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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조문호의 도시 빈민 다큐멘터리 작업의 의미 :

니체 예술론 위버멘쉬 개념을 중심으로

 

이광수

 

 

Meaning of the Photography of Moonho Cho in terms of

Nietzcche’s Ubermensch with the special reference to

Urban Poors of Dongjadong and Seoul Station Vicinity

Kwangsu Lee

 

 

 

목 차

 

Ⅰ. 머리말

                                                      Ⅱ. 니체의 예술론과 조문호 다큐멘터리 작업

                                                        Ⅲ. 《동자동 사람들 작업의 》 위버멘쉬적 성격

Ⅳ. 맺음말

        참고문헌

 

 

이 논문은 2023년도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해 연구되었음 

*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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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약 ]

   사진을 전시를 위한 예술 작품으로서 보다는 기록 중심의 성격이 더 강한 작업을 하는 사진가의 작품은 근대 미학 밖에 있는 예술론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한 예술론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니체의 예술론을 둘 수 있다. 니체의 예술론은 결과가 아닌 과정, 특히 삶의 태도를 예술성의 생명으로 여긴다. 조문호의 동자동 쪽방 주민과 서울역 노숙인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의 기저에는 니체 예술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 고통받는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육 당하지 않아야 하는 인간 실존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으며, 그들 속으로 들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들의 삶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대면하고 부닥쳤으며,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재현할 때 조형미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과 최대한 가깝게 있는 그대로 재현하였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따라서 그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예술성을 평가하고자 하면,  단순히 근대 미학의 결과물 중심에서 형식주의의 창의성으로만 해서는 온당치 못하다. 이미지와 살아 있는 세계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대상 사진가 독자의 총체적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존재와 상황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고,  개체를 전체 속 존재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결국 조문호의 작업은 서사 안에서 각각의 이미지는 독립적인 예술작품이 아니고, 전체가 하나로서 통합하여 인간 실존의 의미를 지향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진가가 사진의 대상 내부로 들어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작업을 하였다는 의미가 강하다.

 

[Abstract]

    The work of photographers whose documentation-oriented practice contradicts photography's identity as an artwork for display should be evaluated by artistic theories outside of modern aesthetics. One such artistic theory is Nietzsche's, which is based on ancient Greek aesthetics. Nietzsche's aesthetics considers the process, especially the attitude of life, as the life of artistry, not the result. Nietzsche's aesthetic clearly underlies Cho Moonho's documentary work on the lives of the residents of Dongjadong and the homeless at Seoul Station. This is because he affirms the fate of suffering human beings, has a strong sense of human existence that should not be exploited, enters into their lives as a member of the community, confronts and encounters their lives without trying to avoid them, and reproduces their lives as closely as possible to the facts without being biased toward artifice in the resulting photographs. Therefore, if we want to give meaning to his work and evaluate its artistry, we cannot simply focus on the output of modern aesthetics and formalist creativit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mage and the living world must be understood dialectically, in the total relationship of subject-photographer-reader. Cho Moonho's work exists as a Dionysian art in which each image in the narrative is not an independent work of art, but the whole is unified as one, oriented toward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색인어 : 조문호 다큐멘터리 , 사진 니체 , 위버멘쉬 디오니소스 , 예술 도시 , 빈민

Keyword : Cho Moonho, documentary photography, Nietzsche‘s Ubermensch, Dionysian art, urban 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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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VOL. 26-2                                                                         

2023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VOL. 26-2

 

I. 머리말

사진은 처음 출발할 때부터 기록성과 심미성의 두 성격을 동시에 가졌다. 이질적인 두 성격이 공존하기 때문에, 어떤 사진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사진학자 박상우는 사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미지 표면의 세계에만 머물지 말고, 이미지를 탄생시킨 이미지 이전의 세계 즉, ‘생산한 것과 생산된 것’, 혹은 '사진 생산’ 과 사진 수용을 분리하지 않고, 독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박상우, 2016. 61-2)  이는 존 태그(John Tagg)가 말한 바 사진은 정체성이 없고, 기술로서 지위는 그것에 부여되는 권력관계에 따라 변하면서 실제 행위로서의 성격은 그것을 작업하게 만드는 대행자와 기관에 의존하는 것이라서, 그 결과물은 그것들이 특정하게 통용되는 체계 안에서 독해하고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한다는 (John Tagg, 1993. 118) 규정의 연장선 위에 있다. 사진은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언어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불완전하고, 그 메시지는 필연적으로 맥락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적어도 기록의 의미를 우선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면, 사진은 생산되고 소비되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독해 되어야 하고, 리얼리티의 객관적인 기록이나 미적인 창조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산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 이기중, 2011, 130) 그렇지만 다큐멘터리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을 평가하는 일은 근대 미학이나 예술론 위에서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추세를 이끌어가는 데는 뉴욕현대미술관 같은 전시 권력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단언하듯, 사진은 미학의 담론에서 기능하는데, 그것은 전시 공간을 중심으로 자신을 구축 해왔기 때문에, 그 공간이 공공 미술관이든, 공식 살롱이든, 세계박람회장이든, 또 사적인 전시회 든 간에 사진은 전시장이라는 연속된 벽의 표면 위에서 평가받고, 스스로 전시 공간을 재현하면서 예술작품을 구축해가는 것이라는 ( 크라우스, 2002. 332-3)  담론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한 평가의 주요 기준을 제시한 사람이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 전 뉴욕현대미술관장이다. 사코우스키는 《사진가의 눈》 (The Photographer’s Eye) 서문을 통해 사진의 표현력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 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 이후 사진에 있어서 형식성은 사진 평가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뉴욕현대미술관의 관장인 그가 규정한 바가 기준이 되면서, 설사 기록성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 할지라도 그가 말하는 표현력의 형식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진은 아무리 ‘사실 (fact)을 기록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일지라도 사실을 그대로 재현 할 수는 없다. 특히 피사체가 사람일 경우, 사진가와 피사체 간의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피사체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카메라가 자신 앞에 놓여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떤 방식으로 든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 사실을 과학적으로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본질적인 사실 재현의 성격 안에서 사회적 행위로서의 어떤 사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에 최대한 가까운 재현은 가능하다. 사진 재현이 갖는 그러한 본질적 의미 때문에 사진가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둘 수밖에 없고, 사진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긴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작품일지라도 ‘결정적 순간 이나 프레이밍의 시각적 긴장을 통해, 감성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품이 후하게 평가받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일지라도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말하듯 ‘당신 사진이 좋지 않다면, 당신은 대상에 충분하게 가깝게 다가서지 못한 것이다 라는 말이 보여주는 사실성보다는 사실성을 미적으로 만드는, 그래서 그 위에서 스토리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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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속성을 강조하는 관점이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도 주류의 위치에 선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 미학에 기초한 형식미를 거부하는 작품은 작품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러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주의의 예술성을 따르지 않고, 사실의 기록과 사진 행위의 도구적 가치에 따라 작업을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여전히 있다. 그러한 작품을 평가할 때, 전시를 위한 표현력의 형식성만이 어떤 예술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이것이 이 글이 제기하는 문제의 출발점이다.

