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혜선스님

 

정영신씨가 아산 김선우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단다.

엊그제 정선화재 현장에 찾아 온 선우씨가 일을 흐리멍텅하게 처리하는 나를 보며 한 말 중에 할 말을 잃게 했던 말은 무슨 일이던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우선이지만, 원칙이라는 말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여지 것 줄 창 주장해 왔던 일도 원칙이 아니던가? 그동안 가까운 지인들 까지도 원칙을 어기는 잘못된 일은 공개적으로 공격하여 많은 분들이 등을 돌리지 않았던가? 잘못한 일에 남과 내가 어디 있겠는가? 다들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잘못된 일은 두루 뭉실 넘어가니 세상이 이 지경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이번 일은 돈 즉, 스스로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라 좋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난 17일 아침, 정영신씨와 정선 만지산 화재 현장으로 떠났다. 당장 기거할 컨테이너 박스라도 구해야 했지만, 다음 날 보험사 직원과 손해사정사가 만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번 화재 현장에 갔을 때는 윤인숙씨가 보험 던 게 없다고 했는데, 뒤늦게 확인한 바로는 본인은 탈 수 없지만, 피해자에게 보상해 줄 수 있는 손해보험이 있다는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꼼꼼히 증거 자료를 찾아 두어야 하는데, 이미 일부의 폐기물은 버려졌고, 남은 것도 포크레인으로 헤집어 찾기가 어려워 진 터라 걱정되었다.

 

 

 

화재 난 다음날 현장에 갔을 때도 불 탄 현장에 포크레인이 와 있었는데, 어떻게 화재원인도 규명하지 않고 현장을 헤집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보험금을 받아내려면 어떤 자료를 어떻게 소명해야 하는지를 몰라 아들 햇님이에게 손해사정사 한 분을 연결해 달라고 부탁해 둔 것이다.

 

 

 

정선으로 가다 양평 쯤에서 ‘성심건업’이라는 이동주택 제작소가 있어 한 번 들려 보았다.

농막에서부터 크고 작은 다양한 견본주택을 만들어 놓았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건축허가 없이 갖다 놓으려면 6평짜리 농막밖에 없지만,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주택형 농막은 최하가 2천만원 대였다. 심지어 일억이 넘는 이동주택도 있었다. 완전 우물 안 개구리인 셈이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주변인들이 보내 준 성금이 천만원이나 들어 와 그 돈으로 농막이 아니라 ‘예술창고’라는 집을 지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나왔는데, ‘예술창고’를 제대로 지으려면 손해보상을 한 푼이라도 더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침 윤인숙씨가 정영신씨에게 전화를 걸어 와 불난 방안에 명품가방이나 돈 나가는 물건이 많았다고 진술하라며 부추겼지만, 집에 없는 명품을 어떻게 거짓말 할 수 있단 말인가? 명품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은 필름 원판이라며 자위했으나, 손해사정사 말도 손해배상 규정에 필름은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전시하고 남은 작품도 집안 창고에 수 없이 많았는데, 그 사진 판매금액을 책정해 배상을 청구하란다. 사진은 원판만 있다면 다시 제작할 수 있지만, 필름이 없으면 사진을 만들 수가 없는데, 이런 개떡 같은 보상법이 어디 있는가?

 

 

 

배상한도가 일억이라는데, 그런 식으로 산출하려면 아무리 계산해도 얼마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손해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지경인데, 이제 보험사를 상대로 싸워야 할 문제가 남았다.

 

 

 

일단 정선 집보다 읍내부터 들렸다. 올해는 농사를 짓지 않기로 했지만, 빈 땅에 노력이 덜 가는 옥수수라도 심으려면 모종도 사야하고 농기구도 구입해야 되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마침 정선장이었다. 나물이 많이 나는 요즘 철에는 정선장에 엄청 많은 인파가 몰렸으나 코로나 때문인지 장터가 썰렁했는데, 이제 정선장도 봄날은 간 것 같았다.

