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제, 반가운 손님 온다는 까치가 울었다.
"길 위의사람‘을 찍는 성유나씨였다.
늙은이가 굶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밥 먹이러 오겠단다.






서울역에 마중가니, 노숙자 한 명이 납작 엎드려 모자를 치켜 세우고 있다.
누군지 알 수 없어 동전 몇 닢 던졌으나, 미동도 않는다.
옆엔 고개 숙인 남자가 웅크린, 화려한 서울의 뒷모습이다.






서울역 11번 출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으니, 유나씨가 나타났다.
아르바이트까지 빼먹고 왔다기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동네 안내라도 해주고 싶으나, 비오는 날이라 공원에 사람이 없다.
김장수씨가 있었으나, 유나씨 카메라에 시비를 건다.
카메라보다 낯선 여인에 대한 관심이다.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어 내 방으로 안내했다.
홀 애비 냄새 풍기는 쪽방에 볼 것도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더라.
사는 게 별 것 있겠냐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기 힘들어 두 군데나 일하러 다니지만, 카메라가 유일한 위안이란다.
힘든 세상, 마음먹기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밥 먹으러 갔으나, 갈만한 곳이 없었다.
가끔 들리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자 했으나, 기어이 고기 집에 가잖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따라야 하고, 술이 따르면 시간이 길어지지 않는가.
나야 있는 게 시간뿐이지만, 갈 길이 바쁜 사람인데...






골목을 서성이던 동네 아줌마의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낯선 여인과 팔짱 낀 모습에 봄 사건 났나 싶은 모양이다.
매일 지나쳐도 가지 않는 ‘대우정’에 들렸는데, 퇴근한 직장인으로 만원이었다. 
오후 여섯시만 되면 늙은이는 사라지고, 젊은이로 불야성을 이루는 두 얼굴의 동네다.





2층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아 소주 한 병과 불고기를 시켰다.
나도 직장인처럼 여인까지 대동한 거룩한 만찬을 즐겼다.
술이 모자랐으나, 모자라는 미덕을 즐기기로 했다.

유나씨 덕에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맛을 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KT와 함께하는 정다운 주민 나들이’가 지난 22일 ‘화담 숲’에서 있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추진한 이 여행은 KT가 협찬했다.




오전10시 무렵, 버스 두 대로 출발한 이 날 소풍은
동자동 주민에게 모처럼 주어지는 신나는 외출이었다.




다들 근사한 옷을 갈아입고 나와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옷만 잘 입으면 신분까지 격상되어 보였으나, 난 그게 안 된다.
‘옷 잘 입은 거지가 밥도 더 얻어 먹는다’는 옛 말도 있으나,
새 옷이 왠지 불편하다. 그 날은 깜빡 잊어 틀니까지 두고 나왔다.




경기도 광주의 ‘화담 숲’으로 떠난 이날 소풍은 80명을 모집했으나 6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선착순이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공짜로 밥 먹여 구경시켜주는데도 무관심한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들 할 일없이 방에 앉아 티브이나 보고 있을 텐데...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모든게 귀찮은 것 같았다.




쪽방상담소 김갑록소장과 전익형실장을 비롯하여
김정길, 임수만, 전인중, 원용희, 최갑일, 이인숙, 한종희, 김정심, 김유례,
심경섭, 이난순, 이배식, 홍홍임, 김용철씨 등 반가운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사진 찍히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이경기씨가 나를 제일 반가워했다.
점심은 곤지암의 ‘초월보리밥’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화담’은 엘지의 구본무 회장 아호인데, 그가 생전에 조성한 숲이란다.
안내판에는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이 이 숲만큼은 참 잘 만들었구나는 말을 듣고 싶다.’는

구본무씨가 생전에 했던 말이 적혀 있었으나, 과욕으로 생각되었다. 