 

   1940년 뉴욕현대미술관이 사진부(department of photography)를 두면서 인화가 작품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결과물이 아닌 사진가의 작업 의도와 과정은 평가에서 대부분 제외되었다. 사진은 전시 예술의 대상으로 지위가 변하면서, 고품질 인화와 영구 보존 및 소장을 위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하는 일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전시를 위한 사진, 예술작품을 위한 사진으로의 성격에 동의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50년에 이미 현대 사진이란 무엇인가 라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심포지움에서 어빙 펜(Irving Penn)을 비롯한 몇몇 사진가가 현대 사진의 최종 작품 단계는 인화된 프린트가 아니라, 인쇄된 책의 페이지이며, 현대 사진가들은 사진을 예술로 생각지 않고, 사진이 예술적 대상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필립스, 2002,.54) 사진의 전시 예술품으로 서의 정체성에 반하는 기록 중심의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은 여전히 전시 담론 밖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품은 무엇을 토대로 어떻게 그 예술성을 평가해야 하는가?

 

   그러한 근대 미학 밖에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미학에서는 작품의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행동을 가치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이 연장선 위에서 니체의 예술론도 결과가 아닌 과정 특히 삶의 태도를 예술성의 생명으로 여긴다. 니체의 예술은 그리스 미학을 구성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결합체로서 역동적인 것이 되는데, 그 안에서 형식보다는 의미가 주요 요소로 작동한다. 이글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의 작업을 니체 예술론으로 평가하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Ⅱ. 니체의 예술론과 조문호 다큐멘터리 작업

  니체의 미학은 전체성, 형식성, 보편성이라는 근대 미학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관점에서 예술작품을 평가한다.( 강영계, 1998.115)  미학의 전통에서 볼 때, 니체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어져 온 형식 중심을 넘어 작품이 존재하기까지의 행동의 의미를 중심으로 삼는 미학 전통에 속한다. 따라서 니체의 미학 안에서는 절대적 미(美) 그  자체 혹은 이해 관계없는 관조 혹은 순수 예술이나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는 예술을 구성하는 두 가지 원리인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1) 그 가운데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고통 자체인 세계에서, 그 고통을 직시하면서 존재하는 것이고, 아폴론적인 것은 쉴 수 있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잠시일 뿐이고 결국 가상일 뿐이어서 그를 통해 고통의 무의미성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형식성이나 표현성을 벗어나는 것이라서 균형과 비례 혹은 조화 혹은 객관성에 

 

1) 니체의 예술론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음악에, 아폴론적인 것은 이미지에 근거한다. 거기에서 시각예술인 회화 조각과 건축 즉 미술은 아폴론적 예술, 청각예술로서 일체 형상을 초월하는 음악은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속한다. 아폴론적 본성은 형식과 틀을 중요시하고, 디오니소스적 본성은 형식과 틀의 경계를 파괴한다. 사진은 조형적 성격이 더 근본적이라서 굳이 구별한다면 아폴론적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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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벗어나는 것이고, 정신과 도덕의 당위성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며, 광기나 도취를 통해 고통과 만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관객은 그 예술을 통해 삶의 문제와 고통을 대신 체험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니체의 예술론에는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고, 그 위에서 니체는 그동안의 미학이 미(美)를 정리할 때, 예술가는 빠지고, 예술을 감상하는 자를 중심으로 해왔다고 비판한다.(홍일희, 2014. 298)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서의 예술을 상정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고 치유하는 것과 같은 형식미에 치우친 예술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 예술론 위에서 조문호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어떤 성격을 띠는 것일까?

   

    조문호는 2016년에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 빈민 주거지인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갔다. 그 스스로가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의 도시 빈민이라 그곳에 거주할 수 있어서 들어 간 것이고, 단지 사진 작업만을 위해 외부인으로 그곳에 들어간 건 아니다. 그는 그때부터 2021년까지의 5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동자동 쪽방촌과 서울역 앞의 도시 빈민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노숙인, 길에서 살다 -쪽방촌에서 보낸 5년의 기록- 을 냈고, 블로그《인사동 사람들》의 ‘동자동 쪽방 사람들’ 에 기록하였으며, 이 후 현재 블로그 '서울역전 사람들’에 서울역 앞 빈민들의 영정 사진 작업을 게재하고 있다. 사진가 조문호는 50mm 단일 렌즈가 달린 컴팩트 카메라 NIKON Coolpix P310으로 사진 작업을 한다. 노출, 셔터 스피드 등을 통한 다양한 표현을 빌리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감각적인 프레이밍을 하거나, 앵글이나 화각을 다양하게 하여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후보정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일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표현에 치중하여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감성적으로 제시되고, 독자가 더 큰 자극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태도를 못 마땅해 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들은 형식미에 치우친 작품을 선호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용도의 작품으로 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은 그들 도시 빈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우선적인 건 그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살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그 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진이 소용이 있었으면 하여 기록하는 것이고, 특별한 표현력을 발휘하여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사실 그대로만 찍으면 그것 자체가 충격이기 때문이다. 결과물 로서의 사진에 대한 그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실체 중심적이다. 그는 동자동 주민들을 사진으로 찍어 인화한 후, 동네 놀이터에 빨랫줄을 걸고, 거기에 널어놓고 피사체가 되는 주인공에게 인화물을 돌려주는 행위를 한 것은 자신의 사진이 전시를 위한 이미지가 아니고, 그들의 주체적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게 하는 걸 바라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영정 사진을 작업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니, 단지 초상사진이 사진의 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그들에게 자존감을 북돋워 패배 주의적 생각을 버리게 하고 싶어서다. 이는 그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형식미를 중시하는 다큐멘터리가 지닌 미적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진 존재 가치는 피사체가 사진을 통해 자기 삶을 존중하면서 인간으로서 대접받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니체가 세상으로부터 인간은 자기에게 온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자기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위버멘쉬(Ubermensch) 2)로 가는 것이라는 사실과 통한다. 니체는 생명 있는 존재는 자신의 힘을 방출하고자 하는 의욕

