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정영신의 ‘장에 가자’사진전이 이제 종반에 접어들었다.

개막 후 이틀 동안의 전시장 방문객 사진은 보여드렸으나,

그 이후부터 컴퓨터와 만날 시간이 없어 많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포스팅은 13일부터 16일까지 방문한 분들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다.

전시장을 비워 뵙지 못했거나,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한 분들에게는 송구스럽다.

 

지난 13일 정오 무렵에는 곽명우씨가 다시 방문했다.

첫 날 늦게 와 사진을 찍지 못한 것 같았다.

 

김남진관장과 곽명우, 정영신씨와 ‘진수성찬’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진수성찬’은 처음 가본 정식집인데,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반찬이 정갈하고 구수한 누룽지가 일품이었다.

 

그 다음 날 정오 무렵에는 소설가 김승환선생 께서 먼저 와 계셨다.

강민 시인께서 살아계실 적엔 가끔 인사동에서 뵐 수 있었으나,

선생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전혀 뵐 수 없던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먼 거리를 와 주신 것만도 황송한데, 선물이라며 가죽가방 하나를 꺼내 주었다.

아마 선생님께서 애용하신 가방 같은데,

이젠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정영신씨를 준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그 날은 휴일이라 그런지 대개의 식당이 문을 닫았더라.

문이 열린 집이라고는 순대국밥 뿐이라 썩 내키지 않았는데,

반주에다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식사 후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었으나, 기어히 사양하시며 발길을 재촉하시네.

김선생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그 뒷모습이 바로 내 모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하룻밤을 지나면 한 달이 지난 것처럼 세월이 쏜살같다.

들려오는 주변 분들의 부음조차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난, 동자동에서 지내다 필요할 때만 나가니, 뵙지 못한 분도 많았다.

없는 시간에 다녀 간 분으로는 전활철, 한선영, 류엘리, 노연덕, 황성호, 권순광,

안옥철, 이정숙, 황인선, 최치권, 김준희, 권혜진, 김기덕, 서은화. 정명식, 김광안,

정남준, 안현수, 이세연, 노은향, 최재순, 남 준, 이태호, 이수만, 하춘근, 정주영,

김소연, 이성표, 심지윤, 김중호, 김명점, 이창수,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갔더라.

 

지난 15일 오후에는 화가 나종희씨가 전시장을 찾았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전시할 계획은 없냐?’고 물었더니,

이 달 25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연다더라.

 

마치 알고 물어 본 것 같았는데,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벌써 기다려진다.

그 날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과 겹쳤지만,

가까운 거리라 일거양득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다음 날은 끝 날 시간이 가까운 늦은 시간에 들렸는데, 사진가 하형우씨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강릉의 황지웅피디와 이승구피디가 멀리서 찾아왔다.

먼 길을 와 주신 것만도 황송스러운데, 밥 값을 계산해 버렸네.

다들 운전 때문에 술 한 잔 마시지 못했으나, 반가운 소식도 전해 들었다.

 

도시 재생을 위해 철거된 화광아파트와 광부들의 애환을 담은,

황지웅PD가 만든 '광부의 기억 화광아파트'가 방송문화진흥회가 시상하는

2020 지역프로그램대상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역방송사의 열악한 예산과 인력 탓에 휴일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취재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는 긴 과정에 아들이 조수 역할을 맡았는데,

상보다 더 값진 선물은 작업 과정을 지켜 본 아들로부터 들은 ‘자랑스러운 아빠’라는 말 한마디였다.

이 보다 더 한 보상이 어디있겠는가?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더 좋은 일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지난 16일 오후에는 뮤지션 김상현씨가 동자동에 찾아 와 함께 전시장에 들렸다.

사진가 김범수씨와 판화가 류연복씨, 미술평론가 황정수씨와 오란석씨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차례대로 나타났다.

김범수씨는 인도커피를 가져 와 즉석에서 뽑아 돌렸는데, 그 맛이 귀가 막혔다고 한다.

