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포항 아트페어 ‘사진의 섬 송도’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포항 송도 코모도호텔에서 열렸다.

포항예술문화연구소(소장 안성용)가 마련한 ‘제2회 사진의 섬 송도-송도, 미래를 만나다’ (대회장 이인식)는

호텔 룸에서 전시 판매가 이뤄지는 호텔아트페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포항, 경주,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의 사진가 43명이 참가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으나,

전시작의 판매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이는 지역민들의 사진 소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 앞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역작가들 친분에 의해 팔린 작품들은 더러 있어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5일 오후7시 30분에 열린 개막식에는 대회장 이인식씨와 운영위원장 조근식, 기획자 안성용 소장을 비롯하여

참여작가와 초대인사 등 100여명이 참가하여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이도협, 원지현씨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대회장 이인식, 안성용씨의 인사와 내빈의 축사가 이어졌다.

한 잔 마시며 들었으면 훨씬 덜 지루했을 텐데, 자꾸 옆자리에 차린 술상에 신경쓰였다.

대금연주와 작가들의 기념사진 촬영이 있은 후에야 와인파티가 시작되었다.





태풍이 지나간  6일은 전시장이 한가했으나, 마지막 날인 7일은 많은 분들이 들려 작품을 감상했다 .

특히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해 주신 서울의 차재훈교수를 비롯하여, 

부산의 사진가 노재학, 박경민씨 등 타 지역에서도 많이 다녀가셨다. 






아트페어를 끝낸 7일 밤에는 '제3회 사진의 섬 송도'를 기약하는 축배를 들었다.  


참여사진가 : 권기철, 권순종, 김남효, 김병태, 김수정, 김인술, 김  훈, 김혜련, 나호권, 문성국, 박상화,

                 박양채, 박영길, 박우철, 박종효, 박진호, 서경애, 서상숙, 손진국, 신병문, 양재문, 오상철,

                 유소피아, 이근무, 이다나, 이두순, 이묘순, 이인식, 이정철, 임향숙, 장문식, 장정아. 정광수,

                 정영신, 조근식, 조문호, 조성기, 지용철, 최흥태. 최회우, 하정은, 한병화, 홍상돈,






아래는 개막식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너무 많아, 세미나와 아티스트 토크, 전시 객실, 뒤풀이 사진을 바롯한 본인의 참견문은 아래에 별도로 올립니다.

http://blog.daum.net/mun6144/4931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 『박진호의 사진공부1 -인종차별』의 작가 박진호씨



사진가 박진호씨가 평창동 아트스페이스 ‘퀄리아’에서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초대전을 열면서 『박진호의 사진공부1 -인종차별』이란 책을 출판했다.

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사진,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전은 지난 6월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한 작품 두 점과 신작 일곱 점을 출품했으며, 책 출판 기념회도 겸한 행사였다.

그는 종종 사진에 관한 글을 써왔는데, 이 책은 수년에 걸쳐 다듬고 수정해 자기만의 관점으로 완성된 책이라서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큐멘터리 사진 감상(鑑賞)을 위한 많은 ‘도구’들을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작업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작가가 어떤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는가? 그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촬영 당시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은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 그 사회에서 어떤 정치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의 정치관은 무엇이었는가? (…) 경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부의 분배는 어떠했는가? 그는 어떤 경제적 계급에 속했는가? 국제 경제는 어떤 양상이었는가? 국제 정치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없었는가?” -중략-

 

그는 특정 시대, 특정 사회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은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어 미학적 방법론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적, 사회학적 방법이 중요하며, 더불어 다큐멘터리 사진 감상에 도움이 되는 회화, 조각, 문학, 영화, 음악 같은 다른 예술 작품과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도 썼다. 나아가 독자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삶의 지혜로써 작품 감상의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번 『박진호의 사진공부 1』의 주제인 ‘인종차별’은 그가 대학 때 우연히 보았던 흑인 ‘린치(lynch)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 올가미에 목이 걸린 두 명의 흑인 청년이 커다란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그 밑에서 백인들이 모여 웃고 즐기고 있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흑인 청년들을 처참하게 죽여 놓고는, 너무나도 태연한 백인들의 모습을 찍은 그 사진이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이후 전공을 바꿔 사진을 공부하게 되면서 인종차별 관련 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 사진을 연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사진 속 사건들의 뿌리를 찾아 미국 역사를 읽게 되면서 사진을 ‘보는’ 것을 넘어, 그 너머에 있는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사진의 의미를 ‘읽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 『박진호의 사진공부1 -인종차별』책 표지


