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사진 책만 만들어 온 ‘눈빛출판사’가 인사동에 사진 전문 갤러리 ‘인덱스’를 개관했다.

 

서인사주차장으로 가는 인사동11길 옆에 위치한 '갤러리인덱스'

지난 1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전 날 마신 술에다 감기까지 걸려, 술자리를 피하고 싶어 차를 끌고 나간 것이다.

옛 '수희제' 자리인 '도채비도 반한 찻집'을 거쳐가는 32계단의 사진산책이었다.

 

전시장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를 비롯하여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

아트디렉터 김지연씨, 사진가 김보섭, 엄상빈, 정영신, 이은숙, 임재천씨도 있었다.

 

좌로부터 안미숙 관장과 김지연 아트디렉터 / 전민조사진

개관 첫 전시로 걸린 사진은 어느 미군병사의 눈에 포착된 1948년 겨울의 서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란 제목처럼 애잔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정겨운 풍정이었다.

 

그때는 한반도에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해, 민족분단의 서막이 오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겨울이 지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남과 북은 갈라지고 말았다.

 

전시된 사진들은 75년의 세월을 되돌린 소중한 기록이었다. 

설빔 입은 아이들의 옷 색깔이 한층 아름다운 것은, 그 때 사진들은 흑백으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기개 넘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한 가닥 희망도 엿보였다.

 

‘눈빛아카이브’가 소장한  슬라이드 필름은 촬영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진에 미군정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추정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원판이 어떤 경로를 통해 경매에 흘러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75년 전의 사진이라면 내가 태어난 이듬해다.

사진 속의 어린이들이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텐데, 전시된 사진을 본다면 알아볼까?

 

그리고 전시된 사진 외에도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사진서적도 700여종이나 진열되어 사진의 진가를 골고루 찾아 볼 수 있었다.

 

이형록 사진집에 게재된 1959년도작품, '강화도아이들'

둘 곳도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지만, 사진 책만 보면 욕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2년 전에 펴낸 이형록선생 작품집을 정동지 책 사는데 꼽사리 끼어 한 권 구입한 것이다.

오래전 부터 사고 싶었지만, 다른 책에 밀려 번번히 사지 못했던 원을 기어이 풀었다.

책 속의 보지 못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스스로 준 새해 선물로는 최고였다.

 

많은 사진 중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개관전에 내놓은 것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유명작가의 내용 없는 작품보다 무명작가의 시대적 기록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글이다.

“내용 없는 사진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또 우리가 제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얼마나 탐해왔는가를 오히려 미군정기 틈입자의 시선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식민과 전쟁(태평양전쟁)을 겪은 조선인들이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의젓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발랄한가. 그해 겨울 ‘종이거울’ 속의 사람들은 나라를 잃었어도 기개를 버리지 않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혹한 속에서도 그 어떤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사진은 전한다.”

 

이 전시는 2월13일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눈빛출판사'와 '인덱스갤러리'의 융합은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사진 소장자가 점차 늘어나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출판과 전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던가?

단지 불경기란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솔직히 말해, 사진인의 한사람으로서 ‘눈빛출판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지울 수 없다.

 

‘눈빛’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기록,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남아 있겠는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 보는 사진책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진의 가치 이전에 장인정신의 귀결이다.

다들 시간 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전시도 보고, 진귀한 사진집도 구입하자.

전시된 작품과 함께 한국사진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인사동 눈빛사진산책 ‘인덱스갤러리’가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전당이 되길 축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김지연씨의  따뜻한 그늘 사진전이 오는 25일까지 충무로 꽃피다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김지연씨가 '경향신문'에 연재해 온 사진 산문에 실린 작품으로,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사진 산문집도 선보였다.

 

오랜만에 충무로에 나갈 일이 생겼다.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는 김은주 전시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갤러리 꽃피다에 정영신의 따뜻한 그늘참여 작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갤러리 부근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작품을 전달하러 간 정동지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까지 네비로 걸어두고 가,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

 

기다리다 지쳐 김은주 전시부터 보러갔으나, '브레송'은 문이 잠겨 있었다.

그때 사 남의 전화를 빌렸는지, 전화가 걸려왔다.

'눈빛' 이규상씨와 사진가 이한구씨도 있다며, 그곳으로 빨리 오란다.

 

전시장에는 많은 사진가가 달라붙어 디피 하느라 분주했다.

