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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화백의 ”이것저것”展이 지난 22일 오후 4시부터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개막식에는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박재동 화백과 시민운동가 김민웅,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함께 노래 부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음악인이 나와 축하공연을 펼쳐 전시장에 온 것이 아니라 마치 공연장에 온 것 같았다.

 

만화계 지인들은 물론이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하여 심정수, 박복신, 허준, 조신호, 최명철씨 등

반가운 분들이 너무 많아 다 거명할 수가 없다.

 

전시장 중앙에는 수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든 ‘촛불행동’이 걸려 있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촛불행동'의 거리 투사다웠다.

군부보다 더한 검부 시대 사는 예술가들이 어찌 팔짱 끼고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그는 고답적인 소재보다 항상 낮은 곳에 사는 민중들 일상에 다가가 그렸다.

그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애정 어린 눈길로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전부를 그려야 한이 풀릴 거라는 그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떤 자리건 안 가리고 그림을 그리는데,

심지어 거리 행진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타고 난 화가다.

 

전시장에는 어린 시절 그린 작품에서 시작하여 수시로 조그만 화첩에 그린 '손바닥 그림'도 붙어 있었다.

 

전단지나 종이컵에 자유롭게 그린 스케치를 비롯해 크레파스화, 수채, 유채, 수묵, 팬화, 크로키 등

많기도 한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때 독자를 웃기며 열 받게 한 만평과 익살 넘치는 캐리커처였다.

 

고답적인 언론 지형에서의 과감한 형식 파괴가 오늘의 시사 만화계를 일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화백 작품은 모든 것이 민중의 삶에서 비롯된다. 그림 값으로 동전 받고 아이들을 그려준다.

 

재료에 한계 짓지 않고 닥치는 대로 그린다.

시위 전단지에서부터 종이컵에 이르기까지 소재에 구애 받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사물을 소중하게 본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해 꾸준히 시대의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전시장 초입 벽에 적힌 '예술인 듯한 것'도 싫고,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도 싫다는

작가의 글이 예술의 허세를 비꼬는 듯하다.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2층에서 열리는 '박재동의 이것저것' 展은

27일까지라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아 서둘러야 한다. “모두 함께하자!”

 

사진, 글 / 조문호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33인의 그림전이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바다에 흘려보내는 방사능 오염수가 자연환경은 물론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과학적이고 안전하다'는 내용의 홍보물까지 제작하여

일본을 대변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국민 세금을 일본 정부의 만행을 감싸는 데 사용해 할 말을 잃었다.

 

인류의 공유 자산인 바다를 더럽히는 건 미래세대에게 대죄를 짓는 일임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하여 중단시키기는 커녕 조장하는 것이다.

 

국민 앞에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친일을 넘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이성을 잃고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윤석렬 정권은 말할 가치도 없지만,

국민의 대변자인 여당의 태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일본의 힘으로 당명부터 바꾸어라.

 

그들 앞에도 닥칠 일이지만, 그보다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치의 비참한 말로를 보지 않았던가.

 

의식 있는 작가들이 마냥 두고 볼 수 없어 먼저 불을 지폈다.

아르떼 숲정요섭씨가 나서서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전시 장소가 한정되어 33명의 작품만 걸었지,

천명이고 만 명인들 나서지 않을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작품을 내건 작가는 다음과 같다.

강용면, 고경일, 김건예, 김봉준, 김용주, 김재홍, 김진열, 류경희, 류연복, 류재현, 박건, 박근수, 박야일,

박은태, 박재동, 서혜경, 성효숙, 아트만두, 유진숙, 윤석남, 이윤엽, 이난영, 이달비, 이소리, 이익렬,

이익태, 이인철, 이현정, 전승일, 정영창, 천광호, 칡뫼김구, 한주연 등 33인이다.

