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년 말이 다가오면 연례 행사처럼 지원품이 몰려온다.

 

지난 8일과 9일은 동자동 주민들에게 연이은 식료품 나눔이 있었다.

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나누어주었는데,

8일은 200, 9일은 500명 선착순이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200명에게 나누어 주는 8일의 지원품은 두 시간 전부터

쪽방상담소 앞으로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세 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식료품을 나누어 주기로 한 두 시가 지나니 번호표를 주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주려면 좀 일찍 나누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다음 날 500명에게 나누어준 지원품도 전날과 비슷한 식료품인데,

왜 한꺼번에 나눠주지 않고, 이틀에 걸쳐 줄을 세울까?

발 빠른 주민들은 두 번이나 혜택을 받았지만, 벽보를 보지 못한 주민은 한 번도 타지 못해 불공평했다.

긴 시간을 추위에 떨어야 하는 주민들의 고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2018년 '온누리복지재단'에서

서울특별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곳이다.

왜 동사무소에서 할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했을까?

그곳에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기업체에서 보내는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다.

 

 매번 주민들을 줄 세워 굴욕감을 조성해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일을 돕는 봉사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매번 줄 세울 때마다 주민들과 부딪히는 문제는 마스크 착용 여부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오지만, 간혹 잊어버리고 나올 경우도 있다.

한 참 기다렸는데, 다시 줄을 서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는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에 많고 많은 것이 마스크인데,

잊어버리고 나온 주민에게 한 장 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닌가?

기어이 집으로 돌려보내 주민의 불만을 사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갑질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 9일은 새꿈공원에서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었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나갔으나, 기다리는 사람은 좀체 줄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혼잡한 공원에서 소란스런 일이 벌어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주민 한 분이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제재를 받았는데,

어떤 모욕감을 주었는지 주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쓰고 와서 다시 싸우는 걸 보니, 당한 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고성이 오가는 몸 싸움이 길게 이어졌으나, 아무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문제는 주민들이 쪽방상담소 편을 들지 않는 데 있다.

두 사람 모두 큰 소리로 싸우며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까지 불렀으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 경찰이 해결할 사안도 아니었다.

 

나이 많은 주민에게 고개 한 번 숙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으나, 상담소 직원 역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기 싸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150미터쯤 이동하여 지원품을 받을 때까지 싸웠으니, 지루하기 그지없는 몸싸움이었다.

 

 지원품을 찍고 있는 내게도 시비를 걸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쓸려고 그걸 찍느냐?”는 것이다.

고마워서 찍는다며 웃었으나, 어이없는 시비였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듯,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주민을 우습게 보는 갑 질은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

모든 일을 업무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보다 주민의 입장에서 살펴라.

그리고 월급 받는 자가 갑이 아니라, 주민이 갑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라.

 

사진, / 조문호

 

 

 

동자동 쪽방 사는 손행복씨가 한 달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가는데 순서가 없다지만 처음 만났을 땐

나보다 훨씬 건강했고 세 살이나 적었다.

 

행복하게 살라고 이름까지 행복으로 지었으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오죽하면 연고자를 찾지 못해 임종한지 한 달 만에 장례를 치루었겠는가?

 

정선 집이 불탄 일로 실의에 빠져 방구석에만 처 박혀

만나자는 사람이나 전화조차 기피하고 있었지만

손행복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9일 아침 아홉시에 백제화장터로 간다기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모이기로 약속한 ‘동자동 사랑방’에 시간 맞추어 나왔으나,

사정이 생겼는지 먼저 가고 없었다.

 

마침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찾아와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하늘에서 눈물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백제화장터에는 ‘사랑방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과 선동수간사장

조인형씨 등 여섯 명이 와 있었다.

 

시신은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들 ‘그리다’라는 추모공간에 모여 있었다.

 

서울시에서 무연고 빈민을 위해 마련해 둔 추모공간은 처음 보았는데,

세상을 떠난 박원순시장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

 

공영장례장인 ‘그리다’는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마련한 빈소라고 한다.

 

장례의식을 진행하는 담당자 이야기로는 하루에 평균 두 명이 이용한단다.

 

그 곳에 영등포쪽방에서 온 장홍준씨 시신도 같이 안치되어 있었다.

 

다들 식순대로 예를 올리며 먼저 떠난 이를 추모했다.

 

조인형씨는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훔쳤으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 고난의 세상을 떠난 자는 편안할 것이다.

 

가진 자는 죽음이 두렵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손들은 홀 가분 할 것이다.

