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내가 어릴 적에 장(場)이 열리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칫날처럼 들썩거렸다. 안동 아재의 소달구지가 동구 밖에 이르면 깨순이 엄마 보따리가 제일 먼저 실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 보따리가 하나둘 올라가면 사방이 초록으로 덮인 신작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가다가 돌아왔다. 봄이면 들판에 앉아 있던 자연도 덩달아 장에 나와 그 지역만의 삶의 이야기를 초록빛으로 품어냈다. 후미진 장 골목에서는 갈퀴와 도리깨, 체와 쟁기를 만들었고, 정월 보름을 앞두고 농악놀이에 쓸 짚신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대장간 앞에는 날이 무뎌진 호미와 낫을 벼르려고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나온 박씨 아짐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였다. 또한 장터 끝 골목에는 엄마 따라온 삼식이가 새끼 돼지가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붙들고 동그마니 앉아 있었고, 털북숭이 복숭아를 머리에 이고 온 순덕이,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주근깨투성이 깨순이도 있었다.

이렇게 장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이 됐다. 지금 장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이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 장터가 살아야 한다. 장은 단순히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 장을 통해 소통하는 백성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일장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중략)

이 책은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기 소개한 장 말고도 지금 작업 중인 장이 열 곳이 넘는다. 30여년 전 흑백필름으로 작업했던 예전 장터 모습과 요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나 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 크게 말하자면 장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불과 55년 전인 1965년에는 버스비가 1원이었고, 쌀 한 말 값이 360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겨울철 구례 산동장에 가면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이처럼 장터는 그 지역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 한 폭의 풍속도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인정 넘치는 백성의 문화 공간이다.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5~7쪽>

『장에 가자』

정영신 지음│이숲 펴냄│248쪽│18,000원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

정영신 작가의 철칙은 장터에서 절대 카메라를 안 꺼내고, 항상 반나절은 할머니들과 이야기 나누고 사귀는 데 공들인다는 것이다. 사투리를 써서 외지사람이 아닌 것처럼 다가가는 것이 그 비법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있으면 자신도 바닥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할머니 말씀을 귀담아 들어 배우러 온 아랫사람임을 온몸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가가니 할머니들은 하나만 물어봐도 아주 상세하게 알려준다고 했다.

 

 

오일장 600곳 농촌여성의 삶 사진에 담다

어르신 우울증·치매 예방하는 장터의 순기능

고령사회, 귀농귀촌인과 농촌공동체 되살려야

 

정영신

농촌 할머니 희로애락 카메라에 담다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정영신 작가는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꿨다.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시면서, 많은 사람을 관찰할 수 있고 토속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600여 개 오일장을 찾아다녔다.

“카메라가방에 사탕과 담배만 넣어 다녔어요. 사탕과 담배만 있으면 장터 사람 모두와 친구가 됐죠. 장터에서 무슨 물건 팔고, 어디 구역 사람이 담배를 좋아하는지 사탕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죠.”

정영신씨는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말을 걸고, 점심을 먹고 있으면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인연을 만들어나간다고 했다. 할머니들과 친해지면 농장과 집에 놀러가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고 했다.

“할머니 얼굴에는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어요. 대화해보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자식자랑, 동네자랑을 해주시죠.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말속에는 할머니들의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장터사람들을 사귀어 놓고 나중에서야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니 정영신씨의 사진들은 하나 같이 인물의 표정과 행동이 자연스럽다. 지난 9월 정영신씨는 장터에서의 기록을 모아 ‘어머니의 땅’ 사진전을 개최하고 동명의 사진집을 냈다.

그러면서 정영신씨는 청년들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지 말고 동네 시장에 가서 할머니 손을 잡고 말을 붙여보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문학을 하기 위해 많은 할머니와 대화해본 결과, 책보다 더 많은 것을 할머니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할머니들도 자신을 아는 척 하고, 모르는 사람이어도 다가와 관심 가져주면 참 좋아하더라고 정영신씨는 말했다.