 

사진가 김지연, ‘꽃피다김유리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를 비롯하여

참여 사진가인 이한구, 고정남, 손은영, 김명점, 정윤순씨 등 여러 명이 계셨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돌아보니, 간혹 눈에 익은 작품도 보였으나,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이 많았다.

 

마지막에 가져 간 정영신의 장터 사진으로 디피가 마무리되고 있었는데,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사진 산문집 ‘따뜻한 그늘’도 나왔더라.

 

눈빛출판사 / 165X210 / 252면 / 가격22,000원

 

 출판된 따뜻한 그늘’ 1부는 사진가 김지연의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2부는 김근원, 한영수 등 작고 작가에서부터 이한구, 박종우, 고정남, 김명점, 김영경, 엄상빈,

변순철, 정영신, 박찬원, 이재갑, 이선민, 임안나 등 40점의 사진이 글과 함께 실려 있었다.

 작품이해를 돕는 김지연씨의 산문은,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전시 디피를 끝 낸 후, 간략한 개막식도 진행되었다.

전시 디피가 끝나자마자 개막식이 진행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

 

사진가 김지연씨의 인사말에 이어, 이규상대표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와 축하인사도 따랐다.

 

작가와의 대화는 오는 123() 오후2시부터 열린다. 의미 있는 시간 갖기 바란다.

 

수고한 분을 위한 뒤풀이에 휩싸여, 밥값만 축내는 일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앞자리에 앉은 김명점씨가 쏘아 덜 미안했다.

 

뒤풀이에서 돈 거두는 게 일상화되었는데, 누군가 혼자 계산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것도 여성이...

 

하기야! 여성이기에 배포 좋게 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내들은 옛날처럼 기분좋게 쓸 경제적 여유도 없지만,

곰상스러움이 체질화되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졸장부가 되어버렸다.

세상 많이 바뀌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늘 고맙습니다"

'따뜻한 그늘' 전시보러 가세요. 사진산문집을 구해 보셔도 좋습니다.

 

 

사진,  / 조문호

 

 

 

아침에 일어나니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여름감기에 걸려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허리협착증에 감기까지 더해 녹번동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9월호를 얻기 위해 인사동을 경유했다.

전시장 찾는 일은 자제하기로 다짐했지만, ‘나무화랑’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브레멘 예술대학 디자인 학부 졸업작품을 선보이는 유철균의 사진전이 궁금해서다.

전시작가를 비롯하여 판화가 류연복씨와 김진하 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가와는 첫 대면이었으나 외모는 물론 섬세한 끼까지 아버지를 닮았더라.

 

전시 중인 유철균의 친밀전은 비대면 시대를 맞은 젊은이들의 일상을 포착했다.

비대면 시대에서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던지며,

주변 공동체의 내밀한 일상을 그만의 어법으로 보여주었다.

 

거리두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간관계가 아니던가?

사회가 놓친 예민한 문제를 유철균이 끄집어낸 것이다.

 

거창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나른한 일상의 단면을 담담하게 포착해 낸 시각이 신선했다.

 

유철균의 문제의식은 비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96일까지 열리는 유철균의 친밀전을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녹번동에 갔더니, 눈빛출판사에서 보낸 두 권의 사진집이 도착해 있었다.

안장헌의 소소한 일상과 임지훈의 예멘사진 시집이었다.

 

문화재전문 사진가인 안장헌의 소소한 일상

고려대 호영회에서 활동했던 60년대 후반에 찍은 진귀한 사진이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잠자던 작품이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그 때 그 시절, 우리가 살았던 아련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기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소중한 사진집으로 소장가치가 높다.

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사진전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9일까지 열린다.

 

임지훈의 예멘 사진 시집은 뜨거운 햇살 아래 살아가는 예멘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사진 설명 대신 쓴 시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진과 시는 대상을 즉관적으로 잡아낸다는 동질성이 있으나, 사진 시집을 펴낸 작가는 처음이었다.

 

사진 한 장은 시 한 편이고, 시 한 편은 사진 한 장이었다.

이미지와 심상은 사진에도 있고 시에도 있었다.

 

감기약을 챙겨 먹고 자리에 누우려니, 정동지가 손님 온다며 손을 내 저었다.

저질러 놓은 일에만 정진하기로 명세 했건만,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녹번동 온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인사동 물귀신들이 처들어 온 것이다.

술과 민어회를 사 들고 위문 공연왔다는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전활철, 공윤희씨에 이어 김수길씨 까지 찾아와 술자리가 어울렸다.

