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자동 거지들의 입이 코에 걸렸다.
날씨가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꾼들이 다 모였기 때문이다.
술을 쌀쌀할 때만 마시는 건 아니지만, 추워야 제 맛이 난다.
술이 고파 한 잔, 떨려 한 잔, 하다보면 춘 삼월이 다 오간다.





대부분 추운 겨울을 더 걱정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다.
요즘 없는 놈들은 여름이 더 힘들다.
아무리 쪽방이지만 전기장판만 있으면 추운 줄 모르지만,
여름철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고, 술 마시기도 지랄같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쪽방촌에 구호의 손길이 이어졌다.
몇일 전에는 '대한적십자사'와 '용산복지재단'에서 김치를 나누어주었고,
KT에서는 겨울 옷가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거지 상팔자라는 옛 말이 실감나는데,
이런 온정이 없는 자들에 골고루 나누어지는지 모르겠다.






지난21일에는, 이틀 동안 정영신씨 장터여행길 가방 모찌로 따라나섰다.
경상북도 군위에서 영덕을 두루 거쳐, 밤늦게 돌아와 잤는데,
이것도 나이라고, 늦잠에 빠져버렸다.
후닥닥 나갔으나, 화요일의 먹거리배급은 종쳐 버렸다.





다 떠나버리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던 이준기가 날 반긴다.
“행님! 오데 갔다 이제 오요?” 죽은 기집 살아온 듯 반기면서,
목발로 쩔뚝거리며 매점에 가서 뚜꺼비 한 마리를 잡아왔다.






컵 두개에 나누어 부어  단판에 끝낼 기세다..
이준기는 원 샷을 했지만, 따라했다간 죽는다.
시름시름 마셨더니, 지루한지 준기가 캐물었다.






“행님 요새는 와 인터넷에 사진 안 올리는 기요?”
올리는 걸 싫어하는 놈도 있다고 했더니,
“그 자슥 사진은 빼 버리고 올리마 안 됩니꺼? 라며 투덜댔다.
오늘 올리겠다고 했더니, 공짜로 머리 깎아 주는 곳이 있단다.






술이 부족해, 막걸리 두 병 사들고, 노숙천사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유정희가 병원에 납치된 후로 조용술이 물러 받았는데,
쪽재비와 병학이를 비롯한 여섯 명이 술내기 화투짝을 돌리고 있었다.





화투와 거리가 먼 놈은 조용술이 뿐이라 둘이서 홀짝거렸다.
용술이는 참 착하다.






노가다로 하루 나가고 하루 쉬는데,
그 돈으로 어려운 친구들 술도 사주고, 고스톱 밑천도 대준다.
없는 놈들의 진득한 인정을 있는 놈들은 잘 모른다.
돈이란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유일한 희귀종이다.






“나이는 몇 살이고?”라고 물었더니, 제 나이도 잊었단다.
61년생 소띠라는데, 바뀌는 나이는 기억해 뭘 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력만 간 게 아니라, 정력까지 갔단다.
한참 꽃 띠에 거시기가 말을 안 듣다니, 귀가 막혔다.
하기야!~ 풀 곳도 없는데, 선들 어디에 쓸소냐?






여자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던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CCTV가 작동 중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사람만 나타나면 반복했는데, 머리 위에는 CCTV가 내려보고 있었다.
아! 기분 더럽더라. 24시간 감시당하는 곳에서 산다는 게..
술김에 욕을 퍼부었다. “야이 씨발 년아~ 사람이 쓰레기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6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의 화요카페에서 식품을 나누어 주는 날이다.
모처럼 시간이 맞아 배급장소인 ‘새꿈어린이공원’으로 나갔는데, 주민들이 30분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날 나누어 줄 식품은 고구마라는데, 220명에게 나누어 줄 분량이라 했다.
줄 선 인원을 짐작할 수 없어 차례를 기다렸으나,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줄도 서지 않고 돌아 다니던 김창헌씨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 걸었다.
이 친구는 한 동안 사라졌다가 올 추석 무렵에야 나타났다.
듣기로는 교도소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확인 차 물었다.
어제는 새벽 두시에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했다.






