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3.10.31

사진집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 발간한 정영신 작가

지난해 충남 천안 온양온천역 인근에 열린 풍물오일장. 역 앞으로 나오면 광장이 보이고, 광장 너머 장항선 고가철도 하단부에 장이 열린다.

스스로를 '장돌뱅이(보부상) 사진가'라 칭하는 이가 있다. 바로 37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모두 기록한 정영신(65) 작가다.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장터가 없지만, 그는 아직도 장터를 갈 때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립고 설렌다고 한다. 배낭에 카메라와 시집 한 권, 수첩과 필기도구, 생수 한 병 챙겨 놓고 훌쩍 떠나는 정 작가의 이번 여행지는 '장항선' 일대의 장터들이다.

 

장항선은 충남 천안시 천안역과 전북 익산시 익산역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과거 일제의 군사적 목적과 물자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다. 근대화와 제국주의의 수탈을 상징하던 노선이지만, 이 길을 따라 생명력 넘치는 민중의 삶은 꽃피었다. 물건을 내다 파는 장꾼들과 가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시골의 지역경제를 이루는 근간인 '장터'를 형성했다.

 

천안역에서 충남 서천군 장항역까지 사이 스물한 곳에서 오일장이 열린다. 천안역에는 거봉 포도로 유명한 '입장장' '성환장' 그리고 독립운동의 텃밭인 '아우내장'이 있고, 삽교역에는 곱창으로 유명한 '예산 삽교장'이 열린다. 홍성역에는 '홍성장' '갈산장', 대천역에는 '보령 대천장' 장항역에는 '서천 장항장' 등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과, 세계의 온갖 공산품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형마트가 익숙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만난 장꾼 할매가 만 원을 받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사진집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눈빛 발행)'을 출간한 정 작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여정"으로 장항선 장터 여행을 택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챗GPT니, 메타버스니 하는 최신 기술로 모두가 디지털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현실에 불편함을 느꼈다. 후덕한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그 길로 장터가 열리는 충남 내포 지역으로 향했다.

 

"장터를 돌아다니다 보면 물건을 사고팔 때 묘한 신경전을 목격해요. 100원, 500원에 얼굴 표정이 달라지죠. 그런 찰나를 보는 게 재밌어서 사진을 찍어요."

 

그가 처음 장터를 찾은 건 1980년대 후반이다. 신춘문예에 낙선한 뒤 사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장터가 떠올랐다. 아무나 가도 되고, 사람 이야기가 흘러넘치며,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현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 이제는 장터에도 사람이 없고 쓸쓸함마저 감돌지만, 그가 장꾼들을 만나며 채록한 이야기와 카메라로 담은 사진들로 인해 비로소 장터는 다시 생기를 얻는다.

 

책에는 장터 할매들이 펼친 난전의 농산물 사진을 비롯하여 장터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농촌의 한적한 들판 풍경 등 느려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다. 호박, 쪽파, 열무, 고추, 가지, 여주, 마늘, 배추, 도라지 등 오랫동안 사람들의 밥상을 책임졌던 작물들은 마트의 매끈하고 평균적인 맵씨와 대조적으로 울퉁불퉁 개성 있게 생겼다. 봄이면 산나물 하나를 사는 데도 할매들의 '봄나물 강의'가 덤이다. 예산역전장의 한 할매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 두 알을 내놓았다. 장터에서는 모든 물건이 소중하고 낭비가 없다.

 

"시장의 물건들은 모양새도 다르고, 물과 흙에 따라 물건들도 제각기죠. 할머니들이 봄부터 씨 뿌려 물 주고 애써 기른 물건은 나물 하나, 호박 하나만 봐도 달라요. 느리게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거죠."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풍경들.