장터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장소

1980년대 장터는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구경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장 중에 장인 난장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마을에서 농사짓는 할머니가 하루 팔아서 재밌을 양 만큼만,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보따리에 갖고 온답니다. 욕심 없이 장에 오니까 한 번에 많이 파는 것도 싫어해요. 사람이 그리워 장에 나왔는데 좌판에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앉아 있냐고 그래요. 뭐라도 펴놔야 사람들이 구경하고 당신도 사람 구경하지 않겠냐 하십니다.”

할머니들은 집에만 있으면 다른 생각 들고, 텔레비전만 보게 되면 병나겠어서 적은 돈을 벌어도 장터에서 물건 파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장터는 농촌여성들이 왕이에요. 남자들은 차 안에만 들어가 있죠. 그래서 할머니들이 장에 나오는 걸 더 좋아하는 것 아닐까요? 집에만 있으면 남편 군소리만 듣는데, 장터에 나오면 내 세상이 되니까요.”

'어머니의 땅'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농촌여성 이름 알려 성평등 의식 높여야

할머니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서비스 마인드도 남성에 비해 어렵지 않게 표현한다. 손님들에게는 남성보다는 아직 여성에게 친절을 기대하고, 물건을 사고 싶은 심리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장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람도 여성이고, 농촌에서도 농사일을 연결해주는 사람은 여성인데 어째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공평하지 않은지 정영신씨는 의문을 품었다.

농촌 현실이 바뀌려면 정영신씨는 농사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촌여성들이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물건을 자신 있게 판매할 때 구매하는 손님도 즐겁다고 했다.

“장터에 직접 도토리묵을 쒀서 판매하는 자매 할머니를 만났어요. 가져오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나더라고요. 도토리묵 이름은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우리가 만들었다 말하고 끝이었어요. 맛이 좋으니까 인기리에 팔리는 건데, 두 사람의 이름 붙여서 도토리묵으로 팔면 손님들도 호칭 생겨서 더 애정을 가질 거라고 말했어요. 농사에 가치를 높이려면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진정한 자신의 상품이 되는 거니까요.”

정영신씨는 장터에서 농산물 팔 때도 지역명, 농장이름 붙이지 말고, 꼭 자신의 이름을 붙여야 더 즐겁게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방법을 소개했다.

귀농귀촌인과 소통해 농촌 고령화 극복해야

정영신씨는 앞으로는 과학이 농업에 접목되면서 농사짓는 사람이 최고인 세상이 될 거라고 봤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더 여유 있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농촌으로 옵니다. 귀농인들은 농사지으면서도 사람들 불러서 팜파티 열고 세미나 갖고 시낭송을 해요. 기존 농사짓던 원주민들은 바깥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농촌의 변화를 버거워 해요. 여러 이유가 갈등이 돼 귀농귀촌인을 배척합니다.”

자연 속에 살면서 농산물을 가꾸는 농업인들이 왜 행복하다는 말 대신 농사가 힘들고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지, 행복하다고 말하는 농업인은 없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농업인의 목소리가 장터에서 자주 들려온다고 했다.

“옛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농장에 가서 일손 보태며 두레로, 품앗이로 농사지으면서 시름을 잊었죠. 요즘은 할머니들이 혼자 농사짓고 혼자 논다고 말하세요. 농촌이 단절돼 갈수록 남편만 찾고, 자녀들에게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환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영신씨는 농촌이 고령화 되면서 전통시장이 위기라고 했다. 읍면에서 열리는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우리 죽으면 장도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했다.

대형마트 확산에 전통시장 지키려면…

농촌의 문제는 산적해있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은 계속 이어져야한다고 정영신씨는 말했다.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만 이용해서 장터에 갈 때마다 할머니들은 마트가 생겨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장사를 못한다고 하소연하세요.”

1만 원 어치만 사도 배송을 해주는데 할머니들은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 되나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거래를 장터는 끝까지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1000원짜리 머리빗을 사도 장터에 단골집만 찾는 손님을 맞이할 때, 하나를 사더라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할머니들은 어떻게 장을 안 나오겠냐며 말하세요. 자본주의 사회여도 장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정이 흐르는 장소로, 물건만 바뀔 뿐 장터를 이용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농촌여성신문 / 민동주기자

 

'코리안 타임스' '어머니의 땅' 인터뷰 기사

[출처] 인터뷰 – 정영신 사진작가 “장터는 사람과 정이 흐르는 삶의 현장”|작성자 인사동 이야기

인터넷에 떠도는 작가 미상의 1950년대 장터 주막이다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 사진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오는 11 9일부터 1231일까지 열리는데,

한 달 더 연장될 수도 있단다.

