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을] ‘전국 5일장 순례기’ 펴낸 정영신씨


 

30년간 장터 522곳 훑고 다녀


 

희망을 엮는 집어등 2010 영천장. 정영신

 

“와 이리 헐노” “아따메 징허요”
사진과 함께 현장감 넘치는 글
남편 조문호씨와 사진전도

 

“많이 변해도 추억 여전히 남아
부산 오시게장·예산장 볼만해”


30년 동안 전국의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닌 정영신(58)씨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표지)가 나왔다. ‘전국 5일장 순례기’는 2012년에 정씨가 펴낸 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기 강화 풍물장의 “안녕하시까? 여기 세 그릇 주시겨” “오셨시까?”부터 경남 의령장의 “와 이리 헐노? 이 고추 때깔 좀 바라. 올메나 곱노”와 순천 아랫장의 “아따메 징허요, 여그 앉을 자리 없어라”를 거쳐 제주 모슬포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좋쑤과. 일 킬로에 얼마우꽈”에 이르면 시장 냄새가 팍팍 난다. 책에 든 사진도 모두 정씨가 직접 찍었으므로 방방곡곡의 현장감이 100% 전해진다.

책이 나온 날에 맞춰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 정영신씨와 조문호(69)씨가 함께 만든 사진전 ‘장에 가자’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정영신씨는 사진가 이전에 소설가이며 조문호씨는 ‘전농동 588번지’, ‘87민주항쟁’, ‘인사동사람들’ 등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에는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시인 천상병 추모 사진집>을 낸 베테랑 사진가다. 두 사진가를 20일 눈빛출판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파트4단지 장터를 걷고 있는 정영신(오른쪽)·조문호씨 부부. 곽윤섭 선임기자

 

 

-5일장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제인가?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는데 소설의 소재도 찾을 겸 장터를 찍기 시작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조금만 가면 장이었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함평장이어서 장날에는 엄마 따라 장에 가곤 해서 익숙했다. 그 후로 힘들고 뭐가 잘 안되면 장터를 찾곤 했다. 1984년에 시작했고, 조세희 선생이 쓴 <침묵의 뿌리>를 보고 ‘사진이 이런 거구나’라고 첨 생각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국사진학원’에서 인화하는 것까지 배웠다.”

-30년간 장터는 어떻게 변했는가?

“가장 큰 변화는, 장옥이 다 바뀌었다. 규격화한다면서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다 망쳤다. 겨울엔 (시멘트가) 썰렁해서 사람들이 안 들어간다. 옛날엔 장이란 게 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 같은 곳이었는데 텔레비전이 시골 구석구석 들어온 이후론 변했다. 기업화된 장돌뱅이가 많아져서 장에 나온 물건이 평준화되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비슷해졌다. 요즘 시골장엔 할머니들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유모차나 카트를 밀고 다니시는 것도 장터 풍경의 변화다. 80년대에 처음 찍을 때는 장보따리 이고 다녔는데 점차 가방으로 바뀌다가 이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갓을 쓰시고 장에 나오시는 멋쟁이 할아버지들도 찾아볼 수 없다.”

-장터는 어떤 곳인가?


장터 상인의 밑천 2013 순천아랫장. 정영신

 


“요즘 장터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들이 콩 한두 되 가져와서 가용해서 쓸려고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로 바구니를 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 할머니’ 이러면서 지나간단다. 아니라고 해도 사람 말을 믿지 않고. 시장 할머니들이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인데 너무 속상해하신다. 그래서 차라리 물건끼리 바꿔가는 게 낫고 그렇게들 많이 하더라. 아는 사람하고 ‘너나 좋은 거 먹어라. 필요한 게 뭐냐?’ 이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하단다. 콩 한 되 가져와서 아는 신발 집에서 발에 맞는 구두 한 켤레 가져가는. 어떻게 보면 옛날 장터가 딱 그랬다. 오히려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장이란 게 꼭 판다기보다는 하루 생활이다. 구경도 하고 얘기도 하고 친구 만나 동네 소식도 듣고.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인데….”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나는 사람도 참 많겠다.

