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화랑' 개관식에 참석한 원로사진가, 왼쪽 네째 이경모선생, 다섯째 임인식선생, 일곱번째 이해선선생, 열번째 성두경선생 / 임인식사진

인사동에 ‘눈빛사진산책’ 갤러리인덱스‘가 개관했다는 사실은

인사동에 불어오는 한 가닥 봄바람이 아니라 사진바람이다.

 예술 일번지에서 사진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동선생을 비롯한 원로사진가들이 인사동거리에 나섰다.

사진가들이 인사동을 드나들 때는 시인이 몰려들던 천상병선생의 ‘귀천’시절보다 훨씬 이전이다.

 

'북스갤러리'에서 열린 '인사동, 봄날은 간다' 전시 개막식에서...

1959년, 종군기자로 활동한 임인식선생께서 관훈동에 사진전문 갤러리인 '신한화랑'을 개관하며 비롯되었다.

임인식선생을 비롯한 성두경, 이해선, 이경모씨 등 작고한 원로사진가들이 자주 회합한 장소였다.

 

임인식선생게서 찍은 1953년의 인사동 거리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진 문화 발전을 도모하며 사진 아카이브 개념을 선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사동에 최초의 사진 화랑을 만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옛 인사동 예총회관 앞 포장마차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조문호, 윤재성, 유성준

내가 부산에서 올라와 인사동과 인연을 맺은지는 1980년도 였다,

그 이전에 있었던 사진가들의 인사동 왕래는 알 수 없으나 남인사마당 맞은편 ‘예총회관’에

사진협회가 있어 사진인의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예총회관’에서 가까운 건물에 ‘꽃나라’라는 흑백현상소가 있었다.

 

인사동 골목에서... 고영준씨와 정영신씨

신작가로 불린 신희순씨가 운영한 ‘꽃나라’는 많은 사진인들이 몰렸다.

그곳을 왕래하는 사진인들이 ‘진우회(초대회장:양은환)’란 사진동아리를 만들었으니,

진로회 아닌 ‘진우회’가 인사동을 거점으로 활동한 최초의 사진 모임이었다.

 

'85동아미술제' 시상식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신희순, 양은환, 홍순태, 조문호, 정동석, 유성준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참 성실하고 착한 분이었다.

촬영자의 뜻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프린트해 신작가란 별명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암실에서 인화하는 걸 보면 귀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시커먼 약물에서 건져내는 인화지에 상이 드러나는 것이 신기했다.

 

옛 진우회 회원들이 인사동에서 만났다., 좌로부터 유성준,이혜순,정용선,김종신,목길순,김흥묵,하상일,최성규,배창완,조문호

모든 게 정해진 데이터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감으로 결정하는데,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몽타쥬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한번은 하이포 약물통을 비워 보니, 약물에 쥐가 빠져 죽어있었다고 한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린 박옥수씨 개인전에서 장사익씨가 축가를 부르고 있다

‘꽃나라’ 신희순씨의 인화는 콘트라스트가 강해 사진 계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인화 가격이 재료비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싸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주변에서 찍은 기념사진들은 맡겼으나, 필름 현상만은 맡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프린트된 사진들이 공모전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 줄줄이 당선되는 것을 어쩌랴!

명암이 강하면 일단 눈에 먼저 들어오니까...

 

인사동에 촬영 나온 안00, 이용정씨와 이기윤씨

‘꽃나라’ 암실에서 탄생한 대상 작가는 한 둘이 아니었다.

양은환씨와 이기윤씨가 국전에서 바뀐 '한사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윤 옥, 이혜순씨는 ‘동아살롱’ 금, 은상을 수상하는 등 주요 공모전을 ‘꽃나라’에서 휩쓸었다.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권철개인전에서,,,이규상, 김지연, 김남진, 정영신, 권철, 곽명우, 엄상빈 등

그러나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토록 건강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 한 것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 암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약물중독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진이 그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인사동 거리에서... 좌로부터 김보섭, 정영신, 한정식선생

아무튼, 만 명이 넘는 공룡집단이 된 지금의 사진협회 회원 모두가

작가의 주관이 결여된 공모전이란 과정을 거쳐 모였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구와바라 시세이 수상전에서,,,좌우로 김남진씨와 이규상씨가 있다.