 

정영신사진, 1990년 순창장

 

얼마전 인사동에서 열린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전시장에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와 돈의문박물관마을전시팀장 전영주씨가 오셨더라.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사진전을 두 달간 열고 싶다는데,

작가 출품비까지 준다기에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런데, 도대체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어디 있는 곳인가?

그동안 어지간히 졸랑거리며 다녔는데, 모른다는 게 남세스러웠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품은 곳이었다.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으로 재탄생한 도심 속 마을의 역사적 문화공간이라는 것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 '돈의문 뉴타운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의 건물을 모두 허물어 근린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새문안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마을의 삶과 기억이 보존된 작은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남겨 시민의 문화 자산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마을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 했으나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었다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을 그 자리에 남겼다.

많은 시민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박원순 시장 재임 시 만들었으나 홍보가 미흡했는지

아직 서울시민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100기억의 보관소’ 컨셉으로

새롭게 단장을 마쳐 시민들을 맞이한 것이다.

40개 동의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면서 본래 조성 취지인 

'살아있는 박물관마을'이라는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 년 내내 전시체험공연마켓 등이 열리는 '참여형공간으로 채워

전면 재정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찾아가는 길은 정동길 따라 올라가면 '경향신문사'가 있고

그 건너편 큰길 건너에 '강북삼성병원'이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바로 옆행촌동 넘어가는 좁은 골목길 건너편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이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이 있던 자리였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자리는 1920년대 세워진 초기 유한양행 자리였고,

그곳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사셨던 경교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강북삼성병원뒤쪽 주차장 입구에 초라하게 남아있다.

경교장은 1968년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이 그곳에 터를 잡았고

이후 2014그 일대는 돈의문 뉴타운이 건설되면서 재개발을 하게 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자리는 원래 근린공원 부지였으나

개발 계획이 바뀌어 박물관마을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새문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동네로 불렸다고 한다.

 

네비의 안내에 따라 가보았더니,

주말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문득 북촌한옥마을이 떠 올랐는데,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었다.

오래된 주택과 좁은 골목가파른 계단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잊혀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목마가 반겼고, 간첩을 신고하는 딱지가 보였고,

한 번쯤 들려본 것 같은 극장간판도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어린이 하면 생각나는 인물,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스토리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태어난 곳과 생애 마지막을 보낸 곳은 돈의문 박물관에서 매우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는 '돈의문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관은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네 개 건물로 분산되어 있었다.

그리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월요일이 휴관이란 걸 잊지 마시라.

 

돈의문 박물관 전시장을 찾아가니, 전시팀장 전영주씨가 반겼다.

전시 공간은 작가들 전시장으로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으며 효과적으로 우리 장터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점으로 남은 것은 주말마다 작가가 나와

엽서에 서명해주는 시간을 만들려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서울시와 협의를 해야 하고.

장터 사진집은 물론, 이야기 그림책조차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 말라면 안 하면 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운영자들의 생각이 안타까웠다.

 

아무튼, 전시 기간에는 사진인 보다 부모들이 자식들 손 잡고 와 주시면,

자식들에게 엄마 아빠가 살았던 예전 모습을 자식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하시라!

사라져 가는 장터의 추억을...

 

사진, / 조문호

 

 



 

할 일 없이 인터넷에 기웃거리다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을 만났다.

페이스북 ‘Designersparty’에 올라온 구한말 사진들인데,

그 중에는 장시의 원조로 볼 수 있는 장터사진들이 있었다.

    


 



그동안 장터 사진가 정영신씨 따라 다니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장터 풍정에 속이 뒤집혔다.

세월 따라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으나.

불과 20-30년 전의 장옥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의 장터 살리자는 태풍에 순식간에 다 날아 가버린 것이다.

최소한 한 곳은 남겨야 하는데, 씨를 말려버렸다.

이젠 오래된 장터풍경은 정영신씨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장터박물관이라도 만들어, 한 군데라도 본래의 기능을 이어 가야 한다.