“지난해 5월에 팽목항에서 십여분 거리인 진도 십일시장(임회장)에 갔다. 한 상인이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도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 바닥에 퍼져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찌것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라고 하시더라. 가슴에 와닿았다. 2013년에 북평장에서 만난 한국에 온 지 5년 된 베트남 출신 또티호완(30)씨는 한국말도 잘했다. 직접 밭에서 키운 오이, 가지, 고추 등을 팔았는데 오이를 사가는 할머니에게 두 개나 얹어주는 우리나라 덤문화까지 알고 있어 정겨워 보였다. 영동장엔 한 열 번 갔는데 곰방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자주 갔다. 한 장만 빼먹으면 ‘왜 안 왔니…’ 하셨다.”



 

정영신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에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 있어 독자가 장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글과 사진이 술술 읽힌다.

-21세기의 5일장에 예전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5일장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꼭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장에 가면 영동 할매가 나를 기다리고 사람이 아니라면 나물이 나를 방긋방긋 기다린다. 이달에, 어디에 가면 뭐가 나와 있을 것이고 나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어딜 가든 옛날 장터의 모습을 본다. 머리와 옷과 가방의 스타일은 급속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장이란 공간에선 어느 한구석에 반드시 그 지역이 보이는 곳이 있다. 우리 장의 정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찍을 것이고 여유가 생기면 서울의 전통시장을 찍을까 한다.”

5일장을 찍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장터 추천을 부탁했더니 부부가 경쟁하듯 줄줄 불렀다.

“부산 노포역 맞은편 언덕에 오시게장(2, 7일장)이 규모 있게 펼쳐져서 볼만하다. 파라솔이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햇볕 때문에 서 있다가 겨울에는 바람 들어오는 허리를 가려야 하니 누워 있다. 포항 송라장, 경주 건천장, 성주장도 좋았지. 12월 구례장엔 산수유가 나오고 청양장에 구기자가…. 제일 활기찬 장은 추운 겨울날 새벽이다. 추우니 활기가 차다. 여름은 햇볕도 강하지만 사람들도 늘어져서….”

2월17일일까지 열리는 전시장엔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정영신, 조문호 사진가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객 모두에게 인물사진을 찍어주고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한겨레신문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정영신의 장터순례(38)·청주 미원장

 

어르신들 말소리 웃음소리로 아직도 떠들썩~

4·9일 들어간 날에 장 열려
인근에 평야 발달…쌀 등 농산물 풍부
 

 

7월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미원장도 ‘청원 미원장’이 아니라 ‘청주 미원장’이 됐다. 미원장은 예부터 ‘쌀안장’이라 불렸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고을이라 ‘쌀안’이라 했다지만, 상당산성 안쪽에 있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이 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원(米院)이라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미원장(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은 아직도 촌로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제 장바닥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잘나갈 때 무용담밖에 없다”는 이씨 할아버지(83)의 막걸리잔 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수산리 박씨 할머니(90)의 사정도 비슷하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나들이가 유일한 외출이유. 장에 나와야 사람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혀유.” 할머니는 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30년째 곡물장사를 하는 조덕님 할머니(78)도 얼굴이 환하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벱이 없는 동네였어유. 다른 디는 가물어도 여그 동네는 물이 마르지도 않아유. 헌디 요샌 잡곡이 좋다고 쌀은 쳐다도 안 봐유. 세상 참 많이 변했시유.” 됫박 위로 쌀을 수북이 담는 조씨 할머니 손잔등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이맘때 장터는 색의 향연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해 온 여러 채소와 온갖 과일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이와 호박의 수줍음은 초록으로 번진다.