책은 점점 사라지는 장터와 이 공간을 메운 장꾼들을 향한 연서다. 옛날에 보았던 풍각쟁이, 원숭이와 함께 나온 약장수의 익살스러운 농담에 환하게 웃는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장터를 찾을 때마다 "우리 죽으면 이 장도 없어지고 주차장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 작가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번화했던 과거는 옛말이고, 장꾼 서너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고 자란 고향을 지켜야 하는데 내가 죽으면 이 장은 누가 지키나' 하는 마음으로 늙은 몸을 이끌고 꿋꿋하게 장꾼들은 가져온 물건을 내어놓는다.

 

"어르신들이 장에 나오는 건 세상을 만나러 오는 거래요. 장사는 '일'이 아니라 '삶'이고,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요. 지금 장항선은 느린 열차가 달리지만, 5년 후에는 KTX처럼 고속 열차가 달릴 거래요. 장항선이 없어지기 전에 이 장터들에 가서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는 건 어떨까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영신 작가는 한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오고 있다.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 / 정영신 지음 / 눈빛 발행 / 224쪽 / 2만5,000원

 이혜미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사진가 정영신씨는 37년 동안 전국 장터만 돌아다닌 미친 여자다.

그런 미친 여자를 만난 지도 어언 20여 년이 가깝건만,

여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왕 장터를 찍으려면 전국 오일장을 다 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거절은 커녕 실행에 옮기려고 전국 6백 개가 넘는 오일장 장터 동선을 파악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사진 작업에 대한 집념과 투지만은 막상막하였다.

 

몇 년이 걸렸는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그녀와의 장터 여행은 길고 긴 신혼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두 미친 인간이 벌인 행각은 늙은이 말처럼 ‘밥 팔아 똥 사먹는’ 일이었다.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장에만 가면 신나고 사진만 찍으면 좋아하니 어른으로 보였겠나?

 

긴 세월 장돌뱅이로 살았으면 장삿속도 밝을만한데, 돈 쓸 줄만 알지 벌 줄을 몰랐다.

먹고 사는 것보다 찍는 대상이 먼저다 보니, 거지로 사는 게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결국 그 엄청난 일을 마무리하여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란 책을 완성했다.

그뿐 아니라 ‘장날’과 ‘전국오일장 순례기’, ‘장에 가자’ 등을 연이어 펴내며

장터에 관한 사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미 사라진 시골장들은 그녀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되었다.

 

나 역시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가족도 보이지 않는다. 

쪽방 살려고 이혼을 요구했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을 위해서라면 결혼하자 면 결혼하고, 이혼하자면 이혼하는 바보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바보가 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 그런 여자 보기 힘들다.

 

'사진을 위해서라면 부부면 어떻고 동지면 어떠냐?는 것이다.

우린 세상이 만든 굴레는 벗어 던진 지 오래다.

난, 그녀 방패막이 되어 그녀를 힘들고 슬프게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쳤다.

위태로운 삶을 살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감은 최고로 친다.

 

그런데, 장돌뱅이 정동지가 또 사고를 쳤다.

팬데믹으로 사람을 피해 다닌 2년 동안,

날 따 돌리고 천안 입장장에서 서천 장항장까지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바람을 피운 것이다.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이란 책을 내려고 기차 타고 혼자 돌아다닌 것은 좋으나,

그 고생길은 보나 마나 뻔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장꾼들처럼 버스 기다려가며 돌아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히려 장꾼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늦은 밤 용산역으로 마중을 가면 항상 곤죽이 되어 돌아왔다.

매번 위로는 커녕 ‘사서 고생 한다’는 핀잔을 주었지만, 타고난 업이라 여겼다.

 

드디어 장항선 주변의 충청도 장 21곳의 장터 순례를 억척스럽게 끝냈다,

책을 만들고 전시회도 연다지만, 누가 책은 그냥 만들어주며, 전시는 그냥 열어준다 드냐?

그렇다고 돈 잘 버는 서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 한 푼 없는 거지가 말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벌리고 보는 뱃심 하나는 존경하지만, 빚 갚을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서 쪽팔려도, 책 팔려고 매주알 고주알 약을 파는 것이다.

 

어제 출판사에서 보내온 200권의 책을 보니, 책더미에 깔려 죽더라도 기분은 좋았다.