 

2) ‘초인’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초인 이 갖는 슈퍼맨, 초월자 등으로 오해할 수 있어서, 원어로 그냥 쓰는 게, ‘ 낫다’, 는 니체 연구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 '위버멘쉬'라 쓰기로 한다. 위버멘쉬는 도덕, 전통, 종교 등을 깨고 나와 인간 정신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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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갖기 때문에 인간은 위버멘쉬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 위버멘쉬로 가는 과정에서 의욕의 성장으로부터 창조적 활동이 생기고, 거기에서  활동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 사진가 조문호가 자신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동자동과 서울역 주변의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과 서울역 앞 빈민들은 사회의 보편적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니체가 말하는 광기를 보이며 사는 사람들이다. 니체는 자연 본능의 무의식적인 힘에 최대한의 찬사를 보였고, 조문호는 그들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재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앵글이나 화각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함을 보이지 않고,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장면으로 재현하는 것은 니체가 말하는 그 광기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주제에 대해 사진가가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그 위에서 자신만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재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조문호는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할 수 있는 한,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다. 조명은 자연 채광만을 이용하고, 프레이밍을 통한 왜곡을 하지 않고, 결정적 순간이나 기하학적 패턴과 같은 형식 혹은 구도를 만들어내려 노력하지 않으며, 대상을 부담스럽게 혹은 낯설게 만듦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더 오래 잡기 위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조문호는 기록에 전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사진 이미지의 예술성보다, 사진 작업을 통해 피사체인 도시 빈민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치는 기록성에도 있지만, 사회를 개선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에도 있다고 보는 사진가다. 그. 이유는 사진은 대중이 현실을 목격할 수 있도록 하여, 사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언어 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그는 도시 빈민들이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데, 자신의 사진이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조문호, 2013).

 

   조문호의 이러한 태도는 피사체 세계의 외부자 혹은 산책자로서 그들을 관찰하지 않고, 내부자의 시선으로 작업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는 그 스스로 피사체 대상과 동질성을 가진 도시 빈민의 위치에서 사진 작업을 하였다. 그러면서 소위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고, 사진 여러 장이 이루어 내는 전체적인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50mm 표준렌즈로만 촬영했으니, 그 이유는 표준렌즈가 인간의 시선과 가장 비슷한 렌즈라고 생각해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이 충격적으로 보이면, 그건 그의 사진이 그의 어떤 표현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가 재현한 피사체의 현실 자체가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림1과 그림2 가 그 좋은 예다. 가상의 이미지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 그 자체를 그대로 만든 이미지에 글을 보태서, 글과 사진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목적은 소위 말하는 예술성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도시 빈민들에게 인간으로 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게 제도와 문화를 고치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그1 이 실린 블로그에서 조문호는 ‘죽지 못해 산다.' 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말한다. "다들 가족과 즐겁게 지낸 정초에 무슨 놈의 천형의 죄를 지었는지, 지하도의 돌부처가 되어버렸다. 죽느냐? 사느냐? 아무 생각도 없다. 신 이시여! 이제 자리를 바꾸소서. ( 조문호 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5067). 니체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는 언명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림2 와 관련하여 그는 "지하철 통풍구에서 몸 말리는 노숙인들"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문호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내리면 다들 음습한 곳으로 숨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오들오들 떤다. 비가 그치고 나서야 노숙인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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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VOL. 26-2

 

은 지하철 통풍구에 드러누워 젖은 몸을 말렸다. 이들도 한때는 교육, 근로, 납세, 국토방위 등 헌법이 정한 4대 의무를 다하던 국민인데, 왜 정부에서 최소한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까?”( 조문호, 2021. 66~7).

 

그림 1
그림 2

  조문호는 자신의 작업에서 작가 든 독자 든, 그 대상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조문호는 전작 《 청량리 588》에서도 그랬듯이,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 즉 집창촌 여성의 삶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일부러 부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의 삶을 긍정하고, 그 삶의 실존적 가치를 드러낼 뿐이다. 형이상학이나 이념을 앞세워, 삶을 의미 있게 꾸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힘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진 행위는 소외 속에서 실존을 부인하는 현대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문호 사진의 대상은 그것이 집창촌의 성(性) 노동자 든 동자동과 서울역 앞 도시 빈민이든, 현대성에서 벗어난 혹은 적응하지 못한 자유 정신을 지닌 사람이다. 조문호는 그들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면서 함께 살았다. 청량리 집창촌을 작업하면서, 그는 마음과 정 뿐 아니라 몸까지 바쳐가면서 그들과 함께 살았고, 그 결과 성병에도 걸리고 이혼의 아픔까지 겪었다. 이념이나 관념이 아닌 몸으로 사는 삶을 살고,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라면, 니체식으로 볼 때, 몸의 예술가 즉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에서 몸을 경멸하는 형이상학자를 비판하며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가치 전도를 실행하고, 몸을 사유의 중심으로 설정한다. 조문호가 특히 ‘창녀’ 와 ‘거지’ 와 같은 몸의 삶을 사는 소외계층의 삶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니체의 주류에 대한 저항으로 서의 위버멘쉬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니체는 예술과 삶이 본질적으로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춤의 예를 들면, 우리가 아름 답다고 규정한 외적인 기호에 따라 실행되는 춤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관객과의 일체감을 이끌지 못한다면 진정한 춤의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이루는 여러 외적 요소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몸의 운동과 결합하지 않은 음악은 결코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예술이라 하지 않는다. 이러한 니체의 예술론을 사진에 대입해보면, 몸과 함께 나온 삶의 사진이라 야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다. 결과물로서, 외형적 아름다움으로 서 사진이 아니고, 삶 속에서 삶을 작업하는 사진이라 야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것이 예술작품이 된다.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일 뿐이라서, 그 자체로서는 니체가 말하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지만, 사진을 작업하는 조문호의 삶 자체로서 의 작업은 몸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내용으로 인해 작품으로서 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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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득하는 것이다. 사진은 그것이 기록적 의미의 성격이 강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든, 해석이나 예술을 지향하는 소위 작품성이 강한 사진이든 모두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이는 철저한 데카르트식의 이성 중심의 혹은 니체 말 대로 하면 ‘탈감각화’ 의 소산이다. 조문호는 이러한 이성 중심의 상징과 의미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는  찍힌 분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더 우선이라고 분명히 한다. 그들의 “취향을 일일이 알 수가 없어, 모든 사진을 올릴 뿐이다.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빨랫줄 사진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그들이 좋아할 사진이나 영정 사진을 뽑는다. 사진의 작품성 운운하는 웃기는 소리 제발 하지 마라. 내 사진은 예술이나 작품이길 단연 거부한다.”( 조문호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4720). 기존의 근대 미학에서 형식 가치를 중심으로 작품성을 평가하는 이성적 행위에서 벗어나, 니체가 중요시하는 행위와 감각을 중심으로 보면 조문호의 도시 빈민 다큐멘터리 사진은 매우 니체가 평가하는 역동적 예술이라 할 만하다.