 

 

 

비는 부슬부슬 왔지만 필요한 물건들을 산 후,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정선아우라지’식당에 들어가 곤드레밥을 시켰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며, 올 해는 작년보다 손님이 더 없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만지산 집에 도착하니 산 위로 구름이 몰려다녔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었는데, 카메라앵글 속에 불난 화재 현장이 나오니 또 다시 울화가 치밀었다. 가까이 가보니 철재는 모두 수거해 갔고, 나머지 폐기물도 일부 치우고 없었다. 타다 남은 책들만 폐기물 자루에 담겨 길가에 첩첩이 쌓여 있었다.

 

 

 

옥수수 심을 땅에 잡초를 뽑고 있는데, 정영신씨가 아산 김선우씨가 손님 한 분을 모시고 정선으로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단다. 제2의 공유공간 만드는 일에서 부터 할 일이 태산 같은 사람이 만사를 제쳐두고 그 먼 길을 온다기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좀 있으니 잘 아는 농막 짓는 분을 모시고 찾아왔는데, 화재현장을 둘러보며 타다 남은 잔재들에 관심을 가졌다.

 

 

 

마침 귤암리 노인회장 이었던 서덕웅씨도 오셨다. 얼마 전 최종열씨에게 회장직을 넘겨주었다며, 내일 아침 노인회 회의에서 작은 성의나마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위로해 주었다

 

 

 

김선유씨가 모셔 온 건축 전문가에게 들어보니, 집 짓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먼저 밭을 택지로 용도변경부터 해야 하고 설계도면 등 인허가 과정이 까다롭다고 했다. 정화조 설치에서부터 준비해야 할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집 지을 장소와 임시 기거할 농막 위치까지 알려주었는데, 당장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서둘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우선 당사자 간의 합의가 우선이지만, 보상받을 예산이 정해져야 시작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창수 엄마로 부터 올라 오라는 연락을 받아 정동지 더러 손님 모시고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일찍부터 저녁상을 준비해 두었는지, 가자말자 빨리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비 오고 흐린 날 파종을 마무리해두어야 잘 자랄 것 같아 먼저 식사하라고 말했는데, 선우씨가 데리러 오기 까지 했다. 좌우지간,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아야 하는 더러운 습관 때문에 여러 사람 힘들게 한다.

 

 

 

식사 후에 윤인숙씨와 합의하기 위한 요구조건이나 앞으로의 복안을 설명하며 환담을 나누기도 했는데, 아산까지 가야 할 선우씨 일행은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술이 한 잔 들어 간 창수엄마 이선녀씨 노랫소리가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노래자랑에 나가도 손색없는 실력인데, 서덕웅씨가 정선 아리랑도 한 번 부르라고 부추겼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한 바탕 놀고 나니 서덕웅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부터 정영신씨의 일이 시작되었다.

요즘 그녀가 하고 있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젝트였다. 얼마 전 어머니 인터뷰 대상을 장터에서만 찾기에 사연이 많은 만지산 이선녀씨가 어떠냐고 권한 적이 있었는데, ‘맞다“고 맞장구 쳤다. 이 번 기회에 인터뷰를 하려고 장비까지 챙겨 온 것이다.

 

 

 

예전에 이선녀씨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만지산에서 있었던 시집살이였다면 이번에는 시집오게 된 내력과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애환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먼저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 술만 마시면 신체적 장애가 생기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이제 술도 그만 마시라는 신호일까? 아니면 그만 살라는 말일까? 아무튼 다리에 힘줄 땡기는 통증까지 찾아와 곤욕을 치르다 잠들었는데, 인터뷰는 잘 끝냈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 날은 오전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창수가 아침 먹으라며 깨웠다. 덕분에 일찍부터 일 할 수 있어 좋긴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구름이 여전히 장관을 이루었다.

