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자칭 ‘또라이’ 산악인 사진쟁이 안승일(68)은 (‘만인보’가 소개한 적이 있는) ‘또라이’ 산악인 글쟁이 박인식이 백두산 가자고 꼬드기는 통에 인천항에서 배를 탔다. 북한땅 삼지연으로 해서 장군봉에 가야지, 그까짓 중국 쪽으로 가는 게 무슨 백두산이냐고 투덜투덜대면서 난생처음으로 천문봉에 올라갔다.

그랬는데,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 순간 확 밀려드는 경외감으로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말았단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이 산’에서만 ‘저 산’을 제대로 보는 이치로, 한반도에서 보면 중국 장백산이고 중국 쪽에서 찍어야만 진정한 백두산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는 거다. 안승일은 이때부터 꼬박 20년 세월을 백두산에만 매달려서, 백두산 사진만 줄기차게 박았다.

아예 백두산 하늘 아래 첫동네 이도백하에 작업실을 차리고 1년 중 8개월 이상은 백두산을 헤매고 다녔다. 간첩질로 오해한 ‘변방참’(국경수비대 초소부대)에 체포된 일도 여러 번이다. 날씨도 좋았는데 그만큼 봐줬으면 얼른 찍고 갈 일이지, 왜 그리 오랫동안 국경을 어슬렁대느냐는 거였다. 나중에는 그 군인들과 도수 높은 중국술을 나눠마시며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백운봉에 두어달 텐트 치고 틀어박히고, 용문봉 무단 입산자 통제소에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석 달씩 얹혀 살기도 했다. 겨울철은 수은주가 영하 30~40도까지 꼬나박는 천지 주변 눈구덩이에서 “곰처럼” 동면했다. 눈보라 땜에 밖에 못 나가면 천막집에서 김치전 부치고, 눈 녹인 물로 커피 타 마시고, 멸치 육수 내서 칼국수도 해먹었다. 일출 하나 건지려고 서백두 청석봉 산마루에 눈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은 게 “100번에서 1000번 사이”란다. 한번은 30m 높이의 산불감시용 철탑에 올라갔다가 사진기를 떨어뜨려 박살이 났다. “내가 안 떨어졌으니 됐지 뭐.” 헬기를 빌려 타고 항공사진을 찍는 호사도 누렸다. 그게 다 지금은 10년지기, 20년지기가 된 한족 동무들 덕이란다.

 

그런 안승일 사진에는 백두산 장기체류자가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백두산은 기상변화가 워낙 심해 하늘이 허락하는 ‘진경의 순간’은 눈깜짝할 새 휙 사라져버린다. ‘그 순간에 딱 거기에 있기’가 바로 그의 사진 찍는 방법이다. 테크닉은 두 번째다. 그는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이 사진을 정말 찍은 건가. 어릴 적부터 왼쪽 다리를 살짝살짝 저는 안승일은 일찌감치 산에다 마음을 뺏겼다. 중학교 때는 사진에 취미 붙여 삼각산을 오르내렸다. 건국대 원예과 2학년 중퇴, 서라벌예대 사진과도 잠깐 다니다 말았다. 대신 틈만 나면 사진기와 등산장비를 걸머지고 입산했다. ‘옆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던 시절이었으니 가는 데마다 신고를 당해 경찰서에 끌려갔다.

결혼을 하고는 충무로에 스튜디오를 내고 광고사진을 찍어 돈을 아주 잘 벌었다. 어느 날 500만원이 든 묵직한 돈배낭을 메고 아버지께 갔다. 그때 경기 시흥 달동네, 20여㎡(6평)짜리 아버지 집이 100만원쯤 했다. 평생 철도원으로 산 아버지가 호통쳤다. “야 이놈아. 집을 늘릴 게 아니라 네 사진집을 만들어야지.” 첫번째 사진집 <山>이 그렇게 나왔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로는 산 밑에 방을 얻어 몇 년씩 작업하는 식으로 <삼각산> <한라산> <굴피집>을 냈다.

 

 

안승일은 체크무늬 남방셔츠에다 후줄근한 점퍼만 고집한다. 어머니 장례식도 검정 점퍼 하나 걸치고 치렀다. 1998년 부산에서 북한의 김용남과 함께 백두산 2인전을 열었다. 마침 부산에 들른 김대중 대통령이 전시장에 왔는데, 양복 입기 싫어서 서울로 내뺐단다. 평생에 딱 한 번 소위 정장차림이란 걸 해봤다. 2001년 평양에서 남북공동사진전을 열었을 때다. “김정일 형님 오신대서 악수하고 사인도 받으려고” 넥타이 매고 기다렸다. 딱 30분 동안. 전시회에 김정일은 안 왔다. 그의 산사진 열정과 함께 산악계와 사진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다.

