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국 5일장 순례기

"하늘만 빼곤 온통 까만 동네였드래요... 물도, 땅도, 아이들 얼굴도요. 겨울에 눈이 오면 하얀 이불 같다며 좋아했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어물거립니다."
시간이 멈춘 검은 동네 철암장엔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장터를 지키고 있다.

- 강원 태백 철암장 중

 

▲ 전국 5일장 순례기 우리 전통과 인정을 찾아가는 장터 순례기
ⓒ 눈빛출판사

 


다큐 사진 작가 정영신의 글로 만나는 태백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탄광촌에서 유년을 보냈거나, 탄광촌의 풍경을 보낸 이라면 향수에 젖어들 것이다. 밥도, 얼굴도, 옷도, 흐르는 물도, 까만 탄광촌 마을은 급속한 산업화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잊혀가는 전통과 인심, 삶의 흔적을 사진과 글로 살려낸 사진집 <전국 5일장 순례기>가 출간됐다.

정영신은 30년 동안 전국 522개 장터를 돌며 장터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글로 담아냈다. 장이라야 유행가 가사로 들어 본 화개 장터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장, 대화장 정도를 들어봤기에 전국에 522개의 장터를 돌며 장터 풍경과 사람을 담아 낸 작가의 끈기와 그 속에 담긴  투박한 삶, 삶의  땀 냄새가 함께 느껴지는 것 같다.

작가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 장터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을 통해 사라져 가는 전통과 인정, 그 안의 삶과 땀을 담아냈다. 각도의 대표적인 장터 풍경을 소개하고, 각 장터 소개 말미에 인근 장터의 특산물과 장날을 소개했다.

경기도는 강화 풍물장의 화문석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유기 산지, 안성장,  국내 최대 시장이 된 성남 모란장, 화성 조암장, 평택 안중장을 소개한다.

강원도는 태백 철암장, 동해 북평장, 고성 거진장, 삼척 도계장 등 대표적인 장터를  통해 탄광촌의 고달팠던 삶의 흔적과 나물을 캐고 해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삶을 소개한다.

충청남도는 대전 유성장, 부여장, 예산장, 공주 산성장, 천안 아우내장, 서천 특화시장 소개를 통해 충청도 사람들의 서두르지 않는 여유와 국밥집 인심 등을 소개한다. 충청북도는 괴산장, 단암장, 영동장, 진천장, 미원장을 소개한다. 경상남도는 거창장, 합천장, 의령장, 경화장, 구포장, 반성장을 소개한다.

경상북도는 청도반시로 유명한 청도장, 건천장, 고령장, 경주 양복장, 예천 지보장을 소개한다. 전라북도는 울진 흥부장, 군산 대야장, 익산 북부장, 임실 길담장, 전북 고창장, 진안장을 소개한다.

전라남도는 전남 함평장 녹동장, 고흥장, 무안장, 진도장, 곡성 석곡장, 구례 산동장, 순천 아랫장, 광양 옥곡장, 벌교 꼬막으로 유명한 보성 벌교장, 영암 아리랑 영암 독천장, 진도 십일시장(임화장)을 소개한다.

전국의 장터를 소개합니다

"내 태자리가 여그 여자만 갯벌이여. 고행 땅이 좋은께 여태꺼정 대처에 나가 본적이 없당께.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 속에서 고상을 해봐야 꼬막 장사든 바지락 장사든 할 자격이 있제."

벌교장을 소개하는 첫 대목에 태백산맥의 외서댁과 장터댁 등 태백산맥을 통해 각인된 벌교 꼬막과 여인들의 강인하고 차지고 끈질긴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 여성의 삶에 오체투지로 삭막한 자본가의 마음을 두드려 소통을 하려했던 기륭 여성노동자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사실  뻘같은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 꼬막을 캐고 바지락을 캐며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온 대지의 딸이나, 도시 노동자로 부모와 가족을 먹여 살리던 이들은 대부분은 이 땅의 어머니요, 누이인 여성들이다. 그들은 장터든, 공장이든, 산이든, 들이든 어디서든 생명을 키워내고, 정을 나누고, 덤을 나누고 산다.

