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정영신의 ‘장에 가자’사진전이 이제 종반에 접어들었다.

개막 후 이틀 동안의 전시장 방문객 사진은 보여드렸으나,

그 이후부터 컴퓨터와 만날 시간이 없어 많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포스팅은 13일부터 16일까지 방문한 분들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다.

전시장을 비워 뵙지 못했거나,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한 분들에게는 송구스럽다.

 

지난 13일 정오 무렵에는 곽명우씨가 다시 방문했다.

첫 날 늦게 와 사진을 찍지 못한 것 같았다.

 

김남진관장과 곽명우, 정영신씨와 ‘진수성찬’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진수성찬’은 처음 가본 정식집인데,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반찬이 정갈하고 구수한 누룽지가 일품이었다.

 

그 다음 날 정오 무렵에는 소설가 김승환선생 께서 먼저 와 계셨다.

강민 시인께서 살아계실 적엔 가끔 인사동에서 뵐 수 있었으나,

선생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전혀 뵐 수 없던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먼 거리를 와 주신 것만도 황송한데, 선물이라며 가죽가방 하나를 꺼내 주었다.

아마 선생님께서 애용하신 가방 같은데,

이젠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정영신씨를 준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그 날은 휴일이라 그런지 대개의 식당이 문을 닫았더라.

문이 열린 집이라고는 순대국밥 뿐이라 썩 내키지 않았는데,

반주에다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식사 후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었으나, 기어히 사양하시며 발길을 재촉하시네.

김선생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그 뒷모습이 바로 내 모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하룻밤을 지나면 한 달이 지난 것처럼 세월이 쏜살같다.

들려오는 주변 분들의 부음조차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난, 동자동에서 지내다 필요할 때만 나가니, 뵙지 못한 분도 많았다.

없는 시간에 다녀 간 분으로는 전활철, 한선영, 류엘리, 노연덕, 황성호, 권순광,

안옥철, 이정숙, 황인선, 최치권, 김준희, 권혜진, 김기덕, 서은화. 정명식, 김광안,

정남준, 안현수, 이세연, 노은향, 최재순, 남 준, 이태호, 이수만, 하춘근, 정주영,

김소연, 이성표, 심지윤, 김중호, 김명점, 이창수,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갔더라.

 

지난 15일 오후에는 화가 나종희씨가 전시장을 찾았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전시할 계획은 없냐?’고 물었더니,

이 달 25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연다더라.

 

마치 알고 물어 본 것 같았는데,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벌써 기다려진다.

그 날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과 겹쳤지만,

가까운 거리라 일거양득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다음 날은 끝 날 시간이 가까운 늦은 시간에 들렸는데, 사진가 하형우씨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강릉의 황지웅피디와 이승구피디가 멀리서 찾아왔다.

먼 길을 와 주신 것만도 황송스러운데, 밥 값을 계산해 버렸네.

다들 운전 때문에 술 한 잔 마시지 못했으나, 반가운 소식도 전해 들었다.

 

도시 재생을 위해 철거된 화광아파트와 광부들의 애환을 담은,

황지웅PD가 만든 '광부의 기억 화광아파트'가 방송문화진흥회가 시상하는

2020 지역프로그램대상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역방송사의 열악한 예산과 인력 탓에 휴일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취재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는 긴 과정에 아들이 조수 역할을 맡았는데,

상보다 더 값진 선물은 작업 과정을 지켜 본 아들로부터 들은 ‘자랑스러운 아빠’라는 말 한마디였다.

이 보다 더 한 보상이 어디있겠는가?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더 좋은 일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지난 16일 오후에는 뮤지션 김상현씨가 동자동에 찾아 와 함께 전시장에 들렸다.

사진가 김범수씨와 판화가 류연복씨, 미술평론가 황정수씨와 오란석씨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차례대로 나타났다.

김범수씨는 인도커피를 가져 와 즉석에서 뽑아 돌렸는데, 그 맛이 귀가 막혔다고 한다.

쓴맛, 단맛, 짠맛 등 갖가지 맛이 어우러진 별난 맛이라는데, 나만 사양했다.

믹스커피나 마시는 커피 맛도 모르는 촌놈이 귀한 커피를 축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사람 좋기로 소문난 류연복씨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한 편으론 안스러운 생각도 든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할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롭기 때문이다.

아니면 중의 팔자를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황정수씨는 날 잡아 류연복씨 집을 방문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인근에 있는 정복수씨나 변승훈씨 작업실은 가 보았으나,

류연복씨 작업실은 가보지 못했다.

날짜만 맞으면 이참에 따라 붙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 날 황정수씨가 보여 준 이청운씨의 오래된 작품 한 점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보아왔던 작품과 달리 콩크리트 골조가 화면을 채운 현실 비판적 그림이었다.

 

난, 이청운화백을 감히 천재 작가라고 말한다.

하루속히 병석에서 일어나 머리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화폭에 쏟아냈으면 좋겠다

지난 병문안 때의 활기찬 모습에 기대했는데, 다시 입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그 날 묵은지 갈비찜이 맛있는 ‘김삼보’집에서 어울려 기분좋게 술 한 잔 했다.

지하철 탄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니, 취하긴 취한 모양이다

요즘은 코로나에 목숨 걸고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취하는 것도 유별나다.

 

영원한 동지 정영신씨가 요즘 고생을 사서한다.

전염병으로 개막식 초대를 없애는 대신, 항시 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쉼 없이 이어지는 손님들로 인해 마음 편히 쉴수도 없겠더라.

몇 날 몇 일을 전시장에 틀어박혀 손님만 맞았으니 몸이 견디겠는가?

 

자!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장돌뱅이는 죽어도 장에서 죽어야지...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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