안승일이 백두산에 바친 건 세월과 열정만이 아니다. 젊어서 광고사진 찍어 벌어둔 부동산까지 거의 모두 털어넣었다. 아직도 옛날 사진기에 필름 넣어 찍는 안승일 사진은 무쇠솥에 장작불로 갓 지은 밥과 같다고 박인식이 말해줬다. 가령 여느 사람이 때깔 고운 조모락지 승용차라면 그는 커다란 바윗돌을 한 차 가득 싣고 며칠이고 달릴 수 있는 대형트럭이라고도 했다.

 





안승일은 “감히 백두산의 영혼을 찍고자 했다. 더불어 백두산에 숨쉬는 민족혼도 담으려 했다”고 힘차게 말한다. 이번에 그 대단한 사진들 수만컷 중에서 추리고 추려낸 60점을 서울 인사동 한복판 아라아트센터에 내걸었다. 지난 20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예정으로 열고 있는 전시회 제목이 ‘불멸 또는 황홀’이다. 혼자서 3300여㎡(1000평)나 되는 5개층 9개 전시실을 모두 채웠다. 초대형 사진들이 많아서 안승일의 평생 산동무인 고령산악회 늙수그레한 회원들이 노련한 암벽등반 솜씨로 천장에 자일을 걸고 매달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덕분에 산행 때 걷는 위치에 따라 조망이 달라지듯, 중정이 뚫린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아주 특별한 백두산을 만날 수 있다. 산에 간다고 누구나 다 산을 보는 게 아니듯, 이토록 다각적이고 다양한 입체감,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백두산 사진은 여태껏 못 봤다. 아무리 백두산에 가봤자 이런 풍경 못 본다.



안승일은 민족의 조종산(祖宗山)인 백두산에서 마늘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곰에 더 가까워졌다(그의 별명이 백두산 곰이다). 그런 애니미즘 신앙을 가졌던 고대 사람 같달까. 전시회 개막식 날, 원래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백두’의 안승일이 사람들 앞에서 “이제 더 이상의 백두산 사진은 없다. 통일이 될 때까지 더는 백두산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재주가 아무리 좋단들 어느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해? 산에 구덩이 파고 먹고 자면서 사진 찍을, 그런 놈 없어!”

안승일은 백두산 사진작업이 통일을 위한, 통일 후의 민족화합에 초점을 두었다고 했다. 감상적 통일론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찍은 백두산 사진은 우리 모두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말해준다. 그러니 ‘통일대박’을 말씀하는 이, 거기 가서, 백두산을 봐야 한다. 안승일은 이번 전시가 끝나면 처음 산사진을 시작했던 삼각산을 찍겠단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에 전국각지에서 많은 지인들이 모여들었다. 

 

장엄한 백두산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취하지 않을소냐?

산에 취하고 인정에 취해 와인 몇 잔에 몸이 비틀거렸다.

 

이 날 만난 분들의 성함인데, 치매 증세인지 많은 분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송구스럽다.

작가 안승일씨를 비롯하여 이 전시를 기획한 소설가 박인식씨,'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 시인 민  영,

송  현, 백남이씨, 원로언론인 임재경씨와 경향신문 기자 김석종씨, 사진가 김생수, 전민조, 김보섭, 

김광수, 이순심, 곽명우, 정영신, 김가중, 김재성, 하상일, 고영준, 정태만, 김종신씨, 서양화가 김용태,

최석태, 권순철, 조경석씨, 도예가 김용문, 황예숙, 희가비씨, 산악연맹 이인정회장과  김종규이사장,

김영환의원, 박원순시장, 이  성구로구청장, 행위예술가 무세중, 무나미, 김경숙씨, 방송인 전유성씨,

정선의 '기림산방' 김종수씨, 무용평론가 이만주씨, 문학평론가 이정숙씨, 연극배우 이명희, 이재희씨,

소설가 임헌갑씨, 최혁배 변호사, 출판인 전사현, 이규상, 안미숙, 원춘호씨, 연극연출가 김혜련씨,

건축가 임태종씨, MBC PD 윤재문씨, 김두환씨의 장남 김경민씨, 기획사를 운영하는 이상철씨,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사업가 정기범, 권영진, 강선화, 박흥식, 공윤희씨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안승일씨의 백두산 전시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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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24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렸다.