 

  다큐멘터리 사진은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꿰뚫는 혜안과 더불어 냉철한 비판적 시각이 중요한데, 감각만으로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많아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적 작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개인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창시자로 추앙받으며, 현대사진의 문을 연 ‘로버트 프랭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바이블처럼 회자되고 있는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1950년대 중반 미국을 찍은 사진이다.

  그 당시는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격화되던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와 있는 책은 로버트 프랭크의 개인적 감수성을 강조하면서 비뚤어진 프레이밍, 맞지 않은 초점 등, 사진 화면만으로 설명하거나, 당시 미국의 사회 상황을 별로 반영하지 않은 잭 케루악의 사진집 『미국인들』 서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사진집의 중요 주제인 ‘인종차별’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박진호의 사진공부 1 - 인종차별』에서는 1950년대 미국 사회 상황을 기반으로 사진집 『미국인들』에 숨겨져 있는 ‘인종차별’을 찾아내면서, 몇 편의 영화를 통해 미국 사회의 ‘흑인차별’ 실상을 설명하고, 심도 있는 사진읽기와 텍스트 훈련에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 엘리엇 어윗이 1950년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촬영한 작품.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사진은 표면적 의미를 넘어 평등과 불평등을 읽어 낼 수 있는 사진이다.



 

  그는 다음 책 작업으로 ‘동성애와 사진’, ‘비만과 사진’, ‘전쟁과 사진’을 주제로 상당량의 글을 써 놓아, 좀 더 보완해서 책을 펴낼 생각이라며, 작가로서 사진작업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서너 가지 작업 구상을 마쳤는데 다음 발표 작품은 ‘시간성’에 대한 작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작가에게 동기부여와 호기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는 가끔씩 쓰던 시(詩) 쓰기에 몰입해 자기만의 시집도 출판하고 싶다는 꿈도 펼쳐보였다.

 

  이 책을 꼭 봐야할 대상이 누구냐는 질문에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주저 없이 대답해 그의 ‘머리말’에 밑줄을 그으며 다시 읽어본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작가가 자신의 통찰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실천의 장이다. 세상의 이면을 앞으로 돌려 내보이고, 수면 아래의 어떤 세계를 위로 끄집어내 보이는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대(對) 사회적 발언이며 주장이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곧 세상 비평이고, 자신의 세계관의 선언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작품에 관한 한 겸손할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며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정영신의 Book 리뷰)






14일까지 갤러리 나우

사진가 박진호씨의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전이 오는 6월1일부터 14일까지 인사동‘갤러리 나우’에서 열리고 있다.

박진호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예전에서 사진을 배웠다.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한 후, 1992년‘아노미’전을 시작으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한국사진의 수평전 등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강하게 인식된 작업은 첫 전시‘아노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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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자신의 신체를 복사기로 형상화해 존재 자체를 확인한 작업이었다. 기계적 복제나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표출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외에도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같은 시적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사진이다.


이사진들은 70-200mm 망원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사진인데, 촬영 기법과 노출 데이터를 찾기까지 7년이 걸렸고, 촬영기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생각을 숙성시켜 온 것은 자유로움을 꿈꾸었다는 것, 좀 더 경쾌한 삶을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50대 중반의 나이가 주는 주체적 사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그는 작업노트에서 달은 신(神)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신을 표현하려는 자체가 헛된 노력일 것이나, 신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었다고 적었다. 자연법칙을 벗어나고 우주원리를 이탈한 자유, 그런 인생을 바라지만, 너무 슬프다고 했다.