작가는 주도 9군데 장터 중 제주 세화장과 모슬포장의 풍경과 사람을 소개하며 30년 간 작업을 마무리 한다. 에필로그에 30년간 522개의 장터를 어떤 마음으로 다녔으며, 어떤 눈길로 풍경과 사람을 담았는지 잘 드러난다. 장터에는 사람과, 역사와, 삶과 땀이 있다. 삶의 향방을 잃은 사람이라면 장돌뱅이처럼 장터를 돌며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터는 작가 말처럼 사람의 희망을 엮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장터는 끝이 아니다. 5일장이 열리고 있는 한 또다시 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대상을 보는 관점이나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보부상에 대한 사려들을 찾아가면서 포괄적인 인문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장을 지키는 개개인의 사람들에 집중되었다.

그 사람들을 모르면, 그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 찍히는 사람과의 소통에 관점을 두어 인터뷰도 했었다. 사진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달하고, 벙어리로 남는 사진이 아니라 말을 건네는 사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따뜻한 인간의 정과 덤이 살아있는 그곳 장터는 희망을 엮는 집어등(集魚燈)이다. - 책 내용

 

덧붙이는 글 | <전국 5일장 순례기> 정영신 글,사진/ 눈빛출판사/ 1만 5000원


 [오마이뉴스 / 이명옥기자]

 

정영신의 장터순례(37)제주 세화장



“은갈치 참말로 좋수다”
직접 낚시질해 좌판에 좍~

세화해변 옆에서 5·10일마다 장 열려
옥돔·우럭 등 싱싱한 해산물 풍부
70여년 장에서 산 할망…“사람 소리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매일 보는 바다지만 영감하고 바닷가로 달리니 참말로 좋수다.” 경운기에서 내리는 고씨 할머니(73)의 웃음소리가 제주 바다를 닮아 푸르기만 하다. 영감님이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선다는 고씨 할머니는 오늘도 경운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장에 나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제주 세화장 어물전에는 자리돔·옥돔·우럭·조기·갈치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갈치는 은빛을 뽐내며 좌판에 일렬로 누워 있다.

 제주도는 잘 알려진 대로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다.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삼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제주 창제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한라산을 쌓던 중에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 오늘날 숱한 오름(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름의 능선이 보여주는 곡선미는 엄마의 너른 품처럼 완만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거기 담긴 제주 여인의 삶이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코발트빛 맑은 세화해변이 지척인 세화장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고선아씨(45)는 이곳에서 15년 동안 제주 갈치만 팔았다. 세화해변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의 갈치를 알아준다는데, 고씨는 이걸 잡으려고 밤낮없이 낚시를 한다. 봄 갈치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낚고 가을 갈치는 밤에만 낚는다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은색 갈치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는 고씨 옆에서 옥돔을 손질하던 박씨 할망이 “야야, 이제 갈치 박사 다 됐네” 하고 거든다. 그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장옥을 건너 바다로 스며든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장옥에서 반가운 얼굴, 김옥순 할머니(83)를 만났다.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고성장(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만났을 때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점까지 봐주고 있었다. 염주알을 돌리고 쌀과 작은 종지를 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곱살에 글을 깨친 후 장에 나와 장사하다가 말문이 트여 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겨울 여기서 잘 아는 할망이 이것저것 묻기에 점괘 따라 말해줬더니 그 이후로 할망 얼굴이 보이질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해 그만뒀어.” 70여년을 장에서 살다 보니 사람 소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할머니의 미소가 밀짚모자에 숨는다.