이웃한 낙원동에는 민태영씨가 운영한 ‘한국사진학원’이 있어

지도교수로 있던 성낙인, 유동호씨도 종종 나타나셨다.

 

인사동 '양반집'의 원로 사진가 오찬모임, 좌로부터 한정식, 이완교, 이명동, 차용부, 황규태, 이기명

‘꽃나라’에 자주 방문한 사진인으로는 원로사진가 김대현, 정철용씨를 비롯하여

고영준, 양은환, 유성준, 김계산, 정동석, 정영신, 하상일, 이수영, 정용선, 윤 옥, 김종신, 박만재, 정철균

이혜순, 안영상, 변홍섭, 이기윤, 윤재성, 김정혜, 김순자, 민정진, 윤 옥, 고 헌, 최수영, 최성규

진대원, 배창완, 한상근씨 등 오래되어 이름도 가물가물한 많은 사진인들이 드나들었다.

 

인사동 벽치기골목의 '유목민' 에 모인 이광수, 한금선, 성남훈씨, 김문호씨 전시뒤풀이에서...

저녁 무렵이 되면 인사동의 삼겹살집이나 시골집에 모여 앉아

사진협회 비리를 안주 삼아 회포를 풀던 추억들도 아련하다.

 

'부산식당' 전시뒤풀이에서 고헌씨가 춤을 추고 있다. 옆엔 전상삼씨가 앉았다.

85년도 무렵 ‘귀천’이 생겨나며 사진인보다 문인이나 화가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분으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선생이 계셨고,

뒤를 이어 김동수, 이계익, 심우성, 강 민, 채현국, 황명걸, 이호철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적음스님에서 부터 강용대, 김종구에 이르기까지

전설처럼 인사동을 떠돌던 많은 분들이 이승을 하직했다.

 

옛 ;실비집'에서 찍은 기념사진. 실비대학 총장 모녀와 김종구, 김민경씨

김종구씨는 수시로 '실비집'이나 '시인통신'에 들려

오가는 거지 예술가들 술값을 도맡았으니,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육명심, 이명동, 한정식선생, 뒤에 이완교씨와 전민조씨도 보인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엔 김종구씨에게 필름도 많이 얻어 썼다.

필름이 떨어 져 인사동 ‘귀천’에 죽치고 있으면 체류탄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와

진토닉 한 잔으로 분노를 삭혔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김영수 유작전에서.. 좌우로 곽명우씨와 정범태선생

박한웅씨도 한 때 인사동을 풍미했다.

사진가는 아니지만 당시 '사협' 회보 편집장으로 일하며

 사진판과 인사동 패거리를 오가며 여러가지 일화를 만들었다.

 

'실비집' 골목에서.. 좌측이 박한응씨고 그 옆은 조해인시인

사진인 모임은 술값을 똑같이 나누어 내지만, ‘실비집’ 술자리는 돈 있는 사람이 냈다.

돈 낼 사람이 없으면 외상도 통하는 인간적인 면이 참 좋았다.

 

인사동 '초당' 앞에 선 주명덕 선생

주명덕, 육명심선생도 인사동을 자주 찾으셨다.

주명덕 선생은 ‘초당’이 단골인데, 차보다 초당 보살이 더 좋았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갤러리 나우' 옆에 사진가들이 모여있다.

육명심선생은 ‘갤러리나우’를 기점으로 '전각갤러리' 등 들리는 곳이 많았는데,

한번은 ‘백상사우나’까지 따라붙은 적이 있다.

목욕사진을 찍은 것 까지는 좋았으나, 경찰관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사동 '백상사우나'에서 찍은 육명심선생

인사동은 예술단체가 모여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남인사마당 맞은편의 포도대장 터에는 초창기 ’예총회관‘이 있었고,

80년대 중반에는 ‘민미협’이 생겼고, 88년에는 ‘민예총’이 건국빌딩에 둥지 틀었다.

 

인사동거리에서...한정식선생과 이완교선생

94년에는 고 홍순태선생이 총대 맨 ‘민사협’이 북인사마당 크라운베이커리 2층에 자리 잡으며,

예술 판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졌다.