예술은 결코 감각만의 영역이 아니다. 끊임없는 생각과 회의 그리고 탐구에 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그 추운 겨울바람에 떨고, 여름 날 모기에 뜯겨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오랜 기간의 생각과 회의에 따른 사유의 결과라고 한다. 그의 친구인 한양대교수 정재찬씨는 이렇게 전해왔다.


“그는 도도한 외로움, 고고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저 제목은 교만도 유희도 아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싶거나, 눈물로 간구하고 싶지만 인간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를 이해하랴. 다만 거룩하진 않아도, 거짓되고 위선에 찬 신앙보다는 네가 참 되도다, 신이 말해 줄 것이다, 라고 믿을 뿐이다.”


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지 사진평론가는 아니다. 그래서 박진호의 사진을 보며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들을 이야기할까 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12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보통 달을 찍으려면 장시간 노출을 주어 달의 궤적이 한 줄로 이어지는데, 이 사진들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해, 마치 춤추는 달처럼 넘실댄다. 달을 소재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사진으로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다.


달을 생각하니, 죽은 울 엄마가 제일먼저 떠오르고, 둘째는 이백선생이 생각나더라. 왜? 울 엄마가 생각났냐면, 살아생전 즐겨 부른 노래에 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노래가사들이 잊혀 지지 않더라.


첫 소절이 “구름 속에 달빛만 엉큼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당신의 마음도 검구려”로 시작된다. 자연에 빗댄 사랑의 마음을 어찌나 은근하게 풀었는지, 노래가사가 바로 시였다,

즉 박진호의 사진 메시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시였다. 자연과의 사랑 노래, 아니 달과의 아주 에로틱한 사랑 그 자체였다.


두 번째 떠 오른 이백 선생도 달과 인연이 너무 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백선생께서도 자연을 신이라 했다.


'독작(獨酌)'이란 시를 한 번 읽어보라.


꽃 사이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달도 그림자도 술은 못 마시지만
그들과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자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지니
담담한 우리의 우정, 다음엔 은하 저쪽에서 만날까


이 정도면 가히 신선이다. 스스로 귀양 온 신선이라고 하였지만, 현실은 못내 답답하고 아팠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술로 한을 달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작가의 마음이 어렴풋이 읽혀지더라. 뒤틀린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 자신이 몸 담아 온 사진판부터 바로세우고 싶었을 게다. 지난해에는‘최민식사진상’대상수상작 문제점을 제기하며, 친구였던 수혜자를 강력하게 비판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신이나 다름없는 달을 마음대로 움직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 표출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그리고 세상을 자유롭게, 재미있게 살라는 말 같았다. 바로 갑이 없고 을이 없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신선처럼 함께 놀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의:‘갤러리 나우’(02-725-2930)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기자



  





지난 토요일, 급히 만날 분들이 있었다.
술이 취해, ‘인사동사진축제’ 구상안을 이규상씨 페북 메시지로 보낸다는 게,
실수하여 전체공개가 된 것이다.

그 내용에는 이규상씨는 물론 엄상빈씨 이름까지 거명되어 있어,
당사자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잘못된 경위를 문자로 전한 후, 일단 만나 뵙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5시 무렵, 아내와 인사동 ‘허리우드’로 나갔다.
엄상빈씨와 이규상씨 두 분께, 전 후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일단 운영위원 부터 구성하여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올 때, 공개하기로 했다.
사진인들의 힘을 모아, 우리사진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에 공감했다.

‘나우갤러리’에서 박진호씨와의 약속으로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이규상씨가 달을 훔친 사나이 만나러 가자는 제안에 모두들 일어섰다.
‘나우갤러리’에는 박진호씨와 여친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 깨며 자리까지 빼앗았지만, 어쩌겠는가.

모처럼 오붓한 자리에서 달과 함께 놀았다.
누구 말처럼, 훔친 달이지만 풍류가 그윽했다.
서예가의 힘찬 붓길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했다.
이 좋은 달밤에 어찌 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규상씨를 따라 청계천에 있는 국수집으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수육을 안주로 소주 한 잔했다.
얼마나 맛있던지, 사진 찍는 일도 잊어버렸다.
얼큰하게 취해, 아쉽지만 헤어졌다.