전시장은 작품 감상하러 온 축하객들과 내빈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인식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대부분의 시간을 내빈들의 인사와 축사에 할애해야 했다.
시인 민 영선생을 비롯하여 송 현 시인, 산악연맹 이인정회장, 원로언론인 임재경선생, 김종규이사장,

행위예술가 무세중씨, 서양화가 김용태씨,‘아라아트’ 김명성대표, 방송인 전유성씨, 김영환의원,

박원순시장의 축사가 이어진 후 안승일씨의 인사말이 있었다.

 

"남들은 다들 고생했다고들 하지만 자신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산악사진가 안승일씨의 ‘불멸 또는 황홀’ 백두산사진전이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1층에서부터 지하4층까지의 넓은 공간을 대형 작품으로 가득 메운 전시는 마치 백두산에 오른 듯 장엄했다.

이십년 동안 백두산에 미쳐 살아 온 안승일씨가 이루어 낸 기적이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박인식씨의 말에 의하면 작가가 그동안 백두산에 미쳐 집을 두 채나 팔았다는데,

이번에는 일억을 들여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를 마련하였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분명 미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친 사람이 많아야 행복한 세상이 된다.

백두산의 정기가 오롯이 담긴 그의 작품들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실제 백두산에 올라가도 그토록 다양한 각도와 신비로운 순간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는 2월1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 안보면 분명 후회하게 된다.

 

 

 

 

 

 

 

 

 

 

 

 

 

 

 

 

 

 

 

 

 

 

지난 24일 한정식선생님께서 마련한 신년 오찬회가 인사동 ‘수연’에서 있었다.
오찬 모임에는 한정식선생님을 비롯하여 사진가 김생수, 전민조, 김보섭, 정영신, 이재준씨,

미술평론가 이영준씨, 눈빛출판사 대표 이규상씨 등 여덟 분이 참석해 다들 반가운 시간을 가졌다.
유일하게 한국사진작가협회에 소속된 김생수 선생으로부터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자문을 듣기도 하고

사진협회 돌아가는 사정도 들었다.  문제는 사진계를 대표한다는 “사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있었기에 대부분의 프로사진가들은 탈퇴해 “민사협”이란 단체를 창립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민사협'도 등을 돌려 그마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한정식선생님께서 프로 사진가들을 재규합하여 사진계를 리더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라고

김남진씨에게 부탁을 했다지만, 다들 자신의 작업이 바쁘다보니 그 일에 메 달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올 해는 꼭 프로 사진가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진가 단체가 만들어져 사진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

 

오찬회를 마친 후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안승일씨의 백두산 사진전에 들렸다.

 

 

 

 

 

 

 

 

 

 

 

 

 

 

 

 

 

 

 

 

 

 

 

 

 

 

 

 

 

 

 

 

 

 

 

 



16m 천지 사진 등 140여점… ‘불멸’展 개최 안승일 작가

정말로 백두산이 인사동에 옮겨져 있었다.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천지 물빛에 모습을 비치는 것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백두산을 다녀온 이들도 눈에 말간 천지를 담아 오기란 쉽지 않은 일. 

 


 ▲ 20년째 백두산만 찍어 온 사진작가 안승일씨가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백두산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에 전시된 천지 작품 앞에서 “통일의 길이 백두산 사랑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그런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의 가운데 뜰이 확 뚫린 5개 층 9개 전시실에 내걸린 백두산 사진들은 그 산을 다녀온 이들의 갈급증마저 해소할 만하다. 20년째 백두산 사진만 찍어 온 안승일(68)작가의 백두산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이 20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천지를 항공촬영한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 16m, 너비 4.5m나 되는 엄청난 대작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천지를 제각기 다른 높이에서 조망하는 맛이 이채롭다.

초대형 풍광 사진 60여점, 자생식물 사진 70여점, 백두산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 10여점이 내걸렸다. 안 작가는 지난 16일부터 작품들을 내거느라 밤을 지새우곤 했다. 워낙 대작들이어서 천장에 자일을 걸고 장비를 동원하느라 적잖은 비용이 들었다.

안 작가는 1년의 절반 이상을 백두산에서 지낸다.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음집을 지어 놓고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백두와 아침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백두산에 렌즈를 향하다 보니 절로 사랑에 빠졌고 통일의 길이 보였다고 했다. 웅걸한 천지를 내려다보는 순간, 한민족 정체성의 벼락 세례가 이뤄졌다고 했다.

