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를 외쳤던 히피문화가 새삼 절실해 진다.

물질문명에 망가진 자연과 인간성을 되살리는 문제는 이 시대 절대 절명의 문제다.

 

돈에 밀려 최소한의 존엄마저 상실한 노숙인을 친환경적인 삶으로 안내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지키고 자연도 살리는,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다.

 

지난 주말의 서울역광장은 따스한 햇살따라 노숙인이 많았다.

인근 교회에서 제공한 텐트로 서울역 광장에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때 마침, 코로나에 감염되어 떠난 빈 텐트 하나가 끌려 나오고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 인근 교회 빈터에 텐트촌이 잠시 생긴 적은 있지만

서울역 광장에 공공연하게 텐트가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다시서기 지원센터’ 건물 주변의 20개를 비롯하여

경의선 2번 출구와, 1호선 2번 출구 앞의 텐트를 합하면 35개나 된다.

오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의 바람막이와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노숙인 확진자들에게 독립된 공간이 절실했다.

확진자들의 재택 치료 방침이 나왔을 때, 집 없는 노숙인은 해당될 수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 머물던 노숙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병상 대기 순서에서 밀려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노숙인들은 죽음조차 거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까운 용산역 부근에도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용산역 구름다리 밑 빈터에 노숙인 텐트가 들어선 것은 8년 전이다.

풀숲이 우거져 사람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그 곳에 노숙인30여명이 살고 있다.

 

[용산 텐트촌]

다른 노숙인 쉼터와 달리 이곳은 공동체 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먹고 자는 간단한 일이라도 노숙인 스스로 해결할 때,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밥은 얻어먹지 말고 해 먹어야 한다.

 

[용산 텐트촌]

가끔은 물질의 탐욕에서 벗어난 히피 정신의 노숙인도 만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밀려 난 사람과 스스로 택한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지만, 이치를 깨우친 도인처럼 여유롭다.

 

[용산 텐트촌]

사회에서 밀려 난 노숙인도 처음엔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지만,

흐르는 세월 따라 불안과 조급증도 서서히 사라지고 담담해 진다.

욕심 부릴 건덕지가 없으니. 무소유의 가치도 알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삶의 가치를 안겨주는 일이 중요하다.

 

한 때는 물질문명을 기피한 히피운동이 바람을 탄 적도 있었다.

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히피운동은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

 

['우드스톡' 음반 자켓에 사용된 사진/ 스크랩]

특히 69년 미국 뉴욕 주 설리반 카운티 베델에서 열린 ‘우드스톡’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히피 그리고 자유와 평화‘라는 메세지를 내건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에는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프린, 제퍼슨 에어플레인, 산타나. 재니스 조플린, 멜라니 사프카,

존 바이즈, 알로 거스리, 라비쌍거, 조 카커 등 내노라 하는 세계적 뮤지션들이 대거 참석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약 50만명이나 되는 어마 어마한 사람들이 몰려

삼박 사일 동안 야외에서 자유롭게 축제를 즐겼으나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해피 스모그 자욱한 기적의 향연장이라는 뒤늦은 소식과 현장사진에 입이 쩍 벌어졌다.

가보지 못해 안달하던 청춘의 회한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배 문화에 저항하고, 반전 운동을 상징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우드스톡 사진 / 스크랩]

히피라는 어원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나 해피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타당성 있어 보인다.

아쉽게도 돈에 병든 기존 질서에서 히피문화는 뿌리 내릴 수 없었다.

그 잊혀 가는 히피문화가 새삼 떠오른 것은 빈민들의 주거문제도 절실하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불을 지필 필요가 있다.

 

시골에는 객지로 떠나버린 빈 마을이 도처에 늘렸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골짜기가 더 좋다

지자체와 환경부, 복지부가 협력하여, 특정지역에 히피 촌을 만들어 보자.

먼저 가난한 예술가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지자체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다.

 

오갈 곳 없는 노숙인이나 빈민부터 입주하는 것이 순서지만, 처음엔 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외지로 쫓아낸다는 선입견 때문인데, 좋은 환경만 마련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원시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와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가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그만 움막과 토굴, 그리고 약간의 텃밭을 제공받아

서로가 협력하는 공동체를 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질서와 행정을 돕는 공무 차량과 대중교통 외에는 차량 출입도 제한하고,

대중교통도 인근 읍 소재지까지만 운행하면 된다.

 

돈맛에 병든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얽매이는 곳 없는 사람이라면 나서 볼만한 일이다.

잘만 가꾼다면 낙원이 따로 있겠는가?

원시의 삶을 지향하는 예술혼들이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아무나 따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낙원 말이다.

 

그리고 친환경적 소재로 알려진 대마도 이곳부터 개방하여 활용하자.

어차피 대마의 실체가 알려져 더 이상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나무를 베지 않고도 얼마던지 종이와 밧줄을 만들 수 있고,

에너지 자원에서부터 인체에 유용한 약제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효능을 가진 신비의 약초로 검증된 지 이미 오래다.