 

아래는 일본 핵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33인 작가의 성명서다

 

결국 일본정부는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말았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이웃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온 인류가 공포에 떨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파괴 행위를 또 저지르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거드는 국가도 있고, 반대하지만 소극적인 국가도 있고, 일본산 해산물 수입을 전면 중지하는 국가도 있지만 이들 국가는 저마다 국제정세를 따져 자국의 이익 계산에 몰두할 뿐, 바다가 망가지는 것에 대하여 마땅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바다가 망가지는 것은 국가 이익을 넘어 지구 생명이 망가지는 것이다.

 

바다는 곧 하늘이다.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고리는 곧 <>이다. 물만이 지구 생명을 살게 한다. 석촌호수 담수량의 4분의 1이나 되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바다에 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자연에게 인류가 저지른 폭력적인 행위 중에 단연 최악이다. 그들은 변명으로 과학을 들고나오지만 30년 동안 버린 뒤에도 지구 생명에게 안전한지와, 100, 200년 뒤에도 안전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커녕 데이터도 없다. 원자로 냉각수와 원자로 폭발로 인한 핵 오염수는 전혀 다르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묻는다.

 

단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핵 오염수를 온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의 터전인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반인륜적이며 반생명적이다. 숱한 생명을 살상한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로서 자숙하고 또 자숙해야 할 일본의 후안무치한 핵 오염수 폐기행위를 동시대 미술인으로서 강력히 규탄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정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인류에게 숱한 가해를 저지른 일본은 여전히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이 해야 할 배상을 대신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는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마저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국민 불안과 일본 편들기 중에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지 묻는다.

 

핵 오염수 투기를 하는 당사국이 발표하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이에 동조하는 국제기구 및 우리 정부의 데이터도 신뢰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해양투기를 당장 중단하고 이해 관계국을 제외한 제3국이 연대하고, 국제 시민사회가 연대한 기구를 세워서 뭇 생명에게도 공정이 담보된 조사와 감시를 해줄 것을 제안한다. 생명평화예술을 지향하는 전세계 예술인에게도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국제적인 연대 활동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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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작가 33인 일동

 

지난 923일 오후 2시에 열린 작가 발언대에는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고경일, 김봉준, 김용주, 류연복, 박 건, 박재동,

성효숙, 이달비, 이익태, 이현정, 천광호, 칡뫼김구씨 등의 참여작가들이 나와 각자의 소견과

문제점을 제기했고, 출품 작가 외에도 장경호, 김이하, 정덕수, 배경애, 김지소, 황준연씨 등 많은 분이 참여하여

핵 오염수 방류를 성토했다.

 

전시작품들 대부분이 핵 오염수 방류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말하고 있으나,

김재홍작가의 그림은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친일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그리고 이익태 작가의 그림은 사람이 물처럼 흘러 내리는 형상이라 소름 끼쳤다.

 

김봉준 작가는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달비씨 그림은 바다에 편지가 든 병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병 속에는 후쿠시마에서 쫓겨난 소녀가 쓴, 바다에게 사죄하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악몽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올 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현정의 그어지다, 지우다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이 색깔 묻은 붓으로 그리는 족족, 작가는 닦아 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자욱은 남았다.

 

나중엔 사람들이 붉은 뜨게 실에 낚시처럼 걸려들었다.

 

바다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연결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닦아내는 행위에서 위안부는 왜 떠오를까?

 

그 또한 일제가 저지른,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못할 죄악이 아니었던가?

 

성효숙 작가가 상처받은 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에서 한 가닥 희망도 보였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래는 문화비평가 정요섭씨 전시 서문에서 잘라낸 글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빌려 쓰는 세대입니다. 지구를 이 지경으로 파괴시킨 것도 모자라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유의하고, 유의하고 또 유의할 일입니다. 안전하다고 우길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국익을 말하지만, 국민의 생명, 지구의 안녕보다 우선한 국익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잔꾀로 상대를 속인다는 조삼모사를 떠올리는 까닭입니다.

작가는 시대 의제를 상정하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이 해괴한 상황에 대해 작품으로써 발언해야 할 때입니다. ‘아르떼 숲은 시대 의제를 비켜 가지 않고 작품으로 맞서 온 33인 작가의 작품으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의제로 삼아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지구 생명 모두의 부릅뜬 관심과 움켜쥔 참여를 바랍니다.