 

   니체가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것은 사회 안의 소위 문명인들에게 어떤 초월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준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탈 사회적이고 탈규범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질서를 안일하게 벗어나는 일탈이나 정립된 도덕을 위반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고, 주체적으로 도덕이나 규범을 어기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 조문호가 .처음 사진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은 것은 소위 청량리 588 윤락녀를 통해서 였다. 그들은 단순히 호기심이나 감각적 욕망이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한 몸의 행위로 몸을 판 사람들이다. 그. 행위는 기존의 사회 도덕과 충돌하였으니, 사회에서는 그들을 윤리를 타락시키는 여자 즉 윤락녀라고 규정했다. 그들 소위 윤락녀와 마찬가지로 조문호가 현재 작업하는 도시 빈민도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의 규범과 충돌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행하는 탈사회적 혹은 반사회적인 행위를 니체의 숭고 혹은 위버멘쉬 개념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위를 기록하는 것은 니체가 말하는 예술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니체의 예술은 사회의 어떤 기준이 되는 통념을 위협하고, 그 한계를 폭로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문호는 그들의 몸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하였으니, 니체의 디오니소스 예술론 위에서 행한 예술 행위로 의미 를 부여할 수 있다.

 

Ⅲ. ≪ 동자동 사람들 ≫ 작업의 위버멘쉬적 성격

    조문호 사진의 제 성격은 1) 대상을 촬영할 때 자신의 주관적 시선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배제하는 것이다. 근대 미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주관성 혹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니체 예술론으로 말하자면, 아폴론적 예술성을 포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은 대상을 주체로 전환하고, 그 대상이 스스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되, 독자가 모호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여, 주체가 자기 존재 의미를 분명 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러한 사실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로 자신이 소망하는 세상 즉 도시 빈민이 인간적으로 존중 받도록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그의 사진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결과물 이미지의 심미성 하나로만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그 이미지를 둘러싼 세 주체 즉 대상, 사진가, 독자가 맺는 총체적 관계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평가해야 한다.

 

3) 실제로 그는 2000년에 빚더미에 눌려 자살하는 동강 주민들의 이야기를 적은 편지와 포토 에세이집 《동강 백성들》을 김대중 대통령께 보내 농민들이 보상받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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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VOL.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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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총체적 관계는 그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와 그것을 사용하는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조문호 사진의 총체적 관계는 노숙인이라는 도시 빈민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해석이 무한 허용되는 매체라 사진가가 대중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주도록 대상을 스트레이트로 찍고, 텍스트와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이에 대해 조문호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좇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조문호 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6447) 조문호는 사진 이미지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에 가깝게 찍으려 하기에, 대부분 대상을 구도 중앙에 위치한다. 일부만 도려내거나 일부를 강조함으로써 의미를 전유하는 촬영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대상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는다는 걸 피사체에게 알려주고 찍거나 ( 그림3)  그 이전에 이미 라뽀가 형성되어 있어서, 특별하게 말로 알릴 필요가 없이 찍고, 그 사실을 알린다. 서로 같은 공동체에서 사는 사람이라 공감 받고, 승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사진가와 피사체 대상 사이에 신뢰의 관계를 만들고, 그 위에서 그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게 촬영하는 것이, 그의 사진이 갖는 관계성이다.

 

그림3

   조문호는 동자동 쪽방촌으로 들어가 도시 빈민을 작업한 6년 동안, 그 스스로 도시 빈민의 일원으로 그들과 함께 살았다. 따라서 그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휴머니즘으로 대상에게 다가가서 찍어야 하니, 촬영 이전에 인간적 관계 형성을 먼저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는 상대의 양해 아래 연출 없이 촬영해야 하고, 찍히기 싫어 하는 사람은 찍지 않고, 대상 몰래 찍지도 않는 사진가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 라뽀를 형성할 수 있었고, 항상 그가 사진의 생명이라 간주하는 눈을 마주 보면서 찍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진의 태도에서 그는 2022년에 새로운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새 작업은 서울역 앞 사람들의 영정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작업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하는 작업 이다. 사진은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이 사진가가 원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정 작업을 시작한 연유는 이렇다. “얼마 전 찍은 사진을 당사자에게 주었더니, 이런 사진 말고 얼굴만 크게 나오도록 찍어 달라는 것이다. 아마 방에 걸어 두었다가 영정 사진으로 활용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들 생각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개인적 목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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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른 기록성보다 당사자의 필요성이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문호 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6640). 그림4가 바로 그 영정 사진이다.

