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조 ’역사를 말하는 사진‘, 신복진 ’광주발사진종합‘, 권태균 ’노마드‘, 김운기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
정영신 ’어머니의 땅‘도 지난 시절을 새록새록 불러들일 추억 속의 사진집이다.
또한 오랜 병영 생활을 되 돌아 볼 수 있는 이한구의 ’군용‘과 장종운의 ’젊은 날의 초상’ 등을 추천한다.
진열대에 올린 사진집만도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꼼꼼히 살펴보면 더 좋은 사진집도 부지기수다.
이왕이면 오늘 11월 25일(토) 오후 4시에 들리면 오랫동안 묵언 잠적했던 이규상 대표의 강연회가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글이다.
“책은 오랫동안 지식의 전달과 영감(靈感)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과 저장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수천 년 이어온 책의 위상은 나날이 퇴색돼 가고 있다. 불과 2-30년 사이에 불현듯 가해진 이러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산업혁명이 인간 삶의 근본적 변혁을 몰고 왔듯이 디지털 문명의 출현은 또 다른 삶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수천 년의 습관을 순식간에 바꿔야 하는 가공할 디지털 혁명기에 살고 있다. 그에 따른 인문의 위기는 곧 출판의 위기다. 이번 행사는 사옥 짓기보다 사진으로 ‘사진집’을 지어온 눈빛출판사의 35년 발자취를 집약한 전시를 겸한 북페어다. 최근 전시를 통해 책의 확장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눈빛출판사는 급변하는 출판환경에 대응하고 인문과 예술의 위기 속에 다 각도로 출판의 방향과 역할을 모색해오고 있다.”
2023년은 간토대지진이 발생한지 100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우리에게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대량학살의 현장, 이러한 현장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와 문제의식을 주게 되는 것일까? ● 2차 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은 만14세가 되는 해 의무적으로 나치역사의 장소를 찾아 치욕스러운 나치의 역사와 잔인했던 유대인 학살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이 이 독일 속 기억문화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소양을 갖춘 시민을 위한 진정한 배움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픈 과거를 소중히 기억하는 기억문화는 바로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이 장소의 주요한 역할은 예술이 맡는다. 예술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술인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관찰자는 이 경험을 통해 다시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특이한 미적 경험을 하게 된다. ● 타이틀 Yellow Memory (노란 기억)는 기억문화라는 단어를 대신한다. 노랑은 아픔과 상처 그리고 위험, 역사 속에서 이름없이 사라진 사람들, 세월호 희생자, 위안부 할머니의 노랑 나비를 상징한다. 이 색의 여림은 또 빛 바랜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세상을 비추는 빛과 우리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옐로우 메모리 Yellow Memory 展 _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_2023
우리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하나로 연결시켜 보기로 했다. 하나는 식민지역사 또 다른 하나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현실을 담아내는 전시공간이다. 실제로 이 두 공간의 이슈는 직접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전은 이곳의 사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사실적으로 극대화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 장소에서 만난 예술가는 잊고 있었던 시간을 다시 현재로 돌린다. 그 앞에 우리는 서있다. ● 9월 1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9월 9일 학술대회 「간토대학살 100년과.18」, 11월 10일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가 열리며, 모든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집니다. ● 전시기획은 독일의 유재현(Art5 공동대표) 대표가 총감독을, 이나바 마이(일본, 현 광운대 교수) 교수가 책임큐레이터 그리고 오미진 큐레이터와 박현수 큐레이터가 맡았습니다. ■유재현
미샤엘라 멜리안 _ 기억 Speicher_ 영상설치 _00:53:44_2008
미샤엘라 멜리안 Michaela Melián● 「기억」은 여행, 하이킹, 이방인의 느낌, 소외감, 이 이방인에 대한 탐색과 그리움의 모티프가 다양한 목소리로 펼쳐진다. 슈베르트의 노래 "겨울의 여행", "낯선 곳에 들어와, 낯선 곳으로 떠날 거야"와 알렉산더 클루게의 말 "런던 지도로 하르츠 산 산보"와 같은 여행과 이방인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주, 밀수, 추방과 관련된 텍스트들은 GPS 안내음으로 자주 끊기면서 다양한 여행을 묘사하고 있다. 여행과 이동에 관한 텍스트들은 뮌헨의 독일 박물관에 있는 역사적인 시멘스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소리와 함께 믹싱되어 흥미로운 소리와 무늬를 구성한다. 또한 작품 속에서는 겨울밤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으로, 재봉틀로 만든 지형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기억은 역사와 지리의 편집이다. 이 작품은 역사와 지리를 가공하여 사람들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미디어적, 미적, 성적, 인종적 유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줄기, 선, 이야기, 그리고 멜로디가 계속해서 새로운 장소, 사람, 이야기, 기호, 길, 라인, 그리고 교차로를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지도를 그려낸다.