기득권을 가진 재벌 농간에 정치적으로 놀아 난 통탄할 일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표 잃을까 눈치 보는 정치인들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아마 히피 촌이 제대로만 만들어 진다면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

유명세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제2 제3의 히피촌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에서 해방된 빈자들의 낙원을 만드는 꿈같은 일을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옆 방에 확진자" 방치된 쪽방촌

홍 부총리 아들 전화 한통에 '특실' 입원
종로 쪽방촌 확진자 "10일 째 방치"…치료 격차 만연
고시원에서 '재택 치료' 중인 확진자와 같은 화장실 사용

취약 거처에선 치료는커녕 기본적 생존권조차 위협

 

박종민 기자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최근 들어 길거리와 이른바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공간에 방치되고 있어 큰 문제다.

 

위중증 환자와 병상대기 환자 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찍는 상황에서 노숙인 지원단체 등은 지난달 이후 서울 쪽방촌, 고시원 등에서만 확진자 170여명이 나온 것으로 집계했다.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아들이 전화 한통으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2박 3일간 입원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적정거주자들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도 치료 받을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평상시에도 의료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저소득층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치료 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생존의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시대에 들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 명 걸리니 옆방도 '우르르' 감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스물여섯 명이 거주하는 해당 고시원에선 확진자가 9명 나왔다. 한바탕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고시원에는 음성 판정을 받은 일부 입주자들이 남아있었다. 확진자 1명도 고시원에 남아 재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확진자가 방 안에서 재택 치료 중임에도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탓에 음성을 받은 이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도시락을 옮기고 있던 고시원 사장 김모(61)씨는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A고시원 4층에 거주한다는 김모(42)씨는 "1층 사는 사람이 처음 걸렸다"며 "여기 공동 주방에서 밥먹고 얘기하다 1, 2, 3층까지 다 퍼졌다"고 답했다.

고시원 2층에 사는 김모(63)씨는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옆방에 있어 불안하지만 어떡하겠느냐"며 "그게 현실인데 피할 수 없다. 방법이 없다"고 체념한 표정으로 답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 

 

A고시원 확진자들은 방에서 대기하다가 증상이 악화하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사실상 좁은 방안에서 방치됐던 셈이다.

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고시원 대표는 "지금은 어디든 아프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병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늘어나자 주민들의 경계심도 더해졌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원모(59)씨는 "저쪽 골목에 있는 집에서 감염자가 3명이나 나왔다. 동네가 난리가 났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인근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고 전하자 "전혀 몰랐다"며 "좁은 데서 서로 모르고 있다가 전염됐구먼"이라며 혀 끝을 찼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코로나가 퍼지고 쪽방촌 주민들이 외부 사람을 꺼려한다"며 "고시원도 그렇고 동네에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어쩔 수 없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고 전했다.

이어 "심각성을 인지한 역학 조사관들이 거주지가 쪽방이라고 하면 우선순위로 방을 배치하려고 하지만 환자가 워낙 폭증하는 상황이라 빨리한다고 해도 늦다"라고 전했다.

"확진됐는데도 나몰라라"…취약거처 살펴야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임민정 기자 


지난 10일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이곳도 코로나19에 잠식된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폐지 줍는 일을 하는 한 60대 쪽방촌 주민은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집에 있을 수 없다"라며 "옷 갈아입고 잘 때만 잠깐 머문다"라며 불안해했다.

쪽방촌 어귀에서 만난 70대 김모 할머니는 "11월쯤 주민 한 명이 밖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 뒤로 아팠다"며 "모르고 있다가 요양보호사가 먼저 확진되고 같이 살던 주민 2명 감염됐다. 그 바람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마스크 2장을 겹쳐 쓰고 있었다.

주민들은 감기와 같은 유사 증상만 보여도 퇴거를 종용받고 있다고도 했다. 쪽방에서 5년째 거주 중인 60대 한 주민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그냥 코로나라고 소문을 낸다"라며 쪽방촌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원래 근처 노인회관에서 밥을 줬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끊겼다"라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감염 위기 탓에 방 안에 있을 수조차 없었고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야 했다.

다들 찌푸리고 사는 동자동 쪽방 촌에도 늘 행복하다는 이가 있다.

서울역 주변을 떠돈 지 10년차인 위씨(66세)인데, 그는 개미보다 매미의 팔자를 타고 났다.

 

지난 9일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쪽방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을의 향취가 묻어났다.

노숙인들은 총 맞은 병사처럼 여기 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외간인지 남녀가 같이 누워 자는 이도 있었고, 한 할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여러 자루의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얼마나 힘차게 그렸으면 스케치북이 닳아 떨어질 정도였다.

궁금증이 발동했으나 저리 가라며 손사래 쳤다. 야심한 밤인데다 여자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을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버스정유장 벤취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래 전 ‘다시서기’에서 일했던 위씨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동안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산다며 너무 좋아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싫어, 낯에는 자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혼자 나와 논단다.