 

술이 약인가? 술이 들어가니 아픈 몸이 슬슬 풀렸다

담근 지 팔 년 된 상황버섯주 까지 꺼내 마셨다.

인사동 골동상들이 벌인, 웃지 못할 사연을 술안주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죽고 사는 문제는 다음 문제다.

 

사진, / 조문호

 

 

 

포토존 앞에 선 사진가 박옥수

박옥수의 ‘시간여행 이 지난 5월4일부터 9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작은 1965년부터 80년까지의 박옥수 초창기 사진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근현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도 지녔다.

 

뚝섬 , 서울 , 1970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는 고교시절 부터 사진가로 두각을 드러냈고, 대학 시절에는 고 이형록 선생이 이끄는 '현대사진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사진사에서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 그룹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사진 이념이 생성된 중요한 시기였다.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전몽각, 황규태, 박영숙 등 기라성 같은 사진가들이 활동한 '현대사진연구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고) 이경모선생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한 후, 사진가 문선호선생 휘하에 들어가며 광고사진가로 변신한 후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동성고 , 서울 , 1975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그는 개인전을 하지 않았다. 가끔 단체전에 내놓은 작품도 리얼리즘 사진보다 서정적인 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초창기 작품으로는 83년 문선호씨가 주도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전에 내놓은 미사에서 지휘하는 장면과, 2005민사협에서 주최한 시대와 사람들전에 내놓은 국립묘지에서 통곡하는 유족들 모습이 박옥수 초창기 작품을 본 전부였다.

 

수색부근 서울 . 1969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2009민사협에서 주최한 한국현대사진60전을 비롯한 여타 단체전에 발표한 작품은 조형적이거나 서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에 리얼리즘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은 사실은 전혀 몰랐다. 2017년 토탈스튜디오를 그만둔 후 페이스북에 올라온 6-70년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난지도, 서울 . 1969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그 소중한 자료를 반세기 동안 깔아뭉갠 이유가 궁금했다. 상업사진에 전념하느라 정리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튜디오를 그만두기 전에는 할 일 없이 시간 보내는 것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이경모선생도 역사적인 여순사건의 중요한 필름 원판을 긴 세월 묻어 둔 사실이 있지않은가. 1994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먼지 쌓인 필름을 끌어내어 격동기의 현장이란 사진집을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뚝섬 , 서울 , 1970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어쩌면 객관적인 기록보다 작가의 주관을 중시하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추측 컨데, 그 사진들을 찍을 당시에는 고 임응식선생이 내세운 생활주의 리얼리즘이 주도할 시기였다. 한국사진의 주류로 급부상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작가의 자기모순과 공모전용 걸작사진 위주의 획일화라는 부정적인 영향도 미쳤다. 그러나 이형록 선생을 필두로 한 현대사진연구회에서는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의 형식적 한계를 벗어나 조형성을 강화한 사진도 더러 나왔는데, 그런 영향을 받은 건 아닐지 모르겠다.

 

사근동 청계천 서울 . 1967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그리고 한국사진사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는 모든 게 공모전으로 평가받던 시기였다. 사진가의 주관은 둘째 문제고 오로지 눈에 튀는 사진이 우선이었다. 원근감과 안정감을 주는 사진 구도같은 것을 따지기도 했고,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공모전 사진의 길을 걷지 않은 원로 사진가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나? 망원렌즈를 낀 고등학생 시절 모습을 보니, 마치 이미지 사냥꾼 같은 공모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 부딪혀야 하고, 잘못된 사회를 개선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허망한 이치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지만...

 

뚝섬 , 서울 . 1968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대부분의 공모전은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주관했는데, 세월이 반세기가 흐른 아직까지 공모전으로 장사하며 회원 늘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이젠 사진작가라 불리는 회원이 만 명을 넘는 공룡집단이 되었지만, 제 돈 쓰며 취미생활 한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원로 사진가 중 주명덕, 강운구, 황규태 등 몇몇 사진가만 사진 협회에 가담하지 않았지, 대부분의 원로들이 '한국사진작가협회' 고문이나 자문위원을 거쳤다.

87년 '민족사진가협회'가 창립되면서 대학교수를 비롯한 프로 사진가들은 대부분 빠져나왔지만, 그 구태는 여태 바뀌지 않았다. 희대의 살인마 이동식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이발사에게 독약을 먹인 사건도 그러한 공모전이 원인이었다.