    

 

머지않아 사람 만나 물건 사고 파는 시대는 끝날 것 같다.

이미 인터넷으로 돈과 물건만 오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정은 커녕, 사람조차 만나지 않게 되었으니, 삭막할 뿐이다.

재미없는 세상일수록, 그 때가 그리울 것이다.



 


퍼 옮긴 사진들을 한 번 살펴보라.

밥집 툇마루에 앉아 밥 먹는 아낙네도 보이고,

갓 만드는 사람보다, 사진기 처다 보는 애들 눈길이 더 낯설다.





소등에 쌓아 올린 장작더미나, 옹기장수 등짐은 조각 작품처럼 멋지다.

다들 가난은 몸에 베었으나, 정은 흘러 넘쳤을 것 같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에 배가 고프다.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창내장과 광화문 비각 앞의 장작 시장도 있고, 대구장, 통영장, 함흥 장터 등 대개가 1898년도부터 1937년 사이에 기록된 장터풍경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록한 사진가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 중에는 사진가 게리 스티븐스를 비롯하여 호주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권순형씨, 그리고 캐나다 출신의 Macrae DM 선교사. George Rose 선교사가 찍은 사진은 네 장 뿐이다.

이 사진은 Designersparty에서 스크랩했으나, 포토샵에서 조금 다듬었다.

 
















지난 22일, 오류고등학교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강연회에 정영신씨가 초청되었다.
오류고등학교의 미술교사인 화가 이운구선생의 요청에 의한 강의였는데,
매년 한 차례씩 문화예술인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그날 강의는 정영신씨가 초청되었지만, 마음은 동자동에 사는 내가 더 바빴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리는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까까머리 남학생의 입장으로서는 여고가 선망의 궁전이 아니었던가.




오류고등학교에 도착하여 이운구선생의 안내로 교장실에 들려 차 한 잔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임국택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박인옥 교감, 박찬희 행정실장 등 몇몇 선생님과 인사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탈한 인상처럼, 후덕한 교장선생님의 소박한 꿈에 존경감이 일었다

.



얼마 후 정년퇴임하면 양평 방면에 거처를 두고 변두리 시골장터에서 장사 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유명 예술인을 제쳐 두고, 정영신씨의 ‘전국5일 장터이야기, 그들의 삶과 애환’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사실상, 기계처럼 인성이 메말라가는 학생들에게 아주 적절한 강의로 여겨졌다.




시간이 되어 강의 장소인 오류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영신씨는 여러 차례 강연에 다닌 경험이 있어 별 다른 걱정은 안 했으나,
그 많은 장터이야기중 무엇을 들려줄지 궁금했는데, 정해진 시간이 너무 짧을 것 같았다.




강의실에는 2-3백여명의 여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끼리끼리 나누는 웅성거림이 마치 난장 같았다.
마침, 그 날이 대학 시험 발표 날이라는데,
오류고 재학생 중에 서울대학교에 세 명의 학생이 합격해, 모두들 마음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강의가 시작되었으나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낯 선 장터이야기는 관심 밖이었다.
요즘의 교육현장을 처음 지켜보는 터라 참담함이 일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일선에서 일하는 선생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앞 서 보낸 PDF의 한글 자막이 알 수없는 기호로 나타났다.
잘 아는 사안이라 강의는 진행할 수 있었으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아 강사가 버벅댔다.
강의하는 정영신씨도 난처했지만, 나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을 모우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으로 유도했으나, 잘 먹히지 않았다.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줄 장터사진집까지 챙겼으나, 다들 빨리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강의는 마쳤지만, 얼마나 마음 조려 지켜보았는지, 기록사진 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강의하는 사진은 한 장 찍었으나, 그마저 초점이 빗나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이운구 선생으로부터 힘든 교육현실을 들었는데, 오늘은 그중 양호한 편이란다.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도 많았으나, 일부 학생들의 수군거림에 파묻힌 것 같았다.
뒤늦게 정영신씨의 ‘한국의 장터’ 블로그에 올라 온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학생들의 댓글에 위안은 가졌으나,
학생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강사의 책임도 따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강한 리드 쉽을 사전에 익히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무엇하랴!
명강사가 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MBC 잠깐만 캠페인]

 

지난 3월9일부터 15일까지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전국5일장 순례기의 저자 정영신씨가 방송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많은 관심바랍니다. 아래는 캠페인 일정과 방송내용입니다.