“일 년 2개월 동안 도대체 어디 갔다 왔어?”
“빵에 갔다 왔지”
“무슨 죄로 갔냐?”고 물었더니 “집시법 위반”이란다.
거짓말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하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만 했다.
페이스북을 자기가 개발했다는 둥, 내일 히말라야로 떠난다는 둥,
대통령 전용기로 간다는 둥, 횡설수설해댔다. 아무래도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작년에는 멀쩡했던 사람이 일 년 남짓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침 지나가는 김용만씨를 만나 프린트 해둔 사진을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또 한사람 전해주지 못한 유정희씨를 찾았는데, 병원에 입원한지가 한 달가량 되었다는 것이다.
동자동에서 보이지 않으면, 교도소에 갔거나 병원에 수용된 것이다.
교도소에 간 사람은 언젠가는 나타나지만, 병원에 간 사람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






시간이 되어 고구마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줄이 줄지 않았다.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 왔으나, 나누어 주던 고구마는 소진되고 없었다.
내 뒤에도 백 명 가까이 줄 서 기다렸는데, 다들 허탕 친 것이다.
줄 세우기는 매번 타는 사람만 타는 불공평한 나눔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처사라 한사코 반대해 왔지만, 잘 시정되지 않는다.






몇일 전 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주민자치회의에 참석하였더니, 김갑록소장이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화요카페의 식료품은 봉사단체에서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매번 200명 정도의 분량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분은 방문하여 나누어주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매 주 나누어 주는 것을 한 달에 한번으로 조정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주민들을 네 파트로 나누어 첫째 화요일이나 둘째 화요일 등 해당되는 화요일에 찾아가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좀 더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줄 세우기만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자꾸 하면 싫다는데, 언제까지 이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
제발 ‘줄 세우지 말라’는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 다오.

거지 배급주는 꼴로 그렇게도  생색내고 싶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은 노숙자 김지은씨 만나러 서울역에 나갔다.
만나기만하면 사진 달라고 빚쟁이처럼 졸라대, 어렵사리 사진을 프린트해 두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태극기부대가 소란을 떨어 다음 날 갔는데, 마침 서울역광장에서 패션쇼가 열리고 있었다.






김지은씨는 자리를 치워주지 않고, 행사장 한 쪽 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간이침대에다 비치파라솔 아닌 우산까지 세워 오야봉 가오를 세웠다.
사진을 주었더니, 누가 훔쳐 보기라도 할까 돌아서서 열심히 살펴보았다.
이 친구는 패션에 꽤 신경 쓰는 편인데, 한 수 배울 작정인지 쇼를 기다렸다.






고등학생들의 패션 컨테스트 수상작을 선 보이는 자리라, 나도 자리 잡고 앉았다.
군데군데 노숙자들도 많았지만, 멋쟁이 패션디자이너들도 많이 보이더라.
홍익대 패션대학원 원장인 이상봉씨 모습도 보였다.






올해로 3회째인 '365패션쇼'는 '고교패션 컨테스트'에서 수상한
고등학생 디자이너 60명의 독창성과 개성이 담긴 작품이었다.

K-패션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꿈이 시작되는 뜻 깊은 자리였다.






가수들이 한 판 놀고나니, 수상 작을 몸에 걸치고 런웨이로 모델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는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파격적이었다. 김지은씨가 좋아할 스타일도 많았다.






“야! 이거 미친년 패션 아이가?”
지켜보던 노숙자 영덕이가 내뱉자 지은이가 조용히 충고한다.
“촌놈! 니가 패션을 아냐? 이건 쥑이는 패션이야”

앞날의 유행을 예견 한 듯, "앞으론 저런 패션이 유행할끼라 " 한다.






멋진 패션쇼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억수로 재수 좋은 날이었다.
고등학생 솜씨가 저 정도이니, 사회에 진출하면 다들 한 가락씩 할 것 같았다.
행인들은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았지만, 노숙자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 관심 없는 듯 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나 술이 더 필요했다.





몇몇이 둘러앉아 있었지만, 술이 떨어져 빈병만 쳐다보고 있었다.
주머니 뒤져 천 원짜리 석장 꺼내, 막걸리 두병 적선했다.






농담으로 분위기도 띄웠다.
“우리도 내일 서울역에서 노숙자 패션쇼 한 번 합시다.
어디 뒤풀이 술상 차려 줄 협찬사나 한 번 알아볼까?“


사진, 글 / 조문호
















































































'






서울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서울역노숙인상담소'로 명칭을 바꾸고,

동자동 쪽방에 대한 지원 업무는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민등록지도 없는 노숙인들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상담소가

쪽방의 이름을 달고 빈민들을 거지로 길들이며, 자괴감만 높이고 있는 것이다.





