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기국서씨가 새로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올인 하고 있다.






75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기국서씨는 이듬해 창단된 ‘극단 76’ 대표를 맡아 온 전설적인 연극인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와 ‘아부의 왕’에서도 보여주었으나, 영화 ‘도둑들’의 인상 깊은 연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천재적인 연극연출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연출한 ‘관객모독’은 아직까지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 족' 등을 연출하여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새로운 작품에 몰입한다는 소식에, 지난 8일 오후6시 무렵 연습실이 있는 대학로를 찾았다.

좀 늦은 시간이라 다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는데,

연출을 맡은 기국서씨와 연극배우 정재진, 정인겸, 하성광씨가 함께 있었다.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 대학로 어느 건물 옥상으로 따라갔는데, 너무 시원하고 조용했다.
무대에 올릴 작품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원제가 ‘end game’인데,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종반전’이라는 느낌이 범상치 않았다.

뒤늦게 연출가인 박근형씨가 찾아 왔는데, 술자리 화제가 대마초로 옮겨 붙었다.






대마초로 피해 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지만, 정재진씨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잘 나가던 방송출연 다 끊겨 살아가기가 막막했다고 한다.

나 또한 감옥살이는 차지하고라도 같이 피운 친구들 대라고, 고문 당한 것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

세상에 친구간의 의를 끊으려는 이런 좆같은 법이 어디 있는가?

이젠 어쩔 수 없이 합법화 할 것인데, 죽을 때까지 손해배상 청구에 매진할 생각이다.






정재진씨는 한 때 대학로 윗 동네인 낙산동을 연극인 아지트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 죽도 밥도 아닌 말썽만 무성한 동네를 만들고 말았다는데,

어딜 가나 돈 냄새에 따라붙는 똥파리들이 문제다.





정재진씨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찌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기국서씨 덕에 좋은 분들과 즐겁게 취했는데, 9월에 선보일 연극이 벌써 기다려진다.






부디 대박 나길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통인 관우선생의 아지트인 ‘다리 밑’이 인사동 명물이 되어버렸다.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자리 잡은, 이 이름도 없는 대폿집은 탁자가 두 개뿐인 구멍가게다.
고향 같이 포근한 단골집으로, 관우선생이 ‘다리 밑’이란 거시기한 이름을 붙였다.






이 대폿집은 시원하게 얼려놓은 생맥주잔에 막걸리를 섞어 마시는 ‘막맥’이 자랑이지만,
감자전과 닭똥집 같은 싸고 맛있는 안주들이 많다.






전날 밤은 건축가 김동주씨와 화가 이목을, 편완식 기자가 ‘다리 밑’에서 논다고 꼬셨지만,
영양가 없는 핑계 대며 안 나갔다. 다 막맥 마시는데, 나 혼자 소주 빨기도 그렇지만,
이미 취한 사람은 사이클이 맞지 않아 편치 않아서다.
술 마시는데도 이 것 저 것 따지는 것이 많아 술꾼 자격 상실한지 이미 오래다.






난, 옛날부터 술에 약하다.
소주 반병이면 알딸딸하게 기분 좋고, 한 병 마시면 오바 한다.
술도 도수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량으로 취한다. 그래서 양 많은 막걸리가 쥐약이다.
맛이 가면 성희롱의 경계를 위험스럽게 넘나들기도 한다.
그 이튿 날 하루 종일 빌빌대며 후회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쯤은 그럴 일이 생긴다.






지난 5일은 통인에서 열린 배일동 명창 판소리가 끝나고, ‘상광루’에서 막걸리를 마신 후
이차로 ‘다리 밑’에 몰려갔다.
통인 관우선생 따라 황태인, 김규진, 배일동, 조상민, 민호기, 박영수, 최유정씨가 갔는데,
이미 다리 밑에는 강정호회장 일행이 자리 잡아, 밖에 앉아야 했다.





반 쯤 담긴 생맥주가 사람 수 대로 나왔는데,
제조 상궁 역활을 하는 관우선생이 막걸리를 타기 시작했다.
희석시키는 비율이 술맛을 결정한다는데, 난 통풍으로 맥주를 못 마시니
그 맛은 확인할 도리가 없다.