 “어디에서 와시냐?” 하고 묻는 송씨(60)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친 김에 제주도에는 논이 안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물이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는 못 짓고, 대신 ‘산듸’를 심어 제사도 지내고 잔치할 때도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산듸는 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찰벼인데, 파종과 밭매기가 힘들어 부지런하지 않으면 경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송씨가 대뜸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온다. 제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4·3사건의 아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는 땅이다. <지슬>은 제주 사람이, 제주 땅에서, 제주 토박이말로 만든 독립영화로, 1948년 3월부터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7년7개월 동안 이어진 4·3사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화장 외에 제주에서 열리는 장은 감귤과 갖은 채소가 많이 나는 함덕장, 성산포 은갈치와 성산 겨울무로 유명한 성산장, 대정 암반수 마늘로 유명한 모슬포장(이상 1·6일),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이 가까운 표선장(이상 2·7일),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3·8일), 열매를 먹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백년초 군락지가 있는 한림장,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와 노천탕이 있는 고성장,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서귀포장(이상 4·9일) 등이 있다.

 

[스크랩 / 농민신문]

 

 




(36)경기 평택 안중장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이라 할수없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1·6일이 드는 날 열려
난전엔 앵두·오디 등이 다소곳이…
100개 노점갖춘 민속 5일장 개장 활기
주변에 평택항 있어 제철 해산물 많아

 

 

안중장은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서 1일과 6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이 장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이다. 여름이면 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매달듯 장날이면 골목마다 울긋불긋한 파라솔 행렬이 장날임을 알린다.

 안중은 서해안 개발붐 덕분에 최근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이곳 장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처음에는 안중 남쪽에 있는 현덕면 황산리에 장이 섰는데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방조제가 없던 그때, 보부상들은 만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황산리로 왔다. 수로와 육로의 교차점인 황산리 일대가 조선시대 보부상의 길목이 되자 이들의 왕래로 마을이 번잡해졌다. 그러자 마을 터줏대감인 정씨 일가가 장꾼들을 쫓아냈고, 삶의 터전을 잃은 보부상들이 북쪽에 있는 지금의 안중으로 장을 옮겼다고 한다.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 형성된 골목 난전에는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앵두부터 보리수·복분자·오디에 청솔방울까지 이름표를 내걸고 할머니들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텃밭에서 따왔음 직한 호박과 마늘종은 싱그러운 초록을 뽐내고, 한창 물오른 매실의 향긋한 내음이 지나가는 여인네의 발길을 붙든다.

 해마다 매실청을 담근다는 신덕자 할머니(71)가 지난해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며 매실을 고르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실을 파는 과일장수 김득수씨(52)도 해마다 생산량이 많아져 가격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매실에 우리 신체의 생존 에너지를 생성하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재배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졌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스물다섯 ‘꽃각시’ 시절에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씨 할머니(76)는 올해로 51년째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안중장에 내다 팔고 있다. 반평생을 장에서 살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다 식구 같다면서 “여기가 살기 참 좋은 곳이여. 좋은 쌀도 많이 납니다” 하고 안중 자랑을 한다. 안중장에서 덤 많이 주기로도 소문난 김씨 할머니는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지” 하며 “땅이 주는 선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장이 참 좋다”고 덧붙인다.

 장터 한쪽에서는 물놀이로 더위를 쫓는 어린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 현대·기아는 물론 외국의 완성차업체에까지 납품하는 자동차부품 공장들이 있어 다른 장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어린애들도 더러 나온다는 게 이유식 할머니(80)의 말이다. 이씨 할머니는 “농사짓기가 힘들어 장에 나온 지 31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돈도 못 벌고 몸만 늙어버렸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농사짓던 그 시절이 그립다며 푸성귀 같은 초록빛 웃음을 건넨다.