 잿물과 폐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를 길 위에 펼쳐놓은 이씨(67)가 지나가는 여인네만 보면 소리소리 지른다. “마트에서 파는 세제는 이 비누 못 따라와유. 하나만 사다 빨래해 봐유. 다음 장에 또 사러 오구만유. 한장에 천원이유~!”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펼쳐진 만물상에는 모기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든다. 잣대를 대고 크기를 재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쇠똥 먹고 자란 옥수수 좀 사가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외치던 이분순씨(61)가 마르면 맛이 없다며 부대에 옥수수를 주섬주섬 담는다. 영 안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큰길가 트럭에 쌓인 옥수수는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옥수수를 고르던 권태영 할아버지(87)의 말씀이다. “사람도 제각각이듯이 옥수수 맛도 다 달라유. 햇빛 많이 본 놈이랑 이슬 많이 받은 놈 맛은 전혀 다르구먼유.”

 미원면 지역은 길게 뻗은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했고, 산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비롯해 옥수수·감자·수수·고구마·청결고추와 은행·표고·산나물·대추·은행 등이 생산된다. 매년 9월에는 미원면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쌀안축제’도 열린다.

 과거 청원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볍씨’의 고장으로 유명했고, 친환경 농산물의 명산지로도 이름 높았다. 특히 <청원생명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으며, 청원생명쌀 마라톤대회(올해는 9월28일 개최)도 있을 정도다.

 이제 청원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이면 미원리 우체국 옆길에는 여전히 장이 들어선다. 보은군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와 여기서 청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연결돼 다들 보은장이나 청주장을 찾으면서, 이제 미원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장날이면 인근 마을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아직은 떠들썩하다.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정을 느끼게 한다.

 미원장 외에 과거 청원군 지역에서 열리는 장은 대청호 인근의 포도로 유명한 문의장(상당구 문의면, 1·6일), 가까이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는 옥산장(흥덕구 옥산면, 3·8일)과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오창장(청원구 오창읍, 3·8일), 초정약수로 유명한 내수장(청원구 내수읍, 5·10일)이 있다.

 

 

(26)경북 울진 흥부장

“꼽꼽하게 말린 간재미 사무봐라! 디게 맛있데이~”


바다와 경계 짓는 장터 담벼락엔
바닷가 풍경 그려져 있고
장대 위에는 손질한 생선들이…
과거 우시장·어물전으로 유명
죽변항 개설된후 쇠퇴 시작
난로 주변 장꾼들 밥 나눠 먹는 모습
사람 사는 정은 여전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이 노래는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춘양장까지 130리 길인 십이령 고개를 넘어가면서 선질꾼(지게꾼)들이 부른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보부상이 뜸해지자 그 역할을 대신한 행상이 바로 선질꾼이다. 선질꾼은 울진 흥부장에서 미역·소금·어물 등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사다가 등에 지고 굽이굽이 먼 고갯길을 걸어 봉화 춘양장까지 가, 거기서 내륙의 산물인 곡식이나 의류·잡화 등과 교환했다고 한다.

 십이령은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에서 하당리를 지나고 두천리 말래마을을 거쳐 크고 작은 열두 고개를 넘어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춘양장으로 가는 ‘미역과 소금의 길’이다. 민초들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길에서 선질꾼들은 들꽃을 꺾어 혼인도 하고, 주막에서는 아이도 낳았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무장공비가 출몰하고 다른 교통로가 생기면서 발길이 끊어졌던 것을, 2010년 7월부터 울진군에서 트레킹 코스로 개통한 것이다.

 초창기의 흥부장은 3일과 8일이 드는 날에 섰으나 1997년 부구리로 이전하면서 1·6일 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흥부장은 수협 맞은편에 들어서는데, 뒤편으로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풍경과 함께 원자력발전소가 내려다보인다.

 흥부장을 찾은 날, 바람막이로 서서 바다와 경계를 짓는 장터 담벼락에는 바닷가 풍경이 그려져 있고, 장대 위에는 손질한 생선들이 걸려 햇빛과 노닐고 있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바다 그림에서는 고기떼들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몰려올 것만 같고, 한가한 어촌 풍경의 그림에서는 고기잡이 간 남편을 기다리며 끓인 된장국 냄새가 그윽하게 풍기는 밥상이 보이는 것 같다.

