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보섭의 한국의 화교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김보섭 '한국의 화교' / 눈빛출판사 / 양장 288면 / 가격 60,000원

김보섭은 1980년대부터 40여 년간 한국 화교에 매달려 온 사진가다. 그동안 인천의 중국인 집단 거주지인 차이나타운을 기록한 청관한의사 강영재를 출판하는 등 화교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가져왔다. 이번에 출판된 한국의 화교는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에 머물지 않고 전국에 산재한 화교를 비롯하여 화교의 고향인 산동성 까지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흔적을 추적해왔다. 한국 화교의 역사가 담긴 유일한 사진집으로 평가된다.

 

한국 화교사진집에 실린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서문 일부를 옮긴다.

 

김보섭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 주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보섭은 성장하면서 중국인들이 살았던 청관(차이나타운)의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사진 작업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5년 첫 사진집 청관에 이어서 2000년 청관의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두 번째 사진집으로 상재하고, 첫 번째 개인전 (삼성포토갤러리,1995)인천 청관으로 할 정도로 화교와 인연이 깊다. ‘청관을 시발점으로 그는 바다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신포동 사람들’, ‘자유공원등 인천의 여러 장소와 인천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가 인천 사람이고 인천만 찍어 온 사진가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번 한국의 화교작업을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학교와 화교들을 찾아다녔고, 대부분의 한국 화교들의 고향인 산동성까지 다녀왔다. 한중수교 이후인 19951월에 인천에 사는 화교 유연서 할아버지의 고향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귀국 후 그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분들을 찍으면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카메라는 그가 세상으로 나가는 창구였던 것이다. 그는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 사람들의 가족사를 줄줄이 꿸 수 있는 사진가다. 이렇듯 한국의 화교사진은 화교들 과의 끈끈하고 오래된 유대감을 배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화교들과 그 잔존문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사람됨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참 이웃의 자리에서 그들의 쇠잔을 그러나 아무 과장 없이 침착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진가 한정식의 ‘청관’서문에서)

 

김보섭의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해석하고 재현하는 특유의 감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인물사진에서 그 인물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묻어 나오듯이 건물 사진에서도 그 이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치되고 쇠락해 가는 중화 요릿집이나 화교학교는 화교 사회의 부침을 전해준다.

 

특히 작가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오브제의 처리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누렸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는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촬영할 때 장롱 서랍을 열어보니 부모님의 물건들, 집주인의 물건들, 사진들, 거울 등...,청관의 과거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는 그 청관의 과거를 그가 찍어 온 중화 요릿집의 목재에서 알루미늄으로 변화해 온 배달통, 낡은 도마와 프라이팬 등의 주방 도구 그리고 경극 탈과 소도구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물사진뿐만 아니라 오브제를 통한 우회적 접근법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집은 서사와 서정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넘어간다.

 

한 작가가 한가지 테마에 몰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40여 년 동안 진행해 온 김보섭의 화교 사진 작업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화교 사회의 변천사와 가족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우리가 어깨를 마주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을 부수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그들과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오래 기다리며 찍어 온 그의 사진은 역경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온 가까운 이웃인 화교들에게 바치는 뜨거운 사랑과 경의의 표현이다."

 

 (출판인 이규상의 ‘한국의 화교 서문에서)

 

 

 

 

``

40년 가까이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가 김보섭씨의 ‘수복호사람들’이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2일 전시가 시작되었으나 24일 정오 무렵에서야 갈 수가 있었는데,

전시장은 사진계 마당발 곽명우씨가 지키고 있었다.

 

만석동의 굴 따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 '수복호 사람들'에 실린 작품들을

10여 년 만에 다시 볼 수 있었는데. 그때의 감동이 밀려왔다.

 

김보섭씨의 사진들은 끈끈한 바닷바람과 소금기 밴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고단한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사진 전면에 가득하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진가는 따로 가 아니라 서로를 깊숙이 끌어 안았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뜻한 정감을 일게 했다.

 

물때에 맞추어 만석부두를 떠나는 수복호를 따라 나선 작가는

사진에 앞서 그들의 고달픈 삶에 주목하게 된다.

 

고된 몸을 이끌고 굴을 따며 때론 배에서 새우잠을 자가며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에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주름 잡힌 얼굴과 거칠어진 여인네들의 손발은

스스로를 희생하며 자식들을 키워 온 우리의 어머니였다.

그 안타까움과 애절한 마음이 사진에 그대로 전이되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김보섭씨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진에 담는 사진가다.