'쪽방상담소'는 지난 2000년 당시 대통령 업무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현행법상 명시되거나 규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국적으로 열 곳이 있지만, 서울지역은 서울역, 돈의동, 동대문, 남대문, 영등포 등 다섯 곳으로

서울시와 각 소속 구청의 지원 아래 위탁 운영되고 있다.

상담을 통한 진로 문제를 주요 사업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쪽방 촌은 한 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보통 방 하나가 0.8평에서 1평 정도의 크기로 겨우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정도로 매우 좁다. 

7년 전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4개 구 9개 동의 287개 건물에 총 3,504개의 쪽방이 있다고 한다.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은 3,201명으로 그중 삼분의 일이 서울역에 인접한 동자동에 몰려있다. 





거주민의 약 40%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며, 홀몸노인과 장애인이 약 45% 정도를 차지한다. 

보통 방세는 일세와 월세로 계산되는데, 일세의 경우 하루에 만원, 월세의 경우 20만원대 초반 정도의 수준이다. 

쪽방촌 거주민들의 대다수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절반이 넘는 약 54%의 가구가 휴대용 버너로 취사를 한다.







그동안 ‘서울역쪽방상담소’의 활동을 2년 넘게 지켜보며, 문제점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 왔다.
특히 보내 온 물품을 수시로 줄 세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주민들의 타자화로 자립심을 잃게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일하는 이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수현씨가 소장으로 있을 때, 주민들 줄 세우지 말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한 결과 조금씩 개선되어 갔다.

그러나 올 2월 ‘온누리복지재단’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고, 김갑록 소장이 부임하며, 오히려 전보다 더 못해진 것이다.

보여주기 위해 쪽방촌을 찾는 정치권 인사들 안내자 역활에 더 충실해 보였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찾아가게 하는 밑반찬 지원이 사라졌고,
‘화요카페’라는 이름을 단, 식품들을 줄 세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한 번은 계란10개, 한 번은 라면5개식으로 화요일마다 나누어 주었는데, 쪽방 사람들에게는 밑반찬 지원이 더 절실하다.
주방 없는 쪽방의 살림살이는 김치나 짱아치 등의 밑반찬이 더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민들의 필요보다, 보여주기 좋고 손 쉬운 그들의 생각이 중요했던 것 같다.






그 것도, 전 처럼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가는 게 아니고, 거지 구호물품 나누어 주듯 시간을 정해 줄 세웠다.
그렇게 생색을 내고 싶고, 그리도 갑 질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더구나 올 여름은 날씨가 얼마나 더웠나?
그 땡볕에 노약자들을 한 시간 이상 줄서서 기다리게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제발! 빈민들을 거지로 보지 말고, 주민으로 보아 달라.
주민을 타자화 시키는 이런 짓거리야 말로 개가 들어도 웃을, 시대에 뒤 떨어진 일이다.






앞으로는 날짜를 정해 주민들이 직접 찾아가게 하고, 찾아가지 않는 분은 전화를 해야 한다.
고독사가 잦은 쪽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늘 상 받는 사람만 받아가고, 몸이 불편하거나 정보가 어두운 분은 매번 소외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한가위 공동차례상도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추석 당일에 지낼 제사를 삼일이나 앞 당겨 지낸다는 게 말이 되냐?
직원들도 명절에 쉬어야한다면, 제사를 주민자치회에 넘기면 될 것 아닌가?
증거자료로 사진이 필요하다면, 부탁만 하면 얼마든지 찍어 줄 수 있다.






정수현씨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소장으로 있던 지난 명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명절 당일 제사를 치 루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주민들이 다 같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때 나왔던 상담소 직원은 고향도 없고, 가족이 없어 나온 것이 아니다.
주민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편한 밥벌이로 여기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이 맡아 한다면 책임의식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가지 대안으로, 공무원 중 한 명을 소장으로 발령하여 족방촌에 파견할 것을 서울시에 제안한다.
그의 책임아래 동네 인력을 활용하거나, 주민자치회를 활성화해 운영하라는 것이다.
'쪽방상담소'는 '노숙인상담소'로 명칭을 바꾸어, 본래의 취지대로 노숙인 상담과 진로에 전념하게 하라.