 
자연이란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지, 인위적인 환경이라 호감이 가지 않았다.
타 지역에 있던 노송이나 회귀종 나무들을 무더기로 옮겨놓고,
도보로 산책할 수 있는 완만한 길에 모노레일을 깔아 놓았다.
이끼원, 자작나무숲, 소나무 숲, 분재원, 암석정원을 비롯하여 한옥주막과 찻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화담 숲’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만원이고, 모노레일 타는 데는 팔천 원이었다.
취미삼아 조성한 숲마저 장삿속을 보이는 재벌의 속성은 어쩔 수 없었다.




협찬으로 입장료는 해결하지만, 지난번에 떠난 대부도 여행이 훨씬 나았다.
장관을 이룬 철새들의 비행도 좋았지만, 입장료 아껴 ‘동춘 서커스’를 보지 않았던가?
차라리 화담 숲’보다 지척에 있는 남산 길을 산책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나들인지 들러린지 헷갈리는 소풍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 처음 왔을 때,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려줄 가족도 없고 오래 살지도 못할 사람이 돈을 이불 밑에 파묻어 둔다던지,

줄 세워 나눠주는 선물에는 목을 매지만, 더 좋은 문화혜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 외에는 하루 종일 좁은 방에서 외출 한 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기거한지 3년이 가까워오니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길들어 가고 있었다.

서민 복지를 위한다는 사탕발림의 정책들이 재기할 수 없도록 주저앉히며,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사라는 빈민보호구역처럼...


 

나 역시 건강에 문제가 생겨 주민들과의 술자리를 자제하니,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많다.

이젠 일기 쓰듯 블로그에 올리는 일조차 귀찮아 졌다.



몇 일전 샘터편집장 이종원씨가 찾아와, 요즘 왜 동자동 소식을 올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하듯,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일에 매달리기 싫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기장처럼 올린 사진에, 딴지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초상권이 있다거나, 왜 관심 없는 이야기를 올리냐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지 않으면 되고, 그래도 눈에 거슬리면 페친을 끊으면 될 것 아닌가?

그가 못한 일을 대신 끊어주었지만, 씁쓸했다.


 

이종원씨가 떠나고 난 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다시 힘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는 일이 더 급해, 마무리 할 일을 서두르기로 다짐했다.

아파 누워버리면 끝장인데, 더 미룰 일이 아니었다.


 

요즘 갑자기 날씨가 더워 그런지,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다.

의욕을 잃어 술 취한 사람도 있지만, 더운 쪽방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서울역 주변에도 여기 저기 모여 술을 마셨고,

그 날 밤은 열심히 사는 원용희씨까지 길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얼마 전에는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사건도 있었다.


 

3년 전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까지 올린 김만귀씨가 심경섭, 김정호씨 등 많은 사람의 돈을 빌려 날라버린 것이다.

밝혀 진 액수만 2,400만원이라는데, 쪽방 사람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악착스레 모은 돈을 사기꾼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쪽방 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순박한 사람들 속에 깡패, 양아치, 사기꾼도 있지만,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엔 큰 사건만 터지면 서울역 부근에 사는 전과자부터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기야! 불쌍한 사람 등쳐먹는 그 놈인들 편하겠나?


 

이달 초순에는 옆방에 사는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방문을 두드리며, 라면받으러 공원에 나가자고 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주선으로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검진을 하는데, 엑스레이를 찍으면 라면 열개를 주었다.



다들 건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라면 때문에 검진을 받는 것이다.

목숨보다 라면이 더 급한 사람들이다.


 

지난 17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반상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지만 다들 관심이 없다.

쪽방상담소 체제가 바뀌기 전인, 도망친 김만귀씨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20-30명 정도 나왔으나, 그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참석한 분은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하여 김원호, 김정길, 전인중씨 등 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가 올 여름 날씨가 더운 날에는 지하에 있는 회의장에 나와 자라거나,

몇 일후에 있을 화담 숲나들이에 참여해 달라는 등 통상적인 공지사항이었다.

일회용 곰탕 몇 개 담긴 봉지로 걸음 값을 대신했지만...