"어릴 때 조개 캐던 갯벌이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사진으로나마 정겨웠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래전 김보섭씨의 사진전을 보고 쓴 이광수교수의 비평 한 단락으로 마무리하겠다.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서 사라져 가는 공간의 모습은 가족이나 동네 혹은 일터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문화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각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진 미학적으로 볼 때 매우 뛰어난 물성(物性)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자료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그의 인물과 정물 이미지는 매우 잘 다듬어진 시어(詩語) 하나, 하나와 같다. 둘이 섞이면 시어로 기록한 민족지가 된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수복호 사람들

 

김보섭展 / KIMBOSUB / 金甫燮 / photography 

2021_1222 ▶ 2021_1228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이번 『수복호 사람들』에서도 김보섭은 그 강한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끈끈한 바닷바람과 소금기가 진하게 밴 사람들의 냄새가 사진 전편에 무겁게 흐르고 있다. 그 짠 소금 냄새는 어쩌면 이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의 냄새일지 모른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의 영상을 무겁고 어둡게 만들어 준 것이겠지만, 하여튼 김보섭은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 오히려 눈을 반짝이는 사진가라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결국 대상과 작가가 내면적으로 진하게 만난 것이다. 내면적 만남으로 대상과 작가는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안으로 깊숙이 끌어 들인다. ● 김보섭의 사진이 이를 실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류의식, 이들 사진에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동지적 동류의식이다. 그는 처음에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 배를 탔고, 이들 아주머니, 할머니들과 어울렸을 것이다.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그러나 그들을 찍는 동안 이웃처럼, 친척처럼, 때로는 자기 누님처럼 느껴져 격의 없이 그들과 어울리고, 그 자신이 그대로 조개잡이가 되어 버렸다. 그와 대상이 구분이 되지 않는 경지인 것이다. 진한 소금 냄새가 거기에서 나온다. 격의가 없어야 이런 사진은 찍힌다. 몰입해야 이러한 영상은 나온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고단한 삶이 뿜어내는 후끈한 열기까지가 『수복호 사람들』에서는 느껴진다. 이들 사진에 그러한 것이 느껴지고 맡아진다는 것은 작가 김보섭이 뿜어내는 열정과 진정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 대상과 작가가 진정으로 발가벗고 만나고서야 이러한 영상은 맺힌다. 우선 작가가 빠져야 관객도 빠지는 법이다. 이러한 것을 솜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작가 김보섭은 솜씨가 좋은 사진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상은 솜씨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솜씨는 외형은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데까지는 미치기 어렵다. 작가의 열의 없이, 진정성 없이는 대상이 자기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한정식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한식구 같은 수복호 사람들 ● 지금부터 수복호를 타고 다닌 인물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수보호의 선장이자 책임자인 최순기 님은 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지는 분이셨습니다. ● 그의 아내 유광복 님은 선장의 동반자이자 선원으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사무장 최병국 님은 홀로 외아들을 기르는 어머니로 선장의 의여동생이며, 아주머니들의 리더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오반장(박근숙) 님은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어떠한 것이든 빠르게 이해하였으나 이곳 저곳 참견하는 일이 많아서 아줌마들 사이에서 '칠득이 오반장'이라고 흉을 보던 것이 별명으로 굳어졌습니다. 차인애 님은 어린 자식들 때문에 배 떠날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해 별명이 '지각생'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 순하다 해서 김순덕, 금자 엄마 김순오, 섭섭이 할머니 박선옥, 얼굴이 넓적한 넙순이 영배 엄마, 화수동의 꼬부랑 할머니, 뻐꾸기 할머니, 선장을 많이 도와주던 수열네, 작은 고모 최금순 등 여러 아주머니들이 매일 한 배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 왔습니다. 그들이 살던 곳은 만석동 일대와 북성동(똥마당)과 송월동 일대, 화수동과 그 외 인천 곳곳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촌에서 주로 생활하였습니다.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6cm_2006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 만석동(팽이부리)의 만석부두에서 배를 타고 굴을 따기 위해 물때시간에 맞추어 모였습니다. 하루하루 고된 몸을 이끌고 굴을 땄고, 때론 배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밤늦게까지 작업하였습니다. ● 이를 '묵세기'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흔적인 아주머니들의 주름 잡힌 얼굴과 거칠어진 손과 발은 한국의 어머니들로, 자기 몸을 희생하여, 자식들을 배고프지 않게, 또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훈장인 셈입니다. ● 1960년대에는 선박의 입.출항 신고가 없어서 자그마한 배에 수십 명을 태우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굴을 따러 다녔습니다. 배가 헐어 물이 스며들기고 하였는데 많이 스며들면 교대로 물을 퍼내곤 하였습니다. 기계도 낡았기 때문에 고장도 자주 나곤 하였습니다. 기계가 고장 나면 가마니로 돛을 만들어 섬으로 피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를 지나고 많은 선박을 거쳐 지금의 수복호가 되었습니다. ■ 최영식