이창원 _ 두 나비 Two Butterflies_ 거울 , 시트지 , 빔프로젝터 , 영상 , 합판 , 목재 _ 가변크기 _2023
이창원 LEE Changwon● 조소를 전공한 이창원은 비조각적 재료인 빛, 그림자, 반사광(reflected light)의 광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이미지, 대상, 사회현상의 이면을 간접적·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 이번 신작 「두 나비」에는 역사를 기록, 증언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장소성에 현대미술의 행태로 전달될 자신의 메시지를 어떠한 언어·형식으로 반영할지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다. ● 전쟁, 그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관통한다는 점에 착안한 작가는 우리가 지내는 평온한 일상과 전쟁이라는 이상(異常)의 결코 멀지 않은 거리감을 표현하고자 한다. ●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서면 산책길에 발견한 아름다운 꽃들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하나의 시선과 신문, 인터넷에서 찾은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 재난, 분단의 이미지 슬라이드, 총 두 개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미지는 바닥에 뚫린 나비 거울을 통과하면서 두 마리의 나비가 되어 벽면에 다시 투영되고, 힘찬 날개 짓으로 비상한다.
하전남 _ 깨어진 계란 속 씨앗의 꿈 The dream of the seed in the broken egg_ 퍼포먼스 , 혼합재료 _ 가변설치 _2023
하전남 HA Jhonnam● 재일동포 3세 하전남은 2017년 한국인과 결혼 후, 한국과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두 나라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문화·역사적 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 이번 신작 「깨어진 계란 속 씨앗의 꿈」은 작가가 날마다 한지(韓紙)로 계란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씨앗들을 모아 넣어 제작한 설치 작업이다. 한지는 한복, 씨앗은 조선인, 계란은 식민본국의 피식민지인으로 일본에 왔던 조선인을 의미한다. ● 계란이 깨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일본 땅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자 한 조선인들이 정작 마주한 것은 제도화, 일상화된 인권유린이었다. 그들은 한지 계란 속 씨앗처럼 새싹도 피우지 못하고 피식민지인으로 희생당할 것이라는 운명 역시 피할 수 없었다. ● 작가가 한지(韓紙)로 만든 계란 속은 마치 엄마 자궁처럼 따뜻하게 그 씨앗들을 품었고, 씨앗 재생의 꿈을 위로하고 염원하고자 한다.
이끼바위쿠르르 ikkibawikrrr● 시각연구밴드 이끼바위쿠르르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티브로 고결, 김중원, 조지은이 구성원이다. '이주'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정치 사회적 맥락, 식물, 공동체, 자연현상, 인류, 식민주의와 생태의 연결 고리 등 전지구적 차원으로 탐구한다. ● 「열대이야기」(2022)는 제주도와 미크로네시아의 섬들,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는 태평양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며 한반도와 동남아의 연결고리를 조명한다. 태평양의 작은 섬들에는 섬의 선주민이나 식민지 주민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활주로, 진지, 상륙장 등의 잔해가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와 묘, 신사 등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일본과 기타 아시아 지역을 방문해 조사, 인터뷰 등 자료를 모으고 현재 번성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숲과 바다의 생태계에 놓여 있는 역사의 흔적을 포착한다. ● 태평양전쟁기 일본은 미연합군과의 전쟁이 격해지자 광산에서 일하던 조선인을 비롯하여 오키나와인, 미크로네시아의 원주민 등을 팔라우 섬의 보크사이트 광산, 앙가울 섬의 인광산 등에 강제동원하였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각 광산의 흙을 채집하여 「기념비」(2022)를 만들고 이들의 흔적 없는 죽음을 기린다. 붉은색은 보크사이트, 회색은 인광석, 검은색은 제주도 해녀들이 일본군에게 납품하고 폭탄재료로 사용된 감태를 태운 재로 만든 것이다.