 

그림4

    조문호는 도시 빈민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19세기 후반 미국의 저널리스트로서 뉴욕 슬럼가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의 삶을 작업한 제이콥 리스(Jacob A. Riss)와 비교할 수 있다. 리스와 조문호는 빈민들이 거주하는 주거지를 중심으로 촬영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리스는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가난, 범죄, 매춘, 질병 등 비도덕적이고, 사회의 악이라 치부되는 여러 현상을 고치고, 부자들이 자선을 베푸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펴기 위해 그들의 삶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으나, 조문호는 당사자로서 대상의 어두운 부분을 부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조문호의 사진은 미적 감각보다는 사실 제시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서의 성격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리스의 사진과 다르다. 이는 리스가 사회운동가로서 대상을 사회 문제 해결 차원으로 다루었지만, 조문호는 그들의 휴머니즘을 우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더 궁극적인 차이는 리스는 뉴욕의 슬럼가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인 저널리스트로서 봤고, 그 현상을 외부자적 시선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리스는 그들의 삶을 외부에 보이는 가난과 비참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조문호는 그들 내부에 들어가 공동체 일원으로 살았기 때문에 외부 모습보다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조문호는 리스와는 달리 그들을 대상화 하지 않았다.

 

   조문호는 동자동과 서울역 부근의 도시 빈민을 사회운동의 대상이 아닌 휴머니즘으로서의 관계로 출발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선량한 시민으로만 본 건 아니다. 도시 빈민 연구에 의하면, 도시 빈민 쪽방 주민들이 쪽방촌에 길게는 수십 년을 거주하면서 쪽방 생활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데, 쪽방을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니라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쪽방의 한계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위안함으로써 떠나지 못한다. ( 김효진, 2009. 76).       

   사진가 조문호는 이러한 이중적 관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따뜻한 정이 있는 관점에서 그들 삶의 사실을 기록하지만, 돈 때문에 자기 이익 때문에 여전히 사람을 속이고 배신하는 모습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조문호 그 자신도 어느 쪽방 주민에게 카메라를 도둑질 당하기도 했다. 그는 그들이 노동하지 않고 구걸 행각을 일삼는다는 비판에, 그들은 여러 원인으로 정신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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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들을 대변하지만, 그들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그들의 모습을 애써 감추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서 라도 그들을 비참하게도 착하게도,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보지 않는 관점을 유지한다. 사진가의 .눈에 비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림 5 는 도시 빈민일지라도 여전히 뭔가를 더 갖고 싶어 하는 물질에 종속된 삶을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버리지도 못하고, 더 이상 쌓아 놓을 수 없는 공간인 데도 어디선가 주워 와 방안에 짐이 쓰레기처럼 쌓인 쪽방촌 사람들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가는 도시 빈민이라고 해서 다 필요 없고,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유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진으로 말하는 것이다. 장롱도 있고, 책도 있고, 옷도 수시로 바꿔 입고 싶은 마음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5

   조문호는 그곳 주민들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고 버림받아 사는 실패자임을 냉정하게 보여주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정을 가지고 산다고 말하는데, 더 무게를 둔다. 조문호는 그들의 삶이 대중의 편견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그들의 삶은 겉으로 볼 때는 비참하지만, 실제로는 차라리 더 인간적이다. 그는 주민들이 쪽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더 좋은 생활환경으로 이주했음에도 쪽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쪽방이 물리적 주거 공간으로 서의 의미를 넘어, 지역주민들과 상호교류를 통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주민들 간의 유대감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공간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그림 6은 정이 그리워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월세방에서 쫓겨난 노숙인의 집들이' 라는 ’글에서 그들의 정을 쌓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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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구성하는 것은 도취 주관성 자기 망각 등 반(反) 이성이다. 따라서 그 예술은 승화되고, 절제되고 정제된 것이 아니고, 도취 상태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첫 페이지에 들어간 사진은 그림 7 이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진 모습을 하나의 과장이나 자극없이, 할 수 있 는 한 있는 그대로 찍었다. 그리고 그들을 “모든 희망 버리고 떠날 준비가 됐다. 서울역 후미진 곳에서 천국 행 열차를 기다린다." .( 조문호, 2021. 22)고 글로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진가 조문호가 그들을 부랑아, 쓰레기 같은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천국’ 은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를’ 통한 위버멘쉬의 개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회가 정한 질서에서 일탈해, 사회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개념으로는 연결이 가능하다. 조문호의 작업은 노숙인의 원초적인 힘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술로서 하는 차원의 작업이라 고는 할 수 없고, 그가  하는 사진을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라고 전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다만 니체의 예술론이 설파하는 위버멘쉬의 개념과 정신은 조문호가 하는 작업과 그의 작품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림7

    조문호가 사회로부터 핍박 받으면서 고독과 소외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도시 빈민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정해 놓은 질서 안으로 들어와 복종하도록 강제하고, 그들은 그러한 강압에 쓰러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통의 뿌리는 다름 아닌 고독과 소외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조문호는 요즘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고, 동물조차도 먹이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소외와 고독이라고 말한다. 사진가는 노숙인 최씨의 목소리를 글로 전한다.  “ 제발 우리를 괴물 보듯 피해 다니지 마라. 우리도 .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고 묻지도 마라. 그. 말은 네가 잘 못 살아 그렇게 됐다는 나무람일 뿐,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 그리고 치료받을 권리다. 그건 모든 국민이 똑같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조문호 , 2021. 38) 니체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철학자가 보는 당위성의 문제고, 실제 세상에는 쓸모없는 존재는 처절히 버림받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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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가가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 즉 휴머니즘이 사라진 세상은 니체가 가장 열성적으로 비판한 주제다. 니체가 말하는 그 사람이 사라진 세상은 곧 고독사의 세상이다. 동자동 도시 빈민이 고독사 하는 것이 한 해에 수백 명이 넘는데,  그림 8은 니체의 그 도시 빈민의 고독사를 나타낸 사진이다. 도시 빈민으로 죽은 사람을 위한 추모제를 매년 동짓날 지내는데, 연고를 찾지 못하는 가족과 모든 관계로부터 버림받은, 그래서 영정 사진 하나 가지지 못한 세태를 사진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후 조문호는 지금 쪽방촌 주민 가운데 원하는 사람에게 영정 사진을 찍어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가의 이러한 태도는 예술이란 사랑이나 정신의 고양 차원에서 가 아닌, 몸으로 대할 때 비로소 예술성을 갖는다는 니체의 예술론에 부합하는 태도다. 조문호가 노숙인을 기존의 지배 담론에 대한 저항의 한 모습으로 해석한 것은 이러한 몸,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는 맥락에서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미쳐야 사람 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을 미치지 못해 천국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조문호 .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6347)

