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봉화장에서 만난 서씨 아지매 이야기다.
통통한 알밤 한 되 박 펼쳐 놓고 쪼그려 앉은 모습이 안 서러워,
“아지매는 사는 게 어떻냐?”고 물어 보았다.

“사는기 다 그렇지 별거 있는기요?”
"별거 아닌 게 힘들게 한다"며 투덜거렸더니, 측은한 눈길로 쳐다본다.

그 무렵, 옆자리에 있던 아낙이 맛보라며 서씨에게 김밥을 건네준다.
“별 생각 없는데...” 하시면서도 한 점 집어 맛있게 드셨다.

돌아서는 귓전으로 들려오는 아지매 말에 인정이 묻어있었다.
“밥이나 묵고 댕기는지 모르겠다”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숱한 사람과 부딪히고 살아도 연관이 없으면 아무 관심도 없는 비정한 세상에
낯 선 사람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정이 메말라 기계처럼 사는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타인에 대한 정은 멸종되지 않았다.
시골장터에서나 만날 수 있는 훈훈한 정경이다.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된 세상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일부터 4월1일까지 정선 귤암리 ‘동강생태체험전시관’에서 동강할미꽃 축제가 열렸다.
축제 부대행사로 정영신의 ‘장터 사람들’과 조문호의 ‘산골 사람들’사진전도 있었다.
작은 규모의 사진전이지만, 기회가 닿는 분들을 위한 정보차원에서 소식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와 주셨다. 태백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서울과 부산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다들 반갑고, 고마웠다. 볼 것도 먹을 것도 없는 초라한 잔치에 와 주신 그 따뜻한 마음이...




전시된 산골 사람들’사진은 큰 쪽이 140cm쯤 되는 네 점을 액자 없이 벽에 붙였고,
정영신의 ‘장터 사람들’ 열 점은 다양한 크기의 액자라 이젤 위에 올렸다.
바람 불면 이젤이 넘어지기에 사진전 부스를 별도로 만들었는데, 손님 맞을 자리가 되어 주었다.




여지 것 우리 동네 일이면 아무 조건 없이 사진을 내 걸었는데,
이제부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경비를 안 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질 우려도 있지만,
있는 사진으로 대충 채우니 제대로 된 전시도 보여줄 수 없었다.




귤암리 인심이 야박하다며 타박하기도 했으나, 어쩔 수 없다.
공과 사는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 부스 하나 정도의 전시라면 평균 하루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
한 사람 전시라도 사흘이면 백오십만원을 받아야 했는데, 전시 작가에게 주는 식권 한 장 없었다.



좋아하는 자판기 커피마저 매번 천원 주고 사먹어야 했는데,
그것도 돈 받고 파는 사람이 이웃집 아낙이라, 내가 더 부끄러웠다.
참여 작가는 밥을 주기로 되어 있다지만, 구걸하는 것 같아 그냥 사 먹었다.
대개 찾아 주신 손님들이 밥과 술을 샀지만, 더러는 내가 대접해야 할 손님도 있었다.
두 사람이 나흘 동안 아무 일도 못한 채. 돈만 써야하는 자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밥값, 술값을 많이 내 주신 사진가 박병문, 이광수, 이정환씨께 감사드린다.

이정환씨는 제자 성유나씨와 함게 왔는데, 통풍으로 다리까지 절며 온 어려운 걸음이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오신 이광수교수는 내가 교주로 존경하는 분이라  송구하기 그지없었다.

동강할미꽃 축제에 온 것이 아니라, 그림바위마을에서 열리는 ‘산골 사람들’사진전을 보러 오셨지만,

가까운 지역민도 잘 찾지 않는 전시를 보기위해 멀리서 오셨으니, 더 고마웠다.




사실은 보름 전에 올 예정이었으나, 서로의 사정에 의해 전시가 끝나는 날 오게 된 것이다.

더욱이 아내와 함께 온다기에 더 기다려졌다.

저토록 기가 세고 거침없는 양반을 꼼짝 못하게 하는 분이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기를 제압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 한 수 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아내인 유재희씨를 만나보니 첫인상도 좋지만, 상대를 참 편안하게 했다.