 

Vol.20211222a | 김보섭展 / KIMBOSUB / 金甫燮 / photography

지난 주말은 비가 내리다 햇볕이 나는 등 변덕스러운 날씨였는데, 황사까지 겹쳤다,

주말이라 녹번동 갈 준비를 하던 참에 경의선 책거리에 나왔다는 김보섭씨 전화를 받았다.

지하철이 지나치는 길이라 홍대입구역에 먼저 내렸다.

6번 출구로 걸어가니 김보섭씨가 지하철역으로 오고 있었다.

사람을 불러놓고 가는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 간단다.

 

‘눈빛출판사’ 예술산책에는 김보섭의 ‘자유공원’ 책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유공원을 주제로 찍은 사진 14점이 걸렸는데,

책상에는 그동안 출판한 김보섭씨의 사진집 10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김보섭씨는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사진을 시작한 시기는 비슷하다.

83년 무렵 ‘동아미술제’에 당선된 ‘곡마단' 사진으로

사람보다 사진을 먼저 알았지만, 그를 만나게 된 것은 95년이었다.

내가 일한 ‘삼성포토갤러리’에서 개인전 ‘청관, 인천 차이나타운’이란 첫 전시를 열면서다.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십 년이 지난 데다,

그동안 출판한 사진집이 열권이나 되었다.

신포동, 양키시장, 자유공원, 연평도 등 그의 주제는

항상 자신이 태어난 인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인천에 관한 모습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

지역 공간은 물론 사람이나 일터 등 여러 하위문화를 기록했는데,

중요한 것은 사진 미학적으로 뛰어난 물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이미지가 잘 다듬어 진 시어 같다.

 

향토애와 인간애를 기반으로 한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해석하며 재현하는 그만의 독특한 사진세계를 보여준다.

 

이번에 출판한 ‘자유공원’은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쯤은 찍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유공원 부근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친숙한 공원이란다.

 

누구나 자유공원을 찍을 수야 있지만 수십 년을 꾸준히 기록한 사람은 없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대로 남은 것은 남은대로 자유공원의 반세기를 기록한 것이다.

 

전시와 책들을 살펴본 후 그를 따라 인근 식당으로 갔다.

도다리 쑥국을 잘하는 곳이 있다는데, 침이 꿀꺽 넘어갔다.

오래 전 친구 따라 갔던 창원의 모 식당에서 먹어 본 도다리 쑥국을 잊지 못해서다.

그런데, 한 발 늦었다. 도다리 쑥국은 3월이 지나면 맛이 없어 하지 않는단다.

대신 고등어 회에다 소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김보섭씨의 책방은 오는 5월 9일까지 열린다.

따뜻한 봄날 경의선 책거리로 산책가자.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경의선 책거리 ‘예술산책’은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2016년 한해 동안 '갤러리브레송'에서 진행한 '이 땅의 고수를 찿아서..'


2018년 03월 12일 (월) 03:02:24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지난 2016년부터 매달 두 번씩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국내사진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이광수 교수가 한국현대사진가 열 두 명의 작가론을 묶은 ”카메라는 칼이다“를 펴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제대로 된 국내 사진가론이 전무하였다는 사실이다. 평론가들이 외국사진가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해가며 거론하였지만, 정작 국내 사진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품이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사진을 무기로 사진에 대한 신화를 깨었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없애고, 패거리도 없애는 대동의 사진세계에서 멋지게 노는

이 땅의 진정한 고수를 찾는 놀이로 시작되었다"고 저자 이광수 교수는 말하고 있다.


'카메라는 칼이다'저자 이광수교수 Ⓒ정영신


사진을 전공하는 교수와 작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가론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학자로써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역사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듯 각자 자기의 고유한 역사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평생 우리나라 문화와 생활상을 기록해 온 사진가들의 작가론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 '카메라는 칼이다'의 사진가들과 저자인 이광수교수, 갤러리브레송 김남진관장 Ⓒ정영신


다른나라 사진가론은 줄줄 외면서 우리나라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해오고 과거의 진실을 어떻게 발견해 왔는지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에 통분했다. 사대주의적 발상이 아니었다면 국내 사진가에 대해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이광수 교수가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이 최민식 작가론이다.





