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작 '알혼섬' 2016 캔버스에 연필 162.2X112.1cm



‘춘천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강렬하게, 리얼하게” -바이칼에서 강원 춘천까지-가 26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지난13일에는 역사학자 주재혁의 ‘바이칼과 아리랑’에 대한 강연도 있었다.
“바이칼호반 원주민 부리아드 코리족은 코리안(고려인)이란 종족이름을 가졌다, 이태리인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바이칼호반 코리족들은 ‘아리랑’가락이 본래 당신네 가락이 아니고 우리 가락이었다고 말했다”며 우리 민족의 뿌리였음을 강조했다.



길종갑작 '바이칼 답사기'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
 

개막식에는 참여작가인 권용택, 김대영, 김용철, 길종갑, 서숙희, 신대엽, 이재삼, 황재형, 황효창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최형순, 춘천문화재단 상임이사 이치호, 화가 함 섭, 장경호, 노용춘, 전강호, 도예가 신동여, 사진가 정영신, 하재은, 최용주, 목공예가 류정호, 시나리오작가 최근모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나, 대개 모르는 분이 많았다.



권용택작 '바이칼-오대산천까지' 2016 캔버스에 아크릴, 먹 324X260.6



이 전시는 바이칼 현장답사를 해가며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으려는 기획 의도는 좋았으나, 준비 일정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 원형의 동질성이 작품 여기 저기 드러나 있고, 작품 곳곳에 선조들의 영혼이 떠도 는 것 같았다. 



이재삼작 '달빛' 2016 charcoal on canvas 80x194cm


 
이재삼의 작품 ‘달빛’은 ‘저 알혼섬이 영혼의 섬은 아닐까?’하는 몽환적 분위기로 끌어들였다. 물안개의 미묘한 질감 또한 이재삼의 목탄화가 아니면 아무도 살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황재형 역시 목탄으로 그린 작품이 있었다. 높은 절벽아래 이는 물빛을 담은 알혼섬’이란 작품은 대자연의 위엄 속에 마치 선조들의 혼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권용택의 작품 ‘바이칼-오대산천까지’는 바이칼에서 시작된 우리민족의 이동경로가 느껴지고 있었다. 수원화성과 오대산, 바이칼에 이르는 대서사가 한 프레임에 나누어지고 있었지만, 이질감 없는 동질성으로 응축되었다.
 


황효창작 '바이칼의 혼'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인형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황효창의 ‘바이칼의 혼’은 나무에 얼 킨 오방색 천으로 우리 무속신앙의 원형을 보여주었으며, 길종갑의 작품 ‘바이칼 답사기’의 강렬한 원색적 터치는, 알혼 섬이 맑고 깊은 생동의 기운으로 넘치게 했다. 김대영의 ‘알혼섬의 사랑바위’는 그의 방식대로 오방색과 왕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바이칼을 시원의 의미를 가진 민족의 양수로 표현하고 있었다. 김용철의 ‘바이칼의 노래’는 아리랑이라는 음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동질성을 나타냈다.



김용철작 '바이칼의 노래' 2016 한지위의 아크릴릭 250x90cm



  서숙희작 '바이칼 가는 길-샤먼을 부르는 바람' 2016 리넨에 아크릴채색 117x73cm



또한 서숙희의 ‘샤먼을 부르는 바람’이라는 작품은 바이칼에 이는 바람을 그렸는데, 그 시적 분위기가 독창적이었다. 신대엽의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이란 작품은 옛 풍속도나 신선도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묘미가 있었다. 우리민족 고유의 가락 잡힌 낙천성이 깃들어 있었다. 난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사람에서 찾았기에, 실 한 올 걸치지 않은 남자의 몸을 바이칼 호수 변에 세우기도 했다. 




