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요즘, 술 마신 다음 날은 어김없이 방구석 헤 메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살만하면 또 나부대는데, 요즘 술 마실 일이 좀 잦다.
광화문 광장이나 전시장에 가다보면, 당연히 반가운 사람만나 술마시지만,
쪽방까지 찾아와 술 마시게 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 즐거운 비명이다.






요즘 감기기운이 좀 체로 가시지 않는데다, 편두성으로 목구멍까지 부어올랐다.
30일은 미디어작가 김도이군이 찾아 와 ‘광주식당’에서 낮술 한 잔 때렸다.
31일은 헤어 디자이너 박정자씨를 만나 순대국집에서 한 잔하고, 노래방까지 따라 갔다.
본래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목소리도 안 나오지만, 한 번 질러봤다.
‘비나리는 호남선’에서 ‘봄날은 간다’로 지랄발광을 떨었다.
아마 옆에서 보았다면, 진짜 가관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고 일어나니, 목에다 머리까지 아파 죽겠더라.
오후3시에 광화문 판화전에서 미팅이 있지만, 부도내야 했다.
호빵 두 개를 전기밥솥에 푹 고아 죽처럼 먹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니나 다를까 늦어 막에 화가 장경호씨의 전화를 받았다.
왜 오늘 나오지 않냐기에, 아파 못간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란 것이다.
아픈거야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기어드는 목소리를 듣고는 심상찮다고 판단한 것 같다,





좀 있으니 정영신씨가 들이 닥치고, 뒤 이어 정덕수시인을 대동해 장경호씨가 나타난 것이다.
다짜고짜 병원가자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내 몸은 내가 안다며 괜찮데도, 링겔이라도 한 병 맞고 오자는 것이다.
정덕수씨는 덩달아 광화문텐트촌에서 웅크려 자는 것 보다 따뜻한 병원에서 하루 좀 지내자고 하소연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며, 버텼다.





그런데, 쪽방에 네 사람이 들어 앉으니 꽉 차더라.
오붓한 자리에서 술 한 잔 때렸으면 좋겠으나, 따끈한 뉴스만 전해 들어야 했다.

반질이 사퇴했다는 이야기와 최효준씨가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둘 다 반가운 소식이라 감기가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반질반질한 반가 꼬라지 안 보게 되었으니, 속이 후련했다.
늦게나마 꿈에서 깼으니, 천만다행이다 싶다.





이제 괜찮다며, 억지로 돌려보냈다.
다들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쪽방 촌에서 아파도 하소연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엊저녁 술자리에서 남아 싸온 술국을 데워 밥 한 술 떴다.
하루만 더 쉬면 될 것 같았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연이어 마시려면 몸 관리 좀 해야했다.
내일은 동자동 사랑방에서 놀며, 동네 분들 불편한 이야기나 좀 들어야겠다.
정치판부터 바뀌어야 하지만, 마을의 작은 일부터 잘못된 것은 하나하나 바꾸어야 한다.


죽기 전에 바른 세상 한 번 보고 죽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새해 첫 날부터 열 받았다.
부모님의 차례를 지낼 수 없어 ‘동자 희망 나눔 센터’에서 치루는 합동제례에 함께했다.

70여년 살아왔으나, 가족 없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것도 처음이지만, 정월 초하루 날 이렇게 열 받아 본 적이 없다.

돈이나 권력 가진 자들의 갑 질이야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빈민들을 위해 만든 “동자 희망 나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문 앞에서 만난 직원의 사진 찍지말라는 첫 말에 그만 울화가 치민 것이다.

인사부터 나누며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과 강압적으로 찍지말라는 것은 천지차이다.

등짐에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직원마다 사진 찍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전에 자치회의 진행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한 글을 꼽게 여겨, 보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사람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한다지만, 그 문제는 그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걱정할 일이다.

그동안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개의 주민들이 나의 사진기록을 묵인해 주었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몇몇 분은 내가 피하기도 하지만,

삭제해 달라면 그 자리에서 삭제해 별 문제가 되지않고, 오히려 찍어 달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을 위한 사진이기도 하지만, 그 작은 기록들은 먼 훗날, 그들 삶의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동 차례는 여기 저기 알려 권장할 일인데다, 뒷모습만 나오니 초상권 운운할 문제는 더구나 아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찍으면서 나만 찍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박근혜 하는 짓이나 하나도 다를 것 없었다.