오로지 촌놈 술 소주만 마시는데, ‘상광루’에서 막걸리를 마셨으니, 이미 맛이 간 상태다.
엎질러 진 물이라 겁 없이 막걸리를 홀짝거린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테너 이동환씨가 나타나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술이 취해 쪽팔리는 줄도 모르고, 대 명창 들 앞에서 ‘봄날은 간다’를 짤아 댄 것이다.
바람새는 이빨로 뽑아내느라 욕도 봤지만, 좌우지간 술 취하면 간이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술만 취하면 가만 있지를 못한다. 

술꾼들 내려 찍는다며 계단 집에 올라갔는데, 헛걸음질로 디질 뻔했다.
죽는 거야 괜찮지만, 갑자기 떨어지면 술 마시던 양반들 얼마나 놀래겠노?






몸이 비실거려 더 이상 노닥거릴 수 없었다.
비상금을 털 생각으로 택시를 잡았는데, 배일동 명창이 불러 세웠다.
무슨 할 말이나 있는 줄 알았더니,
지갑 깊숙이 감춰 둔 비상금을 꺼내 택시비를 주는 것이다. 자기는 우짤라고...
이 양반 소리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인정도 죽이네.





낙원동에서 서울역까지 오천원이면 찍 쌀 건데, 열배나 되는 신사임당을 주니 욕심이 나부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제! 녹번동 가입시더” 햇붓다 아이가...
사실, 술 취해 동자동 4층까지 기어오르기 힘들어서다.






이틀 날은 천벌 받아 하루 종일 방바닥에서 빌빌거렸다.
“천지 씹신이여! 이제 그만 데려가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한마당이 열렸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절절한 마음에 다 함께 아파했고,
심청가에서는 심봉사 재회의 기쁨에 다들 눈물 흘렸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가객이 펼치는 감동의 무대였다.





쩌렁쩌렁한 배일동 명창의 소리는 바위를 두드리며 쏟아지는 폭포수 같았고,

하늘을 가르는 우렛소리 같았다.





여지 것 여러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지만, 이 같은 고음의 절창은 들어보지 못했다.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에 다들 넋을 놓은 채. 소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열리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지난 5일 오후5시부터 한 시간 동안 통인가게’ 5층에서 열렸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인사동 전통문화의 마지막 지존이다.

비록 공연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열리지만, 열릴 때마다 빈자리가 없다.

육성으로 듣기 아주 적절한 공간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함이 늘 아쉬울 뿐이다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와 심청가를 부른 배일동명창의 판소리에 조상민 고수가 북채를 잡았다.

그리고 찬조 출연한 이진용씨 대금과 서영민씨 아쟁도 한 몫 했다.

흘러내리는 듯 떠는 소리와 꺾는 소리로 이어진 그 애절한 시나위가 마음이 후볐다.



 


배일동명창이 7년 동안 지리산 계곡에 초막 지어놓고 폭포수 아래서 수련 할 무렵,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지며 득음한 소리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소리의 경지였다.

때로는 소름이 돋는 전율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소리 뿐 아니라 연기력도 출중하다.

극중 사연에 빠져들어 슬픔과 기쁨을 토해내며 몸짓하니, 관객 또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심 봉사가 눈 뜨는 마지막 대목은 감격 자체다. 그런 기쁨의 눈물을 흘려 본지가 언제던가?



 


심봉사의 애끓는 통한의 절규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이 얼마나 감격적이며 해학적인가.



 


판소리는 사설과 창, 무대행위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의 성격을 띤다.

서사적 구조의 사설은 문학 영역에 속하고, 창은 장단과 가락을 가지고 있어 음악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소리꾼의 몸짓이나 고수의 추임새 등은 연극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 세 가지가 어울려 감흥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소리를 잘 하는 대개의 명창들이 관객을 이해시키는 이론에 약하지만, 배일동 명창은 달랐다.

외국음악에 길들어 진 현대인들에게 우리음악의 우수성을 쉽게 이해시키는 탁월한 교수법을 지니고 있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그의 강의를 들었는데,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자신의 소리로 이해시켰다.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의 부재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통인가게주인 관우선생으로 부터 이 산 저 산재청이 있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관우선생이 이 단가를 유별나게 찾는 것은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한 모양이다.