일단 한 권을 꺼내 살펴보니, 헛고생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 장꾼들이 푸는 느릿느릿한 사투리의 글도 정겹지만,

사람이나 사물을 찍은 사진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태 흑백 장터 사진에 익숙했지만, 이번에 만든 컬러 사진집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장터 분위기가 마치 펄떡이는 생선처럼 꿈틀거렸다.

역시 사진의 리얼리티는 흑백보다 컬러가 강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꾼을 대하는 사진가의 시선이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감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이만하면 책을 권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감히 책을 추천 한다.

백 마디의 인사나 술보다 한 권의 책을 사 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책값 25,000원을 정영신 계좌 (하나은행 593-810222-39907)로 보내주시고,

정영신 핸드폰에 (010-2955-8926) 주소를 남겨주면 된다.

기념으로 작가가 서명한 조그만(5X7인치) 작품 사진도 함께 보내 드린다.

 

글 / 조문호

 

 

 

산다는 게 만만찮다는 건 알지만, 목숨 내놓고 사는 장돌뱅이의 삶이 애처롭다.

인간으로 태어나 언젠가 한 번은 죽는 것이지만, 목숨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돈에 목숨 걸어야 하는, 그 돈이 대관절 무엇 이길래?

 

사람 많이 몰리는 장만 찾아다니는 장돌뱅이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남의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불러 모우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 질러야 하는 그들인들 어찌 전염병이 두렵지 않겠는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위험한 전쟁터에 나서야만 하는 삶의 전사들이다.

 

요즘은 대목장이라 틈만 나면 장에 돌아다니는데, 어제는 이천 읍내 ‘이천관고시장’에 들렸다.

시골에서 열리는 대목장은 사람이 없어 한산했으나 이천장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러다 전염병 확진자라도 생기면 어쩔까 겁이 덜컹 났다.

장에 사람이 없어도 탈, 많아도 탈이니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쌀과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 지역은 낮은 구릉지가 많고, 여러 강이 흘러들면서 일찍부터 평야가 발달했다.

땅이 기름져 농사짓기에 좋을뿐더러 수도권과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어 온 장터다.

 

이천 쌀은 왕실의 진상품에 오를 정도로 옛날부터 유명세에 탔다.

그래서 이천 쌀이 지역적 특성을 갖는 이천의 상징 농산물이 된 것이다.

 

이천 지역에 있는 장은 이천 관고장과 장호원장을 두 축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북쪽의 이천읍과 남쪽의 장호원읍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에 나오는 상품이나 시장 구조가 어느 장이나 대개 엇비슷한데,

이천장은 차량이 많아 주차할 곳을 찾아 시장을 두 바퀴나 돌아야했다.

수도권이지만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은 교통사정에 기인한 것 같았다.

 

장 주위를 맴돌다 숨이 차면 마스크를 벗는데 비해, 정영신씨는 장바닥을 휘젓고 다녔다.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장꾼들 인터뷰까지 해대니, 미쳐도 제대로 미친 것이다.

 

오후에는 지척에 있는 ‘설봉선원’을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선원 외곽을 돌아 다니며 내부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관광객은 커녕 인적 없는 한가한 곳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이유가 의문스러웠다.

 

‘설봉선원’은 서희, 이관의,· 김안국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4년 세워졌다.

1593년 지금의 이천읍 관고리로 이건하며, 최숙정을 추가하여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선현배향과 교육에 이바지해 온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백송이 있는 이천 백사면 신대리로 옮겼다.

중국이 원산인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끝이 뾰족하고 짧았다.

210여 년 전 조선시대 참판을 지낸 민달용의 묘소에 심은 기념수라는데,

전국을 통 털어 여덟그루 밖에 없는 희귀종이란다.

 

이천 모가면 소고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과 마애 삼존석불도 찾아보았다.