이광수 교수는 끊임없는 동어반복적인 시간이 응축된 사진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내었고, 그의 예리한 집도에 의해 작가들의 심중에 묻힌 비장의 언어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는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사를 연구하는 교수이자 사진비평가로. 사진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0여년 넘게 사진비평에 혼신을 쏟아왔다.



▲ 강정효작가의 '유해발굴'



이광수 교수는 “작품이 왜 좋은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어떤 사회적, 문화적 효과를 내고 있는지 평가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작가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해 작가론을 쓰기시작 했다”고 말했다.



▲ 권철 작가의 '가부키초'


또한 인맥이나 학력등을 배재한 채 50대 이상으로 30년 가까이 고독하게 자기작업만을 고집하는 사진가를 찾아내는 일은 '갤러리브레송' 김남진관장이 맡았다. 그야말로 이 땅에 숨겨진 ‘사진’ 고수를 찾아 소개하는데 꼬박 1년이 걸린 셈이다. '


김남진 관장은 사진가를 찾아내고, 이광수교수는 매달 50매에 달하는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갤러리 브래송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를 진행한 것이다.



▲ 김문호 작가의 '온더로드'


비평가의 책무는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해석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 사진계에 이렇다 할 작가론 한권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광수교수의 ‘카메라는 칼이다’는 의미가 있는 책으로 사진보는 것을 넘어, 사진을 읽게 함으로써 책에 나온 사진가의 진면목을 독자스스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김보섭 작가의 '청관'


3부로 구성된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1부는 ‘시대와 시간을 기록하다’에 권철, 신동필, 최영진, 강정효작가, 제2부는 ‘사람과 역사를 바라보다’에 조문호, 김보섭, 문진우, 김문호, 이재갑, 이영욱작가, 마지막 제3부에는 존재와 예술을 그리는 파인 아트작가로 고정남과 이수철작가를 논했다.



▲ 문진우 작가의 '내 마음속의 다큐 한 장'


‘독대’의 권철사진가는 “도꼬다이.... ‘홀로’의 의미가 강해 사진가 권철을 일컫는 말로 이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고 쓰고, 이어 신동필작가를 논하면서 “신동필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다. 그는 투사로서 민족, 자주, 반미, 통일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리지도, 시비 걸지도 않고 대의를 따라 함께 걸었다”고 평하고, 최영진작가론은 “그대로 그렇게 그 모태를 재현하고 있다며, 죽어 말라 버린 물고기 한 마리 이미지가 쉬 사라지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고 최영진이 따르는 자연의 미와 추에 대해 생각한다” 고 했다.



▲ 신동필작가의 '또 다른 가족'


풍경, 민속 그리고 역사를 담은 강정효는 “유채꽃 노란 물결에 배어 있는 농민들의 땀을 읽어 주십사 하는 목소리를 낸다. 강정효는 제주의 모든 것을 담되, 그 안에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고 했다.



▲ 이수철작가의 '화몽중경'


인본을 이야기하는 조문호작가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진가라며 조문호에게 이말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을 나는 찾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오브제로 기록하는 감성적 민족지를 보여준 김보섭 작가는 “그는 사라져 가는 세계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본다. 그 위에서 그가 만든 포토제닉한 이미지는 감성으로서 독자들이 과거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더 크게 열어 젖힌다”고 쓰고 있다.



▲ 이영욱작가의 '자유공원'


카메라불사 카메라 40년의 문진우 작가는 “사진의 작품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바로 오래됨에 있다며 찍어놓고 보면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에 오래됨이 생긴다. 누구든, 그 오래된 사진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만 혼자 바보가 되네’의 김문호 작가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많고, 사유가 깊은 다큐사진가일수록 그 재현 방식의 이동 폭 이 넓다. 김문호 작가가 그 대표적인 사진가다”고 작가론을 펼쳤다.



▲ 이재갑작가의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의 이재갑작가는 “기록할 수 없는 그렇다고 토해낼 수도 없는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 이 기억에 대한 담론을 사진으로 작업한다”고 평했다.


사진으로 사진에 대한 신화를 깨다의 이영욱 작가는 “이영욱 사진은 기록에 대해 시비를 거는 메타기록이다. 경험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해석에 의한 기록이 아닌, 세계본질에 대한 기록이다”고 쓰고 있다.