 

그리고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해학의 풍경전에 참여한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상구, 김희진, 민경아, 박재갑, 이언정, 정승원, 홍승혜씨 등 소개한 중견작가 가운데 이력이 독특한 분이 계셨는데,

국립암센터 명예교수로 재임 중인 박재갑씨였다. 의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판화의 수준도 뛰어났다.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중 파계승마당을 선보인 이 전시는 721일까지 이어진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가게관우선생의 집무실이 있는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인사모회원으로는 통인가게 주인 김완규씨, 박일환 변호사, 화가 김근중씨가 자리했고,

이계선 통인 관장을 비롯하여 배일동 명창, 조상민 고수, 박재갑, 김규진, 황태인, 민호기, 박영수, 최유정씨 등

이름도 잘 모르는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차는 다리 ’에서 빨았는데, 사진이 많아 내일 소개하겠다.

 

사진, / 조문호




















































































 






지난 4일 강민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정영신씨와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문병 갔다.

병원 휴게실에는 달마선생 내외 분과 정승재교수, 서정란씨 등 여러 명의 문인들이 먼저 와 계셨다.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먼저 다녀가셨고, 맹문제교수도 오실 것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은지 궁금해 “선생님 병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상사병이라고 대답하셨다.

다들 웃기에 먼저가신 사모님이 그리워 생긴 우울증 쯤으로 가볍게 여겼는데,

선생님 몰래 전해준 서정란씨의 이야기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암이 곳곳에 전이되어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의사선생으로부터 처음 검사결과를 들었을 때는 선생님께서도 당황하셨으나,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여유롭게 웃으셨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오래 전 입원하셨을 때, 병의 위중함을 아셨으나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해 둔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혼자 감수하며 틈틈이 인사동에 나와 주변사람들을 걱정하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무슨 말로 위안 드려야 할지 막막했으나, 내일이면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긴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늦게 오실 분을 맞으려면 피곤하실 것 같아 병실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이제 인사동도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떠나야 할 길이지만, 불 꺼진 인사동을 생각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생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신 분은 없었다.

터줏대감이며 친구였던 심우성선생도 떠나시고, 이제 선생님까지 떠나신다면 누가 인사동을 지킬 것이란 말인가?






강민 선생의 시 ‘인사동 아리랑2’ 황혼 편을 다시 읽어보자.

“붐비는 인파 속에도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오늘도 인사동 걷기는 허전하다
추억처럼 불빛이 켜지고 있다
열이 오르며 목이 마르다
잃어버린 불모의 사랑이 허공을 맴 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종로 쪽 멀리 남산이 다가오고
차츰 어둠의 장막도 깔린다.
나 이제 또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리
그이의 아지트였던 찻집<보리수>도 없어졌다
진공의 거리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돌아가리
돌아가리
그런데 이 끝없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눈물의 의미와 그리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밤의 공동(空洞)이 두렵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절절한 선생님의 시에 눈물이 절로 난다.





인사동으로 돌아와 약속한 공윤희씨를 만났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병문안드리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메밀란’으로 갔다.
그 자리는 ‘산타페’가 있던 자리인데, 돌아가신 여운 화백의 아지트가 아니던가?






그리고 맞은 편 잡초만 무성한 ‘목인박물관’은 흑백현상소 ‘꽃나라’가 있던 자리다.
‘꽃나라’를 운영하던 신작가도 여운화백도 다 떠나버린 인사동이 더욱 낯설기만하다.






다행스럽게 찻집 ‘초당’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초당보살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늦게 나오고 일찍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가고, 나 또한 떠나가리라.



사진, 글 / 조문호



























달이 바뀌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인사동 나가는 일이다.
‘서울아트가이드’를 얻어와 한 달 동안의 인사동 전시일정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1일은 정선에서 죽도록 고생만하고 돌아와, 이틀 날 정오 무렵에야 인사동에 들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라아트’ 건물 전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었다.

매번 텅텅 비어있던 ‘아라아트’ 전시장에 모처럼 대형전시를 하나 유치했더라.






‘보헤미안 랩소디 퀸 월드투어’전이 7월7일부터 3개월 동안 열리는데, 

 ‘인터파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흥행전이라 관람객은 제법 몰릴 것 같았다.






