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미 작가가 6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전정미 개인전 박사청구전을 연다. ‘생명나무’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전정미 작가의 박사학위 청구전이다.

 

전정미 작가가 박사학위 청구전에서 보여주는 <생명나무, Tree of Life> 연작은 연원으로 말해 십여 년을 헤아린다. 이번 청구전은 종래의 흔적과 시간을 중심으로 제작했던 단순 구조를 밀집과 중첩에 기초한 스펙타클양식을 시도한다.

 

이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는 물론이거니와 ‘생명나무’라는 테제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신선한 업커런트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정미의 ‘생명나무’는 엄격히 말해, ‘상징’(symbol)과 ‘알레고리’(allegory, 寓喩)의 접점을 겨냥한다. 상징이라는 측면에서는 생명의 신비를 ‘나무’라는 기표를 빌리되 기표로서 나무가 발하는 기의의 일원적 통일성을 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주의의 추상 양식을 일컬어 ‘상징적’이라 할 때가 그렇다. ‘여러 가지 기표를 모아서’(sym- ) ‘하나의 뜻을 발하게 한다’(ballein)는 상징의 어원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알레고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작가는 복잡한 기표들의 다원적 분립(分立, segregation)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그녀가 기표들의 유사와 통일이 아니라 ‘하나를 말하면서’(gorein) ‘또다른 하나’(alle-)를 말하는 이중 삼중의 기의를 시도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탈근대기’(postmodern era)의 문화적 복합상을 ‘알레고리’라 칭하는 논리와 상통한다. 이 맥락에서, 그녀의 이전 <생명나무>가 순수한 상징을 구사했다면, 근자의 그것은 구조적인 면에서 알레고리를 특성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회갈색을 바탕에 두고 나무와 그 열매라는 동종의 것들을 다루었던 데 반해, 이번 청구전의 그것들은 보색 컬러의 무수한 파편들을 배경에 깔고 생명의 열매 뿐 아니라 열매와는 전혀 다른, 이를테면 품목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이종(異種)의 것들마저 동시에 등장시키는 작위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인간과 그가 갖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부품으로 조합하는 <생명나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보색대비의 컬러를 드로잉의 라인으로 삼아 이미지를 그리는 한편 조각들로 파편화해서 가까스로 형상을 환기하는 환영법을 구사한다. 여기에는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 기술인 ‘아트웍’(art work)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대중이미지를 상업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미지들은 화려한 팝 회화의 진상을 과시할 뿐 아니라 이른 바 원본을 상실한 시뮬라크르들이 부유(浮游) 하는 스펙타클을 부각시킨다. 아트웍에 의해 이미지의 우연성이 증폭되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전체는 라캉의 상징계를 떠나 상상계(imaginary world)에서나 가능한 원초의 생동감을 분출시킨다.

 

전정미의 근작 <생명나무>는 이렇게 해서 해묵은 기독교 상징을 등장시켜 이를 전적으로 그 자신의 것으로 ‘전유’(專有, appropriation)한다.

 

그럼으로써 그녀의 생명나무는 “대지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나무요” “우주의 강건한 받침이자 사람이 사는 온 땅의 버팀목이며 우주를 엮는 고리로서, 인간의 온갖 잡동사니를 그 안에 품는 세계목”(미르치아 엘리아데)에 대한 신앙고백에 머므르지 않고 이를 뛰어넘는다. 아니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의 상징적 팝 아트의 한 장(章)을 열고자 한다. 상징형식을 이용한 팝 아트의 시도는 작가가 ‘세계목’(world tree)을 빌려 이 시대의 스펙타클을 열기위해 ‘온갖 잡동사니’라고 하는, 서로 연대가 불가능한 이미지의 파편들을 하나의 상징 집단 안에 귀속시키는, 이른 바 ‘캐니벌라이징’(cannibalizing)을 빌림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징 안에서 상징을 알레고리화하는(allegorizing) 다중상징화(multiple symbolizing)를 실시해야 한다. 이는 분명히 말해, 우리 시대의 ‘상징 팝’(symbol pop)의 가능성을 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전정미가 그 자신의 박사학위 청구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종래의 자신의 상징 기표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한다.

 

작가는 이렇게 해서 다룬 결과를 조르쥬 바타이유의 용어를 빌려 ‘비정형의 예술’ 또는 ‘이중예술’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서는 디지털 변형이 기호의 고정 기표를 끊임없이 전복하고 기표체계를 뒤흔듦으로써 가능하다는 걸 자임한다.