 신대엽작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2016 리넨에 먹과 채색 210x400cm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은 텅 빈 가슴을 어루만지는 한 구절의 시, 내면에 깃든 잠재력을 일깨우는 음악, 새로운 힘이 솟게 하는 춤사위 같이 감상자들을 피안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우리의 장대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김대영작 '알혼섬의 사랑바위' 2016 캔버스 위 아크릴 193,9x130,3cm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형순은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들이 바이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담은 아리랑으로 펼치는 우리민족의 이야기가 다채롭다. 강원도 작가들의 전국적인 유명세도 상상이상이다. 불의에 기웃대지 않는 작가적 자존심도 그 크기에 못지않다. 살아있는 땅의 역사에 살을 부비며 그 안에 깊숙이 배어있던 모습들도 그대로 들추어냈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려하는 진실의 태도를 거기서 배운다. 미래를 맞는 준비도 거기서 가능하다. 이들이 펼치는 그 미술 자체가 겨레의 노래이며 아리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글 / 조문호



조문호 작 '바이칼에서 길종갑' 2016 잉크젯프린트 110x 210cm








 


사진- 좌로부터 전시기획자 최형순씨와 참여작가 길종갑, 김대영, 서숙희, 조문호, 권용택, 신대엽, 황효창, 김용철, 황재형씨



‘춘천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강렬하게, 리얼하게” -바이칼에서 강원 춘천까지-전시가

지난 13일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개막되었다.

이 전시가 기획되며, 오월 중순경 바이칼 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망설이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바이칼 답사를 떠나는 취지는 이해되었으나 기간이 너무 임박해 자칫 중구난방의 전시가 될 확률이 높은데다,

결국 참여 작가들의 작업비를 여행경비로 소진하는 것이 가난한 작가 입장에서는 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내가 내놓은 남자 알몸 사진을 두고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집행부를 향한 길종갑씨의 투덜거림으로 대충은 짐작했지만, 뒤늦게 황화백이 귀띔해 준 것이다.

‘춘천문화재단’ 관계자들의 생각인지, 미리 겁먹은 기획자 최형순씨의 생각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보수적인 안목으로 어떻게 전시를 추진하는지 걱정스러웠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역사학자 주재혁씨의 ‘바이칼과 아리랑’에 대한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끝날 시간이 다 되어 사진만 찍고 강연은 듣지도 못했다. 그마저 멀리서 온 분들이 기다리고 있어 입구로 나와 버렸다.

화가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오래 전 모델에 되어주었던 도예가 신동여씨와, 화가 전강호씨가 와 준 것이다.

당사자들을 자신의 사진 앞에 세워 기념사진을 남기려는데, 갑자기 ‘우두둑 꽝’하는 굉음이 전시장을 메웠다.

돌아보니 강의 듣던 황재형화백이 뒤로 나 자빠지고 있었다.

황소 같은 황형의 무게를 프라스틱 의자가 감당하지 못해 의자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몸은 커지만 예민한 양반이라 살아남았지, 나같이 멍청한 사람이라면 뇌진탕으로 갈 뻔한 사고였다.

정말 황화백은 대단한 분이었다. 바이칼 답사 때도 사진과 동영상으로 세세히 기록하는 열성을 보이더니,

출품작 여덟 점 중 전부가 바이칼을 소재로 한 신작이었다.

불과 한 달 보름동안 그 대작들을 다 그렸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한 두 점도 힘들게 마무리했다는데, 이건 꼼짝 않고 그림에만 메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의 투철한 작가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막시간이 가까워오자 한 사람 두 사람 몰려들기 시작했다.
'춘천문화재단' 이치호 상임이사, 화가 함 섭, 노용춘, 사진가 정영신과 하재은씨, 목공예가 류정호씨,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아트인라이프’상임이사 최용주씨가 있었으나, 대개 모르는 분이 많았다.

미술평론가 최형순씨의 간단한 작가소개가 있은 후, 황재형, 이재삼씨가 나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작품들을 둘러보다, 참여 작가들의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 불러 모았다.

아내더러 사진을 찍으라고 카메라를 넘겨주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이재삼씨가 빠져있었다.