그리고 쪽방 지원 업무 전부를 동사무소에 통합시켜, 빈민을 차별화 하지마라.





빈민들은 짐승이 아니다. 제발 사람대접 좀 해다오.



조문호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인간성과 정은 메말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정을 나누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걸,
동자동 추석 한마당 잔치를 보며, 다시 한 번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닌 돈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추석을 이틀 앞 둔, 지난 22일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동자동 주민 잔치가 열렸다.
다 같이 명절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올 해로 아홉 번째인 이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했다.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주민들의 손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가난한 사람들 끼리 함께 나누고, 즐기는 좋은 자리다.






투호, 윶놀이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노래자랑까지 즐기고,
닭개장, 송편, 파전, 돼지고기에다 반주까지 곁들인 잔치상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걸 보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렀다.






사실 가난한 쪽방주민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더 어려운 노숙자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동자동에서 이 행사를 맞은 지가 벌써 세 번째지만, 해마다 연이 맞지 않았다.
첫 번째는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고,
두 번째는 행사 날 전해주기로 한 사진 제작이 늦어 못 보고 말았다.
그 이튿날 별도의 빨래줄 전시로 약속은 지켰지만...





올 어버이날 행사 때도,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나누어 주었지만,
사랑방 조합 이사 한 분의 시비로 더 이상 빨래줄 전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찍을 때마다 수시로 사진을 만들어 주기로 했으나, 그게 말 처럼 싶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를 하면 억지라도 밀어붙여, 한꺼번에 사진을 만들지만,
거지 주제에 수시로 사진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빚쟁이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은 언제 주냐고 물었고,
잔치에서는 사진전시는 왜 안 하냐고 물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다음에~만 노래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칫하면 추석 잔치를 놓칠 뻔했다.
의례 추석 전 날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틀 전으로 바뀐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날이 토요일이라 빵 타러 공원에 내려갔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받은 빵은 먹을 틈도 없이, 반가운 사람만나 인사 나누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
봉사하는 주민들은 음식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다들 맛있게 먹었다. 






난, 배가 고프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먹을 시간도 없지만, 먹는 게 귀찮았다.
이 쯤 되면 밥 숟가락 놓고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사가 끝나면 방에 올라가 빵으로 해결할 작정이었는데,
나를 눈여겨 본 사랑방 선동수간사께서 나를 위해 한 상 차려 온 것이다.
곧 노래자랑 할 시간이라 먹을 시간이 빠듯했지만, 너무 고마웠다.






따뜻한 배려에 감동 받아,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았는데,
시간이 없어 허급지급 먹다보니, 그만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아이쿠! 이건 분명 천벌 받은 것이다.
밥을 우습게 여겼고, 일도 돕지 못하면서 새로운 밥상을 차리게 한 죄였다.






이어,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손님들은 다 떠나고, 동자동 새꿈공원을 주름잡는 단골주민과 동자동 사랑방 식구들만 남았다.
천 원씩으로 노래 신청한 사람은 스물 다섯명인데, 다들 한 가락 하는 분이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춤을 추었는데, 참 잘 놀았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었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심사결과가 나왔는데, 예상을 뒤엎었다.
다른 사람처럼 멋 부린 노래가 아니라,
다소곳하게 부른 황옥순 할머니가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그 분은 '새꿈 공원'의 지킴이나 마찬가지다.
공원의 트레이드마크 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신다.
온갖 술꾼들의 거친 행동을 통제하고, 주변 쓰레기까지 정리 한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준 인기상이 아니라, 노래를 잘 불러 받았는데, 다들 좋아하며 축하했다.





황옥순 할머니 외에도, 여러 가지 대회에서 상 받은 분들이 많다.

이대영, 이정애, 강동근, 조인형, 김성현, 조창현씨 외에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여러명이 더있다.





