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어 노숙하는 부랑자들은 몸 부칠 곳이 없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짐은커녕 그 흔한 우산하나 지니지 않는다.

신출내기들은 이것저것 챙겨 다니지만, 점차 하나하나 버리게 된다.

살다보면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의 편안함을 깨닫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 많던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몸 피할 곳은 물론, 밥 얻어먹을 곳도 마땅찮다.

다들 음습한 곳으로 숨어들어 물에 빠진 새양쥐처럼 오들오들 떤다.

 

비가 그친 지난 3일에서야 서울역광장에 다들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비를 피하다 왔는지, 끼리끼리 만나 잡담을 나누었다.

몇 몇은 지하철 통풍구를 평상처럼 더러 누워 젖은 몸을 말렸다.

 

서울역광장 쪽에서 누가 불렀다. “조기자! 사진 한 판 찍어줘”

계단에 이기영씨와 홍홍임씨가 앉아 있었다.

웬일로 나왔냐니까,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왔단다.

하기야! 쪽방에 있어보았자 덥고 답답하기만 할 텐데,

서울역이라도 나오면 다양한 군상들을 만날 수 있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안 보이는 노숙인이 많아 쓸 만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사용동의서를 받아두는 것도 일이다.

다들 좋아서 찍어 시비 걸 사람은 없겠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받아두라는 주변의 충고 때문이다.

 

이기영씨도 삼년 전 겨울에 찍은 사진이 생각나, 동의서를 내 밀었다.

사진집에 당신 사진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두 말 않고 사인해 주었다.

여지 것 10여명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한 사람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거절은커녕, 다들 “어떤 사진이냐?”며 좋아했다.

 

여지 것 출판을 서둘지 않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문화재단의 출판지원이 없다면 무리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최소한 자기 사진이 실린 분들에게 책 한권은 증정해야 할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 정영신씨의 ‘장터문화답사기’는 지원책에 선정되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다들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사진집으로나마 추억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정선 땅을 팔아서라도 캠핑카부터 구할 작정이다.

필요한 짐을 차에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사진찍다 길에서 죽는 것이 꿈이다.

처음이고 마지막인 내 꿈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사진, 글 / 조문호

 

2016년 11월 29일 / 동자동 / 이기영



왜 영악하게 살지 않았냐고 탓하지 마라.
왜 악착같이 벌지 않았냐고 탓하지 마라.

내 비록 빈 털털이라 멸시 받고 살지만,
그렇게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돈에 고개 숙이거나

돈에 영혼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 조문호




요즘은 빈민들에게 베푸는 혜택이 다양해졌다.
일 년에 육만 원을 사용할 수 있는 문화누리카드를 동사무소에서 만들어주더니,
얼마 전에는 푸드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도 발급해 주었다.
‘용산 사랑 나눔 푸드마켓’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네 가지의 상품을 가져갈 수 있는 카드라 했다.






뭔지 궁금해 당장 푸드마켓을 찾아 나섰다.
조인형씨는 골목에서 냉장고를 분해하고 있었고, 마침 이기영씨가 지나갔다.

위치를 물었더니, 한강로 큰 길가에 있다며 자세히 알려 주었다.
어렵사리 푸드 마켓은 찾았으나, 뭘 골라야 할지 한 참을 망설였다.






처음엔 가격이 비싼 상품에 관심이 갔으나, 당장 먹을 수 없다면 짐일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쵸코파이 한 상자, 일회용 커피 한 상자, 라면 5개를 골랐다.
나머지 한 가지는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특별한 초콜릿을 골란 것이다.
포장지에 ‘마켓-오, 생 초콜릿 밀크’라 적혔는데, 냉동실에 보관하라는 주의말도 들었다.
그런데, 매장직원이 골란 상품을 살펴보더니, 고맙게도 냉동 닭 한 마리를 덤으로 줬다.





집에 돌아와 닭의 포장을 벗겼더니, 아주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웃음이 절로 났다.
그리고 처음 본 초코릿을 한 점 집어 먹었더니, 입에서 살살 녹았다.
초코릿 상자 안에 얼음봉지까지 담긴 것으로 보아 싼 가격은 아닐 것 같은데,
거지 주제에 입 호강한 것이다. 언제 이런 맛있는 초코릿를 먹어볼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게 빈민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선착순으로 줄 세워 나눠주는 것은 주민들을 타자화 시키고, 자괴감을 높이는 나쁜 방법이다.
들어오는대로 나누어주는 상품은 비좁은 쪽방에 짐이되는 것도 있다.
생색내기 좋은 줄 세우기를 그만하라고,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으나 마이동풍이다.






앞으로 빈민들을 위한 식료품 배급 라인은 푸드마켓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
온정으로 전달되는 상품은 모두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빈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량을 늘려주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동자동에 거주하는 빈민만이 아니라, 노숙하는 이들도 카드를 발급해 주어야 한다.




 


주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쪽방상담소는 없애고, 그들이 맡은 업무를 동사무소에 이관하라.
왜 옥상옥을 만들어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냐?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의 쪽방 사람들은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가 어디인지 실험하는 것 같다.

다들 찜질방처럼 발가벗고 살지만,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후덥지근하게 돌아가는 갇힌 바람은 선풍기가 아니라 온풍기다.

