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작성]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었더라면...

 

죽을 구덩이를 파기 전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옆에 서서 웃고 있는 군인의 가증스런 모습에 더 분노를 느낀다.

 

자신이 판 구덩이에 들어가 억울하게 죽어가는 부역자들

 

 

얼마 전  부역자들의 참혹한 학살 장면들이 담긴 눈빛출판사의 ‘한국전쟁’을 보며 그 끔찍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물며 짐승이라도 그렇게 죽일 수는 없을텐데,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는지 전쟁의 잔혹성에 온 몸을 떨어야 했다. 부역자들을 일렬로 기둥에 묶어 총살하는 장면은 더러 접한 적이 있으나 쉽게 사체들을 처리하기 위해 나란히 눕혀 총살하거나 그도 못해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 한 곳에 몰아넣어 총살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다. 더욱이 부역자란 죄목으로 억울하게 죽어 간 양민들에 대한 어떤 보상이나 명예회복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더 부끄러운 것은 이 책들이 세상에 빛을 본지가 어언 10여년이 되었는데도 여지껏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소설가 박 도씨가 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드나들며 발굴한 사진으로 “지울 수 없는 이미지”3권을 출판하였고, 2010년에는 ‘한국전쟁’이란 제호로 개정판을 냈는데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 숨어있는 전쟁사진들을 세상에 끌어 낸 박 도선생의 끈질긴 집념이나 눈빛출판사의 노력에 새삼 고마움과 경의를 표한다.

 

 나에게도 한국전쟁하면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이 있었다. 북한군이 나의 고향인 영산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낙동강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 복판이 되어 버렸다. 남산에는 유엔군들이 진을 치고 북쪽에 있는 영축산에는 북한군들이 포진하여 서로 포격을 해대니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며칠후 전쟁 포화가 잠잠해 질 즈음 어머니는 나를 업고 총총걸음으로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유엔군들이 진을 친 남산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피를 흘리고 쓰러진 군인이 “물, 물, 물!”이라 부르짖으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선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하였다. 곳 곳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부상병들의 참혹한 모습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데, 혹시 '한국전쟁'사진집에 그 때의 기록도 있을까 하여 살펴보기도 했다. 

 

오랜기간 신문과 TV는 물론,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사진잡지 한 권 사 보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러니 세상물정도 어둡고, 사진판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른다. 얼마 전에는 핸드폰마저 내버려 가까운 사람들의 연락마저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아날로그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해 가족에게조차 연락할 수 없었던 일이 생긴 후로 아내의 강압으로 다시 휴대폰을 개통하게 되었고, ‘눈빛서원전’의 충격으로 사진잡지도 한 권 쯤은 구독할 작정이다.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있었던 ‘눈빛서원전’은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임을 확인시켜 준 전시였다. ‘한국전쟁’을 위시하여 청계천변 판자촌들을 기록한 ‘노무라 리포트’, ‘일제강점기’, ‘신동삼 컬렉션’, 등 보석 같이 귀중한 사진집들이 수두룩하건만 전혀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시를 시작한 첫 날은 지방촬영으로 너무 늦게 참석하여 책들을 볼 시간이 없었고, 두 번째 초대한 날은 오랜만에 만난 사우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볼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전시가 끝나기 전 날 다시 들려 전시된 책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좋은 사진집들이 너무 많아 무슨 책부터 살지 망설이기도 했으나, 일단은 눈빛의 엄청난 업적에 놀랐다.

 

 전시된 사진집들을 고르고 고르다 눈빛 아카이브에서 몇 권 골라왔는데, 그 사진들을 반복해서 보느라 주말을 온전히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데 소진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교훈과 채찍이 되어 준 보람된 시간이었다.

 



-눈빛 도서전에서 구입했던 사진집들-

다음 기회에 구입하고 싶은 책은 '일제강점기', '개화기의 대한제국', '신동삼 컬렉션'등이다.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엮은 맥아더.클라크.리지웨이 보고서-

[총768면 / 가격 29.000원]

 

-'한국전쟁1'에 실린 수 많은 사진 중의 한 장-

 

진주 주민들이 북한군이 학살한 가족의 시신을 찾고 있다.

당시 무고한 사람 수 백명이 퇴각하던 공산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박도씨가 '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서 찾아 내 출판한 '지울 수 없는 이미지'1-3권을 모은 사진집이다.

[총768면 / 가격 29.000원]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억울하게 죽어 간 양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 사진들을 발굴한 소설가 박 도씨는 이 책 외에도 '지울 수 없는 이미지','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개화기 대한제국','일제강점기',

등을 눈빛출판사에서 출판하였고, 지금은 '미군정기'를 집필 중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계속해서 펴 낼 것이라고 한다.

 

부역자들의 시신을 일일이 점검하면서 확인사살하는 헌병들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노무라 모토유키가 68년부터 3년동안 청계천변 움막집들을 기록한 사진집-

[총528면 / 가격 29,000원]

 

이 사진집을 보며 놀란 것은 움막집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의 생활상을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 무렵의 청계천사진으로 구와바라 시세이, 홍순태 선생께서 기록한 청계3가에서 6가 사이의 판자집들은 보았으나,

답십리 마장동, 사근동, 용답동에 걸쳐 널려 있었던 움막집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가도 아닌 일본인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가 73년부터 76년까지 기록해 두어 그 실상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사진가들은 그 당시 무엇을 찍고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사진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청계천변 개미촌 움막집 소녀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개미촌 움막집의 사람들 / 청계천변 제방을 파고 판재를 얼기설기 엮어 지어진

이 움막촌은 판자촌보다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 일명 '개미촌'으로 불렀다.

1976년 판자촌 철거와 함께 정비되어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서울 변두리나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

 

 

1967년부터 79년까지, 제3공화국의 유신시절의 보도사진들을 집대성한 사진집이다.

[총500면 / 가격 29,000원]

 

한국사진기자협회에서 매년 발행해 온 보도사진년감이 정선의 우리집 서재에 모두 꽂혀 있지만,  

그 많은 책들을 뒤져 필요한 자료 찾기도 쉽지 않고, 분량이 너무 많아 쉽게 손이 가지 않기에 구입했다. .

13년 동안의 중요한 기록들만 집대성하여 한 권으로 묶은 이 책은 살아가는데 반면교사가 될만한 중요한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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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파동의 소용돌이가 학원으로 번져 동국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

500여명이 교문 밖으로 나오다 기동경찰대의 제지와 헬리곱터의 권유로 일단 해산됐으나

일부는 장충단공원 쪽으로 빠져 투석전을 벌이다 완전포위되어 포로아닌 포로가 되었다. [이창성기자]

 

겨울마다 찾아오는 연탄전쟁은 서민들의 생활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눈이 오는 추운 날 서민들이 리어카로 연탄을 실어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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