사람 사는 것이란, 아무 욕심 없이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노는 게 답이더라.
그 답을 보여준, 동자동 사람들, 화이팅! 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올 추석은 유달리 추석선물로 고민을 많이 했다.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추석선물을 지켜보며,
이제는 쪽방촌 선물은 셀프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올해도 각종 기업이나 단체에서 보내 온 선물을 예년처럼 줄 세워 나누어주었는데,
하나같이 주민들을 거지 구호물품 나누어 주듯 생색냈다.
대개 양념이나 라면, 부식 등 먹거리와 관련된 선물로 중복된 것이 많은데다,
네 차례나 줄 세워, 줄때마다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구정이나 추석마다 온정이란 이름표를 달고 행해지는 관행은
불편과 낭비도 따르지만, 주민들을 쪽팔리게 만든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생색내기로 거지 동냥주는 기분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하청 준 ‘쪽방상담소’의 업무는 이제 동사무소로 통합시키고,
쪽방 촌을 빈민구호의 홍보장소로 활용하는 짓을 이제 그만하라.
한마디로 쪽방 촌을 정치인들 언론프레이 하는 무대처럼 여긴다.
동자동을 빈민구호지역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주민들을 타자화시켜 자립심을 잃게한다.

주는대로 얻어 먹고 시키는대로 살라며 서서히 길들여 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기업이나 단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은 전국 동사무소로 보내라. 
상품으로 보내지 말고 현금으로 전달하여 동 사무소에서 통합하여 빈민들에게 배분하라. 
빈민들에게 일정한 상품권을 나누어 주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라.




 


상품권도 동사무소 직원이 직접 전해 주던지,
아니면 본인이 동사무소에서 직접 찾아가게 하라.
상품권을 줄 때, 어디에서 보내 온 선물이라는 내용도 알려주고...






이번에도 줄서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 받은 선물들을 살펴보니,
중복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많은데다, 비좁은 쪽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선에 가져가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줄 작정으로, 그냥 묶어두고 나왔다.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라 지하철을 탔는데,
대개의 직장인들이 추석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래 전에는 명절마다 선물을 받거나, 선물 전해주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사실 명절마다 선물을 받는 것이나 주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습이라 나름으로 주고 받아 왔는데,
동자동에 들어 온 후로는 선물은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주는 쪽방상담소 선물만 받아 왔다.






그런데, 뜻밖에 울산에 있는 오세필씨가 황금배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그 배를 나누어 먹다보니, 나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 한사람을 누구로 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인사동 ‘유목민’에 갔더니,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정복수, 전강호, 이종순,
최종선, 이인섭, 유진오, 이도윤씨 등 반가운 분들을 여럿 만났다.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술 한 잔 나누기로 한 적이
일 년 가까이 되었으나, 특정한 장소를 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와도 만나지 못하는 분이 더 많은데다, 잘 나오지도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송추에서 나와 준 전강호씨가 그날따라 고마웠는데, 반가운 제안을 해 왔다.
가까운 분들끼리 자기가 사는 송추에서 가을소풍을 한 번 갖자는 것이다.
조촐한 술상을 차릴 테니, 시월 하순경의 주말을 택하자고 했다.
날짜를 잡아 연락한다고 일어나며,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을 내놓았다.






그 돈을 보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진즉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세진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감동스러워했던 일을 떠 올렸다.
오래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묘지를 걱정한 적이 있었는데,
이웃의 최연규씨가 묘지로 쓸 명당이 있다며, 자기 땅을 그냥 사용하라고 한 것이다.






그 오래전의 일이 떠올라 최연규씨 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어렵사리 선물 살 돈과 함께 보낼 곳도 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크고 작고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선물은 참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외에 도움 준 많은 분들께는 저의 마음만 보냅니다.
부디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노가다 판에서 인생을 불사른 최성환씨가 동자동에 들어온 지는 작년9월이다.
나이 일흔 다섯에 아직까지 장가도 못 갔지만, 장가 안가길 천만다행이다 싶다.
혼자 살기도 어려운데,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그는 노가다 판에서도 아무 일이나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벌목장에서 목도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 후는 조경업체에서 나무 옮기는 일을 전담했는데,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단다.






동자동에 오기 전엔 뚝섬에서 살았는데, “뚝섬갈비”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단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 빼면 할 이야기가 없듯이 여전히 군대 이야기로 침 튀긴다.
특수부대에 들어가 좆뺑이 친 것에서부터 김신조가 청와대 침투했던 때 이야기까지 신바람 났다.
힘들어도 군대생활이 그에게는 유일한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이었다.






“왜, 일거리가 많지 않은 목도 일만 했냐?“고 물었더니, 그게 목도꾼의 가오란다.
목도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벌떡 일어나 시범까지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호흡이 맞아야 하기에 구령하는 자기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놈의 가오가 무엇인지, 일당 받아 술값으로 가오 잡다보니,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단다.