임흥순 _ 파도 The Waves_3 채널 FHD 영상 , 흑백 / 컬러 , 5.1 채널 사운드 _00:48:40_2022
임흥순 IM Heung-soon● 영상설치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임흥순은 현대 예술로서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공공미술, 개별 작업과 공동작업, 전시장과 극장 그리고 생활현장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기획, 제작해왔다. ● 「파도」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알리며 위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월남전, 베트남 전쟁이라 부르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5-1975) 중 베트남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1968년 퐁니·퐁넛마을 학살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의 말을 한국에 전달해온 통역사 시내(응우옌 응옥 뚜옌), 그리고 여순항쟁(1948)의 왜곡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랜시간 노력해온 역사학자 주철희, 세월호 참사(2014)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천도제를 지낸 미술교사 출신의 영매 김정희의 이야기이다. ● 작가는 세 사건에서 '국가 폭력'과 '바다'라는 공통점을 찾고, 각 사건의 중심에 선 매개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또한 작품을 통해 매개자의 역할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남성의 역사, 공적인 역사, 기록의 역사 대신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한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기억문화를 형성● 『Yellow Memory』에서는 5팀의 작가(이끼바위쿠르르, 이창원, 임흥순, 하전남, 미샤엘라 멜리안(Michaela Melián, 독일))가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공감하는 체험과 더불어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중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는 이창원, 하전남, 미샤엘라 멜리안이 참여합니다. 이들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아픈 과거를 소중히 기억합니다. 역사학자, 예술가, 미술평론가, 일반시민과 함께 기억문화를 형성하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민주주의의 가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Yellow Memory」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2023년 9월 1일(금) ~ 2023년 12월 31일(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2023년 11월 10일(금) ~ 2023년 12월 31일(일)까지 펼쳐집니다.
전시와 연계한 학술행사 「간토대학살 100년과 5·18」 개최● 한편, 이번 전시와 연계한 학술행사로 '간토대학살 100년과 5·18'을 주제로 2023년 9월 9일 13~17시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립니다. 일본의 관동지역과 한국의 광주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의 아픈 역사를 예술, 사회학, 철학, 문화이론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다시 성찰하고 규정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
'파생실재(Hyperreal)'에 의해 약탈당한 세계에서 '원형(Archetype)'● 이 세계는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종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은 예술가에게도 오래된 것이다. 공구는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기록하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변형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바탕으로 이 질문에 다가간다. 그의 「원형(Archetype)」(2013) 연작을 보자. 어떤 사진에는 형광 빛이 흘러나오는 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또 다른 사진에는 사찰의 굳게 닫힌 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풍경이 있다. 신전에 있는 동물 석상, 석가모니의 형상이 그려진 돌,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를 기다리는 송아지의 이미지 같은 것도 있다. 사진 속 시간은 세속에 물들지 않기를 고집하다가 아무도 접속하지 않아 방치된 게임의 가상공간처럼 멈춰 있었다. 태고의 시간과 마주하는 듯한 이 사진은 세계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그리고 세계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묻는 아르케(Arche) 1) 적 원형 탐구의 산물 같다.
공구 _Phantasmagoric(DC 015)_ 알루미늄에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48×70cm_2018_ 부분
사진 속 이미지는 어둡고 음습하여 긴장감을 유발한다.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불타고 있는 가시 떨기나무를 마주하였을 때 그랬을까? '네가 서 있는 땅이 숭고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절대자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청 같은 것이다. 이 이미지는 또,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은둔자의 집이거나 신령한 신들이 사는 무당의 신전처럼도 보인다. 공구가 원형 연구를 통해서 우리 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심층 무의식 안에 잡은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이 세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어떻게 유전되는 지를 밝혀내는 것에 가깝다. 공구는 자신의 논문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우라의 몰락을 동양 종교의 내향적 관점에서 주목한 바 있다. 2) 그는 융이 말한 것처럼, 유일성과 원본성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핵심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융은 신화와 종교사에 관한 연구를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았는데, 특히, 전형적인 형태와 이미지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자신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환자들의 꿈 혹은 환상, 환각에 상호 동일한 요소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이를 '원초적인 이미지(Urbild)', '집단 무의식의 기조', 본능과 무의식이 결합 된 "원형(Archetype)"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3) 그의 연구에 의하면, 원형 자체는 가정에 의해서 생겨난 모델로서 지각될 수 없고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 태로만 존재한다. 때문에 '원형'은 매우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아우라(Aura)'처럼 작동한다.
공구의 또 다른 시리즈 「약탈(plunder)(2013-2018)」은 원형적 이미지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가변적인지를 보여준다. 이 사진들도 이전의 디지털 사진 작업과 마찬가지로 생경한 사물과 풍경을 그렸으며, 초현실주의적이다. 전작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 형상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집적된 박스들(Stack boxes)'의 이미지를 모아 만든 형상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가까이 다가가 보거나 자세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박스들은 인간 피부의 각질처럼 이미지의 형체를 둘러싸고 있지만, 언제든지 표면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티끌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크게 서구제국주의 문화 침탈로 인한 상실감을 다룬 작품과 서구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서구제국주의 문화 침탈로 서구화된 세계를 다룬 작품은 「원형 시리즈」에서처럼 역사적인 상징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표적으로 금강역사상이 좌우로 지키고 있는 석조 구조물 「탑(tower)」과 다음으로 고종황제가 입었던 제복의 이미지를 그린 「근대(modern)」를 들 수 있다, 황제의 제복은 옷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신체가 사라진 겉껍데기로 우리 근대가 가지는 공허감을 드러낸다. 또 다른 사진은 풍경처럼 보이는 데, 볏짚 블록을 비게 구조물로 둘러싼 「아름다움(Beauty)」에는 그리스어 활자가 쓰여 있다.