 

기존의 미적 카논을 뛰어 넘어 메타미학(meta-aesthetics)의 가능성을 말하고 또 강조한다. 작가의 메타미학은 궁극적으로 지난 십여 년간 스스로 일구어온 자신의 상징체계를 해체하는 데서 시작했다. 지난 날의 경직된 서사구조의 기표들을 유동하는 기표로 전환함으로써, 확정적인 기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부동하는 이미지들을 몰핑(morphing)함으로써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기표들의 교환과 대체를 시도하고 그럼으로써 고정된 의미계(fixed semantic system)로서의 생명나무를 부동(浮動, floating)의 생명나무로 전치시켰다.

 

이번 청구전은 그 하나의 시범적 케이스를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상징체계를 알레고리화함으로써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해체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다중 상징계의 스펙타클 양식으로서 ‘생명나무’를 그려볼 수 있다는 걸 입증한다.

 

이코노믹리뷰 / 허재영기자

 

지난 27일 아침, 서양화가 문영태씨로 부터 전시회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연락이기도 하지만, 내일 전시가 끝난다고 해서 더 당황스러웠다.

예정된 일정을 바꾸어, 네비의 안내를 받아가며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가다 북한을 눈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마을에 멈춰 섰다.

문영태, 장재순씨 부부가 사는 ‘민예사랑’은 정말 기막힌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쪽 물 건너  있는 산들이 북한의 개풍군이라는 말에
"오늘 술 한 잔 먹고 넘어 가야겠다"며 흰소리까지 해댔다.

그런데 위치도 위치지만 고관대작의 저택인지 미술관인지 살림집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되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걸린 그림들이 문형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서양화가 최선호씨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내가 잘 못 알고 온게다.

문영태씨는 1990년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그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물로 ‘분단풍경’(눈빛출판사)이란 사진집을 펴 내, 통일운동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화가인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었기에 이번이 기회다 싶었는데, 허탕 친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으나, 어디 숨겼는지 작업실은커녕 그의 작품 한 점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서양화가 최선호씨와 도예가 변승훈씨의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특별 초대된 안톤 바라노프의 클래식 기타연주와 성악가 김재연씨의 청량한 소리에

매료되어,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년 오월에 열릴 전시에는 문영태씨의 숨겨 논 작품들이 걸리길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사진,글 / 조문호

 

 

 

 

 

 

 

 

 

 

 

 

 

 

 

 

 

 

 

 

 

 

 

 

 

 

 

 

 

 

 

 

 

 

 

 

 

 




홍석창展 / HONGSUKCHANG / 洪石蒼 / painting

2015_0520 ▶ 2015_0616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34.5×46cm_2010

 

 

초대일시 / 2015_0520_수요일_06:00pm

 

 

갤러리 H 개관기념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10

Tel. +82.2.735.3367

 

졸박한 심미, 그 천진한 자유로움의 세계 ● 동양회화의 전통은 결국 문인화로 귀결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형식으로서의 문인화가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문인화이다. 주지하듯이 문인화는 품격과 격조의 그윽한 정신세계이다. 기능의 숙련에 앞서 학문과 교양을 강조하고, 형상의 표현은 그 속에 사상과 감정이 내재되어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형상을 통해 전해지는 조형의 시각적 자극보다 이를 통해 읽혀지는 의미의 요체를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문인화이다. 동양회화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사의(寫意)가 바로 그것이며, 독화(讀畫)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특질들에 대한 해설에 다름 아닌 것이다.

 

홍석창_행복_화선지에 채묵_46×34.5cm_2011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35×46cm_2014
 

주지하듯이 작가 홍석창은 문인화로 평생을 일관하였다. 특유의 문기(文氣)와 분방한 화면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것이었다. 그의 화면은 언제나 천진한 여유로움과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여실하였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단련된 서예에서 비롯된 운필에 대한 장악력과 수묵, 혹은 문인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일탈과 파격은 그의 작품세계를 개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일 것이다. 그것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고 예(藝)에 노니는 것이다. 파격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추구하고, 일탈을 통해 그 단서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석창의 예술세계라 할 것이다. 그에게 지필묵은 자신이 속한 시공과 소통하는 효과적인 매개였으며, 자유롭고 거침없는 필선과 수묵은 바로 그 호흡을 반영하는 진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필은 구애됨이 없으며, 그의 수묵은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문인화라는 동양회화 예술의 정수이자 전통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이자 정신이었다라고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35×46cm_2014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49×75cm_2011