문제는 주민들에 대한 갑 질이 아주 조직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말 잘 듣는 몇 명에게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할 지원품을 여유있게 주는 완장부대를 둔 것이다.

자원봉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본 것일까? 사진 찍지 말라면 그만 두고, 싫다면 나오지 않을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난 빈민들의 보다나은 삶을 위해 남은 목숨 바치러 온 사람이다.

아니, 돕는 다는 말보다 스스로의 권익을 찾으러 왔다.

그렇게 제지하는데도 계속 사진을 찍으니, 잘 아는 완장부대 영감이 “너 맞을레”라며 욱박질렀다.

“당신 깡패야?”라고 되물었더니, 손으로 맞는 것만 맞는 것이냐?“며 슬며시 꼬리 내린다.


명절제사를 제대로 치루지 못해 합동제례에 모시는 불효막심에 가슴 아팠으나,

어쩌면 허례허식일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위안도 가졌다.

합동제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권장할 일이었다.

차례를 일 년에 네 번씩 치러 왔지만, 제사상 한 번 차리는데, 20만원은 족히 들기 때문이다.


많이 차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성이 더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없다.

마음의 정성이라도 모우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모님에게 차례를 올렸다.

부족함을 용서 빌며, 앞으로 마을 분들과 잘 지내며 더불어 사시라는 부탁도 드렸다.






이젠 우리 조상들이 지키던 고유의 신은 외국의 하나님 신에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천 이백여명의 주민 중에 제사상에 절한 주민은 열 댓 명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명절이 되어 더러는 일가친척 댁에 간 분도 계시고,

좁은 방이지만 정성 것 차례 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미 판세가 바뀌었다.

우리집 제사 역시, 형제자매가 모두 하나님을 믿어 내가 맡은 게 아니던가.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제사 밥 먹던 일도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설날 주민들과 어울려 떡국이라도 한 그릇 나누며 정 나누길 기대를 했으나, 그마저 깨졌다.

‘동자동 사랑방’처럼 온 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치루는 제사가 아니라, 아낙네들 마저 보이지 않았다

대개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듯이 추석선물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주민 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냉냉한 분위기가 더 서글펐다.


그리고 어제도 '사랑의 빨간 밥집'이란 후원단체에서 나와 쌀을 나누어 주었다.

난, 쌀이 남아 줄 서지 않았지만, 그 행렬도 길었다. 사는데 제일 중요한 품목이니까...

그러나 거지처럼 줄세우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나눔의 집'에 일괄 넘겨 날자를 정해 수시로 받아가게 했으면 좋겠다.











차례를 지낸 주민들은 이층 사무실에 쌓아 둔 지원품을 힘들게 내렸는데, 그 시간도 제법 걸렸다.

그 사이 물품을 받으려는 동내주민들의 행렬은 장사진을 쳤다. 지원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쌀과 삼계탕, 식혜 등이 담긴 포장박스 외에도 사과 한 알, 계란 세 알, 양말 몇 컬레로 나누는 품목도 있었다.


그런데, 민간단체나 기업에서 후원한 물품을 나누어 주는데, 최소한 어디에서 누가 주는 물건인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베푸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물품이 얼마나 보내왔고, 몇 명의 주민에게 어떻게 배부되는지, 주민들도 소상하게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이 주민을 무시하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길들이는 일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잘 못된 모든 일은 하나 하나 시정되어져야 한다.






허기진 몸으로 주민들 틈에 끼어 지원품을 받아들고 서둘러 돌아왔다.

광화문에서 열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제례에도 참여해야하고,

설날에도 쉬지 않는 ‘미술행동’에도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선물로 준 일회용 삼계탕으로 끼니를 때웠다.

설날 밥상치고는 좀 특별했으나,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잘 먹었다.

그 동안 방이 좁아 밥상 하나 둘 자리도 없었는데, 선물이 담긴 포장박스를 뒤집어니 좋은 밥상이 되더라.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각오를 다진, 새해 첫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노숙인은 선물도 받을 수 없다.


공짜 물품에 매달리지 않은 강완우씨, 아직 자존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지난 20일은 밤새 눈이 내려 미끄러웠다.