얼마나 기타를 많이 쳤으면 기타줄 하나는 끊어져 있었다.

이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족을 버렸다“며

기타하나 들고 나와 떠돈 지가 어느 듯 십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한다.

처음엔 대학로 주변을 떠돌았으나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서울역으로 진출했단다.

 

천성이 기타 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니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젠 이가 빠지고 기타 줄마저 끊겨 볼품없는 노래였지만,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을 불렀다.

회한이 묻어났다.

 

“난 울지 않겠어. 내색도 하지 않겠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거야“

 

사진, 글 / 조문호

 

 

오래 전 신파극에나 나왔던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시국이다.

 

정치건, 성이건 모든 걸 편 갈라 등 돌리고 사는 세상이라 그럴 것이다.

가끔 SNS에서 안면 바꾼 날 선 공방을 보며, 이제 갈 때가지 갔다는 생각이 던다.

 

비운의 삶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구역질 난다.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여 여성을 대변한다는 뻔뻔스런 상판대기들 보는 것도 지겹다.

속 보이는 짓거리가 부끄럽지도 않을까?

 

나 역시 한 때 미투에 지목될 만큼 여자를 좋아했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이젠 여자가 무섭고 싫어졌다.

오죽하면 처와 딸을 가진 사내로서 여성에 혐오감을 가지겠는가?

 

그 가슴 두근거리던 아름다움과 처연했던 감정을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 남자는 늑대로 여자는 여우로 치며 잘 어울려 살았다.

 

이제 그만 끝내라. 제발 죽은 사람 두 번 죽이지 마라.

 

-2막-

 

“돗자리를 따르자니 돈이 울고, 선풍기를 따르자니 몸이 운다“

쪽방 주민들에게 선풍기와 돗자리 나누어 주던 날, 줄 선 서씨가 뱉은 말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

돗자리가 필요하지만 값 비싼 선풍기가 탐이나 하는 말이다.

 

작년 여름에도 선풍기를 주었으니,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 있다.

비좁은 쪽방에 모셔 둘 자리도 없건만, 대개 선풍기를 가져간다.

기껏 팔아야 오천원 남짓 받지만, 단 돈 오천원에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지난 17일, 모처럼 새꿈공원에 줄서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마트’에서 선풍기 300대, 서울시 50플러스센터 직원들이 대자리 380개를 후원해

동자동 쪽방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공고였다.

 

줄 세워 나누어주지 말라고 몇 년 동안 나팔 불어도 시정되지 않더니,

‘코로나19’ 덕에 그나마 고쳐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분량의 물자를 지하로 내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시간 있을 때 찾아가는 방법이 별 탈 없이 정착되어가는 중이라 당혹스러웠으나,

한 편으론 반가운 면도 있었다.

 

다들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혀 살아, 사람이 그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더냐?

 

모처럼 만난 벗들의 반가운 눈 꼬리가 초생 달처럼 징거러운데.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 알아채고 끈적댔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싱글 벙글하는 분위기에 다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행렬은 4년 간 지켜 본 중에 가장 긴 줄이었다.

정해진 낮 2시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 선 사람의 행렬은 골목골목을 돌아 오백 미터가 넘었다.

 

선풍기도 선풍기지만,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 나왔을 것이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으나, 코로나에 의한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다닥 다닥 붙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버리거나 반쯤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자칫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쪽방 빈민들 줄 초상 날 지경이었다.

 

더운 날씨에 줄은 줄어들지 않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

노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는 쪽 쪽 번호표를 줬으면, 이렇게 무더운 땡볕에 줄 설 일은 없지 않느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할 것 아니가? 씨발 넘들아!”

 

얼마나 “서울역쪽방상담소“ 욕을 많이 해대는지, 내가 할 욕을 잃어버렸다.

제발! 너희들 편리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가 남이가?”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이렇게 더위에 시달리기는 처음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룩 주룩 흐른다.
선풍기도 뜨거운 바람만 분다.
컴퓨터 식히는 날개 소리조차 덥다.

겨울 쪽방은 버텼으나, 여름은 못 견디겠다.
방마다 문 열고 벌거벗은 꼴도 가관이다.
다들 곰처럼 잘 버티는데, 난 못 참겠다.






계단을 내려오니 옆방의 전씨가 한마디 한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네요.”
지옥이 이러면 지옥에서도 도망칠 것이라고 답했다.

길거리에 큰 대자로 누워 자는 노숙인이 부럽다.
겨울은 쪽방, 여름은 노숙이라지만, 그게 안 된다.
길거리에 자리 깔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거리의 도사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서울역에서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마땅히 갈 곳은 없었지만, 더위부터 식힐 요령이다.
그러나 지하철은 너무 추웠다. 죽 끓듯 하는 이 변덕을 우짤고?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와 공원에 퍼져버렸다.






동네 술꾼들과 어울렸으나,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올 여름을 어떻게 견디지?
정선 만지산으로 튈까? 아니면 경주 가는 정영신씨 따라 붙을까?

에라~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생각하자.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