쓴맛, 단맛, 짠맛 등 갖가지 맛이 어우러진 별난 맛이라는데, 나만 사양했다.

믹스커피나 마시는 커피 맛도 모르는 촌놈이 귀한 커피를 축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사람 좋기로 소문난 류연복씨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한 편으론 안스러운 생각도 든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할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롭기 때문이다.

아니면 중의 팔자를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황정수씨는 날 잡아 류연복씨 집을 방문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인근에 있는 정복수씨나 변승훈씨 작업실은 가 보았으나,

류연복씨 작업실은 가보지 못했다.

날짜만 맞으면 이참에 따라 붙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 날 황정수씨가 보여 준 이청운씨의 오래된 작품 한 점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보아왔던 작품과 달리 콩크리트 골조가 화면을 채운 현실 비판적 그림이었다.

 

난, 이청운화백을 감히 천재 작가라고 말한다.

하루속히 병석에서 일어나 머리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화폭에 쏟아냈으면 좋겠다

지난 병문안 때의 활기찬 모습에 기대했는데, 다시 입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그 날 묵은지 갈비찜이 맛있는 ‘김삼보’집에서 어울려 기분좋게 술 한 잔 했다.

지하철 탄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니, 취하긴 취한 모양이다

요즘은 코로나에 목숨 걸고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취하는 것도 유별나다.

 

영원한 동지 정영신씨가 요즘 고생을 사서한다.

전염병으로 개막식 초대를 없애는 대신, 항시 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쉼 없이 이어지는 손님들로 인해 마음 편히 쉴수도 없겠더라.

몇 날 몇 일을 전시장에 틀어박혀 손님만 맞았으니 몸이 견디겠는가?

 

자!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장돌뱅이는 죽어도 장에서 죽어야지...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촛불이 광장을 뒤덮을 때마다 앞장서서 축제의 마당으로 이끄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된 ‘광화문미술행동’이다.



‘시민나팔부대’가 나팔과 풍물로 신명을 끌어 낸다면,
‘광화문미술행동’은 예술 행위로 집회의 격을 높이며 시민 행동에 자긍심을 심어준다.



시민들에게 찍어 주는 판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역사적 사료로 자리 할 것이고,

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3년 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광화문미술행동’은 참가 작가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정치적 논쟁만 터지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흩어진다.

회비도 회칙도 없는 자생조직이다.



핵심적인 일은 판화가 김준권씨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맡지만.
80년대 민주항쟁 시절부터 온 몸으로 싸워 온 민중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었다.




1980년대 미술을 통해 현실에 저항해 온 노력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괘를 같이한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민중미술은 역동적이라 온 몸에 피가 솟구친다.
삶의 현실과 직결된 그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심미적 작품과는 격이 다르다.




지난 12일 열린 제9차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평소보다 빨리 나갔다.
광화문과는 달리 장소가 협소하여 군중 속에 파묻히면 찿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1시 무렵 서초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가는데, 뜻 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 방동규선생께서 사모님과 계셨는데, 첫 일진이 좋았다.

며칠 전 과도한 중량의 역도를 하다 근육이 파열되었다는 걱정스러운 말씀도 하셨다.


정영신 사진


방동규선생은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아직까지 일하러 다니며 근육운동까지 하는 강골이시다.

백기환, 황석영씨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구라로 꼽히는 협객이다.
존경하는 선생을 촛불현장에서 만났는데, 어찌 인증 샷이 없을소냐.




서초 사거리 중앙에는 ‘광화문미술행동’ 팀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붓글 퍼포먼스를 벌일 대형 현수막 외에도 많은 깃발과 그림 현수막까지 준비해 두었다.

김준권, 김진하, 김 구, 김 억, 이광군, 송용민, 김영배씨가 이른 시간 부터 나와 있었고,

뒤이어 정복수, 김진열, 이흥덕, 김건희씨 등 많은 분들이 나타났다.