 

그림8

  사진가 조문호가 도시 빈민에 대한 각급 정부 당국이나 교회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의 자선 행위는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삼지만, 사실은 그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복종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조문호는 《노숙인, 길에서 살다》에 수록된 전체 177장의 사진에서 10퍼센트인 17. 9 장을 그림과 같은 줄 세우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전체에서 가장 많은 장면은, 그 빈민들이 술 먹고 쓰러져 있는 장면으로 22장이 사용되었다. 책의 마지막 본문의 사진 또한 줄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사진으로 썼고, 바닥에 나뒹구는 그림 7을 책의 첫 사진으로 사용하였다. 사진가는 노숙인의 삶을 버림받음과 줄 세우기라는 두 코드를 가장 중요한 구성 인자로 생각한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포기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사진가 조문호 아닌 일반인 누구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줄 세우는 것을 사육 당하는 걸로 해석하여 그에 반대하는 것은 조문호가 니체의 세계관에 서서, 세상이 온정을 베풀면서 그들을 사육 시키려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조문호의 이러 한 관점은 공동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사람을 평준화를 통해 가축처럼 길들이는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니체의 입장과 같다. 조문호는 이렇게 말한다. “쪽방촌에 살다 보니, 가끔은  '레이더스' 가 부른 '인디언 보호구역' 이 떠오른다. 쪽방촌이 마치 빈민 보호구역 같다는 생각 에서다. '보호한다' 는 긍정적인 뜻 이면에는 '길들인다' 는 측면도 깔려 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빈민들은 보호보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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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어 주는 게 더 급하다. 수입만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잘리니,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 , 일하지 않고, 주는 것만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난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죽어도 사육 당하기는 싫다.  ( 조문호블로그 https://mun6144.tistory.com/4151). 인간 삶의 자기 고양을 위해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독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태도가 니체의 세계관과 같다. 조문호가 인용한 노숙인 천씨가 뱉어 낸 말 "세상을 원망하랴! 마누라를 원망하랴.!’( 조문호 2021, 173)라고 말하는 건 전형적인 니체의 아모르 파티, 즉 삶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겪으면서 앞으로 가야 한다는 니체의 세계관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9

Ⅳ. 맺음말

   조문호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인 사진으로 재현하여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절감할 수 있게 한다. 니체에게 예술은 실용적인 도구이듯, 조문호에게도 사진은 실용적 도구다. 고통의 사실을 극복해가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는 노숙인의 삶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영정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사정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찍어 사회에 호소하였고, 찍은 사진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책으로 제작하였을 뿐, 대상의 조형미를 강조하면서, 각각의 이미지를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작품으로 전시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할 뿐, 리얼리티를 더 높이기 위한 표현력을 부각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했고, 달리 소비되는 것을 경계했다. 조문호에게 부랑자, 노숙인, 매춘녀 등은 니체 예술론에서의 광기의 존재라 할 수 있다. 그. 광기의 인간을 그들이 사는 내부로 들어가 내부자의 시선을 가지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게 조문호 작업이다.

 

    니체의 예술론 위에서 사진 이미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조문호의 사진은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사진은 조형 이미지이니 아폴론적 예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재현적 모방이 관조나 절대적 아름다움이나 사실주의 등 아름다움과 예술을 설명해주던 기존의 기본 장치들을 토대로 할 때는 그 의미를 상실하겠지만( 백승영, 2014. 61), 조문호의 도시 빈민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드러나듯, 미적 체험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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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체험을 정신적 차원의 것에서, 인간의 총체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면, 니체의 예술론 특히 위버멘쉬 개념과 부합되면서, 그 안에서 총합적 예술의 의미를 창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문호의 .사진은 비록 재현이지만, 관조나 순수의 개념으로 만드는 아름 다움의 재현이 아니고, 총체적 행위의 의미로서 행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니체의 디오니소스 예술의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문호는 형식주의 미학을 따르지 않는다. 사진 이미지 그 자체보다는 사진을 찍는 행위와 그에 대한 접근 태도, 즉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도구적 성격으로 서의 행위를 중시한다. 이성 중심의 형식주의와 개념화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로부터 탈피를 추구하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시작된 니체의 철학은 예술과 삶의 전통적 분리를 지양하고, 예술이 아름다운 가상으로서 삶 위에 군림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면서, 예술은 인간이 겪었던, 그리고 겪을 수 있는 고통과 같은 문제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진우2014.16). 조문호의 작품은 이러한 니체의 몸 중심의 예술 작업의 산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조문호가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동자동 쪽방촌과 서울역 부근에 사는 도시 빈민은 세상의 경쟁에서 낙오되었으나,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 않고, 말년의 니체처럼,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나와 소외와 고독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다. 사진가 조문호 또한 한 가정에 정착하지 않고 자식과도 거리를 둔 채, 사진가로서 삶을 평생 살았다. 니체에게 외적 풍요는 내적 궁핍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 힘을 끄집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전적으로 예술이 필요하다 했으니, 그에게 예술은 조형화 된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했다. 조문호는 노숙인의 원초적인 힘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술로서 하는 차원의 작업이라 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그가 하는 사진을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 작품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위버 멘쉬 를 통한 디오니소스 예술로 서의 행위에 따른 작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가 말하듯 이제 사진은 의미를 미학화, 결과적으로 형식화 하고 배경이 되는 상황과 정치적 차원의 존재를 부정하는 궤적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이미지와 살아 있는 세계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한다면 (로슬러 , 2002. 367)  조문호의 도시 빈민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은 니체의 예술론을 바탕으로 형식주의와 예술을 위한 예술과 같은 파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존재와 상황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고, 개체를 전체 속 존재로 위치시키는 것이면서 사진을 심미적 결과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조문호의 작업은 서사 안에서 각각의 이미지는 독립적인 예술작품이 아니고 전체가 하나로서 통합하여  인간 실존의 의미를 지향하는 작업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인간을 주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니체의 실존주의가 서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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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4)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민음사

[4] (2016) 니체 『비극의 탄생』 서울: 동서문화사.