▲ 최영진작가의 '서해안'


‘끊임없는 기억의 흐름에 정해진 것은 없다’의 고정남작가는 “답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가치와 의미로 된 규정도 없고, 모두가 있는 작은 곳곳의 자리에서 나 자신만의 세상을 누벼보는 것이다. 사진은 찍는 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고 나누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레퀴엠’의 이수철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합성을 통해, 때로는 덧칠을 통해, 때로는 타 매체와의 협업을 통해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레퀴엠을 바친다”고 논했다.


▲ 조문호작가의 '동자동 노숙인'



카메라는 칼이다’의 저자 이광수교수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사진의 역사가 1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늘 아래 새로운 사진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겠는가? 사진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라도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가치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오래됨’이라고 했다.


이 땅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숨어있는 현대사진가 12명의 작가론을 해석하고 비평한 이광수교수의 ‘카메라는 칼이다’ 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ㆍ사진상 부정 심사 등 권력놀음에 빠진 사진계 보란 듯…
ㆍ12인의 작가론 담은 책 출간

 

일본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기록한 ‘가부키초’. 알렙 제공 ⓒ권철



이광수(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는 2015년 갤러리 브레송 관장 김남진에게 의뢰를 받는다. “사진을 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50대 이상의 사진가로 장르를 불문하고, 아무런 연줄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작업하지만 수준이 높은 사진가를 찾아내자”는 것이다. 김남진은 자신은 갤러리 공간을 내어줄 테니, 이광수에게는 작가론을 쓰라고 했다. 이광수는 2016년 1월부터 매달 200자 원고지 50장짜리 작가론을 써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그 결과물을 <카메라는 칼이다>(알렙)에 실었다.

‘사진인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는 2015년 제2회 최민식상 심사 부정 사건과도 이어진다. 이광수는 부정 심사 의혹을 앞장서 제기한 인물이다. 이광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어 출품하고, 그것을 심사하고, 상을 주고받고 하는 따위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임을 넘어 예술을 해치고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다. 그것은 다만 권력을 만드는 일일 뿐, 예술의 속성과 하등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꼭 그것을 전쟁 치르듯 생산해 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고, 라벨을 붙여야 하고, 등급을 매겨야 하는가”라고도 했다.

 

노숙자103-1_1’ 알렙 제공 ⓒ조문호

 

 

이광수가 보기에 한국 사진계는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남을 재단하고, 군림하고 나눠 주고 나눠 먹는 꼴”을 보이는 곳이다. ‘사진인을 찾아서’는 사진계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 라벨과 등급을 뛰어넘으려는 이 프로젝트는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애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멋지게 놀고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라고 이광수는 말한다.

이런 취지와 정의에 따라 뽑은 사진작가는 12명이다. 이광수는 기록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권철·신동필·최영진·강정효를,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가로 고정남·이수철을 꼽는다. 그 사이, 즉 기록하되 예술적 표현력을 상당히 고려하는 작가로 조문호·김보섭·문진우·이재갑·이영욱을 들었다.

 
 


권철은 프로젝트 취지에 걸맞은 작가다. 일본 도쿄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초를 18년 동안 기록한 <가부키초>로 명성을 얻은 그는 느닷없이 귀국한 뒤 제주에 정착했다. “세상을 겪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행위하는” 사진가다. 권철은 트럭으로 풀빵 장사를 한다. 거리가 전시장이다. 이호테우 해변과 해녀를 담은 ‘이호테우’전을 해녀 탈의장에서 열었다. 일본에서 촬영한 야스쿠니 사진들은 길거리 전시를 한 후 모두 불태웠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다. 이광수는 “그는 이제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사진가”라고 말한다.

두메산골 사람, 노숙인, 성매매 종사자 등 여러 인물 사진을 찍은 조문호는 “오로지 사진과 대상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는 작가이고, 그의 작업은 “사람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의 실존적 행위”라고 평한다. 이수철은 “사실의 재현이든, 허구의 표현이든 예술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하여 전할 것인가”를 잣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이광수는 ‘카메라는 칼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칼은 조폭의 칼이기도, 조각가의 칼이기도 하다. 칼은 실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광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사진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품기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예술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한다.”

한국 최초의 사진 작가론을 표방하는 책은 사진가가 자신의 칼을 어떤 예술 철학으로,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2018.3.5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코구멍만한 쪽방에도 손님이 찾아온다.
이주용교수와 최건모, 김시우씨는 프린트기 때문에 도와주려 왔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조성기, 최영문, 정중근, 조수빈, 김보섭씨가 다녀갔다.