 

 

 

호박 심을 구덩이를 파고 있었는데, 귤암리 노인회장 최종열씨가 찾아 와 성금이라며 이십만원을 전해 주었다. 나는 주민등록이 서울 동자동으로 되어있어 이곳 주민이 아닌지라 줄려면 귤암리에 주민등록을 옮겨놓은 정영신씨에게 주어야 할 돈이었다. 나중에 만나면 전해주겠지만, 성의를 고맙게 받아 들였다.

 

 

 

마침, 윤인숙씨가 해선스님께서 한 번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바로 찾아 갔는데, 절 쪽에서 보는 우리 집 전경도 근사했다. 스님께서는 불 난 밤에 이 곳 절에서 지켜보며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까지 찍었다고 했다. 불난 현장을 보지 못해 궁금했는데, 스님 덕에 그날의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사진 / 혜선스님

 

십여 년 전에 보여 드린 적 있는 ‘한국불교미술대전’ 전집 이야기도 꺼내시며, 그 때 갖고 싶었지만 한 질 뿐인 책이라 차마 사고 싶다는 말을 못 꺼냈는데, 차라리 샀더라면 불에 타지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 책은 이십 여 년 전, 이년에 걸쳐 사진을 찍어 원고를 제공했으나 출판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천만 원이 넘는 원고료를 받지 못한 책이 아니던가? 도록도 마지막 남은 책이었지만, 이제 필름까지 타 버렸으니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사진 / 혜선스님

 

보살님이 내 온 차를 마시며 내 의중을 물어 오셨다. 짐작컨대 옆집 윤인숙씨가 쓰리쿠션을 친 것 같았다. 그래서 윤인숙씨 에게 이야기하듯 소상하게 말을 전했다. 두 집이 본래 한집이었던 집을 잘라 판 것이 문제였다며, 여간 불편하지 않다고 하소연 했다.

 

 

 

우리마당을 자기네 주차장처럼 사용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여러 마리의 개가 오가며 여기 저기 똥을 싸거나 농작물을 짓밟는 등 피해를 주어왔고, 그물망을 쳐 방목하는 수많은 닭소리 조차 또 하나의 공해였다. 그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화재 난 그날도 네 사람이 찾아와 밤늦도록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셨다는데, 매번 그냥 오는 손님이 아니라 그들이 받아들이는 영업의 일환이었다. 얼마전 불 난 집 터 옆에 있는 밭을 사서 농막까지 만들어 두었으니, 지금의 집터는 양보하고 그 쪽으로 옮겨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우선 불편에 앞서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복안도 설명했다. 내가 펴낸 ‘동강백성들’ 포토에세이 집과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집을 바탕으로 동강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동강사람들’ 자료관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소유한 400여 평으로는 땅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옆집의 가축 방목이나 영업행위가 걸림돌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집 지을 여력이 없어 땅과 자료만 정선군에 넘겨주면 건축은 정선군에서 추진하는 기획안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정도의 요구면 충분히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일하러 내려 왔더니,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뒤 이어 아들이 선임해 준 손해사정사 김민수씨도 도착했다. 김민수씨는 물증을 찾기 위해 불난 현장을 헤집기 시작했는데, 나와 정동지 모두 동원되어 그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흔적들이 소실된 후라 별로 찾아내지 못했다.

 

 

 

김민수씨가 찾은 중요한 것은 120필름 열다섯 장이 붙어 있는 비닐 파일이었다. 내가 찾은 것으로는 화가 강찬모씨 그림으로 추정되는 캔버스 천을 비롯하여 일세기가 지난 뷰카메라 필름케이스 가림막으로 보이는 알미늄 철판만 주웠을 뿐 필름용 카메라와 암실장비 등의 부품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외는 85년‘동아미술제’ 대상받은 상장 잔재와 불타다 남은 나무액자 조각뿐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주워 보관하고 있는 90년도에 전시했던 11X14인치 규격의 ‘전농동588’ 사전첩 일부는 소중한 물증인 셈이다. 이웃 주민이 기념으로 챙겨 간 ‘87민주항쟁’ 사진첩 일부도 다시 받아와야 할 처지가 되었다. 더 이상 찾아내기가 힘들어 찾은 자료만 촬영해 두고 맡겨놓았다.