김명성씨가 만든 ‘아라아트’가 중국자본에 넘어간 지가 몇 해가 되었건만,

그동안 7개 층의 대형 전시장에 전시 한 두 개가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는 전시장을 놀리지 않고 볼만한 초대전을 계속 유치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대관전에 목을 매니, 볼거리도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예술에 관심없는 장사꾼이 하는 일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두고 볼 일이다.






그 아래 있는 ‘H갤러리’의 쇼케이스에는 김정열씨의 산이 두 개 매달려 있었다.

일단, 지나치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인사동 큰길로 들어서니, 몰려 다니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여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향으로 꼽히는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곳곳에 늘린 전시장에 들려 작품 감상 하는 일은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관광객들의 예술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이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인사동을 알리는 홍보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로구청'이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나 다들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거리는 안내책자를 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로 부산하다.

더러 골목 식당가를 기웃거리는 여인네 동창 모임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남정네들의 동창 모임은 별로 없다는게 특징이다.

있어도 한 둘 술집에 모여 회포를 푸는게 고작인데, 주눅 들어 사는 사내들의 현실이다.






매장 부근으로 모여드는 비둘기 쫓느라 분주한 가게 주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훠이~ 훠이~ 인사동에 잡귀는 물러가라!”



사진, 글 / 조문호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살아가니, 하루가 편한 날이 없다.
옛날 같으면 고려장할 나이에 사진 찍다 두들겨 맞지를 않나,
주변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우환이 끝일 줄 모른다.


녹번동에서 개기는 지난 일요일,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심봉사 잔치처럼, 인사동 사람들 불러모아 풍류 자리 만든 김명성씨였다.

연신내 ’연서시장‘에서 소주 한 잔하자는 것이다.






‘인사동 백년을 걷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나갔더니, 응암동 사는 조해인씨도 와 있었다.
연서시장 ‘파주집’에서 세 사람이 둥지 튼 것이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조해인 시인이 술을 끊었단다.
건강 때문인지 무슨 결심인지 모르지만, 이제 호탕한 그의 구라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살까 걱정되더라.
잘 했다며 박수 쳐 주어야 할 일을 걱정부터하니, 나도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김명성씨는 인사동 잔치에 오백만원 쯤 들어갔다는데, 잘 했다 싶더라.
전국에서 몰려든 백 오십 명의 풍류객과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날이 이제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이 얻은 마음의 덕은 얄팍한 돈으로 계산되지 않을 것이다.





조해인씨가 별 이야기가 없으니, 김명성씨만 썰을 풀었다.
이 친구는 ‘아라아트’ 건물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며 열심히 살았다.
본래부터 고미술 수집 전문가였으나, 이젠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미쳐 있었다.

재기를 위해 아내가 어렵사리 돈을 마련해 왔다는데, 그 돈을 독립운동 사료 모우는 데 써 버린 것이다.
고미술도 마찬가지지만, 독립운동사도 정확히 모르고는 대들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독립 운동사를 파고들었던지, 모르는 게 없었다.






술 마시며 제일 분개한 일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조작된 사실이란다.
백년이 가까운 빛바랜 고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난, 내일 새벽에 정선 가는지라 더 마실 수 없었다.
소주 반병으로 끝내고, 먹다 남은 생선조림을 비닐에 담아 먼저 일어났다.


동자동을 들려 정선으로 출발했는데, 양평을 거치는 국도로 장장 네 시간을 달렸다.
팽창농협에서 비료까지 실고 갔는데, 기절초풍할 일이 생겨버렸다.
집에 들어 갈 열쇠를 두고 온 것이다.
항상 자동차 열쇠에 달려 있었는데, 정영신씨가 폐차시킨다며 분리한 걸 모르고 차만 끌고 온 것이다.






