 촬영스케줄을 연기할 수도 있으나, 일을 미룬다는 것은 그 만큼 늦어지고 
그 날에 있을 장면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미련하지만 밀어부쳤습니다.  
더군다나 21일은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따랐지만, 
비오는 날엔 비 오는 날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므로 더욱 미룰 수가 없었어요.

그럭 저럭 오전 촬영은 견딜 수 있었으나 오후가 되니 눈에 보이는 피사체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장으로 이동하는 운전은 정확한 판단보다 감으로 운전하는 모험이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석곡장의 정겨움과 남평장 사람들의 가식없는 표정에서 보람도 느꼈지요, 

처음 들린 석곡장에서는 손님들이 없어 새우잠을 자는 장꾼들이 유달리 눈에 띄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제 잠 안 자고 뭐했지? 혼자 흥얼거리면서도 편히 잠자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답니다.

 

201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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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도 되나요?

                                                                    지난 토요일 포천 신읍장에 갔더니 벌써 철쭉이 꽃망울을 터트렸어요.

장터 여기 저기에서 봄 내음이 묻어났습니다.

입 맛이 없는 요즘, 봄 나물이 나면 참기름에 비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시골 할머니가 직접 농사 지어 짰다는 참기름 한 병이 10,000원이라지만

어질게만 보이는 할머니의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장꾼들의 말은 숨쉬는 것 외는 전부 거짖이라는 말도 있지만,

장바닥엔 국산보다 중국산이 더 많으니까요.

만약에 그 참기름이 진짜라면 할머니를 불신했던 내가 더 나쁜 놈이 되겠지요.

할머니의 말씀을 믿지 못해,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믿고 물건을 살 수 없는 현실이 시골 장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랍니다.

 

2012.3.11

 

 


                  

               


어제 논산 연무장에서 만난 장면입니다.
장보러 온 두사람이 같은 벤취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지갑을 꺼내 돈을 확인하려 옆 사람의 눈치를 살피자
그 사람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제기랄 나도 돈 있어..

2012.3.19


장꾼이 한 두명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보령의 오창장을 가려고, 21일은 새벽부터 잠을 설쳤습니다.
오전 8시에 현장에 도착했는데, 면사무소 직원 말처럼 장꾼 두명이 장터를 지키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져 나온 것이라곤 무우말랭이와 우거지가 전부였습니다.
우리의 전통시장이 이렇게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유관순누나가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병천의 아우내장을 찾았습니다.

삼일절이라 여기 저기 태극기는 펄럭였지만, 장터가 역사적 공간이라는

사실 외에 가슴에 와 닿는건 없었지만, 그 날의 함성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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