 

 

 

일 억 정도 보상받으려면 3억 정도의 자료가 나와야 한다며 보상 받게 될 금액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소견을 상세히 들려주기도 했다. 윤인숙씨 더러 불난 집터를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살 의향이 없냐고 물어 본 모양인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며 잘라 말했다고 한다. 소실된 집기나 비품 명세를 적을 용지를 전해주며 다시 연락하겠다며 김민수씨도 떠나버렸다.

 

 

 

우리도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 올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해자나 마찬가지인 윤인숙씨가 피해보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보험사에 떠넘기며 일체의 대꾸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위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충고를 끈임 없이 했지만, 이웃의 정리를 생각해 마다하지 않았던가?

 

 

 

운전 중에 아산의 김선우씨가 정영신씨에게 전화를 걸어 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이유를 조목 조목 이야기하며 다시 설득하는 것 같았다. 변호사가 선임되어야 소실된 자료의 중요함을 변호해 보험사로부터 적정한 보험금을 받아 낼 수도 있지만, 배 째라는 윤인숙씨의 재산추적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영신씨는 나더러 의견을 물어 왔지만, 법적으로 갈 생각은 없기도 하지만, 피해 입은 땅이 정영신씨 땅이니 당신이 판단하라고 미루었다.

 

 

 

사실상, 화재현장에는 그동안 정영신씨가 전시해 온 장터 작품도 모두 보관해 두는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그 집 땅 역시 정영신씨 소유나 마찬가지다. 5년 전 내가 동자동으로 들어오며 정영신씨와 이혼할 때, 돈이 없어 위자료 조로 넘겨 준 땅이기 때문이다. 당시 양해각서만 작성해 두고 아직까지 명의 이전을 못해 준 것은 신용카드대금 천 백오십 만원을 연체하여 채권추심사인 ‘미래신용’에 땅이 압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조정을 신청해 정해진 납입금을 여섯 차례 납부했으니, 머지않아 압류만 풀리면 등기 이전해 주어야 할 땅인지라 그가 결정할 문제였다.

 

 

밤늦게야 도착해 잠들었는데, 이틀 날 다시 김선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나도 들으라고 전화소리가 들리도록 외장 스피커를 켜두어, 전화내용을 상세히 엿들을 수 있었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왜 원칙을 지키지 않느냐며 나무라는 말에 더 이상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휴일인 부처님 오신 날이지만, 정선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버리려고 쌓아 둔 타다 남은 포대기들을 실고 와 뒤져보기 위해 트럭을 대절했다는 것이다.

 

 

 

‘공유공간 마인’에 내 전시를 유치했다는 연유로 저토록 자신의 일처럼 지극정성으로 돕는데, 어찌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모든 걸 김선유씨에게 위임한다며 두 손 들고 말았다. 밤늦게는 포대를 다 실고 돌아왔다는 전화를 걸며 트럭 대절비나 부대비용은 나중에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자기 일처럼 흥분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끝장을 보고 마는 대단한 여장부였다.

 

 

 

김선유씨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는데, 다 끝난 인생 말년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들 마음 상하지 않고 일이 잘 마무리되어 약속대로 정선 만지산에 멋진 ‘예술창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드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 귤암리 사는 장승쟁이 서덕웅씨

 


"우잉~ 이기 우얀 일이고?"
이 핑계 저 핑계 안 가던 정영신씨가 날더러 정선 가자네.
외롭게 혼자 정선을 들락 거린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2019,10,6 봉평 섶다리

 

한 동안 몸이 아파 정선 집에 통 가보질 못했다.

태풍이 지나갔다는데 별 일 없는지, 작물은 어떻게 되었는지,

몸은 서울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몸이 나아 바로 못 간 것은 일거리가 생긴데다 서초동 촛불까지 발목 잡았다.