아내를 앞세워, 다시 인사동 ‘유목민’으로 쳐들어갔다.
그 곳에도 반가운 분이 많았다.
멀리서는 김기영씨가 손을 흔들었고,
이호상씨의 노래소리가 골목을 매웠다.

신성준선생을 비롯하여 조해인시인, 노광래씨도 있었다.
이날은 주인장 전활철씨도 기타 치며 노래했다.
등달아 노광래씨 까지 기타들고 설쳤는데,
좌우지간, 실수로 시작된 하루였지만, 신나는 토요일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박진호씨의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전이 지난 6월1일 오후6시,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이 날 개막식에는 사진가 박진호씨를 비롯하여 이순심관장, 박재호, 장일암, 류은규, 양재문, 김영태,

황규범, 노연덕, 신혜선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박진호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예전에서 사진을 배웠다.
홍대 산미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한 후, 1992년‘아노미’전을 시작으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한국사진의 수평전 등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무엇보다 강하게 인식된 작업은 첫 전시‘아노미’였다.
자신의 신체를 복사기로 형상화해 존재 자체를 확인한 작업이었다.

기계적 복제나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표출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외에도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같은 시적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달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사진이다.
 
이사진들은 70-200mm 망원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사진인데, 촬영 기법과 노출 데이터를 찾기까지 7년이 걸렸고,

촬영기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생각을 숙성시켜 온 것은 자유로움을 꿈꾸었다는 것,

좀 더 경쾌한 삶을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50대 중반의 나이가 주는 주체적 사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달은 신(神)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신을 표현하려는 자체가 헛된 노력일 것이나,

신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었다고 적었다. 자연법칙을 벗어나고 우주원리를 이탈한 자유, 그런 인생을 바라지만,

너무 슬프다고 했다.
 
예술은 결코 감각만의 영역이 아니다. 끊임없는 생각과 회의 그리고 탐구에 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그 추운 겨울바람에 떨고, 여름 날 모기에 뜯겨가며 사진을 찍은 것은 오랜 기간의 생각과 회의에 따른 사유의 결과라고 한다.

그의 친구인 한양대교수 정재찬씨는 이렇게 전해왔다.
 
“그는 도도한 외로움, 고고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저 제목은 교만도 유희도 아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싶거나, 눈물로 간구하고 싶지만 인간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를 이해하랴. 다만 거룩하진 않아도, 거짓되고 위선에 찬 신앙보다는 네가 참 되도다,

신이 말해 줄 것이다, 라고 믿을 뿐이다.”
 
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지 사진평론가는 아니다.
그래서 박진호의 사진을 보며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들을 말할까 한다.
 
보통 달을 찍으려면 장시간 노출을 주어 달의 궤적이 한 줄로 이어지는데, 이 사진들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해,

마치 춤추는 달처럼 넘실댄다. 달을 소재로 택한 것은 사진으로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다.
 
달을 생각하니, 죽은 울 엄마가 제일먼저 떠오르고, 둘째는 이백선생이 생각나더라.
왜? 울 엄마가 생각났냐면, 살아생전 즐겨 부른 노래에 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노래가사들이 잊혀 지지 않더라.

첫 소절이 “구름 속에 달빛만 엉큼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당신의 마음도 검구려”로 시작된다.

자연에 빗댄 사랑의 마음을 어찌나 은근하게 풀었는지, 노래가사가 바로 시였다,


즉 박진호의 사진 메시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시였다.

자연과의 사랑 노래, 아니 달과의 아주 애로틱한 사랑 그 자체였다.

두 번째 떠 오른 이백 선생도 달과 인연이 너무 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백선생께서도 자연을 신이라 했다
“독작(獨酌)”이란 시를 한 번 읽어보라.

“꽃 사이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
달도 그림자도 술은 못 마시지만
그들과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자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지니
담담한 우리의 우정, 다음엔 은하 저쪽에서 만날까“

이 정도면 가히 신선이다. 스스로 귀양 온 신선이라고 하였지만, 현실은 못내 답답하고 아팠을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술로 한을 달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작가의 마음이 어렴풋이 읽혀지더라.