[5] (2002) 니체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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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가 니체 대 바그너 』 서울 책세상,

[6]  (2007), 단토 아서 김지원 옮김, 「예술 세계란 무엇인가 」, 『예술과 미학 』 서울 , 종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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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서울: 눈빛

[8]  (2007) 머골리스 조셉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특성」 김지원 옮김, 『예술과 미학』 서울: 종문화사

[9]  (2016) 박상우 「롤랑 바르트의 사진 수용론 재고, 현대미술학논문집' 제20  2호

[10] (2014) 백승영 「니체가 제시한 미적 정의, 예술생리학과 법철학의 융합을 통한 법 미학 가능성 제고' 니체연구제26집 

[11] (2011) 사코우스키 존,『사진가의 눈』 서문,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서울: 눈빛

[12] (2011) 이기중 「사진 인류학의 연구 방법론」, 『 비교문화연구 제 17집 』  2호

[13] (2014) 이진우 '니체 몸 그리고 춤추는 사유' 니체연구 제 25집 

[14] 조문호 '역사성으로 본 보도 사진' '월간 이미지' 2003년 4월 1일 ’ .

[15] (2015) 1984-1988 : 조문호 『청량리588』 서울: 눈빛

[16] (2021) , 조문호 『노숙인 길에서 살다』 서울: 이숲

[17] 조문호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동자동 쪽방 사람들 https://mun6144.tistory.com/category/%EC%A1%B0%EB%AC%B8%ED%98%B8 %EC%82%AC%EC%A7%84%ED%8C%90/%EB%8F%99%EC%9E%90%EB%8F %99 %20%EC%AA%BD%EB%B0%A9%EC%82%AC%EB%9E%8C%EB%93%A4

[18] (2002) 크라우스 로잘린드 「사진의 담론 공간들」 리차드 볼턴 엮음, 김우룡 역

        『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울: 눈빛

[19] (2002) 필립스 크리스토퍼 「사진을 판결하는 자리 – 뉴욕현대미술관」, 리차드볼턴 엮음, 김우룡 역

        『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서울: 눈빛

[20] (2015) FOUND 최인희 『조문호 인터뷰 그래도 사람』 ’, 2015. 4. 15.

[21] (2014) 홍일희 「니체 예술적 보편성과 철학적 독자성」, 『범한철학』제74 집

[22] Tagg, John (1993)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Essay on Photographies and Histories; Essay on Photographies           and Histor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동자동에 사는 6년 동안 철저하게 피해 온 것이 방송이나 신문기자의 인터뷰와 취재 요청인데, 유일하게 거절하지 못한 매체가 '샘터 ' 이종원 편집장과 '실버넷' 운현선 기자 였다. 알려지면 일하는데 지장이 있어 책을 출판하면서도 보도자료를 내지 못했으나 '실버넷' 뉴스는 별 영향력 없는 매체기도 하지만 친분에 의한 인간관계라 어쩔수 없었다.

운현선씨는 1년전 부터 여러차례 서울역과 쪽방, 그리고 전시장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고 촬영해 가더니, 며칠 전 영상을 편집해 방송했다. 초라한 행색이나 과찬의 나레이션에 얼굴 뜨거워지기도 했으나, 또 하나의 기록으로 여겨 스크랩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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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녹번동에서 뜻밖의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오래 전, 정동지의 ‘어머니의 땅’ 전시 때, 김남선씨가 준 선물을 찾아 낸 것이다.

‘수정방’이라는 중국술인데, 50도가 넘는 독주였다.

 

둘다 몸이 아파 마시면 안 되지만 '죽어도 고'를 외쳤다.

좋아하는 음악 들어가며 재미있게 보낸 분위기 탓일 수도 있겠으나

너무 행복해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다.

 쪽 팔려 평생을 말 못한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며...

 

그 날밤에 찍힌 사진을 보니, 아무래도 간이 배 밖에 나온 것 같다.

집에서 안되는 담배까지 피우고 있었다.

 

기어아 술병 바닥을 보고서야 쓰러졌는데, 

취하여 기분좋게 죽자고 명세에 명세를 했건만, 그만 잠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 가뿐했다.

그 정도 마셨으면 속이라도 쓰릴 텐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처음 맛본 '수정방', 정말 쥑이더라.

"고맙게 잘 마셨어요. 남선씨!"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지난 20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인사동이야기사진전을 준비하는 날이다.

 

승용차에 가득 싣고 간 사진액자를 4층까지 올리기가 만만찮았다.

5분이 초과하면 주차위반으로 카메라에 찍힌다기에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들어 올렸다.

 

너무 많이 준비한 액자 때문에 걸 일이 걱정되었으나

차를 주차장에 옮겨놓고 돌아오니 김진하관장이 적절히 자리를 잡아놓았다.

 

일사불란하게 설치하는 김관장의 디피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걸어주어 우려를 덜었다.

조명 조정까지 잘 마무리했다.

 

김진하, 장경호, 전활철씨와 어울려 유목민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술 한 잔했다.

전시는 30일까지니, 시간 나시면 관람하시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2021,9,22

 

추석은 잘 지내셨습니까?

저희들 사는 모습이 책과 전시로 소개된다네요.

많이 봐주시고 우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주십시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입니다.

가족과 사회에 버림받아 거리를 떠돌며 목숨을 이어갈 뿐입니다.

부디 절망의 벼랑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십시오.

 

2021년 10월 22일

김지은 합장

 

https://blog.naver.com/josun7662/222504873464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집과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포토 에세이집이

출판되어 아래와 같이 판매합니다

 

증정 엽서8매

전시와 함께 정영신 사진집과 조문호의 포토에세이집도 출판됐습니다. 거리두기로 외출을 삼가하시는 분이나 지방에 계신 분들을 위해 작가가 서명한 책을 보내드리며 두권 함께 구입하시는 분께는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엽서 8매를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과 구매를 부탁드립니다.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사진집 / 눈빛출판사 /가격 35,000원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포토에세이집 / 이숲출판사 / 가격 25,000원 

구입하실 분은 아래 구좌로 계좌이체 하시고, 문자로 주소를 남겨주시면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계좌이체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연락처 : 010-2955-8926

2021.9.14

‘노숙인, 길에서 살다’ 출판기념전

 

조문호展 / CHOMOONHO / 趙文浩 / photography

2021-09232021-1004

노숙인, 길에서 살다 / 이숲출판사 / 가격 25,000원 / (2021,6 동자동)

 

-작가 사인회 : 9월25일과 10월2일, 오후1시부터 5시까지-

‘유목민’ 골목 담벼락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길

사람보다 짐승이 더 사랑받고, 사람보다 돈을 더 우러러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재물 지상주의에 밀려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는 노숙인들이 많습니다. 더러 사업 실패로 밀려난 사람도 있으나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에 의해 가난이 대물림 되었기에 대부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운신조차 힘들어 술로 위안하며 아무도 가보지 못한 천국행 열차를 기다립니다.