 

인사동 '쌈지'를 배경으로 포즈 취한 김영수씨

김영수씨가 주도적으로 이끈 ‘민족사진가회’는 정범태, 주명덕, 홍순태, 이창남, 박옥수,

이갑철, 김광수, 양성철, 김영태, 정인숙씨 등 많은 사진가를 규합하여 활동했는데,

정기적인 기획전 외에도 한국사진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기획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인사동 '관훈미술관' 앞에 선 정인숙씨

인사동에서 거주한 사진가로는 김영수, 정인숙씨가 유일하다.

‘민사협’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는데, 콧구멍만한 방 하나와 암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영수씨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민사협’은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물 같은 그 잡동사니와 집기들은 잘 있을까?

 

인사동 '이즈갤러리' 앞에서 만난 곽명우씨

그 당시 곽명우씨는 ‘민사협’의 행사 기록을 맡아 사진전이 열릴 때마다

전시장을 들락거렸으니, 누구보다 인사동과의 인연이 많은 편이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권태균사잔전에서... 좌로부터 박옥수, 정범태, 권태균

사진 모임에 끼이지 않는 사진가로는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씨와

곤충사진가 이수영, 자유기고가로 활동한 이만주, 하형우, 김문호씨가 전부인데,

김문호씨는 이구영선생의 ‘이문학회’ 회원이라 주기적으로 인사동을 들락거렸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김문호씨의 '풍리진경' 사진전에서..

2000년대의 인사동은 사진의 전성기였다.

2003년 김영섭화랑이 생겨나며 일본의 호소에 에이코사진전이 개관전으로 열렸고,

2006년은 ‘갤러리 나우‘의 개관에 이어 2007년은 ’갤러리룩스‘도 개관했다.

 

'갤러리나우'에서 열린 박진호씨의 '내가 저달을 훔쳤다'전에서 박진호씨가 양재문씨를 소개한다.

인사동에 사진전문화랑만 세 곳이나 생긴데다, 돌아가신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의 ‘밝은방’과

사진평론가 진동선씨가 기획한 ‘하우포토’도 인사동에 있었다.

'밝은 방'에서는 한정식선생 제자인 김정일씨의 사진강좌도 있었다.

 

한정식선생의 작업실 '밝은 방'에서.. 옆에 안미숙씨도 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정기적인 사진인 모임을 만든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 외에도 가까운 분들과 신년 모임을 갖는 등

틈틈이 사진가들을 인사동으로 불러 모아 친목을 도모했다.

 

'양반집' 오찬회, 좌로부터 유병용, 한사람 건너 이명동, 한정식, 이기명, 김녕만,이완교, 황규태선생

초청하는 인사로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황규태, 이완교, 차용부, 구자호,

최재영, 유병용, 김녕만, 김영수, 윤세영, 이기명, 최경자, 이규상, 전민조, 김보섭, 이재준,

김생수, 엄상빈, 정영신씨 등의 사진가들이 인사동 ‘양반집’이나 ‘수연’에서 주기적으로 만났다.

 

'양반집' 오찬모임, 좌로부터 이완교, 최재영, 이명동, 구자호. 한정식. 유병용, 이기명, 김녕만씨

2011년부터 인사동에 차 없는 거리가 실시되며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상한 거리로 서서히 변해가며 인사동의 사진 문화도 퇴행 길에 접어들게 된다.

 

김영섭씨가 '김영섭화랑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성용사진)

인사동에 살가도와 브랏사이, 브레송, 빌 브란트, 로베르 두아노,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란드 등 세계 사진사에 남을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여 사진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김영섭화랑’이 먼저 문을 닫았고, 2015년에는 심해인씨가 개관한 ‘갤러리 룩스’도 옥인동으로 옮겨갔다.

 

'갤러리인덱스' 최건수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옮겨간 ‘룩스’를 최건수씨가 인수하여 ‘인덱스’로 바꾸었으나, 대관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순심씨가 개관한 ‘갤러리 나우’도 사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원룸 원포토'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2020년 2월, 14년간의 인사동 시대를 접고 강남으로 옮겨 사진에서 미술로 전향해 버렸다.