여지것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류연복씨는 진천에서 열린 개인전 때문에 나오지 못했지만,

장경호씨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살기에 다들 아파 누웠을까 걱정하더라.



참여 작가들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검찰개혁을 향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후통첩’, ‘악질검사 대청소’, ‘다음은 없다’ 등 다양한 글귀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독수리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경주 정비파씨의 판화를 바탕으로

김 구, 김진하, 송용민씨가 덧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림막 뒤편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니라 김진열 대학총장이 판화를 찍어주었다.

그 판화 작품들은 역사적 무게까지 더하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판화를 얻으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이 날 사진가들도 여럿 참여하였다.

정영신, 하형우, 양시영, 박윤호, 권 홍, 성유나, 임헌수, 김대희씨가 차례대로 나왔고,

뒤늦게는 전민조, 박옥수, 김문호씨도 나왔다. 다들 서초대첩의 종군기자들이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준비한 김밥 한 줄 얻어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구씨 따라 갔더니, 다들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통풍에는 맥주가 쥐약이라 콜라나 마셨는데, 마침 김문호씨 연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가 김문호, 박윤호, 정영신, 하형우씨와 어울려 지난 주 식사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막걸리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는데, 밥 값을 하형우씨가 계산해 버렸다.



덕분에 다른 분이 사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나니, 촛불광장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떨어져버렸다.

보조 건전지가 깡통이라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무기 없는 병사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다음에는 기관총을 가져 올 각오였지만, 이 날이 최후통첩 보내는 마지막 집회가 아니던가?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함께한 동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도 어두운데다 귀 까지 어두워 핸드폰도 무용지물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얼마나 헤맸는지, 진이 빠져 버렸다.

자리잡고 앉아 검찰개혁이나 외쳤으면 좋으련만, 돌아다니는 찍사의 팔자 아닌 습관을 어쩌랴!



최후통첩 날린 검찰개혁은 이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후통첩도 종료가 아니라 잠정중단으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납득할 만큼의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검찰이 저항하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에 이르기 까지 적폐청산의 길은 아직 멀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때까지 ‘광화문미술행동’은 함께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한민족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야 할 삼일혁명 100주년을 맞은 날에,

태극기부대들은 추념은 커녕 행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시위를 하더라도 하루만 기다리다 평소처럼 토요일에 할 것이지,

기어이 백주년을 맞는 삼일절에 몰려나와 초를 쳐야 하나?

아마 북미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신바람이 난 것 같았다.





토요일마다 서울역광장에서 난리를 피우는 태극기부대를 보며 진저리를 쳤으나,

마음 한 구석은 그들도 똑 같은 사람이라는 연민의 정은 남아 있었다.

나도 늙었지만, 태극기부대 때문에 노년층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고,

태극기 물결에 가슴 일렁이던 그런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삼일절을 맞아  인사동으로 나갔는데, 오전 10시가 되었는데도 한적했다.

인파로 붐비던 평소의 인사동과는 너무 대조적인데,

남인사마당 길거리 한 편에 '대한독립만세'란 글이 적혀 있었다.

눈에 익은 글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예가 김기상씨가 나타났다.






자리를 옮긴 파고다공원은 태극기로 뒤 덥혔는데, 대개가 노년층이라 얼핏 보니 태극기부대 같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선열들을 추념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은 분들이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받아보니, ‘2019 신 독립선언서’라 적혀 있었다.

‘이 시대 모든 삿된 것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라며 시작된 깨알 같은 글씨에는,

민족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 온 친일, 숭미, 반민주, 반민족, 비인간 등

모든 부당한 세력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태극기부대가 아니던가?

그 내용을 알기라도 하듯 멸공이라 쓴 차량을 공원부근에 세워놓고, 확성기로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박근혜대통령을 석방하고,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는 거다.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는 그들을 제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마침, 그 곳에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이 만북 울림에 참여하기 위해 분장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다 한반도기를 물감으로 그려 넣고 있었는데, 유진규씨가 나더러 한 번 해보라며 권했다.