 

 

[MBC 잠깐만 캠페인1] 장터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 / 3월 9일 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어느날 부턴가 무작정

푸근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우리네 장터를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5일장을 다니며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었는데요,

 

경기도 강화 풍물장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팔아오신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사는 거‘라구요.

 

장터에는 쉬지 않는 삶이 있고,

돈보다 귀한 사람살이의 정이 숨어 있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이나 다름 없습니다.

 

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2]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다. / 3월 10일 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요즘 많이들 가는 대형 할인점과는 달리

장터에서는 물건보다 사람이 중심입니다.

 

흥정을 하고 덤을 주고 받을 때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요,

시골 장은 상품도 사고 팔지만,

훈훈한 인정도 함께 나누는 곳이죠.

 

어느 장터에서나 들리는

가장 우렁찬 소리는 뻥튀기 가게의

‘뻥~’하는 소리인데요,

이웃과의 정도 정감어린 이 소리에 맞춰서

더욱 커지고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3] 글쓰는 할머니 / 3월 11일 수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몇 해전, 진해 경화장터에서

야채 파는 전찬애 할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장사를 하다 말고 할머니는

종이에다 뭔가를 열심히 쓰셨는데요,

알고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터에서 일하며

힘들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글을 쓰면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고 해요.

 

평생 장-돌뱅이로 살아온 분들 중에

숱한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낸 경우가 많은데요,

그 분들의 생생한 장터 인생 이야기에서

세상 살이를 배워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4] 사람을 만나러 장터에 나오다 /  3월 12일 목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하루는 충북 진천장에서

홍시감 몇 개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에게 여쭤봤어요.

'할머니, 이거 팔려고 장에 까지 나오셨어요? '

 

할머니는 ‘그냥 사람들 보고 싶은 마음에

나와봤어~~‘ 하시더라구요.

시골 장터에는 장날이 유일한 외출이고,

장에 나와야 친구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와 얼굴 보는 일보다는

문자나 전화에 익숙해져가는 시대지만,

장터 곳곳에서는 늘 반가운 만남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5 정도단 할머니 / 3월 13일 금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노래와 춤이 취미라는

정도단 할머니를 만난건

전남 진도 오일장에서 였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손을 펼쳐 보이셨어요.

한 평생 맨손으로 칡을 캐는 바람에

거친 갈퀴손이 됐지만,

어머니로써 부끄럽지 않은 손이었죠.

 

우리네 시골 장터는 정 할머니 처럼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아낸 이들의

땀과 눈물이 보석같이 빛나는 곳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6] 어릴적 장날은 축제날 / 3월 14일 토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장날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어요.

 

하얀 고무신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어르신들 뒤로

장에 따라나설 때면,

얼굴엔 늘 웃음꽃이 피었는데요,

 

5일 마다 열리는 시골장의 정겨움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달콤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나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7] 시골 장터의 봄날 풍경 / 3월 15일 일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 장터에서는 봄소식을

봄꽃이 아닌 봄나물이 전해줍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원추리와 돌나물, 씀바귀...

이런 것들로 봄날 장터에는

봄나물 향기가 가득하지요.

 

겨울에 들렀던 경기 안성 5일장에는

봄나물을 캐 둘테니

봄에 꼭 다시 오라는 인정 많은

할머니도 계셨는데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봄나물 향기 맡으러 시골 장터로

향해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눈 맞추며 칭찬하면 첫사랑 이야기도 듣게 돼요”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한겨례 21 제1051호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정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은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은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1

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의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정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30여년동안 전국의 522개 장을 모두 다니며 촬영한 정선의 향토작가 정영신씨가 촬영하고 글을 쓴 `전국 5일장 순례기'가 눈빛 포토에세이 제5편으로 출간됐다. 이번 책에는 태백 철암장, 동해 북평장, 고성 거진장, 삼척 도계장 등을 비롯해 전국 8도 50곳의 5일장 스토리가 담겨있다.눈빛 刊. 255쪽. 1만5,000원.

최영재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