 

뚝섬 ,서울 , 1974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하기야! 공모전만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남의 의견을 듣거나 고르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시간여행사진집을 출판하기 위해서도 많은 사진 원고에서 골라낸 출판사 편집자가 있었고, 출판사에서 골라낸 수많은 사진 중에 전시작으로 선택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 아니겠는가?

 

여수, 전남 . 1975;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1991년 무렵,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교류하며 ''을 소재로 열었던 전시 외는 개인전도 하지 않았고, 개인 사진집도 출판한 적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눈빛출판사’에서는 시간여행’과 ‘개마서원에서는 뚝섬이라는 사진집을 각각 출판하며 대규모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서울. 1971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새 아파트가 즐비한 배경으로 쓰러질 듯 자리를 지킨 청계천 판자촌, 물지게를 지고 위태롭게 물을 건너가는 어린 소녀들, 창경원에서 휴대 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 남녀들, 우산을 쓰고 물 구경 하는 가족의 정겨운 모습, 파월용사 묘역에서 울부짖는 여인들, 논두렁을 걷는 어린이의 기막힌 동작 포착  수많은 사연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뚝섬; 서울 . 1968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의 시간여행은 기자들이 찍는 현장 사진과 달리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여, 그 시기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60년대는 전통으로 지켜 온 우리의 문화가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시기로, 서민들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박옥수의 눈을 통해 기록된 풍속의 리얼리티가 현실감 있게 드러난 사진에는 절망 속에서 살아온 우리 삶의 흔적이 질퍽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안정적이고 단순한 앵글로 주제를 부각시킨 그의 사진은 한국사진의 전통적 형식에 다름아니다. 아마 전통적 사진을 배우고 익힌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선거유세장의 청중들 . 1971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의 시간여행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린다.

힘들어도 그때가 그립다.

 

글 / 조문호

 

박옥수사진집 '시간여행' / 눈빛출판사 / 239X252mm양장/ 228페이지 / 가격 50,000

 

박옥수사진집 뚝섬’ / 개마서원 / 235X253mm양장 / 160페이지 / 가격 40.000

 

 

 

 

 

 

 

시간여행 1965-1980

 

박옥수 사진집

눈빛 / 228쪽 / 값50,000원

ISBN 978-89-7409-431-7

 

이 사진집은 사진가 박옥수의 사진입문 초중반기인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촬영한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인 제3공화국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산업사회로의 진입, 전통의 퇴조 내지는 소멸, 일상을 지배했던 집단주의 등이 박옥수의 사진에서 보인다. 뉴스 현장보다 일상의 순간이며, 1960-70년대의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박옥수는 1967년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한 한국사진의 전통을 이어온 마지막 주자다. 한국사진사에서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가 그룹의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자생적 사진이념이 묻어 있는 한국사진의 소중한 준령이다. 이때 이 그룹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진가들로는 이형록,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이창환, 백남식, 전몽각, 황규태, 박영숙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진가가 거리에 나가 관찰하고 오래 기다렸다 찍은 사진은 그 시기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보여준다. 사진에서 “‘리얼한 사진’이라는 말은 현실 그대로의 사진이라는 뜻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재창조되어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된 사진을 가리키는 말이다.”(한정식) 그러니 이 사진집이 보여주는 1960-70년대의 현실은 사진가 박옥수에 의해 ‘재창조되어’ 그 시절이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된 것’이다. 박옥수 사진의 시간여행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960-70년대 사람들이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애써 지우거나 잊으려 했던 전통이라는 이름의 잔재가 있고, 누군가는 희망 속에서, 또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살아간 삶의 흔적이 있다. 장충단공원에서의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유세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서울의 봄’의 그 유명한 학생들의 서울역 회군, 창경원에서 휴대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 남녀들, 산업화에서 소외된 군상들, 집단체조에 동원된 무표정한 여학생들, 하나둘 주검으로 돌아와 묻히는 파월용사 묘역에서 울부짖는 여인들…. 현재를 구성하는 퍼즐의 하나인 과거가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022년 1월  / 눈빛출판사

 

박옥수 약력

 

박옥수는 1967년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한 한국사진의 맥을 이어온 마지막 주자다. 한국사진사에서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가 그룹의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자생적 사진이념이 묻어 있는 준령이다.