 

전시는 1012()까지 열립니다.

명절에도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으니, 구경하세요.

그냥 넘길 수 없는 눈 앞에 닥친 심각한 문제기도 하지만, 작품이 아주 좋습니다.

추석연휴를 맞아  도랑 치고 게 잡으러, 가족들과 인사동 나오세요.

 

사진, / 조문호

 

 

 

최근 들어 아름다운 삶을 살던 분들이 여럿 세상을 떠나셨다.

연세가 많은 황명걸 시인이나 박기정 화백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안애경 감독은 마음 정리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 더 안타깝다.

 

떠난 분은 말이 없으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이다.

, 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더 빨리 데려간다고 믿으니,

고난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는 동안 나쁜 일만 아니라면 꼴리는 대로 즐겁게 사는 것을 최고로 친다.

 

가끔 정동지가 언제 무슨 일이 있다고 약속을 해오면 하는 답은 똑 같다.

그 때가지 내가 살지 모르겠다.”

.오늘 죽을 것처럼 사니, 두려울 것도 꿀릴 것도 없는 것이다.

 

지난 19일 박기정화백의 부음을 받았다.

정영신, 김명성, 조해인씨를 녹번역에서 만나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장레식장 입구에는 조화가 줄을 이었고, 많은 조문객이 모여 들었다.

좀 있으니 박인식 시인에 이어 박재동 화백도 나타났다.

 

그리고 '삼총사’, ‘가정교사등을 펴낸 박기정화백의 친동생 박기준화백도 만났다.

박기준화백은 평소 형님께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지난 일을 회고했다.

 

박기정화백은 최근 폐암진단을 받아 투병하시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더 안 서럽다.

평생 소신이 '백절불굴(百折不屈, 백 번 꺾이더라도 휘어지지 않는다)'이던

선생께서는 시대를 보는 눈도 매섭지만, 재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남달랐다.

 

1956별의 노래로 데뷔하여 은하수’ ‘들장미’ ‘도전자’ ‘황금의 팔

레슬러’ ‘폭탄아’ ‘치마부대등 다양한 극화 만화를 남겼다.

특히 도전자훈이폭탄아탄이는 선생의 대표적 캐릭터였다.

 

내가 고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60년대 발표한 가고파

주인공 훈이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순정만화였다.

탄탄한 스토리와 사실적인 캐릭터가 돋보였는데, 지금도 보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흰 구름 검은 구름’에서는 오동추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친구들 보는데, 교실창문으로 도시락을 넣어주는 할머니에게 난색을 표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일이라 더욱 잊혀 지지 않았다.

 

박기정화백을 실제 뵙게 된 것은 창예헌고문으로 모신 10여 년 전이었다.

가끔 박인식씨가 운영하는 로마네꽁티에서 뵙기도 했는데,

가수 최백호와 박인식, 김명성씨 등 몇몇이 

오동추란 박기정 펜클럽을 만들 정도로 박기정화백을 좋아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지난 18일 운명하시어, 20일 남양주 영락동산에 안치됐다.

많은 분들의 추모 속에 분주히 길을 떠났지만, 쪽방 사람들은 죽어서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한다.

없는 연고자를 기다리며 한 달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약자는 죽어서도 차별받는 세상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주-

배우자 : 정기창

 : 박영훈, 박영술,  : 박영지

사위 : 이동엽, 자부 : 정재연, 정진희

 

사진 / 조문호

 

 

 

 

 

 

 

인사동 '갤러리 모나리자 산촌'에서 박재동 시사만평 ‘한 판 붙자’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경기신문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에 연재한

120여점을 모아 놓았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때로는 오늘의 정치형태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촌철살인적 만평에서는 입가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산촌’은 사찰전문 음식점에서 만든 미술관이다.

엄길수 관장은 "관람객들에게 공정과 상식의 의미와 올바른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싶었고,,

시사만평을 통해 대선판을 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기획했단다.