가끔 의미 있는 말을 한마디씩 툭툭 던졌지만, 별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려 깊은 분 같았다.

너무 잘 어울리는 부부인 것 같았다.

이성적인 아내와 감성적인 남편의 차이나, 말 잘하고 하지 않는 차이처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두 분 모두 기가 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광수씨가 집에서는 기를 죽이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 가리왕산휴양림에 여장을 풀고 등산도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첫 날은 사진가 박병문씨와 함께 민물탕 잘하는 ‘짐포리식당’에서 한 잔하고,

그 이튿날은 사진가 이정환, 성유나씨와 함께 그림바위마을에서 열리는 ‘산골 사람들’사진전을 보러 갔다.

그림바위예술발전소 관장이며 화가인 김형구씨 내외가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전시를 보고 와서는 ‘국일관’에서 백숙을 안주로 또 한 잔했다.




이광수, 유재희씨 내외 분을 비롯하여  이정환, 성유나, 하재은씨는 부산과 서울에서 와 주셨고, 

태백에서 온 박병문씨와 정선 읍내의 신주호, 김수복, 최원희, 최성준, 김형구씨 등

많은 분들이 동강할미꽃 축제장에 들려 사진전을 축하해 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올 해로 열 두 번째 맞는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30일부터 4월1일까지

정선 귤암리 ‘동강생태체험전시관’에서 열렸다.
사실, 이 축제가 열린지는 오래되었지만, 주민들의 축제에 대한 몰이해로
상춘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맘 때면 동강할미꽃 찍으러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진인들 숫자 또한 적지 않아
그들을 염두에 둔 축제 기획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어린이 사생대회나 할미꽃사진전 등 간단한 행사들만 반복되는 

축제라기보다 동네잔치에 가까운 수준이다.




초창기에는 강변과 산길로 이어지는 동강할미 상여 길 연출, 섶 다리 재현,
조문호의 ‘신명’ 설치전 등 여러 가지 볼거리로 야심차게 추진하기도 했으나,
번거롭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 개인 사진전이나 부탁하면 걸어 주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민들과 읍내 있는 분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가능하면 축제 개막식은 봄나들이 겸 꼭 참석했다.




그러나 세월에 알려지며, 주말 상춘객이 늘어나자 그만 돈벌이에 맛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라야 동네에서 만들어 파는 음식이나
재배한 동강할미꽃 화분 파는 게 고작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그런데, 오랜만에 봄나들이 한 상춘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른 식당에서는 그냥 주는 좌판기 커피를 천원에 팔거나 음식이 비싼 거야
안 사먹으면 되지만, 목마르면 물은 마셔야 할 것 아닌가?



축제장 어디에도 생수대나 물 마실 곳을 마련해 두지 않은 채,
작은 생수 한 병을 천원에 판매한 것이다.
돈보다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장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물이나 커피를 비싸게 팔면 모든 음식이 바가지란 인상부터 주게 된다.
돈만 알지 장사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 동네 터줏대감 이야기로는 장사해 남은 돈으로 일한 사람들 바닷가 회 먹으러 가는 것이 고작이란다.
'정선군청'이나 '강원랜드'에서 후원하는 금액만도 충분한데, 그 지원금은 다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




축제가 열리는 귤암리가 어떤 곳인가?


산 높고 물 깊은 두메산골 귤암리가 인심 좋은 동네로 소문났으나,
동강 댐 백지화로 생활환경이 바뀌며 변하기 시작했다,
다들 새집 짓고, 집집마다 티브이 안테나가 들어서며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이제 인심 좋기는커녕, 야박하기 짝이 없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귤암리 만지골의 지하수 분쟁은 이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을 ‘신판 봉이 김선달’이란 소리까지 듣게 하는 이 분쟁 역시
이주민에 대한 원주민의 갑 질에 다름 아니다.
‘고래 싸움에 세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나까지 물 사용에 지장을 받고 있다.