 

'갤러리나우' 이순심관장

인사동을 오가며 기록하는 사진인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이기윤씨와 김순자씨는 주말마다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지나치는 이들의 표정을 망원렌즈로 포착했다.

때로는 정운봉, 이용정, 정철용씨 등 원로사진가들도 함께 있었다.

 

'인사아트센터' 앞이 촬영 대기실인가? 이용정씨와 이기윤씨가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기록하던 이기윤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는데,

그 많은 사진 자료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인사동에 있었던 '김영섭화랑 '

한때 ‘한사전’ 대상 수상 작가라는 영광도 아무 소용없었다.

반평생을 사진과 살았으나 개인전은 물론 사진집 한 권 내지 않았다.

하기야! 팔리지 않는 전시나 사진집 만드는 것 또한 자뻑에 불과하니까...

 

인사동 사진출력실 '아트온'을 방문한 인사동 사람들, 좌로부터 전활철, 김의권, 변형주, 김언경씨

89년에는 ‘툇마루’ 옆 건물 5층에 ‘카메라워크’란 취재대행 업소를 차려 ‘한국환경사진가회’ 사무실도 겸했다.

공덕동에서 충무로로 떠돌다, 2010년부터  정영신씨와 함께 '아트온'이라는 사진출력소를 다시 차렸다.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린 '청량리588'사진전에 사진수강생들을 데리고 온 최건수씨

그 외에 인사동에서 업소를 운영한 사진가로는 고미술점 '하가'의 윤옥씨와

출판사를 운영한 안영상씨, 그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란 카페를 운영한 김수길씨가 있다.

 

'갤러리인덱스'가 있는 인덕빌딩

그리고 건물주와의 오랫동안 분쟁에 휘말렸던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성남훈씨를 비롯한 젊은 사진인들의 활약도 이어지고 있다.

 

'나무화랑에서 열린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에서... 좌로부터 이규상,양시영

지금은 양한모씨가 운영하는 마루아트 ‘아지트’와

‘눈빛‘ 안미숙관장이 운영하는 ‘갤러리인덱스’가 사진갤러리로 남았다.

 

지난 11일, '갤러리인덱스'가 재 개관하며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로 막을 올렸다.

1948년 겨울, 이름도 모르는 어느 미군이 촬영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리고 '눈빛'에서 출판한 800여종의 사진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진귀한 사진집을 골고루 만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이 아닌가. 

인사동 가는 길에 32계단의 '눈빛사진산책' 하자.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는 2월 13일까지 열리지만, 인사동 사진바람은 계속분다.

 

G A L L E R Y I N D E X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층 02-722-6635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수연' 에서 열린 신년오찬회에서...
찻집에 들린 사진가들, 좌로부터 김생수, 이재준, 김보섭, 전민조, 이규상, 엄상빈, 한정식선생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그리는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그토록 좋아했던 친구였건만, 흩날리는 낙엽 같다.

 

난, 어릴 적부터 유달리 친구를 좋아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듯이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정불화의 대부분이 친구와 연관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살다보니 가치관이나 생각도 달라졌다,

종교나 정치적 갈등도 생기고, 말 한마디에 상처도 받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전화기를 멀리 한지도 일 년이 넘었다.

속내를 털어 놓을 사람은 동지이며 친구인 딱 한 사람 남았다.

이제 사 철든 것 같다. 아니, 죽을 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먼저 떠난 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술만 취하면 전화하던 정남규는 전화를 걸고 있고,

온 몸을 흔들며 파안대소하던 적음은 웃고 있다.

무게만 잡던 콧수염 김영수가 측은한 듯 바라본다.

'내 노래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다'던 홍수진이 노래 부른다.

 

먼저 떠난 것을 서러워했지만, 살아남은 자가 불쌍하구나.

나도 갈 날 머지 않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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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동자동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한적한 공원에서 김영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어니언스의 ‘편지’였다.



얼마 전 아들을 떠나보낸 황춘화씨는 좋아하는 술도 마다한 채 공원을 서성거린다.
“아~ 재미없는 노래말고 신나는 노래 좀 해봐요”

노래 자체가 슬프기도 하지만, 황씨 취향에 영 맞지 않는 모양이다.