차에 실어 온 의자와 짐을 부려야 하지만,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즘 시골인심도 예전 같지 않아 좌물 통도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연장은 물론 장갑까지 집 안에 두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하루 머물지 않고 밤중에 돌아 갈 작정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했다.
한 달 동안 잘 자란 상추와 부추, 고추는 거둘 수 있었지만,
작물을 휘감은 칡넝쿨이나 잡초 뽑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장갑이 없어 맨손으로 뜯다 보니, 날카로운 풀에 배어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니기미! 약은커녕 그 흔한 일회용 밴드조차 없어 휴지를 칭칭 감아 칡넝쿨로 묶었다.
이 장마철에 그곳만 비가 피해 갔는지 작물은 혀를 날름거렸다.
바가지 하나로 떠나르며 물 주느라 생 똥을 싼 것이다.





시간이 없어 울 엄마 산소도 들리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시간 낭비나 고생은 차지하고, 오고 가며 쏟아 부은 기름 값이 아까워 미치겠더라.
수확한 것은 상추 한 바구닌데, 너무 비싼 상추라 목구멍에 넘어갈지 모르겠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나 더러, 강물에 묻힌 석양이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인간아~ 인간아~ 왜 사니?”
살고 싶어 사냐? 죽지 못해 산다.






저승길 이 되던, 천당 길 이 되던, 또 네 시간을 졸라 달렸다.
갈지자 졸음운전 깨우는 경적을 음악 삼아 기적적으로 살아왔다.

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7월호]







대한민국 전통 문화와 복합 예술의 중심지, 곳곳에 수십 년 이상 된 미술품 등 가게


[아주경제 : 이광효기자]

인사동에서 한 외국 여행객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앞에 놓인 종이에는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에서 왔어요. 여행 중이고 노래를 좋아합니다.

제가 여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이광효 기자]



지하철 3호선 ‘안국’ 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북인사 관광안내소’, 지하철 1·3호선 ‘종로3가’ 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남인사 관광안내소’에 도착한다. 


인사동에는 화방·화랑이 많다. [사진=이광효 기자]



‘종로2가’부터 관훈동 북쪽에 있는 ‘안국동 사거리’까지가 인사동 거리로 하루 3만∼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다.



인사동에는 공예품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사진=이광효 기자]



인사동은 북촌과 종로 사이로 조선시대에는 역관, 기술자, 예술가 등 양반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중인들이 주로 살던 지역이었다.

조선 초기부터 예술 관련 업종이 번성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미술의 중심지였다.



인사동에 있는 한 고미술품 가게에서 파는 고미술품들은 최소 100년이 넘은 것들이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잔도 있다.

여기서 파는 고미술품들 중엔 해외 반출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사진=이광효 기자]



1930년대에는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들이 들어섰고 1970년대에는 최초로 상업적 성격의 현대식 화랑이 개업했다. 이후 상설 전시 및 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늘었다. 1980년대에는 골동품, 고가구, 공예품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들이 속속 들어섰다.

◆신라서 만들어진 잔 파는 고미술품 가게도


인사동 '쌈지길 체험공방' [사진=이광효 기자]



인사동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오래된 미술 관련 상점들이 많고 1960년대부터 2대째 엄선된 한지만을 팔고 있는 한지 전문 매장도 있다.



인사동에 있는 개성만두 식당에서 '만두전골'이 끓고 있다. [사진=이광효 기자]



한 고미술품 가게에선 제작된 지 최소 100년이 넘은 고미술품들을 판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잔도 살 수 있다. 
다양한 공예품을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2004년 12월 18일 문을 연 ‘쌈지길’은 다양한 공예품 등을 살 수 있는 공예·디자인 전문 쇼핑몰이다.

쌈지길에는 도자, 섬유, 금속, 목공예 등의 공예숍과 젊은 작가·디자이너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숍이 있다. 마당에서는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열린다. 지하 1층 체험공방에서는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전 세계 무전 여행객들에게도 사랑 받는 여행지
 


'꿀타래'는 인사동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사진=이광효 기자]


인사동은 전 세계 무전 여행객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곳으로 외국 여행객이 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래된 맛집들도 많다. 개성만두 식당은 70년 넘게 3대째 운영되고 있다. 지금도 만두피만 제외하고 직접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다. 
인사동의 대표 길거리 음식은 ‘꿀타래’. 꿀타래는 왕과 귀한 손님에게 진상하던 궁중 다과로 꿀과 엿기름을 숙성해 만든다. 1만6000 가닥의 실은 장수와 건강, 행운과 소원성취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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