자연석면에 좌상의 형태로 새김 조각된 형식이 고려 전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는데,

참배자의 눈높이를 고려해 기형적인 불상을 조성하였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 아래 있는 마애삼존석불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고

일반적인 불상조성의 규범에서 벗어난, 고려 중기 이후 석불로 추정되고 있다.

 

하루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한데,

정영신씨의 장터 거리두기가 걱정스러워 말을 꺼냈다.

“사람들과 부대끼다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쩔거냐?‘는 물음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충무공의 명언을 말했다.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부하들의 전투의지를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훈시를 인용했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적을 물리쳐 살아남을 수 있으나, 적이 두려워 살고자 도망친다면

적에게 패배 당함은 물론 목숨도 잃게 된다는 말이 아니던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 장터 기록의 과업을 완수하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은 포천에 있는 신읍장을 찾아갔다.

지난주에는 포천에 있는 유적 찾아 갔는데, 이번에는 신읍장 간다네.

장날을 찍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역병에 문 닫은 장터를 찍으러 간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장터 닫기는커녕 대목장이 섰다.

이달 말까지 민속장을 잠정 개장한다는 현수막이 걸린 걸 보니, 갑자기 열린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이 모여 불안하기는 했으나, 대목장이라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포천은 물이 밖으로 흘러 생긴 이름이라는데,

포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구읍천 따라 펼쳐지는 포천장은 경기 북부에서 가장 큰 장이다.

성남의 모란시장과 일산시장, 김포시장과 함께 경기도 4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장이다..

정기적으로 끝자리 5,10일에 열리는 신읍장은 포천시청과 포천경찰서 중간의 뚝방에서 열려

마치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장터다.

 

신읍장은 농민들의 농산물보다 장돌뱅이들이 실고 온 상품이 주를 이루는데,

포천하면 이동갈비를 떠 올리듯, 장터에도 갈비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장터 나온 사람들은 다들 마스크를 쓰고 왔으나,

음식점에서는 벗을 수밖에 없는데, 거리두기는 공염불이었다.

나 역시 숨쉬기가 힘들어 잠시 마스크를 벗었더니, 겁이 덜컥 났다.

시장상인들의 생계도 외면할 수 없으나, 이러다 문제 생기면 어쩔가?

 

난, 이년 전부터 폐 기능에 문제가 생겨 심한 호흡장애를 겪고 있다.

죽을 때까지 약과 흡입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코로나가 더 징그러울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쓰면 숨 쉬기가 힘들어 대중교통은 물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해 다녀야 하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시장을 순찰하듯 휭 돌고는 차에 돌아와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차에서 한 참을 쉬고 있으니, 정영신씨는 사진을 찍고 바리바리 사들고 왔다.

사진도 찍고 대목장도 보는 셈인데,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다.

 

정선 산골의 좋은 공기에 마스크 벗고 살면 좋으련만,

무슨 놈의 역마살이 끼었는지 사흘이 멀다 하고 나온다.

 

빨리 역병이 물러갔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5일은 정영신씨 따라 포천 신읍장에 장보러 갔다.






포천장은 다리 밑에서 열리는 장으로 경기북부에서 가장 큰 장이다.
포천읍내에 있던 장터가 무질서한 교통문제로 지금의 다리 밑으로 옮겨졌단다.






다리 밑이라니 별난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릴 적엔 다리 밑에 내다 버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당시의 다리 밑이란 거지들이 몰려 사는 곳이기도 했지만,
나병환자들이 많아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중엔 다리 밑을 고향처럼 동경했지만... 




 


한 시간 남짓 달려 다리 밑에 당도하니, 장마당이 시끌벅적 했다.






“단감이 한보따리 오천원이여. 오천원! 이제 몇 개 안 남았어요.”


장꾼들 이야기는 숨 쉬는 소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 듯이, 한 보따리 라는 게 겨우 일곱 개 담긴 봉다리었다.
그리고 뒤편에 세워 둔 트럭에서 수시로 가져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게 장사꾼이니, 어쩌겠는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게 장터 생리니,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그래도 사람냄새 물씬 나는 신읍 장터는 고향에 온 듯 정겹더라.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라 장꾼들도 다들 밥 먹느라 바빴다. 
모두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밥 먹는 모습도 빼 놓을 수 없는 정경이다.