 

부디 차별 없는 평등의 세상에서 편히 잠드시길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지겹다.
쪽방의 더운 바람을 돌리지만, 그것마저 꺼버리면 질식한다.
정선에서 허리를 다쳐 일주일째 더러 누워있다.
약을 먹어도 신통찮아 쉴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유일한 소식통이다.
라면과 미숫가루가 넉넉하니, 먹을 것은 걱정 없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정선덕씨가 심어 놓는 고추와 오이가 잘 자랐더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징그럽게도 컸다.
옥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풍경이다.
늘어놓은 빨래와 꾀죄죄한 옥탑 방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어제 아침엔 꼼짝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죽을 끓여 내밀었다.
고맙지만, 죽을 좋아하지 않아 부담만 되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눈 감은 김에 스르르 갔으면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산목숨이다.





구부정한 폼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몸을 추스렸다.
친절한 은자씨가 방정맞게 앉아 아이스케키를 먹고 있었다.
천천히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어, 한 입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날씨가 더워 유난히 얼음과자가 그리운 날이다.






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낮선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용산고등학교 전기과 학생들이 동자동에 봉사활동 하러 나왔단다.
건물 주인들이 해 주지 않는 공사를 학생들이 하는 모양인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내 방도 전기가 나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대부분 돌출된 외부선이 아니라 건물내부의 오래된 전선이 문제다.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였는데, 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일 것이다.






원용희씨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워 지난 번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전해주려니,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나를 좀 보잖다.
지난 달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글을 보았다며, 그 지적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날 준 일회용 곰탕은 답례가 아니라 있는 물건을 주었단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줄 세우는 짓을 그만둘 수 없냐고 다그쳤더니,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 골라가도록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푸드마켙’은 용산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쪽방상담소와 상관이 없단다.
그래서 옥상옥인 쪽방상담소를 없애고, 그 일을 동사무소에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여유 있게 해도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을 탓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도 줄을 서지 않냐?"는 말처럼 들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줄을 서야 그 일을 기록할 수 있지만, 줄서는 사람 고충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 바꾸라고 말할 것 아니가?






날씨가 더워 공원 곳곳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락을 돌리던 원용희씨가 찾아 와, 한 개 남았다며 날더러 먹으라고 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밥 생각이 없어 청소하는 황옥선 할머니에게 넘겼다.
다들 입맛이 없으니, 술만 마시고 자는 것 같았다.






더운 선풍기바람 돌듯 다들 그래그래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주는 돈벌이에 급급하고, 일하는 사람은 편한 방식만 고집하고,
가진 것 없는 빈민들만 모든 걸 감수하지만, 인정 하나는 변치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 부니, 죽지 못해 잔소리를 해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6일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에서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관하는 반상회가  열렸다.

오랜만에 열렸으나 주민회의에 참석한 분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하여 끝날 때 까지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든 것이 고작 11명이었다.





왜 이리 ‘동자동사랑방’을 비롯한 각종 모임에 주민들의 참여가 줄어드는지 모르겠다,

예년 같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가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다.

동자동에 재개발조합이 들어서며 부터 생겨나는 이상한 현상이다.

쫓겨 날 것이 걱정되면 자주 모여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오히려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1일자로 ‘서울역쪽방상담소’ 소장을 비롯하여 전 직원이 교체된 것도 관계있을 것이다.

운영을 맡았던 지난번 소장 정수현 팀이 물러나며, '빅이슈'의 ‘온누리복지재단’에서 운영을 맡았기 대문이다.

김갑록씨가 소장으로 부임하고, 실장에 전익형씨, 복지사에 이선영씨로 바뀌면서 생기는 공백인 것 같았다.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면 자치회의 회장도 바뀌는지 그들까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선출한다고 하였지만,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온갖 똥 폼 잡아가며 거들어주는 완장부대도 보이지 않았다.

도와주는 것이야 좋지만,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월권이 늘 눈에 거슬렸는데, 안 보이니 속이 시원하다.


상담소에서 주는 특혜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새 운영 팀에 반감을 가졌을까? 



 



이 날 김갑록소장은 출장 중이라 참석하지 못했지만, 전익형 실장이 자상하게 회의를 끌어갔다.

자치회의라기 보다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의욕은 넘쳐보였다.

일단 권위적이지 않고 친절했으나, 앞으로 주민들을 위해 어떠한 일을 펼칠지 지켜 볼 일이다.






화요일에는 오후1시부터 1시30분까지 새꿈공원에서 ‘화요카페’를 열어 티타임을 갖는다는 소식도 주었고,

17일에는 방충망을 설치해 주고, 19일엔 삼성에서 나와 설렁탕 1,000그릇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다고도 하였다.

그런 공지야 벽보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중단된 쪽방주민들에 대한 반찬지원부터 조속히 재개하기 바란다.






그 날 주민회의 참석자들에게 라면 한 박스와 건조한 피부에 사용하는 크림을 나누어 주었다.


다들 힘내어 우리의 권익을 위해 함께 싸우고, 살기 좋은 동자동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자.
“동자동 사람들, 화이팅~”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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