 장터를 다니면 다닐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전국 어디든 전통시장이 활성화되려면 현대적인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일보다 제철 식재료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구색을 알차게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이를 깨달았음인지 평택시도 기존의 안중전통시장 내에 100여개의 노점을 갖춘 민속 5일장을 개장하고 6월11일 개장식을 가졌다. 이제 장날이면 안중전통시장 일대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안중장은 또 평택항이 가까이 있어 싱싱한 제철 해산물도 많이 나온다.

 어물전이 몰려 있는 곳 옆에는 뻥튀기 가게가 있어 인근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한다. “뻥!” 하는 소리에 문득 든 ‘우리네 정을 뻥튀기 하면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지나가는 바람에게 물어보며 발길을 돌린다.

 안중장 외에 평택에 서는 장은 서정장(2·7일), 안정장(3·8일), 송북장(4·9일), 통복장(5·10일) 등이 있다. 또 평택 송탄관광특구의 심장부인 신장쇼핑몰도 미군 부대를 기점으로 한 신장동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라 안팎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34)전남 곡성 석곡장

 

“기러기며 별난것을 다 가져와 잡아달란당께”

1770년 책자에 기록된 오래된 장터
우시장 없어져 ‘한산’…인정은 그대로
“시끌벅적한 씨름판 재미났었는디…”

 

 

 

 

“뺑뺑 돌아라 돌실장 어지럼병 나서 못 본다. 방구 통통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 보고, 아이고 데고 곡성장 시끄러워서 못 본다.”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石谷)면의 옛 이름이다. 석곡장도 예전엔 돌실장이라 불렸는데, 장돌뱅이들이 부르던 노래에도 나온다. ‘뺑뺑 돌아라 돌실장’의 뜻을, 석곡장에서 만난 양씨 할아버지(83)가 친절히 일러준다.

 “시방은 길이 나서 막 통과하제, 옛날에는 모두 산이었응께 냇가로 돌아 돌아 다녔제. 긍께 돌실이여. 또 보성강 주변이 모다 돌멩이였어.”

 석곡장은 1770년에 간행된 백과전서 <동국문헌비고>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된 장이다. 지금은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에서 열린다.

 머리에 닿을 것만 같은 대형 현수막을 인 채 각종 씨앗과 약재를 펼쳐놓은 석곡장의 대장 전씨 할머니(85)를 만났다. 수많은 씨앗의 가격을 훤히 깨고 있어 “할머니 천재시네요?” 했더니 할머니가 답한다. “시악시만 알어. 공책에 모다 적어놓고 짬 날 때마다 외우제. 치매도 안 걸리고 좋아라.”

 수줍게 웃던 전씨 할머니가 순천댁 얘기 들었냐며, 지금도 할머니들만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한단다.

 “순천댁이 여그 돌실장에서 백반집을 했는디, 인심이 그런 인심이 없었지라. 산골 사람들 새복 장에 이고 지고 오믄 순천댁이 다 사주고 그랬제. 물건 죄다 사주고 뚝배기라도 한 그릇 먹여서 보냈는디, 소문이 안 나겄소. 순천댁 고기 맛볼라고 서울서 오고, 부산서도 오고 난리도 아니었제.”

 이렇듯 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숨 쉬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 지역 역사를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은 천혜의 자연과 지순한 인심으로 효와 충이 성한 고장이다. 요즘은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곡면 오지리의 섬진강기차마을로 유명하다. 기차마을 여행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옛 정취까지 맛볼 수 있어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느낌이다. 기차마을 일원에선 효녀 심청의 효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0월이면 ‘심청 효 문화 대축제’도 연다.

 농번기라 그런지 장터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하다. 장터 맨 끝자리에 있는 ‘석곡닭집’ 앞 닭장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채 우리 안에 갇힌 닭들이 졸고 있다. 양동래씨(66)는 낯선 손님만 보면 외친다.

 “촌닭 한 마리 삿시오. 집에서 키운 닭이라 질기지 않고 맛있어라.”