늙은이 주름이라도 가려질 것 같아 얌체 같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고는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으니 잊어버린 것이다.





파고다공원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만북 울림 행열과

영산줄다리기를 찍는 등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 뒤 내 빰에 한반도기가 찍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사진가 최광호씨가 카메라로 내 빰을 찍기에 생각난 것이다.





속으로야 늙은 게 주책 떤다고 욕 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명난 줄다리기를 끝낸 후, 하형우, 정영신, 유진규, 여현수, 김윤기씨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규씨는 술 생각이 있는 듯 했으나, 하형우씨가 술을 못한단다.






‘교보문고’ 앞에서 소란 피우던 태극기부대의 시위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헤어지기로 하고, 안국역으로 가는 하형우, 정영신씨를 따라 갔는데,

하형우씨가 시장 끼가 도는지,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자는 것이다.

정영신씨가 '종로구청' 인근에 있는 도가니탕 집으로  안내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태극기부대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도 하루 종일 악을 썼으니, 배도 고팠을 게다.

갈비탕 세 그릇을 시켜놓고 옆 자리에 앉은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부대는 뭔가 다를 것으로 생각한 스스로가 민망했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생긴게 워낙 요상해 쳐다보는 줄 알았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십만 명이라며 자랑했는데,

하형우씨가 십만 명은 안 된다는 말을 한 게, 불씨를 지폈다.

안 그래도 내 빰에 찍힌 한반도기에 의심쩍게 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여기 빨갱이가 있다고 말하니, 사방에서 야유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늙은 게 머리까지 길러 꼴 값을 한다느니, 어떻게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 가냐는 등

별에 별 욕설을 다 했다. 대꾸하면 판이 커질 것 같아 아무 말도 안 했다.

난, 한쪽 귀가 안 들려 한 쪽만 막아버리면 좆 통수를 불어도 모른다.






아마 뒷자리에 있던 늙은이가 심한 욕설을 한 것 같았다.

도저히 참지 못한 하형우씨가 일어나 ‘지금 무슨 말씀하시냐?“며 공손하게 따지니,

대뜸 일어나 헤딩으로 얼굴을 박아버린 것이다.

급습을 당한 하형우씨의 안경이 날아가며, 뒤로 휘청하며 넘어질 뻔 했다.





군중심리에 다들 일어나 대들면 죽일 것 같은 험악한 기세였다.

내가 종업원에게 경찰을 부르라고 했더니, 금세 돌변해 언제 폭행했냐는 것이다.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그들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자식들이 불쌍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식들 꼴은 보나 마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동 ‘허리우드’로 커피 한 잔 하러갔다.

차를 마시며, 그들을 씹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며 친일로 온갖 만행을 저 지른 부모에 이어,

자식들은 미국 놈에 붙어 알랑방구 뀌는 것들이 인간이겠는가?. 





정영신씨가 자기도 당한 경험이 있다며, 세월호 마크나 한반도기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2년 전, 태극기부대를 찍다 봉변 당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카메라가방에 달린 세월호 뺏지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적폐를 청산하려면 강력하게 밀어부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더 이상 미적거리지 말고, 도를 넘는 인간들은 구속시켜라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많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 열리는 ‘촛불역사’전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아쉽지만 오늘 정오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동안 전시장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대해 준 사진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곽명우씨의 헌신적이었던 노력은 물론,

몸이 아파 진통제까지 먹어가며 전시장을 지켜준 이정환씨께는 미안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일요일인 19일에는 박영환씨가 아침 일찍 나와 전 과정을 중계방송 하듯 알려 주며,

도시락까지 싸와서는 온 종일 지켜주는 열성을 보였다.

전시가 끝난 후 박영환, 곽명우씨와 ‘황금도야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미안한 마음 달랬다.

