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부터 경기도 일원의 장터를 찾아 다녔다.
대개 가까운 지역은 하루 촬영하고, 하루는 사진을 정리하는 식이라 힘들지는 않으나,
장이 너무 늦게 서 여러 장을 돌아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난장의 할머니들도 없는 장돌뱅이들 뿐이라 기록에 더 의미를 두어야 했다.
새해 들어 세 번째 나선 지난 6일 촬영지는 강원도 휴전선으로 코스를 바꾸었다.
고성 거진장에서부터 인제 서화장, 철원 와수장으로 향하는 이동 경로는 최전방이라 군부대와 군인들이 많았는데,
약간의 긴장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길가에는 눈들이 쌓여 있었으나 꼬불꼬불한 도로를 군인들이
깔끔하게 치워 놓아, 설경을 가로지르는 휴전선 드라이브가 꽤 괜찮았다.
간간히 펼쳐지는 이국적 낯선 풍경에 매료되기도 하고....
오전 여덟시 무렵, 거진장에 도착했으나 너무 일렀다. 겨우 서너 명의 장꾼들이 나와 전을 펴고 있을 뿐, 장옥은 텅 비어있었다.
눈이 오면 미끄러워 할머니들이 나오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날씨가 추워 장꾼들이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인접한 거진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진항에는 마침 고기잡이 배가 들어와 여러 가지 잡어들을 내려놓았는데, 게와 도치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생전 먹어 본 적도 보지도 못한 ‘도치’라는 생선은 복보다 좀 크게 생겼는데, 주로 탕으로 끊여먹거나 횟감으로 쓴다고 했다.
도치가 죽으면 먹을 수 없어, 대개 그 지역사람들만 즐겨 먹는 생선이라기에 군침은 돌았으나 참았다.
비릿한 냄새에 갈매기들이 날아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사들인 생선들을 고르고 옮기느라 정신없었다.
추운 겨울 새벽 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꿈틀거림, 생동감을 거진항에서 만난 것이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난로 가에는 장정들이 둘러앉아 시시껄렁한 잡담을 날리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생선들을 다듬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과 풍경, 사물까지도 정겨웠다.
행복감이 손에 쥐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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