 양씨는 손수레에 닭을 싣고 장터에 나온다. 장에 온 손님들이 닭을 고르면 양씨는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준다. 양씨는 요즘 기러기를 잡아달라고 갖고 나오는 사람이 많다며 웃는다. “아따, 요새는 테레비가 사람 잡습디다. 장에 나온 사람들이 다 의사랑께. 별난 것을 갖고 와서는 다리 아픈 데 좋으니 잡아 달라 허고…. 잡아주는 삯이야 따로 받제만, 내 닭도 팔아야제.”

 사람들이 없는 한산한 장터는 이웃집 마당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곡성에서 가장 크다는 장인데 사람들이 없네요?” 하며 인사를 건네자 박막동 할아버지(86)가 답한다.

 “우시장이 없어져서 그러제. 그전에는 순천이랑 벌교에서도 소 팔러 석곡장으로 왔제. 소전 있을 때는 날 새기 바쁘게 장에 달라 들더니, 시방은 장도 사람도 끼우러져 불었어라. 백중날이면 소 걸고 씨름판을 열어 영판 재미났는디, 그 맥이 다 끊어졌당께. 여가 전통 있는 장이었는디, 시방은 장도 아니여….”

 말을 마친 박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흑백사진 속에 숨어 있는 고향 같다.

 곡성에는 석곡장 외에 멜론·사과·토란으로 유명한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이 3일과 8일에 열린다. 효녀 심청의 원류를 찾게 해준 관음사와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가 유명한 옥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스크랩]


 

 

[스크랩 / 월간사진 6월호]

 

 

(32)경주 양북장

70여년 애환 녹아있는 고풍스러운 장옥 그대로…



5·10일 든 날 열려
경주 동쪽 해안가에 위치
싱싱한 해물 많아 어물전 커
파종기 종묘상엔 사람들 북적
쇠락의 길 걷지만 인정은 여전


 

 

 

“논두렁에서 캔 씀바귀 좀 사이소. 이거 무마 안 늙는다 카드라. 내 얼굴 좀 보래이. 우리 영감이 지금도 각시 같다 안 카나.”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산다는 황정분씨(73)가 나물을 다듬으며 자랑을 한다. 봄날 장터는 산과 들에서 불려 나온 원추리와 돌나물·취나물·머위·부추·달래·냉이·쑥부쟁이·씀바귀·미나리 등이 가득 펼쳐져 마치 나물 전시장 같다. 황정분씨 자랑처럼 장 안은 봄나물의 쌉쌀한 향기로 가득하다. 저 먼 산과 들에서 내지르는 봄나물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 신라 천년의 역사가 서린 장터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경주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양북장은 감포에서 경주 가는 길목인 양북면 어일리에서 5일과 10일이 든 날에 선다. 찬란한 문화유적(문무대왕릉)과 첨단 에너지산업(월성원자력발전소)이 공존하는 양북면은 서쪽으로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이, 동쪽으로는 문무대왕릉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문화재가 지천이라 선조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노천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1942년에 개설된 양북장은 고풍스러운 옛 장옥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장터 입구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범곡리에서 온 이군자씨(73)가 그 앞으로 다가간다. 강아지 한 마리를 잡아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분하려고 치켜든 모습이 마치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다. “식구를 한 명 들이는데 우째 그냥 사겄노? 그런데 이기 암놈 맞나?” 하고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살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이씨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양북장은 지척에 바닷가가 있어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나온다. 자연산 전복을 비롯해 살아 있는 생물이 많아 어물전이 큰 편이다. 생선 눈만 보면 냉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박씨 할아버지(83)는 어물전에서 장사한 지 53년째다. “여가 어일리(魚日里) 아이가. 마을 앞산이 고기 한 마리 뒤집어놓은 것 같아서 고기 어(魚)자를 붙였다 카드라.” 요즘 제철인 도다리와 소라가, ‘고기 박사’로 통하는 박씨의 말솜씨에 꿈틀거린다.