뺏어 먹을까 혼자 숨어 까먹는 사람도 있고, 두 내외가 마주앉아 정겹게 먹는 사람도 있고,
장꾼들 여럿이 둘러 서서, 노닥거리며 먹는 등,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심지어 중국집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휴대용 버너에 라면을 끓이는 장꾼도 있었다.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포장마차도 바글바글, 호떡집은 불난 호떡집처럼 장사진을 쳤다.






노리짝 하게 구운 호떡에 군침이 돌았으나, 동자동서 줄 서는데 질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밥 먹는 것조차 귀찮은 놈은 살 자격도 없다. 그러나 죽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영신씨는 사진 찍으랴 인터뷰하랴 바빴으나, 물건 사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가평 잣 장사 구라에 못 이겨 잣도 한 봉지, 포천 단감도 한 봉지, 심지어 내 바지까지 사서 갈아 입어란다.






청바지 뒤가 헤어져 팬티가 보인다는데, 팬티는 옷이 아니던가?
어떤 사람은 멀쩡한 청바지에 구멍 뚫어 입고 다니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포천 신읍장은 시 소재지 장이지만, 시골 장 못 잖게 재미가 솔솔하다.
물이 밖으로 흘러 생긴 이름이 포천이라는데, 물이 밖으로 흐르면 몽정이 아니던가?

다리 밑 장터라 자연과 어울려 정답지만, 흉하게 지어놓은 장옥이 없어 더 좋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포천장에 장보러 가자.
밑져야 본전인 신읍장은 5, 10일에 들어서는 장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장 살린다고 지랄해도 이미 끝났어! 사람이 있어야제..”

지난 달, 설 대목장 촬영 길의 단양 영춘장에서 만난 장돌뱅이가 뱉은 말이다.
사실, 면소재지 장들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
몇 안 되는 노인들마저 점차 쇠진해가니 장을 지킬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모두 군단위의 읍소재지 장에 통폐합되거나, 면소재지 상권은 하나로마트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작업하는 동안 하나 둘 사라지는 시골장과 변해가는 풍정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져 그곳에 카메라 초점을 맞춘지가 아내는 29년차, 나는 10년차지만, 

잘 알려진 장들만 찾아다녔던 한계가 늘 마음에 걸렸다.  

5년전, 600여개로 파악된 우리나라의 오일장을  모두 기록하자는 나의 무모한 제안에

아내가 흔쾌히 동의함으로 본격적인 장돌뱅이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촬영경비 마련이 가장 힘들었지만, 무리한 강행군으로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가도 가도 못가 본 장터들이 더 많았으나 이제사 서서히 장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짜여 진 일정대로라면 3월 9일경 끝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국 장터를  돌아 본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사 장에 대해 뭔가를 알겠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시각적 언어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찍어 둔 각자의 원고들을 분류, 정리하며 눈여겨 보아 두었던 장을 찾아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면  

올 년말 쯤이면 서로 다른 사진집으로 엮여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것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또순이처럼 억척스럽게 해 낸, 아내의 덕이다.

그 많은 주변의 원망까지 뒤집어 써가며, 혼자 경비 조달하느라 마음 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다.

모두들, 빈털털이 주제에 빚내어 돌아다니는 우리 내외가 얼마나 한심했을까?
대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미치면 한 사람은 말리는 것이 정상인데, 둘 다 미쳤으니 어쩌겠는가...

남은 빚은 정선 집이라도 팔아 갚으면 되고, 사는데 까지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아내와 장돌뱅이처럼 떠 돈 시간들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대목장을 떠돌 때, 내 카메라에 잡힌 아내 정영신의 모습이다.]

 

        2014.1.14 충남 공주, 유구장에서

 

2014.1,19 전북 김제, 원평장에서

 

2014.1.28 강원도 인제, 신남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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