 

제발 신바람 나는 좋은 일이 아니라면, 이런 형식적인 회의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뭔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처럼 구색이나 맞추는 이 따위 일에 왜 시간을 소모하는가?


 

지난 20일은 샘터이종원 편집장이 쪽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몇일 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난감했다.

내가 도와준 서울문화투데이와는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했으나,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종원씨는 작년에 만나적도 있지만, 사진가 김수길씨 친구라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처지라 문자를 씹었더니,

그 이튿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 못할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동자동이야기를 빼고 하겠다기에 마지못해 승낙한 것이다.


 

오후 세시 무렵, 공원 앞에서 이종원씨를 만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사는 이야기에 동자동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 걱정스러웠다.

좀 있으니, 남원에 사는 사진가 최선호씨가 주소만 들고 쪽방으로 찾아왔다.


 

프로필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골목에서도 사진을 찍었는데, 지나가던 이배식씨가 쳐다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오늘은 찍히는 신세가 되었네


 

일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소주 한 잔 나누었다.

많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 자리에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했다.

술만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는 버릇이 뒤늦게 걱정되었다.

편집장께서 잘 걸러 옮겨야 할 텐데...


 

21일은 동자동 공원에서 오랜만에 박성일씨를 만났다. 넓은 집으로 이사 했다며 집 구경 가자고 했다.

따라가 보니 아내 박소영씨 혼자 있었는데, 집이 꽤 넓었다. 거실까지 있었지만, 옮겨놓은 짐은 별로 없었다.


 

좋은 집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구세군에 어려운 사정의 편지를 보내는 등 곳곳에 도와달라는 SOS를 보냈다고 한다.

덕택에 구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입주하게 되었는데, 그 이자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노숙 10년에 쪽방생활 16년차인 박성일씨는 3년 전 박소영씨와 짝을 맞춰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으나,

쪽방에서 뚱뚱한 아내와 함께 살기가 어려웠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닌 지가 여러 차례지만, 이제 한시름 놓은 것 같다.


 

그런데, 몰랐던 소식도 전해 주었다. 동자동 주민 100여명이 변두리 임대주택으로 이사 갔다는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동자동 개발에 따른 물밑작업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도 김만기에게 돈을 빌려주었으나, 돈이 급한 아내의 채근으로 간신히 받아냈다며 한숨을 썰어 내리기도 했다.


 


22일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화담 숲으로 단체 나들이를 했다.

마침 김용철, 김정심씨가 옆자리에 있기에 은근히 마음을 떠 보았다.

두 분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결혼해 같이 살면 어떠냐고 말했더니, 한사코 손사래 쳤다.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여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주거비 20만원이 줄어든다는 말인 것 같은데, 오나가나 그 놈의 돈이 원수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기초생활수급비를 탈 수 없는 사각지대의 노숙자도 많지만,

조금만 수입이 생겨도 잘리거나 삭감되어, 아예 일을 하지 않게 만드는 기초생활수급 규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

자립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최소한 희망은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사진, / 조문호






















 

 





외로운 쪽방 사람들을 위해 서로 짝 지어주는 일은 어떨까?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고 있는 것 보다 서로 말벗이 되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밥도 같이 해 먹으니 서로 편하지만,

아프면 도와줄 수 있어 혼자 쓸쓸히 죽는 고독사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일은 동자동 사는 김용철씨가 ‘해 뜨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단다.
몇일 전, 김치 나누어 주는 곳에서 만났는데, 방세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며 엄청 좋아했다.






‘해 뜨는 집’은 서울시가 2013년 경, 달세 상승을 막기 위해 만든 쪽방인데,

동자동 저렴 쪽방 110개 중 절반에 가까운 51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건물 외벽만 노란 페인트로 꾸며 놓았지, 시설은 다른 쪽방과 다를 바 없다.

한 평 남짓의 좁은 방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지만, 달세가 한 달에 16만원이다.

23만원에서 30만원 정도하는 다른 쪽방에 비하면 훨씬 싸다.