마치 붓글씨처럼 자유롭게 그어진 달의 흔적은 풍류에 앞서 작가의 의지 같은게 느껴지더라.
뒤틀린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 자신이 몸 담아 온 사진판부터 바로세우고 싶었을 게다.

지난해에는‘최민식사진상’대상수상작 문제점을 제기하며, 친구였던 수혜자를 강력하게 비판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신이나 다름없는 달을 마음대로 움직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 표출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그리고 세상을 자유롭게, 재미있게 살라는 말 같았다.

바로 갑이 없고 을이 없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신선처럼 함께 놀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전시는 14일까지 이어진다. (갤러리 나우 02-725-2930)


사진, 글 / 조문호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90*15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12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90*15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6*11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사진가 박진호씨의 열번째 개인전‘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사진전이

오는 6월1일부터 14일까지 인사동‘갤러리 나우’(02-725-2930)에서 열립니다.

초대일시는 6월1일 (수요일) 오후6시입니다.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작업노트-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I Moved the Moon by Myself!

 

어느 날 - 사실 어떤 날, 무슨 상황이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10년 전 그 어느 날....

밤이었다. 작업실 앞산, 달이 솟아올라 내 눈을 찔렀다. 보름달은 아닌, 그보다는 조금 찌그러진 달이었다.

찔린 건 눈이었지만 피를 흘린 것은 가슴이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맥박이 빨라졌다.

네 장 찍자 피가 멈췄다.

 

이후 달은 계속 내 눈을 찔렀고 나는 그 달을 계속 찍었다.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모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르는 것을 표현하려는 짓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 같은 헛된 노력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짓이다.

새벽, 찰나(刹那)만큼이나 짧은 0.5초라는 시간은 30초라는 시간을 영겁(永劫)처럼 느끼게 한다.

 

, 달에게 찔린다는 것, 강림(降臨)이었다.

, 달을 찍는다는 것, 그것은 주술(呪術)이었다.

달은 신()이었던 것이다.

아하, 을 나는, 내 손으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말이 어려운가?

自然法則을 벗어난, 宇宙原理를 이탈한 그런 自由.... 法則, 原理도 미치지 못하는 自由로움.... 그런 人生.... 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삶....

 

어쩌면 가벼운 遊戲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하는 天性, 그것이 遊戲의 가벼움을 그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오랜 동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슬프다는 것이다. 어려운가?

나는 슬프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理解되는가?

내 말이 理解된다면 당신은 내 作品理解한 것이다.

作品理解했는가? 당신, 참 훌륭하다!

당신은 나를 理解한 것이다.

 

, 당신 참 고맙다!!

 

2016. 6. 1. 박진호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0*6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90*15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12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90*15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66*110cm, 디지털프린트,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70*70cm, 디지털프린트, 2016



박진호(朴鎭浩. Park, Jin-Ho. 1962-)

 

 E-Mail : parkjjinho@naver.com

홈페이지 : www.parkjinho.com

<학 력>

1985 한양대학교 졸업

1989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1997 홍익대학교 산미대학원 졸업(사진디자인 전공)

 

<개인전>

2016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갤러리 나우, 서울)

2010 영가(靈家)의 초상(肖像) (이룸 갤러리, 초대, 서울)

2008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갤러리 나우, 서울)

2005 나를 보다-길을 잃다 (김진혜 갤러리, 서울)

2003 언타이틀드 (KCAF-한국현대미술제, 예술의 전당, 서울)

2001 지금(只今)(이정희 갤러리, 초대, 서울)

2000 몸 너머 (대안공간 풀, 서울)

1997 언타이틀드 (관훈 갤러리, 서울)

1995 노이로제 (삼성 포토갤러리, 기획, 서울)

1992 아노미 (소나무 갤러리, 서울)

 

<단체전 및 기획전>

2016 FIVE TYPES OF expression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15 태백팔경 경관-검은 땅에 꽃피다 (철암탄광역사촌, 태백)

2014 Art of Photography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AFFINITY 90 (갤러리 조선, 서울)

2013 Thinking MEDIA (충무아트홀, 서울)

2010 서로를, 호흡하다 (포네티브 스페이스, 파주)