악보를 뒤적이던 김씨가 이번엔 ‘처녀 뱃사공’을 부른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그 노래는 좀 알겠는데, ‘목포의 눈물’ 같은 건 할 줄 몰라요?”
부르는 노래나 신청한 노래나 비슷한 노래인데, 김씨는 수준타령한다.




하닐없이 공원을 돌아다니던 원용희씨가 비시시 웃는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송가 치고는 쓸쓸한 풍경이다.




“이건 예고편이고, 내일 경자양 오마 재미있게 한 번 놀아보자고..“



사진, 글 / 조문호














2019년 통인화랑의 공예주간 ‘명장’ 기획전이 지난 5월17일 오후5시에 개막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통인화랑'에서 주관하는 ‘명장’전에는

이천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전통도자의 대표적 도예가 14명의 명작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상상력을 전통기법의 미감으로 재해석한 김대용씨의 ‘분청 수박지문매병’,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이는 함을 도자기로 형상화한 김대훈씨의 ‘무제’,



화려하지만 넘치지 않는 위엄으로 현대청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세용씨의 ‘청자 도토리문 이중 투각병’,



투각기법에 뛰어난 장인 김영수씨가 새롭게 선보인 ‘백자 진사 감무늬 호’,



분청기법을 이용해 화화적 미감을 드러낸 박래현씨의 ‘분청 산문 호’,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김판기씨의 ‘청자 빗살문양 발’,



전통방식으로 완벽한 미감을 드러낸 서광수씨의 ‘청화백자 철화진사 매화문 호’,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한 유광열씨의 ‘청자 상감복사문 매병’,



탁월한 기량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유기정씨의 ‘청화백자 까치호랑이문 준’,



느린 움직임의 질서와 소박함이 깃들어 있는 유용철씨의 ‘분청 달항아리’,



분청의 대가 이규탁씨의 섬세함과 단아함이 돋보이는 ‘백자 요변 달항아리’,



이중투각기법에 의한 고도의 정밀성을 보여준 이창수씨의 ‘청자 이중투각 잉어문 매병’,



매죽문 민화의 아름다움을 백자에 수 놓은 이향구씨의 ‘청화백자 매죽문 호’,



청자만 바라보며 한 길만 걸어 온 최인규씨의 ‘청자 상감 화문 유개호‘ 등 수작들만 모았다.



'통인화랑'에서 5월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개막식장에 좀 늦게 갔더니,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 없었다.

전시된 작품을 돌아 볼 수도 없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비집어 살펴보니, 한국공예진흥원장 최봉현씨가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통인화랑' 이계선관장이 서 있었다.

한 쪽에는 '국민문화신탁재단' 김종규 이사장과 김완규 통인 회장의 모습도 보였다.



옆줄에는 이천의 내로라하는 사기꾼들이 다 모여 있었다.

틈틈이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명창 배일동씨와 건축가 김동주씨, ‘동원건설의 송재엽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김곤선 관장도 보였다.


 

비집고 다니며 전시장을 돌아보았는데,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았다.

청자 백자 미인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얼마나 예쁘고 우아한지 미칠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청을 만났을 때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달 항아리가 아니라 달덩이 같았다.

부드러운 결을 만져보고도 싶고, 끌어안아 딩굴고 싶었다.



유영철씨의 분청에 번지는 은은한 푸른빛과 반점도 매혹적이지만,

이규탁씨의 수줍은 여인 내 볼같이 불그스레 번지는 미감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어쩌랴! 돈도 없지만 모셔 둘 자리도 없으니, 보고도 못 먹는 장떡에 불과했다.

남의 여인 내 훔쳐보며 군침 흘리는 격이었다.


 

통인 옥상 상광루에 차려놓은 술상으로 갔더니, 그 곳도 인산인해였다.

술 취해 밑으로 떨어지면 묵사발 될 것 같아,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준비된 술은 전라도에서 공수한 도수 높은 막걸리와 와인이 있었으나, 피 같은 와인만 쫄쫄 빨았다.

안주인께선 ‘최대감집에서 사기꾼들 모시고 저녁 대접한다며 그리로 오라지만,

다리 밑에서 김동주씨와 빨기로 했으니 어쩌랴!