 파종기를 맞은 종묘상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선 강의실을 방불케 할 만큼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나누다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지만, 그 많은 친구들도 이젠 하나둘 떠나가 시골 장터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장터 모퉁이 모퉁이에는 사람 사는 정이 피어나고 있다.

 “내사 마 봄만 되믄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카이. 산에 피는 꽃과 나물도 이뿌지만 요새가 일하기 딱 좋은 날씨 아이가. 내가 탯자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늘 같은 하늘만 이고 산 토백이라 카이.”

 호암리에서 씨앗을 사러 나온 양씨 할머니(78)의 말이다. 꽃이 피면 힘든 한 해 농사일이 시작되긴 하지만, 꽃밭에서 꽃잎들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씨앗 떨어지는 소리처럼 정겹기만 하단다. “할 일이 없으면 사는 것 같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사는 것 같다”는 양씨 할머니는, 분단장한 지가 언젠지 뒤돌아본 적도 없다며 살포시 웃는다. 고추·토마토·하수오·마·도라지·콩·호박 등 온갖 작물을 심고 가꾸는 방법에 대한 양씨 할머니의 강의는 끝이 없다.

 경주 최씨 집성촌인 봉길리에 산다는 최씨 할머니(79)가 “니만 입이가? 나도 좀 하자” 하며 끼어든다.

 “여가 절과 탑이 많은 건 알지예? 절이 얼매나 많으마 하늘의 별만큼 많다고 했겠노. 여가 부처님 세계인기라.”

 도라지는 3년은 돼야 약이 된다는 이야기와, 봄볕이 아까워 흙 묻은 몸뻬 바지 주물러 빨랫줄에 걸어놓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할머니들의 소박한 삶이 눈에 아른거린다. 밭이 자꾸 불러낸다는 최씨 할머니가 호박씨 심어야 한다며 훌훌 털고 가는 길을, 봄도 덩달아 졸래졸래 따라간다.

 경주에는 양북장 외에도 대표적 전통시장인 성동장(2·7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가는 서면장(1·6일), 감포 방파제가 있는 감포장(3·8일), 재미난 그림이 있는 외동장(3·8일), 불국사가 인근에 있는 불국시장(4·9일), 싱싱한 수산물이 많은 안강장(4·9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남장(4·9일), 옛 장옥이 그대로인 건천장(5·10일)이 있다.


 

 

(31) 태백 철암장

 

시간 멈춘 검은도시, 열흘에 한번
화려했던 지난날, 추억하는 상인들…

주변 탄광들 문닫으며 쇠락의 길로
매달 10·20·30일 장 열려
중부내륙순환·백두대간협곡열차 영향
관광객들 많이 늘어

 


“하늘만 빼곤 온통 까만 동네였드래요. 물도, 땅도, 아이들 얼굴도요. 겨울에 눈이 오면 하얀 이불 같다며 좋아했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아물거립니다.”

 철암장(강원 태백시 철암동)은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60년째 장사를 한다는 이준태 할아버지(80)는 철암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처음 장에 나왔을 때는 지붕이 없어 밀가루 포대로 비바람을 막았는데도 사람들로 넘쳐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만큼 돈이 흔했다고 한다.

 생선을 다듬던 이씨 할아버지는 “저 앞에 보이는 삼방동 불빛이 나를 불렀어” 한다. 기차 타고 가다 삼방동 산비탈을 밝힌 불빛에 끌려 철암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광부가 되려고 탄광을 찾아갔으나 키가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 장삿길로 들어섰단다. 철암장 맞은편에 자리한 삼방동은 광부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좁은 골목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집 하나 끼고 돌면 바로 골목이 나와 마치 미로 같은 동네다.