 해가 어스름하게 고개를 내밀자 장 풍경들이 일제히 일어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모자와 목도리로 둘둘 감아 눈만 내놓은 할머니가 마스크를 벗더니 “고포미역 먹어봤능교? 우리 동네 바닷가에서 나온 긴데, 옛날에는 임금한테도 바쳤다카데예” 한다. 나곡6리 고포마을에서 미역을 갖고 나온 박순심 할머니(73)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고포미역은 수심이 얕은 암초에서 자연적으로 성장한 미역을 채취한 것으로,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으로 간재미를 정리하던 김연옥 할머니(75)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변에서 아침 6시부터 나와 간재미를 정리하고 있다는 김씨 할머니에게 손 시려운데 장갑이라도 끼고 하시라고 말을 붙이자 할머니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내사 늙어 그런지 추운 걸 잘 모르고 산다 아이가. 사시사철 이 간재미만 파는데, 꼽꼽하게 말라 디게 맛있데이! 니도 한번 사무봐라.”

 검은 비닐봉지로 둘둘 말아놓은 발로 뒤뚱거리며 걷는 김씨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곡예사 같다.

 겨울철 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추위를 이겨낸다. 큰 깡통 안에 촛불 두어 개 켜놓고 의자로 사용하기도 하고, 갈탄을 지핀 화롯불 위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장터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장작불을 지피거나 난로가 있는 곳에는 주변 장꾼들이 모여들게 마련인데, 서로 밥을 지어 나누어 먹는 넉넉한 풍경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한다.

 우시장과 어물전이 유명해 울진에서 가장 컸던 흥부장은 죽변항이 개설되고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옛 보부상들의 자취나 흔적이 느껴지는 길 위에서 여전히 장은 열리고 있다.

 흥부장 외에 울진에 서는 장은 생토미발아쌀·고포미역·송이·대게·오징어·은멸치 등이 나오는 울진장(2·7일), 죽변항이 있는 죽변장(3·8일), 후포항과 대게축제로 유명한 후포장(3·8일), 왕피천하늘조청·매화장수쌀엿·야콘즙·산골솔잎이 나오는 매화장(4·9일), 망양갯바위로 유명한 기성장(1·6일)이 있다. 
 




ⓒ 농민신문 & nongmin.com,











 
(24)경남 진주 반성장
 
 
임진왜란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일반성면 등 5개면 중심 상권
3대째 50년 동안 내려오는
‘진주반성 전통한과’ 유명세
진주는 민속놀이 소싸움 발원지
전용경기장서 토요일마다 열려
 
 

 

“할매, 올해는 감 많이 열렸습니꺼? 내사 마 장에 내다 팔 게 없슴니더.”
 “지난 장에 안 보이드만 오늘은 뭐 갖고 가노?”

 잘 익은 <대봉>감 한자루를 손수레에 실은 강씨 할머니(75)와 팥 몇되 담긴 보자기를 손에 든 박순남씨(58)가 장터 가는 길에 나누는 이야기다. 박씨의 보자기에서는 바람과 햇볕을 실은 자연의 소리가 가만가만 흘러나온다. 강씨 할머니는 50여년 전 감을 이고 장에 가다 산기가 느껴져 집으로 달려와 아이를 낳았다며, 붉은 감만 보면 딸 생각이 난단다. 감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 담아내는 할머니의 정이 사람들 사이로 붉게 익어간다.

 “벌써 제사장 보러 왔나?”

 경남 창원시 진전면 대정마을에 사는 조씨 할머니(76)가 장 끝머리에서 생선 파는 김얼리 할머니(83)를 찾아왔다가 들은 인사다. 김씨 할머니는 48년째 장사를 하다 보니 장에 나오는 사람 제삿날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제사상에 올릴 생선들이 모두 내 손에서 나갔으니 내 죽으마 괄세는 안 할 기다. 그자?”