뜨거운 바람이 거슬려 잠간이라도 선풍기를 끄면 땀이 팥죽처럼 흘러내린다.

건물이 햇볕에 잘 달구어져, 찜질방이 쪽방을 형님이라 부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다들 폭염을 견뎌내는 그들만의 노아우가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 화장실에 가서 물 한 두 바가지 뒤집어쓰면 되고,

그도 안 되면 술 한 잔 마신 후, 공원이나 바람 통하는 그늘에 뻗어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쪽방 사는 사람들도 가오가 있어, 아무데나 눕지는 않는다.

더워 곤죽이 되어도 견딘다. 그래서 여름철은 노숙하는 친구들이 상팔자다.






옆 건물의 이기영씨는 무더운 여름 나는데, 이골 난 사람이다.

덥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 아예 신경을 끈다는 것이다.

가끔 찬물 적신 타올로 몸을 식히지만, 이열치열이라며 운동까지 한다.

나더러도 근육 운동을 하라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이기영씨는 몸에 살이라도 남았지만, 난 뼈다귀뿐이라 개 달라 들 까 두렵다.





다들 지하철로 가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건만, 끝가지 방에서 버티는 곰들이 존경스럽다.

옷을 몸에 걸치는 순간 땀에 젖기도 하지만,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더운데 힘만 빠져, 가만있는 게 상책이란다.







지난 토요일은 대전에 작업실이 있는 조성기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서울역에 왔는데, 동자동 있으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지라, 움직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당가에 내려가니 다른 분과 같이 왔는데, 안면이 많아 보였다.

예전에는 포항에서 사진을 했다지만, 지금은 군부대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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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씨는 미술은행에 사진을 한 점 팔게 되었다며, 액자 맡기러 서울 왔다고 했다.

요즘 같이 어려운 경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조금이나마 숨통이 터일 듯 했다.

고등어구이에다 시원한 냉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시간이 되었다.






손님들이 떠난 후 지하도로 내려갔더니, 처음 보는 사내가 지하도를 안방처럼 누워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지, 맛이 살짝 간 것 같았다.

노숙을 해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하는데, 저러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

저런 게 민폐라는 것이다. 다른 노숙자까지 힘들게 하니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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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참 간사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덥다고 난리치더니, 하루아침에 춥다며 웃옷을 찾는다.


사실, 쌀쌀해지면, 술 맛 나는 계절 아니던가?
술 생각에 새꿈 공원으로 나갔더니, 여기 저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멍가게 강재원씨는 이미 맛이 가버렸더라.
어머니 몰래 소주 몇 병을 빼돌려 놓고 허풍을 떨어댔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자락에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남기씨의 빠진 이빨 사이로 즐거움이 넘쳐 흘렀다.






이홍렬씨는 소주파가 아니라, 주위만 맴돌았다.
내가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자리를 만드니,
그 때야 한 잔 하시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추석명절의 쓸쓸함이 유난히 길어, 그 때가 그리운 것 같았다.






20여 년이 지난 추석 전 날,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다 돈뭉치를 주웠다는 것이다.
거금 백만원이나 들어있는 쇼핑빽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그 날 청소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코가 비틀어지게 마시고,
남은 돈은 명절 보너스 로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없는 사람들 적선했으니, 아마 복 받았을 거다.
그래도 혼자 챙기지 않고, 함께 나누었으니 인간적이지 않은가?
신고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도리지만, 어찌 혼자 독식하는 야박함에 비할소냐.





지난 해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다섯 쌍 중의 두 내외도 나와 있었다.
이기영, 홍홍임씨 내외와 김만귀, 이경희씨 내외는 찰떡궁합이다.
그 날도 두 내외가 짜장면으로 정분을 나누었는데,
김만귀씨 아들 정훈이가 동내재롱 다 부린다. 동자동의 유일한 기쁨조다.






이 날은 ‘구글 보지’로 통하는 유씨도 등장했다.
사실은,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잘 기억된다.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그랬다.
“꼭다리 옆방이 짹짹이 방이잖아” 이름은 얼른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은 바로 나온다.
날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찍새로 불러다오.






그날의 화제는 어딜 가나 지갑 분실사고 였다.
지난 추석 전 날, 이모씨가 지갑을 분실한 모양인데, 그 일로 뒷말이 많았다.
CCTV에 줏는 사람 모습이 찍혔다며 경찰까지 개입했으나,
아무도 이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동내에서 인심을 잃은 것이다.






이미 술이 취해 있었는데, 인사동에서 술친구들이 날 불러 재꼈다.
인사동‘툇마루’로 자리옮겨 마시느라, 지갑에 만원짜리 한 장 달랑 남겼는데,
그마저 임자가 따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지하계단을 올라가다 옆방에 사는 최완석씨를 만났는데,
구석에서 노숙자 한 사람이 손을 흔들어댔다.
자세히 보니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이 소원”이라던 이상구씨였다.






몇 달 만에 만났는데, 얼굴도 많이 상했지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옆에 두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길래,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지갑을 마저 털어야 했다.
누구에게 구제 금융을 요청하던, 그건 내일 일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이상구씨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내일 걱정까지 사라지더라.






“돈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던가”


사진,글 / 조문호




페이스북 친구가 된 김길석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내 손이 잛아 나는 반토막만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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