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살린다고 지랄해도 이미 끝났어! 사람이 있어야제..”

지난 달, 설 대목장 촬영 길의 단양 영춘장에서 만난 장돌뱅이가 뱉은 말이다.
사실, 면소재지 장들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
몇 안 되는 노인들마저 점차 쇠진해가니 장을 지킬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모두 군단위의 읍소재지 장에 통폐합되거나, 면소재지 상권은 하나로마트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작업하는 동안 하나 둘 사라지는 시골장과 변해가는 풍정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져 그곳에 카메라 초점을 맞춘지가 아내는 29년차, 나는 10년차지만, 

잘 알려진 장들만 찾아다녔던 한계가 늘 마음에 걸렸다.  

5년전, 600여개로 파악된 우리나라의 오일장을  모두 기록하자는 나의 무모한 제안에

아내가 흔쾌히 동의함으로 본격적인 장돌뱅이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촬영경비 마련이 가장 힘들었지만, 무리한 강행군으로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가도 가도 못가 본 장터들이 더 많았으나 이제사 서서히 장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짜여 진 일정대로라면 3월 9일경 끝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국 장터를  돌아 본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사 장에 대해 뭔가를 알겠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시각적 언어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찍어 둔 각자의 원고들을 분류, 정리하며 눈여겨 보아 두었던 장을 찾아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면  

올 년말 쯤이면 서로 다른 사진집으로 엮여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것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또순이처럼 억척스럽게 해 낸, 아내의 덕이다.

그 많은 주변의 원망까지 뒤집어 써가며, 혼자 경비 조달하느라 마음 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다.

모두들, 빈털털이 주제에 빚내어 돌아다니는 우리 내외가 얼마나 한심했을까?
대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미치면 한 사람은 말리는 것이 정상인데, 둘 다 미쳤으니 어쩌겠는가...

남은 빚은 정선 집이라도 팔아 갚으면 되고, 사는데 까지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아내와 장돌뱅이처럼 떠 돈 시간들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대목장을 떠돌 때, 내 카메라에 잡힌 아내 정영신의 모습이다.]

 

        2014.1.14 충남 공주, 유구장에서

 

2014.1,19 전북 김제, 원평장에서

 

2014.1.28 강원도 인제, 신남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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