동자동을 한 바퀴 돌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다.
인사동서 챙겨 온 술과 안주가 있건만,
혼자 마시지 않기로 했으니 어쩌랴!
함께 할 이가 없으니, 무용지물이었다.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다들 나오지 않았다.
그 날은 노숙하는 이들도 안 보였다,
갈 곳 없는 그들마저 어디로 갔을까?
빈자리엔 술병 같은 흔적만 나 딩굴었다.

두더지는 땅 속에서 추위를 견뎌낼 수 있지만,
두더지보다 못한 팔자를 타고 난 그들이다.
어디로 구걸하러 갔을까?
또 반기문이 나타나 쫓겨나진 않았을까?

결국, ‘사랑방’에 가서야 이웃을 만났다.
그곳은 분위기도 아니지만, 마실 분이 없다.
사랑방커피 한 잔으로 대신했다.
지질이도 술 복 없는 하루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양승우 마오 부부와 고정남씨가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을 방문했다.

시간에 쫓겼기도 했지만, 방이 너무 넓어 네 사람이 다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 열어놓고 방만 쳐다보아야 했다.

차 한 잔도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4층 꼭대기까지 찾아 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들과 함께 오겠다는 고정남씨의 전화를 받기 전에 양승우 부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제 저녁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양승우 마우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를 보며

사랑놀이에 너무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소소한 아름다움에서 최고의 가치를 찾아냈더라.

먼 곳에 있는 허구의 예술을 쫓는 많은 사진 인들에게 이것이 사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엊저녁엔 양승우 마오 부부가 보여 준 사랑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생각하다 잠들었다.

어느 한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깊고 넓고 오묘함에 대하여...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이 사진전은 꼭 한 번 볼만하다.
사진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대해 다시 돌아다 볼 절호의 기회다.


















구하라 아랫마을반 빈곤 운동 후원의 밤이 지난 14일 오후3시부터 10시까지 대학로 육갑에서 열렸다.

 

아랫마을은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원하는 가난한 이들의 공간으로 5개 단체가 상주하는 곳이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다.

이들 단체의 공통된 요구는 빈민들의 주거와 소득문제로 연결된다.

각기 따로 있던 단체들이 안정적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홈리스야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2010년 함께 모여 아랫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랫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파산 상담을 위해, 긴급복지를 신청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 탈락 상담을 위해, 컴퓨터를 배우러,

한 끼 식사를 나누러, 티브이를 보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랫마을로 모여든다.

가족과 사회와 단절된 빈민들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소중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아랫마을은 월세 150만원에 세 들어 있다. 공과금과 기본 운영비도 매달 30~40만원 든다.

5개 단체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운영해 재정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아랫마을 1년 나기를 위해 후원의 밤을 마련한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가족들도 '아랫마을' 일일주점 후원행사를 도우러 나섰다.

난, 식도락에 밥 먹으러 갔다가 박정아 대표로 부터 일일주점 행사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날은 광화문광장에서 12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함께하는 광화문미술행동의 인증샷과 기록을 맡아야 했는데, 약속한 오후4시는 가장 바쁜 시간대였다.

정영신씨에게 미뤄두고 참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랫마을구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간 맞추어 대학로 후원주점에 들렸더니, 동자동 사랑방 공제협동조합의 박정아 대표를 비롯하여

허미란, 정도영씨 등 몇 분은 도우미로 일하고 있었다.

좀 있으니 우건일 조합장을 비롯하여 김정오, 최남순, 김창헌 김호태, 선동수씨 등 동자동 식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일일주점 티켓 만원으로 아랫마을이 한 해를 꾸려갈 수 있도록 다들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일거양득의 시간이었다.

아랫마을을 돕는 일만 아니라 주민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목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아랫마을이 활동을 이어가려면, 독지가의 후원이 절실하다.

도움 주실 분은 후원계좌(794002-04-068844 국민은행 이동현)를 통해 전달하면 된다.




















































벌써 대통령 된 듯 행세하는, 반기문의 갑 질에 울화가 치민다.
나라 망신시키고 왔으면, 자중해야 할 사람의 짓거리 치고는 가관이다.
공항에서 기자회견으로 주접떨었으면 됐지, 서울역은 또 왜 갔나?
추위를 피해 역사에 머무는 노숙인을 밖으로 내 쫓다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소외받은 빈민부터 껴안아야 할 것 아닌가?