 

 

한 작가의 예술세계는 그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속한 시공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석창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라는 민감한 접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전통에 대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그 요체에 육박하고, 과감한 실험을 통해 현대를 마주하였다. 부단한 탈각의 과정을 거쳐 그가 실천한 것은 바로 시대정신의 발현이었다. 이는 그의 예술 생애에 몇 차례에 걸친 기억할만한 변화를 통해 기록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화라는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수묵의 현대화 과정이었다. 그것은 현대라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전통을 심화하는 것이었으며, 법칙과 규율에서 벗어나 문인화와 수묵 본연의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홍석창_악귀를 쫒는 호랑이_화선지에 채묵_45.5×54cm_2012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24×35.5cm_2013
 

격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며, 일탈의 분방함을 만끽하지만 어지럽지 않음은 그의 작업이 지니는 장점이다. 이는 전통에 대한 오랜 학습과 견고한 이해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일관한 작업에의 지향과 그것에 대한 믿음은 근작에 들어 더욱 극명하게 발현되고 있다. 그의 신작들은 화려하고 현란하다. 거침없는 운필과 자유자재한 재료의 사용, 그리고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는 일탈과 파격의 화면은 어쩌면 그가 평생을 통해 일궈온 예술 세계의 총체일 것이다. 이제 그에게 예술은 호흡이며 신명이라 느껴진다. 흐드러진 원색들은 거침이 없으며, 일상의 소소함까지 스스럼없이 화면에 옮겨 온 듯 분방한 조형은 기성의 가치로 규정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한국화라는 틀을 깨고 문인화라는 고정된 인식을 타파함으로써 스스로 비상할 수 있는 시공을 열고 있는 것이다. 유법(有法)에서 무법(無法)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다시 이루어지는 유법(有法)의 변증적 과정을 상기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의 법을 확인하고 이를 과감하고 거침없이 펼쳐 보이는 것이다.

 

홍석창_산산산_화선지에 채묵_38×29cm_1990

 

홍석창_별꽃_화선지에 채묵_45×36cm_2012
 

천진함은 그의 신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가치이다. 마치 유희와도 같은 그의 화면은 거리낌 없는 표현으로 가득하다. 법칙이나 규율에 앞서 본능적이고 즉발적인 그의 행위는 고스란히 화면에 담겨있다. 그것은 질박하고 소탈하며 거칠고 원색적인 졸박(拙朴)의 심미이다. 이에 이르면 온갖 상념에서 벗어나 오로지 화면에만 몰입하는 해의반박(解衣槃礴)의 고사가 절로 연상된다. 더불어 그가 전통에 대한 오랜 학습과 수련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상기한다면, 이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을 떠올리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혀지게 마련이고, 뜻이 통하면 말은 필요 없어진다. 그에게 전통은 통발이었으며, 물고기는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 그가 전하고 싶었던 뜻은 본질을 관조하는 질박함이었으며, 한국화, 문인화, 수묵 등은 이를 해설하기 위한 말과 같은 것이었다라고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천진함과 졸박함은 단순히 근작에 나타나는 조형의 시각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일관하며 궁구해 온 동양회화의 요체이자 문인화의 정신이며 한국화의 본질인 것이다. ■ 김상철

 

 

 

Vol.20150520i | 홍석창展 / HONGSUKCHANG / 洪石蒼 / painting

 

 


땅에 연애걸다

박문종展 / PARKMUNJONG / 朴文鐘 / painting
2015_0513 ▶ 2015_0527

 

 

박문종_인물_종이, 골판지에 아크릴채색, 흙_105×85cm_2014

 

퍼포먼스넋-건지기2 / 2015_0513_수요일_07:00pm_갤러리 그림손  

참깨·들깨 / 2015_0522_금요일_07:00pm_목포문화예술회관

 

 

 

2015_0513 ▶ 2015_0519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2015_0522 ▶ 2015_0527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목포문화예술회관

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02(용해동 924-1번지)

특별전시실,1전시실

Tel. +82.61.270.8484

art.mokpo.go.kr

 

 