찍기 직전에 분명히 전시장에 있었는데, 어디로 빠졌을까? 귀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쨌든 이차까지 넘어 간 뒤풀이에서 꼴리는 대로 놀았고, 술도 어지간히 마셨다.
두 번 째 납치되어 간 곳은 어느 전망 좋은 호수 가였는데, ‘갤러리 파코도노’라 적혀 있었다.
놀란 토끼처럼 전시장을 비롯해 여기 저기 돌아다녔는데, 한 쪽에는 노래방기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막걸리와 소주는 없을 것 같았는데, 대신 위스키가 나왔다. 누구 주머니를 터는지는 몰라도 신나 부렀다.

오랜만에 촌놈 목구멍에 때 벗기느라 바빴다, 술 마시랴! 사진 박으랴! 춤추랴! 노래 부르랴! 정신없었다.

아! 그런데 밤 열시가 되니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 전철이라도 탈 요량으로 살그머니 빠져 나와 버렸다. 재미있게 노는데, 간다면 판 깨기 십상이잖아.

그런데 그곳이 어딘지 한참을 걸어 나왔는데도, 택시는 물론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가게하나 찾아 콜택시 전화번호를 얻긴 했지만, 상봉역이 종점인 전철만 남아 있었다.

살았다 싶어 퍼져 앉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들여다 보니 장경호 전화였다.

“아이쿠! 장경호를 남겨두었구나”, 뒤늦게 사태파악을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통에다 지랄 같은 욕을 퍼부어 댔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뿐, 너무 열 받아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술이 취해 잠에 빠져들었는데, 얼마나 잤는지 승무원이 깨웠다.

택시비 적게 내려고 상봉역에서 돌고 돌아 독립문이 종착지인 3호선을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한시가 넘었는데 , 일찍 온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없느냐고 묻기에 장경호를 흘리고 왔다 했더니, 당신 치매아니냐며 나무랐다.

“야! 고마 자빠져 자자. 알아서 하 것지. 지가 한 두 살 묵은 아가? ”


사진,글 / 조문호





























































































































황재형작 '칸차르다흐 2016 캔버스에 유채 162.2x112.1



"강렬하게, 리얼하게"

-바이칼에서 춘천까지-


최형순 / 미술평론가







황효창



바이칼의 혼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


광화문에서 2016 캔버스에 유채 200x200


광화문에서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 / 광화문에서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




길종갑


바이칼 답사기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


화전 2014-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7점)


화악산기 2015-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





김대영



알혼섬의 사랑바위 2016 캔버스 위 아크릴 193.9 x 130.3


숲길 2016 캔버스 위 아크릴 193.9x 97


상춘의 봉의산길 2016 캔버스 위 아크릴 193.9x 97




김용철



바이칼의 노래 2016 한지 위의 아크릴릭 250x90







조문호



길종갑 2016 바이칼 110x210


김의권 1991 울산 언양 110x210


전강호 2008 양주 송추 110x210





권용택



바이칼-오대산천까지 캔버스에 아크릴, 먹 324.4x 260.6


오대천의 수달 2011 캔버스에 아크릴 162x 130


산불 2000 캔버스에 아크릴  184x 73





황재형


알혼섬 2016 캔버스에 연필 162.2x 112.1


역사는 선비와 함께 흐른다 2014,7 캔버스에 목탄과 짚신 259,1x 162,1


아! 이르쿠츠크 2016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97x162.2 /  33,4x53





이재삼



달빛- moonscape- 2016 charcoal on canvas 80x 194


달빛- moonscape- 2013 charcoal on canvas 227x 543


달빛- moonscape- 2009 charcoal on canvas 259x 582






서숙희



바이칼 가는 길 - 샤먼을 부르는 바람 2016 리넨에 아크릴 채색 117x 73


바이칼 가는 길 - 샤먼을 부르는 바람 2016 리넨에 아크릴 채색 162x 97


반짝이는 나무 2016 리넨에 아크릴 채색 116x 73





신대엽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2016 리넨에 먹과 채색 210x 400

 번개시장 2007 순지에 먹과 엷은 색 200x 250


백작도 2015 순지에 먹과 엷은 색 162x 127






글 / 최형순[미술평론가]


작가는 홀로 있는 개인이 아니다. 미술에서의 작가 역시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역사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그러기에 나른한 데카당스와 근거 없는 보헤미안으로서의 작가를 기대하지 말자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하우저는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 우리의 현실을 줄기차게 말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작가로 살았다는 것은 광복 70년의 무게만큼이나 미술에서도 뜻 깊다. 그들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하는, 우리의 ‘산과 함께’ 담은 ‘70년’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강원미술의 의미를 물어도 될 만하지 않을까.