그런데, 퇴직금 없는 노가다의 노후보장은 누가 책임지나?
메달을 따지 못한 운동선수의 노후보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서울역 주변을 떠도는 노숙자들의 대부분이 노가다 출신이거나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걸 알기나 한가?



구계목도 시연장면 / '여성뉴스'사진 / 스크랩



목도 이야기를 들으니 ‘구계목도 보존회’장으로 있는 고향친구 김공조가 생각난다.
구계목도놀이는 영산면 구계리에서 벌목한 목재를 운반할 때 여러 명이 어깨에 메고
구령에 따라 보폭을 맞추어 나르던 노동을 재현한 것으로,
힘겨운 노동의 애환을 민속예술로 승화시킨 무형문화유산이다.
몇 년 전 경상남도 민속예술축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옛날의 노동을 가끔씩 재현하는 일에는 이처럼 박수 받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천대받는 이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가끔, 거리에 홀로앉아 한잔 술에 시름을 달래지만,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그림도 그린다.
손재주가 있기는 하나, 자동차바퀴의 위치가 뒤틀린 것으로 보아 아직 서툴렀다.
그러나 근사한 오픈카에 마후라 휘날리며 달리고 싶은 그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오늘 잘 때, 근사한 오픈카에 멋진 여인 태워 천국을 무한 질주하는 꿈이나 꾸시게...
그런데, 자네 운전면허증이나 있는가?“



사진, 글 / 조문호










그 지긋지긋한 더위에 다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올 여름 우리 동네서만 일곱 명이 더위에 죽어 나갔다.
지병이 있어 죽었다는 말도 나왔으나, 목숨을 재촉한 건 더위였다.






날씨가 마지막 기승을 부린 지난 14일은 화요카페에서 식료품을 나누어 주는 날이다.
밤에는 더워서 잠을 못자 낯잠이 많은 탓에 눈을 떠보니 오후2시가 넘어 버렸다.
배급시간을 놓쳤으나, 허기도 메울 겸 터벅터벅 공원으로 내려갔다.






공원 위쪽에는 쪽방 주민들이 여기 저기 앉아 술 마시거나 바람 쐬고 있었고,

아래는 옆 동네 산다는 잘 모르는 양반이 찾아와  노숙거사들에게 한 턱 쏘고 있었다.






그것도 병학이 한테 신용카드를 내주어 사오라 했다.
가오도 가오지만, 얻어 먹는 떨거지들 입장은 황공할 따름이다.
의기충천한 물주가 열심히 구라를 푸는데, 구라도 보통 구라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술만 홀짝이던 서먹한 자리에 장단까지 맞춰주니 술술 넘어갔다.
대복이는 일찍부터 맛이 가 비틀거렸고, 영철이는 술병 났는지 슬슬 피했다.






술자리에서 불리는 호칭은 다들 별명으로 불렸다.
‘병뚜껑’이 힘자랑 한다고 옆에 있는 나무 뽑는 시늉을 하니.
‘오프너’가 "까불어도 내 한데는 쥐약이다"며 엄포 놓는다.





서있던 '병뚜껑'이 씨발! 한 판 붙자며 주먹을 치켜세운다.

열 받은 '오프너'가 따라 일어서니, 아니라며 꼬리 내리기를 반복한다.

'쪽제비'는 술자리 주위를 슬슬 돌며 바람 잡는다.






돈 내고도 볼 수 없는 동자동 마임의 한 토막이다.
그러다 물주가 떠나니, 김빠진 맥주처럼 하나 둘 나가떨어진다.





옆자리는 이홍렬씨가 술을 마셨고, 위에는 김장수씨를 비롯한 세 사람이 마셨지만 끼어들기 싫었다.
이홍렬씨는 혼 술을 즐기는 스타일이고, 윗자리는 술맛 떨어지는 자가 끼어 있었다.






'용산소방서' 소방관들이 더위 식히려 공원에 물을 뿌려주었다.
어떤 이는 물에 젖어 앉을 자리도 없다며 투덜거렸으나, 좀 불편해도 이해해야 한다.
더위도 식히고 공원청소도 하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화요카페에서 나누어 주었다는 계란도 놓쳤고 끼니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막걸리 몇 잔에 시름 달래고 다시 방으로 기어오른다.
그렇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사는 게 별것 있겠나?
교도소에 자리 깐 그네와 쥐박이 보다야 낫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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