 겨울철 생선 노점에는 장작불이 피어올라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지나가는 사람 한두명만 모여도 잊어버린 시간을 꺼내듯 옛 장터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반성장은 임진왜란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져 비탈길에 장이 섰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과 여러 보부상이 모여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했던 일이며, 반성유치원 자리가 옛날 비탈장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넘실거리며 장작 타는 소리를 깨운다.

 오늘날 반성장은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에서 3일과 8일이 든 날에 열린다. 일반성·이반성·사봉·지수·진성면 등 5개 면의 중심 상권인 반성장은 따끈한 국밥이며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비롯해 수산물·건어물·식료품·의류·잡화 등 없는 것이 없다.

 3대째 50년 동안 내려오고 있는 ‘진주반성 전통한과’는 쌀을 삭힌 조청을 이용해 전통 비법으로 만들어 반성장의 특산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격전을 벌인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넋을 기리기 위해 등을 밝히던 것이 축제로 이어졌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군사적인 목적이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등불을 띄웠다고 한다.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오째 알겄노? 기냥 웃고 살다 가는 기라.”

 김월례 할머니(88)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북새통인 방앗간을 건너와 울려 퍼진다. ‘웃고 살다 가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인지 그동안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할머니는, 오늘도 웃기 위해 나왔다며 소주 파티로 할머니들을 불러 모은다.

 “소싸움 하는 데 가이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왔데. 그런 데나 가지, 장에 뭐 볼 거 있다고 사진을 찍어 쌌노.”

 대정에서 참기름 짜러 나왔다는 강꽃순 할머니(83)가 아는 척을 한다. 소싸움 이야기 좀 해달라는 소리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왜놈들 밑에 살 때, 그때 분풀이로 소한테 싸움을 시킨 기라. 남강 백사장을 모래 문지(먼지)로 하얗게 뒤덮고 있으면 왜놈들이 겁이 나 나루를 못 건넜다 안 카나.”

 “말도 마소. 우리 영감쟁이는 소 출전시킬라고 인삼에다 배암까지 달여 믹였는데, 집에만 있던 소가 암내를 맡고 고마 암소를 올라타뿐 기라. 화가 난 영감쟁이가 퇴장된 소를 바로 도살장으로 보내부렸다 안 카나.”

 조선의 민속놀이인 소싸움은 진주가 발원지로, 지금은 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토요일마다 상설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일본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혼이 살아 있는 것인가. 무질서하게 보이는 장터지만 옛 어르신들의 기백을 장터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 문자로 대화하는 시대이지만 아직은 얼굴을 마주보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눌 수 있기에 오늘도 반성장에는 장날이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반성장 외에 진주에서 열리는 장은 봉곡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난장이 열려 많은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진주장(2·7일), 딸기와 호박이 나오는 금곡장(1·6일), 파프리카가 특산물인 대곡장(1·6일), 단감·배·홍고추로 유명한 문산장(4·9일), 미천밤과 상황버섯, 배즙이 나오는 미천장(5·10일)이 있다.  

 

 

임실 갈담장

 

“모처럼 파마하는 날”…장터내 미용실 ‘떠들썩’

 섬진강 상류지역 중
밤·약초 주산지인 강진면에 위치
2·7일 드는 날 열려
가을걷이 끝난 농산물 좌판
호두·은행·표고 등 널려

 

“시방도 이쁘단 소리가 좋은 것 보믄 늙어도 여자랑께. 아짐! 벌써 참기름 짜 갖고 오요.”  차영자 할머니(72)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육젓 사러 왔는디 다 폴아부렀다고 허요.”  음력 6월에 잡히는 새우가 알이 차고 살이 튼실해 이 새우로 만든 육젓이 김치에 들어가야 개운한 맛이 난다, 전라도 김치는 청각이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는 등 김치 이야기 하나로도 미용실 안이 떠들썩하다. 30년째 미용실을 지키고 있는 차씨 할머니는 고구마 캤다고 가져오고, 호박 땄다고 가져오고, 김장했다고 가져오는 할머니들의 인정에 모두들 한식구처럼 지낸다며 자랑이다. 할머니들은 파마하느라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장을 보거나 물건을 팔기도 해 미용실은 장날이면 덩달아 바빠진다.