 

품을 수 없는 미색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계단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젠장! 그렇게 봄날은 가나보더라.

 

사진, / 조문호






































































아무도 못 말리는 사진가 김영수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80년대에의 암울한 현실을 사진으로 저항했고,

1994년부터 ‘민사협’을 창립해 이끌었다.

‘민사협’에서 치룬 많은 전람회 중 광복60주년에 맞춘 ‘시대와 사람들’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한국현대사진60년’전이 대표적 업적이다.

물론, 독주에 의한 사진인들의 반발이나 등 돌리기도 심했지만,
한국사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우연히 사진첩을 뒤적이다, 오래된 그의 사진이 눈에 밟혔다.
1986년도 무렵, 인사동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전형적인 양아치 차림이나, 사진에서는 다소 맥이 풀린 듯하다.

변변한 집 한채 없는 처지에 무슨 열쇠 꾸러미는 옆구리에 찼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편한 모습으로 농담도 했다.

“인간아~ 인간아~ 왜 사니? ”

병마에 시달릴 2010년 무렵, 인사동 ‘북스’갤러리에서
'인사동, 봄날은 간다' 사진전을 한 적 있는데, 힘들게 찾아왔다.

정인숙씨가 부축해 왔으나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 길에서 만났다.

"사진집 보면 된다"며, 체념한 그의 표정이 안 서러웠다.

그 모진 성격에, 어찌 술 유혹은 뿌리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지저분한 세상에서 고생하는 것 보다 현명한 처사 같았다.


절친이었던 정동석, 문순우씨와 끝까지 화해하지 않고 떠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마무리를 왜 그렇게 하고 갔냐는 것이다.

“나도 머지않아 따라 갈 테니, 꼬불쳐 둔 귀똥 찬 천국주나 한 잔 맛보여 주소”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에서 밤늦게 술 마시고 집에 가다보면 즐거운 일도 종종 만난다.
돈 냄새에 인사동이 싫어도, 옛 친구들 만 날 수도 있고, 아직은 인사동 낭만이 남아있다.

인사동 밤안개 여운이도, 민족 머슴 용태도, 양아치 영수도 다 가버렸지만,
그래도 술집 풍류는 남아 있더라. 여운이가 자주 간 섬에는 ‘유목민’이 남았고,
용태 남은 자리는 ‘풍류사랑’이 있는데, 영수 자리만 오간데 없네...

다 부질없는 세상, 혼자 취해 밤 늦은 인사동 거리를 허우적거리며 나오니,
외국인 넷이 연주를 하는데, 무슨 곡인지도 모르면서 신바람 나 엉덩이를 내 둘렀다.
왠 외국여자도 덩달아 엉덩이를 흔들며 파랑새 한 장을 돈통에 집어넣었다.

이제 인사동을 즐기는 주인공이 바뀌었으니, 그 들이 인사동사람들이다.
밤늦게 가끔 인사동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보아 여행객은 아닌 것 같았다.
직업으로 하는지, 노는 게 좋아 하는 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연주하였다.

인사동의 밤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과 함께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완주의 왈패 한봉림이가 화두를 보내왔다.

작은 영웅들의 동네 인사동’, 우리 그들을 만난다.”로 글을 쓰란다.

생각해 보니, 인사동을 풍미한 많은 걸물들이 떠오르더라.

 

더러는 저승사자한테 붙들려가기도 했지만,

대개 변두리에 처박혀 구멍 파느라 두문불출하고 지낸다.

인사동만 바람난 줄 알았더니, 그들도 바람났나보다.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중광스님은 그래 그래 놀다 가셨고,

별만 줄 창 그리던 강용대, 체류냄새 풀풀 풍기며 낄낄거리던 사진기자 김종구,

어디엔들 이 한 몸 머물 곳 없으랴산문집으로 폼 잡던 땡초 최영해,

민중미술 그림판을 좌지우지한 사단장 김용태, 인사동 밤안개 여 운,

성질 더러운 콧수염 사진쟁이 김영수 등 많이도 잡혀갔다.