지난 13일 늦은 오후, 허기를 메우러 밥집으로 내려갔더니,
구석에는 김왕중씨가, 입구에는 김용만, 원용희씨가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있었다.
엊저녁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쫓아낸 반기문을 이구동성으로 욕하고 있었다.
어제도, 이곳에서 밥 먹다 공항에서 기자회견하는 그의 말에 토할 뻔 했는데,
또 다시 밥 맛 떨어질까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주인장에게 이 식당은 이름도 없냐고 물었더니, ‘광주식당’이란다.
오래 전 바람에 간판이 날아 간 후로 그냥 두었다고 한다.
늘 혼자 와서 반주로 소주 한 병 비우는 김왕중씨는 눈 먼 장님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훤히 꿰고 있었다.
술이 조금 부족한 듯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스스로 정한 주량을 지켰다.







오늘 찍은 사진들이 궁금하여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세경씨란 분으로 부터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간 있으면 소주 한 잔 대접하겠다기에, 곧 바로 만났다.
서로 문자로만 연락했기에 문세경씨의 연령 층은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몰랐다.
단지 ‘동자동 사랑방’ 카페에서 내 글과 사진을 보아 알게되었다는 것뿐이다.





약속한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 나타난 분은 어여쁜 미녀였다.
좀 서먹했지만, 단골집인 ‘광주집’으로 안내했는데, 주인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광주집이 문 닫는 시간이라 옆에 있는 중국집으로 옮겨야 했다.
짬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켰는데, 둘 다 귀가 신통찮은데다

내 말조차 어눌하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치 벙어리처럼, 궁금한 것은 메모지에 적어 물어 보기까지 했다.






불편한 질문보다 묻는 말에나 응했는데, 별 씨잘데 없는 이야기까지 다 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입에 짝짝 달라붙었으나, 한 병으로 끝내야 했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질문지를 만들 생각까지 했다.






문 걸어 닫고 외부와 단절한 주민들도 만나야 하고,
‘광화문 미술행동’팀을 도와 구태를 청산하는데 힘을 보태야 하니,
별 하는 일도 없이 마음만  늘 바쁘다.
하루속히 박근혜가 물러나, 동자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이시여! 제발 이제 구악을 거두어주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쪽방 촌에 살다보니 가끔은 ‘레이더스’가 부른 ‘인디언 보호구역’이 떠오른다.
쪽방 촌이 마치 빈민 보호구역 같다는 생각에서다.
보호한다는 긍정적인 뜻 이면에는 길들인다는 측면도 깔려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빈민들은 보호보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하다.
수입만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잘리니,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일하지 않고, 주는 것만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하청주는 ‘쪽방상담소’란 사무실이 서울에 다섯 군데다.
동자동이 소속한 ‘서울역쪽방촌 상담소’를 비롯하여 남대문, 동대문, 종로, 영등포에 있다.
모두 서울 중심지에 몰려있는 것도 특징이다.
상담소에 등록하여 회원증만 받으면 공짜 상품도 수시로 준다.
그러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쪽방 촌으로 몰려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9일에는 상품을 준다기에 나갔더니, 참치 캔이 든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상자에 박힌 ‘대한민국정부’라는 로고에 또 한 번 주눅 들었다.
국가에서 너희들을 어여삐 여겨, 특별히 주는 것이니 말 잘 들으란 말 같았다.






물건을 타러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을 보면, 마치 난민 수용소의 한 풍경이 연상된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줄 서 있는 입장에서는 꼴이 말이 아니다.
한 가닥 남은 자존심마저 몇 차례의 반복으로 서서히 사라지며, 좀 뻔뻔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본인도 모르게 길들어가는 징조다.









오늘은 구정선물 준다기에 갔더니,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이삼백 미터나 길게 줄지어 있었다.

기다려보니 물건을 받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웅크려 떨며 기다리는 그 시간들은 인내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방에 와서 펼쳐보니, 그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어린시절 미군들에게 얻어먹었던 씨레이션 박스가 생각났다.