지난 9일에는 무의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꼴아 바친 정중근씨와

인천의 소리꾼 조수빈씨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만나기 쉬운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성을 고려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서울역 그릴이 좋을 것 같았다.

쇠고기 전골인지 뭔지 음식은 별로였지만, 식당 분위기는 좋았다.

막걸리도 조그만 유리병에 담겨 나왔는데, 공기 잔에 한 잔씩 마시니 없어졌다.

내가 밥값을 내진 않았지만, 계산은 만만찮을 것이다.






쪽방 지척에 이토록 근사한 곳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날은 번잡한 서울역 시설 곳곳을 둘러보느라 눈병 날 번했으나,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역 변두리에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있었다.





두 분을 쪽방으로 모셔와 겨우 믹스커피 한 잔 대접했다.

두 분 모두 공연이나 축제촬영을 부탁하러 온 고객인데, 이 따위로 처신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 이튿날인 10일엔 사진가 김보섭씨가 찾아왔다.
충무로 ‘브레송’에서 최광호씨 전시 보러 온 김에 들린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먹다 남은 와인을 가져왔는데, 맛이 꽤 괜찮더라.

김보섭씨는 아직 양동 사창가가 남아 있는지 궁금해 하여 양동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 본 것이다.

빌딩 숲 속에 끼어 있는 낡은 골목 곳곳에, 이불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이 널려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달, 임재천씨 전시에서 작당한 일이 하나 있다.
인천의 김보섭씨가 민어회가 맛있는 철이라며, 한 번 놀러오라 했다.
모두들 가겠다고 했으나, 술자리에서 오간 말이라 새겨듣지는 않았다.
그런데, 4일 오후5시, 인천역에서 만나자는 이규상씨의 메시지가 떴다.

그 날은 이명동선생 댁에서 시간을 보내 허급지급 달려갔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출 수 있어 한 숨 놓았는데,
‘차이나타운’방향으로 나가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김보섭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 엄상빈,

김 헌, 남 준, 이영욱씨 등 일곱 명이 나와 있었다.

다들 간편한 차림이었으나, 김보섭씨와 남 준씨는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무더운 날씨라 땀이 줄줄 흘렀으나, 역전의 용사다웠다.
김보섭씨의 안내로 변모하는 차이나타운을 거쳐,
김보섭씨 ‘바다사진관’촬영 현장이었던 만석부두로 옮겨갔다. 

찍을 때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 친숙하게 닥아 왔다.

윗도리를 벗은 채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 그 어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 인간과 연결된 구체적인 장소성이 주는 의미가 현장감을 더했다.

뜻밖에도 김보섭씨의 ‘바다사진관’사진을 인근에서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그 동네에 ‘우리미술관’이란 조그만 갤러리가 있었는데, 마침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실, 사진전은 사람들이 많은 서울의 큰 전시장에서 하는 것 보다,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 동네전이 사진을 찍은 작가로서는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나도 ‘두메산골사람’전시를 그 사람들이 사는 분교를 돌며 한 적이 있기에, 
김보섭씨의 자부심이 점쳐졌다.

여태껏 인천을 여러 차례 오갔지만, 만석부두 후미진 곳을 골고루 돌아 본 적도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현장을 기록해 온 김보섭씨의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장답사에서 재 인식된 것은 김보섭씨의 인천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었다.
긴 세월 인천의 역사적 현장들을 기록하며, 그만큼 껴안아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이런 사람에 감사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돌아다니다, 모두들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보섭씨는 식당 집 할머니가 인간문화재급이라며 칭찬이 대단했다.
그 큰 민어를 여유롭게 다루는 걸 보니, 일단 보통 솜씨는 아니었다.
드디어 민어가 상에 올랐는데, 살점을 듬성듬성 잘라 푸짐했다.
입에 들어가니 살살 녹는데, 오죽 맛있었으면, 엄상빈씨는 집사람 걱정을 해댔다.
집에 남겨 둔 마나님 생각에 차마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같이 오기로 했지만, 허리를 다쳐 못 왔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끓인 서더리탕 안주에 소주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으나, 술을 자제해야 했다.
술 취해 오버해 대면, 아내가 난처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누라 눈치도 봐가며, 알아서 기야 살아남는다.
갈 길도 먼데, 부루퉁해 있으면 입장 곤란하거던...

어쨌든, ‘바다사진관’ 답사도 답사지만, 맛있게 먹고, 잘 놀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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