 

김명성, 노광래, 전활철, 최일순 등 몇몇은 인사동에 남았지만,

소설이 안 팔려 작가폐업술집 낸 배평모는 풍기 갔고,

인사동만 나오면 인사불성 된다는 사기꾼 한봉림은 완주 있고,

품팔이 노동자 시인 김신용은 골병들어 소래있고,

부산의 파아란 바다를 그리워하던 이청운은 병원에 갇혀 산다.

 

막사발처럼 사는 상투꾼 김용문은 터키에 돈 벌러 갔는데,

대처승인지, 시인인지, 사기꾼인지 헷갈리는 신동여는 영주 살고,

임진각에 바람개비 날린 털보 김언경은 단양 살고,

떠돌이 유목민  최울가는 어디 있는지 정처 없고,

술버릇 지랄 같은 장경호는 남양주서 독수공방 기다린다.

 

날씨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노세노세 늙어 노세,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이 말 참 명언이다.

이 봄 가기 전에 인사동서 경노잔치 한 판 벌이자.

함양 호랑이 이목일이가 인사동서 잔치한다니, 떡 본 김에 제사지낼까?

다음달 27, 인사동의 갤러리M’이란다. (회비20,000원)

 

제목은 거창하게 작은 영웅들의 동네로 시작해 놓고,

글이 삼천포로 빠져 경노잔치 사발통문이 돼 버렸네.

지정곡은 싫어하는데다, 본디 글쟁이가 아니고 사진쟁이니,

너그러이 양해 바란다.

 

사진,/ 조문호




아래 사진들은 23일의 인사동거리다.






그동안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회를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이명동선생의 전시가 열리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있는 ‘어양’ 중식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지난 7월 28일 정오에 가진 오찬회에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 전민조, 조문호, 구자호, 김영수, 유병용, 이기명, 고 김기찬씨 미망인 최경자씨등 모두 열 한 명이 참석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사진사를 정리해 오신 육명심선생께서 우리나라 근대사진사에서 이명동선생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 초창기 사진은 대부분 사진관 인물사진이었지요. 그 때의 사진관은 상류층들이 주로 활용하는 곳으로 대개 연미복을 입고 찍었어요.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들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로 국내작가로는 이해선, 서순삼, 현일영, 박필호씨 등이 주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명동선생께서 당시로는 아마추어 사진가에 불과한 임응식씨를 내 세워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며 사진계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거지요.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명동 선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진협회 창설이나 '동아사진콘테스트'로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명동선생의 숙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가 이종화선생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더니, 문상 오신 이명동선생께서 달구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례가 끝 날 동안 지키고 계셨어요. 결국 이명동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려 생각을 바꾸게 된거지요. 그동안 사진계에서 이명동선생의 도움을 받지않은 분이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임응식선생과 임선생의 직계였던 홍순태교수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도와주는 그런 분이예요. 모든 공적과 실리를 임응식선생께 돌리고 뒤에만 계시던 이명동선생께서 임응식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니, 그 아들 임범택씨를 위해 팔방으로 애쓰셨어요. 분명한 가치관과 인간적인 의리로 똘똘 뭉친 분이지요.”

올해로 이명동선생의 연세가 아흔다섯에 이르지만 건강상태는 물론 기억력까지 너무 좋아 팔순 정도의 연세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백수는 물론 아직도 십년 정도는 건강하게 사실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진계의 최고 원로이자 산증인이지만, 병석에 계신 사모님 간병으로 만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계신다. 사진인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나오셔서 사진계 비사들을 들려주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다. 유병용교수가 인터뷰를 가져 많은 사료들을 기록해 놓았다니, 머지않아 한국사진사의 볼만한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는 이명동선생 이야기 외에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마전 사진가 전민조씨와 고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씨가 독일 사진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다녀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일억 오천만원 상당의 전민조씨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 순수사진에 밀려 뒷전에 머물던 기록사진의 가치가 늦게나마 인정받았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엄청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좌로부터 사진가 육명심, 전민조, 이기명, 한정식씨, 한미수석큐레이트 손영주씨,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 고 김기찬

      미망인 최경자씨, 사진가 이완교, 김영수, 구자호, 유병용씨와 앞 줄은 필자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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