일회용 팩에 든 곰탕을 비롯하여 내복과 잠옷, 떡국, 고추장, 김, 치약, 칫솔, 비누, 샴푸 등
한 살림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은 곰탕과 떡국 등 한 두 가지 뿐이었다.
내일 당장 난리 터질 일도 없으니, 비좁은 방에 두면 짐스럽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기호품으로 당장 필요한 일회용 커피는 없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적절한 상품권을 주어 당장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얻어 먹는 주제에 줘도 말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젠 좀 합리적으로 하자는 말이다.
그걸 받아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모르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의 정신만 병들어가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돈 많이 드는 장기적인 복지개선 보다, 가시적인 생색내기에 딱 안성마춤인 것이다.
그런 생필품은 쪽방에 사는 빈민보다, 거리에 방황하는 노숙인이 더 절실하다.
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생필품마저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숙인의 인적현황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무슨 놈의 빈민의 복지를 말하냐?







정부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빈민들이 협력하는 ‘동자동사랑방공제협동조합’보다 못하다.
실제도 그렇지만,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그러니 주민들조차 둘로 나뉜다.
협력하여 자립의 길을 찾는 것과 눈깔사탕으로 길들이는 것이, 어느 게 더 나은가?
정치가 썩었으니, 관료들도 잔머리만 굴려 국민들만 고달픈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다섯 시에 주민자치회의가 있다기에 아픈 몸을 끌고 ‘나눔의 집’으로 갔다.
삼 십 여명의 주민들이 모였으나, 회의를 소집한 상담소 직원은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주민자치회의에 공무원이 올 필요야 없지만,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회의에서 보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말만 자치회의였지, 일방적인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선물 주고, 언제 무료 진료가 있다는 등의 안내뿐이었다.
그 정도면 지금처럼 요소에 붙인 공지문으로 다 아는데, 왜 불러 모았을까?
자치라는 말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것도 길들이는 수순인가?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구조적 모순점들을 완전히 쓸어내야 한다.


“난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죽어도 사육 당하기는 싫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몇 일간 먹는 게 싫다.
먹는 게 싫으면 죽는 것인데, 할 일이 남아 죽을 수도 없다.
지난 주말을 보낸 후, 몇 날을 방에서 낑낑거리고 있다.
몸살 증세 같지만, 푹 쉬면 괜찮을 것으로 여겨 누워 지낸다.
고작 정신 차려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 열어 노닥거리는 게 전부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는 먹어야해, 한 번씩은 밥집을 찾는다.
일찍 서둘면 지척에 있는 ‘식도락’에서 먹을 수 있지만, 매번 밥 때를 놓친다.
그 곳은 사랑방 조합에서 봉사하는 밥집인데, 한 끼에 천원 밖에 받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후로 여태 못 갔으니, 어지간히 게으름을 피운 게다. 




 

지난 토요일에는 허미라씨가 혈당 검사까지 해 주며,
돈 넣으려고 저금통을 찾으니, 토요일은 무료라며 돈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돼지 수육과 쌈이 준비된 특식이 나왔다.
수육이래야 한 접시가 전부였지만, 아무도 욕심 부리지 않는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서너 점씩만 담아 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굴에 묻어났다.
‘식도락’은 밥값 부담도 없고, 음식도 깔끔하지만,
이곳의 별미는 여러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인정이다.
따뜻한 눈길 섞인 말 한 마디에 절로 배가 부른 것이다.







요즘 따라 부쩍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진다.
몸이 신통찮은 탓이겠으나, 애써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린다.
4층 계단만 내려오면, 단골 밥집이 바로 입구에 붙어 있다.
이름 적힌 간판도 없이 그냥 닭곰탕이란 글만 보인다.
그러나 아직 이 집에서 한 번도 닭곰탕을 먹어 본 적은 없다.
매번 주문하는 것이 사천 원짜리 백반인데, 먹을 만하다.
코 구멍한 밥집이라 서너 사람만 들어오면, 꽉 차보이고,
주변이 너저분해 손님 모시기는 좀 그렇지만,
주인 아줌마도 좋고, 음식이 집에서 먹듯 맛깔스럽다.







매일 세시 쯤 들리다, 오늘은 다섯 시에 내려갔더니,
주모가 더 신경 써 주는 것 같았다.
날씨가 춥다며,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려 왔지만, 짭짤한 된장국이 댕겨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벽에 붙은 구닥다리 티비 뉴스 소리에 울컥 토할 뻔했다.
반기문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 말에 비위가 상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배가 부르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에 밥맛을 잃는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