박옥수는 1964년(광주일고 1학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을 한 그는 고교에 진학하자마자 큰형님의 카메라(니콘 S-2)를 들고 다니며 일본 카메라 잡지에서 본 사진들을 흉내 내 찍는다. 그는 고교생 신분으로 전국사진촬영대회에서 수차례 입선하는 등 광주의 ‘학생 사진가’로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대학 진학(한양대)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한 그는 이형록이 이끌던 현대사진연구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사진가로서 일취월장한다.

군제대 후에는 문선호사진연구소에 근무(1974-1976)하면서 광고사진에 입문하고 이후 현대자동차 홍보실(1976-1979)에서 사진담당으로 일하며, 1978년 1월에는 유럽을 배경으로 포니 자동차 홍보사진을 촬영했다. 1983년 충무로에 광고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토탈스튜디오를 운영하다 2017년에 문을 닫았다.

‘눈빛출판사’에서 나온 '인사동 이야기’는 11년 전에 나와 절판된 사진집이다.

 

인사동이야기 / 250페이지 / 25,000원 / 눈빛출판사

 

 개정판으로 나온 지가 한 달이 채 못되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풀어놓은 인사동 이야기와

인사동을 추억하는 곳곳에서 찍은 입상사진으로 엮었다.

 

아래는 책에 실린 내용이다.

 

서문 / 인사동 친구들 / 한정식 사진가

 

나의 인사동 이야기 / 고) 강민 시인

인사동의 역사는 골목에서 만들어진다 / 강기희 소설가

인사동에서 만난 두 사람 / 강선화 사업가

인사동 나그네 / 구중관 소설가

인사동 풍경 / 기국서 연출가

봄비를 기다리며 / 김명성 시인

인사동 낙수 한 토막 / 김신용 시인

인사동에서 길을 잃다 / 김여옥 시인

무대 잃은 인사동 노악사 / 조문호

인사동에서의 하루 / 김용문 도예가

유연의 얼굴들 / 김형숙 수필가

 

어느 고미술상에게서 들은 얘기 / 김진하 미술평론가

인사동 회화나무 하나 / 김호근 전 갤러리 북스 대표

땡초 전성시대 / 조문호

세월은 흘러가고 / 민영 시인

인사동 / 박영현 시인

모델료 받아 노잣돈 한다던 천상병 시인 / 조문호

인사동은 늪이었다 / 배평모 소설가

활극과 인정의 터, 인사동 / 변순우 시인

서울, 1962년 인사동 / 서정춘 시인

인사동은 고장 난 피아노의 건반 같은 곳 / 송상욱 시인

인사동- 민병산 선생을 애도하며 / 신경림 시인

 

그리운 인사동 / 신동여 도예가

통문관의 산기 선생이 그립다 / 고) 심우성 민속학자

인사동 골목을 살리자 / 오세필 기와 장인

인사동과 막 뮐러 / 윤양섭 리버티 에셋 매니지먼트 회장

인사동과의 인연 / 고) 이계익 전 교통부장관

나의 소우주, 잃어버린 낙원 / 이나무 작가, 출판인

인사동 사람들, 그들의 빛깔 / 이정숙 문학평론가

인사동은 공간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기억인가 / 임재경 언론인

인사동 풍류 / 임춘원 시인

김일의 후예 박대머리 / 조문호

인사동 시의 거리’ / 조정애 시인

 

인사동의 단골집들 / 전강호 화가

미지의 세계 / 정영신 사진가 겸 소설가

인사동의 힘 / 조인숙 사진가

땡땡이로 시작된 인연 / 조준영 시인

인사동 친구들 / 조해인 시인

인사동 역사 / 최대식 화가

인사동, 기억의 풍경 / 고) 최영해 시인

인사동 사람들은 기인인가 / 최울가 화가

인사동에서 꿈을 꾸다 / 최일순 연극배우

인사동으로 상경한 세 화가 / 조문호

인사모’여 영원하라 / 황명걸 시인

 

작업 노트 /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 조문호

 

강찬모 / 히말라야 별만큼 반짝이는 화가

구중서 / ‘한국작가회의’ 원조이신 리얼리즘 문학평론가

공창호 / 인사동 고미술의 대가

공윤희 / 여지껏 ‘공대위’로 불리는 인사동 지킴이.