그렇지만, 동자동 쪽방주민이 사는 숫자의 10분의 1정도니,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죽어 나가야 방이 비니,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김용철씨가 옮긴 방은 먼저 사용하던 방과 크기는 비슷하나, 한 달에 14만원을 절약할 수 있단다.

있는 사람에게는 14만원이 별것 아닐 수도 있으나,

한 달에 40만 원 정도로 살아가야 하는 쪽방 주민에게는 큰 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일 오전 10시무렵, 이삿짐 옮겨주려 갔더니, 벌써 옮겨 놓았더라.

하기야! 짐이래야 별것 없으니 몇 번 들어 옮기면 끝이다.

김용철씨는 마지막 남은 티브이를 가지러 갔다며 없고,

옮겨 놓은 짐은 이웃의 김정심씨가 정리해 주고 있었다.

자기 살림처럼 얼마나 알뜰하게 챙겨주는지 고마웠다.





그런데 냉장고도 없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큰 병에 담아둔 커피를 마시라며 한 잔 따라주는데, 맛을 보니 변해 있었다.

좀 있으니, 낑낑대며 티브이를 들고 오는데, 그 것도 고장 난 티브이라는 것이다.

나오지 않는 고물 티브이를 버리지, 왜 힘들게 챙겨 와 선반 위에 모셔둘까?






그런데, 여지 것 김용철씨를 비슷한 연배로 생각하고 반말을 찍찍했는데,

주민등록증을 보니 여든 네 살이었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은 대선배였다.

겉으로 젊게 보여, 속으로 김정심씨와 같이 살면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지 한 번 물어보아야 겠다.





마음만 맞다면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둘이 살기는 좁지만, 두 사람 방세 모아 큰방으로 옮기면 될일이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잔이고 잘 못하면 빰이 세대라지만,

빰 맞을 각오로 한 번 추진해 보아야 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월에 받은 빵사진 



토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던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자선이 8년 만에 끝났다.



지난 10월, 빵나눔에서 선물을 주기 위해 퀴즈문제를 내고 있다



지난 달 부터 사정이 어려운지 빵의 량이 줄더니, 급기야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고, 훌륭한 일을 했다.
배고픈 사람들을 살렸으니, 정부에서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7년 11월 비오는 날, 빵을 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말이 그렇지 8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마다 한 결 같이 베푼다는 것이 말처럼 싶지 않다.
그 빵은 어려운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생계를 잇는 생명줄이었다.



지난 11월 찍은 사진, 빵을 타서 허급지급 먹는 노인,



빵의 량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량인데다, 빵을 탈 때 마다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열두 번을 찍으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는데, 그 라면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빵 타러 나왔다.



지난 9월에 찍은 빵나눔 사진


왜냐하면, 다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움직여 먹어라는 배려였고 유인책이기도 했다.
빵을 나누어 주는 봉사원들도 모두 친절했지만, 타 먹는 사람들도 새치기 하는 사람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줄 세우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에 찍은 방봉지



난, 그들보다야 낫지만 밥 해먹을 공간이 없는데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 열심히 타 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빵을 뺏어먹는 것 같아 늘 꼬리 줄에 붙어 빵을 놓칠 때가 많았다.



지난2월에 찍은 사진, 봉사원들이 주민들에게 도장 받을 카드를 만들어주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잔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번은 빵이 없어 돌아서는데, 누가 뒤에서 빵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돌아보니 강완우씨였는데, 자기 받은 빵을 건네고는 씩 웃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나야 인사동 친구나 사진하는 후배들 만나 면 고기도 얻어먹지만, 그들은 빵과 반찬 없는 밥이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다.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줄서 기다리며 서로 나누는 농담 따먹기도 가지가지다.
“딸딸이를 치니 먹은 게 없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 별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생존 자체다.



 3월26일, 힘없어 땅에 퍼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



문제는 한 3년 정도 얻어먹다 보니, 이젠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맛있는 고급 빵도 있어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누어 먹기도 했다.
2년 전 촛불시위로 광화문광장을 들락거릴 땐 그보다 좋은 도시락이 없었다.