월요일쯤이나 갈 작정을 했는데, 정영신씨가 일요일에 가잖다.

촛불집회가 끝난 그 다음 날 새벽에 부리나케 정선으로 떠났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정영신씨는 가는 김에 여기저기 갈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

늘 다니던 국도로 갔는데, 쉼터로 활용하는 ‘풍수원’에 잠시 세웠더니,

‘풍수원성당’에 한 번 가보자는 것이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20년 넘게 ‘풍수원성당’ 앞길을 수없이 지나치고 쉬어갔지만,

어찌 그 유서 깊은 ‘풍수원성당’에 한 번 들리지 않았단 말인가?

무엇이 그리 바빠...

 

 

2019,10,6 / 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은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생긴 성당이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피신한 사람들이 다니던 성당이 아닌가?

처음으로 올라가 보니, 길가에서 불과 200미터에 불과했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첫 인상이 한 마디로 고풍스럽고 아담했다.

마치 서울 약현성당을 떠 올렸다.

정면에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아치형으로 되어 있었다.

 

 

2019,10,6 / 풍수원성당

 

난, 한 때 ‘프란체스코’란 세례명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 뒤 ‘진공’이란 법명으로 바꾼 변절자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다.

신이 있다면 악의 세상을 그냥 둘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배신의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 정영신


정영신씨는 집에 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을 말해주었다.

봉평 이효석 문학관, 정선 아우라지 나룻터, 정선아리랑시장, 정선아리랑 축제장,

 

우메~ 봉평 까지 가면 집에 가서 일은 언제하지...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 정선 사람이 정선아리랑 한 자락 못하면 간첩이지.

 

그나저나 정선에서 ‘정선아리랑제’가 열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네.

아무리 바빠도 정선아리랑제가 열릴 때는 꼭 갔는데, 요즘 내 정신이 아니다.

 

 

2019.10.6  정선아우라지

 

봉평을 거쳐 아우라지에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아우라지는 왜 찿는지 모르겠다.

 

요즘 지역 장터와 유적을 잇는 책을 쓰다 보니, 아마 자료가 필요한 것 같았다.

한 많은 뱃길은 아우라지로부터 시작되니, 그 곳에서 흔적이라도 찾을 모양이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정선 읍내 들어오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 곤드레 밥으로 요기 하고 시장부터 한 바퀴 돌았다.

한 때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사진찍는 일을 한 적도 있었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ㅣ 시장살림을 도맡은 임미순씨를 만났다.

 

축제 중이라 장날은 아니지만, 장은 열렸다.

공연장에서 ‘정선아리랑시장’ 또순이 임미순씨를 만났다.

고맙게도 커피를 두 잔이나 사주었는데, 난 자판기스타일이라 어쩌지...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 시장에서 소설 쓰는 강기희씨 모친을 만났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강기희씨 어머니를 만나 안부도 묻고,

장삿꾼 이숙란씨 만나 사는 이야기도 들었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이숙란씨

 

‘정선아리랑제’ 리프렛을 뒤져보니, 일요일이라 큰 행사는 없었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먼저 ‘정선아라리촌’부터 들렸다.

정영신씨는 ‘아리랑박물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 포럼’에 가고,

난 잘 정리된 ‘아라리촌’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즐겼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아라리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 곳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길에서 최성준 정선군수를 만나 안부를 나누기도 했다.

아라리공원 입구에서 열리는 ‘평화기원 아라리 장승제'에 들렸다.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에서 최성준군수를 만났다. (정영신사진)

 

귤암리 서덕웅씨가 마련한 행사라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는줄 알았는데,

아는 분은 서덕웅씨 내 외 뿐이었다.

고사를 지냈으나 차 때문에 고사 술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다.

차도 차지만, 요즘은 해가 빨리 넘어 가 일할 시간이 없어서다.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서낭제에서..