금보성 / 인사동에서 한글 회화를 시작하다

고) 김동수 / 민속박물관장을 지낸 로맨티스트

김수길 / ‘구름에 달 가듯이’ 술집 하다 달 가듯 떠도는 사진가

고) 김영수 / 인사동 콧수염으로 통하는 ‘민사협’의 대부

고) 김용태, ‘민예총’과 동격인 화가.

노광래 / 평생을 노부장으로 부르는 ‘갤러리 시네’ 이장

 

류연복 / 다채로운 칼춤으로 풍미하는 목판화가

고) 목순옥 / 천상병 시인을 사랑한 ‘귀천’의 사모님

박 건 / 값싼 사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공산품 작가

박불똥 / 민중미술에 불똥 지핀 화가.

박상희 / 세계를 방랑하며 문명의 시대정신 담아내는 조각가

박재동 / 초상화와 버스킹으로 인사동을 풍미하는 시사만화가

방동규 /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리는 시대의 의인

서정란 / ‘꽃구름 카페’를 노래한 이름 같은 서정시인

성완경 / ‘현실과발언’의 주체로 활동한 미술평론가

수안 / 시, 전각, 그림을 잘하는 통도사 스님.

 

안동해 / 티롤 음악감상실을 운영한 서예가

안창홍 / 45년간 인간성 회복을 형상화한 화가

엄인호 /「골목길」을 부른 ‘신촌블루스’의 리더.

고) 여운 / 조선시대 화가 최북을 닮은 목탄화가, ‘인사동 밤안개’로 불린다

유재만 / ‘김대환박물관’을 지키는 아리랑 명품관 대표

육명심 / ‘장승’과 ‘백민’ 시리즈로 우리 모습을 잡아 낸 사진가.

이만주 / 시로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무용평론가.

이명희 / ‘말괄량이 길들이기’ 보다 대폿집 주모 역이 제격이네

고) 이종문 / 거리에서 하늘로 유랑 떠난 유랑악사

이종승 / 인사동 화랑을 순회하는 비주류 화가

 

이청운 / 어려웠던 시절의 그 파아란 바다를 그리는 서양화가.

고) 이호철 / 분단문학을 승화시킨 소설가

임경일 / 인사동 문화를 사랑하는 전방위 예술애호가

임영주 / 전통문화재의 달인인 고미술 학자

임태종 / 인사동 문화터를 탈바꿈하는 건축가

장경호 / 한강미술관장을 역임한 화가.

장사익 / 노래와 소리의 경계를 허문 가수

전유성 / ‘학교종이 땡땡땡’의 교장을 역임한 인생 개그의 대부

전활철 / 인사동 풍류를 연출하는 ‘유목민‘ 주인

정동용 / 인사동 ‘시인학교’ 10년 하다 말아먹은 시인

 

정해광 / 인사동에 아프리카미술을 끌어들인 미술관장

정희성 / 저문 강에 삽을 씻는 시인

고) 채현국 / 한때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였던 철학자

최백호 / 시인 같은 가수가 그림도 잘 그리네.

최석태 / 우리 미술을 연구하는 고집불통 평론가

최효준 / 인사동과 미술을 이어온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하태웅 / 전통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무예가

한봉림 / 전주문화계 맹주 도예가

허태수 /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목사

 

이밖에 소개한 분들이 70여명 더 있다.

 

책은 인터넷에서 구하면 편하지만, 저자 서명을 원한다면 연락바란다.

 

얼마 전에는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도 나왔다.

 

‘인사동 이야기’ / 눈빛출판사 / 가격 25,000원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사진집 / 눈빛출판사 /가격 35,000원

조문호의 ‘노숙인, 길에서 살다’ 포토에세이집 / 이숲출판사 / 가격 25,000원

 

책이 필요하신 분은

문자 메시지로 주소를 남겨주면 발송해 드리겠다.

계좌이체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연락처 : 010-2955-8926

 

성원해 주신 덕에 ‘인사동 이야기’ 출판기념전을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설치는 때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편치 않은 전시임은 틀림없었다.

한 달 전의 민폐가 체 가시기도 전이라 염치없는 짓이었다.

 

책이라도 좀 팔려는 욕심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임을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전시안내를 올린 터라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도자료에서 부터 일체의 전시홍보를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기처럼 매일 올리는 중계방송까지 멈추고, 한 분이라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러나 다녀간 분들의 페북 연결로 알만한 분은 다 알게 되어버렸다.

 

그 벌은 전시장을 지켜는 내내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아는 분이 오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심지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빠졌냐며 원망하는 지인까지 여럿 있었다.