 “아따, 요즘은 교회서 호떡도 나눠주네이. 자네도 먹었는가?”   조순임 할머니(81)가 호떡을 갖고 미용실로 들어오다가 “오메! 젊은 손님도 왔능갑네. 여자는 미용실에 와야 이뻐지제. 파마하러 왔소?” 하고 말을 건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질펀한 사투리가 고향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 갈담장터. 나가 보니 근처 교회에서 장에 나온 사람들을 위해 장터가 서는 버스터미널 앞에서 호떡과 대추차를 종이컵에 담아 나눠주고 있었다. 덕분에 시장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종이컵을 손에 든 채 시장을 본다.

 장옥 너머 산에서 날아온 가을 햇살을 받으며 고들빼기 한단 펼쳐놓고 앉아 있는 채말순 할머니(79)의 순수한 웃음이 은행잎과 함께 땅 위에 떨어진다. 노란 은행잎을 건너다보던 할머니가 이야기한다.   “살 제 남원, 죽어 임실이란 말이 있어라우. 산과 산이 병풍 두른 것맨치로 여그 풍경이 좋응께 죽으면 모다 고향 땅에 묻어달라고 해쌌제.”

 삶과 죽음을 가까운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채씨 할머니가 사는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은 섬진강 지류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섬진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갈담장에는 밤·호두·은행·표고와 각종 약초가 나오는데, 특히 약초와 밤은 강진면이 주산지라고 한다.

 오일장은 역시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이자 문화센터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안부를 묻는가 하면, 할머니들은 가을걷이 끝에 모아온 농산물을 펼쳐놓은 좌판을 어슬렁거리며 눈 도둑 하기에 여념들이 없다.

 “아따! 돈이 없어 못 사제, 없는 것이 없당께. 하래네(돼지감자) 다듬어 갖고 왔는디 이삐지라?”

 강진면 옥정리에서 돼지감자를 갖고 나온 곽순임 할머니(81)의 말이다. 당뇨에 좋고 체지방도 분해한다고 알려진 돼지감자를 이곳 사람들은 뻥튀기처럼 튀겨 물 끓여 먹는 데 쓰려고 사 간다고 한다. 옥처럼 맑고 찬 샘이 있다는 옥정리는 조선 중기에 이곳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머지않아 맑은 호수가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이 적중한 곳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옥정호 확장 공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치즈의 발상지이며 호남좌도 필봉농악으로 유명한 임실(任實)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 치즈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우유를 숙성시켜 만드는 치즈는 우리나라의 된장이나 청국장과 비슷하다. 각 가정의 장맛이 다르듯 서양의 치즈 맛도 발효하기에 따라 색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임실이 고향인 김용택 시인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장터에 가면 자연이 키워준 농작물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땅과 흙과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살아 있는 시’를 몸으로 쓰는 농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갈담장은 2일과 7일이 드는 날에 선다. 면(面)의 이름을 따면 강진장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갈담장이라고 부른다. 갈담장 외에 임실에서 열리는 장은 임실장(1·6일), 오수장(5·10일), 관촌장(5·10일), 신평장(3·8일)이 있다. 주로 나오는 것은 생활 필수품과 쌀·고추·채소류. 가을에는 감, 봄이면 산나물이 많이 나온다. 특산물은 운암면의 붕어, 청웅면의 ‘남양수시’ 감, 성수면의 송이, 삼계면의 콩잎 등이다.  