 

"한판 붙자“는 제목처럼 전투적 성격도 보였다.

지금 대선을 눈앞에 두고 촛불정신과 기득권 카르텔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박화백은 ‘세상이 바로 가기 위한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 지긋지긋한 군인정치에서 어떻게 빠져 나왔는데, 다시 검찰공화국으로 가려한단 말인가?

 

민주화와 정의를 열망했던 시민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시사만평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문제의 윤석렬과 김건희였다.

‘정권 잡으면 가만 안 둘꺼야’라는 그림은 두렵기까지 했다.

인터넷에서 보아 온 그림도 많았으나 보고 또 보았다.

 

다른 전시장에 비해 관람객도 많았지만,

박재동화백을 비롯하여 최석태, 김이하, 노광래씨 등, 아는 분도 여럿 만났다.

 

전시는 26일까지 열린다. 작품을 구매하는 관람객에게 인물 스케치를 증정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아트센터’ 지하전시장에서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거대한 뿌리’전이 지난 22일 개막되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탄절에서야 짬을 낼 수 있었으나 전시장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꼼꼼하게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태호, 김정헌, 김진하, 강경구, 임옥상, 박재동, 신학철, 노원희,

박 건, 민정기, 박영균, 손기환, 이명복, 이인철, 이흥덕, 정정엽 작가 등

기라성 같은 민중미술가들과 가수 정태춘 등 30여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출품 작가마다 서사와 주제에 따른 표현이 다양했고,

김수영을 그린 초상화의 표정도 다채로웠다.

 

전시작을 돌아보며 김수영 시인의 시가 떠오르거나

생전의 모습이 생각나는 등 오로지 김수영시인만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전시는 27일 까지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2주 전 인사동 마당발로 통하는 노광래씨가 인사동 이야기사진집 제판을 찍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어 저자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노광래씨가 인사동 풍류 40이란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았으나 책이 없어 다시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없는 책을 다시 찍겠다는 걸 말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이 고마워 돕기로 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여 선구매를 요구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락된 사람을 추가로 추천하므로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미 많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은 출판사로 송금한 분도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당장 노숙인책 출판과 전시 준비로 내 코가 석 자인데다 전시만 끝나면 진인진출판사와 계약한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어야 할 처지라 난처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칼을 뽑았는데...

 

시간이 없어 추가로 찍을 분은 촬영일을 잡아 서너 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찍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자꾸 늘어났다. 추가 인원을 열 분 정도를 생각했으나 20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인사동과 관련된 분이기도 하지만, 몇몇 분은 예전에 찍으려고 추진하다 빠트린 분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촬영까지 했으나 지면이 부족해 게재하지 못한 분도 십여 명이 남아있었다.

 

막상 촬영을 마무리하여 원고를 보내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시 찍은 만큼 빼야 하는데 누구를 뺀단 말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열 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더더욱 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인사동 풍류의 주체이며 인사동 역사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이 늦은 것도 고민에 고민을 하다 묘안이 없어 하소연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유목민으로 바꾸어 글을 없애고 초상사진으로만 만들던지,

아니면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인사동이 아닌 지금의 인사동으로 바꾸려면 촬영 방법이나 편집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마지막 촬영 일정이 잡혔다.

이날은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선생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찍기로 했다.

그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황경애씨 등 네 분을 찍기 위해 나갔는데,

전날 정선에서 묘지 이장하느라 곤죽이 되어 잘 마무리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나게 만들고, 사진 찍기는 좋았다.

누군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겠다며 걱정했으나 그건 사진을 모르는 소리다.

햇빛이 쨍쨍한 날은 밝은 부분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가급적 삼가한다. 더구나 사람 찍는 초상사진은...

인물사진은 확산광이 퍼진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약속 장소인 나무화랑으로 올라 가니 김진하 관장이 있었고,

마침 미얀마 민주주의 후원을 위한 더불어 붓글씨전인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 29일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김창남, 이지상, 김성창, 백인석, 구자춘, 이상필, 최 훈, 서연순, 성화숙, 최성길씨 등

서예가 열 분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전시기간이 남았으나 작품이 다 팔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신학철, 이효상선생 내외분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하, 최석태, 장경호씨와 더불어 술자리부터 잡아두고, 신학철선생 촬영을 마치고 오니 박재동화백도 등장했다.