석조 구조물 사이로 베니스의 해안 풍경처럼 보이는 「서구화된 조선(The Western Chosen)」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위기에 처한 우리 근대와 전통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언어는 매우 상징적이고 때로는 추상화되어 있다. 다음의 작품에는 더 많은 상징이 나타난다. 태양신 헬로오스(Helios)를 그린 「희생(offering)」과 바다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는 스타벅스의 싸이렌 여신을 그린 「유혹(temptation)」, 하늘에 떠있는 마스크를 향한 「숭배(worship)」와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제자들과 자본주의 향락적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 예수를 그린 「꿈에서 보는 듯한(phantasmagoric)」은 융이 동양 종교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던 것, 외향적 서구 문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함께 읽을 수 있다.
공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허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다.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이미지들은 인간 신체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간 각질(종이박스)처럼 또 다른 유령과 같은 형상의 표피를 이룬다. 작가가 디지털 이미지 조각(박스 조각)을 하나씩 쌓아 올리거나 덧붙여서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한 이미지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미지 -작은 데이터의 조각이거나 망점으로 형성된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들-에 대응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허상에 쌓여 살게 되었을까?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파리의 번잡한 도로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마차를 피하려다가 진창에 빠져 흙탕물을 뒤집어쓴 상황을 '후광의 분실'이라는 시로 썼다. 보들레르가 말한 '후광의 분실'은 단순히 변화하는 도시 환경에 대한 불평이 아니다. 그의 투덜거림은 시인으로서의 주체 인식이다. 그는 도시의 변화와 기술 환경의 진보를 맞고 있는 세계에서 주체적인 감각하기와 경험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음을 인지했다. 그가 본 세계에서의 사물(혹은 도시)과 복제된 상품은 도시의 진열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사물의 고유한 영혼이 사라지고 없는 복제된 사물들, 그리고 인간은 의식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공구는 이것이 세상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즉, 마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임을 말한다. 그는 "아우라는 사물이나 인간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벤야민이 표현한 대로 대량 복제를 통한 아우라 제거는 불가능하고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아우라의 원형을 추적해야 수평적, 비 숭배적 예술 관계가 형성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4) 고 말했다. 서양 기독교가 말하는 외부적이고 초월적 세계로부터의 구원은 지속해서 허상을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 이에 인간은 본질적인 세계와의 교감할 수 없어졌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서 사물의 아우라만을 상실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인간과 광물 등의 모든 상호적 관계가 위기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순진하게도 벤야민은 사진기술과 같은 복제의 문제로 이를 풀어냈지만 말이다.
공구는 "아우라는 사물이나 인간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벤야민이 표현한 대로 대량 복제를 통한 아우라 제거는 불가능하고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아우라의 원형을 추적해야 수평적, 비(非) 숭배적 예술 관계가 형성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라 말한다. 그는 외부로부터 신적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특성이 미술에 있어서 아우라와 같은 숭배적 이론에 도달했으며, 파생 실제가 실제를 대체하는 시대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가 공구의 「원형(Archetype) 시리즈(2013)」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낯설고 생경한 감각의 출처를 생각해본다. 무언가 약탈당한 뒤, 희끗희끗하게 변한 아우라의 시대. 이제는 희소한 원형의 존재가 뜻밖에도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백기영
* 각주1) 고대 그리스어로(=헬라어, 헬라스어)로 '처음', '시초'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아르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탈레스는 이 세상의 기원을 '물'이라고 말했다.2) 김충섭(공구), 윤준성, 「칼 융의 원형이론과 아우라 몰락-동양문화 원형의 내향적 관점」, 숭실대학교, 예술과 미디어, 2013. 21쪽.3) 송태현, 「카를 구스타프 융의 원형개념」, 인문콘텐츠 제6호, 선학사, 2006, 27쪽.4) 김충섭, 윤준성, 23쪽
장마철 늦게 심은 들깨는 씨가 맺히고 오이를 심었던 밭에는 지지대가 꽂혀있습니다. 봄에 심었던 상추 밭에는 풀이 한가득 자라고 말라서 씨가 맺힌 채 빼곡히 덮여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던 밭에는 콩을 심었는데 잎이 다 지고 잘 여물었습니다. 땅콩을 수확하고 나온 빈자리의 밭과 콩을 거두어 들이고 밭을 갈아야겠습니다. 풀이 난 곳은 예초기로 잘게 잘라서 밭을 갈 때 잘 섞어주면 좋은 거름이 됩니다. 관리기의 날이 땅 속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갑니다. 위에 있던 풀과 흙이 갈퀴가 지나가면 아래 흙이 올라와 골고루 섞입니다. 밭가장자리 끝에서 끝까지 오가다 보면 갈색이고 보드라운 흙이 나옵니다. 이 흙색깔을 무슨 색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때가 참 좋습니다. 울툴불퉁한 잔 곡선이 있고 돌멩이와 촉촉이 수분을 머금은 흙을 손으로 쥐어보면 시원하고 향긋한 흙냄새가 납니다.