 

 

 

 

 

                                                                

 

(20)강원 동해 북평장

 

갓 잡아온 해산물 가득한 어물전 활기 넘쳐

역사 200년 넘은 강원도서 가장 큰 장
오징어·가자미·문어·곰치 등‘눈길’
갖가지 농산물도 노점에 널려




 

아침 일찍부터 장을 여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열무는 금방 뽑았는지 흙이 채 마르지도 않아 함께 실려온 땅 냄새가 그대로 장바닥에 퍼진다. 인근 마을에서 농산물을 갖고 온 할머니들의 난장에는 가을 들판이 통째 이사 온 듯 없는 것이 없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빨간 고무통을 메운 곡식들이 새 주인이라도 기다리는 듯 소곤거린다.

 그 옆 좌판에는 추억의 옛날 사탕이 올라왔다. 많은 사탕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돌사탕.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먼 길을 걸었던, 그래서 ‘십리사탕’이라고도 했던 그 아련한 추억의 돌사탕을 북평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강원 동해시 북평동의 북평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된 도로 덕분에 날로 번창하는 장이다. 전국에서 세번째로 크고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장이며, 역사도 200년이 넘는다. 3일과 8일이 들어 있는 장날이면 주민들이 직접 심고 가꾼 농산물과 인근 항구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이 800여개의 노점에 깔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이기도 하다.

 북평장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아무래도 어물전이다. 가까운 동해안에서 잡혀온 오징어·가자미·곰치 등이 나란히 누워 시집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맹이가 수족관의 오징어를 지켜보는 모습도 정겹다. 북평동에서 장보러 나온 최씨 어르신(74)은 한시간이나 생선 좌판을 돌아다닌 끝에 못생겼어도 시원한 국물을 내는 곰치 한마리를 산다.

 쪽파를 도매상에 넘긴 박씨 할머니(78)는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살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자 고향이 경상도라는 어물전 주인 김씨(48)가 한마디 건넨다. “할매요, 문어 한마리 무마 전복이랑 꽃게, 가리비를 다 묵는 기나 마찬가지라요. 할매 보니 고향의 울 어무이 생각이 납니더.” 할머니는 김씨의 말재주에 못 이겼다는 듯 “주말에 자식들 오면 삶아주게 암놈으로 한마리 줘봐” 하신다. 김씨의 휘파람 소리에 춤추듯 기어다니는 문어의 꿈틀거림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바다의 카멜레온인 문어는 감정 변화나 주변 환경에 의해 몸 색깔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먹물을 뿜어내는 등 지능이 가장 높은 연체동물이다.

 다래와 머루를 갖고 나온 최향자 할머니(74)는 37년째 이 장에서 생산자이자 판매자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이 키워준 농산물은 할머니의 소중한 종잣돈이 되어 병원 다닐 때나 손자들 용돈 줄 때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그 옆에서 오이와 가지, 호박을 펼쳐놓고 부추를 다듬는 또티호완씨(30)는 5년 전 베트남에서 이 고장으로 시집왔단다. 올해로 3년째 북평장에 나오고 있다는데, 오이를 산 할머니에게 두개나 더 얹어주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 덤 문화까지 잘 알고 있는 듯해 정겹다. 베트남의 재래시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유창한 한국말로 답한다.

 “베트남 시장도 여기와 비슷해요.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돈을 벌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잡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고요. 북평장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남자들이 장사하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가는 또티호완씨의 미소가 아름답다.

 호박과 열무를 가져온 전씨 할머니(74)는 자릿세 500원을 내고 한평 남짓한 공간에 보따리를 풀었다. 용돈을 만들려고 장 나들이한 지가 8년째에 접어든다고 한다. 할머니가 옆마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젊은 아낙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봉지를 펼쳐놓는다. 묵호에서 온 김옥녀 할머니(76)는 32년째 물미역을 팔고 있단다. “어렸을 때 이름에 ‘옥’ 자가 들어가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한평생 일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할머니는 쉬지 않고 미역을 가르고 자르는 일을 반복한다.

 국밥집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장에서 만난 친구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농사 걱정을 부려놓는 중이다. “도시로 나가야 사람 행세하는 세상은 이제 옛날이야기구먼. 자연이 제일이지.” 사계절 자연을 벗 삼아 땅에 의지해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이 오늘따라 더욱 소중해 보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