3월26일, 휘어진 허리로 힘들게 걷는 할머니



한 번은 정의당 깃발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온 아들 햇님과 나누어 먹었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먹었는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배고픈 자식을 먹이고 싶은 부모마음이야 똑 같을 것이다.



3월23일 골목앞 풍경



이젠 빵을 사 먹는 수밖에 없으나, 돈 없는 노숙자들이 걱정스럽다.
돈은 없고 배가 고프면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월23일, 고물을 옮기기 위해 손 수레를 끌고간다.



노숙자 지원센터인 ‘다시서기’에서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팔고 남은 빵을 제과점에서 싸게 수거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빵 나눔이 없어진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 새꿈공원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 앞 계단에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도와주는 것은 고마우나, 멀쩡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릴 필요가 무언가?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린 그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봄단장은 좋으나, 쪽팔리게 하나은행 로고를 커다랗게 새겨 놓았다.
꼭 그렇게 생색을 내야 하는가?



3월23일, 그림에 하나은행  로고가  그려져 있다.



봄은 왔건만, 동자동의 봄은 요원한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입만 벌리면 서민복지를 노래 부르지만, 빈민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다.



3월26일, 목련 나무아래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



공원의 목련조차 차마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력이 없어 길에 퍼져 앉았거나, 잠든 사람이 여기 저기 늘려 있었다.



3월23일, 힘없이 쓰러져 졸고있는 노숙인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도처에 늘렸는데,

서울역 대합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라고는 하나같이 간 뒤집어지는 소리뿐이었다.



3월23일, 벤취에 누워 단잠에 빠진 노숙인



정치하는 계집이 나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특위니 성 접대니 씹 지랄 같은 소리나 지껄였다.
권력 가진 놈들의 추악한 짓거리에 치가 떨린다.



3월26일 저녁,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



“씨바~ 제발 사람 좀 살자”


사진, 글 / 조문호


















해피빈

2월 이슈데이 / 이미령



추석 노래자랑 ⓒ조문호


2017년 어버이날, 동자동 새빛 공원에 처음으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줄에 매단, ‘빨랫줄 사진전’이었습니다. 이웃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자기 얼굴이 있으면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어버이날과 추석을 택해 세 차례 전시를 했으나, 꺼리는 이들이 있어 더 이상 사진전은 열지 않기로 했답니다,

동자동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2017 추석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고층 빌딩 사이 숨겨진 작은 동네


3년 전 어느 날, 후배가 보여준 쪽방촌 동영상이 선생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쪽방행을 선언했습니다. 고심하여 선택한 곳은 동자동. 교통이 편리하고, 친구들이 많은 인사동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바로 건너편 서울역은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자동은 한낮에도 조용합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쪽방촌은 한 층에만 다닥다닥 붙은 방이 여덟 개. 방음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해, 요리를 포기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나마 월세는 보증금 없이 약 23만원으로 저렴합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가난하지만 정 많은 이웃들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혼자 살기에 맥없이 누워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합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이웃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집은 훨씬 따뜻하고 깔끔했지만,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을 텐데 마음 편히,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서울역 노숙인들도 동자동 이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호쾌히 배풀기도 합니다. 주머니 속에 단돈 만 원밖에 없어도,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줍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돈에 오염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이 남았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가난을 줄 서서 확인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동자동에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수량이 한정적인 ‘후원 물품 배급’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줄을 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많고 병든 사람들은 줄을 설 기력이 없습니다. 조문호 선생님은 순번을 정해 골고루 물품을 배분하거나 늙고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다 주는 게 어떠냐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줄을 세우는 것이 활동을 홍보하기에 좋고, 물품을 나눠주기에도 편리하니까요.