11.04
오늘은 양파와 마늘을 심을 것입니다. 양파와 마늘은 작물 중 제일 오랫동안 밭에 있는데 그만큼 밭을 만들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괭이로 밭고랑을 만들며 둑을 쌓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하면서 쭉 가야지 밭이 똑바로 나오는데 자꾸 몸이 흐트러지는지 밭이 삐뚤빼뚤하게 갑니다. 몇 번을 멈추고 쉬었다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한 줄을 완성했습니다. 비닐을 씌울 것이기 때문에 밭이 똑바로 나오지 않으면 비닐 씌우기가 안 좋다고 합니다. 비닐을 씌운 뒤 양파는 모종을 심고 마늘을 심습니다. 구멍에 마늘의 뿌리가 밑을 향하게 하여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습니다. 밭이 보드라워서 마늘을 누르는데 쏙 잘 들어가니 땅이 얼마나 포근한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밭을 갈 때는 잘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늘 심기도 안 좋고 나중에 마늘이 뿌리를 내릴 때 땅이 단단하면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밭은 똑바로.. 부드럽고.. 평평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11.08 양파 모종
양파를 심을 때는 나무막대로 구멍을 파준 뒤 뿌리 흙이 다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눌러줍니다. 그다음에는 위에 흙을 덮어주는데 물 빠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래가 많이 섞인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날은 비가 오고 땅이 마르지 않아 흙이 많이 뭉쳤습니다.
양파잔마늘
마늘은 남도마늘, 한지마늘, 빨간 마늘, 잔마늘을 심었습니다. 옛날에 이곳에 계신 선생님께서 어느 시골 할머니와 인연이 닿아 마늘을 받으셨는데 그게 이 잔마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마늘은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 토종마늘 입니다. 쉰 쪽마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처럼 마늘 한 통이 수십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씨 뿌리듯이 훌훌 뿌려주고 싹이 나고 좀 자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봄 여름에 마늘이 없을 때 호미로 한 움큼씩 캐서 풋마늘로 먹으면 좋습니다. 알마늘은 껍질을 다 까지 않고 그대로 콩콩 쪄서 찌개에 넣어먹으면 보통 마늘처럼 똑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잔마늘
올해 농사의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니 많이 서운해집니다. 마늘은 싹이 올라올 거고 곧 있으면 부쩍 추워지겠지요. 간간히 밭에 오면 마늘밭의 비닐이 펄럭이고 벗겨지지 않았는지 싹은 잘 올라왔는지 돌봐야겠습니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 자신을 변화시켜서라도 무엇보다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고 싶은가? 아니면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유지했던 '나됨'을 여전히 고수하고 싶은 것인가?' 대답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지만, 이 생각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다그치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안식이 찾아오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너무 들뜨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깊게 추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그 모든 욕심이나 희망 또는 절망, 심지어 어떠한 것을 유지하려는 노력까지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이번 전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 부유하듯 주위를 감도는 잉어, 새, 꽃들의 이미지는 삶이 주는 다양한 감정들과 깊이를 고요히 사색하며 들여다보고자 하는 마음를 담고 있다. 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선택한 삶이 주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자 위로이다. 50대의 나이에 여전히 다 자라지 못한 사춘기적 감성이라 여길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지탱하고자 하는 의지는 나의 '사적언어'인 이 그림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나 혼자만이 외롭고 쓸쓸하고, 담담하게 삶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니기에 나의 '사적언어'가 '그대'들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조용히 상상해 본다. ● "살아간다는 건 곧 나이 든다는 것이지만, 자신이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늘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박혜란-'나이듦에 대하여'중에서) ■ 양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