화가농부 박문종의 일과 놀이 ● 박문종은 왜 얼굴에 무수한 점찍기 혹은 점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당신과 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그건 수많은 점이 수많은 방식으로 찍힐 수 있는 것처럼 고정되지 않은 것이고 막연한 것이다. 박문종이 점을 찍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그려내려는 것도 아니고 특정인의 특정한 표정을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다. 박문종의 얼굴들은 작품을 보는 관객이 표정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어느 순간 표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곧 작품이 읽혀지는 순간이고 바로 그 때 작업을 멈추는 것이다. 관객에게도 그렇고 작가에게도 그렇다. 그 때까지는 불특정하고 우연적인 점들의 집적인데 어느 순간 크고 작고 불균등한 형태의 점들 혹은 얼룩과 틈들의 집적과 중첩 사이에서 얼굴이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읽어내고 관객도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작업의 묘미이다.

 

박문종_땅_종이에 흙_146×146cm_2014
 
 

"찌르기를 하다보면 수많은 망점이 생기게 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하던 수화선생의 점 같기도 하고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수장되고만 원혼 같기도 하고 이러한 물음은 살면서 누군가와 교감하는 수없는 증표와도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점찍기가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많은 점들 속에서 우리 눈은 그 와중에 눈, 코. 입 특정 부위 몇 군데를 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얼굴 특징이 잡히기도 하는데 아는 얼굴일수도 모르는 얼굴일수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찌르기 행위 속에는 주술적인 면도 있어(민간신앙에서 두통환자를 위해 사람형상을 땅에 그리고 머리에 낫을 꼽아 두는 행위) 자연스레 수반되는 감정이입이 발생한다. 텔레비전 사극에서와 같이 저주의 수단으로 초상이나 제웅을 만들어 놓고 바늘 찌르기를 한다할지 섬뜩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한밤중의 점찍기를 (날카로운 꼬챙이를 이용, 임팩트 있는 흔적이 필요하다) 할 때는 무섬증이 들기도 한다." (박문종) ● 박문종 자신의 말이다. 무섬증이나 섬뜩함 혹은 이미지의 주술성의 문제는 박문종의「얼굴」연작의 특징과 그 의미를 얘기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라고 본다. 또한 그것은 그의 이「얼굴」연작이 바로 이런 측면이 맞닿아 있는 미술의 계(界) 이를테면 아르 브뤼(Art Brut/ 원생미술)나, '대지의 마술사'계열의 비서구권 원생예술,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이브-알랭 부와의 『비정형:사용자 안내서』에 표명된) '비정형 미학'의 세계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연관해서 팽목항이나 해남에서 이미 많이 하고 있는 '혼 건지기 굿'과의 연결 등 여러 흥미로운 방향의 조망과 탐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바로 이 경계의 탐색이야말로 그의 예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문종_흙장난_종이판에 아크릴채색, 흙_215×147cm_2014
 
 

전반적으로 박문종 작품은 구체성이 없고 비정형이고 비형상이고 모호하다. 형태 이전의 미학에 더 가깝다. 반죽 덩어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비정형의 반죽. 따스하지만 않다. 서늘함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 속에서 웃음소리까지가 선명한 옛 마을 사람들을 호명해낸 것 같은 느낌. 수북사람만이 아니라 구례랄지, 해남이랄지, 아니 꼭 전라도만이 아닌 함경도 무산이랄지, 경상도 청도 사람, 조선팔도 사람 중에 흙에서 살다 흙에 묻힌 토종 조선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온 느낌이다. 노동 육체 생산 죽음 곧 삶과 죽음이 다 있다. 인생이 있다. ● 박문종의 작업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소비로서의 그림이 아니다. 소비로서의 행위도 아니다. 농사가 생산이라고 하듯이 나락 알곡 같은 것이고, 생산 행위로서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미술이다. 자연은 사람을 소비하지 않는다. 사람을 북돋아 준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고 또 그 힘이다.

