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떨이매장으로 변한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 전경

인사동의 복합 문화 공간 코트돈에 예술이 밀려나는 인사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예술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예술가들이 이 공간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돈에 눈먼 임대 업자가 '땡처리' 물건 파는 곳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생긴단 말인가?

 

땡처리 매장으로 바뀐 전시장

지난해부터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 건물 운영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어 왔다. 임대업체가 임대기간이 완료되지 않은 코트를 내보내기 위해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건물 내부를 무단 철거하고, 전시장을 지키는 예술인들에게 물대포를 살포하는 횡포까지 부리며 법적 논쟁으로 비화된 사건이다.

 

지난 해 용역업체에서 테이블을 밀어내고 차를 밀어넣는 장면

임대업체는 수익이 안 나는 문화 공간 대신 주차장과 의류 매장을 원하고 있고, 임대자는 "예술인들이 가꾼 공간을 임대 만료기간까지 지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참여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인사동의 문화 공간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며 함께 싸우는 실정에 있다.

 

차를 진입시켜 문을 걸어 잠근 전시장에 텐트를 쳐 놓았다.

인사동 복합 문화공간 코트(KOTE)는 예술인들이 공유하는 작업실로, 전시를 비롯하여 공연이나 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곳이다. 때로는 광고나 방송 촬영 세트장이 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2층의 코트랩은 예술인 작업 공간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2층의 코트랩 작업공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층에서 전시하는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전을 방해하려고 자동차 두 대를 집어넣어 문을 잠가 놓았는데, 지난 주말 가보니 '백화점 철수상품을 정리'한다는 땡 처리 매장이 열리고 있었다.

입구 매대에 진열된 양말과 옷

길 앞으로 나온 매대에는 옷과 양말이 걸려 있고, 가게 안에는 가방, 등산복, 지갑과 건강식품 등 잡다한 물건들을 가득 펼쳐놓았더라.

 

2층 카페

분쟁의 두 점유 주체가 건물 운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지는 오래 되었다. 한쪽은 수익을 내야 한다며 예술인들을 쫒아 내려하고, 다른 쪽은 계약 만료까지 예술인들이 가꾼 공간을 지켜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간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자 용역 깡패까지 동원하여 강제 철거하는 폭력 사태까지 벌인 것이다.

 

2층 작업공간 벽에 걸린 사진가 김용호의 작품 '신여성'

코트 건물은 지난해 사망한 김문기 상지대 전 총장 소유인데, ㈜CAAMC 최경순 대표가 10년 임차 계약을 맺은 곳이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는 최 대표는 삼년 전부터 줄라이파트너스 안주영 대표에게 임차 대행권 및 운영권을 모두 넘겼다. '코트'라는 이름도 안 대표가 '경계의 뜰에 핀 꽃'이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코로나 전염병이 시작되며 인사동 상권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어렵사리 예술 공간을 지켜왔지만, 최대표가 돈 되는 사업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임차권 분쟁을 벌인 것이다.

 

왼편 골목 벽에 그려진 벨기에 어반 아티스트 드니 메이어의 코트 커뮤니티 벽화

안 대표 측은 지난 111일 서울중앙지법 영업방해금지가처분 소송 1에서 승소했다. 최경순 대표가 안주영 대표의 임차대행권에 따른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대표는 안 대표에겐 임차 대행권만 있을 뿐 자체적인 운영 권한이 없는데, 건물주와 임차 계약한 최씨 이름으로 임대 업무를 하지 않고, 안주영 대표 이름으로 한 게 불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리고 안대표가 임차료를 내지 않아 명도 소송이 진행 중인데다, 나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며 땡처리 매장을 끌어들인 당위성을 강조했다.

 

텅빈 공간에 남아 있는 의자 하나가 말 걸고 있다.

그동안 ‘코트에선 화가, 사진가, 산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어울리다 보니 생각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코트의 정체성은 '만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철거하다 중단된 별관

그러나 지난해 11월 최 대표 측이 코트 별관을 주차장으로 만들기 위해 철거를 시작하자, 갑자기 쫓겨나게 된 예술인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년 반 동안 코트에서 노력해 온 결과가 물거품이 될 지경이기도 하지만, 코트처럼 저렴하게 대관할 곳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궁지에 몰린 예술인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예술인들이 건물 안에 텐트를 치고 문화제를 여는 등 연대 활동을 벌인 것이다.

 

전시공간 구석에 남아 있는 설치물들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협업하고 싶은 욕구도 갖게 되는데, 미술이 음악 이나 다른 매체와 어우러지니까 확장성이 생겨 새로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구석 공간을 지키는 작품들

이처럼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던 데에는 안 대표의 노력이 컸다. 안 대표는 예술가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아 대관료를 제대로 받지 않고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더러 지금의 분쟁 상황을 업자들의 이권 싸움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안 대표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맞선다면 예술가들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의 설치물

지자체나 국가에서 지원 받는 다른 문화 공간들은 대부분 제도화되어 규정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지만, 민간 공간은 상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코트는 민간공간으로서 제도화되지 않고 상업화되지 않은 전례 없는 공간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지난헤 코트 1층 전시실에서 열린 최소리의 두드림으로 그린 '겁' 전시장 풍경

지금은 코트랩 입주 작가가 40여 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건물을 둘러싼 갈등으로 상당수 예술가가 떠나긴 했지만, 새로 입주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깨어진 틈 사이로 꽃이 피다'라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그리고 코트에서 벌어진 폭력과 그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이 연대하는 실상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경계 속에 핀 꽃"도 제작중이라고 한다.

지난 해 포크레인이 별관을 부술 때부터 예술인 20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앞으로 코트를 지켜준 작가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공간을 개방하여 예술에 대한 지평을 넓히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지난헤 코트 1층 전시실에서 열린 최소리의 두드림으로 그린 '겁' 전시장 풍경

전문가들은 코트 사태와 같은 현상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일이라며, 예술 공간은 시장 질서에 맡기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화공간을 지탱해 가려면 지자체나 기업 등의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 문화공간을 만들었다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예술가들을 쫓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코트에서 벌어지는 사태가 그런 대표적 사례라고 말한다.

 

지난 해 여름 '코트' 별관에 전시된 사진가 성남훈의 작품

또 인사동 특성상 건물이 역사적 분위기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코트가 있는 자리는 600년 역사의 피맛골과 독립투사들이 묵었던 '호해여관'과 '조선극장' 터가 있던 곳이다. 

서울특별시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백화점 철수 상품 매장'은 인사동 권장 업종은 아니지만, 제한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인사동 가로 변 지역에서 조금 벗어나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빈 공간을 지키고 있는 설치물들

그렇지만 예술가들이 모인 장소에 '스토리'가 있는 경우라면 더욱 보존되어야 한다. 예술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에 기여해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돈에 변질해 가는 인사동을 지켜야 할 예술가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법이나 제도를 고쳐서라도 기필코 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코트 옥상에 전시된 작품, 액자의 녹물이 흘러내린 자욱이 세월의 의미까지 더해준다.

이제 예술 공간 보호를 위해 공공이 적극 나서 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예술인들이 연대하여 잘 못된 현실과 싸워 끝까지 지켜야 한다. 인사동 에서 유일한 예술 복합공간을 지켜는 일이야 말로 예술인들의 마지막 자존감이 걸린 문제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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