우리는 예술이 이런 것이라고 믿는다. 온 몸을 던져 살아낸 작가의 삶이 그대로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이 어떤 혈통을 타고나서 귀족처럼 태어나기 전부터 예술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듯,작품이 예술성을 담아야 예술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곳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서 함께 아리랑을 노래하는 그들의 미술이,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기에 그것이 예술이라고 믿는다. 그 감동으로 전율하게 된다면,더 더욱 의심 없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예술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기에 더 독한 패러독스를 내뿜게 된다. 황효창의 인형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다. 술독에 빠진 인형이라니 기가차기 그지없다. 인형의 입을 틀어막은 그 권력이란 참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개명하지 못했던 시대를 그렇게 견뎌온 1970, 80년대의 그림과 같이 오늘의 인형도 우리에게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광부화가로 이름난 작가 황재형. ‘광부의 옷’으로 중앙미술대전을 휩쓸고 ‘황지연작’을 그리던 그는 기어이 관찰자로만 기웃거릴 수 없다고 그곳에 들어가고야 만다. 30년이 넘는 작가로서의 활동기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제 달라진 그곳의 현실도 계속 담아낸다. 탄광은 폐쇄되었지만 여전한 자본의 막장 극에 대해 할 말이 아직도 그곳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홍등가에 들어가 그들 삶의 현장을 담았던 사진작가 조문호도 강원의 작가가 되었다. 정선,영월,삼척의 두메산골 사람들을 담으려 정선에 터를 잡고 작업해왔다. 권용택 또한 그렇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실경을 찾아 강원을 찾았던 것처럼,강원의 산하를 담으려 정선에서 작업하고 있다.

신대엽,서숙희,백중기,김용철,김대영,길종갑이 그 세대를 이어 오늘의 리얼리티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아니다. 미화한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거칠고 가슴 아픈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미술(美術)이라고 오해하지 않을 일이다. 진선미,위악추가 모두 예술의 대상이고 희로애락 어느 것도 미술의 대상 아닌 것이 없다. 아름다움이란 그 예술이 빚어내는 감동의 크기에서 찾아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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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현 시국을 예술로 표현하다


동아일보 /2016,12,1 / 이인모기자


강원 예술인들 시국전 ‘순실뎐’ 열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 중인 ‘시국전’에 전시되고 있는 황재형 작가의 작품 ‘속아 넘어가다(Buffaloed)’(왼쪽 사진).

넘어진 소를 표현하며 속이고 속는 세태를 풍자했다. 오른쪽 사진은 조문호 사진작가의 ‘광화문 시위’. ‘시국전’ 기획자 제공


강원 지역 예술인들이 암울한 현 시국을 예술적 관점에서 표현한 ‘시국전(展)’이 30일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개막돼 관심을 끌고 있다. 긴급 특별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을 개탄하며 예술가로서의 의무를 지각하고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마련됐다. 5일까지 엿새 동안 열릴 예정으로 전시 타이틀은 ‘순실뎐’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황효창 강원민예총회장을 비롯해 권용택, 조문호, 김진열, 황재형, 길종갑, 서숙희 씨 등 작가 1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100호 크기의 그림과 사진 1∼4점을 출품해 총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광부 화가’ 황재형 작가는 ‘속아 넘어가다’를 풍자해 소가 넘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Buffaloed’와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느낌을 담은 ‘징후’를 전시 중이다. 조문호 사진작가는 국민의 광화문 시위와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퍼포먼스, 양혜경 무용가의 넋전춤 등 시대의 몸짓을 담은 사진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형순 씨는 “시국선언이 쏟아질 때 우리 예술가들은 촛불 집회의 머릿수 하나를 채우는 일로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었다”라며 “이번 시국전은 예술가들에게 시국선언과 같은 의미”라고 밝혔다. 