 

박문종_땅-대지_종이판에 아크릴채색, 흙_210×290cm_2015

 

 

 

박문종의 세계에게는 일과 놀이가 쌍두마차처럼 그의 몸속에서 함께 간다. 마치 풍물이 농사와 함께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작과정 자체가 일이자 놀이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 제작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 생산하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리고 그 결과물은 감상자의 감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의 작업의 이런 특성은 그의 성정과 아주 자연스럽게 합치된다. 그것이 박문종의 작업이고 삶의 태도이고 또한 그의 성정이다. ● 박문종을 2000년대 버전의 민중화가라 할 수 있을까. 몸을 낮추면서 자연과 민중과 장터 속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버전의 민중화가 말이다. 자연과 민초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 이물감 없이. 가없이 부드럽게. 더없이 지극하게. 땅에 연애 걸듯이. 박문종의 작품들은 작가가 땅에서 일하듯이, 놀이하듯이 한 오롯한 사랑의 결과물들이다. (한국현대미술선027 박문종에서 발췌) ■ 성완경

 

 

Vol.20150512h | 박문종展 / PARKMUNJONG / 朴文鐘 / painting

 

 


채색 드로잉: 비정형의 아름다움


 

남관展 / NAMKWAN / 南寬 / drawing.painting
2015_0421 ▶ 2015_0519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23×13cm_1978
 

초대일시 / 2015_0421_화요일_06:00pm

 

갤러리 H 개관기념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10

Tel. +82.2.335.3367~8

 

2015년 4월 홍대 총동문회 갤러리 H의 개관 기념전으로 열리는 남관 선생님 전시는 앵포르멜 추상 양식의 수채와 수묵 드로잉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선생님의 채색 드로잉 특징은 유화처럼 물성이 강조되는 마티에르(물감의 두께) 효과보다 자유로운 선묘와 투명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특히 작은 사각의 화면에는 우연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생명력 있는 유기적이며 독립된 형태들로 선명한 색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60여점의 드로잉은 1960년 이후 주목되었던 무의식에 의한 비정형informel 추상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선생님의 대표적 채색 드로잉 작품들이다.

남관 무제 종이에 수채 25×17cm 1978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19×27cm
 

전시 서문을 쓰는 필자와 남관 선생님과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로 1970년대 초반 홍익대 학부 실기실에서이다. 말씀이 적었던 선생님은 작업하는 우리 모습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시곤 하였다. 누구보다 추상의 이론적 체계와 작업의 기본을 강조하시었던 선생님은 진정한 교육자이었으며, 추상미술의 도입을 통한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존경스런 분이었다. 선생님 말씀 중에 우리에게 왜 추상화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해답을 요구하셨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으며, 열심히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회화의 이론적 연구의 필요성이나 추상의 다양한 표현 방법의 중요성에 관해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시고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드로잉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 석고 소묘에 친근하였던 우리에게 드로잉은 낯선 작업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겁도 없이 추상미술의 모험에 뛰어든 우리에게 소묘보다 드로잉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하셨다. 특히 드로잉은 습작이 아니며, 소묘와 달리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종종 선생님은 비정형의 자유로운 미적 표현으로 색채 드로잉을 직접 보여주셨다.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47×32cm_1990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33×47cm_1990
 

이번 남관 선생님의 드로잉 전시는 무채색의 흑백 작품들과 다양한 색채의 수채 드로잉 작품들이다. 선생님의 대부분 채색 드로잉은 밝은 것이 특징인데, 이번 전시에는 어둡거나 불투명에 가까운 작업도 보인다. 대부분은 수묵과 수채화가 갖는 밝고 투명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무채색 속에 선명한 빛줄기처럼 강한 붓터치가 보이는 드로잉 작품들이다. 지난날 우리들 실기실에서 선생님은 무채색이나 어둡게 혼합된 중간색보다 용기를 갖고 순수의 원색으로 화려한 색채 실험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선생님의 채색 드로잉처럼 색채의 투명성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처럼 생각된다.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46×76cm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45×57cm
 

또한 덕수궁 돌담길을 예로 들면서 비정형 작업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돌담에 낀 푸른 이끼들, 그 속의 어떤 형상을 흉내 내거나 묘사하기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돌담의 균열이나 오래된 이끼의 느낌을 물감의 두께인 마티에르를 통해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을 담는 상상력의 작업이 앵포르멜, 즉 비정형informel의 추상화라는 것이다. 앵포르멜은 원칙상 대상의 사실적 묘사나 재현적 형태를 거부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드로잉작품 가운데 사람 얼굴이나 문자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이는 사람얼굴이나 문자처럼 보이기도 하나 사실 구체적인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연과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의도된 형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연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유사성으로 감상자와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46×57cm

 