인사동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박재동화백의 구수한 유행가 자락에 어찌 술맛 나지 않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모처럼 만난데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누적된 피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학철 선생께서 핸드폰을 열어 최근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여 주었는데, 눈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연작이라는데, 그처럼 아름다운 춘화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달구지 위에서의 사랑놀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꼴페미로 남녀 관계가 소원해진 현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 틀림없었다.

 

신학철선생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임경일, 우문명, 김윤기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두 자리에 나누어 앉아 여기저기 옮겨가며 술 마시기도 바쁜데, 약속한 화가 황경애씨는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유목민에서 인사아트프라자를 두 번이나 찿아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찍겠다는데, 추억하고 싶은 인사동 거리를 보여 주는 입상사진의 촬영 취지와 달랐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며 사진 찍느라 술은 덜 마셨지만...

 

그런데 통큰 갤러리일층에 포토이즘 박스란 새로운 업소가 들어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공간인 것 같은데, 별의별 업소가 다 생긴다.

 

유목민으로 돌아가니 전시작품 출력하러 갔던 정영신씨까지 찿아와 이제 술 마실 일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금지곡까지 한 곡 뽑았는데, 제 버릇 개 주지 못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누군가 돌아가신 사진가 최민식선생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분이 준 인간사진집 때문에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했더니,

박재동화백은 그 말과 더불어 지껄이는 쌍다구까지 그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속기사도 그리 빠른 속기사는 처음 보았다.

 

술만 취하면 배배 꼬며 염장 지르는 장경호의 술버릇도 여전했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효상선생의 채근에 다들 일어섰는데, 술값을 박재동 화백이 계산해 버렸네.

내가 만든 자리라 꼬불쳐 둔 신사임당 두 장이 굳어 좋긴 하다만 거지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하기야! 그 돈으로 마신 술값이나 되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 분 즐거운 하루였지만, 꼬인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진, / 조문호

 

 

 

‘박재동과 친구들’전이 통인시장 맞은편 창성동(자하문로 10길 9-4)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아트가이드'에 실린 팔월 전시안내를 보다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박재동씨 전시가 8월2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시를 한다면 공개하지 않을 리가 없어, 동명이인인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갤러리의 요청에 의한 전시겠지만, 스스로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짐작했다.

 

사람 많은 개막일을 피해 지난 4일 정오 무렵에야 정 동지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는데,

작가대신 그의 기타가 자리를 지켰다.

 

전시장에는 박화백 특유의 서정적인 유채화가 눈길을 끌었다.

따스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풍자적인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했다.

‘손바닥 아트’ 디지털 판화 등 28점의 작품이 아담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박재동화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사 만화가이며 애니메이터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근대 만화의 풍자정신을 우리 시대에 계승한 만화가를 꼽는다면 단연 박재동이다,

작가의 강인한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은 전무후무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라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던 화가다.

30대 중반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시사만화를 시작하며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를

넉살 좋은 풍자와 예리한 비판으로 그려내, 그만의 독보적 위치에 선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서정적이고 더러는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애잔함도 깔려 있다.

따뜻한 고향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릴 적 소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마저 밀려온다.

작가의 기억에 의한 향수가 고스란히 감상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모든 작품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

그 가운데서도 힘없고 평범한 이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치다 마주친 노숙인 모습조차 같은 이웃으로 보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작가의 손에는 항상 스케치북과 연필이 따라 다닌다는 점이다.

사람 만나는 곳이면 작업실은 물론, 찻집이나 술집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그린다.

그리고 여느 작가처럼 억지로 힘들여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자체를 즐긴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내공을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아마 사람을 보면 그의 마음까지 읽는 경지에 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 시를 더한 간결한 작품 ‘나’에서는 그 진정성이 머리에 내리박힌다.