이인모기자 imlee@donga.com



신학철작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리얼리즘 미술을 재조명하는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리얼리즘의 복권’전이 열리고 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전으로 시작되어, 1984년 '한강미술관'개관, 1985년 '아랍미술관'의 

'20대의 힘'전 사건, 1985년 '민미협'창립, 1986년 '그림마당 민'개관 등은 70년대 이후 모더니즘 일색이던

화단에 큰 변혁을 일으키며 '80년대 미술'을 꽃피웠다.


작품들이 철거당하고 작가들이 연행되는 등 많은 질곡의 세월을 거쳤으나,

뜬 구름 잡듯, 현실을 무시한 예술지상주의에 쐐기를 박고, 미술이 사회현실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아무튼 기존의 미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면, 그 대척점엔 이른바 '민중미술'을 포함한 '리얼리즘 미술'이 있었다.


이 기획전은 당대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는 ‘민중미술’의 구작들이 주를 이루었다.

민중미술계열 전시였으나, 이와 전혀 무관한 오치균, 고영훈씨를 끼워 넣어 기획의도를 아리송하게 했다.



콜라주 기법을 통해 역사의 흐름과 모순을 그려 낸 신학철의 한국 근대사, 황재형의 사북탄광 풍경과 광부,

그리고  이종구의 쌀 포대에 그린 농민들의 모습,  형상의 근원을 찾아가는 권순철,

시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의식의 각성과 시각적 혁신을 보여주는 임옥상의 들불,

실경 산수를 새롭게 해석하는 민정기씨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가 여섯 명이 참여했다.


이 전시는 우리 미술사의 한 부분을 다시 보여 준다는 것 외는, 큰 의미는 지니지 못했다.

참신한 기획력이 없고, 전시 구성도 왔다 갔다 했다.

민중미술 작가군에 끼지 않는 이질적인 작가를 뒤 섞어 놓은 것도 속보인다.

사실 단색화그림의 인기에 이어, 민중미술이 뜨고 있는 현실을 간파한 기획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민중미술의 특징은 사회적 현실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향수를 돌아보다 것 보다, 현재 진행형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 많은 민중작가들을 제외한 채, 유명작가 위주로 향수를 건드린다는 건, 다분히 장삿속이다.

이건 오히려 민중미술의 힘을 꺾으려는 의도가 숨은 게 아닌 가 의심된다.

그 것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지난 달 ‘인사가나아트’에서 열린 “7인의 사무(또)라이”전을 들고 싶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젊은작가들이 모여,

없는 돈 끌어 모아 대관료까지 물고 열었으나, 전시 직전 갤러리 측에서 제동을 걸었던 전시다.

결국 전시장 입구에 가림 막을 치고 미성년자는 볼 수 없는 전시로 합의하여 전시는 치렀지만,

지레 겁먹어, 스스로 본색을 더러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예술로 돈 버는 이가, 무슨 권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단 말이냐?

못된 자본권력이 문화권력으로 둔갑해 예술가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가나인사아트' 전관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3,000원


글/ 조문호


전시된 황재형 작품일부


신학철작


신학철작


황재형작


황재형작


황재형작


이종구작


이종구작


권순철작


권순철작



임옥상작


임옥상작



민정기작


민정기작


오치균작


오치균작


고영훈작


고영훈작


위 아래 작품은 신학철씨의 작품으로 기존작품과는 전혀 다른 서정적 향토성을 띄고 있다.

소장자는 본 전시자문을 맡은 유홍준교수



모처럼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선 집도 들리고, 영월 주촌장도 가고, 춘천에도 들렸다.
춘천은 사진 찾으러 갔지만, 화천 길종갑씨 작업실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농꾼의 화실, 뭔가 다를 것 같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화가의 손은 거칠었다. 생김새도 거칠지만, 그 야생성이 오히려 인간다웠다.
그는 화천에서 태어났다. 공부하고 군대 간 시절 말고는 줄 곳 고향을 지킨 토박이다.