그 이틀 날은 너무 늦게나가 이정환씨 대신 하형우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동안 틈틈이 나와 교대해 준 하형우씨도 고생 많이 하셨다.


이 날은 ‘광화문 광장’ 지킴이 화가 이윤엽씨도 만났고, ‘민미협‘회장 이인철씨도 전시장을 찾아 주었다.
’광화문미술행동’ 김준권대장과 함께 인사동 '툇마루‘에서 식사하고, ’비밀정원‘에서 차 마시고, ’유목민‘에서 대포도 한 잔 했다.
뒤늦게 합류한 장경호씨와 함께, 서둘러 제작하게 될 자료집 제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정오에 철수하며 함께한 분들과 자리를 같이 할 예정이니, 시간 있는 분들은 참석해 주길 바란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


사진,글 / 조문호

































박근혜는 떠났고, 이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쪽방 사람들과 놀려던 올 겨울 일은 앗아 갔지만,
사그라지는 자긍심에 한 가닥 불을 지펴주었다.

‘광화문광장’의 추웠던 고생도 지나고나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나이에 언제 그런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겠는가?

동지들과 어울렸던 아름다운 추억도 그렇지만, 
‘광화문광장’은 성지처럼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제 ‘촛불역사’전이 끝나는 21일이 지나면,
만지산에 잠드신 울 엄마 무덤가로 봄맞이나 가야지...








지난 18일은 토요일이지만, 그리 서둘 필요 없었다.
오후 두시에 있는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 다녀와
인터뷰 약속 있다는 정영신씨와 전시 지킴이를 교대해 주면 되었다.







그러나 지체되어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허급지급 달려가니, 시청방면에는 차벽이 쳐져 있었고,
‘광화문광장’은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다행히 ‘촛불역사’전은 사진가 하형우씨가 대신 지켜주었는데,
국회방송 임원인 정호성, 남성우씨와 추진호씨도 소개시켜 주었다.
전시장엔 관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핸드폰으로 시진찍는 사람도 많았다.








관객도 많았지만, 사진전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호응도가 뜨거웠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감회를 달리했다.
어느 전시, 어느 전시장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을 맞을 수 있겠는가?






찻집에서 기다리는 박병문씨 내외와 엄상빈씨를 만나야 했다.
다들 개인전 준비하느라 바쁜 분들인데, 특별히 시간 내어 오신 것 같았다.
잠깐 들린 정덕수 시인을 붙들어 놓고, 일행들과 식사를 했다.





전시장에서 사진가 곽명우, 권양수, 박영환, 권 홍, 박진호씨도 만났다.
곽명우씨는 내일 당번인 박영환씨에게 이것 저것 가리켜 주었다.
내일은 ‘광화문광장’이 마라톤 집결지라 일찍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 11일 열린 20차 촛불집회 사진이다.
이 날은 박근혜가 파면된 다음 날이라 ‘광화문광장’은 축제 분위기 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의 나비행진이 있었고, 광장 곳곳은 가장행렬로 이어졌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축하 화환이 곳곳에 놓여졌고, ‘이게 나라다!’는 서화퍼포먼스도 열었다.
서예가 여태명, 화가 한상진, 김 구, 박방영, 판화가 류연복, 시인 이도윤씨 등
많은 작가들이 ‘바람찬 전시장’에 걸린 천위에 그림과 메시지를 남겼다.





 박방영씨는 신명난 풍물소리에 맞추어 매화나무를 그렸는데, 그 자리는 인증샷 배경막이 되었다.
서예가 여태명씨는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글씨를 썼고, 이도윤 시인은 시국을 풍자하는 시를 남겼다.
김구씨는 물속의 청소부라는 새우를 그려 적폐를 청산하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판화가 류연복씨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글을 쓰자
김진하, 송용민, 정덕수씨는 글자 곳곳을 꽃으로 수놓아 광장의 봄을 알렸다.