안 작가는 “처음 백두산에 갔을 때만 해도 민족이니 그런 거 잘 몰랐다. 백두산은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민족사적 시공간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나게 한다”고 말한다. 이어 “한민족이면 피를 나눈 사이이니 통일의 길도, 대화의 길도 백두산 사랑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사진학과를 중퇴한 그는 10대 후반부터 하루도 산에 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다 1994년 백두산에 처음 다녀온 뒤 생의 절정 20년을 오롯이 바쳤다. 2007년 1월 백두산 용문봉에서 찍힌 그의 얼굴 사진을 보라. 곤두박질친 수은주를 형상하듯 그의 머리에 서리꽃이 피어 있다. 간첩으로 오인돼 중국 공안에 끌려갔는가 하면 죽을 고비도 서너 차례 넘겼다.

그런데도 “백두산에만 가면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런 사진들을 찍었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보다 ‘왜 찍었느냐’고 물어야 한다”며 “이 사진들을 보면 내가 그랬듯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일본 작가 이와하시 다카시, 1998년 북한 작가 김용남과 각각 ‘백두산 2인전’을 열었던 안 작가는 “나의 20년 백두산 사랑이 통일을 이끌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면서 “전국 순회 전시와 아울러 북녘에서도 이런 기획이 성사됐으면 하는 게 소박한 꿈”이라며 웃었다.

정식 개막식은 오는 24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산사진가 안승일님의 "불멸 또는 황홀" 전이
2014년 1월 20일부터 2월 18일까지 아라아트 1층부터 지하4층까지 열립니다.
소설가인 박인식씨의 기획으로 초대형 백두산 풍광사진등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백두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감격을 맛볼수 있는
한국 미술 전시 사상 유래가 없는 이벤트를 벌인다고 합니다.
개막식은 2014년 1월 24일(금요일) 5시에서 8시까지 입니다.
많이 참석하시어 山만한 사진으로, 山만큼 큰 감동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안승일 백두산 사진전이 제시하는 통일 노하우

                                                                                                                       

                                                                                박인식(소설가)

 통일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은 통일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는 통일은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분단 60년동안 북한 인민들은 3대에 걸친 김씨 왕조의 독재 정치에 세뇌되어 남쪽 한국인들과는 쉽사리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의식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제제의 통일은 경제 통일을 전제해야 하고 경제 통일은 정서 통일을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북한 왕조 권력의 붕괴로 인한 갑작스런 통일이 축복이 아니라 민족의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라도 정서 통일을 이끌어 낼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민족 동질성 회복이 가능할까?
안승일은 백두산 사랑에 그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남쪽과 북쪽에서 다 함께 “민족의 성산”으로 떠 받드는 백두산이라는 한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다. 백두산 앞에서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남과 북이 따로 없이 하나로 통일 되어 있는 것이다. (전시도록 20쪽과 21쪽을 보라 . 천지 속의 한반도는 이미 통일이다.)
한민족의 백두산 사랑은 거의 믿음에 가깝다.
배달겨레 누구든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는 순간, 이 땅의 사람들을 오천년 넘게 보살펴온 절대자의 눈길을 느끼고 하늘 목소리를 듣고 흐느끼게 된다.한민족 정체성의 벼락세례가 거기서 이뤄진다. 그 세례로 그는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하자면 민족사적 시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난다.
백두산은 애국가 속에서도 동해와 더불어 우리 민족을 보살펴 온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솟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백두산은 만주벌 지평선 위에 불멸로 솟아 났다.
천지 수평선 속으로는 물구나무 선채 황홀하다.
끝내 백두산은 한민족 역사에 불멸이다 .
통일의 그 날이 어서오기를 비는 배달겨레 영혼 속에 황홀하다.
와서 안승일의 백두산 사진을 보라. 백두산에서 무르익는 통일의 꿈이 얼마나 황홀한지.