 

“내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난 그저 그를 사랑하므로

그가 되었을 뿐 이예요.“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파안대소한 소녀의 모습을 강열하게 묘사한 ‘선생님 너무 웃겨요“는

마치 나를 보고 웃는 듯 유쾌해진다.

 

그림에 푹 빠져 있으니,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가 들어왔다.

그는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한 화상이 아니던가.

작품이 좋아 한 점 구입했으나 미련이 남아 다시 왔단다.

 

정영신씨는 노란 유채 풍경 속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소녀’에 마음이 꽂혔다.

나는 ‘강변에서’란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운이 영 지워지지 않았다.

 

전시작품들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대가 작품치고는 가격에 부담이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 전시는 '자인제노' 이두선 대표가 부당한 미투 관련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하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박재동과 친구들’전시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최소리의 ‘두드림으로 그린 소리-겁’이란 색다른 전시가 지난 2일 인사동 ‘KOTE 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그 날은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아는 작가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가 남 준씨와 화가 조신호씨도 만났다.

 

먼저 ‘인사아트프라자’의 박재동화백 작업실을 찾았더니, 1층에서 2층 입구로 작업실을 옮겼더라. 매번 갈 때마다 원고마감 시간에 쫒기셨는데, 이젠 개방되지 않은 곳이라 작업에 집중하기가 훨씬 나을 성싶었다.

 

그날 인사동 거리에는 처음 보는 악사가 가야금으로 흥타령을 연주하고 있었다. 색다른 분위기에 귀가 솔깃했으나, 지나치는 이들의 발길은 붙잡지 못했다. 확성기가 없어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킹을 해도 구색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최소리 전시가 열린 ‘KOTE 갤러리’의 넓은 전시장은 평면작품에서 부터 동영상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안쪽에서는 개막식이 열렸는데, 손님도 많았지만 일단 작품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리는 유명 록밴드 ‘백두산’에서 드럼 연주자로 활동한 적도 있는데, 그동안 십여 장의 음반을 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G20 정상회담 등 여러 굵직한 행사에서 그만의 공연을 선보이거나 연출 또는 총감독을 맡아 유명세를 탔다. 자기가 개발한 소리금이란 악기로 독자적인 두드림의 미학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쪽 청력을 잃어가며 연주 대신 두드려서 그림을 만드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 것이다. 두드리는 것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를 자 없는 신들린 사람이 틀림없다. 신들렸다는 말이 미쳤다는 말과 상통하는데, 작가가 한 곳에 미친다는 것 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2019년부터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가 그곳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고 한다. 음악적 영감이 떠오르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북채로 알미늄 판이나 종이, 캔버스 등 닥치는 대로 두드리고, 채색하고, 빛을 입혀가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지리산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제작한 ‘24절기’ ‘청학동 노을’ 등 120여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그가 음악에 드럼을 치듯이 리듬에 맞춰 철판을 향해 내리치는 모든 행위들은 예술의 표현형식을 완전히 해체한 전위적인 형태의 새로운 창작 행위이며, 마치 플럭서스 운동처럼 다이내믹한 요소를 철판 위에 각인시키는 행위는 전통적 미학에서의 조형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술까지 한 번에 제시한 것처럼 독자적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전시된 많은 작품들이 음의 파장이나 작가의 체취가 느껴지는 작품이 몇 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이고 독보적인 그의 작업은 높이 사지만, 소리의 파장을 평면에 나타내는 것이 컴퓨터에서야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실제 두드려 그림으로 재현해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온 몸과 정신력을 아끼지 않는 최소리의 집념과 끈기로 보아 언젠가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경지를 이루어낼 것으로 믿는다. 소리의 파장을 재현해 내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풍 같은 화음으로 큰 울림을 주는 날이....

 

전시장에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알듯 말듯 한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다들 마스크에 가려 정확히 알아 볼 수 없어 눈인사만 나누었다. 한 쪽에는 마스크를 목에 걸친 인사동 광대 박완호씨 모습도 보였다.

 

이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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