사진, 글 / 조문호






























































흐르는 물길을 되돌릴 수 없듯이, 다음 주면 박근혜 탄핵이 인용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만으로 봄은 오지 않는다.

정의로운 나라로 가려면, 힘들어도 촛불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바로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장으로 몰려나오는 시민들도 지쳤지만, 광화문광장에서 예술행동을 벌이는 작가들의 삶도 말이 아니다.

여지 것 악에 받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 불가리지 않은 채, 박근혜 퇴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제 탈진하여 더 버틸 여력이 없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이번 주말 11일을 마지막 예술행동으로 준비하고 있으나,

어떠한 방법으로든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1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4일 펼친 광화문미술행동의 프로젝트는 역사, 광장 민주주의였다.

바람찬 전시장에서는 촛불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었고, 춤과 함께한 드로잉 퍼포먼스,

서예 퍼포먼스, 작가와 촛불시민들이 함께하는 바닥 글쓰기, 촛불 목판화 찍기 등 다양한 예술행동을 벌였다.



 

촛불집회의 역사적 장면들이 담긴 사진들이 바람찬 전시장양 벽을 가득 메워 지나치는 촛불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는데,

참여 다큐 사진가로는 권 홍, 곽명우, 김문호, 노숙택, 양시영, 엄상빈, 이정환, 정영신, 조문호, 하형우씨 등 열 한명이었다.




 

바람찬 전시장옆에서는 가수 양재화씨와 정미씨가 나와 노래 불렀고,

신현아씨의 퍼포먼스에 따라 작가들의 드로잉작업도 시작되었다.

아승연, 이상태, 정용철, 정도나, 노경애, 이철민, 박재수, 김미란, 오귀현, 조형순 등의 드로잉 작가가 참여했고,

오현, 정유영, 김예슬씨 등 촛불시민들도 함께 했다.




 

춤꾼 장순향씨가 보여 준 세월호 씻김굿의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 날 처음 본 신현아씨의 몸짓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연히 멋진 예술행동을 만난 시민들은 구경하느라 눈을 떼지 못했다.


    


 


서예가 여태명씨가 펼친 서예 퍼포먼스는 여러 차례 보았지만, 볼 때마다 감동스럽다.

그의 힘찬 필력이야 다들 알고 있으나, 즉흥적인 그림 솜씨도 대단했다.

그런데,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다, 번번히 서예퍼포먼스를 놓칠 때가 많다.

이 날도 유진규씨의 퍼포먼스에 갔다 오니, 그 사이 퍼포먼스는 끝나고 작품만 바람찬 전시장에 걸려 있었다.

    


 


광화문미술행동은 오는 11일 열릴 열세 번째 촛불광장 프로젝트로 촛불시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를 개최한다.

 ‘광화문미술행동'을 마무리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바람찬 전시장 현장 공개와 촛불시민 인증샷, 촛불 목판화 찍기,

서화 퍼포먼스, 시민 글쓰기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마지막 예술행동을 함께 즐기자.



    

 

그리고 박근혜탄핵이 결정된 14일부터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의미 있는 사진전도 개최한다.

광화문미술행동을 결산하는 전시로서 촛불의 역사를 지켜 본 열다섯 명 다큐사진가들 사진과 

촛불시민들의 사진도 내 걸린다. 또한 광화문미술행동에서 보여 준 다양한 예술행동도 함께 전시된다.

촛불시민의 승리를 기념하는 촛불역사전을 기대하시라.



    

 이 날 함께한 분은 김준권대표를 비롯하여 류연복, 김남선, 김진하, 장경호, 여태명, 장순향, 정덕수, 송용민,

강성봉, 김영배, 이철재, 변정대섭, 이재민, 이인철, 정영신, 신유아, 신학철, 김창규, 김진열, 조신호, 권 홍,

배인석, 김봉규, 성기준, 정세학, 김 구, 임경일씨 등인데, 취재나온 한겨레 노형석기자도 함께 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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