 

2019, 2 / 서울역 지하도

 

그들은 영양 결핍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슨 천형의 죄를 지어 짐승보다 못하게 살다 길에서 죽어야 하며, 죽음을 방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방관보다 더 슬픈 것은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입니다. ‘젊은 놈들이 일 안 하고 술만 마신다’지만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2017, 3 / 동자동

대개 인간적이거나 마음 여린 사람들이 생활전선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가면 갈수록 물질문명에 밀려나는 능력 없는 자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살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져 절대 빈곤자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민들의 공감 아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들을 구제하는 것은 줄 세워 밥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이라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2018,5 / 동자동

그들은 빈민들에게 주는 기본적인 혜택마저 별의별 까다로운 규제에 걸려 소외되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며 죽음을 재촉합니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1세라지만, 노숙인의 평균 수명은 48세로 한 해에 거리에서 죽어가는 무연고자가 300명을 넘습니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 최씨는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죽는 편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2017,12 / 서울역광장

쪽방 사는 빈민들도 추위나 비를 피할 곳만 있을 뿐이지, 그 비참함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춥거나 더운 비좁은 쪽방 공간은 차지하고라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합니다. 식기마저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닦아야 해 위생이란 말은 사치스런 말일 뿐입니다. 옆방에 살던 멀쩡한 사람이 가파른 계단에서 넘어져 목숨까지 잃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2018,5 / 동자동

빈민들을 줄 세워 나누어 주는 것도 불편하지만, 정치인들은 빈민들을 이용하는 자선 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얻어 먹어려고 줄 서는 것이 비참하고 부끄러웠으나, 세월이 지나니 서서히 길들어 갔습니다. 줄 세우지 말고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모이는 것 자체를 제한하지 않습니까? 동사무소에서 할 일을 ‘쪽방상담소’란 별도의 조직을 두어 강제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2017,1 / 동자동

정작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가파른 계단의 손잡이 설치나 수시로 합선을 일으키는 오래된 전선의 정비는 물론 짐 둘 곳이 없어 다리도 펼 수 없는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주는 등 꼭 필요한 일은 나몰라라 합니다. 물론 방세 받는 건물주들이 할 일이나 시설보수란 어림반푼어치도 없고, 방세가 한 달만 밀려도 쫓아냅니다. 월세도 현금으로만 꼬박꼬박 받아 탈세를 밥먹듯 하는 악덕건물주들은 왜 단죄하지 못합니까?

 

2016,10 / 동자동

그러나 쪽방에 사는 빈민들은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라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길에서 사는 노숙인의 비참한 삶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줄 세워 나누어 주는 식료품 배급마저 그들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물론 세상이 포기한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빈민들을 위한 복지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2021, 1 / 서울역광장

저는 5년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사연을 기록해 왔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쪽방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 온 것이라 제대로 된 카메라도 없습니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 온 것은 일기처럼 나의 생활 주변을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연필처럼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며 가감 없이 보이는 대로 찍었습니다. 주관이 개입되는 글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말입니다.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남긴 것이 이번에 펴낸 ‘노숙인, 길 위에 살다’ 포토 에세이 집입니다.

 

2020,3 / 동자동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죽음에 내몰린 노숙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쪽방촌 악덕 건물주들의 방해로 머뭇거리는 쪽방촌 재개발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빈민들의 삶이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10 / 동자동 새꿈공원

 

다른 나라에서도 못하는 부랑자 구제를 우리가 선진적으로 해결합시다. 빈민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정치인들 몫이므로, 이 책을 정치인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딜 가나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는 환경을 만드는 대신, 노숙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합니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대통령이 내세운 기치가 빈말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조문호

 

 

조문호展 / CHOMOONHO / 趙文浩 / photography

 

 

 

 

 

이숲출판사에서 발간한 조문호 포토 에세이집 노숙인, 길에서 살다가 오는 9월 하순경 출판됩니다.

책 발간에 맞추어 오는 923일부터 104일까지 인사동 유목민골목 담벼락에서

현수막전과 함께 책 사인회를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 갈 곳 없는 빈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인회 일자 : 2021, 925일과 102,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장소 : 인사동16, 현수막 전시장 앞

 

아래는 이광수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안에는 온갖 다양한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이야기꾼, 인문학자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루카치도 들어 있고, 헤이든 화이트도 들어 있고, 긴즈버그도 들어 있고, 푸코도 들어 있는데...그 중 압권은 레비 스트로스로 봅니다. 참여관찰이지요. 대상 속으로 들어가되, 그들 속에서 공기와 같이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하나로 융화되는 거지요. 거기서 어떤 사진가는 까르띠에 브레송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로버트 프랭크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유진 리차즈같이 표현을 하지요. 사진가 조문호는 레비 스트로스 같이 참여관찰을 하는 사진가이면서, 브레송이나 프랭크같이 스케치나 장면 포착과 같은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조문호는 브레송이나 프랭크와는 다른 사진을 찍지만, 그렇다고 리차즈같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 눈이 보는 그대로 찍습니다. 대상이 마음 문을 열 때까지 카메라를 들지 않는 건 리차즈와 같지만, 사람의 눈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거나 그게 아니다 싶으면, 그 사람을 감춰줍니다. 오로지 모든 초점은 그 대상, 사람에 있습니다. 카메라도 그저 그런 똑딱이, 화려한 이론도 없이... 그저 사람을 존중하는 사진을 찍습니다. 조문호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진을 찍으러 들어간 게 아니고, 그들과 함께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사진은 삶을 함께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사진이 종이고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5년간의 참여관찰 - 관찰보다는 참여에 방점이 있습니다 - 로 찍은 그 사진이 곧 나옵니다. 동자동 사람들을 담은 '노숙인 길에서 살다' (이숲출판사)... 한국 사진사에 큰 족적이고, 이정표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진평론가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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