 태백 철암장은 여느 장과 달리 열흘 만에 장이 선다. 매달 10·20·30일이 장날이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검은 도시의 텅 빈 장옥에는 번창했던 과거만 무성하게 남아 있었다. 머지않아 5월이면 헐리게 될 장옥을 지키며 지난날을 추억할 뿐이었다. 검은 석탄으로 철암의 황금기를 만들었던 그 시절을 모두들 그리워하는 것이다.

 전국 석탄 생산량의 40%나 차지했던 철암의 탄광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장터 뒤편의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에선 아직까지 탄가루를 재우느라 연신 물을 뿜어내며 석탄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무연탄 선탄(캐낸 석탄 가운데서 나쁜 것을 가려냄) 시설로, 근대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곳이기도 하다.

 시장 안에서 40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진씨 아저씨(67)는 난로에 다리미를 달궈 다리미질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흐뭇한 순간은 탄광에서 일하는 신랑이 결혼식에 입을 신사복을 빌리러 찾아올 때. 진씨는 그 젊은 광부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빌려주긴 했지만 얼마나 고생할까 싶어 늘 마음 한쪽이 아렸단다. 그래도 당시엔 공무원이나 상인보다 광부가 인기가 있어 광부증만 있으면 장가도 쉽게 갈 수 있었다. 광부 부인들은 막장에 들어가는 남편 운을 점치려고 무당집을 많이 찾았다는 게 진씨의 말이다.

 철암장이 상설시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1970년대에는 시장 안에 무당집이 여러 군데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처럼 노점상도 많아 난전이 철암역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는 것. 전국 각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대부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났고, 12만명이던 태백 인구가 지금은 5만명도 안 된다.

 아버지가 광부였다는 화가 허강일씨(40)에게 철암장은 떡볶이로 기억된다. 허씨는 엄마 따라 장에 왔다가 떡볶이라도 먹게 되면 일부러 옷에 빨간 국물을 묻혀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허씨는 삼방동 옛 우물 벽면에 엄마가 아들 등목을 시키는 모습을 강아지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삼방동에 폐가가 늘어나자 담벼락에 탄광촌의 추억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최근 이 일대를 역사 속의 탄광마을로 재생시키는 ‘태백 철암탄광 역사촌’이 만들어져 다행이라며, 꼭 한번 들러보라는 당부까지 한다.

 요즘은 중부내륙순환열차(O-트레인)와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가 운행되면서 철암장과 그 주변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 장터 사람들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철암장과 연결된 까치발 건물. 철암에 사람이 몰리던 시절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느라 하천 바닥에 박은 건물 기둥 모양이 까치발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지금은 그 시절의 영화를 알려주는 명물이 됐다.

 따스한 봄날,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열차에 몸을 싣고 아득한 아날로그 여행을 떠나보자. 시간이 멈춰버린 검은 동네, 철암장이 그곳에 있다.

 철암장 외에 태백에서 열리는 장은 통리장(5·15·25일), 장성장(4·14·24일)이 있다. 모두 열흘에 한번씩 열린다.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27)충북 괴산장

 


뻥튀기집 앞 순서 기다리는 할머니들 수다 삼매경

600년 전통자랑…충북서 가장 커
지역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만 파는
토요일 ‘할머니 장터’ 눈길

 

난장 끝머리 뻥튀기집 앞에 늘어선 줄. 할머니들이 추위와 지루함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위 사진)

2004년 괴산장을 방문했을때 본 뻥튀기 기계.(중간 사진)

장터 체험에 나선 어린이들로 순식간에 화사해진 괴산장.(아래 사진)

 

 

 

 “남들이 도와줘 장사헌 것이지 혼자 한 것이 아니구먼유.”

 55년 동안 괴산장터를 지키고 있는 백명희 할머니(88)의 철물점은 지금 3대가 함께 하고 있다. 스물다섯살에 혼자되어 장삿길로 들어섰다는 백씨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지유? 장사는 때로 밑지기도 허구먼유. 남자들 상대하면서 안 싸우려면 밑지고도 팔아야 해유. 나중엔 단골이 되지만유.”