추석 음식나눔  ⓒ조문호



기부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에는 전기장판, 여름에는 선풍기. 전기장판과 선풍기는 소모품이 아니기에, 한 개만 있으면 몇 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년 새로 기부가 들어옵니다. 쪽방에는 창고도 없어 난감합니다. 매번 받는 쌀과 김치, 라면도 좋지만 가끔은 새로운 맛도 궁금합니다. 쪽방에는 부엌이 없어 조리를 못하는 가구도 있습니다. 후원품을 줄 세워 나눠주기 보다 남영동 ‘푸드마켓’처럼 각자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고르게 하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하는 셈입니다.



2018 어버이날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작품 사진과 일반 사진의 경계는 따로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판단할 몫입니다.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앞장서서 건의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찍혔다’는 조문호 선생님. 그래도 이미 3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더니 ‘좀 별난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사진전은 하지 않지만, 사진 찍히는 즐거움을 안 이웃들의 요청으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공들여 촬영합니다.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도, 그냥 자기 얼굴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진실한 사진이 가장 좋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계속 동자동에 거주하실 거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가능한 한 계속 있고 싶다고 답하셨습니다. 이미 재건축 조합이 들어서, 몇 년 후에는 모두가 쫓겨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곳에 살며 동자동의 마지막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동자동에도 우리처럼 다양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함께 응원하는 희망찬 새봄
여러분의 기부금 만큼 네이버 해피빈에서 함께 기부합니다.




인터뷰하는 이미령씨 ⓒ조문호


지난 달 ‘해피빈’ 이미령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동자동 글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만나기로 했는데,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노출되는 것이 싫어 쪽방촌에 관한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왔으나,

공익단체의 기부를 위한 인터뷰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찍는 이미령씨 ⓒ조문호


어렵사리 동자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예쁜 아가씨가 예쁜 선물까지 사왔네요.

경찰 조서 받듯 충실하게 답했더니, 인터뷰기사를 보내 왔습니다.



이미령씨가 준 선물 ⓒ조문호












지난 16일 오후1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제9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 하루 전에 볼 일이 있어 울산 내려 갔으나, 다음날 아침에 바로 돌아와야 했다.
사랑방마을 정기총회가 자주 열리는 총회도 아니지만,

다들 밖에 잘 나오지 않아 한꺼번에 동네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내려 간 김에 인근의 장터나 유적지를 찾아 사진을 찍었으면 좋으련만, 지체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으나, 정영신씨 고물차가 말썽을 부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었다.




총회가 열리는 동자동 '성민교회'에 들어서니, 반가운 분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선동수 간사의 보고에 의하면 위임한 30명을 포함하여 170여명으로 성원이 되었다고 했다.




2018년도 감사보고와 승인, 사업 결산보고가 이어졌고, 임원선출도 따랐다.
이사장에 유영기씨, 부이사장에 조두선씨, 사업이사에 김정호씨, 조직연대이사에 양정애, 윤용주씨,

교육홍보이사에 임수만씨, 감사에 최순규, 정시영씨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작년 년 말까지 주민들의 출자금이 총 2억5천6백만원이라고 했다.

전년도에 비해 3천8백만원 가량 줄어들었으나 전체 조합원 389명이 출자한 돈으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평균 65만원 정도를 출자한 셈인데, 나는 2016년 부터 출자했으나 아직까지 24만원 밖에 못했다.



출자한 사람의 대부분이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라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저축을 안 해도 담배 값이 없어 허둥댈 때가 많은데, 결국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난, 돈이란 죽고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낙천적인 생활습관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저축을 생활화하지 않아, 요 모양 요 꼴로 살지만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산다.



마약 같은 돈에 끌려 다니지 말고,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철들기는 틀린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큰 건물가진 친구들도 내막을 살펴보면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더라.

임대수익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팔려고 해도 세금 제하고 나면 빚더미에 앉아야 한다는 거다.




결혼도 않고 즐기며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라 꼴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렵게 살면서도 열심히 저축하는 동자동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한 평생 고생하며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까지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산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육십대까지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축해야 겠지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다. 

물려 줄 사람도 없는 독신인데, 과연 누굴 위해 종을 울려야 할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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