산악 사진가 안승일은 1994년 처음 백두산을 만나 산으로 향한 자신의 운명과 마주쳤다. 그 운명 속에는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영상화 하여 칠천만 배달겨레의 통일 기원 제단에 바치자는 소명 의식이 용솟음 쳤다. 그렇게 하여 그는 생의 절정기 20년을 백두산 사진 작업에 송두리째 바쳐 오늘에 이른다.
수은주가 예사로 영하 삼사십도로 곤두 박는 백두산정 눈 구덩이에서 사진 작업 하느라 한 겨울 서너달 씩 버틴다는게 과연 가능한가 말이다. 그것도 20년 씩이나, 그건 신화 시대 곰이 아니고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 사이 간첩 질로 오해 받아 중국 공안에 체포 되는가 하면 죽을 고비를 서너 차례 맞았지만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민족사적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기적에 다름없는 그의 20년 예술혼에 감동받은 아라아트 센터의 김명성 대표는 전시 면적이 1000평에 달하는 5개층의 전시장을 선뜻 내 주었다. 그 덕에 지난 20년간 지속된 안승일의 예술혼이 얼마나 황홀한지를 확인케 되어 백두산에 직접 오른 것 이상으로 감동을 즐 수 있는 전시가 가능해 졌다. 실제 천지 물 속으로 백두산정의 16봉우리들이 제 얼굴을 비춰보는 맑은 날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못 된다. 백두산에 가서도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맛 볼 기회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제 백두 산행에서 보다 이 전시장 사진 작품들이 더욱 황홀한 감동을 선사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사진들로 안승일이 백두산에서 산 지난 20년사이 백두산 풍광이 가장 황홀했던 순간과 그 풍경속에서 언뜻 언뜻 내비치는 산의 순백한 영혼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들은 스케일 면에서도 그 불멸의 황홀을 담아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로 15m x 세로 2.3m, 가로 10m x 세로 5m의 작품이 있으며 나머지 50여점도 그 크기가 가로 4m X세로 1.5m이상의 규모다

아라아트 센터의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까지는 중정이 뚫린 건축구조여서 그 속에 전시되는 대형 작품을 시각을 바꿔가며 감상 할 수 있다. 산행 때 걷는 위치에 때라 조망이 달라지듯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아주 특별한 관람 체험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는 20년 집념으로 백두산을 아라아트 전시 공간으로 옮겨왔다.

신화시대의 백두산 곰은 백일동안 마늘만 먹은 끝에 웅녀로 변해 환웅을 배필로 맡아 여기서 단군을 낳았다.
통일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백두산 곰은 백두산을 배필로 맞아 이십년을 함께 산 끝에 여기 전시되는 사진들을 낳았다. 우리는 이 사진들로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민족혼의 영역이다”. 라고 선언하게 된다.
아울러 이 전시회는 정서적 통일 물꼬를 틀어 통일의 전제조건인 민족 동질성 회복에 자신감을 심게 될 것이다.
이 작품들을 보다 많은 국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이번 아라아트 전시회를 전국 순회 전시로 연결 시켜야 하며, 끝내 북녘 땅에서도 전시회가 열려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세대들은 통일 대해 시큰둥하다. 이런 세대에게 이번 전시로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있다면 그들도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뿐만 아니라 애국가를 부를 때 마다 떠올리게 되는 백두산의 숨결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백두산의 존재감에 보다 짙게 육화될 것 이다. 청소년 학생들에게 관람을 적극 권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통일 시대를 살아갈 주역들은 바로 그들이니까.

그는 20년동안 백두산만 찍었다. 자신의 사진에서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는 하늘 목소리가 울려 날 때 까지. 그래서 이 사진 작업에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안승일의 백두산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백두산을 다함께 오르내려보자.
이 순백의 영혼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도록 백두산으로 난 통일의 길을 함께 걷자.


아라아트 기획 전시팀 (02)733-1981
기획홍보담당 도서출판 숨은길
대표 전사현 010-5337-7999

 
통일의 아이콘 - 백두산만 20년 찍다


1994 - 2013년까지
산사진가 안승일
백두산 촬영 20년 결산 사진전

山만한 사진이 山만큼 큰 감동을 안긴다!

 

 

 

 

            위와 같은 초대형 백두산 사진 60여점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5개층 9개 전시실에 전시하여  
            백두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감격을 안기는  
                한국 미술 전시 사상 유래가 없는  
              이벤트를 벌인다 



주 최: 대한산악연맹 (회장: 이인정)
주 관: 아라아트센터 (대표: 김명성)

               도서출판 숨은길(대표 전사현)
        후 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장 유경선)

 

기 획: 박인식 (소설가)

전시기간: 2014년 1월 20일부터 2월 18일까지
개 막 식: 2014년 1월 24일(금요일) 5:00~8:00PM 
전시장소: 아라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26)

관람티켓: 일반: 5,000원, 학생.단체: 3000원
전시개요: 1층, 지하 1층~4층; 5개층 9개 전시실(3,300여m2)

▪ 초대형 백두산 풍광사진 60여점
▪ 백두산 자생식물 사진 70여점
▪ 백두산 서식 곤충 짝짓기 사진 10여점

전시문의: 아라아트 info@araart.co.kr 02)733-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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