 새마을운동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던 시절, ‘와랑와랑’ 돌아간다고 해 ‘와랑기계’라 부르던 탈곡기와 ‘새끼 꼬는 기계’인 제승기(=새끼틀)는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갈 만큼 잘 팔렸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1970년대 무렵에는 농촌에서 가장 필요한 기계였다고 한다.

 “그땐 100원만 있으면 오징어 10마리를 살 수 있는 시절이었어유. 돈은 귀했지만 서로 정도 많고, 사람 맘들이 참 순했지유. 지금 사람들은 무조건 소리부터 내지르고 참질 않네유. 사람들 맘은 늘 그대로 있어야 되는데 세월 따라 자꾸 변해가는구먼유.”

 철물점이 사랑방 역할까지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장에 나온 사람들이 백씨 할머니를 찾아왔다. 불정면에서 온 김씨(68)는 인사차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 때부터 단골집이어유. 이 집 어르신을 보고 가야 장에 온 것 같구먼유.”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장터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괴산장은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선다. 3일과 8일이면 읍내 시계탑 로터리를 지나 도로 양쪽으로 길게 노점이 늘어선다. 도로를 경계로 장옥이 설치된 곳은 상설시장이고, 그 반대쪽이 오일마다 한번씩 펼쳐지는 난장이다. 충북에서 가장 크다는 장답게 나오는 물건 종류만도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산처럼 쌓아놓은 과일이며 채소와 수산물, 잡화 등이 사람들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종류별로 과자를 잔뜩 바구니에 담아놓고선 “맛보는 건 공짜”라고 외쳐대는 장꾼의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든다. 입구에 펼쳐진 가축전은 장터 체험에 나선 어린이들로 소란스럽다. 어린이들이 강아지와 노는 것을 보니 마치 작은 동물원에 온 것 같다. 아이들이 철망 안에 오밀조밀 드러누운 강아지를 만지자 강아지가 부스스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운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짓는 말간 웃음이 햇살에 퍼져 나간다.

 난장 끝머리 뻥튀기집 앞에는 이름표를 단 깡통과 올망졸망한 보자기들이 50여개나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농번기가 끝난 겨울 장터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뻥튀기집이 가장 바쁘다. 튀기는 곡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뻥튀기가 노인들의 ‘참살이(웰빙) 주전부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아랑곳 않고 이웃 마을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기삼녀 할머니(78)를 만났다. 할머니는 마을 자랑을 해달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나 대답한다.

 “우리 동네 입구에 80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있구먼유. 그 느티나무 덕분에 가뭄도 없고 큰물도 들지 않아 모두가 잘 살고 있네유.”

 괴산은 영험한 느티나무가 유난히 많은 고을이다. 느티나무를 뜻하는 ‘괴(槐)’자를 써 괴산(槐山)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전해지고 있다.

 괴산장은 3년 전부터 3~11월이면 토요일마다 ‘할머니 장터’를 열고 있다. 괴산에 사는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은 우리 농산물만 파는 장이다. 토요일장에 나온다는 신현자 할머니(77)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씀바귀를 비롯한 각종 나물, 한여름이면 대학찰옥수수와 배추 모종, 가을이 되면 곡물과 콩이 많이 나온다며 자랑을 한다.

최근 괴산장은 ‘산막이시장’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산막이 옛길’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이름을 고쳤다고 하는데, 상인들은 아직도 ‘괴산장’이라고들 부른다. 옆에서 장돌뱅이 인생만 20여년이라는 박씨(59)가 한마디 던진다.

 “내용이 바뀌어야 되지유, 이름만 바뀌면 어쩐대유.”

 괴산장 외에 괴산에서 열리는 장은 사과가 많이 나오는 연풍장(2·7일), 목도막걸리를 생산하는 목도장(4·9일), 전국 으뜸의 고추 산지로 유명한 청천면에서 열리는 청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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