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6일부터 나흘에 걸쳐 제주도 장터를 다녀 왔습니다.
한 달 전 부터 정한 스케줄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급한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밤을
꼬박 세우고도 모자라 승차권을 연장해 가며 정오 무렵에야 간신히 떠날 수 잇었습
니다. 하필이면 추운 날씨에 걸려 걱정을 했으나, 바람은 좀 매서워도 서울에 비하
면 따뜻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금방 눈이 오다, 비가
오고, 어느 사이 햇볕이 나와 촌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어요.

제주 민속장은 전국에서 두번째 큰 장이라 그런지 추운 날씨에도 장꾼들이 많이 몰렸고,
제주도는 늦은 김장철을 맞아 배추도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장터는 최근에 만든 창고식
철골구조물들로 이루어져 제주도만의 특색이 사라져 아쉬웠습니다. 없어진 오일장도
다섯군데나 되어 먼 길을 허탕치기도 했지만, 덕분에 제주 돌 문화 박물관에 들려 자연이
빚은 예술의 경이에 취하기도 했고, 눈 덮힌 한라산에서 얘들처럼 놀기도 했지요.

제주도 장터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바뀌었지만 제주도 방언을 쓰는 할망
들은 변하지 않았더군요. 사진촬영을 하다 배추도 팔고 사주도 보는 김옥선씨의 사주풀이
에 아내가 솔깃했는데, 그 할망이 정영신 사주나 보지 왜 가만있는 나를 끌어들여 입장
난처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나에게 포격이 집중된 사주풀이에 환호작약하며
쪽집게라는 말을 연발했지만 저는 쪽 팔렸습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 대장간을 운영하는
조대옥씨는 6.25전쟁 때 포탄이 터져 오른쪽 손가락이 세개나 날라갔는데도 망치질을
잘만 하더군요. 만드는 연장들은 해녀들이 해산물 딸 때 사용하는 갈구리가 주종을 이루
었어요. 이 토박이 장꾼들이 버티는 한, 오일 장터의 앞날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표선, 제주, 한림, 고성, 서귀포장은 잘 마무리를 하였으나, 못가 본 대정, 성산, 중문,
함덕장터는 내년 봄으로 미루고 정영신의 장을 말하다 '한국의 장터'1집 원고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림장 가는 길에 한림에 사는 인사동 동지 변순우씨를 만나 술 한 잔 하였습니다.
오랫만에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동백다방 옆에 있는 여왕벌에서 즐겁게 놀았
는데, 술 값을 변순우씨가 계산해 버려 마음이 영 편치 않았어요.
아무튼 순우씨 고마웠어요. 서울 올라 오면 내가 한 잔 살께...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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