 

우리 집은 태풍 피해가 없었다.

이십 여 년을 살며 한 번도 태풍이나 수해를 당한 적이 없다.

사방의 산이 막아주어 요새나 마찬가지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고추, 열무, 가지, 호박 등 별 게 없으나 농작물 피해도 없었다.

정영신씨는 고추에 더 관심이 많더라,

 

 

2019.10,6 / 만지산 고추밭

 

해 넘어가기 전해 거두어야 할 것이 많건만, 옆집에서 오라고 성화다.

“다정도 병이련가?”

 

 

2019.10.6  만지산 옆집에서 잔치 벌어졌네

 

이 집은 얼마나 손님이 많이 오는지 갈 때마다 잔치다.

그 날은 옆집 윤인숙씨 딸과 사위가 왔단다.

딸이 서천에 들려 사왔다는 대하와 이름도 모르는 조개를 한순식씨가 숯불에 꿉고 있었다.

술도 벌 술에다 돌배 술 등 귀한 술은 다 나왔더라.

 

 

2019.10.6  만지산 옆집 윤인숙씨

 

그런데, 내일 급한 일이 생겨 밤에 가야하는데, 차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네.

정영신씨 좋아하는 세우나 염체 없이 까 날랐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거지 뭐.

 

 

2019.10.6  정선 만지산


좌우지간, 만지산은 정영신씨 없으면 앙코 없는 찐빵이라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 포항의 송도, 사진인의 밤행사 중에 정선에 계신 서덕웅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귤암리 노인회에서 서울 롯데월드타워로 관광 가는데, 올 수 있냐는 것이다.

롯데월드타워는 관심 없지만, 동네 분들의 서울 나들이를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귤암리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띄엄띄엄 떨어져 한꺼번에 만나기란 동강할미꽃축제같은 행사 외는 쉽지 않다.

이제 가을걷이를 끝낸 터라 모처럼 단체 관광을 나선 모양이었다.

도회지 같으면 경노당에서 쉴 나이지만, 시골에서는 농사일을 주도하는 현역들이다.





포항에서 23일 동안 퍼 마신 술에 파김치가 되었지만, 포항 사진페어가 마무리 된 오후 다섯 시 무렵 출발했다.

밤 아홉시에야 정선에 도착했다. 이튿날 관광버스 편으로 편하게 갈 수도 있지만,

끌고 온 차가 걸려 겨울 옷가지만 챙겨 바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연이어 일곱 시간을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니 어질어질했다.

도착했으면 그냥 잘 것이지 밀린 일 하느라 새벽녘에야 잠들었으니, 매번 바쁜 걸음 치는 것이다.

약속시간까지 갈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으나,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다.






단체 매표소에 몰려있는 서른 명의 반가운 분들을 뵈니 걱정도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젊은 사진사 한 사람이 단체사진을 찍으라며 한 곳으로 모아 세웠다.

얼씨구나하며 나도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람이 뽑아 낸 사진은 배경에 없던 서울 야경이 합성되어 있었는데,

5X7규격의 사진 한 장에 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그 것도 한 장이 아니라, 여럿명이 제각기 사진을 구입한 것이다.

기념사진 값에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이 너무 아까웠으나, 어쩌랴!

한 장만 구입해도 복사해 얼마 던지 뽑을 수 있으나, 영업 방해하는 것 같아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소지품 검사로 라이터를 맡기는 등 엘리베이터 타는 절차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고속철처럼 123층을 1-2분 만에 단숨에 올라가 버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시가지가 마치 조감도처럼 한 눈에 들어왔다.

유리로 된 바닥을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렸다.





난생 처음 보는 건물에  감탄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건축술이 하늘 높은지 모른다지만, 과연 이렇게 높은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 올려 세우기까지 숱한 말썽을 일으키며 지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리를 저지른 롯데그룹 총수일가가 사법부의 심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고층빌딩 구경보다, 동네 분들과 둘러앉아 먹는 오찬이 더 즐거웠다.