그래서 정동지에게 맡겨둔 채 전시장 비우기를 밥 먹듯 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한정된 지면에 어찌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11년 전 초판 나올 때 찍은 분도 다 게재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촬영까지 했으니 쩔쩔 맨 것이다..

하다못해 사진 질에 따라 선정하라며 출판사 편집자에 위임해 버렸다.

 

예전에는 만나는 대로 촬영했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친분보다 인사동과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어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이 또한 갑 질에 다름 아니었다.

 

내년에 출판될 인사동 책에는 개인 입상사진보다 인사동 행사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많이 할용해 당시의 현장 이야기까지 곁들일 생각이다.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도 약속드린다.

 

이번 전시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민폐는 끼쳤지만, 더 좋은 책을 준비하는 수업료로 여긴다.

그 덕에 ‘인사동 이야기’ 책도 100여권이나 팔았고, 사진도 여러 점 판매해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전에 계시는 사진가 박순규씨는 전시 때마다 먼 길을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마치 자식 챙기듯, 올 때 마다 농산물이나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시 첫날인 24일은 ‘유목민’에서 간단한 뒤풀이를 했는데,

이한성씨가 술값으로 백만원을 술집에 맡겨주는 통에 지난 전시 때와 달리 술값 걱정은 덜게 되었다,

그 날은 조해인, 김수길, 정동용, 김 구, 김제홍, 장경호, 임경일, 이명희씨와 함께 마셨다.

 

그 다음 날인 25일에는 마지막 들린 황정수씨 내외와 한 잔했는데,

먼저 술집으로 안내해 드린 화가 김정헌, 이태호씨도 자리 잡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황정수씨와 사진가 양승우씨가 친하게 된 경위와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관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셋째 날인 26일은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조준영씨가 전시장 문 닫을 무렵에 나타나

모처럼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들린 ‘부산식당’은 방에서 의자로 실내장식이 바뀌었으나

13년 전 찍어 준 조성민씨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마치 부친의 입상사진이 ‘부산식당’ 트레이드 마크처럼 벽면을 지켰다.

 

27일 늦게는 판화가 류연복씨, 사진가 김문호씨, 화가 신상덕씨가 나타나

전시장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이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 마시는 중에 신상덕씨와 ‘귀천’에 모과차 마시러 갔더니 목영선씨가 반겼다.

목순옥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조카 목영선씨가 물려받았는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단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스물여덟의 청년이 된 것이다.

 

28일은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가 꽃다발과 축하선물까지 사 오셨다.

오래전 부터 인사동에 관한 출판 계약을 한 상태에서 같은 주제의 사진집 복간 기념전을 열었으니,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마운 분이다.

 

그 날은 마지막 들린 화가 이인철씨와 어울려 불편한 마음을 위안했다.

 

전시 철수 전 날인 29일은 최석태, 장경호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전시장에선 매일 주눅 들어 지내지만 문 닫기가 무섭게 술집에서 지냈다.

 일주일 내내 술독에 빠지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전시 끝나는 날 이한성씨가 다시 나타났다.

맡겨두고 간 술값이 소진될만하니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 날은 장경호씨 앞으로 술 값 백만원을 맡겨두고 간 것이다.

 

이한성씨는 20여 년 전 인사동 주막 ‘작은뜨락’을 자주 찾았는데,

늘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자선 사업가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야박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분들이 인사동 풍류객의 주체로 버티는 한 인사동 앞 날은 결코 어둡지만 않을 것이다.

 

전시를 철수하는 날은 전시 디피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도와 준 김진하관장과 한 잔 했는데,

김수길, 전활철, 임경일, 노광래씨와 어울려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그동안 전시장을 비워 만나 뵙지 못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아래 방명록에 적힌 성함이라도 오래 동안 기억하렵니다.