남관_무제_종이에 수채_49×65cm
 

아울러 남관 선생님의 비정형 채색 드로잉은 유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 아니다. 흑백과 채색의 수채 드로잉 작품은 유화와 같이 그 자체로 완벽한 '추상abstraction'이다. 어떤 형식과 규범에서 벗어난 채색 드로잉은 작가의 정신적, 신체적 행위의 감정 표출이 더욱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투명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펼쳐지는 선생님의 드로잉은 무의식적 행위를 통한 비정형의 결정체를 담은 보석 같은 작품으로 오늘날 역시, 추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시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유재길

 

 

 

 

Vol.20150421d | 남관展 / NAMKWAN / 南寬 / drawing.painting

 

 


 

'▲ 현대미술 작가 이광오가 오는 5월6일 부터 12일까지 7일간 인사동 이즈갤러리서 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5월6일 인사동서 전시회
한국 고유 행복한 표정 살려내

[파이낸셜신문=김바울 기자]

 

현대미술 작가 이광오가 오는 5월6일 부터 12일까지 7일간 인사동 이즈갤러리서 전시회가 열린다.

이광오 작가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림은 전문가와 유명인들로부터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화백의 작품이 눈길을 끌는 데는 인물을 중심으로 표정을 묘사해 독특한 느낌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중국 유명화가 위민준 작품과 비슷하지만 한국 고유의 표정이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이 화백의 작업테마는 해피바이러스다. 즉, 이 시대에 사랑과 꿈 그리고 위안을 주고자 하는 그림인 것이다.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임두빈 교수는 “이광오 작가의 작품은 불가사의한 생명의 울림을 반향하는 푸른 공간 속의 기호들이며 사람의 시선을 화면 속 공간으로 이끄는 조용한 힘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전준엽 작가는 “이광오는 철학적 두께가 느껴지는 거대한 생각을 의외로 경쾌한 추상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푸른색이다. 푸른색을 쓰는 이유에 대해 그만의 뚜렷한 이유를 달고 있다”고 말했다.

화가 이석조는 “이광오의 그림은 어떤 외형을 답습 묘사하는 미술행위와는 전혀 의식을 달리하는 매우 의도적인 암호같은 상징성”이라고 평했다.

오는 5월 6일 전시회를 앞둔 이 작가는 지금 작품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작가는 “웃으면 복이 와요. 이 얼마나 통렬한 말인가? 웃으면 마음의 긴장이 해소되며 긍정의 모드와 함께 활력이 생기고 소통과 순기능이 이루어집니다.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복잡다난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쌓인 심신의 부조화를 치유할 수 있는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나의 그림은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얼굴이 아니요 또한 그러한 화면도 아닙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지속적인 상상력을 유발시키며 그 속에서 누적된 세월을 초월한 다양한 담론을 열거하게 될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그 의미가 더해지고 지루하지 않은 잔잔한 심미안을 지속적으로 느끼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이 세상에 걸려 구성원 모두가 사랑이 충만하고 온유한 생기속에서 활력과 함께 소중한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작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이 그 속에서 함께 웃으며 치유되고 진정한 마음의 소통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작품이 인기 끄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작품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 지는 묘한 감동이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편안한 웃음의 표현법을 사용한 이 작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해피바이러스다. 전시회와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광오 작가 카페 (http://cafe.naver.com/galleryhuman)에서 확인 할 수 있다.

◆ 이광오 개인전 및 단체전 전시경력◆

개인전 12회, 국내ㆍ외 단체전 150여 회
2014년 12월 서울아트쇼“한국 미술의 주목 50人전”(코엑스)
2014년 12월 세계청년비엔날레(대구문화예술회관)
2014년 05월 현대미술 10인의 기수展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기획초대(포은아트홀)
2010년 PUZZLE PROJECT展(Willesden Gallery/영국,런던)
2010년 개관 33주년 기념 330인 스타작가 초대전(선화랑)
2010년 꿈을 바라보며 그리다.-21세기 미술의 젊은 힘展(의정부 예술의전당 기획초대)
2009년~2011년 부산 국제 아트페어 특별전(백스코/2009년~2011년)
2008년 2008‘한국의 美’특별초대전(국립카이로 오페라하우스 전시관/ 이집트)
2007년 제1회 광주 국제현대미술제 초대전(광주시립미술관)
1993년 아시아 미술의 평론전(ESPACE AYA미술관/ 프랑스, 파리)
1992년 한국 현대미술 지평관(Fine Art Gallery/일본, 도쿄)
1991년 제10회 서울미술제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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