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어렵사리 약수동 이명동선생 댁을 방문했다.
보름 전에 설렁탕 사 주겠다며 오라는 전화를 하셨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늦은 것이다.

마침, 정선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캐 왔기에 약수동을 찾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잘 걷질 못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시는 설렁탕집도 멀어서 못 간다고 했다.

먼저 ‘한미미술관’에서 열리는 황규태선생 전시에 못 가봐 걱정이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황선생과의 각별했던 사연들을 줄줄이 풀었다. 미국으로 경향신문 특파원1호로 가게 된 동기,
황선생께서 LA 동아일보지사를 설립할 때 만류했던 일, 대구 차용부씨가 미국 공부하러 갈 때, 부탁했던 일 등

그 오래된 이야기들을 소설책 읽듯 슬슬 풀어냈다. 아흔 여섯의 연세를 무색케 했다.

그 다음엔 스튜디오 조명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 붙었다.
동아일보사에서 여성지를 복간할 무렵, 일본의 고단샤출판사를 들렸는데,
그 곳의 스튜디오 장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텅스텐 조명을 사용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는데,

새로 나온 스트로보에 홀딱 반한 것이다.

그 때부터 동아일보 김상만회장을 설득시켜 장비를 구입하고,

충무로 광고사진 스튜디오에서도 모두 구입하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보급했는지 코맷트 스트로보 회사에서 선생님을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그 덕으로 열악했던, 신구전문대와 돈보스꼬 대학 사진과에는 스트로보를 그냥 보냈다는 것이다.

“아이구 선샘 예! 배고파 죽겠습니더. 고마 밥 묵고 이야기 하입시더.”
다리가 아파 멀리는 못가시고, 가까운 곳의 된장끼게에 비벼 다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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