"고마웠고, 미안합니다"

 

조해인, 이명희, 한배규, 석은미, 김인재, 박경하, 이종승, 전강호, 양시영, 박홍순, 노광래, 박상희, 변정대섭,

편근희, 손기환, 전태수, 양상용, 김이하, 정영철, 나종희, 조정애, 김재홍, 황영선, 우문명, 곽숙경, 공윤희,

박옥수, 박서연, 박상희, 박 건, 조경연, 박불똥, 임태종, 서인형, 박태종, 김진하, 박서호, 안정희 ,최인기,

임경일, 안동해, 정동용, 김 구, 김수길, 박은태, 변성진, 박찬원, 성기준, 현영애, 박순규, 최효준, 이종구,

김발렌티노, 이태호, 김정헌, 황정수, 이만주, 김윤기, 최연하, 이규상, 조준영, 최영호, 이기정, 이성은,

김지연, 곽명우, 최태만, 양정애, 최동락, 박종면, 고 헌, 송주원, 전민조, 김문호, 유광식, 신상덕, 류연복,

이승곤, 양재문, 이병진, 김태진, 이인철, 문성식, 박순영, 이한복, 서정란, 임정희, 강찬모, 이상훈, 최석태,

금보성, 하형우, 이태호, 임동은, 고영준, 전활철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인사동이야기' 표지 / 눈빛출판사 / 가격 25,000원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이 나와 억지 춘향격으로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인사동을 다시 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 인사동은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에 한 동네에 불과하나 마치 고향 같았다. 긴 세월 예술가들을 만나 정신적 키를 키워 온 것에 비한다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이 마냥 좋아 때론 아쉽기도 하고. 원망스러워 밉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어왔듯 인사동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돈에 병들어가는 사람이 미워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제 돈에 병든 인사동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인사동 골목에서 벗들을 만나 회포 푸는 것으로 위안하는데, ‘맛이 간 인사동을 그만 찍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들 말한다.

 

나에게 인사동은 병든 가족 못버리는 것과 같다. 고향이 싫다고 아닐 수 없듯이 인사동은 인사동인 것이다.

 

오랜세월 인사동을 기록해 왔지만, 예술로서 작품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각양각색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풍경이나 전시장 풍경이 난무했고, 대폿집 정경을 비롯하여 인사동 향취가 묻어나는 사진도 있었다. 때로는 변해가는 인사동의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수 많은 사진 중에서 '인사동 묵시록'이란 주제에 걸맞는 이미지만 골라냈는데, 백남준씨가 ‘예술은 사기다’고 말했듯이 이 또한 사기다. 사람이 별로 없거나 역광에 의해 무거운 분위기의 사진을 고르고 거기다 한술 더 떠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었다. 사진을 실제보다 어둡게 프린트하여 흥겨운 놀이를 귀신놀음처럼 음산하개 만드는 등의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게 아니더라. 먹고살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주관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찍는 게 상식이지만, 기록을 중시하는 사진가라면 편파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약 신문기자가 주관적인 기사를 만든다면 기레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앵글 선택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

객관적인 기록사진을 찍는 자가 다소 주관적 사진을 골라낸 데 따른 변명을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다. 전시 의도는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인사동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삭막해 가는 인사동의 그늘이 짙은 것도 사실이고, 망가져 가는 현실에 실망한 시선도 한몫했다.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세상 흐름 따라 장터 변하듯 인사동 역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유명세에 힘입어 관광지화 되다보니 돈맛에 병든 것이다. 예술보다 돈 되는 상품이 인사동을 장악하는 현실은 전통가게와 전시장까지 밀어내고 있다.

 

돈이 무섭고 악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무자비하게 철거된 문화공간 ’코트‘가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계약도 끝나지 않은 곳을 강제 철거했다. 용역업체를 끌어들여 고압수를 살포하며 입주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돈 앞에서는 법도 소용없는 무서운 세상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가게나 문화공간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하잘 것 없는 인사동 노래라도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인사동 이야기’는 11년 전에 나와 절판된 사진집이다. 인사동에서 잔뼈가 굵은 노광래씨가 복간을 추진하다 개정판이 되었는데, 글과 사진을 일부 추가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내년에 출판할 예정인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에 내걸 사진은 인사동의 현실을 말하는 40여점이 주를 이루는데, 책에 없는 사진이 더 많다. 그리고 한 쪽 벽에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상사진 10여점도 내걸기로 했다.

 

주제와 다른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의 입상사진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책 제목도 ‘인사동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초판에 게재된 분들은 13년 전에 열었던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에 내 걸었으니, 추가로 촬영한 20여 명 중 일부라도 선보이려는 것이다.

 

각자가 추억하는 장소에서 찍었으니, 인사동의 특정 거리나 공간도 포함되었다. 사실 인사동이란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인사동 이야기’ 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시와 추억담이 있고, 인사동 사진도 37점이 중간 중간 들어있다. 책값은 25,000원이다.

 

이 전시는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신명난 굿판 한 번 벌이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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