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장에서 빰 맞고 영산장에서 화 푼다"는 말이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거나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등 장과 관련된 속어들이 많다. 그 만큼 가까운 지역끼리 돌아가는 오일장은 우리네 삶에 중요한 생활터전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장과 연결되었고, 지역 토박이 장돌뱅이들에게는 장의 성쇠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지난 보름 대목장 촬영지인 청도에서 만난 어느 장돌뱅이가 "영천장에서 울고 청도장에서 웃는다"는 말을 했다. 영천장에서는 장사가 되지 않았고 청도 새벽시장에서 재미를 보았다는 이야기인데, 장터를 찍는 우리도 같은 심정이기에 맞장구를 쳐준 적이 있다. 장사도 사람이 많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지만 사진도 마찬가지다. 날씨는 물론 주변상황에 따라 성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천 금호장과 신녕장은 조그만 지역에 거대한 장옥을 짓고 있었다. 요즘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옥을 짓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투자를 하여 고급스런 장옥들을 짓고 있다. 근사하게 지어 손님도 많고 장사만 잘된다면 좋으련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청송교도소가 있는 진보장은 객주와 아라리 난장을 쓴 소설가 김주영씨의 고향이라 진보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예산이 부족해 지붕도 못 올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신축 장옥도 "객주"의 배경지답게 옛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이라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잃어 버렸다. 그리고 서천 장황장은 외곽지역에 거대한 장옥을 지었으나 손님들이 없어 울상이다. 사람들이 장옥 주변의 난장에만 몰리고 장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입주 상인들은 장옥 입구에 비자루나 생활용품들을 널어놓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반면 청도장은 오래된 장옥이지만 컴컴한 새벽4시부터 서는 번개시장이 인기다. 농산물을 갖고 나오는 노인들과 상인들의 흥정으로 장터 입구는 새벽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인근지역인 부산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어떤 귀부인은 밴츠를 타고 와 할머니들이 갖고 나온 농산물들을 싹쓸이하기도 했고, 어떤 장돌뱅이는 자기가 갖고 온 중국산 도라지에 할머니의 국산도라지를 사서 뒤섞기도 하는 등 거래가 활발하지만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농민들은 새벽시장에서 농산물을 처분하고 일찍 돌아가는데 비해 장꾼들은 오후 늦게까지 장사를 하므로 다른 장에 비해 사람도 많고 거래도 많은 오일장이었다.

경산 하양장도 장옥 신축으로 하천변에 임시장터가 마련되었는데, 장꾼들도 많고 찾는 손님도 많았으나, 새 장옥으로 옮겨지면 어떨지 지켜 볼 일이다. 포항 송라장이나 죽장장은 사람들이 적어 머지않아 사라질 장터이지만 옛 장옥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다 날씨까지 받쳐주어 좋은 사진들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경주 양남장은 바닷가에 서는 몇 안 되는 장인데, 어물장수들이 생선찌꺼기를 바닷가에 버리자 갈매기가 떼거리로 몰려 와 장관을 이루었다.

이번 보름 대목장 순례는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진 긴 여행이었다. 별 어려움 없이 일정대로 마친 건 좋으나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가 주저앉아 당황했다. 그 것도 일을 끝낼 때까지 잘 버텨주다 서울톨게이트를 들어와서야 멈춰 섰다. 오랜 세월 너무 혹사시켜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자동차로 태어나 전국을 골고루 많이 달려보는 것이 자동차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행복이리라 위안도 해본다. 구급차에 실려 간 병원에서 모두들 폐차시키라는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새로이 구입할 형편도 못되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어 전국 장터 순례를 끝내는 올 연말까지만 버텨 달라고 빌어본다. 아직도 전국 600여 지역의 오일 장터 중 130여 곳이 남았지만, 예정대로만 진행되면 2013년 12월에 장터프로젝트의 전체 윤곽을 짤 수 있게 된다. 그 때 함께 고생한 자동차도 정선 만지산 자락에 영구히 보관할 계획이다.

2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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