옛날에는 낯선 사람이 귤암리를 찾으면 뭘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옥수수나 감자를 삶아 대접하는 등 인심 좋기로 소문난 동네였다.
깊은 산골이라 사람 만나기가 힘들 때라 반가워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마을 어귀에는 ‘인심 좋은 귤암리’란 표석이 세워져 있다.




내년 부터는 동강할미꽃축제가 새롭게 태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축제기획 자체를 재정비하고, 최소한의 방문객 편의는 제공되어야 한다.
제일 먼저 해결할 것은, 이곳은 버스가 하루에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산골이라,
축제기간 동안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까지 매 시간마다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라.
둘째, 축제장 서너 곳에 물을 마실 수 있는 음료대를 설치하라.
셋째, 동전 넣고 커피나 음료를 뽑을 수 있는 좌판기를 비치하라.




이런 기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동강할미꽃 축제의 미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못 오게 막을 작정이다.

아래 사진은 축제기간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모습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번 바이칼여행에서 가장 신바람 난 건, 칼호이저 야시장이었답니다.
나의 사진 적 관심사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정에도 없는, 버스 안에서 발견해 내렸지만,
그 짧은 30분이 나에게는 아주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하거던요.
그 외는 함께 떠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게 전부입니다.
마치 전속사진사처럼 찍었지만, 그게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칼호이저 야시장은 주말에만 서는 장터지만, 이르쿠츠크 사람들의 검소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는 골동야시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답니다.
심지어 입던 내복을 가져나오기도하고, 어린이는 자기가 갖고 놀던 장난감도 갖고 나와 팔았답니다.
돈으로 거래되는 시장의 속성이야 같지만, 우리의 옛 장터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모습이었습니다.

장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냄새지요. 

마지막 사진 넉 장은 리스트비앙카의 노천시장 풍경입니다.
드럼통 같은 아줌마가 외치는 ‘오물이~ 오물이~’란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오물’이란 이름의 어감은 별로지만, 바이칼호수에서 나오는 생선이름이지요.

사진,글 / 조문호














































 

함안 가야장

 

완주 삼례장

 

문산장

 

의성 금성장

 

예산 삽교장

 

김제 원평장

 

남양주 진접장

 

증평장 (정숙현/88)

 

무주장

 

순천 승주장

 

보성 벌교장

 

평창 대화장

 

양산 서창장

 

안동 재산장

 

양평 용문장

 

 

고성 거진장

 

연천 전곡장

 

울산 언양장

 

용인 백암장

 

포항 도구장

 

울산 언양장 (유귀선/75세)

 

의성 옥산장

 

임실 강진장

 

청양장

 

천안 병천아우네장

 

칠곡 동명장

 

화천장

 

포항 홍해장

 

김포 통진장

 

포항 구룡포장

 

홍성장

 

포항 기계장

 

화성 조암장

 

완도 노화장

 

암안 군북장

 

남원장(박경순/82)

 

합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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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12일  강원도 강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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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조장 / 권창수 / 80세

 

경주 건천장 / 한순남 / 80세

 

고흥 녹동장 / 박순아 / 80세

 

 

곡성장 / 전순례 /79세

 

광양 옥곡장 / 오미자 / 74세

 

 남원 인월장 / 정구식 / 63세

 

부산 노포장 / 박술련 / 70세

 

대산장 / 유묘연 / 65세

 

대천장 / 김점순 / 68세

 

성주장 / 조소연 / 80세

 

 

영암장 / 문 전 / 73세

 

예산장 / 장정환(68세) 방희열(65세)부부

 

 

진해 웅천장 / 이숙희 / 60세

 

월내장 / 김천숙 / 86세

 

의령장 / 박말남 / 83세

 

 제주 한림장 / 조대옥 /68세

 

제주장 / 박점례 / 82세

 

 

김해 진례장 / 안상환 / 56세

 

진천장 / 박동환 (74세) 이수남 (71세) 부부

 

차황장 / 이월순 / 81세

 

청도장 / 양귀분 / 80세

 

  청양장 / 임호남 / 62세

 

청원 부용장 / 김정자 / 78세

 

칠원장 / 김석곤 / 74세

 

태안장 / 정귀숙 / 65세

 

 

 

논산장 / 백필순 / 8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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