소주 한 잔 나누다보니, 금세 헤어 질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여주 들려 단풍구경 한다기에, 혼자 지하철 타러 걸어나와야 했다.

석촌 호수 주변도 아름답게 물들었지만, 이날따라 벤취에 누워 자는 분이 더 부러웠다.




 


부질없을지라도, 동네 분들 덕에 서울구경 한 번 잘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가 주최한 제10회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행사장에는 서덕웅 보존회장을 비롯하여 전정환 정선군수, 차주영 정선군의회의장,

한종수 정선읍장, 김수복 정선군 문화예술과장 등 많은 인사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높은 벼랑에 핀 동강할미꽃의 처연한 자태를 감상하며 정선의 봄을 맞이했다.

이제 동강할미꽃축제는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축제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동강할미꽃들과 함께 열리는 사생대회나 백일장이 크게 기여한 듯 했다.

이 날 떡메 치는 재미도 솔솔 했지만, 어디 이웃과 함께하는 재미에 비할소냐.

귤암리 부녀회에서 마련한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며 봄의 여흥을 마음껏 즐긴 것이다.

이처럼 마을축제란 주민들이 화합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농사철에 접어들면 쉴 겨를이 없지만, 이 날 만큼은 만사를 재쳐두고 나와야 했다.

그리고 정선 문화예술인들이 그렇게 많지만, 모습을 드러낸 분은 김우영씨 한 분 뿐이었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그러니, 농사일에 바쁜 주민들만 탓할 일도 아닌듯 싶다.

내가 사는 만지골은 지하수를 둘러싼 원주민들과 이주민의 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하수 펌프나 배관을 보수하는데 따른 비용분담으로 발생한 사건이란다.
축제장에서 만난  전정환 군수께 지하수 관리비용을 군에서 부담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즉석에서 한종수 읍장을 불러 해결방법을 모색하자며 걱정해주셨다.

한종수 읍장은 앞으로의 유지보수비를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문제는 그 갈등의 골이 한계를 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웃 간에 내용증명이 오가는 등 소송까지 불사할 감정싸움으로 비화해,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분쟁은 이제 귤암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산골로 몰려들며 생긴 일인데,

대개들 '가까히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거였다.

도심에서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 온 이들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축제라도 나와 얼굴을 부딪쳐야 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강원도 정선지역은 예로부터 산골에 갇혀 살아,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습성이 몸에 배어있다.

난, 정선 들어온 지 20년차지만 외지에 나돌아다녀 그런지, 아직까지 데리고 온 서자 취급이다.

그렇지만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마을의 정서보다 원칙을 따지는 분들이 늘어나며 이런 분쟁이 터진 것이다.

싸우는 양측에서 서로 협력을 요구해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

이미 내집에 대한 관리와 의결권은 이웃 최종대씨에게 위임한 상태라 뒤늦게 개입할 문제도 아니지만,

편 가르기로 비화된 흙탕물에 휘말리기는 더 더욱 싫기 때문이다.

부디 서로 양보하여 평화로운 마을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진,글 / 조문호






































































 

 

정선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젝트 장에가자2’ 사진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호객행위로 전시장의 공백을 메워가는데, 막상 사진전에 들려 초상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대 만족이었다.
지척에 있는 좋은 전시를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며 정선군의 홍보부재를 아쉬워했다.

지난 7일에는 시간 내어 찾아 온 지인들이 많았다.
정선의 문인 안영환, 김우영씨를 비롯하여 장승공예가 서덕웅, 최원희, 귤암리 최연규, 지동진, 신승철씨 등

여러 명이 들려 축하해 주었고, 그 외에도 전제덕, 이서정, 김혜진, 전형수 이성학, 이승준, 정상임, 임기덕,

강효순씨가 들려 초상사진을 찍었다.

메마른 삶의 현실에 장터가 유일한 희망이다. 모두들 장에가자.
이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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