두 겹의 부정 - 명료함에 반()하다 (갤러리 조선, 서울)

2009 다시 개항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빛의 노래 (제비울미술관, 과천)

2TWOSee - 두 가지 시선 혹은 이중성에 관하여...(대안공간 눈, 수원)

서울포토 2009 (코엑스, 서울)

서울오픈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08 한국현대사진 601948-200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비전-2008 (토포하우스, 기획, 서울)

2007 夜動 (갤러리 룩스, 기획, 서울)

Text in Bodyscape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대진대학교 교수전 (모란갤러리, 서울)

Good Life (GS타워, 서울)

2006 1회 서울국제사진페스티발 (관훈 갤러리, 서울)

6 Make-Up (나우 갤러리, 서울)

나우 갤러리 개관기념전 (나우 갤러리, 서울)

현대미술의 현장 (갤러리 호, 서울)

비전 - 섬김과 나눔 (빛 갤러리, 서울)

2005 상생과 명상 (아티스트 갤러리, 일본 동경)

사람의 도시, 어울림 (고양어울림 미술관, 고양)

경계의 꽃 (숲 갤러리, 서울)

2004 5 Make-Up (조흥 갤러리, 서울)

4 Make-Up (갤러리 디프, 서울)

상생과 명상 (이공 갤러리, 대전)

국립고양미술스튜디오 개관전 (고양미술스튜디오 전시관, 고양)

2003 3 Make-Up (고도 갤러리, 서울. 스페이스 빔, 인천)

뉴 프론티어 (대구문예회관, 대구)

2002 교환 (김영미&박진호 2인전, 조성희 갤러리, 서울)

프린지 페스티발 (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1 거실로 다가간 미술 (마이아트, 서울)

2001 고양 현대미술제 (호수공원 전시관, 일산)

2001 독립예술제 (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0 다가가다 (서남미술전시관, 서울)

엿보기 (공화랑, 서울)

오감도 (이정희 갤러리, 서울)

1999 기념사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98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신체와 의식 (21세기 갤러리, 서울. 대구문예회관, 대구)

1997 2Make-Up (인데코 갤러리, 서울)

신체와 의식 (코닥 포토살롱, 서울)

강원대학교 교수 작품전 (공평아트센터, 서울)

1996 사진-새로운 시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Make-Up (관훈 갤러리, 서울)

정치 밖의 정치 (보다 갤러리, 서울)

1994 한국 사진의 수평전 - 세계의 눈 (공평아트센터, 서울)

1993 여름 설악전 (한마당 갤러리, 서울)

 

*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6)

* 국립고양미술스튜디오 1기 입주작가 (2004-2005)

* 출간 :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문학동네 간. 촬영담당. 200

 

 

 

인사동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술이다.

친구와 술은 너무 오랜 세월 같이 했기 때문이다.

 

 

지난15일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거닐기도 좋았다.

누구라도 만나면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대마초 고백에 연루되어 꼼짝하기 싫었다.

그러나 긴 세월 가슴에 묻고 산 걸 털어내니 속은 후련했다.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메리야스에 겁먹어 한산했다.

사람들이 줄어드니, 얼핏 예전의 인사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손님 없어 한숨짓는 사람들 보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인사동에서 만난 아내가, 술 생각나는 내속을 눈치 챈 것 같다.

지나치다 들린 '유목민'에서 시인 김명성씨를 만났다.

"김선생님 오늘은 제가 술 한 잔 대접 할게요." 아내가 선수를 쳤다.

아직 술시간이 이르니 광화문의 '북한사진전'부터 가잖다.

 

 

오늘은 너무 많이 돌아다녀 다리가 아팠다.

거리에서 사진가 박진호씨와 서양화가 성기준씨, 현장스님

만났으나 아쉽게 헤어졌다.

매번 그렇지만 내가 만든 자리가 아니라 눈치가 보여서다.

 

'나주곰탕'에서 같이 소주 한 잔 했으면 딱 좋으련만.....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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