다들 편하게만 살려고 고향을 떠나지만, 그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산다.
농사지으며 그림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도마도 농사를 지었지만, 헛농사였다고 한다.
시세가 없어 모두 망쳤다는데, 자기야 그림이라도 있으니 괜찮다며 이웃들을 걱정했다
실속 없이 고생만 하는 농민들의 현실은 비록 여기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임대 창고를 빌려 쓰는 그의 화실은 엄청 넓어 전시장 같았다.
농번기가 되면 붓 잡을 겨를도 없을 텐데, 그의 작업량은 방대했다.
제대로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사는 주변 환경을 그려 “화천인문기행”이란 화첩도 만들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 태도였다.
대개의 작가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과장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친구는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하나 하나까지, 화폭에 담았다.
심지어는 땅 파는 포크레인까지, 사실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다.
마치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세월이 흐르면 자연은 그대로이겠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바뀔 수밖에 없다.
먼 후손들이 대할 때, 어떤 그림에 더 관심 가지겠는가?
돈 맛에 길든 수준 높은 기술자들이 득실대는 예술 판에 신경 쓰지 않고,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그의 작업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강원도에는 그처럼 작업하는 작가가 많다.
태백의 황재형씨가 그렇고, 영월의 백중기씨가 그렇고, 춘천의 신대엽씨가 그렇다.
바로 이들이 강원도의 힘이고, 강원도의 희망인 것이다.

사진,글 / 조문호



-음력7월20일 "장삿날"-



-용화제-



-그림의 한 부분-


-그림의 한 부분-


-그림의 한 부분-


-어머니와 함께-


-황재형의 '터'-



강원도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강원도 리얼리즘 작가 열 명이 모였다.


꿈틀대는 진경산수와 질곡의 삶을 살아온 민초들의 모습으로,

 통한의 산천에 둥지 튼 사람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평에 가까운  전시장을 채운, 이 대규모 기획전이 그 흔한 지원금 한 푼 없이

가난한 작가들의 주머니를 털었다는 것도 뜻하는바가 크다.

 

산과 함께한 격동의 강원 70년”전은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30일까지열린다.



태백의 황재형 작품이다.

그는 광부생활까지 하며 작업 한, 치열한 작가다.

작가 아버지의 슬픈 모습에 내가 눈물이 난다.

 


터줏대감 격인 해방둥이 황효창의 작품이다 


 인형으로 현실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가려진 삐에로의 표정이 더 슬프다.


화천의 길종갑 작품이다.

만화경같은 초현실적인 풍경은 작가가 사는 마을의 한 풍경일 것이.

상여행렬도 보이고 운동장도 보이는, 삶의 당대 현실이 충실하게 재현되고 있다.


신대엽의 삶의 풍경이다

우리 시대사를 아홉 폭에 응축하였다.

이 한국화 역시 이웃의 평범한  모습과 주변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정선의 조문호 사진이다.

얼굴은 개인의 정체성 표식이자 문화적, 사회적 징후다.

이들의 얼굴과 몸에서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확인해 보는일은, 새삼 강원도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는 일에 다름아니다.



영월의 백중기는 산이 품은 강과 그 강이 품은 마을을 그렸다.

 산길 따라 물길 따라, 붓 길까지 살아 꿈틀거린다.


 "수 만년 세월을 지켜 본 이 준령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평창 진부의 권용택은  허리 잘린 국토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겸재와 단원이 실경을 위해 찾아갔던 곳,

금강과 강원의 산하를 화폭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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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김대영 작품이다.

꿈틀대듯, 울부짓듯 에너지가 느껴진다

 

김용철은 나무판에 그림을 새겼.

거대한 판화의 목판 원본같은 작품으로, 살아 움직이는 조각에 다름아니다.

광복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김구선생의 모습도 새겼다.

그리움의 감성을 끌어내는 서숙희 작품이.

눈을 부라리고 보아야 보이는 정선가는 산길에 버스 한 대만 보일 뿐, 아득하다.

 아스라한 삶의 풍경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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